원인 목표 방편

 

1989. 6. 27. 화새벽.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와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 하는 전생활은 건설구원인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또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것 아니고 또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다 기본구원은 얻어  놨습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이래 구별하지 않는 그 교리를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의 생활하는 것이 기본구원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힘쓰지 안하면 기본구원을  못 얻는다, 하늘나라 못 간다. 또 지옥 간다. 영생을 못 얻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안 된다.' 이것 때문에 힘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전부 잘못  깨닫고 잘못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해 보든지 성경을 연구해 보든지 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것을 둘로 구별해 놓지 아니하면 성경도 전체가 난해가 되는 것이  한 사분지 삼쯤이나 될 것이고 또 그 행동하는 것은 거개가 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행동을 하게 됩니다. 건설구원 이루는 것도 아니고 기본구원 이루는  것도 아니고.

 이러니까 자기 마음에는, 사람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마음과 몸이 들어서 둘이  합해 가지고 행동하는 것인데 마음은 엉뚱한 마음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행동하는 것이 다 건전이 되지 안합니다. 건전이 되지를 못합니다. 자기는  기본구원을 얻을라고 해 놓은 행동이니까 기본구원 얻을라고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저절로 다 됩니다.

 이러니까 기본구원에 대한 행동은 할 필요가 없고 전적 건설구원에다가 주력을  해야 되는데 이 깨달은 교리와 신조가 배운 것이 잘못됐기 때문에 항상  기본구원에 대해서 염려하고 노력을 하고 하니까 그것은 다 잘못 깨달음이 되기  때문에 마음면에서는 잘못하는 행동이요 하나님 보실 때는 틀린 행동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모든 노력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위배서 노력을 하는 것인데  건설구원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뭐 거의 한 십의 한 칠팔은 다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고 혹 하나나 둘이 기본구원에 대해서 하신  성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게 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은 좋은 것은 뭐인고 하니 가르침 받은  대로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좋은 것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또 우리가 전부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 두 가지 입장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는 가르친 것으로서 이제 다 자기의 할 일이 다 됐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이 말씀에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이라 말은 이 복음의 말씀에 가르친 것이 전부 다 좋은 것입니다. 이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했으니까 좋은 복음을, 우리에게 참 구원이 되는 좋은 하나님의 이  교훈을 우리가 가르치고 또 전해서 가르치고 받고 하는데 잘못하면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는 가르치는 것으로써 이제 복음에 대한 일을 자기는 다 한 것으로  그렇게 여기기 쉽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르침 받은 자기만 그 일을 행할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서 다 모두 다  치우쳐 가지고 일방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자기도 행해야 되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그 좋은 것을  그대로 해야 되고 둘이 다 같이 배야 되는데 그러면 가르치는 사람도 그 가르친  그대로 그 사람도 행하여야 하고 또 행하고 가르친 것이 정식이기 때문에 행하고  가르치는가 그건 것도 자기는 또 볼 필요가 있고 또 가르침 배는 저도 가르침을  받는 대로 행하며야 합니다.

 이런데 여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러니까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모든 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가르친 그 교훈대로의 그것이 좋은 것인데 좋은  것을 그걸 그러면 누가 먼저 하게 돼 있습니까? 가르친 자가 먼저 합니까?  가르침 받는 자가 먼저 합니까? 그 성경 본문대로. 누가 먼저 합니까? 먼저  합니까 같이 합니까? 먼저 합니까, 같이 하는 걸로 돼 가지고 있습니까? 같이  하는 걸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이 해야 됩니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자와 그 좋은 것을 함께 행하지 안하고 저는  가르치기만 하면은 성경을 어긴 사람이요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효력이 헛일입니다. 또 가르치는 자는 그 대로 복음대로 좋은  것을 하는데 가르침을 받는 자는 또 하지 안합니다. 그것도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이 복음대로의 생활을 같이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 딱 못박아서 성문으로 발표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교리 이단도 있고, 교리 이단도 있고 행위 이단도 있습니다.

교리는 맞을지라고 행하지 안하면은 행위 이단이 되겠습니다. 또 그 사람이  행할라고는 애를 써서 행한다 할지라도 교리가 틀렸으면 또 교리 이단이  되겠습니다.

 이거 세상 모든 자연 만물이나 또 이 물리 그런 것은 가리켜서 사람들이  연구해서 다 그것을 조립하고 편집해 놓은 것을 가리켜서 그런 것들을 과학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 과학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자연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연 계시는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창조물과 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와, 화초 이런 것도 이것이 차차 자라고 잎 피고 꽃 피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로써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와 또  인간들의 그 마음이 참 상상도 못하게 천태만상으로 자꾸 이렇게 변해가는 그런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계시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껄 보고서 하나님을 믿어야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그것을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믿어야 되는데 그 법칙을  가리켜서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시라 말은 한국말로 말하면 열 계(啓)자  보일 시(示)자, 열여 보인다. 하나님이 이래 보여 주신다. 이래서 계시라 이렇게  말하는데 계시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계시라고도 하고 일반 계시라고도 하고, 일반 계시라고 말하는  그렇게 단어를 그래 붙이는 사람도 있고 자연 계시라고 그렇게 붙이는 사람도  있는데 자연 계시라 하든지 일반 계시라 하든지 그거는 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다  가르쳐 주신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지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는 특별 계시는 없었고 자연  계시만 주셔서 자연 계시 가지고 살 수 있었었는데 타락한 후부터 자연 계시  가지고서는 안 돼서 하나님이 특별 계시를 주셨습니다.

 특별 계시는 육십육 권 도리와 그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신의  감화. 영감, 영감을 특별 계시라 칭고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하나님의 섭리와 또  인간들의 마음의 변태되는 구조 이런 것을 합해서 자연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노 이 특별 계시를 법칙으로 알고 섬겨야 되는데 특별  계시만 가지고는 못 깨닫습니다. 깨닫는 것도 있지만 다 못 깨달으니까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연 계시도 순종하면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이고 특별 계시도  순종하면 믿음이 되는 것인데 자연 계시를 순종 안 하면 그것도 믿음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에 밥을 먹고, 목마를 때에 물을 마시고, 또 피곤할  때에 쉬고 자고 깨고 하는 이런 것이 다 이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순종하는 것이고 자연 계시의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고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을 따라서 하는 것은 특별 계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번에 성경 해석에 대해서 양성원 학생들은 공부를 했는데  거게도 약간 나오는 것을 내가 봤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신약 성경만 필요  있지 구약 성경은 필요 없다 차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또 구약 성경만 필요하지  신약 성경은 필요 없다고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거 다 일방적이고  치우친 말입니다.

 구약은 신약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주 편리하고 쉽습니다. 또 신약은 구약으로  해석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래서 신약은 구약으로 해석하고 구약은 신약으로  해석하고 또 이 특별 계시는 뭘로 해석하느냐? 특별 계시는 이 일반 계시 자연  계시로 해석하고 또 자연 계시는 특별 계시로 해석을 해야 그걸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면 무신론의 과학자들, 하나님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그 사람들은 이 자연  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자연 계시를 연구하는 그 사람들이 암만 연구해도  특별 계시를 모르기 때문에 그 연구하는 것이 정확지를 못하고 뒤떨어집니다.

 이래서 지금은 나는 모르지마는 제가 한 삼십 년, 한 사십 년 전에 통계가  나왔는데 세계에 그 발명가들, 이 자연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그 은밀한  것을 발명한 그 발명가들 가운데에 얼마가 기독자냐? 발명가들 가운데에  기독자가 십의 팔이라, 백의 팔십프로가 기독자들이 다 발명가요 한 이십프로  그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 발명한 것이라 그렇게 통계 나온 것을 제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들은 자연 계시만 가지고 자꾸 알라고 이라고 자연 계시를  연구할 때 특별 계시를 가지고 연구하고 특별 계시는 자연 계시를 가지고  연구해야 될 터인데 그것을 다 전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발전이 더뎠고 또  정확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연 계시에 대해서는 대개는 그것이 다 배암의 지식입니다. 배암의  지식이요 전부 이 과학도 다 하나님의 지식 아닌 것은 다 배암의 지식 입니다.

배암의 지식 그것도 근본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마는 배암들이 주관해  가지고 이 타락한 사삼들 마음을 뱀이 마귀가 주관해 가지고 그래 그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만들어 낸 모든 지식들은 다 배암이 그 원인자이기 때문에 배암의  지식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이 배암의 지식만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모르니  그것이 언제든지 배암적입니다. 항상 그거 세상적이오. 세상적이요 또 그것은  피조물적입니다. 창조주는 떼내 버리고 피조물적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  일방적이고 이거 전체의 지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 실패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그래 가지고 모든 옳은 것과 참인 것을 찾아가는 데에 지장을 보고  또 옳은 것을 성공하는 데에 지장을 보고 뒤떨어집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도 또 그와 비슷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특별  계시인 이 문서 계시와 또 영감 계시만 받을라고 그것만 가지고 살라고 애를  쓰고 이 자연 계시를 무시하면 또 헛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하는 그 배암의 지혜는 전부 이거 오늘 아침에 자연 계시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 원인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마는  하나님이 마귀를 통해서 이 세상에게 전파해 놓은 것이라 그거요.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그라면 이 모든 자연 계시를 전부 네가 다 알아라. 자연  계시를 다 가지고 있거라 그 말이오. 배암같이 하라 그말은 자연 계시를 가지고  있어라. 그래 놓고 난 다음에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하는 것은 내나 특별 계시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영감대로 네가 행하라. 자연 계시도 알고 영감대로 행하라.

그러면 자연 계시는 참 고로만 삼고 영감 계시는 그대로 네가 받아서 실행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러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어떤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인가?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할 때에,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에서 하나님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면 알 수 있는 그것이 자기에게  벌써 보여지고 자기 생각에 떠오르는데 '이거는 하나님에게 물어 보고 하면  이것을 바로 알 수 있겠어' 하는 그런 것이 자기에게 그 빛이 비추는데 그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옳은 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자기 욕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 욕심이 강하기 때문에 옳은 걸 찾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만  눈을 감고 그만 하나님 찾아 가지고 의논하는 것을 의논하지 않습니다.

 의논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지도의 정답이 나올 터이니까 그 정답이 나오면은  자기가 중심에 소원하고 있는 그 욕심대로 안 되겠다 해서 그만 그때 하나님을  찾아 묻는 것을 묻지 안할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오.

 이제 그라다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것을 압니다. '요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요라면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일이다' 위반될 일인 줄 알면서 그 일을  할라고 생각하는 것이, 위반된 줄 알면서 그 일을 할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아닌 줄 알면서 그 일을 단행을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런 것을 다 합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분하고 의논하지 않는 것이오. 의논하면  번연히 그분이 나에게 옳고 바른 것을 지도해 줄 터인데 그럴 줄 알면서  의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요 또 아닌 줄 알면서 아닌 줄  알면서 아닌 그것을 할라고 모든 준비를 갖추는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반하는 것이오. 그라면서 그 일을 단행하는 것이 뭐입니까?  단행하는 것이 그 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범사에 행할 때에 하나님에게 의논하지를 안하고. 의논을 하기를,  '구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의논하라는 말인데 하나님에게 의논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요 의논을 하면은 의논하면은 나올 수 있습니다.

의논하면은 '요거 요라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나.' 알 수 있다는 빛이  저에게 보이는데 그 일을 하면은 환하게 빛을 볼 터이니까 빛을 보고 나서  그렇게 말하는 거는 현저히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라다가 아닌 줄 또 압니다. 아닌 것을 택했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고 이거 이래 하는 것은 이거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것이고 섭섭해하는  것이다.' 요걸 알면서 그 일을 할라고 단도리 차리는 거, 고거 할라고 모든 것을  준비 갖추는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배반해. 벌써  하나님과 돌아서 버렸어.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단행하는 거, 그 일을 행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그만 대적하는 일이  지금, 하나님과 대립돼서 대적하는 일이 되어진 것입니다.

 '스스로 속지 말아라' 이거는 스스로 속지 말라 말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속이지 마라. 네가 너를 속이지  말아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패되는 것은 다 속아 가지고 실패되는 것인데  속이는 것이 둘이 있기 때문에 여게 스스로 속이지 마라 하는 것은 네가 너를  속이지 마라 하는 그말입니다.

 속이는 자는 하나인데, 속이는 자는 악령뿐이오. 악령 외에는 속이는 자가  없습니다. 악령이 이 우주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속이는 일이 이 우주 안에는  없었습니다. 우주는 깨끗한 우주였었는데 악령이 들어와서 하와를 범죄케 했을  때부터 그때부터 속이는 일이 시작이 됐습니다.

 그 속이는 것은 마귀가 속이지 마귀 외에 딴거는 속이는 일이 없는 것인데 네가  너를 속이지 말라 그말은 마귀가 벌써 그 사람 속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 손에  들어와서 마귀가 자기를 주관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스스로 속이지 마라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안에서 자기가 돼 가지고 자기를 속이는  인 있고, 마귀는 자기가 돼 가지고 자기 안에서 자기를 속이는 일이 있습니다.

 속이는 것은 어떤 게 속이는 것인가? 삐뚤어지게 하도록 하는 것이 다 속이는  것이요 망하게 하도록 속이는 것이요 이라면 잘된다고, '네가 이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 된다' 이렇게 말했는데 막상 먹고 보니까 그는 하나님이 되는 게 아니라  마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벌써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자기를 주관하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마귀 그거는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요 범죄케 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마귀만 들어오면 그만 그  마음이나 생각이나 모든 이성이나 양심이나 비판이나 그 전부가 다 마귀적입니다.

마귀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에 있어서 옳은 생활을 전부 하지  못하도록 삐뚤어진 생활하게 그렇게 만드는 것이 마귀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스스로 네가 너를 속이지 말아라'  사람은 자기 밖에도, 자기 몸 밖에도 마귀가 모든 사람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안하고 성령에게 붙들리지 안한 사람은 전부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몸 밖에서도 우리를 속이고 또 몸 안에서도 속이고, 몸 밖에 속이는  것은 몸 밖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내게 대한 것이기 때문에 혹 '나를  속일란가?' 이렇게 생각을 가지기가 쉽지마는 자기 몸 안에서 자기 마음 안에서  자기가 돼 가지고 속이는 것은 이것은 제 맘이기 때문에, 제 마음이니까 저를  위하는 줄 알고, 제 생각이니까 저를 위하는 줄 알고, 제 생각이니까 저를 위하는  줄 알고 전부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여기는 백프로 속는다 그 말이오.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백프로 속습니다. 자기 몸 밖에 있는 것한테 속는 것은 좀  거게서 안 속을 수가 있고 조심할 수가 있지마는 마귀가 자기 안에 들어가  놓으면 그거는 그만 뭐 자기를 얼마든지 속일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가 벌써 자기 안에 들어와 가지고 있으면은 그 사람을 언행심사는 전부  마귀적이요 그거는 다 자기를 망치는 일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 '스스로 속이지  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요새 며칠 전에 공부를 했는데 우리에게는 우리 신앙 행위에 있어서는  그 세 가지로 가르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 행위에 있어서 세 가지로  가르쳤는데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뭐이지요? 하나는 원인, 원인.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원인. 원인이라는 말도 되고 또 근원이라는 말도 되겠습니다.

 이래서 그 원인, 하나는 원인이요 또 하나는 중요한 거 하나는 뭐입니까? 목표요  향방의 목표요. 또 셋째로 중요한 것은 뭐입니까? 방편입니다. 방편인데,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이 원인이요 둘째로 중요한 것이 목표요 셋째로 중요한 것이  방편입니다.

 그런데 요 일이삼, 일등 이등 삼등, 이렇게 첫째 중요하고 둘째 중요하고 셋째  중요한 것으로 일이삼의 요 순서를 매긴다면 요렇게 되는데 대개 사람들이  첫째도 가치 있는 줄을 모릅니다. 첫째가 가치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속량함을  받은 사람들만이 첫째 것을 가치 있는 줄 알지 일반 사람들은 첫째 것을 사치  있는 줄은 하나도 모릅니다.

 또 둘째 것도 가치 있는 줄을 모릅니다. 목표를 잘 정해야 되지 암만 달음질을  잘한다 할지라도 목표가 삐뚤어졌으면, 경주할 때에 요 목표는 지금 저게 있는데  그 사람은 목표를 저게 있는 줄 알고 어만 데로 향해서 가면은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그 사람이 승리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로는, 목표가 중요한데 이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목표를 전부 망할 목표를 삼고 있어. '나는 세계에 제일 대학자가  되겠다.' '세계에 제일 인정받는 노벨상 받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지금 정권을  잡아서 대통령이 되겠다.' '나는 뭐 장관이 되겠다.' '나는 큰 재벌가가 되겠다.'  '나는 그런 거는 안 되니까 무슨 체육으로 이제 참피온을 따겠다.' 이 모두 다  이런 거,  또 목표를 '저 사람들 집은 지금 스무 평인데 나는 지금 오십 평 집을 가지겠다.'  또 '저 사람은 지금 재벌이 몇 억인데 나는 그 사람보다 얼마 더 많은 몇 백억이  되겠다.' 이런 것을 전부 목표로 다 사람들이 삼고 있는데 그 목표를 바로 정해야  되지 목표를 잘못 정하면 암만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목표를, 안 믿는 사람으로서, 택한 자라 할지라도 안 믿는 사람으로서 그 목표를  바로 정한 사람이 혹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소 없소? 하나도  없어. 요걸 여러분들이, 안 믿는 사람으로서는 인간의 목표를 바로 정한 사람이,  인간의 목표에 그걸 목표로 삼아야 되는데, 모든 사람이 다 그걸 목표로 삼아야  되는데 그 목표를 바로 잡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목표를 잘못 잡았지 또 원인도 틀렸지 또 거게서 방편, 셋째 중요한 것이  방편인데 그러면 사람이 지금 일류대학에 갈라고 애를 쓰고 또 야간 공부를  해서라도 또 지식 얻을라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는데 그런 거 또 자기가 기술을  배우고 어짜고 하는 거. 또 자기가 열심을 내는 거, 힘을 쓰는 거, 조심을 하는 거,  연구를 하는 거, 또 절제를 하는 거, 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거 이런 것은 다  뭐입니까? 그런 것은 원인에 속했습니까, 목표에 속했습니까. 목표라 말은 그  결과라 말이나 같은 말이오. 자기의 욕망이라 말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고 민첩하고 지혜 있고 아주 슬기 있고 부지런하고  하는 그건 것은 원인입니까, 그것이 목표입니까, 방편입니까? 그거 방편입니다.

방편인데 방편이 가치적으로 말하면 첫째 둘째 셋째 맨 마지막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디다가 주력을 하고 있느냐 하면은 이  셋째의 이 방편에다가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방편에다가 주력하고 있는데, 그 방편은 일등 방편을 그 사람이 가졌습니다. 어찌  됐든가 방편은 그 사람이 일등 방편을 가졌어. 일등 방편을 가졌는데 그 사람이  목표가 삐뚤어졌습니다. 향방이 삐뚤어졌어. 그래서 고린도전서 9장에 '향방 없이  달리는 자와 같이 하지 않는다' 그 목표를 바로 정하지 못하고 달음질 하니까  암만 달음질해야 소용없습니다. 목표가 틀리면 그 사람이 일등 방편을 가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소?  또 그 사람이 이제 목표를 하나 두고서 달아납니다. 그 사람이 목표를 단단히  잡았습니다. '나는 요걸 목표로 삼겠다' 목표를 단단히 잡았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바로 잡아야 되지 삐뚤어진 목표를 잡으면 소용없어. 삐뚤어진 목표를 잡으면  소용이 없는데 삐뚤어진 목표는 어데 있느냐 하면은 어데서부터 시작됐습니까?  삐뚤어진 목표는 어데서부터 시작됐어? 원인에서, 근원. 원인에서 그것이  삐뚤어진 게 시작 됐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이 신앙 생활 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뭐이냐? 원인을  잡아야 됩니다. 원인을 바로 잡아야 돼요. 원인을 바로 잡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자기가 목표를 바로 잡아야 됩니다. 셋째로 중요한 것이 방편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원인은 두 가지뿐인데, 원인은 두 가지뿐이오. 천하 사람들이  다 사는 모든 생활에 원인은 둘뿐입니다. 뭐 원인이 서이 아니오. 둘뿐이오.

둘뿐인데 하나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는 마귀입니다. 원인이 둘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으로 인해서 움직이든지 마귀로 인해서 움직이든지 둘 중에 하나지 딴게  없습니다.

 그러고 또 목표는 뭐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것도 크게 말하면 여게 말하기를  썩은 것과 영생하는 것 두 가지로 말했어. 썩은 것을 거두고 또 영생을 거둔다.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추수 말이오. 또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렇게 추수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그 사람이 목표로 정한 것도. 목표는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목표가 몇 가지입니까? 저 뒤에는 저 깜깜하게 있네.

손을 버뜩 들어 봐요. 좀. 저 뒤에 사람들 게을 해 못써. 요것도 요래, 이거 좀  버뜩 한번 이래 들어 보지. 이래 이렇게. 버뜩 이래. 요것도 요래 들기가 싫어  요만치 들고 요만치 들고 요거 그만 드는 것도 이라고 마는 거라. 그거 게을 해  그래요. 이거 여러분들 속에 박히라고 자꾸 여러 날 아침 말하는 건데.

 사람들이 이러나 저러나 그만 모든 사람들이 목표를 두고 살기는 삽니다. 사는데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목표를 통틀어 말하면 몇 가지냐? 둘입니다. 둘. 성경에  말해 놨어. 썩어진 것 또 영생하는 것, 영생과 썩은 것, 영생과 썩어지는 게  아니라 영생과 썩은 것. 영생과 썩은 것, 영생과 썩은 것.

 기쁨도 영생이 있고. 영생 기쁨이 있고. 영생 쾌락이 있고, 영생 영광이 있고  영생 취미가 있고, 영생 성공이 있고, 영생 부요가 있고, 영생 권위가 있고, 영생  존귀가 있고 전부 영생하는 것이 있고 이거 또 썩은 것이 있다 말이오.

 썩은 것은 세상에서 끝나는 것도 썩은 것이요 또 세상에서 끝나지 안해도  세상에서 끝나지 안하고, 그것이 영원 무궁세계 가 가지고도 또 썩는다 그거요.

영원히 썩습니다. 이러니까 목표도 두 가지 뿐이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러면 목표를 뭘로 해야 됩니까?  영생으로 해야 됩니까, 썩은 추수를 우리 목표로 해야 됩니까? 영생하는 추수를  목표로 해야 되는데 자기가 하루 종일 생활하는 거 일 년 내내 생활한 거 그걸  따져 보면 영생을 목표하는 영생 목표인지 썩을 추수의 목표인지 똑똑히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아는 거 같으나 어리석소. 이러니까 이것을 바로 구별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항상 자기는 이 세 가지를 조심하는데 이 셋째 것 그거는 저절로  되다시피 돼요.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항상 살다가도 '내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방편을 하고 있지 안해요? 방편을 하고 있는 거, 방편을  하면서 '이 원인은 뭐이냐? 이 방편의 원인은 뭐이냐?' 이것을 생각해 보지 안해.

 사람들은 어찌 됐든 간에 그 방편만 지금 '내가 학교 입학했기 때문에 요 입학을  꼭 졸업을 해야 되겠다. 일등 졸업을 해야 되겠다. 또 졸업하고 나면 나는 지금  어떻게 출세를 해야 되겠다.' 그것만 날뛰고 있지 그게 다 어떤 출세를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이 다 방편인데 그 노력이 방편인데 노력을, 방편을 하면서  '나는 무슨 성공을 해야 되겠다.' 무슨 성공을 해야 되겠다는 그 성공이 뭐입니까?  성공 그걸 뭐라고 했지요? '나는 정계 성공해야 되겠다. 학계 성공해야 되겠다.

모든 재벌 성공해야 되겠다.' 하는데 그 성공 그게 뭐입니까? 원인이요 목표요?  목표. 그게 목표라.

 그 목표를 자꾸 심사해 봐요. 마귀 요놈이 빽 틀어 놓기 때문에 '내가 목표가,  내가 지금 뭣을 목표로 하는데 이 목표는 썩은 목표냐? 이 썩은 것을 목표하고  있느냐 영생을 목표하고 있느냐?' 영생 목표냐 썩은 목표냐 요거 항상 깨달아야  된다 말이오. 이거 항상 조심해. 하다 보면은 헛일이라. 왜? 성령으로 시작해  가지고 육체로 끝을 마치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람들은 방편에만 주력하지 방편보다 중한 이 목표나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다 망하고 만다 말이오. 잘난 사람이 더 망해요.

똑똑한 사람이 더 망해요.

 그 사람이 아주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명철합니다. 이 성적으로 명철하고,  활동성 있고, 또 배짱 있고, 또 조심 있고, 연구성 있고 열심있고 다 있습니다.

그거 뭐입니까? 그거는 뭐이요? 이 세 가지 가운데 뭐 입니까, 그게? 몇째  것입니까? 셋째 것. 제일 천한 거라. 제일 천한 것 셋째 것.

 그런데 이 방편인데 방편보다 귀한 게 뭐입니까? 목표. 목표보다 귀한 게  뭐입니까? 원인.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살면서 '내가 지금 오늘 이 경영하는 것은  분주하게 날뛰는 것은 이 목표가 뭐이냐? 썩은 것이냐 영생이냐?' 요렇게만 보면,  요라면 분주 복잡한 것이 다 제거해 버리고, 이거 다 없어져 버리고 아주  단순하고 사람들이 조용해집니다. 또 그 원인을 생각하면은 더 그만 정리가 왜.

자, 원인에 걸릴 게 없어 목표에 걸릴 게 없어. 이라면 다 됐어.

 이런데 이 방편에만 죽도록, '오늘, 저 사람은 출근을 하는데,' 내가 어떤 사람  봐요. 그 사람은 거게 일단 정신을 가지고 있어요. 예배를 보러 오면 똑 요래  가지고 요라면 요래 똑 있습니다. 요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경건한 줄  알아도 그게 힘을 잘못 쓰고 있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출근할 때에 출근 전, 다른 사람은 삼십 분 전에만  가도 되는데 한 시간 전에 안 간 일은 없대요. 한 번, 일생동안 자기 근무할 때에  출근 시간 한 시간 전에 안 가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그 얼마나 좋소?  그게 내나 그것이 방편이라. 그 방편 그거 좋지요. 그라니까 상급을 받았어요.

왜정 때에도 도지사 상급 받고 그 외에도 여기 저 대통령 상급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

 이랬는데 이렇지마는 그 사람이 둘째 귀한 것 목표를 생각지 않더라 그 말이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이거 무슨 목표냐?' 이 목표는 생각지 안하고 그 목표로  말하면 썩은 목표인데 썩은 것을 위해서 그렇게 막 하니까 자 썩은 것 위해서,  목표가 잘못 됐는데 잘못된 목표를 위해서 방편을 잘 쓰면 어찌 됩니까?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썩은 목표를 가지고 방편을 잘 쓰면 잘 썩습니까 성공이 잘  됩니까? 잘 썩습니다! 잘 할수록이 잘 썩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표를 잘 하는 이거 목표 가치와 원인 가치, 결과 가치를 모르는  이런 사람들이 지금 자기 딴에는 열심히 뭐 절제 있고 이라니까 하는 줄 알아도  '너는 발리 썩는다. 속히 썩는다 다른 사람은 하나 썩으면 너는 십 배나 썩는다.'  불쌍하고 가련해.

 이러니까 인생이 자기의 생활에 있어서 방편에는 다 주력할라고 애를 씁니다.

방편 못난 사람들은 없어. 그래서 야고보서 1장 9절에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부한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그말은 뭐이냐 하면 목표를  깨달았다 말이오. 알겠소?  이 방편 가지신 자기는 방편 가지고 이랬는데 그 방편에 대해서 목표를 알고  보니까 이제까지 된 것이 썩은 것 뿐이라 그 말이오. 썩은 것뿐이니까 그만 푹  낮아져 버렸어. '내가 이렇게 천하에 이것이지마는 알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나는 썩은 것이다.' 아주 푹 낮아진 것이 이것이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오.

 또 '낮은 자는 높아진 것을 자랑한다' 아무 자기는 세상 걸로 보고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이 인류의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자기 것을 삽을 수 있는  이 최대의 희망이 있는 자기라는 걸 깨닫고 푹 올라갔다 그 말이오.

 이런데. 그래서 방편에는 다 사람들이 주력하지마는 그 방편에 목표가  잘못됐으면 많이 방편이 좋을수록이 많이 삐뚤어지게 되고. 암만 방편이 나쁘면  목표를 잘못 정했으면은 삐뚤어지기를 덜 삐뚤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방편 암만  좋아봤자 목표에 따라서 흥망성쇠는 결정됩니다.

 요러니까 요 목표를 살펴야 되고 또 목표도, 목표보다 원인이 크다 말이오.

원인이 큰 것은 마귀란 놈이 들어 놓으면 마귀 목표를 삼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내가 서울대학 가야 되겠다. 내가 아무래도 한번 정계에 나서서 한번 대통령 한번  해야 되겠다.' 그 사람은 그라면 자기딴에는, '나는 이제 대통령 한번 됐으니까 내  목표는 다 했다' 그 목표가 산 목표냐 죽은 목표냐 그게 문제라. 영생을 추수하는  목표냐, 썩은 목표냐? 그러면 썩은 목표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썩은 목표를 정하고 영생하는 목표를 정하고 다시 말하면 썩은 농사를  짓고 영생하는 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잘 짓고 못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썩은  농사는 잘 지을수록이 많이 썩었고 또 영생하는 농사는 잘 지었으면은 많이  영생하고 잘못 지었으면 영생이 좀 적지 사망은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썩은 목표 또 썩은 농사. 영생하는 농사 영생하는 목표 이 선택은  어데서부터 시작했습니까? 이 선택은 어데서부터 시작했습니까? 이 선택은  어데서부터 시작됐습니까? 원인에서부터 시작이 됐어, 원인에. 원인이 몇인데?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원인이 몇이요? 둘이라, 둘. 마귀하고 하나님하고라.

이러니까 이제 그 원인을, 모든 원인은 하나님이요 마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 생애의 원인으로 삼으면은 그는 목표도 바로 되고 모든 게 바로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 생활에서는 우리가 날마다 자주 살피고 아주 주력해서 살피고  제일 주력하고 제일 조심을 하고 심신을 기울여서 가릴 것은 뭐입니까? 원인이라.

원인. 원인. 이것이 사는 것이라. 사는 것! 여러분들이 뭐 하루 종일 분주하게  날뛰지마는 분주하게 날뛰는 그것보다 오늘 아침에 여기서 하는 말씀이 옳아?  이게 제일이라!  일생 동안 죽도록 그래 쌓아서 다른 사람에게 존대받아도 소용없어. 네가 썩은  농사짓고 있나 영생하는 농사짓고 있나? 비웃습니다. 이 썩은 농사지으면서 막  제가 일들이라 하면 비웃소. '네까짓 거 암만 해 봐야 썩은 농사니까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썩은 농사인기 영생하는 농사인지 그것을 심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뭣 심사하는  것입니까? 그걸 심사하는 걸 가리켜서 뭘 심사하는 것이라? 원인 심사하는  것이라, 목표 심사하는 것이라, 방편 심사하는 것이라? 뭘 심사하는 것이지?  자기 그 전공으로 애써 놓은 그것이 성공이 됐어. 그러면 뭐 이거 온갖 성공이  있는데그런 성공아 됐으면은 그 성공이 된 그것은 성공이 몇 가지요? 두 가지.

썩은 성공 영생하는 성공. 이 성공이 두 가지라 썩은 성공 연생하는 성공 두  가지가 있어.

 이러니까 이 사람들이 성공만 할라고 애를 쓰지 이 목표 곧 결말, 결과, 자기가  지금 뭘 향해서 가는지 향방 여게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안해요. 이러니까  무더기 죽음 합니다. 일생 동안을 푹 다 죽어 버려.

 이러니까 우리가 주의할 것은 제일 주의하고 제일 주력하고, 제일 주력하고  주의할 것은 뭐입니까? 제일 주력하고 주의할 것은? 원인. 또 둘째로 주력할  것은? 목표. 셋째로 주력할 것은? 방편. 이런데 여러분들이 요걸 배우고 난  다음에 자기도 살펴보고 다른 사람도 살펴봐요. 살펴보면은 시들어진 목표를 지금  가지고 아주 방편만 잘합니다. 그걸 모두 부러워하고 저는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목표를 잘못 정했다.' 이것을 판단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방편 그것도  좋지만 방편 그까짓 거는 저절로 되는 것이오. 방편 그거 저절로 되는 거라.

목표를 정하는 데 때라서 목표만 바로 정했으면 그 방편은 저절로 바로 되고  옳게 되고 잘되는 것입니다.

 목표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원인이오, 원인. 이러니까 우리 속에 마귀를 이절  물아내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도록 하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만  자기를 주관하면 그만 돼 버려.

 이래서 양성원 학생들은 어짜든지 이번 삼 주간 동안에 공부하면서 자기는  설교록을 안 읽고는 못 견디는 사람을 만드십시오. 성경을 안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만 만드십시오. 이제 답답해도 설교록 성경, 어려운 일아 있어도 설교록 성경,  자기에게는 무엇이 소원하는 소원이 있어도 설교록 성경, 뭐 목이 갈급하든지  마음에 답답하든지 어려움이 있든지 또 힘이 없든지 뭐이든지 하면 전부 그만  설교록과 성경이면 다 됩니다.

 그러기에 설교록과. 성경을 안 읽을 수 없는 그 사람이 그만 돼버리요. 그게  제일이지, 그러면 자, 이것을 가리켜 내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설교록을 읽는데  뭘로 읽으라고요? 이성으로 읽으라고 했어, 본능으로 읽으라 했어? 본능으로 읽는  사람이 돼. 본능으로 읽는 것은 이성으로 읽어 가지고, 이성으로 읽어 가지고  이제, 억지로, 이성으로 읽을 때는 억지로 읽는 거라. 억지로 이성으로 자꾸  읽어서 이것이 숙달돼 놓으면 나중에 그것이 차차 차차 속에 알맹이 본능이 돼  집니다. 본능이 돼 진 그게 사람이 변화된 사람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OOO권사님 구역에 초상이 났습니다. 아홉시까지 오시면 같이 가서 출상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도록 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또 자기 맡은 식구를 기르는 데는 마음 가운데 품어 놓고  길러야 할 것.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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