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두 길

 

1982. 3. 5. 금새

 

본문: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만이 홀로 계신 하나님만이 홀로 계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때에 우리 구원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계시고 영계도 물질계도  없는 그때에 우리 구원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이 시작된 우리 구원이  작정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우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계의 것도  창조하시고 물질계의 것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것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그  사용하시되 아무나 따나 일시 일시의 형편대로 사용하심이 아니고 모든 것을  영원에 이르기까지 다 한번에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예정 하셨습니다. 그  예정하신 그대로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는 데 우리의 구원은 개인의 구원이며 또  전체의 구원입니다. 개인 개인의 구원인데 그 구원이 합하면 한 구원이 되어지는  구원입니다. 한 구원이 되어질 때에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되어지는고 하니 이  자갈 무더기를 갖다 모아놓은 거와 같은 이 사람의 구원이 저 사람의 구원 여러  사람의 구원을 이 자갈 저 자갈 자갈을 모아다가 커다란 자갈 무더기를 모아놓은  거와 같은 그런 한 무더기의 구원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도 이상적입니다.

 그러면 기계의 부속품이 여러 개의 한테다가 조립을 하면 한 기계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여러 사람의 구원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하니 그런 기계를  조립해서 부속품을 조립해서 기계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조립된 구원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표시하기를 한 몸의 여러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는 각각 직분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속한 것도 다르지만은 그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다  서로서로 위하고 사랑하고 돕고 아픈 것도 같이 아파하고 기쁜 것도 같이  기뻐하고 움직일 때도 같이 한 신경으로 한 근육으로 한 피로 한 기맥으로 한  생명으로 이렇게 한 몸에 여러 지체 뭐 수억도 넘은 그 세포 그것이 다 하나되어  사는 것처럼 이렇게 수많은 개인의 구원이 있지마는 이 구원이 합하여 이 몸의  세포 분자처럼 하나가 되어 영생하는 구원이다 그렇게 성경에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고 또 우리의 여려 사람의 구원이 합한 것은  하나님의 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영생을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 나가는가 하나님이 영원 전 우리 구원을 작정하신 그  구원이 이거는 과정에 있어서는 이루는 순서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예정 그대로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라 말은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섭리로 우리 각자들이 예정된 그때에 나게 되고 또  예정된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람 하나님이 사람되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영으로 오셔 가지고 구원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  입니다. 그때는 영으로만 오셔 가지고 구원 역사를 이루시다가 십자가에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영육이 아닙니다.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신 신령한 예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 구원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우리의 영과 같이 영이고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의 몸과 같은  몸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참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의 인성은  영육으로 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가 되신 것은 신성은 온전하신 참  하나님이시오 또 인성은 죄만 없지 우리 꼭 같은 완전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구원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끝에 보면 세상 끝 날까지 택한 자들과 함께 계셔서 우리구원을  이루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예수님께서 신인양성일위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는 것이 필요할 때에는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들은 예수님을 혹 한번 혹 두 번 만나서 필요할 때에는 만나 주시고 그  사람의 노력이 어떠함에 대해서 만나는 것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그에게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것은 그 순서에 따라 만나기도 하시고 그러합니다.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양성일위이신 주님은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나시는  것은 예정이 있었고 필요가 있으면 나타나시되 우리의 심령으로는 볼 수 있는  주님으로 언제든지 나타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믿음으로 보는 사람은 다 보는  것 그 보는 정도가 각각 다른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 몸을 감추지를 원하시지마는  부활 후에는 그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됐기 때문에 보이지게 할 수도 있고  보이지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방금 같이  주님과 동행하다가 보이지 안 했고 문을 닫아 놨는데 가운데 오셔서 가르쳐  주셨고 또 같이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그것인 신령한 몸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시공을  초월한 이런 몸으로 변화된 것이 그 부활한 몸이요 변화된 몸입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부활하면 어떤 몸으로 부활될 건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은 그런 몸으로 우리도 부활을 합니다. 그러면 이 형제를 가진 피조물들에게  보이려면 보이고 보이지 안 하려면 안보이고 천년왕국 시대에는 부활한 성도들이  천년왕국 시대에 그때 번식 인종들과 같이 삽니다. 우리가 부활해 가지고 같이  사니까 그들이 우리들 보는 것과  우리가 그들을 보는 것과 다릅니다. 그들은 우리들 저희와 같은 사람인줄 알고  우리가 그들을 지도할 때에 잘 지도 받고 이래 있다가 마지막에 악령이 무저갱에  갇혔다가 놓이면 그 악령의 감화를 받기 전에는 독사의 구멍에 아이가 손가락을  넣어도 물리지 아니하고 이러다가 그만 악령이 오면은 그 때 사람이나 짐승이나  전부다 마귀화 되어져서 지금 제일 마지막 예수님 재림 때에 모든 것이 악화되는  것처럼 될 때에 악화가 됩니다.

 그때에 악화되지 안한 자가 하나도 없으나 부활한 자들은 악화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거는 벌써 악령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에 악령의 왕이 됐기 때문에  악령과 높은 차원의 존재가 됐기 때문에 악령이 미혹하지 못합니다. 미혹하지  못하나 악령이 그때에 중생 되지 아니 할 때에 부활되지 못한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가지고 감화를 주어서 부활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해하려고 달라 들었다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멸하는 그것이 마지막으로 번식 인종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으로 끝나지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면 뭐 할라고 그런 천년동안이라는 긴 기간을 주는가 그것은  제2훈련기간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구원을 만드는 시기요 예정하신 대로  만들고 연단 받은 시기요 천년 왕국에는 부활한 자들이 천년동안 번식 인종  속에서 무궁 세계에서 가서 그리스도 더불어 왕 노릇 할 만물의 중보자로 살 이  지위와 직책을 감당하는 그 연습을 한 번 하는 것이 천년왕국 시기입니다. 이  연습이 끝나면 연습에 이용될 모든 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때 인종은  다 멸해지고 부활한 성도들은 무궁 세계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제 사장 영원한  선지자 영원한 왕의 실력을 갖춘 그대로 하나님이 보물을 맡기시고 무대를  주셔서 은혜의 중보자로 통치의 중보자로 모든 훈계의 중보자로 훈계 교훈하고  경계하는 것 훈계의 중보자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지 아니하고 예수님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된다  하는 이 성구를 보고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했든지 죽음 없이 홀연히 변화된 그  구원 얻었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미혹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이 박태선 전도관에 미혹을 받은 사람들이나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들은 다 어데서 미혹을 받았느냐 하면은 홀연히  변화한다는 요 성구에서 미혹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죽지 아니하고 예수님 재림 때 부활한다 그 죽음이 너무 두려워서 그런  사람들은 고 미혹으로서 성경이 죽고 난 다음에 부활하는 것 우리 몸도 죽고 난  다음에 부활하고 우리 마음의 기능도 죽어야 부활하고 우리 몸의 기능도 죽어야  부활합니다. 이 사망에 달려있던 것이 사망에서 뚝 떨어지는 그 동시에 생명이 떡  들어붙는 것 떡 들어붙는 이것으로 사는 건데 죽기를 두려워하는 그 사람은 모든  구원 이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죽음을 통해서 영생을 이루는 것이 이것이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고  우리 구원이 작정된 때는 하나님 홀로 계실 때에 천상천하 아무 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의 하나님이 홀로 작정하셨고 작정하신 이 구원을 하나님이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예정을 하셨고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창조된 것을 보존 하셨다가 순서적으로 이것저것을 내  써서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도 백년 전에 왔다가 구원 이루고 간 사람도 있고 또 지금  칠십 년 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오십 년에  십 년 전에 지금 열 살 먹는 택자는 십 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순서대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제 어제도 낳았고 아래도 낳았고 지금 택한 자들이 난 그것을  예정 그 순서대로 어제 창조될 자는 어제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창조됐으면 그 아이가 건강했다가 병들었다가 또 좀  상했다가 나았다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러다가 그만 죽는 아이도 있고 자라  가는 그 전부가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차차 순서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서를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순서를 이루어 가시는데  이루어 가시는 그 역사를 말을 하기를 뭐라고 말을 합니까 표시할 때에 그 거게  쓰이는 말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 섭리 하나님의 섭리라고 그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이루시는데 하나님이 때를 따라 우리의 영육을 창조하셔 가지고  그 사람이 세상에 나게 되고 낳으면 얼마 동안 이 세상을 세상에서 혹은 십 년  이십 년 후에 스무 살 먹을 때에 진리와 성령으로 그 영을 중생 시키는 사람도  있고 열살 먹을 때 그 시키는 사람 다섯 살 먹을 때 시키는 사람 또 더 일찍이  뱃속에서 시키는 사람 각각 다릅니다.

 뱃속에서 중생 시키는 것은 무엇을 근거하는 고 하니 세례요한은 뱃속에 있을  때에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배 안에 계실 때에 그 마리아가 세례요한의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에 어머니 뱃속에 있던 그 세례요한이 마리아의 뱃속에  계시면서 찾아온 주님을 보고 그때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중생을 했던 것입니다.

이 성구를 근거해서 다른 교파 어떤 교파에서는 유아세례를 주는 일을 합니다.

유아세례를, 어린것이 아무 것도 모르는데 뭐 세례를 주느냐 아 뱃속에 있을 때에  주님을 영접해서 중생 했는데 왜 어린아이라고 세례를 못 주느냐? 이래 가지고서  유아 세례를 줍니다.

 그것은 성경에 줄 수 있다는 그런 성구를 근거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어릴 때부터 세례 받았다 이러니까  그것도 하나 붙들어 매는 줘야 되지 않겠느냐 이래가지고 유아세례를 줍니다.

우리는 유아세례를 주지 않는 것은 그것이 자가가 인식된 후에 세례를 받아도  되고 또 세례 그것 받음으로 구원이 되고 받지 못함으로 구원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구원은 그 세례를 받으면 구원 이루는 데에 유익이 되는 것으로 또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우리가 하는 것이지 우리의 구원이  세례를 받고 못 받는 거기에 구원이 근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그 잘못된 생각이 거게 따라들기 쉽습니다.

유아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라는 것이 언제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 놔야된다 내 피와 살을 먹지 않는 자는 또 세례를 받아야 이제  중생이 된다 세례는 죽음에서 살아나는 그것이 세례이기 때문에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는 그 역사가 이루어지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말해 가지고 유아세례를 안 받으면 구원이  안되고 위험성 있는 것으로 생각해 가지고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아세례를 받고 안 받고 사람이 형식으로 물세례 그것 가지고 구원의 효력이나  효력은 있지마는 구원이 안 되는 그런 좌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세례  받는 성령으로 세례 받는 이 세례는 받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건설구원이  안됩니다. 또 성령으로 중생 된 일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는 속에 영생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중생은 우리가 받아야 구원이 시작되고 또 성신의 세례를 받아야 그  사람이 행위가 변화되어서 점점 성화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 세례  그거 앞에 중생이 있고 중생 앞에 하나님이 대속하신 법적인 대속이 있고 법적인  대속 전에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창조가 있고 택함 속에서 창조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게서부터 시발 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이  껍데기에서 이루어짐으로 그 속에 알맹이가 이루어지고 또 그 알맹이가  이루어짐으로 그 알맹이 속에 알맹이 알맹이로 이렇게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그런 것 아닙니다. 알맹이가 껍데기로 나오고 껍데기의 껍데기가 또 되어 나오고  껍데기의 또 껍데기가 되어 나와서 안에서부터 이렇게 되어 나오는 그것이 우리  구원의 논리적 순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이루시는데 택함 속에서 창조 받은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아니 택함 받은 우리가 이 택함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우리가  창조되고 창조되는 그 창조되는 동시에 우리가 타락하고 정죄를 받습니다. 우리가  다락하고 정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창조되어 가지고 얼마동안 있다가  타락하고 정죄 받는가 그런 게 아니고 창조와 타락이 동시에 됩니다. 그러나  논리적 순서로 하면 창조타락 요것이 논리 순서나 우리는 벌써 그 부정모혈의 이  생육법으로 되기 때문에 정죄가 아담이 정죄 받았을 때 그 때 우리가 그 안에 다  대표로 아담을 보냈기 때문에 아담이 정죄 받은 그 때에 같이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겨지는 동시에 그 정죄를 입고 나옵니다. 내가 사람이  되면 벌서 사람이 됐다면 그 정죄는 입습니다. 왜 그 정죄를 입느냐 아담은 육천  년 근 육천 년 후에 날 아담의 자손도 아담이 대표로 범죄한 그 범죄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로마서 4장 이후에 보면은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기 전에 정죄가 됐으면 하나님이 죄를 창조했느냐 하는 그  문제가 난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우리를 창조하시는데 지금 우리가  창조되는데 정죄는 그전에 받았으니까 우리가 있기 전에 생기기 전에 정죄를  받았으니 그러면 정죄 받았으면 우리가 창조될 때는 하나님이 정죄 받은 것을  창조하느냐 정죄를 죄를 창조했느냐 이것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논리적 순서로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는 의롭게 창조하나 인류시조의  정죄를 인해서 정죄를 입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순서를 말하면 창조 타락 정죄  이렇게 되나 고것이 동시에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택한 자들이 창조 타락  정죄되고 이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그 다음에 중생 되고 또 그 다음에 예수님  믿기 시작을 하고 또 믿는 이 믿음을 할 때는 중생 된 영만 믿고 그 다음에 중생  된 영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마음을 믿도록 만들고 마음을 믿도록 만들면  믿는 그 마음은 하나님과 중생 된 영과 그 마음은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그  몸을 믿도록 만들라고 애를 쓰고 그 몸에 몇 분지 일이든지 믿는 몸이 되면은  몸하고 한 덩어리가 됩니다. 고것이 새사람입니다. 고것이 참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 사람이 단번에 다 되어 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순서적으로  참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참 사람으로 이제 낳은 갓난  어린아이 같고 어떤 사람은 참 사람으로 한 살 먹는 아이 두 살 먹는 아이 열 살  먹는 아이 스물 살 먹는 장정 이렇게 되어지는 것처럼 점점 그렇게 우리가 자라  가는 것인데 그러면 영도 자라고 마음과 몸도 자라는가? 네 영육이 자랍니다.

 영은 어떻게 자라는가? 영은 완전케 된 영생을 가진 자인데 영이 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이렇게 한 몸처럼 이렇게 한 결합이 되어 있는 그 영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지니까 하나님이 전부가 자기의 중생 된 영 자기의  것이지만은 암만 자기 것이 되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의 것이지만은 이  중생 된 영이 하나님이 모든 충만이 자기의 것이지만은 이것을 하나도 쓰지  못합니다. 하나도 쓸 수 없습니다. 왜 못쓰는가? 요 영은 마음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마음 안에서만 활동하지 마음 밖에서는 활동을 못합니다. 또 마음  안에서 활동 할 수 있는 데 마음이 영에게 복종해서 영이 시키는 대로 이 마음이  복종을 하면 마음이 영의 도구 영의 지체의 영의 기관이 됐습니다. 영의 도구가  됐습니다. 이래서 너희 마음을 하나님에게 드려 의의 병기가 되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의의 병기.

이러면 마음을 마음이 중생 된 영과 성령이 영접하면 문을 두드릴 때 열어주면  척 들어온다 이랬습니다. 그게 뭐이냐 우리의 마음이 딱 닫아 놓고 못 들어오게  하면 못 들어옵니다. 왜 우리 마음을 강제로 들어올 수 있지마는 고라면 요기  강제로 당하기 때문에 강제가 당하면 자유성이 죽습니다. 우리를 살려서 자유성을  살려서 요렇게 능동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과 교제는 우리는 전부 유기적인  교제입니다.

 따라합시다.

 유기적 교제,  유기적 교제. 네 유기적 교제라 말은 하나님이 강제로 우리와 접선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자유의사를 주어 가지고서 자유를 주어 가지고 이 자유가 스스로  원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그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되는 그것을 가라쳐서 유기적  교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가지고 마음이 영접을 해달라는 그 말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면은 내 소원이  다 이루어지고 또 너로 말미암아 내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 그것을 가라쳐서  먹는다 양식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양식을 먹어야 자라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구원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성령의 소원은 우리로 말미암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래 가지고 마음을 마음에  들어와서 마음하고 한 덩어리가 됐으나 이 마음은 또 암만 마음하고 중생 된  영하고 성령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도 이 셋 가지고는 이 물질계는 못합니다.

아무리 이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도 이 종을 못 듭니다. 종을 들 수가 없도록  법이 돼 가지고 있어요.

 이러니까 종을 들려면 이 성령 중생 된 영은 우리 마음 이 셋이 합해 가지고  몸을 달게야 됩니다. 몸에게 사정을 합니다. 야 이거 종 좀 들어라 종 좀 들어라  이럴 때 안 들랍니다 하면 못 듭니다. 더 몸이 갖다가 마음에 성령의 감화 중생  된 영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이 종이에 아무리 무거워도 더러운 기분으로 번득  이래 듭니다. 들면은 그대 그것이 이제 성령의 소원이 중생 된 영으로 성령과  중생 된 영의 소원이 마음으로 성령과 중생 된 영과 마음의 소원이 이 몸과  하나가 되어 가지고서 이것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 중생 된 영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르쳐서 하나님의  집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성령과 중생 된  영은 거처를 어디에 하는고 하니 우리 마음 안에 거처를 합니다. 또 중생 된  성령과 중생 된 영과 우리 마음은 거처를 어디 하는고 하니 우리 몸 안에 거처를  합니다. 또 그러면 벌써 중생 된 사람이 됐습니다. 참 사람이 됐습니다. 하나 된  것은 요 참 사람은 거처를 어데 하는고 하니 자기의 고 행동 속에 거처합니다.

자기의 행위 속에 거쳐 합니다. 그러면 자기 행위는 무엇에 거처하는가 자기 현실  속에 거처를 합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 속에는 오는 것이 다 거기에 관련돼 있는데 관련된 그것이  있어야 행위가 삽니다. 행위가 살 때에 관련된 이것도 다 살았습니다. 행위가  죽었을 때에는 관련된 이것도 같이 죽습니다.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행위가 죽었으면 행위가 죽었으면 무엇이 거처할 곳이  없습니까? 행위가 죽었으면 무엇이 거처할 곳이 없지요? 예 행위가 죽었으면  영이 거처할 곳이 없습니까? 마음이 거처할 곳이 없습니까? 몸이 거쳐할 곳이  없습니까? 예 몸이 거쳐할 곳이 없습니다. 몸이 거처할 수 없으니 거처 할 곳이  없으니까 벌거벗은 자로 하늘 나라가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도 벌거벗은 자 그 몸이 그 몸이 다 같은 몸이 저게서 오는데 어떤  몸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기뻐 존경하고 환영을 하고 이러는데 어떤 몸은  걸어오니까 사람들이 외면을 하고 다 모두 숨고 도망을 칩니다. 왜? 그것은 아주  나쁜 행위를 입고 오니까 그렇고 좋은 행위를 입고 오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환영을 하는 것입니다. 몸은 그 행위를 입고 갑니다. 이것을 가라쳐서 세마포  옷이라 이랬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은 그 성도들이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이  세마포 옷은 성도의 뭐라 뭐라고 말했습니까? 성도의 옳은 행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행위는 뭘 입고 있는가 자기의 현실이라는 이 물질로 입고 있기  때문에 요 현실이 중요합니다. 요 현실이 마음이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신덕의  행위를 만들고 주님이 기뻐 반가워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장식을 꾸며 가지고  갑니다. 신부가 신랑 앞에 갈 때 아름답게 자기 몸을 꾸며 가지고서 이렇게 그  결혼식을 하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행위  하나 하나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를 아름답게 단장하는 그런 단장품입니다.

이러니까 잘 꾸며 가지고서 이래 가면 주님이 기뻐하는데 이 아름다운 단장을  하는 것이 그때는 뭐 물질 이런 것 가지고는 암만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의  옳은 행실 이것이 단장입니다.

 이래서 아가서 4장 1절 이하에 보면은 거게는 성도가 주님 앞에 갈 때에 자기를  아름답게 단장한 그런 단장을 단장품을 갖다가 단장되는 행위를 거게다가 기록해  놨습니다. 아주 입술은 붉고 입술이 빨갛게 입술이 빨갛게 요새 구찌배니인가 뭐  부르는 것 입에 뭐인가 색칠하데요. 그 빨갛게 하는 것 그라면 그 빨갛게 하는  것은 푸르게 하는 그거는 죽었다 그 말이요. 사람들이 몰라 그렇지 유행이라 하면  다 좋아하는 것인데 그 정식은 붉은 것입니다. 성경에 다 나온 건데 붉은 건데  붉은 것은 붉으면 그만 그 신부가 건강하다는 증거고 그 입술이 허꾸름하면 지금  약하다는 증거 아닙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 입술은 붉고 하는 그거 붉다는 것은  뭐이냐 그 사람이 무엇이든지 하나 책임을 지면 책임을 지면 자기는 기어코 라도  그 책임 완성까지 낙심하지 안하고 죽는 그 시간까지 책임을 주님이 하나  지웠으면 그것을 그 완성을 하려고 노력하는 그 충성 변하지 않는 그 충성과  인내 그것을 가라쳐서 그 입술에 붉은 것으로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 뺨은 이 볼이 잘 생기면 아주 예쁘지 않습니까? 그 뺨은 석류 한 조각과  같다. 그렇게 또 꾸며놨다고 이래 놨습니다. 그 뭐 석류 한 조각이라 말은 석류는  보면 끄트머리 보면 울퉁불퉁하게 참 아주 그 험한 열매 한 개이지마는 그 한  개를 가운데 턱 쪼개보면 그 가운데 붉은 색깔로 되어 있어서 붉은 색깔로  요리조리 연결시켜서 그 알이 한 개 속에 알이 가득 찼습니다. 요것도 보니까 또  요 뭐 한 칸이 있는데 똑 떼면 그 가운데 또 열매가 가득 찼고 열매가 가득 차서  그 사람이 주일 지킨 그것이 아름다운 열매 아닙니까? 오늘 그 사람들은 그 사람  어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다 이랬으니까 열 사람이 모였는데 주일 지킨 열  사람이 모였는데 한 사람은 보니까 사람 보는 껍데기만 일 안하고 예배당에 와서  설교 듣고 갔지 속에는 하나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석류 속은 하나도 없고  껍데기만 되어 있는 것과 같애.

 이랬는데 한 사람은 보니까 속에 다 같이 주일을 지켰는데 그 주일 지킨 데에  자기 성의가 하나 들었고 둘 들었고 열 들었고 간절 들었고 주님이 죽으심으로  부활하심으로 자기가 나에게 죽으심과 부활한 그 공로를 은총을 입하시기 위해서  주일을 주셨다는 이걸 생각하면 거게 감격해서 참 견딜 수 없는 그 눈물로  감사로 성심성의로 이래 가지고서 속에 성화 받고 축복도 받았어.

 다 같이 주일 지켰지마는 그 속에 알맹이는 굉장한 남이 볼 수 없는 그 속에  마음의 작용 정신의 작용 성의 작용 행동의 작용으로서 안에 열매 있는 것이  가득히 열매가 맺어있다 말이요. 그러면 그 열매맺은 그것이 신부로 말하면 이  볼이 잘 생긴 거와 같애 볼을 아름답게 꾸민 것과 같다 했어. 그것도 행위입니다.

그 행위로 모두 다 장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러면 그 마음에 장식은  행위로 하고 행위의 장식은 현실에서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되어지면 그 안에는 쭈욱 되어집니다. 그 안에는 쭈욱 되어 나왔는데 이 현실에게  와 가지고서 결실을 못하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맞이할 때에 저 안에서부터 내 구원이 되어져  나왔고 되어져 나온 그 구원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예정하신 현실이요 창조하신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이요 예정하신 그대로 창조하신 그것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섭리하셔 가지고 요렇게 요렇게 큰 힘들여서 만들어 놓은 내 현실이기  때문에 요 현실은 잠 보배로운 현실입니다. 요 현실은 얼마나 귀한 현실인고 하니  내 현실 밖에 우주가 있고 우주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이 있지 않습니까  영광스런 현실도 있고 대통령이 지금 부임한다고 막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현실도 있고 수많은 현실들이 있지마는 내게는 이 우주 안에 수많은 현실이  있지마는 내게 제일 보배롭게 필요 있고 중요한 것 중요한 것은 중요한 세계는  뭐입니까? 내게는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세계는 어떤 것입니까? 중요한 세계는  어떤 것이지요? 예, 현실!  현실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내게 현실보다 더 중한 것은  없습니다. 내게는 현실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내게는 천하가 있지만  천하보다 내게는 내 현실 요것이 더 크고 더 보배고 더 가치 있는 것이고 주님이  나를 더 사랑하셔서 주시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실은 요렇게 그 참 무한한 배경이 있어 가지고서 우주 중에  나에게 제일 보배로운 그 물질로 주신 것이 내 현실이기 때문에 요 현실을  닥쳤을 때에 요런 현실 저런 현실 닥쳤을 때에 내가 요런 행실은 좋다 저런  현실은 나쁘다 그렇게 네 믿음 없는 조브라운 네 생각대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네가 생각해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시험을  당한다 그 말은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 사람이 좀 그 두려워하든지 할 때에  그래하지 말아라. 그 현실을 당한 것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현실에서 너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 이  현실에서 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 광고 하나합니다.

 우리 연보 봉투를 만드는데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중간반 학생들 보조반사들  반사들 이런 분들은 와 가지고서 여러 날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봉투가 거의  지금 마무리짓는 때가 됐습니다. 이래서 그분들만 자꾸 그래 학생들이고 하니까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없어서 다 모두 좀 서로 바꾸어서 교체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그분들은 그만 가라고 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또 인제 새사람이 오고  하는데 누구든지 봉투 만드는데 한시간이고 반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또 낮에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와서 좀 도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는 분은 요 지하실에  오면은 그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리오면 좀 봉사할 수 있습니다.

 예,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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