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원

 

1980. 8. 31. 주전

 

본문: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에 대해서 간단하게 총괄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가를 평생연구하고 또 힘쓰고 또 연구하고 힘쓰고 계속하는 것이 우리의  전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이 어떠한 것인가 실감있게 연구하지를 못할 때가 많고 또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아 지식으로는 가지고 있으면서 아주 이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가 모르고 있는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은 첫째로  이 구원의 시작은 언제며 또 이 구원의 끝은 언젠가 하는데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만 버릇이 되서 시작이면 시작만 보고 끝이면 끝만 보고 중간이면 중간만보고  이렇게 편견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 생활이 되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그것의 영광이든지 가치든지 권위든지  어떤 것 어떤 면이든지 우리가 그것을 생각할때에는 반드시 시종을 전체적으로  생각해야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겠습니다.

 악령은 우리를 혼미시켜서 그 시종을 혼돈시킬려고 미혹합니다. 또 중간도 찾지  못하도록 미혹을 시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아무리 크고 깨끗고 좋은  것이라도 그것의 시종을 살펴보면 시작도 허무하고 끝도 허무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거기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면 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웃음이 다 근심으로 바꾸어 질 것이고 평안이 고통으로 소망이  절망으로 바꾸어 질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사람이 타락한 후에 모두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으며 절망 아래에 있는데 이 가운데 있으면서 사람들이 만족하고  자세하고 또 탐하고 욕심을 품는 것은 그것은 전체에 면을 모르고 일 부분에서  자기는 미혹받아 있는 연고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지혜요, 모든  평강을 고통으로 바꾸게 하고 이 고통에서 참된 평강으로 헤어나올 수 있게 하는  지식입니다. 모든 것의 시종을 그 전면적으로 따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아서 울고 웃고 욕심내고 자랑하고 탐하고 또 분발하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저주아래에 머 탐할 것이 있으며, 욕심낼 것이 뭐 있으며 사망아래에 그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종말은 멸망인데.

 그러기에 여게 구원에 대해서 첫째로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의 구원에 시작은  언젠가 영원한 때 전부터라고 했습니다. 영원한때 전부터라 말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무책임한 학자들이 수억억만년도 넘었다고 자기의 편식인 그런  지식을 가지고 이런 지질학에서 저런 자연학에서 아 되지도 안한 그런 한가지의  편식의 증거를 가지고 자기 지식대로 그렇게 말하지만 성경은 똑똑히 육천 년  미만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숫자에 너무 도취되서 육천 년이라면은  아주 짧은 세월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은 실은 성경 역사 외에 있는 이방  역사는 사천 년 된 역사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그 미만이요, 그 위는 신화로  만든 것들입니다. 성경에 약 6천년 역사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 후에 성령으로  계시해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시작된 구원이 아니고 영원전  하나님 홀로 자존해 계시고 영계도 물질계도 아무것도 없는 그때에 하나님 홀로  계실때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안에서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나 작정한  목적이 있으니 그것이 곧 우리의 구원에 시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존재의  순위로 말하면은 하나님이 영원전 자존하셨고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 의지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라는 이 하나님의 목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이  목적하셨고 하나님이 목적하사 그 목적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뿌럭지가 아 깊습니다. 이종교는 그는 얼마되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 후에 얼마나 지낸 뒤에 그 창조들이 이 구원을  위해서 이용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섭리 중에 사이비한  모든 이종교들이 생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 이말은 자기의 의지 안에서라 그말입니다. 뜻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한 때 전부터 창조를 말하는 건데 창조전 영원전 그는  시간이 언제인지 그 수는 헬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아직까지 6천년 미만입니다.

 영원한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 직책을 이름할때에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전 하나님의 직책의 직명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는 벌써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된 것을 가르쳐서 예수 안이라  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를  말합니다.

 아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은 시작이 영원한 때 전부터 시발된 구원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기전 구원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된 구원이 끝이 언제까지냐? 끝이 없습니다.

영원입니다.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까지입니다. 영원 끝이 없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을 생각하면서 모든 존재 어떤 그 실존의 것이나  어떤 논리 존재나 상상 상상 존재나 모든 존재를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그 시작과 끝이 우리의 구원에 비할 수 없는 다 그 안에 내포된  것들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얼마든지 새김질하고 연구할때에 기독자는 클때로  커지는 것입니다. 클때로 커집니다. 억만년해도 우리는 그것을 크다 길다 할 수  없고 그것을 우리는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할 통치 안에  든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존재적으로 영원전부터 영원후에 가득찬 우리의 구원인 것을 자기  지삭대로 활용해서 양식을 삼아야 됩니다. 아 이것은 천년이라 나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후까지라 이 존재는 이 세력은 이 영광은 이 능력은 이  강함은 이 약함은 이 고통은 모든 존재와 모든 움직임과 모든 관련들을 우리는  그저 지낼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수명과 그것들의 수명과를 우리는 비교해서  자기의 구원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따라와도  따라오다가는 떨어집니다. 그것이 아무리 나를 괴롭히도 그 생명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그것이 끝납니다. 억억만년을 사는 어떤 세력이 내 구원을 침노한다  할지라도 억억만년이 지나면 그는 다 멸망으로 끝내고 다 무(無)로 돌아가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던 그 모든 것은 끝나 버리고 우리의 구원은 그대로  존속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된 구원 이 구원으로 우리는  어리석음에서도 무한한 그 우월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뛰어났다.

그것보다는 뛰어났다. 위에 있다. 그는 내가 있은지 오랜후에 생겨졌다. 또 그는  있지만은 얼마가다가 다 절단날것이요. 나를 괴롭게 한다해도 나를 영화롭게  한대도 나에게는 계산이 닫지를 아니한다. 나는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한 후까지  존재하는 내니 영원성을 가진것이 아니면은 내게는 해당이 안됩니다. 영원성은  가진자는 괴롭힘이라도 꾹 참습니다. 암만 해봤자 그까짓기 좀있으면 다  소멸되고 그후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괴롭히는 것도 그것이 사소한 것들이요,  나에게 필요하다 할지라도 나는 영원성을 가진 자인데 영원성의 영원한 구원을  가진것인데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면 얼마동안 필요할 것인가 하는 그 수명  비교를 할때에 이것은 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게 폭이 닫지 않는다. 이것은  나에게 계산이 닫지 않는다. 이것은 내것을 위해서 하나의 마련하는 비용이나  재료는 삼을지라도 이것은 나의 소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50절이하에 보면은 "모든 혈과 육은 영생을 얻지 못한다"했습니다. 이 피와  고기덩어리는 백년만되도 쭈굴 쭈굴한데 어떤 먼(?)그만한 대 여섯살 먹는  아이가 아 영생한다고 이라니까 자기 몸을 가지고 영생할 것으로 그렇게 교리를  말하니까 '아무것이는 나아가 칠십 몇달이라고 흉해서 볼수가 없고 막  쪼그라졌는데 백년 살면 그럴긴데 그게 어떻게 영원히 살겠노 그런데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줄 생각하는 그 여호와의 증인은 그거는 아주 천치 바보의  말이다.' 조그만한 주일학생이 그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된 구원이요, 구원의 끝은  없습니다. 영원입니다. 구원의 끝은 없고 영원입니다. 우리가 마치 어린 아이가  아 낳지만은 어릴때는 자기의 존재를 모르고 차차 성장함에 따라서 인식이 밝아  오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한 때 전부터 구원받은 자이지 마는서도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이해서 중생이 되고 나도 모릅니다. 중생되고  성화행위를 신앙행위를 시작해서 성장한지 얼마후면 비로서 자기를 아슴하게  알고 이 구원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성장입니다. 나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하여 영원 후에 이르는 구원이라 과거는 영원한 때 전부터 있지마는서도  앞으로는 끝이 없는 영원후라 영원이라 우리의 구원은 이런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살 세계도 다 영원한 세계라야 우리의 세계입니다. 우리의  영광도 영원한 영광이라야 우리에게 폭이 닫습니다. 우리는 지식도 영원한  지식이라야 우리에게는 계산이 닫습니다. 지시도 영원한 지식, 권능도 영원한  권능, 기쁨도 영원한 기쁨, 평강도 영원한 평강, 생명도 영원한 생명, 힘도  영원한 힘, 승리도 영원한 승리, 부요도 영원한 부요, 건강도 영원한 건강,  교제도 영원한 교제, 봉사도 영원한 봉사, 직업도 영원한 직업, 기업도 영원한  기업, 우리는 영원성의 것이 아니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합시다.

아무리 고통이 와도 영원한 고통이 아니면 내 고통이 아닙니다. 그까짓거 오거나  말거나 암만 따라와봤자 인간이 주는 그까짓 고통이야 백년미만입니다. 제가  주면은 얼마나 줄것입니까? 그것이 도우면 얼마나 돕겠습니까? 필요하면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앞으로 영원 무궁인 이것이  우리의 구원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불리한것, 모든 더러운 것을 당신이 다 제거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는 구원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하고 좋은것, 이것을  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영원까지 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하에 이런 종교가 없습니다. 불교는  석가모니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는 불교는 영원한 때 전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불(佛)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당신이 만물을 지으셨다고 당신없이 지은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당신이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하여 끝이 없는 영원한  구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과거로도 하나님의 존재하신 그후부터 미래로 영원  계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더러운 것을 제거하시는 구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구비하시는 구원, 이것을 한말로 말해서 나타났으니  사죄요. 사죄는 우리에게 모든 불리하고 더러운 것을 제거한 것이 사죄입니다.

칭의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요한 것을 구비한 것이 칭의입니다. 새생명은  창조주와 우리와의 밀접하게 일체는 안됐지 마는서도 결합의 일동을 할 수 있는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일동 일정을 할 수 있는 이것이 새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양식을 먹어야 됩니다. 우리의 인격이 이 양식을 먹어야  자랍니다.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마는서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영원한  때 전부터 나를 구원하시기로 인간의 지식이 도달하지 못할 인간의 지식이 파고  들어가지 못할 인간의 지식이 궁극하지 못할 영원한 때 전부터 시간만이 아니고  섭리도 역사도 종류도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의 모든 범위, 모든 종류,  모든 시간에서 영원까지의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다 온전하다  말은 하나님이 간데까지 가야겠고 하나님이 계신데까지 계시야되겠고 하나님이  아시는데까지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이 가지신데까지 가지야 되겠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데까지 역사해야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하여 영원에 이르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이 이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들입니다. 영원성이 아닌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폭이 닫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인 진리를 새김질하고 먹을 때에 우리는  자랍니다. 어떤 것이 자랑해도 '너는 끝이 있어. 암말이라도 해봐. 죽이도  죽이고 죽여도 영원히 죽이지를 못해. 나는 살았어. 우리를 죽일자가 없어.

우리를 멸할 자가 없어. 우리를 꺽을 자가 없어. 꺽든 그것은 꺽어지고 없어져도  우리를 꺽을 자가 없어.' 이것이 우리이 구원입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소유는 영원성의 것이 아니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도 영원성의 완전성의 것이 아니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이웃을 따라서 흥흥 기뻐하지 진정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  아니면 내 기쁨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기쁨이 아닙니다. 영원한 근심아니면  여러분들의 근심도 아니고 내 근심도 아닙니다. 왜 그까짓 근심이야 얼마있다가  지나가고 사라지고 근심케 하는 자도 사라지고 근심케 하는 모든 방편도  사라지고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게서 우리의 모든 제한된 존재는 무한성으로 자라갑니다. 여게서 갖혀있던  모든 감옥헤서 해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죄라 말은 잘못된 것이라 말입니다. 삐뚤어 진것이라 말입니다. 온전치  못한 것이라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말씀했습니다. 나라를  삼다니 하나님은 우리만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전부는  우리를 위해서 기울이시고 우리는 당신의 영광이요, 당신의 기업이 되시고  그밖에 모든 만물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시작된 구원이요. 영원의  끝이 없는 우리의 구원이니 우리가 그 실존적으로 우리가 그 모든 요소적으로 그  분자적으로 그의 종별적으로 이매 우리가 알기전 무한한 과거가 우리 위해서  있었고 역사했고 앞으로 영원 무궁의 것이 우리 위해서 기다리고 있고 역사하여  이 가운데서 영생할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연구한 자마다 땅에 것을 찾지 않습니다. 썩어질 것 가지고  영원한 이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제한된 것 가지고 무한한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욕된 것 요거는 좋아하지만은 이북은 ○○○이를 좋아하지만은 이남은  싫어해. 이남사람은 이남을 좋아 하지만 이북사람은 싫어해. 요기다 욕된  것이요. 모든 것이 다 이것이 편벽되고 온전치 못해서 이것에게 영광은 저것에게  욕되고 저것에게 영광은 이거 욕되지만은 이런 것을 욕된 것을 쓰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이것을 가지고 이 구원에 맞추어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다 없어서는 안될 참된 존재로 자기를 구속하여 갈수 있는  이것이 오늘입니다. 우리는 하루있다 말것을 일년있다 말것을 십년있다 말것을  백년도 못갈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아서 기대하고 자기의 기업으로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은 그는 눈먼자라 눈먼자. 눈먼자라. 가련한 자라.

 그런고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하라" 네 자율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의 말씀과 네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네가  지혜 눈이 밝아 봐라. 무한의 세계가 보일 것이다. 모든 존재의 전체 세계가  보일 것이다. 네가 이제까지의 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국부적이며 얼마나  지역적이며 얼마나 편견적이냐. 전부가 너희것인데 이런고로  이제것이나장래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땅에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너희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합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주신것인데 이 구원의 끝은 영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영원히 입을  자입니다. 두가지 도우심. 우리에게 모든 더러운 것을 영원히 제거하시는  도우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영원히 충만해 주실 하나님의 도우심. 이 은혜를  영원전부터 입어 영원후까지 입을 자들입니다. 우리는 영원전에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의 예정이 우리에 있답니다.

모든 영계와 물질계 창조가 우리에 있답니다. 우리에 있답니다. 이런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불에 타 죽이도 상관없고 목비워 샀는데도 상관없어. 우리의  구원은 영원해. 우리를 죽이봤자 그까짓기 며칠 가겠소. 몇달 가겠소. 몇해  가겠소. 몇백년 가겠소. 주님오시면 다시 모든 것이 복구됩니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제한된 것이 무한한 것으로 수치스러운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모든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으로 다 신령하게 변화를  받는 것이 이것이 우주의 종말인 예수님의 재림이요. 이 우주는 다 새롭게  되어서 이렇게 죄악에게 이렇게 저렇게 이용됐지 마는서도 앞으로는 불의에게  이용되지 않는 세계로 새로운 세계로 땅은 영원히 있고 우주는 영원히 있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영원한 구원은 받은 자다. 나는 영원히 사는 자다. 영원히 있는  자다. 하나님이 영원한 은혜를 받는 자다. 이것이 우리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고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으로 말미암았다 했습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자기의 뜻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완전 불변 영원의 당신의 이 뜻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내  구원을 해하지 못해. 나를 죽이지 못해. 죽여서 저희들은 불에 태웠지만은  태워지지 못해. 그 태우는 거는 잠깐이요 나를 구원함은 영원이기 때문에 그가  따라오지를 못해 불을 태울때에 조롱을 합니다. '네가 나를 태우나 몇해나  태울것이냐. 태워보라.' 태우고 나니 또 있습니다. 태우고 나니 영원을 그가  태우고 있습니까? 약한 자는 강한 자를 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한의 것이  무한의 것을 멸하지 못합니다. 무한의 구원을 유한의 것들이 멸하지 못합니다.

 이러기에 세상을 보고 호령치고 조롱하고 담대한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영원한 구원인 것을 깨닫고 나는 영원 존재라. 하나님의 구원을 영원히 입기로  당신이 결정한 자라. 하나님의 구원을 영원히 입기로 당신이 결정한 자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히 있는 자라. 나는 영원한 자라. 나는 영원한 자기  때문에 영원의 것이 아니면 내것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를  가려서 영원성의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습니다. 영원성의 것이 아니면 우리에게  왔으면 이것을 가지고 영원성을 마련하는 데에 투자를 할지라도 이거로의 자기의  것이라고 가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 존재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조브랍지 맙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지 맙시다. 일시에  유혹에 미혹받지 맙시다. 우리의 쾌락이라면 영원성의 쾌락이면 우리  쾌락입니다. 영원한 존귀면 우리의 존귀입니다. 우리의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양식을 먹읍시다. 우리의 인격은 지식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이치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영감과 진리의 도리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논리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평가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결과를 먹고 자랍니다. 땅위에 있는 이런 저런 모든 행위는  그것을 일시에 음료수나 그 속에 영원성이 들어 있는 것 그것만이 우리의 참된 양식입니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씀하신 것은 다 영원성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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