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집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21일 주후

 

본문 : 고후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오전에 우리는 세 가지를 굳게 잡아야 할 것을 증거받았습니다. 첫째는 구속을  입은 중생된 우리들에게는 옛날과 달리 자기가 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는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난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요  하나는 믿기 전에 참 자기를 죽인 원수인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옛사람 자기,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 그 자기와 자기가 둘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원수인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은 언제든지 무너질 땅에 있는 장막 이것이 좋다고  이것으로 위주해서 살라고 우리 마음에게도 우리 몸에게도 늘 유혹을 주는 그  원수요,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미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사람은  땅에 있는 무너질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로 개조 함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늘 깨우치고 있는 이  사실 속에서 우리 마음과 몸은 머물고 있어 늘 권고와 유혹이 함께 있는 이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인 것을 기억해야 될 것을 오전에 증거 했습니다.

 또 땅에 있는 장막집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개조되는 데는 곧 이것이  없어질, 그 현실에 해당된, 현실에서 소모될, 현실에서 다시 중복이 없는  단번으로서 끝나지는, 그 현실에 소요되는, 현실에 관련된, 현실로 끝나는,  자기의 마음의 것이나 몸의 것이나 몸 밖에 있는 어떤 자기의 소유의 것이나  그것이 끝나지는 그때에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와 하나가 되어 그 현실을  끝내는지 그렇지 않으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하나되어서 끝나든지 둘 중에  하나는 이루어지는 것인데,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하나되면 그것은 옛사람으로 산 그 시간이니 그것은  마음도 몸도 소유도 모든 것은 영원한 사망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기독자들에게는 둘째 사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와 하나로 끝을 냈으면 다시 중복이 없는, 다시  시험이 없는 하나님과 성신의 감화와 진리의 것이 된 것으로 끝났고, 거기에  결합된 것으로 끝났고, 이것으로 감화되고 감염되고 동화되고 소속하고 성화된  것으로 끝나 영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유한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썩어질 장막 무너질 장막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 노력을 할 만한 그런 여유의 힘이 없기 때문에  전부를 다 기울여서 썩지 아니할 생명이 승리하는 이 생명의 면류관, 생명이  승리하는, 무너질 장막집을 영원한 처소로 개조받는 여기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일 것,  그러면 무너질 장막집은 필요가 없는가? 무너질 장막집은 필요있지마는 우리는  그것을 마련할 만한 여유의 힘도 없고 또 우리가 마련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너질 장막집이 무너질 그 순간 그 현실에서 영원한 집으로  개조함을 입는 이 일에 전력을 기울일 때에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무너질 장막집은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가장 적절하게 유효적으로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만 기울일 것,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장사해도 영원한 처소를 덧입는 기회를 노리는 것이요  덧입는 그 일을 하고, 정치를 해도, 공부를 해도, 가정 생활을 해도, 무엇을  하여도 그 중심과 동기와 목적과 방편이 다 믿음이어서 무너질 장막집을 영원한  처소로 바꾸는 그 일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는 것을 성경이 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라" 하는 것이 다 이런 말씀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8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과거에는 죽을까 두려웠고,  낮아질까 두려웠고, 없어질까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그런 두려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한 말로 말해서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없어지는 기회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그 기회에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하늘의 것으로 개조를 입어 없어진 그 없어짐을 통해서  영원히 주 앞에 있기를 원하는 이것을 소원하기 때문에 이제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보이는 것 없어질 것이 변하여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 되어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장막에 속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없애겠다고,  부수겠다고, 끌어내리겠다고 위협과 협박을 줄 때에 우리는 과거에 두려워서  꼼짝을 못했던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생명의 길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협박을 줄 때에 '오, 없애라. 없애야 나는 성공이 된다. 없앨 때에  진리의 것이 되어 없어지겠다. 영감의 것이 되어 없어지겠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  없어지겠다.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와 결합된 것으로 없어지면 끝난다.

완성이다.' 하는 이것을 원하는 것이 성령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9절에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주가 기뻐하시는 자, 의가  기뻐하는 자, 참이 기뻐하는 자, 옳은 것이 기뻐하는 자, 성결이 기뻐하는 자,  영감이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니 자기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요, 자기가 진리를  기뻐하는 자 되니 진리는 자기를 기뻐하는 자 돼요, 자기는 억만금과 불의가  붙었을 때에 억만금은 좋지마는 불의가 너무 더러워서 억 만금이라도 더러워  던지고, 온갖 고난과 박해가 많아도 거기에 의가 붙어 있기 때문에 의 욕심에  그것을 달게 취하는 것,  이래서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에 속한 것을 기뻐하는 자기가 되어짐으로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가 자기를 기뻐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갑자기 안 됩니다. 취미를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취미가  바꾸어지지 않는 것이고 쾌락이 쉽게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악습으로 말미암은  그 취미 재미 쾌락 연습 그것이 그렇게 쉽게 바꿔지지를 않습니다.

 의로 바꿔지기 어렵고, 악성이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악령에게 지배받던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그것이 지식으로도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고, 또  소원으로도 시간과 힘이 들고, 그것이 주관화 본능화 되어지는 데는 그 사람이  되어지는 데는 더 힘듭니다. 그것은 수많은 중복의 연습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는 참 무엇을 기뻐하는지?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살고 있는지? 우리는  간교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간교를 발견하면 가슴이 찔립니다. 거짓된  우리들입니다. 외식이 많습니다. 너무 어리석은 지혜가 많습니다. 기회를 따라서  어떻게 변해지는지? 자기 딴에는 슬기롭게 한다고 요리 조리 피해서 변했지마는  마지막은 자기가 멸망받은 함정으로 파고 들어간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그런 좁은 사람이 안 되기를 날마나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결혼하고 아니한 사람이 다르니 결혼하지  아니한 자는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결혼을 한 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여기에 다 기울여지지를 않고 그  마음이 나누어지느니라" "그 마음이 나누어지느니라"  "그러기에 세상 것이 있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해라. 또 세상 것이 없는 자는  없지 않는 것같이 해라. 세상 것을 쓰는 자는 그것이면 다인 줄 알고 날뛰지  말고 과도히 쓰지 말아라." 그저 의식주는 안 죽고 먹고 살 만하면 족하지 그  끝이 없는 것이라. 무저갱 같은 거짓된 자기 속에 옛사람 그것은 우리를  망치기를 목적하기 때문에 끝이 없어.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반드시라 말은 하나도 빠짐이 없습니다.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우리의 생각 하나도 빠짐이 없이  반드시, 우리의 마음 한 번 먹은 것도, 뜻 한 번 가졌던 것도, 저 혼자 앉아서  군담했던 것도, 저는 십십용지로 덮어 가리워서 거짓을 덮어 가리워 인간은  모르지마는 하나도 빠짐 없이 심판대 앞에 드러납니다.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 비는 가리고 자기의 지혜로 없는 의도 있는 척해서  드러내는 그것이 대단히 처세술에 지혜있는 것 같지마는 마귀 편에는 지혜  있지마는 하나님 편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자기의 비가 드러나면 억지로  제가 교만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멸시하기 때문에 억지로 겸손해집니다.

자기의 장점이 드러나 위험성뿐이지 유익될 그런 점은 없고 자기의 단점이나  그런 것이 드러나 손해갈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힘으로 가리고, 지혜로 가리고, 어떤 사람은 악독으로  가리니까 그것을 세간에 사람들이 드러내기를 겁을 냅니다. 별별 보호색을가지고  덮고 가리지마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행함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유다서에는 보면 "경건치 아니한 행동 경건치 아니한 말" 그러면 그 사람은  절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의 요소. 경건은, 선행을 하되  선행이 경건 아닙니다. 진리와 영감대로 됐다고 해서 경건 아닙니다. 경건은  구속자시며 창조주이신 주를 위해서 의롭게 거룩하게 영감과 진리대로 행동된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 방편과 그 사건이 옳다고 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동기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이냐? 네가 의로운 행위를 한 동기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이냐?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동기는 몇 번이든지 거짓부리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동기를 볼  자격이 인간은 없습니다. 목적도 볼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나타난 결과 그것만  중하게 여겨서 나타난 결과 그 위주로 판단 하지마는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 동기와 목적을 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인간이 모른다고  덮었다고 가리웠다고 그것이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드러납니다. 드러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호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적어도  나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호해 주지 않을 그런 일은 아예 땅위에서  해결짓고 가야 되지 뿍뿍 밀고 갔다가는 그때는 다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후서 3장에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는 그 말씀은,  드러난다 그말은 다시는 변동할 수 없는 고정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말입니다. 개인이 죽으면 다시는 불변입니다. 아직까지 생명이 붙어 있을  동안에는 자기의 수치스러운 것을 변개할 수 있습니다.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눈과 같이 희게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찬송 부를 때에 '주의 피에 씻는다' 말은, 주님의 피는 대속했기 때문에  그 피에 고하여 그 죄를 사함받으려면 자기가 그 피값에 팔린 자인 걸 알아 이  사실을 믿으면서 자기가 주의 것 되면 됐습니다. 주의 것 되면 됐어. 자기의  전부가 주의 것 됐으면 주님의 모든 것은 자기 것 다 됐습니다. 이것이  댓가입니다.

 그런고로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선악의 정의가 무엇인가? 선악의 정의는  세계에 학자들의 정의는 백도 천도 넘습니다. 그러나 이 선악의 정의는 세상이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세상은 이 선악의 정의를 하나도 모릅니다.

 이 선악의 정의는 선은 구속주, 창조주, 주재자 이분을 중심으로 한 것인  선입니다. 악은 언떤 피조물이든지 피조물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은 다  악입니다. 전인류를 위해도 악입니다. 만물을 위해도 악입니다. 자기를 위해도  악입니다.

 피조물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은 다 악으로 규정 지우고 선은 조물주,  구속주, 주재 이분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을 선으로 규정 지우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그 선은 모든 이종교에서 말한 선 아닙니다.

모든 철학자들이 모든 사상가들이 인간들이 말하는 선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생애를 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피곤치 아니하면" 이 주 중심의  선의 행위가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것을 얻고, 이렇게 함으로 소모되고  없어지는 것은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 영생화되어지는 이 사실을 알  때에 그는 피곤치 아니하고,  화폐 개혁에 돈을 바꾸는데 시간이 곧 다 돼 가는데 안 바꾸면 다 헛일이  되니까 마구 자기에게 있는 돈을 받아만 달라고, 어쩌든지 바꾸려고 거기다가  저쪽에 받아만 주면 자기 것 되기 때문에 받아만 달라고 날뛰는 것처럼 이와 꼭  같은 것인데, 그까짓 거야 있어 봤자 한번은 놓을 것이지마는 이거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님 중심으로 위주로 해야 슬기로운 사람이 된  것이고 또 무엇을 하든지 그를 위해서 할 뿐만 아니라 그 하는 것에 영원한  댓가를 받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냉수 한 그릇의 수고를 조물주가,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를 내가 결단코 그 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갚겠다"  하나님 중심으로 한 것, 하나님 위주로 한 것,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전국에 큰 교회로서는 우리 교회에 주일학교를 시찰하러 오지  아니한 교회는 이제 없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온 그분들에게 말하는 중에  저는 하나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에게 대접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건 한 장도 없습니다. 여름 하기하동성경학교 때에 점심 하루  수고하면 한 그릇 대접하는 것, 또 탄일 때에 혹 나눠 주고 빵이 남았으면 한  개씩 두 개씩 하는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래도  그렇습니까?' 모두 다 자기 교회서는 많은 대접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제가 듣기 위해서 그 말을 한 것입니다.

 '네, 여기에서도 그렇게 해 봤는데 그분들도 중생됐고 다 신앙의 양심과 영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잘할 때는 이래도 저래도 잘하지마는 시험에 들어 어두워질  때에 그때에 그것이 거리낌이 돼서 일어나지 못합디다.'  대접하지 않고 일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 뉘 위해서 했나? 목사 위해서 했나?  대접 위해서 했나?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바라고 했나? 뭐를 바라고 했나? 너를  구속하신 주님 보고 한 것 아니냐? 주님이 네게 변하더나 잘못하더나? 너  이제까지 누구 보고 했느냐? 네 맘대로 해라.' 할 때에 그는 용감스럽게 '그래!  내가 주님 보고 했지. 사람들이 뭐 이렇다 저렇다, 알아 준다 못 알아 준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거기에 따라서 했느냐? 주여! 일어납니다.' 하고 일어나더라  하는 그말을 모든 전국에 있는 반사 퍼져 나가면 세계에 일하는 일꾼들이 주만  보고 일하고 엉뚱스러운 것 보고 일하지 않게 하려는 그 운동이 지극히 작은  파문이라도 움직여 도움이 될까 해서 그들이 묻지 않는 말을 그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를 보고 합시다. 반사 선생님들도 부장 선생님들도 총무들도 모든  사찰이나 온갖 임원들도 집사님 권찰님 장로님 목사님들도 주님을 위해서  합시다. 주님을 위해서.

 물론 밭가는 소가 먹어야 가니까 먹지마는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니까 먹어야 되겠고 입어야 되겠고 하니 먹는 것 입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대로 먹고 입고 하지마는 사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 먹기 위해서  했으면 그만치 소모되고 허비되기 때문에 아까워. 그것 위해서는 하기 싫어.

 주님을 위해서 합시다. 주님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피곤치 않습니다. 변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범사를 주님을 위해 할 때에 우리에게는 영생하는 힘이  배후에서 역사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가정에 모든 애로를 감당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권태가 나고, 그 모든 불법이, 불의가, 불량이 자기의  나선 이 의의 힘을, 그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을 변동 못 시킬 것입니다.

 아내에 대해서도 친구에 대해서도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가정을, 주를  위해서 부부를, 주를 위해서 이웃을, 주를 위해서 직장 생활을, 모든 생애를  주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자에게는 주가 변하지 않으니 그이의 행동도 변하지  않을 것이요, 그이의 욕망도, 용기도, 그이의 평가한 가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청청함같이 그의  행위는 환경이나 주위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그런 것들이 변개할 수 없는  고차원의 초인간의 걸음을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시기하고 질투해서  '나 위하지 않고 주를 위한다, 먼저 나 위하지 않고.' 먼저 저를 위하면 제가  우상되기 때문에 저는 바싹 뽀사지지. 멸망을 받지. 제가 뭐인데?  저도 주를 위하는 제가 돼야 되고, 가정도 주를 위하는 가정이 되고, 부부도  주를 위하는 것이 되면 주를 위한 것이 되면 주가 책임질 것이고 주를 위한  것이니 그 원인이 주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땅위에 사이비한 원인이 와  봤자 원인되지 못하지. '이것 때문에 나는 포기하겠다. 이것 때문에  깨뜨리겠다.' 하는 그런 파괴의 원인이 다른 데서 들어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한 것이요 그것이 완성이요 완전이요 그것이 참 온전한 가치를 실력을  가진 것들인 것입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여러분들  중간반사들이나 부장들이나 목사나 월급 보고 하지 마십시오. 월급 보고 하면  용욕스럽습니다. 돈 보고 할진대야 사회 나가서 태짐을 짊어지든지 하지 뭐  할라고 속 썩고 아니꼽고 하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을 하는 데에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기 때문에 주님이 주님의  위하는 일을 한다고 먹을 것 입을 것 주는 것이지 그 댓가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마십시오. 바로 지식하고 바른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부교회 교인들도 목사 월급 주니까 백목사가 월급 보고 일하는 줄 아예 알지  마십시오. 안 줘도 못 먹으면, 못 먹으면 달리 먹는 것을 어데 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일하고 하는 것은, 안 주면 먹는 것 마련하는 그 시간이 드니까  일을 좀 적게 할지라도 주를 위해서 하지, 주를 위해서 하지 심판대 뒤에 갚음을  받을 그것 위해서 하지 돈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절대 하지 않습니다!  대접하는 자도 그렇게 생각지 말고 보수를 받는 자도 그렇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먹어도 마셔도 이것 저것을 해도 주를  위해서 하고 사는 것입니다.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그런데 이 심판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대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요. 하나님의 심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공심판이요 하나는  그리스도의 심판 사심판입니다. 공심판은 계시록에 보면 백보좌 심판이라고 해  왔습니다. 이 공심판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그 법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심판을 받아 정죄 받았고, 불의로 처형했고,  원수로 처형한 그것을 대신 형벌받았습니다. 원수된 형, 불의의 형, 하나님의  법을 어긴 형, 자율대로 산 그 모든 형, 자기중심으로 산 형, 이 형을 주님이  대신 다 받으셨고,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주님이 순종하셨고, 우리 대신  하나님과, 죽기까지 노력해서, 하나님은 저주해서 죽여버리고 주님은 화친의  줄을 놓지 않고 '화친하기를 원합니다. 화친시켜 주옵소서. 나는 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하나님을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 이런 승리를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책임지고 대신 공심판을 받음으로  공심판에는 우리는 의인으로, 죄 없는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공심판에  만점으로 통과를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우리의 것이 됐습니다.

 이 공심판을 무사히 완전으로 통과한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심판을 베풀어 놓고 그 심판에서 "내가 너를 대속했으니 네가 어느 정도 내  대속을 믿었으며 의지했으며 바라봤으며 내 대속을 세상에서 기념했느냐?  세상에서 나타냈느냐?" 하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이것이  사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하는 그말은 심판의 성격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이라는 뜻인데  기름 부음은 신정 국가에서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냈습니다. 신정 국가에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기름 붓고 선지자에게 기름 붓고 왕에게 기름 부어 이 세  가지 직책에만 기름 부어 장립시키는 일을 신정 국가에서 이행함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라 그말은 그 심판은 어떤 성격으로 주를 삼아 가지고  심판하는가 하는 심판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니 그 심판은 제사장 중심으로  심판이요 선지자 중심 왕 중심, 제사장 성격 제사장 실력 선지자 실력 왕 실력  이 실력이 네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느냐? 어느 정도 갖추어졌느냐?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심판 하는 심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언행심사나 자기의 모든 소유의 활용이나 자기의 모든  소원이나 모든 계획이나 노력이나 시작한 것이나 성공한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이  세 가지 성격으로 그 심판에서 다룹니다. 이 세 가지 성격으로 그 심판에서  다룹니다.

 제사장은 어떤 것이 제사장인고 하니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신데 예수님은 제사장  노릇을 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대신 책임지고 형벌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대신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어 가지고 우리의 모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에게 대신 얻어 가지고  우리에게 갖다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그것은 대신 형을 받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대신 행하셔서  그 행한 걸 우리에게 입혀 주고, 원수된 형도 대신 당신이 받으시고 우리 대신  화친을 일으켜 주신 이것이 예수님의 제사장 직책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것은 제사장직입니다. 이 직은 사죄에 대해서,  칭의에 대해서, 화친에 대해서 이 세 가지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이 일을  무마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오는 것을 당신이 대신 받아서  막았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할 때에 당신이 우리를 대신해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끌어다가 우리에게  줬습니다. 우리의 미진한 모든 우리의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했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한 것을 대신 기쁘게 했고,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멀어지고 원수된 것을 대신 형을 받았고. 원수된 형, 제맘대로 산 형, 하나님  법을 지키지 아니한 형 이 세 가지 형을 대신 받은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대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한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구해 가지고 이것을  끌어다가 우리에게 주신 분이 제사장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 살 때에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망하는 그것을 어느 정도  안타깝게 여겼으며, 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로를 베풀었으며, 제 노력으로,  제 노력으로 하지 못할 것을 도와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게 한 일이 얼마나  있는지?  제 힘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을 제 힘으로 형제를 도와 형제로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에 응하도록 하는 이 일에 어느 정도 네가 협조를 했나? 어느 정도  효력을 줬나?  하나님 앞에 법에 삐뚤어질 것을 네가 이것을 협조해 가지고 대신해서 어느  정도, 열 가지 삐뚤어질 터인데 네가 한 가지를 덜 삐뚤어지게 했느냐? 열 가지  삐뚤어질 터인데 네가 열 가지를 다 삐뚤어지지 않도록 했느냐? 네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으로 화친에 대해서, 인간의 잘못을 대신해서,  인간이 해야 할 것을 대신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실 것을 중간에서 대신해서 융화시켜 가지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유유하게 서서하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대번 오면 우리가  죽을 터인데 그 진노를 멈추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해서 그 진노를 다  알아 우리가 회개하도록 하신 주님처럼 네가 중보자 역할을 어느 정도 했느냐?  영원한 나라에서도 이것만이 교회의 직책이기 때문에 네가 땅위에 있는 동안에  제 사장 노릇을 어느 정도 했으며 네가 선지자 노릇을 어느 정도 했느냐?  선지자 노릇을 어느 정도 했느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네가 인간이  모르는데 모르는 그것을,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는 걸 인간에게 어느 정도 알려서  진노를 피하게 했느냐? 하나님의 요구를 모르는 것을 어느 정도 알려서 피하게  했느냐?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님의 예언을,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어느 정도 네가 인간에게 알려서 그들에게 주어서 가지게 했느냐?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갖다 내는 주인과  같으니라" 막바로 하늘나라에 있는 것을, 말씀으로 되는 것인데. 하늘나라의  것을 네가 말로써 성도에게 인간에게 어느 정도 갖다 줬느냐? 그게 막바로 하늘  곳간에 있는 그 실상이라. 이 선지자 노릇을 어느 정도 네가 했느냐?  하나님의 통치를 네가 인간에게 전달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 통치에 통치를  받도록, 그 생명 통치인데 그 통치에 인간이 그 통치 받도록 네가 어느 정도  역할해서 네가 그 일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져 있느냐? 어느  정도 연습을 했느냐?  인간의 지저분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다 알려 그분에게 의논하고 그분에게  수정받아 '이것은 이래라 저래라' 모든 인간의 지저분한 모든, 행정이라는  다스림이라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고해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와 결합이  되어서 서로 조화가 돼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에게 와서 실시가 되도록,  왕의 직책을 얼마나 했으며 영원 세계에서 노릇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며 네가 땅위에서 해서 얻어 놓은 고을이 얼마나 넓으냐? 얼마나  크냐?  "한 므나를 남긴 자에게는 한 고을을 주고" 하는 것은 한 므나면 하루  품삯인데, 한 므나면 하루 품삯인데 하루 품삯에 한 고을씩이라. 김해 고을 한  고을을 사려 하면 상당히 돈이 많을 것입니다. 하루 품삯 가지고 김해 고을  하나를 삽니다. 김해 군내를 삽니다. 사요.

 이거는 뭐이요? 현재에 하루 품삯과 그 고을의 댓가가 얼마나 차이있느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이 장차 주님의 심판을 거쳐 나갈 때에는 이렇게 가치가  폭등됩니다. 가치가 폭등돼요. 지극히 작은 한 의를 행했는데, 한 의를 행했는데  이 지구 땅덩어리보다 값이 커, 댓가가 커. 이렇게 폭등 세계가 옵니다. 이걸  보기 때문에 이것 보고 삽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각 그의 행한 대로 따라 갚음을 받을 터인데,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독사와 시랑이 같은 것이, 독사와 시랑이 같은 것이 주일학교  반사를 하니까, 독사와 시랑이 같아서 남은 망하고 저는 잘되고, '어떻게 하면  이용을 할까?' 남을 어떻게 하면 저를 위해서 이용을 할까 요것밖에만 가득히 찬  독사와 시랑이 같은 요런 악종이 반사가 되고 나니까,  새벽부터 일찍 나서 가지고 가 가지고 문을 두드리니까 욕을 하니까 얻어먹고  참고 견디고, 정 안되니까, 성을 내 가지고 엉크려 가지고 나오니까 '아이고,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생전 모르는데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왜? 그 아들 안  보내 줄까 싶어서, 겁이 나서. '나는 누군 줄 모르겠는데.' '아이구, 아무것이  제가 늘 인도하는 사람 아닙니까?' '아이구, 그렇소? 야, 아무것아. 여기  아무것이 왔다.' 아버지 소리 들으니까 좋다 그말이지 뭣 때문에? 뭣 때문에?  이렇게 이것이, 이것이 제사장 노릇을 하는 것이요, 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요, 이것이 왕의 직책을 하는 것이니까 독사와 시랑이 같은 것이 이것이  갑자기 성자가 되고 성녀가 돼 가지고, 이는 참 자기 본의 아닌데 직책이  직책이라 하다 보니까 그 사람이 돼져 버리고 이렇게 하니 여러분들,  자, 남녀 반사 선생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남녀 반사 선생들 한번 손 들어  보십시오. 이것뿐이라? 이것뿐입니까? 손을 버뜩 들어 봐, 남녀 선생님들? 손  놔요. 교만하지 말아요. 돈 안 받고 한다고 어리석지 말아요. 돈 받고 할  것이오? 어리석지 마.

 제가 볼 때는 참, 내가 참 너무 감탄을 했습니다. 뭐 누가 시킬까마는 조그만한  것이 집에서 아, 지금 어두워 깜깜한데 네가 어데를 갈려고 지금 가느냐고  야단을 치는데도, 야단을 치니까 모르구로 살며시 숨어 빠져 가지고 다섯시 부터  차를 타고 한 시간이고 반 시간이고 가 가지고 그 곳에 가 가지고 지금 날이 안  새니까 앉아 가지고 있다가 개떼들이 와 가지고 달려드니까 그만 기도하면서  다니엘 기도와 같이 '주여, 다니엘에게 함께 하신 주여, 함께 해 주옵소서. 이걸  물리쳐 주옵소서.' 이렇게 진땀이 나도록 기도하며 이래 가지고 있다가,  가 가지고 살며시 보니까 불이 켜 있으면 말할려 하니까 또 불이 꺼 가지고  있으니 또 못하고 또 나오고 또 좀 있어 가지고 한참 떨고 있다 보니까 불이  켜졌으니 가 가지고 문을 동동 두드리면서 '주여, 성내지 않게 해주옵소서. 저거  아버지 노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분발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감화시켜  주옵소서.' 뭐? 뭐 할려고? 그 학생 보내 달라고. 뭐 할려고? 구원시키려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하시면 선한 사람 됩니다. 의인되게 하시면 의인 됩니다.

성자가 되게 하면 성자가 됩니다. 제가 돼 그런 것 아니오. 이것을 하나님의 큰  은혜요 큰 축복인 것을 깨닫고 감사해서 견딜 수 없는 이런 사람이 돼져야 되지  이것을 잘못 깨닫고 하면 저는 해 봤자 상도 없고 헛일입니다.

 저 진해 있는 권 목사님이라고 있는데 그전에 진해에 다니는 차에 이 땅콩,  차에서 땅콩 나오는 것, 완두콩인가 땅콩 나오는 것 그것은 전부 그 사람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큰 기업체요. 이렇게 머리가 빨랐습니다. 자기와  같이 있던 친구들 가운데에 자기보다 훨씬 뒤떨어진 사람들은 다 장관 차관 다  이렇게 해도 그 사람 그것 하지 않고 신학 해 가지고 목사 했습니다.

 한번 나한테 찾아와 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내가 기도하고 나니까 울면서  기도하면서 '이런 더러운 죄인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써 주셔서 이렇게 가치있는  일을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를 죽는 날까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버리지 마시고 계속해서 써 주시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합디다. 그때 그분들  목회자 나가 봤자 근근 연명이오. 근근 연명이오. 요새는 교회들이 부자가  됐습니다. 해방 작후에는 근근 연명이오. 다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기억 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원수가 많으니 저희 배는  하나님이요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라. 저는 땅의 것만 생각하고 하늘의 것을  생각지 않는 자이니 우리의 나라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느니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의 썩을 몸을 그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줍니다.

 그날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날이 없으면 우리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날  아니면 우리가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미련한 사람이지요, 가련한 사람이지요.

그날이 있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 모은 것이 홍수 그날이 있기 때문에 그가 잘한  것이오. 하나님의 심판이 없으면 우리는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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