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07:46
우리의 구원
1982. 3. 3. 수야
본문: 디모데후서 1장 3절 - 9절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다음주일 주일학교와 중간반 학생들의 공과입니다. 제목은 우리의 구원 공과를 한번 그대로 읽겠습니다. 참된 기독교의 모든 기독교와 아니 참된 기독교 외 모든 유사의 종교 사상 주위 도덕 철학 기타 수많은 모든 것은 그 근원이 다 사람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근원이 아무 것도 없을 때에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이 기독교의 근원이시다. 자존하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원하시는 온전하신 뜻으로 작정하시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존재적으로는 제 이 순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이 구원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 제 삼위를 삼위가 되었고 이 구원을 위하여 예정하신 대로 영계와 우주의 창조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존재의 순위로 제 사위가 된다. 사위에 속한 이것들이 모든 이 종교의 지식 사상이니 이는 기독교와 비교할 동류의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구원을 위하여 이용될 것으로 창조된 것들입니다.
둘째.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피조물은 고대하고 있으며 모든 예정 순서는 순위대로 하나씩 역사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구주의 크심과 모든 이루어지는 순서에 대하여 서로 존재에 대하여서 알지 못하면 안 된다. 확고한 지식으로 굳게 서 이 모든 것을 활용하여 예정한 순서대로 우리 하나님께서 큰 힘들여 만들어 주신 현실을 바로 이해하고 기쁨으로 이용하여 주의 기대와 우리의 구원에 잘못됨이 없게 하여야 한다.
이 믿음을 가졌는지 말 뿐이요. 실상은 가지지 못하였는지를 수많은 현실로 우리를 연습시키시고 시험하신다. 어데서나 주님과 나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만 현실 속에서 현실 속에서만 감사와 기쁨과 욕망과 넘쳐 순생과 순교로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그런고로 우리는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며 감사의 눈물로 걸어가며 믿음의 조상으로 자기의 행적을 쌓아 많은 이웃에게 귀한 믿음으로 불을 일으켜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영원히 왕으로 하나님으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가 모시고 살터인데 그를 섬기는 일은 영원히 할 수 있지마는 그를 위하여 억울함과 욕과 수치와 멸시와 천대와 매맞고 갇히고 죽는 일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일은 세상에서 못 받으면 다시 못 받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난 다음으로 주를 따라 주를 만날 그 날 그 날을 준비하여야 한다. 잠시후면 십자가의 성도가 영광 중에 주와 함께 사는 것을 우리가 볼 날도 가까이 있다. 이 공과 대로 읽었습니다.
첫째로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뭐 그 종교의 수가 헬 수 없을 만치 많고 또 사상도 별별 사상이 다 있고 주의도 별별 주의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지어놓은 책에는 별별 것을 다 많이 말을 했고 더욱이 철학자들은 모든 존재의 근원을 연구한다고 하는 것이 철학인데 그들은 책임 없는 말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그 속에 주관하는 신은 공중에 권세 잡은 약한 신입니다. 악한 신이 사람들을 붙들고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 찾지 못할 만침 수많은 길들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사람을 속여 멸망케 하려는 악령이 그와 같이 만들어 논 것이고 천하의 인간의 승리의 구원을 얻는 길은 한길뿐이라고 성경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종교나 사상이나 도덕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은 그것이 다 사람에게 나온 것이요. 그것의 근본이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 중에 하나인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어데서부터 근원이 됐는고 하니 영원전 하나님이 홀로 계셨습니다. 홀로 계신 하나님의 홀로 계신 사랑, 홀로 계신 기쁨, 홀로 계신 소원 이 하나님께서 소원하셔서 하나의 목적을 정하신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목적을 정하신 이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이런 자를 만드셔 가지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렇게 만들어진 자들에게 주시고 이렇게 만들어진 자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영계나 우주의 모든 창조들에게 영원히 주는 자로 은혜를 베푸는 자로 하나님 대리의 은혜 베푸는 역사를 다스리는 역사를 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목적 곧 이것이 기독교요. 기독교의 구원이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교회인 이 기독교는 하나님이 정하신 그 목적이 교회화 됐고 그 목적이 때가 되면 때가 되매 예수님이 대속하신 후에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어지게 된 순서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전 홀로 계셨고 하나님이 계신 그 다음에 둘째 번에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 다음으로 있게 된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구원 이루는 데에 필요한 것,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영원히 이 구원이 살수 있는 그 영원을 단번에 다 계획을 세워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예정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정은 있어진지 있어진 그 순서로 말하면 처음에 하나님 홀로 계셨고 그 다음에 둘째로는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의 구원이 있게 됐고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이 예정이 셋째 번에 있게 되었고 예정하신 이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셔 가지고 이 창조를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용을 하실려고 창조를 하셨으니 이 창조는 넷째 번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이 종교나 모든 철학이나 그런 것은 넷째 번에 있게 된 이 창조 이후에 그런 것들은 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기독교외에 사상이나 주의나 지식이나 영물이나 인간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있게 된 그 순위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순위에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이 세상에 많은 도라고 말하는 사상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과는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비교를 하지를 못합니다. 그 모든 것은 기독교 곧 하나님이 정하신 이 목적을 이루시는 데에 이용하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이용을 하려고 만드신 것과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을 만드실 그 구원과 이 기독교 곧 구원과 교회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모든 것은 무신론을 말하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환영을 하든지 대적을 하든지 하늘에서나 땅의 것이나 그 모든 것이 기독교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구원과 무슨 비교를 할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 예정 순서대로 한 순서 한 순서 교회를 건설해나가는 기독교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전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한 순서 한 순서 이 역사세계의 일들은 순서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시는데 이미 지어놓으신 그 만물을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순서대로 이용을 해서 기독교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어떨 때는 열 가지를 합해서 하나도 만들고 하나로 가지고 또 몇 십 쪼가리로 내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대로 만들고 어떨 때는 우리의 구원을 반대를 함으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고 환영을 함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전지자의 지혜로 모든 피조물이 기독교의 구원을 위해서 적절할 때에 잘 이용이 되어 가지고 구원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예정하셨고 섭리해서 이용은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전지자의 그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시는 것인 고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는 맞다 안 맞다 이거는 틀린다. 이거는 우리 구원에 유익이 된다. 안 된다. 하는 그것은 우리의 조브라운 생각으로 지혜로 볼 때에 그러하고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의 성경 말씀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이 예정되어 있는 그 순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 순서가 이루어지면 고 다음 순서가 계속해서 그 순서가 이 세상 끝날 또 그 다음 무궁세계 영원히 그 순서가 쌓여 가지고 그대로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 한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 구원은 고난은 몇 백 번 몇 천 번 놀랄 일은 몇 백 번 몇 천 번 답답할 일은 몇 십 번 죽을 고비는 몇 번 병드는 역사는 몇 번 우리 구원을 요 사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요 사람에게 요런 구원을 이루어 주셔야 되겠는데 요런 구원을 이루려는데 요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무엇 무엇이 필요로 한다 하는 고것을 딱 예정해놓고 고 필요한대로 다 만들어놓고 고때 고때에 하나님의 섭리로 재창조도 하시고 개조도 하시고 종합도 하시고 이렇게 분리도 하시고 몇 백 번 세웠다가 탁 깨트리는 걸 보여서 보라 이러면 깨진다 보라 뭘 깨져요. 보니 깨집니다. 오만 구경을 다 시키고 오만 경험 체험을 다 시켜서 우리의 지식을 점점 새롭게 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점점 믿는 자 되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그대로 주권의 능력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성취해 나간다하는 것을 점점 알아 이 지식과 소망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자라가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순서는 지금 꼬리를 물고 죽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서 다음에는 요 순서 조 순서 이러기에 이 순서가 우리 어리석은 마음으로 볼 때에는 그때에 돌발적으로 무슨 이유로 인해서 탁 나타난 것 같지만은 아닙니다.
영원전 하나님이 딱 세밀히 하나도 개미 한 마리 나고 죽는 것도 제대로가 아니고 전부 순서 속에 다 든 고 순서대로 나타나게 하시고 또 그 순서를 만드시는데 그 순서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각자의 현실 이 사람에게 이 순서 곧 이 현실을 만들고 저 순서 저 현실을 만들고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이용해 가지고 큰 힘을 드려서 이 순서대로 우리의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러면 이 현실을 만든 데에는 하나님의 창조한 것이 다 여기에서 활용이 돼야 현실이 되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이 현실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정대로 요래 요래 몇 가지 순서를 거쳐 가지고 요게 만들어지고 몇 백 가지 순서를 거쳐 가지고 요게 하나 만들어지고 요렇게 하나님이 물샐틈없이 예정하신 고 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활용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현실을 만드십니다.
마치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을 온갖 보호를 입어서 그 안에서 자라가지고 배 밖에 나와서 살만하면 이제 하나님이 그 배 밖에 나오도록 해산하게 합니다.
그러면 배 밖에서 나와서 자라게 됩니다. 우리는 배속에다 넣어 가지고 길러 가지고 이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우리 몸에서 내놓지마는 이 새 짐승 같은 것은 보면 자기 배속에서 기르지 안하고 알을 낳아 가지고 아무리 여름에 더울 때라도 그저 색색거리면서 가슴이 발딱발딱하면서 참 털이 다 빠질 만치 이 알을 품어 가지고 제 체온으로 이걸 따시게 해 가지고 한 이십 여일 품으면 그때 이 공간 속에 나와 살만 하면은 그것이 새 새끼가 되어 가지고 부화되어서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구원을 이루시려고 이 현실을 만든 그 현실은 우리 사람으로 만하면 어머니의 태와 같고 새 짐승으로 말하면 자기 품안에 이 품어 가지고서 새끼가 되어서 부화되어 나오기까지 나래도 품어 가지고 기르는 것처럼 새로 비하면 이것이 우리 주님의 나래 안이 우리주님의 그 나래 밑이 우리의 현실이요.
사람으로 비하면 우리 어머니의 그 태 속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욕망대로의 온전한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무궁세계 가 가지고 자유롭게 영광스럽게 그 사명을 감당하고 살 수 있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암탉이 알을 품듯이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태 속에 보호해 가지고 기르듯이 이렇게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이 속에서 우리를 기르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그 환경을 선물로 주셨다" 암탉이 병아리를 나래 아래 품는 거와 같이 너희들을 품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암탉이 병아리를 알을 나래 아래 품듯이 이렇게 품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현실을 통과하면 모든 요 다음 요 다음 내 현실에 이용될 만물은 발발 떨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둔해서 모릅니다. 우리가 만물보다 명철한 것 아니요. 우리는 둔합니다. 내 현실에 그때에 이용될 만물이 있는데 이용될 만물들은 알고 있습니다. 백 목사의 이 시간 여기에 이용될 것 요 다음 시간에 이용될 것 김 무엇이의 요 시간 이용될 것 우리 강 장로님에게 요 시간 이용될 것 모두다 그 이용될 현실마다 이용되는데 그 현실에 이용될 모든 만물은 기다리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압니까? 발발 떨면서 탄식을 하면서 기다립니다.
왜 그 이용되어 환경을 우리 현실을 만들었을 때에 현실이 되었을 때에 내가 그 현실에서 내 구원을 이루어가게 되면 그 현실에 중심 된 내 구원을 이루었으니까 그 현실에 소속한 것은 전부 구원입니다. 그 현실에 속한 것은 전부 구원이기 때문에 그 만물이 멸망치 안하고 구원이 되고 그때에 그 현실에 주인공이 되는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실패해 버리면 내 구원만 실패할 뿐 아니라 그 내 구원을 이루기 위한 이용되는 현실에 등용되고 등장된 그 모든 것도 실패입니다. 모든 것도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만물은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순서 순서의 자기 현실이 닥쳐오는 그 현실에 세상에서 종이 되지 안하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자로 담대히 자유롭게 걸어가 세상에게 꺾어지지 안하고 요동치 안하고 자유하는 하나님의 뭇 자녀들이 영감과 진리대로 그 사는 이 자유의 걸음을 걸어가는 것을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걸어가면 그 현실의 주인공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을 이루시면 그 현실에 이용된 모든 만물도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 죽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해 버리면 거기에 등용되고 관련된 모든 만물도 다 한꺼번에 실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만물의 구원이요. 우리의 실패는 만물의 실패입니다.
그러기에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뭇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이 존재가 있기 전 또 그 전 거기 있었다. 모든 존재가 있기 전에 있었다. 모든 존재가 있기 전 예정 예정 전에 우리의 구원이 있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실을 만드시는 데에는 큰 힘을 드려 마치 아이에게 어머니의 태속 같이 그대로 두면 죽습니다.
그 새알에게 어미 새가 품은 그 나래 같이 그 매미가 굼벵이가 매미 되기 위해서 굼벵이 껍질이 그렇게 여물게 안에 있는 굼벵이를 이렇게 보호함으로써 그 안에서 비로소 부화가 되가지고 매미가 되는 것처럼 요렇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큰 힘을 드려서 큰 자존하신 이 사랑이 자존하신 기쁨이 자존하신 소원이 자존하신 지능이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이용해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주신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됩니다.
우리 현실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현실을 만들었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현실을 만들었는데 뭐하려고 이렇게 이 현실 만드는데 야단인가 요 현실을 만드는 것은 요 현실 속에서 당신의 이 목적을 부화시키듯이 어린아이를 태 안에서 길러 가지고 배밖에 내 놓은 것처럼 이 세상 속에서 길러 가지고 무궁세계에 내놓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 현실을 만드신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요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조브라운 지식으로 볼 때에는 손양원 목사님을 예수 믿는다고 총부리로 인민군이 때리는 그것이 무슨 손양원 목사님을 그 손양원 목사님 현실인데 그 현실이 총부리로 가지고 손양원 목사님 전도한다고 두드려서 이가 다 생 이가 다 빠지고 이렇게 박해를 주는 그것이 손양원 목사님 현실인데 고것이 손 목사님의 현실인데 고렇게 만들어진 그 현실이 손양원 목사님 현실인데 고것이 손 목사님의 현실인데 고렇게 만들어진 그 현실이 손양원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온전케 만드실려고 하는 이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기쁨이 하나님의 소원이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섭리가 이래 만들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태요 사랑의 태요 사랑의 나는 이치요. 이것을 누가 이해를 합니까? 그러나 하늘의 법칙은 딱 맞습니다.
이렇게 해서 손양원 목사님은 그의 일생생애에 자기 두 아들 순교한 것도 위대했지마는 그 위대는 위대가 될는지 안될는지 나는 지금 판정을 안 짓습니다.
왜? 그때에 그들에게 뭐 어떻게 됐는지 이러나 이 손 목사님은 일생동안 살았지마는 그가 그런 역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어느 정도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도수가 그때에 제일 높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충성되이 순종한다는 것이 그때에 최고 결정으로 높은 순종을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인간 구원에 불이 붙었지마는 평생 인간 구원에 자기를 기울이는 것보다도 그때 인간 구원에 기울이는 그것이 최고봉입니다. 마치 탑을 쌓다가 위에 꼭지를 안 해. 안 만들면 그 탑은 수치가 되어지는 것처럼 손양원 목사님은 일생동안 살았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6.25때에 인민군들에게 그렇게 당한 뭐 개운한 승리 아름다운 승리 참 놀랠만한 이런 영광된 승리 요것이 없으면 탑을 싸놓고 꼭지를 안한 거와 꼭 같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일생동안 주를 위해서 살고 마지막에 죽음에서 주를 사랑하고 주를 높이고 죽음에서 형제를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려고 순교하려고 밤낮 애를 쓰고 고대하고 그 폭탄 속에 그 속에 거게서 집에 앉았으니까 그 집에 앉았으니까 이웃은 다 날아갔습니다. 저 그때 가보니까 앞집이고 옆집이고 전부 다 날라 가버렸소. 주남선 목사님 계시는 고 집만 있습니다. 거기에서 왜 그리 기다렸느냐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너 예수 믿는 목사인데 너는 죽이야 된다'하고서 그 인민군 손에 주의 이름으로 죽으려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어도 하나님이 안주니까 순교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평생에 그분의 소원이라면 주님 나 위해 죽으셨으니 나 주님 위해서 죽고 주님 나 위해 다 바쳤으니 나 주님 위해 다 바치는 요것이 평생소원인데 고 소원을 이루어졌다면 주남선 목사님에게는 최고의 대접이요.
가장 주남선 목사님을 행복 되게 만들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그런 현실이 주남선 목사님에게는 그런 현실이 와지지를 안 했던 것입니다. 이라면 주남선 목사님이 그렇게 박해를 당하는 그 현실이 하나님의 사랑의 태 속이라 하나님의 기쁨의 태 속이라 하나님이 당신 같은 온전자를 만드시려고 하는 소원의 태 속이라 전지전능의 사랑의 태 속이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 순서를 확신해야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 한 분이 자존하셨고 고 다음에는 하나님 다음에는 하나님이 소원하신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들어주시겠다는 당신의 목적 요것이 둘째로 있었는데 요.
둘째 목적 요 속에서 우리가 다 나왔습니다. 우리가 그때 있은 것은 아닙니다.
그때 있는 거는 아니지만은 목적, 이 안에서 우리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이 목적 안에서 안에 있는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지음을 받았지만 이 목적 안에서 그 뒤에 지을 때 이 목적 안에서 지었습니다.
셋째로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집 지을 사람이 설계하듯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정 이 예정이 셋째 번 순위로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넷째 순위로 있는 것은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입니다.
이렇게 이 네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순서대로 창조한 것을 이렇게 저렇게 활용을 해 가지고 제 유익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목적 이것을 달성하려고 하나님이 하시는데 달성하려고 하실 때에 어떻게 우리 구원에 적용을 시키고 적용을 시키느냐 하면 하나님 목적이 우리의 구원 둘째 번에 있는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셨고 창조하셨는데 예정한 순서대로 이 창조된 것을 이렇게 저렇게 이용을 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되게 하시니 우리의 구원이 되도록 이 둘을 여기다 적용을 시킬 때에는 어떻게 적용을 시키느냐 우리의 현실로 적용을 시킵니다.
우리 현실로 적용을 시켜서 우리 현실을 이분이 예정한대로 창조한 것을 이렇게 섭리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적용을 시키는데 적용시키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누가 만드셨느냐 하나님의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당신이 예정하신 대로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이렇게 섭리로 활용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이 현실을 만든 것이라 하는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이러기에 이 우리 구원에 이용되기 위해서 벌써 만물을 지음 받아 가지고 지금 까지 고대하고 있습니다. 로마인서 8장에 보면은 벌벌 떨면서 고대하고 있다했어 기다리고 있다 했어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다 했습니다.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이용되려고. 왜? 이용되면 우리는 그 현실의 주인공으로서 성공해서 영원무궁의 완전을 마련하고 그때 이용된 그 모든 것은 내가 승리해서 구원 이루어지면 그 모든 것도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생의 것으로 다 새로워집니다.
이것을 가르쳐 성령의 만물을 새롭게 하는 그 나라는 변동 없이 다 하늘나라도 모든 만물들이 새로워진 만물 이 만물은 영원히 청산한 이 만물들이 하늘나라에 새로워져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러므로 우리는 요 현실을 만날 때에 요 현실은 하나님의 소원인 목적인 우리 구원을 이루실려고 우리 때문에 한 구원 같으면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변동될 때에 우리 구원이 깨지지만 우리 구원은 우리 때문에 이 구원이 작정되고 이 목적 세운 게 아니라 당신 혼자 세웠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이 세웠고 기쁨이 세웠고 소원이 세웠고 완전자의 불변자가 이 목적을 세웠기 때문에 이 목적은 불변적이요 완전적이요 기쁨의 것이요 사랑의 것이요 소원의 것이요 이 자존자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영원 불변성의 것입니다.
이 구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근원이 하나님이시요. 또 이 구원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 같으면 그게 변동이지만 자존자인 당신 혼자 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 혼자서 없는 가운데 지으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에 당신은 실패가 없고 실수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후회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좁은 범위에 볼 때에 요 면으로 보면 후회가 있지마는 넓은 범위이기 때문에 요 면으로 후회될 요것을 넓은 범위를 위해서 요것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을 만날 때에 요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할 일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데는 하나님이 일을 못하십니다. '이 병을 낫게 해 주옵소서'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할 때에 한자리에 있지마는 믿는 자는 나았고 믿지 않는 자는 낫지 안 했습니다. '믿으면 된다' 이랬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따른다는 말인데 믿음의 반대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거게는 하나님이 역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을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우리구원에 유익 되도록 적용시키는 데에는 우리 할 일은 뭐이냐 우리의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이 현실도 하나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을 이용하시고 내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내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섭리로 이 일을 만들어 내 구원이 자랄 구원에 모태다. 내 구원이 자라는 구원의 모태다 내 구원이 부화 받을 암탉의 나래 밑이다.
그러기에 이 전부는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는 요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고 믿음을 통해서 일할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긍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이지만은 고 범위 내에서는 우리에게 유한한 자유를 줬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요 자유로 능동적으로 믿을 때에 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역사 하시도록 고렇게 예정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 내 현실을 고렇게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구원이 복되게 예정되지 아니한 그것이 그대로 표시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믿지 못하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속이요 폭탄을 들어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독침을 가져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것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예정하신 고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 현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확신을 가지고 요게서 요 현실을 오해 해 가지고 이 현실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태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고 현실이 자기를 해하는 그런 무서운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 뿐입니다. 요 현실이 내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 사랑이 하나님의 기쁨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섭리하셔 가지고 내 구원을 이루는 어머니의 태와 같은 현실이다. 요 현실이 아니면 나는 낙태가 되고 나는 미완성품 미완성 존재로 되고야 만다. 요 현실에서만 완성될 수가 있다.
요 현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어지는 고 믿음을 가지든지 그렇지 안 하면 그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라 다른 것이 내 구원을 해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으로 그렇게 오해를 생각을 하게 되든지 그렇지 안 하면 마귀라는 놈이 꾀어서 요 현실은 네 돈벌이하라고 만들어진 현실이다. 요 현실에는 네가 돈벌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현실에는 네가 출세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뭐 마귀라는 놈이 와 가지고 요 현실에서 고거해라 조거해라 네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요 현실은 이거 해야 될 일이다. 또 저거 해야 될 것이다. 이렇게 꼬우는 것은 전부 그거는 다 마귀가 꼬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공산주의가 만드는 것도 아니요 민주주의가 만드는 것도 아니요.
부모가 만든 것도 아니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우리 눈에 보일 때에는 이것저것이 만드는 것같이 보여지지만은 그것은 하나님이 내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저 일찍부터 만들어 놓은 것을 이렇게 종합도 하고 분리도 시키고 가감을 해 가지고 내 현실을 똘똘 뭉쳐서 고 현실 속에 내가 폭 들어앉아서 고 현실에서 내가 부하가 되고 내가 성장이 되어지도록 내 현실을 딱 만들어 가지고 고 속에 나를 덜어있게 한 것인데 마귀라는 놈은 우리를 미혹시키고 이 현실에는 참 돈 벌이기 좋은 현실 이 현실 네가 이 현실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이 현실에서 여기에 서서는 돈벌이를 해라 여는 출세를 해라 네가 뭐해라 요렇게 악령이 고 현실을 내 구원을 위해서 사랑하시는 주께서 만드신 이 귀한 내 구원의 모태인데 내 구원의 모태인데 여기에 서서 모태니까 여 구원만 자라는 이것이지 여기에서 돈 자라는 것 지혜 자라는 것도 아닌데 이것을 악령이 악용을 하도록 잘못 오용을 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니 자기 현실에 나 위해서 생명까지 버려주신 천지 만물을 당신이 지으신 요한복음 1장에 당신이 지었다고 안 했습니까? 지은 것이 그가 없으면 지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한 것입니다.
세상도 그분이 지었습니다. 나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요. 우리 구주시요 창조주시요. 또 구름 타고 재림하실 주님이십니다. 이분이 내 현실을 지었다하는 것입니다.
이분이 이 내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현실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이용을 해서 내 현실을 만드셨다. 내 현실을 만드는 데에 이용될 것을 언제 지었느냐 태초에 지었다. 그걸 이제까지 보존하고 계시다가 이렇게 현실을 만드는데 적절하게 그 모든 것을 끄어다가 말했습니다.
공산주의가 필요하면 공산주의 끌어다가 내 현실을 만들고 공산주의 독침이 필요하면 독침을 끌어다가 내 현실을 만들고 애매하고 공연히 나를 욕하는 요게 필요하면 요걸 끌어다가 현실을 만들고 별별 현실을 만드는데 조브랍게 생각하면 그 현실이 우리구원을 방해하는 것 같지만은 결과적으로 보면은 그 현실이 우리 구원을 금을 불로 연단한 거와 같이 우리구원을 연단 시켜 내 인물을 연단 시키고 사상을 연단 시키고 믿음을 연단 시켜 가지고 아무데나 변하지 않는 것 또 허영과 허욕을 다 태워버리고 순금처럼 진실한 자를 이렇게 만든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뒤에 보면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우리 현실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만드셨다는 것 이 현실에 등용된 모든 것이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전능의 능력으로 만드신 그것이라는 것 내 현실에 이렇게 저렇게 모든 닥치는 그것이 내 구원 위해서 전지 하신 주님이 예정하신 고 예정 고 식대로 고 방법 고대로 고 순서 고대로 고 모양 고대로 고 되어진 고대로 만들어졌다 말이요. 거게는 그 현실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요소는 마귀도 들어가고 공산주의도 들어가고 민주주의도 들어가고 돈도 들어가고 병 병이 필요할 때에는 병도 들고 전쟁도 들고 뭐 독침도 들고 욕도 들고 천대도 들고 이런 죄도 들고 별별 기 들었습니다. 다 들었어. 고래가지고 우리 현실을 만들었는데 요 현실은 요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 이루기 위해 적절하게 만들어 놓은 현실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마산에 어떤 집에 한번 갔는데 가니까 새를 기르는 집인데 내 새집에 들어 가보니까 위에 보니까 보이지 안 해 자세히 들어보니까 구멍이 요만한데 어떻게 뭘 물어다가 뱅뱅뱅뱅 돌려서 아주 묘하게 만들어 가지고 껍데기는 이렇게 큰데 속에는 꼭 달걀하나 들어 갈만한 고런 아주 묘한 집을 딱 만들어놨어 그 만들어놨는데 제가 보고 아 그놈 참 집 잘 지었다. 아주 거게 그 새끼가 잘 부화가 되겠는데, 그러면서 네가 이거는 볼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참 천국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 네 현실은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그 사랑으로 요렇게 조렇게 모든 것을 가지고 요렇게 아주 아늑하게 네 현실을 만들어줬는데 네 현실은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께서 만드신 고 현실 고 현실 속에 네가 거기에서 부화되고 성장되고 연단 되는 그것인데 이것은 네 눈으로 볼 줄 알지마는 네 현실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하나님의 사랑의 태 속이라 하는 것을 보느냐 하는 그것을 내가 거서 찾아 느끼고 이쪽에 나와 가지고 가만히 서서 주여 이것도 자연계시입니다.
이거는 묘하게 집 지울 줄 아는데 주님이 내 현실을 이렇게 공들여 지었다는 그걸 그거는 내가 몰랐습니다.
이라면서 그 그것을 좀 새김질하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한 것이 좋습니다. 네 요것이 요 현실을 왔을 때에 현실을 당했을 때에 고 현실이 되기까지에 거기에 따른 그 위에 있는 그 모든 전지의 조건 모든 것을 자기가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요 현실을 맞이하여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요 현실에 대해서 깨닫고 요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기쁨이요.
다시 말하면 내 구원이요 속에서 부화되고 요 속에서 양성 성장될 수 있는 요 현실이라 하는 것을 깨달아 자기가 온전히 기쁘게 여기면 그때에 하나님은 거게서 역사하실 수가 있고 마귀는 요것을 오해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요 현실은 요게 써라 조게 써라 해 가지고 요 현실을 하나님이 목적하신 거는 지극히 큰걸 이루기 위해서 요 현실 만들어졌는데 요 현실을 마귀가 와서 꼬우니까 요 현실을 엉뚱하게 달리 써 가지고 다 허비하고 낭비해버리고 말고 또 이 현실을 이해 못하니까 어떨 때는 두려워서 실패하고 욕심나서 실패하고 꼬임으로 실패하고 눌려서 실패하고 이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 현실을 바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아무것도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사는 그 동안에 모든 것이 필요하지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 것도 어제 것도 다 필요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똑 현실 요것만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새집 짓듯이 요렇게 큰 힘들여서 만들고 만들어 놓은 우리 현실은 요 현실은 내가 부화할 요 현실이요 내 가정 금 같이 연단 받을 현실이요. 내가 하나님의 형상화될 현실이요. 온전한 믿음이 이루어지는 현실이요. 하나님이 전적으로 와 가지고 역사 하실 수 있는 요 현실인 것입니다. 요것을 이해를 못하면 모두가 다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 이 조성자 현실에 조성은 현실에 조성 자 내 현실이 왜 만들어져 있느냐 현실의 존재 목적 이 현실에서 내가 할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현실에서는 공부를 해야 되겠다. 고것도 아닙니다.
이 현실에서는 사업을 해야 되겠다 그것도 아니요. 고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자기 구원 이루는 것 고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것 없습니다. 고것만 하면 돼요.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데 고 현실에 믿음 지키면 돼 고 현실에 하나님이 시키고 현실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고대로 하면 하나님이 공부해야 구원 이룰 때는 공부해라 밥 먹어야 구원이 될 때에는 밥 먹어라 자서 자야 구원 이룰 때는 평안히 자라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고 현실 고것만 자기가 행하면 믿음인데 그것만하면 그 현실에 우리의 구원은 다 이루어집니다. 그것만하면 우리 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그 다음은 뒤에 혹 시간 있으면 하겠습니다.
오늘밤에는 우리의 구원은 모든 존재가 있기 전에 있었다는 것 우리구원은 영계와 물질계 이 영계와 물질계가 있기 전에 우리 구원이 있었습니다. 우리 구원 위해서 모든 움직이지는 그 순서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가 크고 작은 것 세계도 하늘도 만물도 땅도 인류도 우리 구원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
그러면 우리 구원 위해서 지었으면 하나님이 우리구원을 둘째로 정하시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걸 예정하시고 모든 걸 창조하시고 했으면 우리구원 위해서 예정하신 것 우리 구원으로 창조하신 것 이것을 우리구원 위해서 있다고 하는데 우리 구원 위해서 있으면 이것을 우리 구원 위해서 작용하실 때에 이용하실 때에 어떻게 이용하시느냐 우리 구원을 위하는데 우리 구원을 어떻게 위하느냐 우리 구원을 위하는 것은 이 모든 걸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서 요 현실이 우리 구원이 되어지도록 요렇게 하시는 것 네 요것이 믿어져야 됩니다. 요것이 확실히 믿어져야 됩니다. 요것이 안 믿어지면 안 돼요.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의 승패는 우리의 현실에 있습니다. 시간에도 우리 현실 요것만 내 것이지 요것만 필요하지 그 나머지 시간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 외에는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현실 외에는 내 힘도 내 지혜도 내 심신도 요 현실의 것만 필요하지 그 다음에는 필요 없소.
그러기에 요 현실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안됩니다. 요 현실을 바로 깨닫고 요 현실관을 바로 가지고 요 현실을 바로 이용하는 요게서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걸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셔 아 나 현실에 뭐가 하나 보여집니다. 하나 보여집니다. 귀에 소식이 들려집니다. 고것도 내 현실 속에 든 것이요. 이 소리가 들린다 무조건 이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내 구원을 위해서 들리는 소리다. 자기 보인다. 조것은 내 구원 위해서 보여진다. 무엇이 쿡 쥐어박는다. 이 쥐 박는게 내 구원 위해서 있다. 나를 욕을 한다. 나를 욕을 한다.
욕은 내 구원 위해서 있다. 내 것을 뺏는다. 이게 뺏는 게 내 구원 위해서 있다.
어리석고 미련한 것 같으나 지혜롭습니다. 그게 모두 현실이요 들려지는 것 보여지는 것 접촉하는 것 모두가 다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누가 만들었느냐! 내 구원을 목적으로 삼으신 우리 주님 창조주 하나님이 이 현실을 만드셨어 뭐 가지고 만들었느냐 내 구원 위해서 창조한 그거 가지고 만드셨지 어떻게 뭐 가지고 만들었느냐 내 구원 위해서 창조한 그거 가지고 만드셨지 어떻게 만드셨는가 내 구원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만드셨지 만들어주시면 그거 가지고 뭘 만들어서 내 구원이 되겠느냐 내 현실 만들어 가지고 내 구원 되게 하시지 그 현실은 내 구원 위해서 있는 것이라 나에게 보배라.
그러면 이 현실을 내 구원 위해서 주셨는데, 그러면 이 현실을 내 구원에 유익 되도록 활용하는데는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활용은 믿음 지킬 것 뿐이라 요 현실에 요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요래라 하면 고라고 조래 하라 하면 조래하고 담대하라 하면 담대하고 떨라하면 떨고 하나님이 고 현실에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고대로 하면 하나님이 큰 힘들여서 만들어 논 이 현실로 말미암아 자기의 구원은 거기에서 부화도 되고 성장도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에 우리의 현실관을 요대로 확정을 지웁시다. 요 확정해요. 그래 요 현실을 요렇게 믿는지 안 믿는지 요걸 하나님께서 자꾸 현실을 바꾸어주기 때문에 바꿔주면 내가 믿고 안 믿는 것 환하이 들어 납니다. 고래서 안 믿는 것도 알고 믿는 것도 알고 자기를 시험해서 확정도 하고 요 현실에서는 굉장히 작용을 합니다. 수많은 면으로 이 현실을 우리에게 적용을 시켜주셔 이용을 시켜 주십니다.
불을 꺼주십시오. 현실을 도적 맞으면 전부 도적 다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