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 주신 큰 구원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3일 수야

 

본문 :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시간에도 우리의 구속주를 찬송할 수 있는 기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사람의 지식이 측량 못하고 또 들어도 이해 못 할 만한 참  지극히 큰 구원이며 무한한 구원이며 영원한 구 원임을 압니다. 그러나 이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너무 유치하고 희박하고 느껴보는 것도 심히 희박하고 이  구원으로 사는 것도 너무도 유약하고 빈약합니다.

 주께서 이래도 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고 떠날  세상을 위하여, 없어질 그것들을 위하여,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소망을 두고 사는  이 어리석음을 주님께서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무지함을 주께서 이해하시고  관용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무한하신 성령님의 감화가 아니고는  우리 스스로는 아무도 들을 만한 지혜도 없고 이해할 만한 능력도 없고 그  가치를 바로 평가할 만한 아무런 역량이 없는 저희들입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사 주님의 주신 이 큰 구원을 점점 깨닫는 가운데서 온 세상을 이  구원을 위하여 다 바쳐 이루어 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이 구원 안에 있는  말할 수 없는 생명과 평강을 세상에서 누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저희들이 과연  행복된 생활로 염려 없는 평강 가운데서 나그네 세상을 조심있게 잘 지내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이 자리도 우리 각자들에게 성령의 감화로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오는 주일에도 이 공과를 가르치게 되겠습니다. 지난 주일은 자기가 깨달은 대로  느낀대로 어쨌든지 학생들에게 이 큰 구원 여섯 가지, 이 큰 구원 여섯 가지 이  큰 복 받은 것을 자기가 깨닫고 느낀 대로, 학생들에게 증거하는 그 방편은  자유로 해서 학생들 그 심령 속에 여섯 가지 구원을 깊이 심어 주도록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했었습니다.

 이런데, 다음 주일에는 그저 요 본문대로, 여게서 혹 한 자씩 두 자씩 그렇게  틀려도 거게 너무 구애를 받지 말고 자기 말하기 좋은 대로 여섯 가지 이 구원을  학생들에게 똑똑히 말해 줍시다.

 '우리들에게 주신 큰 구원'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이 큰 구원을,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시요, 또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우리 아버지된 데 대해서  우리는 참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성경을 보고 상고하고 상고하고 느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된 데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데 대해서  우리는 밤낮 기뻐하고 뭐 참 못견딜 만침, 뭐 참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할 만침  우리는 뛰고 굴리고 좋아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별로이 생각해 보지도 아니하고  느끼지도 아니하고 여게 대한 아무런, 실감을 가져 이 구원을 인해서 우리 사람이  변화되고, 마음이 변화되고, 소망이 변화되고, 완전히 행동이 변화되고, 희로애락이  완전히 변해지는 이 결과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이 큰 구원인데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그저 너무 생각지 안하고 또 실제로 자기가 느낄라고 애를 써보지  안한, 찾지 안한 이 잘못을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자의 아들된 것, 어떤 자가 우리의 아버지된 거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과 비교할 것이 어데 있겠습니까? 세상에 무슨 어떤 권력가나  위인이나 재벌가나 뭐 이런 사람의 아들이라도 그 사람이 자연히 안 그럴라 해도  안 그럴 수 없이 교만해지고 우쭐해지고 이래 되는데, 우리는 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도 생각지 안했고 또 느끼지 아니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고쳐서 이제는 이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니까, 그저, 이 일을 자기가 산에 가 기도하든지, 들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가정에서 뭘 하든지 항상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됐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셨다.' 예수님을 떼 놓으면 내 아버지인데 우리가 아니면은 안  되기 때문에 내 아버지라는 요 단수를 항상 하지 못하고 복수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다.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인데 우리 아버지는  어떠한 아버지신가? 그분이 우리 아버지 됐으니, 나는 그분의 아들이 됐으니.'  이걸 자꾸 좀 생각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자꾸 생각해서, 우리가 참 하나님의 아들된 이를 인해서 얼마나 말할 수 없는  기뻐하고 즐겁고 행복스럽고 영광스럽고 권세 있고 존귀하고, 이래서 어째  생각하면 그 영광을 아버지에게 혹은 가리울까 해서 떨리기도 하고 뭐  우쭐하기도 하고 교만하기도 하고, 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을 인해서  우리가 뭐 한 시간이라도 몇 번이든지 변해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이거 뭐 설명을 암만 하나 안 하나 우리가 다 중생됐기 때문에 성령님이  내재해 계시니까 성령님의 역사로라야 우리가 알지 성령님의 역사 아니면  모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보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신 데  대해서 우리가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이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프란시스가 제자들과 한번 산에 한 달 동안 기도하러 갔는데 '우리 선생님은  무슨 기도를 하는가?' 이렇게 엿들을라고 그들이 갔었는데, 하루 한 끼씩만 식사를  하고 늘 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는데, 그 제자들이 가서  들어보니까 그저 다른 기도가 없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됐으니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한번  불러보고 난 다음에는 보니까 그저 감사해서 못 견뎌서 울고, 또 있다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어 우리 아버지 됐으니까 내게 대한 모든 기업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또, 여러가지 책임감을 느끼면서 또 감사해서 못 견뎌서 울고, 또  주님에게 대해서 '주님은 누구십니까?' 주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데 대해서 또 말하고 생각하고, 그저 한 달 동안 늘 기도하는 것을  제자들이 가서 엿들었는데 그 기도가 단지 네 마디뿐이더라고.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서 아버지가 어떠한 분이신지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이래 하는, 아버지  불러서 기도하는 것, 또 주님이 대속하신 그 주님의 대속을 말하면서 또 울면서  기도하는 거, 또 이렇게 성령님이 자기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간섭하시고 이렇게  세밀히 안보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성령의 은사를 생각하면서 또 감사하고 울고,  또 자기 자신이 '나는 어떤 자입니까?' 하면서 참 자기는 말할 수 없는 이 천한  자인데 말할 수 없는 존영한 자가 된 데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늘, 한 달  동안 기도하는 걸 보니까 다른 기도하지 안하고 꼭 성부에 대해서, 성자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이 은총을 입은 자기에게 대해서 그렇게 그저, 다른 기도하지  안하고 이름을 불러서 말하면서 또 울고 또 감사하고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동안  기도하는 것이 다른 기도가 없더라고.

 그래서 그 제자들이 그 때는 깨닫지 못하니까 '우리 선생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  자신 그래만 불러서 기도하더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 뒤 제자들이 깨달아서  차차 믿는 도인이 되어감으로 그들이 이제 그것을 책에다 기록해 가지고 전해서  저도 읽어봤습니다.

 이래서, 오늘 저녁에 제가 설교를 하려고 하는 것은 준비를 다른 데를  준비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l절과, 마가복음 9장 23절과, 창세기 l장 l절과,  히브리서 11장 3절, 이사야 49장 l5절로 17절. 이 설교를 준비했는데 암만해도  여섯 가지 구원된 구원에 대해서 증거을 해야 되겠다.

 증거하는데 여섯 가지 구원에 대해서 증거하면서 무슨 해석을 하려고 하니까 그  쑥스럽고, 해석할 것 없이 그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자꾸 생각하고, 또 우리에게, 이렇게 이미, 인간이  제일 중한 것이 생명인데 이미 영생을 주어서 지금 영생하고 있는 영생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다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데 뭐 그저 한 몇십 년만 더 산다 해도 그  생명을 크게 여겨서 그 댓가를 참 뭐라고 할 수 없는데 영생이라니? 영원히 죽지  안하는 영생 이 영생을 우리에게 주셔서,  현재 우리가 영생하고 있는 이 영생도 그 뭐, 이런 해석을 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제 영생을 가져서 영생을 하고 있는데 영생하는 이 생명 가지고 살수도  있고 또 첫째 아담의 생명이라면 죽을 생명으로 살수도 있어서 어떤 사람은 죽을  생명으로 살아 그 산 것이 다 멸망이 되고 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서 그 산 것이 전부 다 영생이 되는 이 큰 문제가 있는  이 문제도 우리가,  그저, 기도하려고 할 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밤낮 '나는 영생을 가졌는데 내가  영생을 어떻게 내가 이해하고 있으며 영생의 이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참 영생을 가진 이 사실을 내가 지금 실감하고 있는가?' 여게 대해서 우리가 자꾸  '영생, 나는 영생을 가졌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영생 주시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또 부활하셔 가지고 나에게 영생을 주셨다.' 이  영생에 대해서. 또 우리가 다 모두 늙고 쇠해져서 다 늙어지고 송장되는데  죽었다가 부활하는 이 부활에 대해서 우리가 자꾸 부활, '나는 부활한다.

부활한다.' 다른 해석 붙이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이걸  자꾸 이렇게 부르고 생각하고, 또 내가 가진 영생을 자꾸 생각하고 또 자기가  느껴보고 해석해 보고 생각해 보고, 또 우리는 부활하는 이 부활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고 부활을 또 느껴보고 자꾸 이렇게 하는 이외에 딴것이 없겠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이 큰 구원 얻은 자의 당연한 일이지 뭐 영생이 어떻다,  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됐으니까 아버지가 어떻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그것은 그 한 번 두 번 그렇게 할 일이지 거게 대해 해석을 붙일 필요가 없이  그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된 데 대해서 자꾸 생각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셔서 참, 우리가 구원 얻은 건 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만 해도  피조물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이 큰  구원이며 또 우리가 영생하니까 그뭐 생명으로 그 이상 더 구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이 몸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부활을 우리가  받아 가질 터이니까,  부활 받아 가질 이 부활을 우리가 믿고 생각할 때에 뭐 죽음이 무슨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며, 영생을 생각할 때에 죽음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었으니까 우리의 빈부귀천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이를 자꾸 생각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직업으로 주신 것은 제사장직,  제사장직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그 사이에 중보가 되는 것,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된 것 이것도 자꾸 생각하면 그 가치가 알아지겠습니다. 자꾸  생각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선지직을 가져서 아무도 모르는 것을 주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과  방편을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로 보고 읽을 수가 있습니다. 있는데 이 말씀을  자유로 보고 읽고 또 깨닫고 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선지직을 우리에게 맡긴 이  선지직도 생각하면은 뭐 생각할수록 참 놀라고 놀라고 뭐 얼마든지, 놀라고  기뻐하고 이거 뭐 참 이렇게 우리가 주신 구원을 생각하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이  보면은 미쳤다 하든지, 정신 빠진 사람이라 하든지, 미련한 사람이라 하든지 요  구원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평강이나 기쁨이나 감사함이나 담대함이나  열심이나 그 힘이 나오는 이것은 전부다 이 전능의 요소요 전능의 요소요 신적  요소요 이거는 완전인 것입니다.

 그라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는 것. 왕노릇은 하나님의 통일 통치,  하나님의 통일 세계에 통일 통치하는 그 통일 통치가 곧 내 통치고 이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가 통일 통치하는 이 운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왕직입니다.

 세상에서도 이 모든 우리가 자연 계시로 또 알아야 되는데, 이 세상에서 보면은  세상에는 너무 정치가 여러 수만 갈래길로 있어 가지고 정치가 다 뻐뚤어지고  갈라진 거게서 사람들아 죽고 망하고 비참해지고 이렇게 하는데, 완전자이신  그분과 통일 통치가 되는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얼마나 참 행복되고 기쁜지  모릅니다.

 이래서 그 마지막에 '이 여섯 가지 받은 것을 밤낮으로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복받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이래  놨습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에는, 여섯 가지 구원입니다. 여섯 가지 구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 또 우리는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 또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말은 시공을 초윌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은 뭐 이  과학에서 모두 이 별에서 저 별까지 가는데에 얼마 걸리고 어짜고 뭐 이렇게  말하지마는 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면 우리가 이 우주라는 것을, 우주에서 영계  갔다 영계에서 우주 갔다 하는데 우주를 일 초 동안에 여러 천 바퀴라도 돌고 만  바퀴라도 돌 수가 있습니다. 이런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만물에게 보이려면 보이고 보이지 안하려면 안 하고, 먹으려면 먹고 안 먹으려면  안 먹고, 어데든지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이런 부활체, 또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것을 여러분들이 그동안에 들어서 뜻을 깨달을 만침 깨달았으니까 그래 가지고  이미 깨달은 것 가지고 자기가 자꾸 생각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이  무한하신 이 여섯 가지 구원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밤에는, 이 여섯 가지 구원을 자꾸 생각하고 느끼고 또 생각하고  느끼고 또 말해보고, 말해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말해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프란시스가 세계에 전무후무한 성자라고 할 수 있는 그분인데 그분이 한 달  동안을 기도하는 데에 제자들이 가 들으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 자기에 대해서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하고 난 다음에 또 울고,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울고,  또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울고, '성령님이 누구십니까?' 할 때에 성령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한 것, '주님은 누구십니까?' 할 때에 주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한  것,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할 때에 자기에게 아버지가 어떤 그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것, 또 자기는 어떤 자인가? 자기는 누구냐? 자기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 없는 자기가 어떠한 자였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된 자기가 어떠한 자인  것을 깨닫고 또 마음에 감사해 견디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분이, 예수님이 대속하심에 대해서 그 기도하는 가운데에 마지막에는 '주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받으신 그 고난을 나도 좀 알게 해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마지막에 한번 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그 프란시스 이 손과 이 다리에,  손과 다리에 다 구멍이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구멍이 나서 그때 구멍이 나서, 날 때에 자기가 아픈감을 느끼고  '주님이 이렇게 나를 대속하실 때에 이렇게 고난이 컸구나' 하는 것을 느껴서 그  기도 한 달 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 그 기도하고 나서 그 제자들이 보니까  프란시스에게는 예수님이 똑 못박히신 그 자리에는 전부 구멍이 다 뚫혔습니다.

구멍이 다 뚫혀서 그 뒤에는 낫기는 낫았지마는 그분이, 그분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진실됐으며 얼마나 실지였는가?  '주님이 나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받으신 고난을 나도 좀 그 고난을 알게  해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 때에 자기의 수족에 구멍이, 실지로 구멍이 나기까지  실제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셨으니까, 그분이 한 달 동안 기도한 기도가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하면서 한 그 기도가 얼마나 실상이며,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참이었는가? 아버지를 느끼고 생각하는 것, 주님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 성령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 구속받기 전 자기를 느껴서 생각하는 것, 구속받은 후 자기를  느껴서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실상이 있는, 실상이 있는 그 기도라는 것을 그분의  못자국을 보아서 제자들이 그때사 깨닫고 참 놀랐다고 하는 말을 기록한 것을  봤습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요것을 작정합시다.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나는 영생을 주님이 나에게  주셨다, 나는 영생을 가진 자다, 나는 지금 영생을 하고 있는 자다.' 영생을 우리가  요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영생 받는 게 아니라 우리가 중생될 때 벌써 영생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영생으로 중생된 것입니다. 또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우리는 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받을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참 프란시스가 주님의 고난을  자기도 맛보게 해 달라 하니까 손에와 발에 그 못자국으로 실제 구멍이 뚫혀서  그것을 자기가 아픈 것을 체험한 거와 같이 이렇게 그 기도에 하나님이 같이  응해 주시고 실상으로 이루시는 그분의 기도와 같이 우리도 '아버지' 이렇게 찾고  부를 때에 아버지가 참 나의 아버지가 되셔 가지고 실상으로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을 우리가 실상으로 알고 느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됨에 대해  느낀다면은 뭐 우주와 무엇이 무슨 문제가 있으며 뭐 그 이상 더 원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래서, 그 실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우리가 말,  법적으로 되고 실상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실상으로 된 것을 알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합니다. 그 실상을 느끼도록 우리가 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자꾸 부르고, 또 나에게 영생케 했다 하는 영생을 자꾸 부르고, 영생을 불러서  영생하고 싶고 영생하는 것을 실상 또 느껴보고, 또 우리가 앞으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도 생각해 보고 그라고 난 다음에 여유가 있으면은 또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도 느껴봐서,  아무래도 지금 우리 지식 구원이, 지식 구원이 말 구원에서 멈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냥 믿는다는 우리 그냥 감정 구원에서 그치지 말고 실상이,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이 실상 우리에게 느껴서 실상의 그 능력과  효력이 우리에게 느껴지도록, 우리가 가져지도록, 또 그 효력이 우리를 띄혀서  나타나도록, 이렇게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 된 것과 영생과 부활을 우리가  생각하는 이 은혜를 오늘밤 우리가 작정을 하고, 그저, 산에 기도하든지, 갈 때도  올 때도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세 가지 큰 구원을 우리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길을 가도 가야 되겠고 무슨 일을 해도 해야 되겠고 뭘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도 해야 되겠고, 그라고 난 다음에 여유가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살  때에 우리는 이 제사장직 된 것을 잃지 안해야 되겠습니다. 제사장직 된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 인인관계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돼 버럽니다. 우리는  제사장직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이 자타에 인인관계에 생각하는  이런 것에 벌써 말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차원에서 우리가 제사장직이 됐고  선지직이 되고 왕직이 된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인인관계에 얼마든지  우리는 실수 없이 덕을 세워 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선지직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우리는 선지직에 대해서 우리가 그저 조마조마하고 그렇게, 게을리 하거나  우리가 그 어떤 뭐 어려움이 있다고 해 가지고 이 증거하는 일을 증거를 안  하거나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 왕직인 것을 자꾸 생각하는 사람은,  왕직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기독교는 절대 독재주의라 하는 이  독재주의가 생명이지, 하나님이 혼자 주장하는 그 주장에 따라서 통일 정치가  돼야지 하나님은 동으로 가라 하고 나는 서로 가고 하나님과 서로 이질이 된다면  그거 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동질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서 우리는 이 구원의 실효를 우리가 누리고 또 실상의  그 능력을 우리가 받아서 이 능력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뭐 세상은 이런 말  저런 말 모두 다 그 어려운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말에는 가치있는 줄 알아도 어려운 말에 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하는 요것을, 알고 또 느끼고 느끼고 자꾸  느껴서 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에 대한 그 느낌으로서 내가 행복되는 것,  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었음으로써 내가 권위 있어서 모든 일이 권위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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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3 우리들에게 주신 큰 구원/ 에베소서 1장 3절-6절/ 890507주새 선지자 2015.12.13
3602 우리는 전투인이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851122금새 선지자 2015.12.13
3601 우리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다/ 요한복음 9장 1절-41절/ 870507목새집회 선지자 2015.12.13
3600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요한복음 14장 1절/ 1980년 25 공과 선지자 2015.12.13
3599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요한복음 14장 1절-3절/ 800615주전 선지자 2015.12.13
3598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요한복음 14장 1절-3절/ 800615주후 선지자 2015.12.13
3597 우리가 믿는 것은/ 요한복음 14장 1절-31절/ 871211금새 선지자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