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집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17일 수야

 

본문 : 고후 5:1-10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오늘은 다음 유치반 중간반 공과를 다시 한번 복습하는 시간입니다. 공과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목, 우리의 집.

 본문에 장막집 영원한 집 하늘에서 오는 처소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집은 좁은  범위에서 처소는 넓은 범위에서 말씀하신 것이니 곧 자기가 거주하고 있을 곳을  말씀함이 다. 여기에 말한 주격은 중생된 영이니 땅의 집 땅의 처소는 영은  마음을 입고, 마음은 몸을 입고, 몸은 행위를 입고, 행위는 그 성공을 입고,  성공은 만물을 입고 사는 것이니 이것들이 자연인에 속한 것들이 있으니 이것은  다 무너질 것들이요 없어질 것들이요 또 옮기면 옮겨질 것들이다.

 둘째,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어야 한다는 것은 이 땅의 것들이 영감과 진리를  힘입어 현실에서 영감화 진리화되면 땅의 것이 하늘의 것을 덧입어 영원한 것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너질 처소와 옮겨질 처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무너질 것을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완전  영원 존귀 영생의 것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셋째, 이 사실은 천지는 없앨 수 있을지라도 획 하나도 없애거나 가감 못 할  사실인데 이를 믿는 것만치 자기 구원은 이루어지고 믿지 못하는 것만치 자기의  생활은 땅에 속하여 이스라엘이 황야에서 멸망한 것처럼 땅의 생활로 영생할  것이 영멸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두 장막과 집에 대해 믿는지 안  믿는지 자기를 시험하여 확정해야 한다.

 믿는 증거는 첫째로 덧입기를 위한 탄식과 간절히 사모함이 있다.

 둘째, 이 탄식이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하늘의 것으로 덧입으려는 그 마음에  눌려 간절하고,  셋째로, 세상을 향한 모든 공포가 변하여 세상에 대하여는 담대하고 하늘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으로 바꾸어지는 것이다.

 3월 1일 저녁 일곱시 부터 3일까지 우리 총공회가 열립니다. 많이 참석해서  은혜 받으시기를 바랄니다. 둘째, 삼일예배 후에 1층 예배당에서 철야기도회가  있사오니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또  남전도회 임원회가 1층 신관에서 열리오니 임원들은 다 참석하시기 부탁합니다.

넷째, 예배 후 1층 예배당서 결혼식이 있사오니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철야기도회가 시작되겠고 그동안은 거기  참석해서 축하도 하고 또 여기에서 기도해도 되겠습니다.

 여기에 무너질 장막집 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그 집은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집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라고 하는 것은 무궁세계의 것인데 그것은 가치적으로 가장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사람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처지는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영광된 처지에 살고 어떤 사람은 비참한 처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집이라 처소라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서도 영광되고  구비한 처지에서 사는 성도들도 있고 참 가장 작은 자로 어려운 그 부끄러운  중에 부끄러운 처지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과 처소는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고 믿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것은 그것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무너지면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공로 입은 사람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무너지는 것으로 영원히 멸망으로 끝나고 무너지기 전에 하늘의  처소를 덧입혀 놓으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요 완전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혹 이해 못 하는 이들이 있을는지? 자신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많은 지식을  입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 속에서 삽니다. 또 무식 속에서 삽니다. 지혜 속에서  살고 어리석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훌륭한 기술을 가져서 기술을  입어서 기술 속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기술 하나도 없는 발가벗은 사람으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자기 자체가 입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마음 속에서 살고 아주 악한  마음 속에서 삽니다. 이제 말한 그 모든 실력은 마음의 실력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재물 속에서 재물로 자기의 처소를 마련해 놓고 많은 재물  속에서 살고, 권세 속에서 살고, 또 명예 속에서 살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으로 성을 삼아서 인성 속에서 살고 그렇게 사람들은 다 각각  다른 그런 처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은 다문 얼마라도 좀 더 좋은 형편에서 좋은 처지에서 자기 몸  밖에 있는 구비한 물질을 갖춰 놓고 구비한 물질 속에서 살려고 죽는 날까지  하나 둘 마련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더 얻어 가지고 자기를 환영하고 협조하고  좋아하는 그런 사람을 얻어서 사람 옹호 속에, 존경 속에, 대우 속에 이렇게  살려고 또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은 유식한 지식 속에서, 아주 능란한 그 지혜 속에서, 이런 기술  속에서 자기는 튼튼히 살아보려고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여기에 말한 대로 땅에 있는 장막집이라, 장막집이라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다  무너질 것들이며 또 옳길 수 있는 그런 뜻을 표해서 무너질 집이라, 장막집이라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어떤 사람은 몸은 건강하고  튼튼한데 재물이 없습니다. 또 권세가 없습니다. 또 자기는 그런 것은 있지마는  튼튼한 몸이 없습니다. 또 튼튼한 몸 그런 것은 다 가졌지마는 자기는 지식과  지혜가 없습니다. 이래서 각각 구비한 자기 처소를 마련하려고 애를 쓰는 그  처소, 자기 처지, 자기 형편 그것을 여기에 집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간추려 말하면 주격은 중생된 영인데 중생된 영이 참  자기입니다. 참자기는 마음의 그 온갖 기능 속에 살고 있고, 또 자기는 몸의 그  실력 속에 살고 있고, 그다음에는 자기 행위, 자기 모든 이력, 자기 소유 그런  것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입고 사는 그것이 가치가 천층만층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입고 있고, 어떤 자는 흥한 것을 입고 있고, 어떤 자는 아주  강한 걸 입고 있고, 어떤 자는 약한 걸 입고 있고, 사람은 같지마는 입고 있는  그것에 따라서 가치도 행복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입는 그것을 가리켜서 사람들이 후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이 장막집은 만들면 됩니다. 건강도 자기가 노력 여하에 있어서 달라지고,  지식도, 지혜도, 권세도, 또 물질도 달라집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잘 만들어  가지고 좋은 처지 속에서 형편 속에서 살려고 사람들이 애쓰는 이 처지 형편을  여기에 집이라고 말한 것인데 하늘나라도 그러합니다. 하늘나라도 어떤 사람은  구비한 처지 형편 속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아주 부끄럽고 참 비참한 그런 형편  속에서도 사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집, 세상에 있는 처소는 이것을 마련하고 싶어도 마련할  만한 그런 재료가 구비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걸 마련 못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배경이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물이 없으니 안  돼, 또 후원해 줄 사람이 없으니 안 돼, 자기가 돈벌이 하려고 해도 뉘 협조하는  사람이 없어, 자본이 없어, 자기가 아무런 기술이나 그런 실력을 배운 것이  없어. 이러면 그 안 됩니다. 또 권세 같은 걸 가지려고 해도 자기를 협조해서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암만 가지고 싶어도 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이 처소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가지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니고 참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큰 원인과 재료가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택해 주신 그 택함과, 또 예수님의  피로 구속해 주시고, 불러서 중생시켜 주시고, 성령과 진리의 도움을 입어야  하늘에 있는 이 처소를 잘 마련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마련 못합니다.

 택함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무너질 장막 이것만 가지고 있다가 무너지면 그만 끝나버립니다. 그다음에는  멸망입니다. 한 사람도 영원한 하늘나라의 이 처소 하늘나라의 집 이것은 마련을  못 합니다. 불택자는 하나도 마련을 못 합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은 이 자원이 있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이 공로의 자원이 있지, 또 성령과 진리가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이 자원이 있지, 우리가 중생 됐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마련하는 데에 얼마든지 필요있는 대로 써라  하시고 만들어 놓은 만물의 대비가 있지 이러니까 우리만 힘을 쓰면 되는  것입니다.

 이 집을 짓는 데는 무식해도 됩니다. 병신이라도 됩니다. 또 날 때부터 아주  못난 저능자라도 됩니다. 어떤 범죄에 빠졌던 자라도 됩니다. 이것은 다 주님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늘나라에 있는 그렇게 영원한 처소, 무궁세계 가서 입고 살 그  모든 지식, 지혜, 능력, 기술, 영광, 부요, 자기의 활동할 수많은 무대 그런  것을 그렇게 좋은 것을 마련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요소는 꼭  같습니다. 꼭 같지마는 우리 사람으로서는 너무 차이가 많은데,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차이가 많은데 어떻게 이것을 같이 마련할 수가 있는가 이것이 좀 문제로  생각이 되겠습니다.

 '저런 사람은 세상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구비하고 정장히 위대한 사람인데  나는 아무것도 없지, 재산도 없지, 지식도 없지, 지혜도 없지, 무슨 인격도  없지, 이력도 없지, 그저 벌로 죄만 짓고 돌아다니던 이런 아주 사람 중에 제일  천물이니까 이것이 무슨 그런 존귀한 하늘나라의 처소를 마련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아무리 잘나도 위대해도  좋습니다. 못나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뭐이냐?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아무리 못나도 잘난  사람의 백분지 일도 안 되는 그런 무가치한 존재라 할지라도 자기 있는 것 다  들여서 이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하면 다 들인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댓가로  받으시고 하나님의 전부를 기울여서 다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의는 일이 잘되고 못되고 많이 하고 적게한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고 충성에 가치를 뒀습니다. 충성. 충성의 반대는 불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충성은 의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충성을 댓가로 받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모든 것이 구비하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자기의 가진 그 위대한 것의 백분지 일을 들여서 이  구원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아주 못난 사람은 백의 백을 다 들여서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잘난 사람의 백분의 일 들인 그 사람의 백 배를 못난 사람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못난 사람 그것 다 기울이는 것 그것보다, 기울인 것보다 잘난  사람 백분지 일만 기울여도 그것이 훨씬 실력이 낫고 크게 보이고 많게 보이고  좋아 보이지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우리의 그 인격과 자체를  원하는 것이지 딴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것은 성경에 보면 잘난 사람은 닷 냥쭝을  하나님이 줘서 닷 냥쭝 있는 사람이고, 잘나게 해서 잘난 사람이고 못난 사람은  하나님이 적게 줘서 그래 된 것이기 때문에 많이 줘서 많이 받은 그 사람이 다  들인 것이나 적게 줘서 적게 받은 그것을 다 들이는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같이  평가를 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놀랄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많이 가졌으니까 제가 자기되게 한 것인 줄로 알고 '나는  많으니까 조그매만 들여도, 나는 새벽기도 한 번만 나가도 저거 만날 일생동안  새벽기도 나가는 것보다 나 한 번 나가는 것이 더 크다.' 왜? 세상은 못난  사람이 일생동안 일한 것 잘난 사람 한 시간이면 말 한 마디면 그까짓 것 다 돼  버립니다. 이렇지마는 하늘나라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무너질 장막집과 영원한 집이 있으니 이 무너질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집을 덧입어야 되겠다, 이것을 입고 싶어  탄식이 나오고 입고 싶어 간절히 사모가 되고 이것을 입지 못한 데 대해서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근심 걱정이 되고 이 일을 어쩌든지 갖추어 입기 위해서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마음이 눌려지고 이래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이룹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은 과거에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것 때문에 마음대로도  못하고 거기에 눌리고 붙들리고 그것 때문에 항상 붙들려 종되었었는데 이제는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대로 이것이,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원수에게 뺏겨  없어지든지 하나님과 진리대로 써서 없어지든지 어쨌든 이것이 하나님과 진리  때문의 것이 되어지면 이것은 하늘의 처소가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것은 어서 영원한 것으로 바꾸어 가지기를 원하고 땅의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과거에 땅의 것을 인한 그 근심 걱정 공포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하나도 없고, 그저 밤이나 낮이나 어떻게 하면 가지고 있는 이것을 하늘나라의  것으로 옮길까, 이것을 진리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 되어지도록 애를 쓸까  하는 그것만 소원되다 보니까 그 사람은 죽기도 과거에는 두려워했지마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가난해지는 것도 두렵지 않고, 빼앗기는 것도 두렵지 않고,  왜? 빼앗길 때에 진리만 지키면 진리 때문에 빼앗기면 그것이 살아났다  그말이오.

 영감 때문에 손해본 것, 진리 때문에 해를 본 것, 영감과 진리에 바친 것,  이것을 욕망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땅에서 담대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연계시인 이 세상에서 발가벗은 사람, 자, 돈도 없어 명예도  없어, 권세도 없어, 지식도 없어, 예술도 없어, 기술도 없어, 옹호하는 사람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아주, 옷을 입고 있다가 발가벗은 이런 사람이 비참한 것을  우리가 보고 무궁세계에 이렇게 비참한 사람이 되면 어찌 되겠느냐? 세상에서  벗은 자의 비참을 보고 무궁세계의 벗은 자의 비참을 깨달아야 이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세상에 구비한 것을 입은 그것이 좋은 것을 보거든 그것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무궁세계의 것은 더 좋으니까 무궁세계의 것을 더 부러워하고 노력해야  되고, 세상 가난을 보아 무궁세계의 가난을 어쩌든지 벗도록 애를 써야 되겠고,  세상 모든 구비와 부요를 보아 무궁세계의 부요와 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 사람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무너질 장막집, 무너질 장막집 이것은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어떻게 없는가? 이것을 영감에게 속하고 진리에게 속해, 영감과 진리와 하나가  되면 영원한 가치화돼 버리고 이것이 영감과 진리와 상관없이 끝나버리면 그는  아무 가치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에 연결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연결이 되는가? 어떻게 하면  썩을것이 이렇게 썩지 않을 것으로, 무너질 장막집이 영원한 처소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써먹을 수 있고, 영원히 그 속에서 살 수 있고, 그것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가?  그 만드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몇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 가지고  있는 것을 영감과 진리대로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서 가지고 있는, 그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써 하늘나라의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영감과 진리로 가지고  있으면.

 만일 하나 예를 들면 자기가 큰 공장을 합니다. 큰 공장을 돈벌이 잘하는  공장을 하는데, 왜정말년에 어떤 사람이, '너 신사참배 안 하면 공장 허가를  취소시킨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공장 허가 취소를 당해도 내가 하나님 법에  죄되는 신사참배는 못 하겠다' 하고 신사참배 안 하기 위해서 공장을 그것을  뺏겨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공장은 진리와 영감대로 없어졌습니다. 진리와 영감 때문에  없어졌으니까 그 공장은 진리와 영감의 것이 됐기 때문에 허가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공장은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자기의 처소가 됐습니다.

 또 자기의 가진 것을 영감과 진리대로도 쓸 수 있고 이 불의와 불법으로도 쓸  수 있고 두 길이 있을 때에 진리와 영감대로 그것을 사용을 했으면 그것도 또  하늘의 것으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또 자기가 온갖 죄를 지어 가지고 그것을 지위나 권세나 재물이나 마련한 사람,  공부도 온갖 죄를 지어 가지고 공부 마련한 사람, 계를 해 가지고, 계를 해서  다른 사람들은 다 망치고 자살하느니 어쩌니 하는 남의 눈에 눈물 나도록 그렇게  망쳐 가지고 그 재물 가지고 자기는 자식 공부를 시켜 놓은 그런 것은 그것이 다  하나님 앞에 저주를 입은 그런 소유를 가졌지마는,  자기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재물을 모았고 계명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공부를 했고 이렇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일차적으로 하늘의 것을 모으는 데에서 덧입었습니다. 모으는 데  덧입었으니까 또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면 하늘의 것으로 두 번 입습니다.

 또 진리와 영감 때문에 그것이 뺏겼든지 없어졌다고 하면, 쓰지 않고 뺏겨서  없어지고 했다면 그것이 또 하늘의 처소로 바꾸어졌습니다. 왜? 그것은 진리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습니다.

 만일 진리와 영감을 내놓으면 그것 가질 수 있는데 진리와 영감 때문에 그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없어진 그것과 진리와는 하나가 됐습니다. 또 진리와  영감대로 해서 고것이 왔기 때문에 올 때에 진리와 영감과 하나돼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건 진리와 영감과 하나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을 보거든 무궁세계에 이와 같이  좋은 것을 생각해서 무궁세계에 좋은 것을 마련하고 이 세상에 자기가 싫어하는  그런 비참한 것을 보거든 무궁세계에서 그와같이 비참할 것을 깨달아서 그것을  지금 벗어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무너질 장막집과 하늘의  처소 요것을 확실히 믿으면 그 사람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요것을 확실히 믿으면 믿는 증거가 있는데 믿는 증거가 뭐이냐? 믿는 증거는  요걸 확실히 믿게 되면 자기에게 탄식과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고자 간절한  사모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 땅의 것을 자꾸 갖추어 가지려 하는 것 여기에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늘에서 오는 이 처소를 덧입을까?  내게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늘나라에 옮겨지고 하늘나라의 것이 되어지도록  영감과 진라화, 내 마음이 영감화 진리화, 내 몸의 모든 힘이 영감화 진리화, 내  모든 행동이 영감화 진리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영감화 진리화, 내 모든  소유가 올 때도 영감화 진리화, 갈 때도 영감화 진리화 이렇게 되어지려는  이것이 자기 마음에 안 믿는 사람들이 땅의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간절히  사모하는 것 이것 모양으로 하늘의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간절한 사모가  자기에게 있나 없나 하는 이것이 첫째 표현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대개 보면 정치가로 늙은 사람은 꼴막꼴막 병들어서 지금 숨을  모둘 때도 '아무 이 정치가 어째 되고 누가 어찌 되고 어찌 되고' 그만 정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고 정치에 대해서 희망이 있다 하면 벌벌 떨면서도 기운이  납니다. 기분이 납니다.

 일생동안 돈벌이 하다가 죽는 사람은 죽을 때라도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그래 말하면 돈벌이 할 것이 보여지면 누웠다가도 눈이  버뜩 뜨이면서 '그거는 나도 한 번 좀 자본 좀 투자해 볼까?' 이렇게 땅의 것에  사모되고 이런 것 모양으로 무너질 장막집과 하늘에 있는 처소를 자기가 확실히  믿으면 자다가도 깨도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고자 하는 이 간절한 사모와 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한 탄식,  탄식과 간절한 사모는 안된 일에 대해서 탄식, 못할 걸 생각하니 탄식, 탄식이  있는 것만치 소원이 강해지고 둘은 일면은 탄식이요 일면은 간절한 사모입니다.

이것이 있는 것이 이 두 집을 말씀한 이것을 믿는 증거입니다. 그게 없으면  가짜요.

 아무리 성경이 이렇게 말해 왔지마는 생각은 늘 땅에 있는 장막집, 땅에 있는  장막집, 좀더 나은 처소, 좀더 나은 형편, 좀더 나은 지위, 좀더 넉넉한 재물,  좀더 편리한 것,  미국 나라 이십 세기의 문화는 대단히 좋은 것 같지마는 무너질 장막집을 요것  보여 주며, 마귀란 놈이 요것 보여 주니까 '아이구, 그것 편리하다. 그것  가졌으면 좋겠다.' 또 요것 마귀란 놈이 보여 주니까 '아, 요것 좋다.

편리하다.'  오늘 부엌을 소제하다 보니까 우리 큰딸이 사다 준 것,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것 보니까 거기에 뭐 소고기도 구워 먹고 빵도 찌고 하는데 그것 아마 그때  내가 말 듣기를 뭐 상당히 돈을 많이 줬어요. 많이 줬는데 물구덩이에다 처박아  왔는데 요걸 내놨다가 내가 저녁 때 말하기를 '야, 그것 박스가 지금 물에  젖었으니까 말려 가지고 그래 넣어 놔라. 한번도 안 쓴 것이니까 그걸 어데  몇닢이라도 주거든 팔자,'  이 편리한 것만치 그것 마련하려 하니까 정력이 그만치 들지, 이래 놓으니까  문화인들은, 그래 사나 저래 사나 마지막에는 송장밖에는 안 되는 것인데  어쩌든지 요 처소 조 처소 요것 마련하려 하니라 마귀가 요것 보이니 요것  편리하다, 조것 보이니 조것 편리하 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만 정신이 뜨여져서,  미국 사람들 말 들으니까 그 사람들은 하루 여덟 시간 일해 가지고는 아이  하나밖에 못 키운 대요. 열두 시간 일을 하면 아이 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러면 돈 다 뭐 하노?' 전부 월부로, 월부로 이래 사 가지고 막 구비하게 해  가지고 나중에 그것 이제 월부가 다 갚자 그 물건은 또 못 쓰게 되니까 또 새로  거석하고, 차도 집도 전부 월부라. 이래 가지고 어쩌든지 하나 편리하려 하니까  그만치 제가 값을 내야 되고 두 가지 하면 그만치 값을 내야 되니,  땅에 이십세기의 문화를 자꾸 연구해 가지고 저거 편리한, 문화는 자기네들의  땅에 있는 무너질 처소 이 장막집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 모양으로 성령의  사람들은 이 영감과 진리를 연구해 가지고 하늘의 처소를 자꾸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이 사실을 믿는지 안 믿는지 나에게 탄식과 간절한 이 사모가 있는지,  그 입고자 간절한 사모가 있는지? 또 그다음에 보니까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탄식과 간절한 사모가 된다 했습니다. 자꾸 살아갈수록 이 이 마음이 더 눌리고  걱정이 더 되니까, 과거에는 한 시간 생각했으면 지금은 두 시간 생각하고 세  시간 생각하고, 과거에는 낮에만 생각하면 이제 밤에 꿈도 생각하고 자꾸 마음이  그리 눌려 가지고 되는 그것이 이 무너질 장막집과 하늘의 처소를 믿는 증거라  그말이오.

 셋째 증거는 뭐이냐? 이제는 '아이구, 예수믿으면, 예수믿으면 이 사업이 안  된다' 이러니까 겁을 냈는데 '내가 죄지어 하는 사업보다도 예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영감 때문에 안 되는 게 더 좋고 또 영감과 진리 때문에 되는 것도  좋고, 영감과 진리 때문에 쓰는 것도 좋고 영감과 진리 때문에 오는 것도 좋고,  영감과 진리 때문에 사는 것도 좋고 영감과 진리 때문에 죽는 것도 좋고,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 때문에 있고 없고 살고 죽고 이것만 소원이 돼 놓으니까  영감을 거슬려서 무엇을 하는 이런 것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영감  거슬리면 억만금 준다' 해도 그까짓 것 눈에 보이지도 안하고, '영감을 거슬리면  너 죽음에서 살려 준다' 해도 그것 살려 주는 것 하나도 좋지도 않고, '네가  영감대로 진리대로 하면 불에 태워 죽인다' 하니까 그것도 좋고, '불에 타면  당장에 단번 성공이 되는구나.'  이래 놓으니까 세상적 비겁이나 공포나 염려는 하나도 없고 세상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하늘나라에 대해서만 근심 걱정이 채이게 됩니다. 이것이 이 믿는  최종적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이 지식을 언제든지 가져야 됩니다. '분주하게 날뛴다. 저  사람 무너질 장막집 만든다고 야단이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높은  사람입니다. '무너질 장막집 크게 지어 왔다. 안타깝다. 그것을 영원한 처소로  변화를 시켜라. 바꾸어라.'  이렇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 사람의 지식이나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예술이나 도덕이나 사람이나 모든 만물이나 동산 부동산 뭐이든지 그것이 무너질  장막집이라, 신 불신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장막집이라 이 장막집은 하늘에서  오는 집을 덧입혀야, 영감의 것이 되고 진리의 것이 되면 영원한 것이 되지마는  영감과 진리와 떨어지면 이건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의 것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될 수 있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의 것 되는 것이 자기 수입이오. 아무리 큰 것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영감과 진리 떠나서 했으면 사망을 이룬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우리가 이 시간에,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무너질 장막집인가? 내가  존대하는 건 무너질 장막집인가?' 결혼 상대도 하면 전부 보니까 무너질 장막집  그 가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 어떤 사람은 또 그것 보는 것 같지마는 무너질  장막집 그걸 봐서 그 사람의 그 신앙 의지가 어떤지 하나님의 취급이 어떤지  그것도 보는 사람 있기는 있지마는 우리는 무너질 장막집과 영원한 처소를  똑똑히 구별해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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