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투-전법-무기

 

1987. 10. 12. 새벽 (월)

 

본문: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것은 비유의 말씀인데 아마 이 세상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하면은, 자기가 그 밭을 살 수만 있다고 하면은 사지 안 살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밭에 자기의 재산의 몇 억만 배도 더 되는 보화가 그 밭에 있는데 그것 발견했으면은 밭을 제것 만들어야 될 터이니까 자기 있는 것 다 팔아 가지고 살 수만 있다면 그 밭을 사지 안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는 그렇츰 크지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비유보다 실상은 그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뭐, 비교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수억만 배도 더 됩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생각을 가져서 자기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며 완패하며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어누리하고 믿지 않는다는 이것을 발견을 해야 되지 자꾸 믿는다고만 생각하고 위로만 받으면 헛일입니다.

실은 자기 믿음이 없다는 걸 발견할 때 그때에 믿는 사람이지 믿는 줄 알 때는 벌써 삐뚤어져서 그 속에는 얼마든지 다 덮어지고 가리워져서 믿음은 제가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믿음을 가지려고 애를 쓸 때에 믿음이 있는 것이고, 또 자기는 죄인인 걸 깨닫고 자꾸 이 죄인이니 이 죄인이 회개를 해서 의인되려고 애를 쓰고 죄인인 것을 벗지 못해서 애쓸 그때가 의인입니다.

어제도 많이 오전 오후에 말씀했기 때문에 더 말할 것 없고, 아무래도 이 밭은 내가 놓지 안하고 사야 되겠다 하는 요것을 먼저 결심을 하십시다. 이 밭은 내가 기어코라도 도로 빼앗아서 내것을 삼겠다, 이 밭은 내가 빼앗기지 않겠다, 이 밭은 내것을 삼겠다 하는 이 마음을 강경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밭은 무엇을 가리켜서 비유하신 것인가? 이 밭은 자기 현실, 자기 세상, 자기 물질계, 자기 우주 이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밭을 사는 것은 자기 현실을 자기 것 만든 것이요, 자기 세상을 자기 것 만든 것이요, 자기 물질계 우주를 자기 것 만든 것입니다.

자기 것 만드는 것은 그것을 그 넓은 것을 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 많은데 자기 현실만 자기 것을 만들면, 그 전투기 때문에, 전투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는 우주와 물질계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그 왕되는 이 세 놈하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세 놈하고 싸워서 이기는 것은, 그놈이 주인이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독 안에 들어서 그놈을 이겼든지 집 안에 들어서 그놈을 이겼든지 어쨌든지 그 세 놈만 이겼으면 그놈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탈환한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거 이해가 안 되면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지 안하면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성경에 그렇게 말씀했으니 믿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조브라운 생각 가지고 이해하려고 하면은 억억만분의 일도 구경도 못 하고 맙니다.

이 세 놈이 왕이 돼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 놈은, 죄 사망 마귀 이 세 놈이 주인공이 돼서 우주에 대한 주인공도 세 놈이요, 이 물질계 전체 주인공도 세 놈이요, 온 세상의 주인공도 세 놈이요, 내 현실에 주인공도 세 놈이요, 이런데 나하고 그놈하고 전쟁 붙은 것은 현실에서 붙었는데 현실에서 그 세 놈을 격퇴해서 멸했으면 그놈이 가진 것은 다 차지합니까 안 합니까? 차지가 된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그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을 뺏기지 안하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지금 뺏기지 안하려고 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나를 대속해서 세상을 이겨 주셨기 때문에, 이겨 주셨기 때문에 실상은 세상은 내것이 되어 있는데 내가 지금 그 패전병 그놈하고 지금 싸우는데 내가 지면 도로 뺏겨 버립니다. 또 그놈의 것이 되어 있는 그것을 지금 외부적으로는 내가 도로 뺏들어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놈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을 내가 뺏들어 가진다 이 말과 내것이 되어 있는 것을 내가 그놈에게 뺏기지 않는다 하는 이 말과 정반대 말 아닙니까? 정반대 말인데 그것이 이해가 돼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셔서 세상을 내 대신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에 근거하면 예수님이 내게 뺏들어서 주셨습니다. 주셨는데 나만 뺏기지 안하면 됩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을 두고 자기가 생각할 때에는 세상은 그놈의 것이라.

그놈의 것이니까 지금 또 뺏들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그놈의 것이라 할 수도 있고 내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놈이 예수님에게는 뺏겼지마는 예수님이 빼앗은 이것을 그놈에게 우선 보관을 시켜 가지고서 나를 시험하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그것을 빼앗아서 취해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투한 이 전투를 당신이 이기셨지마는 나에게 이 전투를 시키기 때문에 내 몫은 내가 지금 빼앗으면 완전히 내것이 되고 예수님이 주신 것이지마는 내것을 완전히 빼앗아서 내가 가지지 안하면 내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요렇게도 말하고 조렇게도 말하는 것은 그것은 완전히 구비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요래 말할 때도 있고 조래 말할 때도 있고 그렇게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 현실을 생각할 때에 요 현실은 요것만 아니고 우주 이 전체가 다 연결돼 있다. 요 현실만 이기면 우주와 영계는 다 내것이 된다. 그러면 현실을 지금 오늘은 이겼으면 내것이 됐습니다. 다음 시간이 없으면 됩니다. 또 다음 시간 있으면 다음 시간에 또 전투해야 되겠습니다. 이 전투를 계속해서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전투해서 승리하면 그놈은 내게 패전자가 되고 나는 승리자가 될 때에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시간 전투해서 이겼지마는 그 다음 시간에 패전하면은 또 헛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놈은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이래서 천로역정에 보면 그놈이 우리를 따라오는데, 천국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따라오는데 어데까지 따라오느냐? 천국 문을 열고 오른발을 들여놔 놓으면 아직까지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왼발 아직 안 들여놨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놈한테 혹 이길 수가 있지 않느냐 하고 달려드는데 왼발을 다 들여놔도 달려듭니다. 문을 착 닫고 이제 나야 ‘아이고, 인제 헛일했다.’ 하고서 그놈이 패전하고 돌아간다 이렇게 천로역정에 아주 믿음 있는 사람이 옥중에서 명상해 기록할 때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언제든지 잃지 말 것은 이 현실은, 현실에 얻고 뺏기는, 현실을 득실하는 거, 얻을 득자 잃을 실자, 현실을 얻고 빼앗기는 것은 곧 온 세상을 얻고 빼앗기는 것이요 물질계 우주를 얻고 빼앗기는 것이라.

왜? 그것은 나는 물질계 두고는 싸우지도 안했지마는 이 물질계와 우주와 온 세상의 주인공이 누군고 하니 죄 사망 마귀 그 세 놈이 주인공이 돼 가지고서 왕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그놈만 죽여버리면 된다 그거요.

전쟁을 해 가지고서 상대방의 전쟁을 뭐 들에서 했든지 산에서 했든지, 정권자 그 군대를 이겼으면 그 나라는 다 자기 것입니다. 완전히 그 나라에 있는 그 장병들을 다 완전히 격파했으면 전체는 자기 것이 되는 것이 그것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는 이치대로도 맞은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내가 싸우고 있는 현실에는 그 배경에 이 세 놈의 소유가 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우주와 물질계 온 세상 전부가 다 거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이 전투에서 이놈만 이기면 그것은 내것이 된다. 또 그 다음 현실을 살고 있으면 그 다음 현실에 다시 지면 헛일이라.

그러면 끝끝내, 졌으면 다시 일어나서 또 전투하고 이래서 어쨌든지 이기고 이겨서 그 세 놈을 이기기만 이기면 그 사람은 그의 모든 소유는 자기가 탈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탈환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내가 다시 빼앗기지 아니하는 것이라 그렇게도 할 수가 있습니다. 탈환한다는 것은 그가 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게 전쟁 붙은 그것을 바로 말하고 내가 뺏기지 않는다는 것은 벌써 예수님의 구속으로 자기 것이 됐다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달려들 때에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우리가 이 현실을 내가 내 현실을 만들어야 되는데 주님이 내게 주신 그것을 내가 뺏기지 안하고 내것을 만들든지, 마귀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을 내가 빼앗아서 내것을 만들든지, 어쨌든지 현실을 내것을 만들기는 만들어야만 하겠는데 이 현실을 내것 만드려고 하면 우리는 뭣을 다해야 되겠느냐? 세 가지를 다해야 돼요.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이랬기 때문에 이것을 다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다 팔아 가지고 다해서, 이걸 말하자면 전쟁 비용으로, 이 전쟁에는 이 모든 것을 다 투자해 가지고서 전투하지 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전부 다 투자해 가지고서 전투하게 되면 이 투자해 가지고 전투할 때에 누구하고 싸울라고 이와같이 지금 이 모든 것을 투자합니까? 몇이하고 싸울라고 투자합니까? 녜, 셋. 죄 사망 마귀하고 싸울라고, 싸워서 그놈을 격멸할라고 투자합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와 죄와 사망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그것을 멸했습니다. 멸하셨는데 여러 차례 그것으로 더불어 싸웠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도 싸웠고 예수님이 탄생할 때도 싸웠고 일생 동안 싸웠는데 마지막 최종으로 결정난 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때에 완전히 싸워서 격멸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고 이 세 놈은 정복을 당해서 예수님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전법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가 마귀를 향해서 내밀 그 창과 화살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가지고서 마귀를 싸워야 될 것인가? 마귀는 나에게 무엇을 가지고 지금 싸우는가? 마귀가 나를 격멸하려고 달라드는 그 무기는 뭐인가? 나는 또 마귀를 향해서 쓰는 무기가 뭐인가? 그 무기를 우리가 똑똑히 알고 바로 써야 되겠습니다.

마귀가 나를 향하여 쓰는 무기는 죄입니다. 그가, 죄가 나를 죄짓게 할 때에 내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죄가 나를 죄짓게 하려고 달려들 때에 내가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됩니다. 또 사망이 나한테 달려들 때 그놈이 어떻게 달려드는고 하니 나를 범죄케 할려고 사망이 달려듭니다. 그럴 때에 범죄하면 사망의 종이 됩니다. 또 마귀는 나에게 달려들 때에 뭘로 달려드느냐 하면 나를 범죄케 할려고 달려듭니다. 범죄케 할려고 달려들 때에 내가 범죄하면은 마귀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이놈은 나를 범죄케 하려고 할 때에 내가 범죄하면 그에게 패전되는 것이요 그의 종이 됩니다.

이래서,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것인데 온갖 삐뚤어진 것이 그것이 합해 가지고서 나를 자꾸 삐뚤어지게 하려고 만듭니다. 뭣을 일하는 데도 한목 많이 삐뚤어지게 못 하니까 조금 삐뚤어지게 해 가지고 차차 차차 많이 삐뚤어지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면 작게 삐뚤어진 것은 작은 죄요, 많이 삐뚤어진 거는 많은 죄요, 크게 삐뚤어진 거는 큰 죄입니다. 죄라는 건 삐뚤어진 걸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삐뚤어지게 하려고 할 때에 온갖 삐뚤어진 게 와 가지고서, 삐뚤어진 지식들이 와 가지고, 삐뚤어진 운동들이 와 가지고, 삐뚤어진 사상들이 와 가지고, 삐뚤어진 인간들이 와 가지고서, 삐뚤어진 재미를 가지고 와 가지고서, 삐뚤어진 모든 돈벌이를 가져와 가지고, 삐뚤어진 모든 이런 이치를 가지고 와서, 삐뚤어진 재판을, 삐뚤어진 말을, 삐뚤어진 운동을, 뭐 모든 삐뚤어진 걸 가지고 와 가지고서 나를 삐뚤어지게 하려고 하는 그것은 죄가 들어서 나를 저의 종을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삐뚤어지게 할라 할 때에 내가 삐뚤어지지 않는 그것이 죄로 더불어 싸워서 내가 이긴 것이 된 것입니다. 이긴 것이.

또, 사망이 와 가지고서 싸울 때는 어떻게 싸우는가? 사망 이놈이 나를 ‘인간이 죽는다’ 죽음을 두렵게 하고, 죽음을 슬프게 하고, 죽음을 낙망케 하고, 이 죽음 이놈이 들어서 온갖 위협과 온갖 협박과 온갖 공포를 줘 가지고서 삐뚤어진 일을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죽음 이것도 지금 승전하는, 전투하는 무기는 죄입니다. 아무리 죽음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내가 삐뚤어지지만 안하면, 내 생각이나, 내 지식이나, 내 마음이나, 내 계획이나, 내 소원이나, 내 성품이나, 내 행동이나 삐뚤어지지만 안하면 나에게 달려들었던 사망 그놈은 패전합니다.

이 싸움을 붙어 가지고서 그놈은 죄를 가지고서, 나를 죄라는 무기를 가지고 나를 죄인 만드려고 애를 쓰고, 그 애를 쓸 때에 내가 죄를 짓지만 안하면 그놈을 이기는 것이 됩니다.

또, 마귀가 와 가지고서 온갖 저의 군대를 다 사용해서, 마귀의 군대는 어떤 것이 마귀의 군대인고 하니 성령의 군대 아닌 것은 전부 마귀 군대입니다. 성령의 군대 아닌 것은 마귀 군대입니다. 목사라도 성령의 군병이 안 돼 가지고 있을 때는 내나 마귀 군대가 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목사고 뭐 장로고 집사고 권사고 전부 평신도고 학생이고 다 그러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고 모두.

그게 다 마귀의 군대요 또 이 물질도 마귀의 물질계이기 때문에 물질 가지고도 우리를 빼뚤어지게 만드려고 합니다. 마귀는 그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이 마귀 배암이라는 놈이 하와에게 와서 요리 조리 꾀워 가지고서 하나님 보던 눈을 돌려서 선악과를 보게 해 가지고서 선악과를 보니까 마구 거기 욕심이 생겨져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치 탐스럽기도 하고 해 가지고서 그만 그리 넘어가 가지고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죄가 와 가지고 나를 죄짓게 만들어도 죄짓지 안하고, 사망이 와 가지고 나를 죄짓게 해도 죄짓지 안하고, 또 마귀가 와 가지고 나를 범죄케 해도 범죄하지 안하고 이것이 우리가 전쟁을 이긴 승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는데 나는 뭘 가지고 대항해야 이것을 이길 수가 있는가? ‘내가 죄를 안 짓겠다, 사망 네놈이 암만 오고 죄 네놈이 암만 오고 마귀 네놈이 암만 와서 나를 범죄케 해도 나는 범죄 안 하겠다.’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방패도 가져 가지고 그것을 막아도 내야 되고 또 그걸 한쪽은 막아내고 한쪽은 그놈을 찔러서 죽여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면 우리 무기는 뭐인가? 우리의 무기는 몇 가지입니까? 우리의 무기는 몇 가지, 손가락으로? 세 가지. 우리의 무기는 세 가지. 세 가지는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인데 최후 승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요 진리와 영감은 죄를 이기는 것이냐?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진리와 영감은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도록 만드는 것이 진리요 영감입니다.

진리는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진리요 또 영감이라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하면서 자기 양심을 써서 어짜든지 양심을 써 가지고서 성경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애를 쓸 때에 바로 해집니다. 바로 해도 영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할 때에 그때에 우리 마음을 자기 마음을 살펴보면 자기 마음이 천 쪼가리 만 쪼가리도 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말씀대로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어만 데 가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죄악이 있으면은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고서 주님의 말씀대로 행동해도 자기 속에 수지인 진정의 마음은 지금 욕심 있는 데 어만 데 가 있다 그 말이오. 어만 데 가 있어.

자기가 돈을 탐해서, 네가 제일 사랑하기를 진리를 제일 사랑하느냐, 돈을 제일 사랑하느냐, 네 애인을 제일 사랑하느냐, 네 행락을 제일 사랑하느냐? 노름하는 사람은 암만 행동을 한다 해도 속 깊은 마음은 지금 노름하는 데 가 있다 그거요.

아무리 그게 본남편한테 ‘예예’ 하고서 이렇게 하고 뭐 오만 일을 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지금 간부한테 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말씀대로 하려고 할 때에 양심을 쓴다는 것은 자기가 참 진정코 말씀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양심을 썼다 이라는 것이고, 그래도 영감에는 안 갑니다.

양심을 써 가지고서 영감에 나아가는 것은 어떤 게 영감에 나아가는 거냐? 자기 마음이 그 진리대로 살려고 하는 데에 집중이 돼야 됩니다. 그 마음이 흩어진 것이 없고 모든 마음이 똘똘 뭉쳐 가지고 그리 집중될 때에 집합이 될 때에, 집중이 될 때에 그때에 영감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래 가지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생각할 때에, 이 순서를 밟아 가지고 진리로 행하고 영감으로 행하고, 영감으로 행하는 것은 어떤 때에 영감으로 행함이 됩니까? ○○○씨? 그래 가지고 몰라. 또 여기 여기 이분? 자기 마음이 거게 단일로 집중이 될 때에 그때에 이제 영감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영감이 인정하고 함께 하요.

자기 마음이, 우리 마음은 굉장히 성질도 있고, 뜻도 있고, 욕심도 있고, 감정도 있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씀대로 산다고 이 주님의 피공로대로 산다고 입술을 자꾸 하면서도 그 속에 미운 사람 있으면 미운 사람 고거는 빼 버리지 못하고, 시기는 빼 버리지 못하고, 욕심은 빼 버리지 못하고, 감정은 빼 버리지 못하고, 그러니까 그것은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지 안한 것입니다.

집중되지 안할 때는 성령이 인정을 안 해요. 집중이 됐을 때 비로소 성령이 인정을 해 가지고서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생각해야 돼. 예수님의 구속을.

이 집중된 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자존하시면서 전지 전능의 완전의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목적을 정하셨다. 그분이 당신과 꼭 같은 당신의 아들을 만드려고 목적을 정하셨다. 이 목적에 전부를 다 투자하려고 하셨다.

그러면 이 목적이 얼마나 큰가?’ 그때에 자기가 정신이 집중되고 마음이 집중돼 가지고서 모든 미혹시키는 거, 뭐 마음이 집중되는 것이 왜 필요하냐 하면은 마음을 마귀란 놈이 이 마음을 이쪽을 거머쥐고 저쪽을 거머쥐고 잡아 당기니까 제까짓 놈이 아무리 그 집중할래야 집중을 못 한다 말이오. 집중 못 할 때는 안 돼.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꾸 정리해서 차차로 되어 나가는 것이지, 그냥 도둑질하는 거 모양으로 제가 마음에 당장에 예수님의 피공로를 믿고 싶으면 믿고 의지하고 싶으면 의지하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래서, 진리는 성령을 영접하게 만들고, 성령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를 위한 이 지극히 큰 공로의 구원이라는 것을 자기에게 알게 합니다.

이래서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에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목적을 정하셨다는 이것을 생각할 때에 성신의 감동이 오면 이만하면은 이뭐 아무것도 없어. 이만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당신과 꼭 같은 아들 만드려고 있는 전부를 다 투자하기로 작정하신 것이 당신의 목적이니까 이것도 깨달아도 무한해.

뭐 거게서도 죽고 살고 온 생명을 다 바치고도 남아. 성신의 감화가 없을 때는 아무것도 없어.

이래서, 진리는 영감을 영접하게 되고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알고 깨닫고 믿게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깨닫고 믿을 때에, 이 공로는 나를 위해 한 것을 믿을 때에 죄 사망 마귀 그것은 박살이 나 버리고 도망칩니다. 박살이 납니다. 박살이 나.

이럴 때에 뭐 죄가 자기에게는 천리 만리 멀어져. 죄에다 거기다가, 죄에다 억만금을 들이붙어 놔도 그까짓 거 다 똥과 같이 여겨버려. 이 큰 것을 잡았는데 그까짓 무슨 소용 있겠어? 또 사망이 와 가지고서 아무리 위협한다 해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요, 전지 전능자가 아버지시요, 주권자가 아버지시요 이런데 사망 제까짓 게 암만 위협해 봤자 사망에 절대 주권 권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와 봤자 코웃음 웃고 비웃지 ‘네 맘대로 해 봐’ 비웃지 거게 대해서 아무런 요동치 안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무기는 뭐이냐? 우리의 무기는 셋인데, 셋인데 처음에 진리는 진리 무기 이거 가지고서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지 못해요. 진리 무기는 뭐 어데 하는 것인고 하니 영감을 나에게 갖추어 주는 영감 준비라. 영감을 찾아가는 돌다리 한가지라. 영감을 찾아가는 다리 한가지이기 때문에 영감을 받아요.

영감 받으면 이제 영감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어떻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줘.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금 한 근쯤 하다 한 근만치 보배다, 열 근만치 보배다, 어떤 사람은 백 근만치 보배다, 어떤 이는 천천 금은보다 보배다, 천천 금은이 아니라 우주와 영계에 하나님이 지으신 걸 똘똘 다 뭉쳐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과 비교 못 한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을 가졌으니까 그 모든 건 다 내것이라.

모든 게 내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독침이 와도, 독침 이것도 내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이 주권으로 하시면서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느냐 의지하느냐 바라보느냐 당신의 능력을 힘입기를 얼마나 힘입느냐? 공포와 비겁에 떨어지면 힘입는 게 아니고 믿는 게 아니라. 의지하는 게 아니라. 가짜지.

이러니까 그거 하기 위해서 하는 줄 알기 때문에 독침 그 밑에는 주님의 사랑의 손이 지금 창틈으로 내다보면서 지금 하고 있어.

이러니까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손양원 목사님 같은 사람은 모든 죽음은 웃음으로 대했다 이래. 손양원 목사님은 모든 죽음은 웃음으로 대했어. 왜 웃음으로 대해? 네까짓 게 죽일 수 없다고서 조롱하고 비웃는 것으로 웃음으로 대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주님이 창틈 속에서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기쁘고 즐겁고 주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참 생명을 탁월한, 생명을 초월한 이 밀접한 신인 교제의 영교를, 지금 신령한 교제를 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주여,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라는 거라.

주기철 목사님도 송판 위에다가 못을 총총 박아 놓고 그걸 걸어가라 할 때에 이 걸어가면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이거 찬송을 부르면서 기쁨으로 걸어갔어.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이나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써 강함을 가지고 대항했고,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을 가지고 대항했어. 손양원 목사님은 전투한 걸 보면은 항상 웃음으로 했고 하나도 조급하지 안했고 그 한 것은 아주 전투에 차이가 많습니다. 차이가 많아. 이런데 그래도 손양원 목사님은 지금 그걸 이어서 말하는 사람이 없어. 왜? 말하는 사람이 적어. 주기철 목사님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손양원 목사님은 옥에 갇혔을 때에 평양에 같이 갇히지 안했고 그분은 단독 옥에 저 전라도 어데 옥에 갇히고 평양의 옥에 같이 갇혀 있지를 안했어. 거기 같이 갇혀 있는 사람들은 같이 그래도 좀 연락도 하고 더러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또 그러면 한번 소리도 한번 듣고 이랬지마는 손양원 목사는 고독으로 그와같이 했던 것입니다.

왜 손양원 목사님은? 손양원 목사님은 그는 순수한 기독교로써 전투했고 주기철 목사님에게는 삼일 운동도 있었고 또 그때 정치성을 띄어 가지고 운동했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 광채가 있고 좀 찬란하고 이러지마는 손양원 목사님의 전투한 거는 아무 그런 게 없어.

이런 말은 나가면 굉장할 거지마는 양심을 쓰면 알 수가 있어. 이래서 제가 그때 말할 때에 누구를 먼저 말할까 하다가 손양원 목사님 먼저 말했다고 언제 내가 설교한 적이 있어. 설교록이 나가면은 거게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아는 사람은 알 것이고 주먹을 내받는 사람은 내받을 것이고 그럴 것이라.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전투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사람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 있고 하나님의 권세를 믿는 사람 있고, 믿어도 믿는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 제일 으뜸이요 그것이 제일 아름답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이 전투는 기어코라도 이겨야 되지 져서는 안 되겠는데 우리의 전투의 대상은 누군가? 세 놈이라. 세 놈 이놈은 우주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요, 물질계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요,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놈이요, 내 현실을 차지하고 있는 놈이기 때문에 이놈을 죽여 버리면은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점령했어. 죽이고 끝났으면 됐어.

끝났으면 됐는데 또 살아 있으면 또 전투는 미결이라. 또 아직까지 미결되는, 또 싸워야 돼. 싸우다가 이기는 것으로서 끝나 버렸으면, 끝났으면 전투는 완전히 끝나.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살아 계시면 전투가 아직까지 미결로 남아 있어요 완전 승리가 됐어요? 미결이라, 미결. 요걸 알아야 돼요.

이런데 어떤 사람은 ‘야, 그러면 문제 없다. 이제 이래 놀고 이러다가 마지막에 그때 가서 세상 뜰 때 그때만 내가 승리하면 되겠다.’ 요런 깍쟁이 같은 생각 가지겠는데 어리석어. 언제 생명이 떠날지 알아야지요? 그때 승리하면 되지.

되지마는 언제가 떠날지 모르고 또 지금 평소에 그놈한테 지고 양보하는 것은 내나 그놈 부하가 돼 가지고 그놈하고 미련이 있어서 단짝으로 미련이 있어 그런데 마지막에 그놈하고 미련을 끊을 수가 있습니까? 못 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을 이겨야, 현실을 이겨야 영원을 승리할 수 있고 현실을 이겨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은, 자동차가 만 리를 걸어가도 요만한 수레바퀴 가지고 뱅뱅뱅뱅 해서 걸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백 년을 살아도 현실이라는 이 수레바퀴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져 버렸으면 다 헛일이야.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이겨야, 현실을 이겨야 백 년도 이길 수 있고 칠십 년도 이길 수 있고 팔십 년도 이길 수 있지 현실을 지고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현실에 안 이기고 요다음에 이기겠다는 그것은 그게 벌써 제가 하나님이라 그 말이오. 제가 하나님이라 그 말이오.

제게는 주권이 없는 것이 제 맘대로 할 수 있고, 회개도 제 맘대로 할 수 있고, 승패도 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하면 제가 하나님같은 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악마의 대장이라. 알겠습니까? 그런고로 이 전쟁을 하는 데에 우리의 이 전쟁에 무기는 뭐입니까? 우리의 무기는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우리의 무기는 세 가지입니다. 또 악마의 마귀는, 악마의 마귀의 대장은 몇 놈입니까? 세 놈. 그놈의 무기는 뭐입니까? 죄.

죄라. 죄만 짓기만 하면 우리는 패전해. 죄로 찌를 때에 죄에게 찔려버리면 그만이라. 죄가 암만 찌른다 해도 죄에 상하지 안하고 죄를 다 그걸 박멸을 해 버리면, 죄를 박멸하면은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를 어짜든지 전화로도 하고 해서, 지금 모든 설교를 들으면 아주 대목장 설교인데, 이거 아주 추수기의 설교인데 이때에 안 듣고 뭐 어데서 이거, 여게 새벽기도 나올라 하니까 새벽기도 못 나가도 돈은 벌어야 되겠다, 새벽기도 못 나가도 직장은 가져야 되겠다. 우상이 가득 찼는데 제가 새벽기도 안 나오고 제 장담 가지고 내가 안 가도 다 안다 하는 것 가지고 될까? 안 됩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실은 서부교회 교인들이 많아도 여기 새벽기도 나오는 데도 또 추려질 터이니까 그래 가지고 안심하는 교인들을 어서 올바른 교인을 만들어야 되지 만들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만들기 전에는 헛일이라.

그러고 말씀을 들을 때에 뭐 ○○○씨 오늘 졸면서 덜렁덜렁 들으니까 대답을 물으니까 몰랐지. 어제 저 이름이 뭐더라? 나는 이름 몰라요. 우리 ○장로님 어머니, 어머니 어제 내가 잘 때 한 마디 했는데 그래도 오늘 아침에 나온 것 보니까 삐꾸지 안한 모양이로구만. 좀 거석하면 삐꿔버리요. 그 삐꾸는 그런 거는 말해 주지 못해. 못 하고 그건 냅둬야 되지. 자거나 말거나 죽거나 말거나 냅둬야 되지 그거 말 못해. 말 못 하는데 그게 얼마나 영광인 줄 알아야 돼요. 영광인 줄 알아야지 천한 줄 알면 안 돼. ‘하, 부끄럽다.’ 여게서 제일 이름 많이 불린 사람이 누구지? 다 기억해요? 옛날이라 모르나? ○○○씨, 누구야? ○○○이 뭘 이름 불렀어, 그까짓 거야 그렇게 많이 부르지도 안했는데. 이름 많이 불리기를 누가 많이 불렸어? ○○○집사야, 알아요. ○○○집사님, 우리 ○○○목사님 그 사모님 ○○○집사님 온 교인이 다 알 거라. 조니까 또 부르고 또 부르고 해서.

그러니까 아예 안된 거는 불러 주지 안해요. 참 아주 좋아야 불러 주지.

지금 곧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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