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

 

1981. 10. 18. 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16장 21절 - 28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선지자선교회 광고 먼저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계속하고 있는 기도회에 빠짐없이 어는 자리에서든지 삼십 분  생각하고 기도회에 참석하도록 하입시다.

둘째, 우리가 어릴 때부터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제일 높으시고 또 우리에게  필요하신 분이고, 어떤 장소보다 무슨 기관보다 이 교회가 제일 중요하고 높은  것인 것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는 모든것을 단장하고 귀한  곳에 간다. 이렇게 인식을 가지도록 부모님들도 다 그렇게 협력을 해주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교회는 천배만배 더해야 됩니다.

이런데 부모들이 자기가 자식을 학교에는 존귀한 자리요 귀중한 자리요 무성의  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나 따나, 그기야 뛰가든지  늦게 가든지 일찍가든지 안에 가서 장난을 치든지 말든지 부모부터가 하나님을  천하게 보고 교회를 천하게 보니까 그 자손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고 미국에 청교도들은 그렇지 안했는데 지금은 그러하기  때문에 미국이 망합니다. 영국도 스톤 족속이 해적으로서 처음에 복음을 받았을  때에 그렇게 하나님과 교회를 제일로 두렵게 살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세계에  해적이 강대국이 됐고, 그 후에 부모네들이 그렇게 자손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  나라는 망하고 잘 믿는 사람들은 쫓겨나가 가지고 미국에 가서 청교도들의 그  씨로 지금 미국이 현재까지는 부강하지만 벌써 일위는 뺏겼습니다. 이위가 됐는데  이대로 나가면 하나님이 복수해서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미국이 영국의  전성기와 같은 그런 단계는 못 올라갔습니다. 세계에 올바른 신조가 교리가 다  영국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데 아이들에게 교회 인식은 아주 그 인식이 틀렸습니다. 먼 데서는 도시락도  싸주면서 오늘은 교회가니까 도시락도 좀 더 잘 싸고 또 양을 많이 쌀 터이니까  네가 너거 동무 도시락 안 가져온 아이들 있거들랑 도시락을 같이 먹도록 해라.

그 거룩하고 깨끗하고 가난하게 사는 이런 생애를 가리켜야겠고, 야! 신주머니도  학교 가져가는 신주머니는 따로하고 교회 가져 가는 신주머니는 따로 주일날만  써라하면서 해주고 이래 모든 데에서 그것이 물이 째이 들어오듯이 봄이  돌아오면 더운 데도 없고 차운 델 없지마는 전 공기가 따뜻하게 되니까 새움이  트는 것처럼 이래야 될 터인데 교회에 대해서는 전 분위기를 아이들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고 성의를 가지도록 해야 될 터인데 부모네들 조차가 망할 심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을 섬깁니까? 믿습니까? 유물주의요.(공산주의나 꼭  같습니다.) 다른 거 없어. 그들도 물질이 제일이라는 그 오직 물질이 제일이라  하는 것이요. 여러분들도 오직 물질이 제일입니다. 하나님은 말하고 있지마는  무신론이요. 말로만 하나님하지마는 자기네들에게 세상 것만치도 혜택을 줄 수  없는 그런 가치 없는 하나님으로 대우하니까 하나님은 그래 밖에는 여러분들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목숨보다 귀하게 해주십니다.

아주 이거 고쳐야 됩니다. 오늘 보니까 좀 옷들을 깨끗이 입고 좀 준비를 해  가지고 와서 하나님이 노가 조금 풀어졌겠습니다.

주일날은 목욕도 하고 돈 없어도 목욕도 하고 집에서라도 하고 입는 옷이면  빨래라도 해서 입고 깨끗하게 해 가지고 오십시오. 그러고 자기 집에가 있는  학생들은 신주머니 꼭 따라 만드십시오. 만들어 가지고 학교가지고 다니는 그런  신주머니 말고 따로 딱 만들어 가지고, 야! 오늘은 하나님 앞에 간다.

신주머니까지도 도시락까지도 네 옷 챙겨 입는 것까지도 껍데기부터 깨끗하게  해서 네 속까지 깨끗하게 참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 섬기러 간다. 이것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그저 교회와서는 업신여겨서 아이들이 뛰 돌아다녀도 이 권찰 일 조차가 예수  믿는 것은 망할 자가 거서 구원할 수 있는 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고 믿어  주는기라. 믿어 주는 거. 예배당에 가 주는 것으로써 족한 줄 압니다. 그런  버르쟁이 아주 고쳐 버려야 됩니다. 그런 정신으로 암만 와 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러고 세째로 주일날은 언제든지 정성이나 외모나 이레 중 제일 깨끗한 단장을  해야 되겠습니다. 껍데기를 단장하면 속이 차차 단정해 들어 갑니다. 또 속이  정말 단장이 됐으면 껍데기까지 단장해 나옵니다.

어른들이 주일날은 특별한 이레 중에 제일 중요한 날, 자신이 이렇게 인식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인식해서 세상에서는 어떤 잘난 자라도 네까짓 거하고 내가  주먹쥐고 주먹 주먹으로 대해서 일대일로 대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안해도 교회 앞에 가면 벌벌 떠는 이 사람을 만들어야 복을 받을  낀데, 하나님 앞에는 그렇게 담대해 가지고 안됩니다. 하나님은 업수이 여기면  안됩니다.

모르드개가 세상이 두려워하는 하만이는 다 같은 사람이라 이렇게 대하니까  권세있는 자를 그렇게 대하니까 그 사람이 세력으로 인해서 오십 척 나무에 달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마는 하나님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이 '얘! 그 하만이라  하는 그자가 나쁜 자인데 네가 권세 있다고 그자를 두려워하고 그래 하지마라.

그자에겐 절도 하지 말아.' 아, 다른 사람은 하만 수상이 지나가면 머리가 땅에  닿도록 경례를 하는데 모르드게는 지나가거나 말거나 그저 보통 이래 보고서  머리 끄덕 이러고 맙니다. 이러니까 그게 미워서 오십 척되는 나무에 달아  죽일려고 결의를 하고 나무 딱 준비해 놓고 고 이튿날 달아 죽일 긴데  모르드개가 두려워하시는 그 하나님이 그 날 밤에 왕에게 그 이튿날 왕이 타고  다니는 그 모든 말과 승구에 모르드개를 태워 가지고 왕처럼 시가 행렬하면서  존대했고 왕이 깨닫고 모르드개 달라 하는 오십 척 나무에 하만을 달았습니다.

이게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하나님을 업신여겨 가지고 뭘 받겠소  받기를 온세계가 미국 영국 뭐 지금 소련 중공 크다고 일본 움직이지마는 일본  움직이지마는 일시에 재가 되도록 싹 해 버릴 수 있어. 홍수에 싹 내어서  전멸시킬 수 있소. 이분이시요. 아, 김일성이가 우리를 그 위협을 주지마는 이  시간이라도 주님이, 와 하면 쪽 뻐드러진 시체가 되는데 그 무슨 힘있어.

이분입니다. 알고 상대하면 되요. 아주 우리 그 못된 버릇 버려야 됩니다.

주일날은 제일 이레 중에 귀중한 날입니다. 또 주일날 스물 네 시간 중에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일 귀중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죽지 안할 영생으로 우리  심령에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기능이 부활을 합니다. 부활을 받으려고 하는 데에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전부를 다 기울여 하나님을  하나님 알아 섬길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접선이 되면 우리에 죽은 요소가  살아납니다. 이 주일에 하나님과 접선이 되면 우리에 죽은 요소가 살아납니다. 이  주일에 살릴 것 살리고 다음 주일에 살릴 걸 살리고 죽는 날까지에 주일날 살릴  것을 살려 가지고, 살린 이것이 제일 어느 때 요긴한 때인고 하니 주일날이 다  지나가기 전에 오늘 열 두시까지 밤 열 두시까지 살아난 이 요소를 잘 가꾸어서  조심 있게 하나님 사모하고 진리 사모하고 의인을 사모하고 성인을 사모하고  성자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리는 이 진리와 영감을 사모함으로 살아난  그 인격이 거기에서 보호를 받아 자라고, 고라고 난 다음에 고 다음 월요일부터  엿세 동안 모든 생활 가운데서 요 사람으로 살려고 하면 여거 가지 시련이  있으나 그럴 때에 요 사람으로 살고 넘어지면 또 새로 일어나서 요 사람으로  살고 엿새 동안을 살리면 그 사람은 이 세상 속에 파묻혀도 죄악에게 물들지  아니할 수 있는 그 요소가 됐습니다. 이래 가지고 백분지 일이 부활되고 백분지  오가 부활하고 백에 오십이 부활하고 백에 구십이 부활하고 죽기 전에 부활해  가지고 이렇게 영원한 구원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준비를 잘하도록 아이들에게도 신주머니를 교회 가져오는 것은 학교 쓰는  걸 말고 새로 하나씩 다 만들어 주십시오. 만들어 줘 가지고, 야! 그게  구별이지요. 왜? 그 아이에게 내가 말하는 것보다도 그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면  그 아이들이 변화가 된다 말이오. 도시락도 새보자기에 딱 씁니다. '엄마, 오늘은  이 새 보자기네!' '아, 오늘 주일 아니야? 학교 가져가는 보자기는 저 있어  주일날은 이 새보자기 따로 도시락도 새거, 도시락도 새거, 또 반찬은 어때.' '아,  오늘은 아무 동무하고 같이 먹었어요. 그 동무가 셋인데 셋이 먹으니까 나는 좀  적게 먹고 그 아이들은 많이 먹고 그 좀 그랬어요.' 거기에서 인격이 살아나고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옷도 그날은 깨끗하게 이래 가지고 모든 준비해서  부모네들이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되어집니다.

(찬송)복에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에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인애함을 항상 찬송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중에 이십 사절에 있는 말씀을 잠깐 증거하려 합니다.

이십 사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주일날 부활의 능력을 받아 가지고 부활이 된 사람이래야 세상을  호령할 수 있고 죄악을 호령할 수가 있고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합니다. 이 주일날 부활을 받지 못했지, 새벽기도에서  잘 가꾸는 힘을 얻지 못했지. 이러니까 자기 맡은 주일학생들에게 가야 힘이  있습니까? 중간반 학생들에게 가야 힘이 있습니까? 교인들에게 가야 힘이  있습니까? 내게 산 힘이 있어야 될 터인데 산 힘이 없으니까 죽은 힘은 잘 믿는  사람보다 못 믿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이 죽은 힘은  더 강합니다. 내가 죽은 거 가지고 저거한테 가니까 저거가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거 가서 설복을 당하고 굴복을 당하고 오지. 우리는 산 힘 가지고 가야 죽은  것을 능가하고 구출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주일날 부활을 받아야  합니다. 새벽으로 잘가꿈을 받아야 무성해집니다.

예수님을 딿른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 오려거든" 이  말씀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주님이 가셔서 그곳에 따라 올라거든 그말입니다.

주님 가신 곳에 따라 올라거든 그말입니다.

주님가신 곳은 어떤 곳입니까?  거기에는 첫째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미국이 좋아도 죽음 있습니다. 일본이 좋아도 죽음 있습니다. 피난을  간다고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이요. 거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없는 곳으로 피난을 가야 됩니다. 주님 가서 계시는 곳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늙고 쇠하는 것이 없습니다. 병들고 아프고 슬퍼 곡하는 일이 없습니다. 억울함이  없고 외로움이 없고 천대가 없고 더럽고 가증한 것들이 없고 거짓 것들이 없고  미움이 없고, 시기, 질투, 훼방, 한숨, 탄식, 원통, 이별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세상에 이런 거 없는 곳이 있습니까? 이거 없는 종류가 있습니까? 어리석습니다.

네가 아무리 좋아해도 그거 죽는다. 그거 없어진다. 그거 쇠해지고 낡아진다  아무리 좋아해도 거기에 한숨이 섞여 있다. 근심이 섞여 있다. 이별이 섞여 있다.

가슴을 쥐뜯는 원통함이 섞여 있다.

주님이 가서 계시는 그곳, 우리가 가서 살 곳은 진리와 사랑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서로 존경하고 우애하고 화평하고 친밀하고 깨끗하고 의롭고 청청하고  날마다 영원히 새로워지고, 서로 봉사하니까 공중으로 올라가. 서로 안 받고  위하려 하니까 자꾸 높아져. 양쪽에서 밀면 올라갈 수밖에 더 있겠소? 양쪽에서  끌어당기니까 내려올 수밖에 더 있겠어? 내가 가서 예비해 놓고 너희들을 나  있는 곳으로 영접하리라. '그곳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 말은 있을 곳이 많다 그  말은 풍성하다 말이오. 모든 것이 구비하다 말이오. 모든 것이 구비해 좋은 거는  다 있어. 나쁜 것은 하나도 없어.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을  권위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 선포해 놨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렇다고 다 말씀해  놨어. 이것을 믿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 하늘나라와 세상을 비교해 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거와 세상 걸  비교해 봅니다. 하늘에 것은 생명이요. 세상 것은 죽었습니다. 하늘에 것은 청청한  강한 것이요. 여기에는 썩었습니다. 하늘나라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세상 것을  그대로 가지라고 하여 온갖 걸 다 줘도 가질 자 없습니다. 왜? 눈이 밝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 아름답다' 새로 보니까 추합니다. 아, 꽃과 같이 아름답다. 아, 새로  보니까 쭈글 쭈글한 할마이입니다. 쭈글 쭈글한 영감태기입니다. 새로 보니까  송장입니다. 시야가, 보는 눈이 넓어! 길어! 깊어! 높아! 이러니까, 그 밝은 지혜의  눈 심령에 눈을 가지고 살피니까 세상은 다 사망 아래에 있고, 악한 자 안에  있어. 전체가 자기 위주, 자기중심 이것들이만 모아 놓으니까 서로 싸워,  하늘나라는 완전자 한 분을 중심한 전부가 돼 놓으니까 전체는 화평이라,  단합이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 나라에서 와서 살고 싶거든' 녜,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이 그 나라에 가서 사느냐?  첫째로 우리의 영이 그 나라에 가서 삽니다. 우리 영이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은  이미 예수님의 공로로 됐습니다. 영은 주님의 공로로 그 나라에 가서 살게  됐습니다. 우리의 이 고기덩어리의 형체는 예수님의 공로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부활해 가지고 그 나라에 가서 살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  나라에 가서 살수도 있고 지옥불에 탈수도 있는 것은 우리 마음에 기능 요소와  우리의 몸의 기능 요소입니다.

한시간에 두 남아이가 났다 할지라 해도, 한 아이는 나고 난 다음에 온갖 기능을  원만하게 구비했고 구비하는 데는 힘이 들었겠지요. 한 아이는 기능 구비는  하나도 하지 안하고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해 살만 뜅뜅쪘지. 그게 뭐, 글을  보니 읽을 줄을 아나요? 들을 줄을 아나요? 보니, 알 줄 아요? 비판이 있소.

평가가 있소? 방비가 있소? 예비가 있소? 저항이 있소? 투쟁이 있소? 승리가  있소? 고기덩어리, 무더기 모양으로 되어 있는 그런 사람 우리가 세상에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과 몸은 하늘나라에 가 있지마는 이 기능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이 바보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가 사는 자, 그 나라의 모든 실력을 구비해 가지고  존영하게 사는 자 이것이 구원의 차입니다. 영광의 차입니다. 구원의 차이요  영광에 차이입니다. 이것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 기능이 현실을 통해서 영생할 수도 있고 영원한 멸망받을  수도 있고, 영생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네 마음, 목숨, 힘, 뜻 전부 다 해야,  다해서 해야 주일날 부활받는다. 네가 죽도록 충성해야 된다. 모든 시험을 네가  생명까지 다 바쳐 그 시험을 통과하도록 전심전력 생명까지 다 기울려서 주의  법도대로 살려고 하는 그 노력으로써 통과될 때에 그때 비로소 부활된다.

그러기에 있는거 다 기울여 얻어진 이 부활로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기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님가서 계시는 그곳에 영과  고기덩어리의 형체는 주의 공로로 가지마는 그 마음에 기능, 심신에 기능 그것이  주님이 계시는 그곳에 가서 살고 싶거든, 그곳에 네 기능으로 그곳에 네 지식으로  그곳에 네 기술로 그곳에 네 힘으로 그곳에 네 권위로 그곳에 네 지위를 그곳에  것을 마련하려거든' 하는 말입니다.

따라 오려거든 자기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나를 쫓아라. 자기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 그말입니다. 자기부인하고 나를 쫓으라, 자기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 자기  부인이라 말은, 주관을 부인하고, 객관인 주를 따라라 그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이말은 늘리 말하면 인본을 부인하고, 인간에 것을 부인하고  자기는 세상하고 한덩어리입니다. 자기는 세상하고 한덩어리요. 세상하고  한덩어리 되어 있는 지식도 부인하고 주님 지식 딿고 권위도 이 권위 부인하고  주님 권위 딿고 소망도 땅의 소망 부인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하늘에 소망  가지고 자기 주관을, 자기 주관을, 자기 주관이 어데서 나왔는데? 자기 주관은  세상에게서 나온 것이요. 세상에게서 배왔소. 세상에서 났습니다. 세상에서 뻗어  나온 것입니다. 자기 주관은 세상 새끼요, 자기 주관은 세상 새끼입니다. 자기의  주관, 자기 자율, 자기 지식, 자기 욕심, 자기 뜻, 자기 비판, 자기중심 이것은  세끼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새끼놓은 세상 새끼요.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 세상에 나왔고 세상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지마는 너희들은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랑하지마는 너희들은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저희들이 미워한다. 너희들을 미워하기전에 나를 미워했고 나를  미워하기 전에 아버지를 미워한다 말씀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 우리가 현실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내생각과 온 세상은 저렇다 합니다. 그럴 때에 내 생각과 온 세상이 저렇다 하는  그것을 부인하고 그것을 집어 던지고 하나님이 이렇다는 고걸 따라라. 비판도  자기와 세상 비판은 공통입니다. 하나입니다. 주님의 비판은 따로요. 비판도  비판과 세상하고 한덩어리 된 네 비판을 버리고 주님 비판을 따라라. 네 욕심  버리고 주에 욕심을 따라라. 네 지식을 버리고 주에 지식을 따라라. 네가  좋아하는 것도 너와 세상이 같이 좋아하는 그 좋아하는 것 버리고 주님 좋아하는  걸 따라라. 주님이 귀하다는 것을 그걸 취하고 세상이 귀하다는 것을 버리라. 네  취미도 세상과 한덩어리있는 세상 취미도 버리고 주님과 진리가 좋아하는 그  취미도 세상과 한덩어리있는 세상 취미도 버리고 주님과 진리가 좋아하는 그  취미도 바꾸어 가지라. 네 세상에서 출세하려 말고 주님 앞에서 나타나도록 힘을  써라. 이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아! 주님은 그분의 사진판이 신구약 성경이요. 그분을  꼭 글로 써낸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주님을 글로 나타낸 것이  신구약성경입니다. 주님은 신구약 성경 글 속에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 계시는 주님이시요 살아계시는 주님이시요. 이러니까 주님을 내가  둔해서 직접 만내지 못해도 주님의 나타내신 이 성경에 하라 하는 것은 주님이  하라는 것이요 하지 말라는 것은 주님이 하지 말라는 것이요. 성경이 이렇다하는  것은 주님이 그렇다는 것이요. 성경 따른 것이 주님을 어설피 따른 것이요. 성경  따르면 영감을 다음에 딿게 되는데 영감 따르는 것이 막바로 주님에게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이 둘이 들어서 이럴까 이럴까 싱강할 때에  싱강하지 말고 이를 부인하고 주를 따라라. 그러면 내가 가서 있는 곳에 갈 수  있다. 네가 둘이 싱강이 있을 때에 주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따르면 너는 지옥에서  불타는 그 요소가 돼 버리고 만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아라. 나를  좇을라면 십자가를 각오해야 된다. 십자가는 뭐인데? 십자가는 고난이다. 십자가  고난은 도수가 어느 정도입니까? 십자가 고난은 뽀시래기 고난에서부터 마지막  생명이 끝나는 고난까지가 다 십자가에 고난이다. 네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면 세상을 부인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려면, 세상을 부인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자기 부인하려 하면은, 자기와 자기에 속한 것들이 막 달라 들지 세상이  막 달라들지, 자기가 자기 부인하고 주님을 인정하려고 하니까 자기속에 온갖  요소도 발광을 하고 자기에게 속한 가족들도 발동을 하고 자기와 가까운 세상도  발동을 하고 (나라도 발동을 하고 마치 이북에서 민주주의 따라 올라하면은  이북이 전부 다 달라들어가지고 박해를 하고 안되면 죽여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주님 따라 올라가면은 네 속에 것과 네 밖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  따라가지 말고 그대로 살자고 하면서 달라들 터이니까, 네가 고난을 각오해라.

갇혀도 나는 주를 딿겠다. 진리를 딿겠다. 면직을 당해도 주와 진리를 딿겠다.

매장을 당해도 딿겠다. 무엇이 파괴를 당해도 딿겠다. 아! 사형을 당해도 딿겠다.

이걸로 끝납니다.

이게 십자가요. 여러분들 어리석게 벌써 몇십 년을 다 살아서 산 것이 살 날보다  많이 살아왔는데, 짜다라 요 일하지 안하고 주님 따라서 주님계시는 그곳에 가서  살 준비하지 안하고 주님 따라서 주님계시는 그곳에가서 살 준비하지 안하고  땅에 준비 암만 해봤자 좋았으면 좋은 것만치 반다시 슬퍼집니다. 기뻤으면 기쁜  것만치 반다시 고통이 됩니다. 부요했으면 부요한 것만치 가난해집니다. 하나도  없어, 어리석지 말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영감으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에 '생부지 사부지라' 인간이 나는 것도 모르고 죽는 것도 모른다. 살아 있는  요토막 뿐이지 그다음에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일하고 살지. 어째던지  세상만 보고 살았지. 우리는 어떻게 났으며 어떻게 죽으며 죽었다가 어떻게  부활하며 어떻게 심판 받으며 무궁세계 그 나라가 우리에 살 곳입니다. 거기에는  영원합니다. 땅 위에 것은 오늘이 끝날런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 가서  계시는 그곳과 세상과 비교해 봐야 되고 준비를 잘했든지 못했든지 나는 그곳은  가서 영원히 살 그곳이고, 이 세상은 오늘인가 내일인가 떠날 곳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뭐이 좋은 게 있습니까? 땅 위에 죽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더러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근심되지 안할 기쁨이  있습니까? 수치되지 안할 영광이 있습니까? 벌받지 안할 권세가 있습니까? 없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 자기에 주관을 둘이  싸울 때에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주님에 성령에 욕심과 내욕심이 이럴 때 내  욕심을 버리고 주님 욕심 따라 할 때에는 반드시 십자가에 애로가 있다. 죽을  각오하고 죽어도 딿겠다 해라. 이래야 된다. 죽도록 총성해야 생명에 면류관  얻는다 말씀했습니다.

어리석게 믿지 맙시다. 주에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얼마 남지 안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 다 발벗고 나서서 이 준비에 급속히 준비해가지고 가야합니다. 뭐,  세계가 얼마나 많이 남은 줄 알아도 주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강대국 돼 봐도  그렇고 세계에 제일 강한 나라가 돼 봐도 그렇고 천하가 돼도 그렇고 어쨌든지  우리는 갈 사람들이오. 세상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나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범사에 모든 면으로 작고 큰 모든 면으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 주님만 존귀케  합시다. 그만을 영화롭게 합시다. 어서 바꿉시다. 어서 죽은 것을 살립시다. 내가  도시락 하나라도 학생에게 싸줄 때에 거기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고  자녀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도시락 밥 보자기 하나에서 그 아이에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속화시키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정신차려 살아야 합니다.

(기도) 갈레길에서 머뭇거리는 저희들에게 확고한 우리 노선을 알게 하시고 달리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현실 현실에서 주님 부인과 자기 부인, 주님 인정과  자기 인정 이 두 갈레길에서 세상과 죄악과 악령과 내 안에 있는 부패성은  주님을 부인하고 나와 세상을 따르라고 강조하는 이 세력에게 압도당해서 원치  안할 길 걸은 것이 과거에 많았습니다. 이제는 능력을 주셔서 압도당해서 원치  안한 길 걸은 것이 과거에 많았습니다. 이제는 능력을 주셔서 어떤 방편 무엇으로  자기를 부인치 못하게 할지라도 용감히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소유로 붙들면 소유를 던지고 주를 딿게 하시고, 가정을 붙들면  가정을 던지고 주를 딿게 하시고 건강과 자유로 붙들면 건강과 자유를 던지고  주를 딿게 하시고 생명을 붙들면 생명을 던져 주를 딿는 이 인내로 용감스럽게  전진할 수 있는 여생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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