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13일 토새 

 

본문 :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하는 나. 이 나는 하나님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또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는 것도 하나님을 가리키심입니다. 또 '나 여호와는'  하는 것도 하나님을 가리키심인데 특별히 여호와라고 그렇게 발표한 것은  사람들에게 신구약 이 제약을 선포하시고 그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그런  이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여호와라, 또 하나님이라, 내라 이렇게 하신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이 하나님은 영원전 자존하시고 창조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은 모든 실존을 모든 존재를 이 하나님이 존재케 하신  존재 중에 더욱 더 확실하게 모든 존재를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영원히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은 그 분의 존재가  흐미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분의 존재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어떤 그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체도 안 가지셨고 영체도 안 가지셨습니다.

영체를 가졌다면 영체라는 그 형체 안에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떤  형체 안에 존재할 수가 없는 완전자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치 못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서는 하나님을 볼 것인가? 하나님을 보는 그 방법이 다르고  법칙이 달라서 보기는 보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이런 법칙과 이런 그  힘을 가지고는 보지를 못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영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과거에도 본 사람이 없었고 또 지금도 본 사람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볼 수 있는 그런 일로 나타나셔 가지고  나는 하나님이시라, 또 내 형체를 봐라, 내 등을 봐라, 또 불 가운데 나타나서  나는 불로 나타나시고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한 것은 다만 우리들 이 볼 수  있도록 그 분의 그 본체를 봄이 아니고 그 분의 본체를 증거하는 그 증거의 모든  계시해 놓은 계시의 역사를 본 것이지 본체 본 것은 아닙니다.

 이랬는데. 볼 수 없는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분이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장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하나님 품속에 있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독생하신 하나님이란 말은 스스로 사람되어 오신 그  하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서 하나님의 본체는 나타낸 게 아니지만  하나님의 모든 속성적으로 다 나타냈고. 또 하나님의 역사적으로 나타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너희들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느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하는 이 나는 곧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신인 양성 일위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창세기 1 장에 천지를 창조할 때에 물위에 운행하신 하나님, 또 그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 또 아담 하와에게 약속을 하셔서  너희들이 다스리고 지키고 그렇게 하라 하는 말씀을 하신 하나님, 또 타락 후에  숲 속에 숨었는데 찾아가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나 우리에게 나타나신  우리의 중보자시오 구주이신 그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그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그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는  말인데, 하나님을 사람하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 있으니 그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섰느니라' 우리에게 나타내 보였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하는 것은 이 주님을  사랑하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주님은 사죄로  나타나셨습니다. 사죄, 우리의 모든 형을 대신하셔서 우리에게 죄 없다고  인정받는 그 공심판에 인정받는 우리에게 대형해 가지고 사죄를 베푸신 사죄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또 우리를 대신 행해서 대행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또 우리를 대신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과 화친을 베푸신 그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하는 말은 주님을 사랑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주님으로 나타나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또 주님을 사랑하는 자 복  주신다고 했는데 주님을 사랑해서 복 받을 수 있는 그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  하나님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베푸신 이 하나님을 가리킴이 요 '또 이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신 성령님이 있으니 이 성령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셨는데 예수님을 가리켜서  또 우리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렇게도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요.

 그러기에 나를 사랑한다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그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유일하신 한 분만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 자존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분이 우리에게 볼 수  있도록 나타나서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그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있으니 그 하나님이 곧  우리에게 사죄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칭의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화친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성령의 영감의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진리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를 사랑하고 하는 말은 곧 피와 성령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진리시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저 거기에 대한 깊은 뜻은 여러분들이 참 아는 게 좋기는 좋은 데  그래 지난밤에도 말했거니와 은혜를 받되 그 고함 소리에, 소리에 은혜를 받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진리에. 단절적인 진리. 한 단어의 진리, 단어의 진리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고, 소리에 은혜 받는 사람도 있고. 단어의 진리에,  단어에 은혜 받는 사람도 있고, 또 그 논리를 해서 논리적인 논리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고, 또 그 능력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고 또 영감에, 성령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으니 은혜 받는 그런 많은 종류가 있고 층어리가 있는데 차차  차차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은 아무리 그 고함 소리를 지른다 해도 그 속에 진리가  없으면 그는 아주 멸시를 하고. 또 아무리 논리가 정연해서 이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 영감이 없으면 아무 상대하지를 안하고, 그 영감이 있어도  영감만 있지 그 능력이 자기에게 오지 안하면 그는 별로 그렇게 자기가  달라들어서 받을 은혜로 생각지를 안해서 그래서 전하는 사람도 말의 고함  소리와 또 그 논리의 진리와 또 영감과 또 능력으로 이렇게 변하도록 할려고  노력을 해야 되고, 받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고 하는 것은 요 세 가지로 기억하십시오. 이 주님 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사랑의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이 사랑의 주님이  나타나셨으니 그 사랑의 주님이 뭐인가? 주님이 무엇이며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곧 사랑의 주님이 나타났으니까 주님이 사랑이요 사랑이 주님이시요,  나타났는데, 그러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타났으니 주님이 나타나신 그  주님이 뭐인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의 피로 나타나셨고 영감으로  나타나셨고 진리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 이 주님이 이렇게 나타나셨는데,  주님의 또 사랑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주님의 사랑은 뭐인가? 주님의 사랑이 여전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나타났으니 곧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가 하나님의 사랑이요 영감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피의 대속의 공로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좀 깨달아서 외형으로 발표할 때는 수많은 그  단어로 술어로 말로 발표를 하지만 속에 들어가면 하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바로 깨달아야 되지 이게 진리는 하나라 하는 것을. 진리가 외부에 나타나는  것은 수만 그 갈래로 수만 각도로 나타났지만 수만 각도로 나타났는데 나타난 그  각도를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은 하나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지식하고 체험하고  경험해야 이 사람이 비로소 기독자의 그 도인이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껍데기에서 빙빙 돌고 속에 참에 들어가지를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인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을 사랑하면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요, 대속과 영감을 사랑하면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요 참 자기가 진리를 참  사랑하면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대속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셋은  하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셋은 각각 나누지를 못 합니다. 사람들의  발표는 이렇게 셋으로 발표하지만 실상은 하나이라 그말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주님의 이 세 가지를 사랑하고 하는 그말 은 이 세 가지를 좋아하고. 이 세  가지에 전 소망을 달고, 이 세 가지에 속하고 그말이오. 이 세 가지에 속하고.

이 세 가지를 좋아하고 이 세 가지에 속하고,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속하면 뭐이 되는가? 이 세 가지의 사람이 됩니다. 진리의 사람이 되고  영감의 사람이 되고 또 주의 대속의 피의 사람이 됩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고 말한 것은 그 음식을 먹으면 자꾸 먹는 대로의 음식이  자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자연 계시에서도 보면 꿀벌을 치는데 꿀벌을 과거에는 모 두 그 한 통을  두 통으로 만들고, 두 통을 세 통으로 만들고 이렇게 만든 다는 것이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뭐 몇 통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벌은 자기의  군졸들을 낳아 줄 수 있는 그런 어미 벌만 있으면 그만 거기 속해 가지고 사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왕봉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왕봉은. 그 왕봉은 그것은 뭐이  왕봉되는고 하니, 꼭 동봉이나 꼭 같은 종자입니다. 꼭 동봉입니다. 동봉인데,  왕봉집을 이렇게 사람들이 만들어서 딱 갖다 달아 놓고 왕봉집에다가 동봉 그  새끼가 구더기 같은데 동봉 새끼를 조그만한 걸 하나 꼭 찍어서 갖다 붙여  놓습니다. 붙여 놓으면 이 벌들이 본능적으로 왕봉집이 있으니까 그 왕봉이  들었으니 왕봉이 먹을 사료를 줍니다. 왕봉이 먹을 사료를 주어서 그 왕봉이  먹고 자라 가지고 왕봉이 되어 나을 만치 그만한 사료를 먹을 사료를 갖다 넣어  놓고 딱 봉해 놓으면 이제 그걸 다 파 먹고 난 다음에는 큰 왕봉이 돼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또 똑같은 그 내나 동봉 그 알인데, 고 알을 동봉집이라는  조그만한 집에다 갖다 넣어 놓고 동봉이 먹는 사료를 넣어 놓고 딱 봉해 버리면  나중에 그것이 동봉이 됩니다. 동봉이나 왕봉이나 종자는 꼭 같은데 다만 사료가  달라서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사료를  왕봉 사료 먹으니까 왕봉되고 동봉 사료 먹으니까 동봉되고 처음에는 같으나 그  사료에 따라서 변해진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자꾸 이렇게 먹으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먹으니까 자꾸 옛사람이 커집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옛사람같은 그런  악령, 악성, 악습의 사람이 자꾸 돼집니다. 또 그러나 피와 성령과 진리를  먹으면 차차 차차 그 사료에 따라서 먹는 식물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자꾸  되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자꾸 자라져 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하는 그 말은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를 좋아 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를 좋아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보다 더 좋아하는 게 없고 더  소망하는 게 없고 피와 성령과 진리를 좋아하고 소망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에  속해 가지고 그 피로 화해지고 싶고 영감으로 되어지고 싶고 진리로 되어지고  싶은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피를  사랑하는 것이요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인데. 피를  사랑하고 영감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피에 소망을 두고 피와  자기가 하나 돼서 그 피화 되기를 원하고 영감화 되기를 원하고 진리화 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이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하는 그말은 주님의 피를 참 사랑하고 소망하고 그만 내 전부가 그 피를  좋아해서 피의 사람이 될라고, 피를 벗지 안 하고 피를 입고 살고. 피에  감격해서 자기는 영원히 피를 인해서 살고. 피를 위해서 살고, 피에 속해서  살기를 원하는 그런 것이 다 피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영감을 원하고 영감으로  살라고 영감되어 살라고 영감으로 자기가 영감의 사람이 될라고 이렇게 모두  생각하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피와 성령과 진리를  사랑하고 한다 말은 좋아하고 그것이 될라고 거기에 속할라고 그로 자꾸  화해질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오.

 그러면, 그것을 가리켜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 계명을 지킨다 말은  신구약 성경의 이 모든 법칙들을 지키는 것이니까 이 법칙을 지키는 그것이 또  뭣하는 것인고 하니 법칙 지키는 것이 주님의 피를 사랑하는 것이 요 피를 입는  것이요, 피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영감을 받는 것이요, 영감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또 영감화되는 것이요. 또 그것이 진리화 되는 것이라.

 그러면 마치 비유컨데 그 태속에, 태속에 새끼가 배었는데 그 밴 새끼가  태속에서 새끼가 배었으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정충이 배란 속에 들어앉아  가지고. 그러면 정충이 정충으로 살라고 정충으로 살라고 애를 쓰니까 정충으로  살라고 애를 쓰니 정충이 무얼 먹고 사는가? 정충이 그 배란을 먹고 삽니다.

배란을 먹고사는데. 그러면 또 배란은 뭘 먹고 사는가? 배란은 어머니의 그 태의  모든 탯줄을 먹고 삽니다. 그러면 탯줄은 뭘 먹고 사는가? 어머니의 모든 각  요소를 빨아들여 가지고 이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래 살아 보면 그  속에는 아주 딴 사람인 그 아버지의 정충이 어머니의 그 배란 속에 들어갔으니까  아주 딴 몸의 것이 들어왔지만 그것이 그 정충이 자꾸 배란 속에서 자꾸  정충으로 살라고 그 종자로 살라고 자꾸 해를 쓰고. 살라고 애를 쓰게 되면 차차  차차 거기서 자꾸 살라고 하니까 뭘 먹어야 되니까 자꾸 먹을라고 해 가지고 그  배란 속에 있는 배란을 자꾸 먹으니까 배란은 뭐 얼마나 크지 안하고 있는  것이니까 배란을 먹으니까 또 그 배란의 배란 밖에 있는 태가 있으니까 또 태가  자꾸 딸려 들어옵니다. 그러면 정충이 배란을 먹고 배란이 또 그 태를 먹고 또  그 태가 어머니의 모든 전신의 각 요소에 있는 것을 요소를 빨아 먹고. 자꾸  이라게 되면 나중에 가서 그 아이가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고' 하는 그 말은 비유컨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정충이  정충으로 살라고, 그 정충 자체가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마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피와 성령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씨로 됐느냐? 우리가 씨로 생겨지기는 무슨 씨로 생겨졌느냐?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가 씨가 돼 가지고 이 세 가지가 씨가 돼 가지고 이  세 가지로 우리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자꾸 이  세 가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체가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뭘로 된 자냐 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된 것이 뭐이냐? 이 씨는 다 영생하는 씨요 완전한 씨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거듭 났는데 다시 났는데, 다시 났다 말은 죽었던 것이 살아 난 것도 났지만  죽었던 것이 살아난 그 껍데기 속에 다시 난 게 있으니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가 우리 자체가 돼서 이 피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이 셋은 다  하나님의 요소요 영원한 요소인데, 이 요소가 우리 자체가 돼 가지고. 하나님의  본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아니 고 하나님의 본체와 역사하시는 그  역사의 요소가 우리 자체가 됐다 말이오. 우리 자체는 처음에 아담에게 난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물로 된 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들이고. 그 속에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은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요소는 뭐인가? 주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세 가지 요소로  우리가 다시 생겨진 것이 있으니 이것이 새로 지음을 받은 것이 요 새로 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된 거는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의 그  역사로 말미암아 그 역사가 되는. 하나님의 본체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우리 자체가 되어진 것이 그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하나님의 아들로 생겨진 그 아들로 하나님의 아들로 살라고  애쓰는 것이 그것을 가리켜서 인간이 알아듣도록 표시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한다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피을 먹고 주님의 피로 살라고 하는 자입니다. 피의 것이 될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의 것이 될라고 하는 것이요, 피화 될라고 하는 것이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조그만한 아이가. 조그만한 아이가 났는데 그 아이가 자꾸 음식을  먹으니까 커다랗게 자랐습니다. 자라서 처음에는 한 삼십 파운드 됐는데  나중에는 한 뭐 백 파운드나 이래 된다고 하면 그 칠십 파운드 불은 것은 뭣이  불어서 됐습니까? 그 뭐 칠십 파운드는 뭣이 불었지요? 뭣이 됐지요? 뭣이 불어  칠십 파운드됐지? 뭣이 들어서 삼십 파운드가 백 파운드가 됐으니까 칠십  파운드는 뭣이 들어서 그렇게 불어 가지고 백 파운드가 됐는가? 그 뭣이  불었습니까? 음식물이 그거 됐다 말이오. 음식물이 그거 됐어. 요게 조그만한  화분에다가 화분에다가 조그만한 꽃씨를 조그만한 걸 심어 놨는데 꽃씨를 심을  때는 조그만한 걸 심어 놨는데 그 화분에서 자꾸 자라 가지고 나중에는 이만하게  큰 아주 나무같이 돼 가지고 꽃이 피고 야단을 지깁니다. 그러면 조그만한 씨가  그렇게 큰 것 된 것은 뭐이 들어 그와 같이 됐습니까? 흙 속에 있는 모든 요소  물 그것들이 그거 된 것 아니겠소? 처음에 심은 씨 만한 것씨만한그 양 외의  것은 전부 흙과 물. 뭐 흙 속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그거 됐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피를 사랑하는  것이요. 대속의 공로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요, 진리를  사랑하는 그것이 뭐이냐? 곧 그것이 우리 말로는 그렇게 표현했지만도 그것이  자체는 우리 자체는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가 됐는데. 첫째 아담의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그 능력이 만들어 낸 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능력이 우리가 됐다 말이오. 하나님 본체가 된 것이  아니고 그 능력이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그 능력이 뭘로 나타났는가? 그 능력이 십자가의 세 가지 대속으로 그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또 그 능력이 뭘로 나타났는가? 영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능력이 뭘로 나타났는가? 진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그 나타난 그 역사로  내가 됐기 때문에. 역사로 내가 됐기 때문에 우리는 몰라도 역사로 됐기 때문에  그 정충을, 아버지의 정충이 어머니의 그 모태 속에 배란 속에 있지만 그게 뭐  압니까? 모르지만 자꾸 크고 크고 하니까 이제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니까 나는  아버지에게서 정충으로 나와 가지고 우리 어머니의 배란 속에 들어가 가지고  어머니의 그 모든 태를 파 먹고 어머니의 모든 요소를 파 먹고 어머니의 눈을 파  먹고 생겼으니까 내 눈은 어머니의 눈 닮았고 어머니의 이를 파 고 내가  자랐으니까 어머니의 이 닮았고, 그러니까 아. 어머니가, 이가 부성해서 일찍  낙치가 됐으니까 이가 빠지고 이랬으니까 나도 그 이를 빨아먹어 이가 됐기  때문에 내 이는 일찍 빠진다 그렇게 다 어머니의 모체와 그 관련성 있는 것을  지금 우리가 다 과학적으로 알게 되고, 또 아버지의 그 정충하고 관련성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것이 모르나 자꾸 그렇게 거제서 자체가  자체로 살라고 애를 쓰니까 살라고 그 생명이 들어서 정충의 생명이 들어서  살라고 애를 쓰니까 자연이 먹어야 되겠고, 살라고 애를 쓰니 먹어야 되고,  살라고 애를 쓴 것이 먹을라고 애쓰는 것이요, 먹을라고 애쓰니까 자꾸  먹어지니까 뭣 먹는가? 배란 먹고, 배란 속에서 배란 먹으니까 배란을 먹으니까  뭐이 들어오는고 하니 어머니의 탯줄의 태가 들어오고 태를 먹으니까 또  어머니의 모든 요소 외부의 요소를 먹어서 어머니의 손 닮고 어머니의 발 닮고  어머니의 눈 닮고 어머니의 귀 닮고 어머니의 코 닮고 자꾸 이와 같이 지금  먹으니까 닮아서 꼭 어머니와 같은 그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그런 사람 하나 돼  나오더라 그거요. 그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사랑하고" 그말은 우리가 자체로 살고 그말이오. 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자기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로 살다니 뭐이 말인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오. 새사람으로 산다 말이 무슨 말인가? 새사람이  무엇인데? 새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것이 새사람입니다. 이 새사람으로  사니까 새사람의 능력이 뭐인가? 새사람의 능력은 주님의 피의 능력이요 영감의  능력이요 진리의 능력이 새사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이렇게 사는데, 그러면 새사람으로 사는데, 새사람으로 자꾸 이와  같이 뭘로 된 것이냐? 새사람으로 된 것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새사람인데. 새사람으로 된 사람이 자꾸 살라고 하니까 뭘 먹어야 살지요. 뭐  먹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게 먹는 것이라. 계명을  지키는 것이 먹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이 먹는 거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영감을 먹는 것이요,  그것이 진리를 먹는 것이요. 주의 피를 먹고, 자꾸 나중에 그라니까 나중에 가서  대속의 피로 장성했졌고 영감으로 장성해겼고 진리로 장성해 져서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첫째 아담은 전부이 혈육으로 된 것이요 땅에 있는 피조물로 된  것인데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사람은 그 원인이 그 재료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 능력이 만든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 능력의 역사가 우리가 됐기  때문에 자, 그러면 우리가 됐기 때문에 우리의 재료, 우리의 재료,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새사람의 재료. 새사람의 재료와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재료와 다른 점이 뭐입니까? 다른 점이 뭐이요? 다른 점이 뭐이요? 그러면 그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모든 것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된 새로  난 새사람으로 된 그 사람과 관계가 어찌 됩니까, 그 가치는 어찌 됩니까.

능력은 어찌 됩니까 지위는 어찌 됩니까? 지위는, 새사람으로 된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존재요. 만들 수 있는 존재, 만들 수 있는  존재 그것은 우리들에게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모든  피조물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까 모든 피조물보다 탁월한 위치에 있습니까?  탁월한 위치에 있다 말이오. 모든 피조물은 발등상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몸입니다. 그 위에 탁월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교회의 위치인데,  이러니까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 바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그 능력의 역사가 우리기 때문에 우리로 말미암아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해 질수 있는 충만의 것이  되어진다 그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이거는 엉뚱이를 이래 자꾸 먼 데 있으니까  자꾸 말해야 그게 들리지지 안하는데 자꾸 여러분들이 살라고 하면 돼진다  말이오. 그러면 사는 것 그거 우리가 알도록 해 놨어.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까? 주님의 피를 사랑해서 나는 죽어도 피를 이제  벗지 안해야겠다.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나에게 사죄 주셨으니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나는 이제는 죄를 범할 수 없다. 이제는 죄를 없이 해서 없이  해 주신 무죄를 나는 팔아 먹을 수 없다. 무죄는 나는 뺏길 수 없다. 나는  죽어도 나는 무죄로 나는 죽지, 살아도 무죄로 살지, 나는 의로 살지 나는  영감으로 살지 영감을 배반하고 불의로 살지 않겠다. 영감으로 산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돼 가지고 화친의 아들로 살지 달리 살지 않겠다. 자꾸  이렇게 애를 쓰는 그것이 자체가 자체로 살라 하는 것이요, 그렇게 사는 그것이  뭐이냐? 곧 자기가 자체로 자라갈라 하는 것이니까 자라가면 자라가면 어째야  자라가느냐? 그 계명을 지키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에는  하나요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자꾸 구별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밤에도 그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자, 여러분들  어머니 뱃속에 그 아버지의 요소와 어머니의 요소가 들어 가지고 그 속에 아기가  하나 그는데 그 아기가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되어 있는 게 뭐이냐 하면  어머니의 태가 있고. 또 탯줄이 있고, 탯줄에는 거기서 피를 빨아들이는 그  탯줄인데, 그 피를 빨아들이는 그 탯줄은 어머니의 각 요소에게 있는 각  요소에게 있는 그 요소의 영양을 다 빨아당겨 가지고 이 것이 어머니 태에  연결돼 가지고 그래 자꾸 빨아 당겨서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그러면 그럴 때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디로 먹습니까? 여기 저 ○조사님 한번 말해봐. 어디로  먹지? 입으로 먹어 눈으로 먹어? 아직까지 아이를 안 낳아 봤으니까 모르는구먼.

○조사님 어디로 먹어? 배꼽으로 먹어, 배꼽으로. 그때는 입으로 안 먹고  배꼽으로 먹어. 배꼽으로 빨아 당겨 가지고 먹는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암만  공부해야 안돼. 배꼽으로 먹어요. 그래 가지고 자꾸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머니가  튼튼하면 아이가 튼튼해지고 어머니가 배고프면 아이가 배고픕니다.

 생각하기를. 안에 있는 것은, 안에 있는 것은 그거 따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숨을 안 쉬어도 아이는 속에서 살아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 이래 숨쉬는 그 숨을 빨아 당겨 가지고 살기 때문에  어머니가 숨을 못 쉬면 그것도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그걸 한번  실험해 봤오. 자, 보니까 에미가 참 새끼를, 그 종자가 좋은 양인데 종자가 좋은  양인데 벌써 어머니는 안 되게 죽게 된다 말이오. 어머니는 죽게 되니까 그  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에 이거 새끼를 새끼를 퍼뜩 해부해 가지고 내면 새끼는  괜찮지 않겠느냐? 그 만삭이 돼 가지고 새끼를 놓다 죽었으니까 이 해부하면  되지 않겠나? 그 해부해 보니까 죽었어. 그래 그 뒤에 내가 물으니까 그런 게  아니라 에미 숨이 떨어지면 그게 숨이 떨어집니다. 그 어미 숨을 거기서 숨을  호흡해 가기 때문에 새끼 그것 살릴라면 에미 숨이 떨어지기 전에 그 해부를 해  가지고 그걸 들어 내가지고 산소를 먹이면 됩니다. 그렇게 말해. 그걸 가만히  들어 보니까 고 이치가 맞겠어. 그래 가지고 또 그것도 한번 해 봤어. 내가  의사가 아닌데도 말이죠.

 이러니까. 그게 정상적으로 돼 가지고 어머니가 건강해서 그 요소를 빨아먹으면  사는데. 그러면 그만 아이가 어떤 거는 보면 자궁 밖에 임신이라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되기는 됐는데 그게 빨아 당기는 그 연결 이 바로 돼 있지 않다 그  말이오. 바로 되어 있지 않으니까 안 있으니까 그 아이가 안 됩니다. 그것  수술을 해서 내야 되지 그냥 냅두면 안 돼. 또 아이가 배기는 뱃는데 그것이 그  어머니의 탯줄에서 어머니의 모든 요소를 다 빨아먹어 가지고 그래 돼져야 그  아이가 될 터인데 그것이 어머니의 요소를 빨아먹지 안하고 사고가 생겼다  말이오. 어머니의 요소를 빨아먹지 안하고 딴것을 자꾸 그 어만 것을 지금  빨아먹고, 빨아먹는 그 연결이나 기관이나 조직이 잘못돼 가지고 있어. 그러면  그 아이가 빨아먹는 걸 잘 못 빨아먹으면 낙태가 되든지 또 그게 어떤 거는  변질돼 이상한 병신이 되든지 잡것만 빨아먹으면 그만 병신이 되든지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그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우리들을 이 하나님의  택함인 하나님의 택함 안에 우리가 들어 가지고 택함 안에 들어 가지고 있는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 아니고 그 하나님의 택함으로 된 우리들이며. 또  하나님의 대속과 하나님의 의가 뭡니까?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의 대속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되어 가지고 있는  우리들인데, 그러면 우리를 지금 기르기 위해서 우리가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뭘 해 놨느냐? 하나님이 모든 예정을 하셨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모든  예정을 하셨고 하나님이 모든 건 창조하셨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예정을 우리가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 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만 살라고 자꾸 애를 쓰면 그게 정상적으로  태중에서 자랄라고 하는 거와 같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아들로만 살라고 애를  쓰고. 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될라고만 애를 쓰면 이것이 딱 조직적으로  순서적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예정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랄라고 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자랄라고 할 때에 그 모든 것이 젖줄기와 같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예정은 그것을 하나님의 아 들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  뭉텅이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뭉텅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 뭉텅이인데.

이 종자라 말이오. 하나님의 아들의 종자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의 종자로서  생긴 거는 조그만하게 요만하게 생겼지만 조그만하게 아버지의 정충이 어머니의  그 배란 속에 들여간 거와 마찬가지로 조그만하게 생겼어도 고 생긴 종자가 벌써  하나님의 아들로 된 종자요 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된 광채는 그렇게  아름다운 꺼풀의 광채들 입은 그런 것으로 생겨졌다 말이오. 우리가 그런 것으로  생겨져 그것으로 우리가 거듭났다 말이오. 중생됐다 중생된 것은 죽은 것이 살아  난 것 그거. 죽은 것이 살아난 거 있지만 죽은 게 살아난 게 아니라 우리 속에  새로 새생명으로 들어와서 새로 지음을 받은 새로 지음을 받은 새것이 되어졌다  그말이오. 속에 첫째 아담으로 된 그 속에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속에  알맹이로 되어져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요것으로 살라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의 찬미로,  이러니까 그 하나님의 아들로 자꾸 자라갈라고, 영광의 찬미로 자꾸 자라갈라고.

이라니까 뱃속에 탯속에 있는 그 아이가 정상적으로 그게 자라갈라고 자꾸 애를  쓴다 말이오. 자라갈라고 애를 쓰니까 애를 쓰니까 그 아이에게 모든 어머니의  요소가 다 빨려 들어 가지고 그 다음에는 그 아이가 장성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내가 자라 나갈라고 자꾸 애를  쓰면 자라갈라고 자꾸 내가 애를 쓰게 되면 어찌 되느냐? 자라갈라고 내가 애를  쓰게 되면 모든 예정의 줄기, 모든 예정, 모든 창조, 모든 예정, 모든 창조, 또  하나 있지요? 뭐입니까?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또? 하나님의 섭리 이  세 가지는 이 세 가지는 우주에 가득 찼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우주에 가득  찼는데, 이 우주에 가득 찬 그것을 한말로 말하면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예정의  것들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것들이요, 그것이 하나 하나 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의 것들인데, 이것이 뭐이냐 하면 그 어머니의 그 뱃속과 같다  말이오. 어머니의 태 속과 같다 말이오.

 태 속과 같은데, 내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자꾸  자라갈라고 영광의 찬미로 자라갈라고, 자꾸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자라갈라고  나는 한번 부자가 되어지겠다. 한번 권세자가 되어지겠다. 나는 지금 어떤 그 뭐  행락자가 되겠다, 어떤 예술가가 되어지겠다 하는 그것이 다 그게 뭐냐 하면 이  속에서 아이가 지금 고장이 생겼다 말이오. 아이가 그 잉태된 아이가 고장이  됐어. 고장이 생겼어. 이것이 그 아이로만 자라갈라고, 아이로만 자라갈라  하는데 아이로 자라가지 안하고 이것이 물주머니로 자라갑니다. 물주머니로.

아이로 자라가지 안하고 저 물 주머니로 자라가면 자, 그것이 그 아이가  고장이요 뭐이요? 보니까 물주머니로 자라가서 배가 불룩한데 아이 요거는  이걸로 자라가지 안하고 아이 이거는 속에 배기는 뱃는데 물주머니로 자꾸  자라간다 말이오. 물주머니로 자라가면 그거 병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그거는  아이 노릇 못하요. 그거는 뒤에 만일 낳아도, 생명이 살아 나왔다 하더란대도 그  뭐 아무작도 못 쓸 것 그런 것이 돼지고, 또 이것은 엉뚱하게 자랍니다.

엉뚱하게 자라서 그 아이로서 모든 체계 있게 자라야 될 터인데 이거는 다른  거는 자라지 안하고 기형적으로 대가리만 커단하이 자꾸 자라요. 머리만 자꾸  커다래져. 이거는 또 팔만 기다래져 아이를 낳아 보니까 팔이 한 발이나 되는  것이 서름서름 해 가지고 꾸부정하니 팔만 자랐지 대가리도 또 요만하고 또  몸뚱이도 요만하고, 팔만 자란 그걸 가리켜서 기형이라. 이 아이는 또 낳아  놨는데, 내가 그거 봤어.

 이 아이는 낳아 놨는데 낳아 놓고 보니까 팔도 똑 요만하고, 다리도 요만하고,  배도 똑 요만하고 이런데, 그 머리는 아이 놓을 때 어떻게 그 사람이 욕을  왔는지 이래 낳으니까 이 아이가 아마 큰 갑다 이랬는데 나중에 낳아 보니까  대가리만 이래 커다랗지 대가리는 아마 꼭 이만하고 몸뚱이는 똑 요만해요. 그거  그 기형으로 그래 나왔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그걸 보고 마음에 더 불쌍히 여기고  뭐 못 견디고 이래서 애를 썼는데 그렇츰 애를 써 쌓아도 그래서 그때 나는 예수  안 믿을 때라 말이오. 안 믿을 땐데 우리 그 처족이라. 처 그러니까 처 육촌  처남으로 낳았는데 그 조그만한 그런 거 하나 낳았어요. 혹 그 집에 내가 놀러  가면 가 가지고 막 귀여워서 '아무 것이 예쁘지요? 이래 쌓으면 나는 속으로  있다가서 '그래요. 참 그 아주 귀엽게 그러네요.' 내가 이래도 말이지 그걸 보고  그랬는데 나중에 기어코 죽습디다.

 이것 모양으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광채는 영광의 찬미로  이렇게 된 존재로 우리가 점점 요거로 될라고 하나님의 나는 아들로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준다 말은 하나님의 자녀의 실력 준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자꾸 믿음으로 자꾸 우리가 자라간다 그말이오. 우리가 믿는 것은  뭣 믿습니까?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영감과 진리와 피로 사는 것이 그것이  믿는 것이요, 순종이라 말이오. 자꾸 이렇게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갈란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자라갈란다, 이제 모든 존재보다 하나님 다음에 그  하나님의 영광으로 영광의 존재가 되어지겠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지겠다,  모든 것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후사로 되어지겠다. 이렇게 자기 자체로  자라갈라고 애를 쓰는 것이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갈라고  영광의 찬미로 자라갈라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잉태 아이요, 정상적인 태중  아이요, 이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는 뭐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게 이게 좋으니까  이거 탐하고 저거 탐하고 이렇게 자라갈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정상적으로  자라가는 게 아니라 벌써 아이가 지금 병이 들었다. 태 속에 병이 들었다  말이오. 병이 들어 가지고 엉뚱한 짓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자라가면 하나님의 모든 예정이 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모든 창조가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  위하는 것이 되고 그게 전부 자기라. 하나님의 섭리도 다 내 것이요, 하나님의  예정도 내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도 내 것이라, 그 전부는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인데, 우리 자체가 요것이 변해져 버리고 말면 고 아이가 변해지면  어머니의 삔 태 속에 있는 것도 자기가 먹지 못하고 어머니의 눈도 빨아먹지  못하고 귀도 빨아먹지 못하고 입도 빨아먹지 못하고 모든 것 전신의 그 요소를  빨아먹지 못하니까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고 병신으로 나도 죽고  그렇다 말이오. 그거는 나서 죽어요. 죽고 또 자라지만 못 써요. 이 나면  병신이라. 아, 사람들 , 모두 기형으로 나지 안해요? 이거는 뭐 대가리가, 언제  뭐 신문에 보니까 아이를 낳았는데 대가리가 서이다. 또 뭐 그 아이가 났는데  다른 거는 다 팔만 기단하이 꾸부정하니 한발돼서 그 서름서름 구렁이 모양으로  이렇게 서려 가지고 있다. 그거 다 뭐이냐 하면 그것이 정상적으로 그 아이가  자라지 못해 그래 정상적으로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그렇다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내가 살아서 자라갈라고,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자라갈라고 요 두 가지 소망만 가지고  자라가는 것. 그러면 두 가지 소망만 가지고 자라가는 것이 그것이 뭘로 생긴  아이냐?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생겨진 새로 지음을 받은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말이오. 난 것이라 요것으로서 자꾸 그 자체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생겨진 것인데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의 이렇게 참 보배로운 그 종자로 지금 났는데 요것이  요래로만 살라고 애를 쓰면 그 모든 태 안의 것은 그 몸뚱이는 연결이 돼서 태  안에 있는 그 잉태된 그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살라고 할  때에 모든 예정은 이렇게 살라고 하는 자기를 위해서 있고. 모든 창조는 이것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요게서 빽 삐뚤어지면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어떻게 한다  하느냐? 자기를 집중 사격한다 말이오. 집중 사격. 그 아이가 자체가 변질돼  버리면 온몸에 있는 그 태의 운동과 어머니의 속에 있는 운동은 뭐 하고 있느냐?  그 운동은 변질 된 그 아이를 자꾸 변질된 것을 자꾸 죽일라고 애를 써. 변질된  것을 자꾸 죽일라고 하는 것은 변질된 것을 바로 고칠라고 애를 쓰지만 고칠라고  애를 쓰다가 자꾸 속에 고칠라고 애써. 고칠라고 애를 쓰다가 어떻게 그 자연  치료로 나중에 가서 변질된 것이 치료되고 죽어져 버리고 정상적인 아이가 돼  가지고 되는 것도 있고. 잘못하면 그거 뭐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  속에서 자꾸 이것을 변질된 것을 없앨라고. 이라니까 저절로, 그걸 말하기를  자연 치료라 그렇게 말한다고.

 이래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의 찬미로 살지 안하고  이 돈을 보고 살거나 권세를 보고 살거나 지위를 보고 살거나 이 세상에 이  소망을 두고 살라고 하면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변질돼서 땅에 있는 이 소망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찬미되는 이런  자체로 살라고 하지 안하고 다른 것으로 살라고 하면 하나님의 모든 예정과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창조는 그렇게 살라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결과적으로 하게 되겠습니까? 어떤 역활을 결과적으로 하게 되겠습니까? 저  ○○○집사, 뭐? 방해할 뿐 아니라 죽이지 방해할 개 아니라 그것은 변질이니까  속에서 자꾸 치료할라고 하는 거라 말이오. 이 아이가 속에서 바로 돼 가지고  있으면 이 모든 어머니의 몸과 전신의 요소는 이것을 자꾸 고칠려고 뭐 그  종기가 났으면 백혈구가 들어 가고 적혈구가 들어 고 또 호르몬이 들어가고 막  이래 가지고 치료할라고 자꾸 이래 쌓으니 치료할라고 이래 쌓는데 그게  치료할라고 이래 쌓는 데 정상이 됐으면 그거 제 양식이 돼서 먹을 것인데  그것이 정상이 안 됐기 때문에 변질됐으니까 자꾸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상적인 기독자로서 살라고 하면 모든 것은 내 양식이  되고 모든 것은 나를 돕는 요소가 되지만 내가 변질이 되어 지면 전예정과  전창조와 모든 존재 섭리는 다 나를 멸하는 것이 되어진다 그거요. 그 멸하는 게  되어지는 것이오. 이게 필연한 이치야.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가르치고  모든 자연 만물의 이 계시들이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살지, 안 하고 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 소망, 영광의 찬미의 이 소망을 가지고 살지  안하고 엉뚱한 짓 하는 것은 온 존재들이 그를 집중 사격해서 자기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죽자고 애를 써도 나중에  가서는 좋을라고 했지만 근심, 걱정, 슬픔 이래 가지고 모두 다 망해서 마지막에  죽을 때야 그때가 후회가 돼 가지고 아이고 내가 죽을 줄 알았으면 다 헛되다.

권세 잡았던 것도 헛되고 지위 잡았던 것도 헛되고 재물 가진 것도 헛되고  모두가 다 헛되고 헛되고 모두가 다 헛됐다. 솔로몬이 말했다 말이오. 헛되고  모두가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 수고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그 말은 자기 간증이오. 내가 땅 위에, 그 뒤에 더 보면  오만거 다 해 봤지만 다 했지만 이것이 다 헛되고 헛되고 인간에게 헛되게 그  망령을 부리기 때문에 노고를 주어서 절단나게 하는 것뿐이지 딴 게 없다.

우리의 정력 가지고 자기 망하도록 하는 그것뿐이지 딴 게 없다. 그 솔로몬이  간증을 그래 했다 말이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요게서 지난밤에도 말한 거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영광의  찬미의 이 모양을 가지고. 우리 얼굴은 얼마나 잘났는가? 우리의 용모는 외형은  얼마나 잘났소? 외형은 얼마나 잘났소? 외형을 뭐라고 말했소? 외형을 뭐라고  말했지요? 얼마나 잘났다고, 미남으로 났다고? 우리 외형을 뭐라고 말했소,  성경에? 망해 봐요. 똑똑히 말해. 확신이 없이 이래 나 가니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도 좋기야 좋지만 하나님의 형상도 하라 하면  좋지만 그보다 더 더 알기 쉬운 게 있지 안해요? 뭘로? 저 ○○○조사님 우리 그  용모는 어떻게 됐지? 외형은 어떻지? 풍채는 어떻지? 광채는 어떻지? 어떤  광채로 만들었어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과 찬미, 영광의 찬송으로 우리 껍데기는  그렇게 잘났소? 하나님의 영광이라. 모든 만물이 아이구 잘났다. 저 보니까 참  볼 수 없는 하나님 저들 보니까 참 저렇게 좋구나 해서 외형을 영광의 찬미로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과 꼭 같은 자  아닙니까?  이렇게 되는데, 이 소망을 가지면 모든 전체는 다 우리를 다 위해서 이 것  되도록 만들었는데. 이것 되도록 만들어 놓은 그 속에서 이게 아니고 우리가  변질이 되니까 그 모든 거는 우리를 집중해서 절단날 것 아니겠습니까?  어리석습니다. '아. 나는 세상에 이렇게 제일 높은 학을 가지고 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나는 이 세상에 이렇게 제일 세계에 제일 재벌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자야. '나는 세상에 제일 정권자다' 어리석은 자야. '나는 세상에 제일  예술가가 되겠다 어리석은 자야. '나는 세상에 모든 인류 박애자가 되어지겠다'  어리석은 자야. 그러면 어리석은 자 아니면 참은 뭐이냐?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가고 영광의 찬미로 자라가라. 이것이 우리의 것이라  말이오.

 이라면 모든 게 우리 위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속에 있는 이  모든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이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자라갈 수 있는 모든 탯줄이라 그말이오. 요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 그러면 하나님이 뭐  줍니까? 하나님이 기적과 축복 주지.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해 주시는 것이 축복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자체는 하나님의 기적이라면 하나님의 능력이오. 우리의 모든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해 주셔서 좋은 거 해 가지고 사는 것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번에 반사 선생님들이 그 학생들에게 자기가 여러 가지로 여러 가지를  가르칠라고 여러분들은 이떻게 알아야 돼요. 알지만 기도 많이 해 가지고 뭐  복잡하게 이거 저거 하다가는 내 놓다 말아요. 이러니까 딱 거석해서 뭘  가르칠까, 요긴하게 딱 생각해 가지고 한 가지 두 가지를 고 속에다 박아 넣어  가지고 고 완전히 그 사람이 돼져야. 여러분들이 말하는 그 말씀이 그 사람이  돼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그 가르침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 자라는 그  양식이 돼서 하나님의 아들의 뼈와 살이 돼야 된다 그말이오.

 어짜든지 기도해요. 장생골 기도원 위해서 기도해요. 아직까지 다 미결이오.

자꾸만 아직 안 돼 가지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있으니까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 되지 하나님 능력 안 오면 우리가 그 집회도 못 해.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 되지 자꾸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잘해 주실 걸 확실히 믿고 기도해야 돼. 안 믿는 의심 기도 그까짓 거  소용없어. 반드시 잘해 주실 것, 잘해 주는 것 우리가 기도를 해야 잘해 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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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716 우상을 사전에 방비/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31112토새 선지자 2015.12.13
3715 우상으로 망하고 감사와 복종으로 성공/ 시편 136장 10절/ 841121수야 선지자 2015.12.13
3714 우상숭배 회개/ 에스겔 2장 1절-10절/ 840930주전 선지자 2015.12.13
3713 우상숭배 시험/ 출애굽기 20장 3절-5절/ 880314월새 선지자 2015.12.13
3712 우상-복받는 길/ 로마서 6장 23절/ 851107목새 선지자 2015.12.13
3711 우상-복받는 길/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12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3
3710 우상과 하나님의 은혜/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20502주전 선지자 2015.12.13
3709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5년 25공과 선지자 2015.12.13
3708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 1982년 19 공과 선지자 2015.12.13
3707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90304토새 선지자 2015.12.13
3706 우상/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841011목새 선지자 2015.12.13
3705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40104수야 선지자 2015.12.13
3704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40105목새 선지자 2015.12.13
» 우상/ 출애굽기 20장 6절/ 850713토새 선지자 2015.12.13
3702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0708월새 선지자 2015.12.13
3701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22주새 선지자 2015.12.13
3700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01015수새 선지자 2015.12.13
3699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01018토새 선지자 2015.12.13
3698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1982. 5. 2.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3
3697 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51220금새 선지자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