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00:50
우리는 전투인이다
본문 :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 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 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 로라
우리는 전투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투 세상, 싸움터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전투는 사망의 수평선 그 이하에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 다. 이겨도 사망이요 져도 사망이요 그건 전부는 다 사망 외에 승리는 못 합니다.
전부 다 사망 아래에서 네가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네가 뒤에 죽나 앞에 죽나 하는 그런 것이지 전부 사망은 결말적으로는 다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건강을 다 투고 젊음을 다투고 오든 의식주의 선정과 다툼을 하고 있지만 좋아도 나빠도 다 결말은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거게서 초월해서 이기면 살고 지 면 죽는 그 싸움을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면 영생입니다. 지면 둘째 사망의 죄를 받아서 사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싸움은 세상을 점령한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요, 또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요,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 는 싸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이 싸움을 싸울 만한 그런 자체의 자격이 되어 있지 않습 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서 이 대적들로 더불어 싸웁니다. 그런데,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다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 전심 전력 을 다 기울이면 이길 수는 있는 싸움입니다.
여게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함이 라'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저희는 썩을 승리를, 승리해 봤자 다 썩는 것이요 승리해 봤자 다 죽는 것입니다. 썩을 승리를 위해서 싸우지만 우리는 이기 면 썩지 않습니다. 썩지 않는 영원한 영생하는 이 승리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싸 우는 싸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장소에나 어느 시간에서나 또 무엇 을 상대하든지 나는 지금 전투자라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 의 대상이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우리 싸움의 대상은 계속 있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싸움의 대상을 계속 있는 줄 알고 이 대상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 지 싸우지 안하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우리 생활은 나는 지금 싸 우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이 전투는 이기면 영생하고 지면 영원히 멸망하는 싸 움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그 강대국으로 더불어 강대국으로 싸우는 그런 무슨 어떤 국제 적인 그런 싸움이든지 세계에 뭐 제일 크다는 무슨 경쟁이라든지 투쟁이라든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사망의 수평선 아래에 있기 때문에 가치로 칠 것이 하 나도 없습니다. 실은 눈을 뜨고 보면 서양과 동양이 싸움이 붙었다 어떻다 해도 그까짓 싸움이야 가치로 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겨봤자 사망이요 져봤자 사 망이요 내나 사망 아래에 있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그것들을 주관하고 있는 그 왕으로 더불어 싸웁니다. 그것 들을 완전히 지금 점령해서 죽이고 있는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 싸움은 큰 싸움입니다. 이 싸움 뭐,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보다 세상에는 더 큰 싸움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싸움을 싸웠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 을 싸웠습니다. 죄악에 속한 것은 다 대적해 가지고 싸워서 예수님이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사망을 정복했습니다. 우리 싸움은 아 주 큰 싸움이요, 또 승리하면 지극히 가치 있는 싸움입니다. 이 가치 있는 싸움인 데, 우리가 싸우는 자인 줄을 모르면 그 사람은 뭐 승리라 하는 것은 참 까마득한 사람입니다. 싸우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전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투사라,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 하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되겠고, 우리가 싸우는 데에는 여게 말하기를 "내가 달음질하기를" 그 말은 서로 다투어 이기기를 다투는 경쟁한다 말이오, 경쟁. 마라톤 그런 거는 달음질하는 경 쟁 이거 다 비유입니다. 비유인데, 우리가 이 달음질하는 자와같이 이렇게 달리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뭐이냐 하면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경주장에 가 가 지고 달음질하는 사람이 어디를 향하여 달려야 될란지 그걸 모르면 그 사람 달릴 수록 탈선되어서 어만 데로 가기 쉽습니다. 꼭 푯대를 두고 저 푯대 조걸 내가 잡 아야 이기지 그 푯대를 모르고 이리 달려야 될지 저리 달려야 될지 모르면 그 사 람이 무슨 승리를 하겠습니까? 푯대를 알아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소망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내가 뭣 때문에 세상에 살 고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내가 돈 때문에 살고 있나, 내가 무슨 지위나 권세 때 문에 살고 있나, 내가 명예 때문에 살고 있나, 무슨 세상에 재미있는 것으로 인하 여 살고 있나! 뭐 세상을 눈을 감고 가만 내려다 보고 있으면 여게도 깨소금이 쏟 아지고 저게도 깨소금이 쏟아지고 뭐 오막조막하이 뭐 꼬시고 달고 뭐 그 쾌락이 재미가 꽉 찼습니다만 사망 이하의 것입니다. 다 그까짓 것 하나도 쓸모 없는 것 이오. 다 소용 없는 것이오. 네가 좋으면 얼마나 좋으며 영광스러우면 얼마나 영 광스러우며 재미가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있겠느냐, 기쁘면 얼마나 기쁘겠느냐? 그거 다 사망 이하의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하면 하루 종일 조심하고 절제하고 주의하고 힘쓰고 산다는 것이 뭣 때문에 사는지 그걸 모르고 사는 생활하기 쉽습니다. 그걸 가리켜 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자기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향방도 모르면, 달음질하는 사람이 와서 깃대를 잡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 테이프를 끊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 향하지 안하고 엉뚱한 데로 가면 암만 빨리 가 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리 가야 되지.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전투하는 데에 내 목적이 무엇이냐 그말이오. 목적이 뭐인지 똑똑히 잡고 가야 되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애만 쓰는 사 람은 헛일이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목적이 하나뿐입니다. 그저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요 목적 하나 뿐이지만 어떤 사람은 뭐 돈이 목적됐다가 행락이 목적됐다가 어떤 자는 '내가 미남을 차지해야 되겠다' 미남이 목적됐다가 어떤 자는 '미녀를 차지해 야 되겠다' 미인이 목적됐다가 질팡갈팡, 이 하나가 더러워지면 모두가 다 더러워 지는 것이오. 그래 가지고 또 자기는 무슨 큰 사업합니다. 네까짓 게 큰 사업하면 뭐할 거고? '세계에 제일 큰 회사를 내가 경영하는 사장이다' 사장되면 뭐할 거고! 그거 다 사망 수평선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은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 소망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대주재시요 주권 개별 섭리자시요 창조주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이렇츰 좋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이 하나님 이분에게로 가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오. 그저 밤이나 낮이나 어디서든지, 바빠도 이분에게, 자도 이분에게, 수월해도 이 분에게 그저 이분에게로 향하여 나아가는 걸음만 걸을 일이지 아무리 천하에 제 일 큰 회사를 내게 공으로 준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분에게로 향하여 가는 데에 지장 있으면 집어 던져야 됩니다. 또 아무리 위대한 권세를 가졌다 할지라도 이분 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향방의 달음질이 지장 있다면 던져야 됩니다.
뭐 그런데, 세계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손톱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손톱만 해, 작 아서. 나라 축에 가지도 못하고 있어. 지금 유엔에 가입도 못 하고 있어요. 나라 축에 가지도 못하고 있어. 이런 축에 가는 거기에 뭐 요런 기관 조런 기관, 요런 자리 조런 자리 그 자리 최고의 높은 자리면 뭣할 거냐 말이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그 자리를 천하다 말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저, 그 자리에 있 으면 '아, 이 자리 됐으니까 됐다. 아닙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 자리 줬으니 까, 이 자리 내가 뭐 이 자리 내가, 이 자리 감당할라고 그래 앉아 있느냐? 이 자 리 있는 것은 내 주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여기 있다. 대통 령을 해도 주님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자리 있어야 되고, 세상에 갑부 자리라도 그거 하기 위해서 거기 있어야 되고, 세계에 제일 잘난 미 남과 미인을 데리고 자기가 산다 할지라도 거게서도 자기는, 뭐 할라고 그까짓 거 암만해 봤자. 풀과 같고 모두 꽃과 같은 것인데, 이제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기 위해서 나는 이 자리에 있다. 그러면 자기 할 일을 자기가 깨달을 것이라 그말 이오.
그러기에, '향방 없는 자같이 아니하고' 자기가 목적을 어디로 향해 갈 터인지 어 디로 가야 될 터인지 목적 없는 자와같이 질팡갈팡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헤 메이는 그런 자가 되지 아니하고 그말이오. 이게 있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 들이 뭣 때문에 자기는 살고 있는지를 몰라. 먹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먹기 위해 살고 있지 않소. 안 믿는 사람들은 먹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먹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기 위해서 자고 깨고 있습니다. 그라고 나서 여유 있으면 행락입니다. 우리는 그런 죽음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에게로 향하여 가는 이거 위해서 있는데 하나님께로 향하여 가는, 하나님을 목적 삼고 가는 일 이 일 하고 여유 있으면 살고, 또 살고 여유 있으면 먹고, 또 먹고 여유 있으면 이런 것 저런 것 하고, 한일이오. 그렇기 때문에, 가치의 순서를 우리 가 똑똑히 알아야 랍니다.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허공을 치 는 것같이 아니하여" 그 싸울 때에 싸움의 상대방도 모르고 자꾸 공중에 대고 칼 던집니다. 칼을 공중에 대고 때렵니다. 자기 대적을 보고 칼을 때려야 대적이 맞 아 죽지 아무리 요새 신무기라 할지라도 대적을 알고 그 대적에게로 바로 쏘아 버려야 대적이 죽지 엉뚱한 짓 하면 대적이 맞습니까? 자기가 원수가 뭐인지 원 수도 모르고 지금 싸우고 있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나는 원수를 찾지 못하 고 공중을 향해서 싸우는 것 같은 그런 싸움하지 않는다 원수를 똑똑히 찾아 가 지고 싸운다 그말이오. 똑똑히 찾아 가지고 싸워야 돼요.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그러면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안 하면 너는 누구를 더불어 싸우느 냐 그말이오.
"아니하여 내가"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자기 몸 그것이 자기 원수라 그말이오. 자기 몸이 원수라 그말은 자기의 육이 자기 원수라 그말입니다.
육이 원수라 말은 자기 마음과 자기 고기덩어리 그게 자기 원수라 그말이오. 자기 원수는 자기 심신이 자기 원수라. 마음 고놈이 들어서 지옥 다 만들고, 자기가 일 년이든지 하루든지 생활하고 나서 뒤에 밤에 계산을 해 보면 마음 고놈이 들어서 전부이 재를 저질고 꾀를 내 가지고 고놈이 들어서 하루 종일 생활을 다 망쳤습 니다. 마음 고놈이 다 들어서 다 망쳤소. 마음 요놈이, 안 된 요 마음이 생겼다가 요거하고, 조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조거하고, 저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조거하고 전부 요 욕심 조 욕심, 요 취미 저 취미, 요 소원 조 소원 전부이 마음 고놈이 삐 뚤어진 마음을 가져서 우리는 다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뭐인가? 고기 덩어리, 고기덩어리 이거 고기덩어리의 본능, 고기 덩어리의 먹고 싶은 욕심, 또 고기덩어리가 어짜든지 평안하고자 하는 욕심, 고기 덩어리 그거는 뭐 명예욕 그런 거는 고기덩어리에 없는 거요. 고기덩어리 그게 또 이 짐승 모양으로 정욕, 음욕, 정욕의 욕심, 소용없는 것 이런 것 가지고 그 놈이 꼬우는데 가만히 계산을 대 보니까 원수가 누구냐? 원수가 내 안에 있다. 뭐이냐? 내 속에 요 마음, 고기덩어리 이것이 참 도구와 같은 것인데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중생된 영. 참사람 나, 참사람 내가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사로잡아 놓으면 이거는 보배로운 도구인데, 굉장히 보배로운 도구인데 이놈을 원수에게 빼앗겨 놓으면, 마 구 나는 절단 나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내가 점령을 해 가지고 내가 주관하면 보배 중에 보배인데, 이거는 참 신무기와 같은 그 무기인데, 내가 이것을 점령을 하고 있으면 내게는 보배로운 무기인데 이것을 악령 악성 악습에게 이 무기를 뺏 기고 보면 나는 당장 절단난다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마음을 피와 성령과 진 리와 중생된 새사람 자기가 그 마음을 주관하고 몸을 주관할 때는 마구 의의 일 만 하고 영광의 일만 하고 어짜든지 참 오만 영생을 다 만듭니다. 참 보배롭습니 다. 이것을 또 이렇게 해서 살려 놓으면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영계는 마음 타고 다닙니다. 또 이 물질계는 몸 탔고 다닙니다. 이런데 이 세상에 살 때에 마귀 고 놈이 내 마음과 내 고기덩어리를 살살 꼬우니까 마음 이것이 꼬여 갔지, 고기덩어 리 그것도 우선 좋게 하니까 꼬여 갔지, 이래 가지고 피를 떠난 영감을 떠난 진리 를 떠난, 악령 악성 악습 그놈에게 붙들려 내 마음에 행동하고 보니까 거게 붙들 려서 행동한 마음은 다 죽었습니다. 마음의 기능이 다 죽었어. 몸의 기능이 다 죽 었어. 나중에 부활할 때 보니까 마음의 기능도 몸의 기능도 다 죽어 버리고 아무 것도 형체만 살아났는데 그까짓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도구입니다, 따라합시다. 마음과 고기덩 어리는 도구다! 이런데 이 도구를 중생된 새사람 내가 붙들면 그것을 가리켜서 무 슨 도구라 했습니까? 예? 의의 병기, 따라해. 의의 병기! 의의 병기! 그것이 의의 병기가 안 되면 또 뭐 무슨 병기라 했습니까? 불의의 병기, 죄의 병기, 불의의 병 기. 이것이 이 칼과 같애. 이 칼자루를 뺏겨 놓으면 내가 찔리요. 내가 칼자루를 잡아야 되지. 이러기 때문에, 내가 그 원수를 모르고 공중을 향하여 싸우는 자와같 이 싸우지 안하고 내가 원수를 단단히 발견하고 이 원수로 더불어 싸운다. 그 원 수가 뭐입니까? 내가 내 마음과 내 고기 덩어리의 자루를 내가 잡아야 되지 자루 뺏기면 안 된다. 자루만 뺏기면 이것이 나를 다 찔러서 죽이게 된다. 이러기 때문 에 마음을 뺏기지 안할라고, 고기 덩어리를 뻿기지 안할라고, 심신의 기능을 씻기 지 안할 라고, 이 심신의 기능 이것이 내 원수다, 원수이기 때문에 이놈을 뺏기면 내 큰 원수가 되고 안 뺏기면 내게 귀한 보배의 신무기가 된다 이걸 깨닫고 싸웠 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저 자기는 이 전부가 다 한가지인데, 목적이 뭐인지 향 방없이 싸우고, 원수가 뭐인지 원수 모르고 공중을 향하여서 칼을 빼고 총을 쏘고 하는 자와 같이 그렇게 하지 안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내 마음과 내 몸 요놈을 복종시키는, 내 마음 요놈이 꼼짝 못 하게 내 마음을 내가 꼭 붙들고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내가 복종해서 하나님이 동하라 하면 마음 요놈을 거머쥐고 동하게 하고 하나님이 정 하게 하면 내마음 정하게 하고, 하나님이 동하게 하면 내 몸을 동하게 하고 하나 님이 정하게 하면 내 몸을 정하게 해서 내 심신 요것을 뿔끈 사로잡고 돈 요놈도 내 심신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명예도 주관하지 못하도록, 권세도 주관하지 못하도 록, 안일도 주관하지 못하도록, 더러운 음욕도 내 마음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세상 권세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명예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내 심신 요거는 성령과 진 리와 주의 피가 주관하지 다른 것이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요것을 딱 자기 의 대적으로 삼고 싸웠습니다. 이것이 싸움을 못 싸우면 우리는 패전자가 되고 마 는 것입니다.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이래서 내 마음, 내 심신을 마귀 그놈에 게 복종해 가지고, 원수의 것이 돼 가지고 그놈이 피와 성령과 진리에 반대되는, 악령 악성 악습의 도구가 돼 가지고 그대로 움직일라고 하는 이것을 어짜든지 점 령하지 못하면 내 생활은 다 헛일이다. 이놈을 점령해서 이겨야 된다.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도리를 말해서 가르쳐 준 후에, 이 사도 바울은 은사 교권의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 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자기가' 하는 말은 이제, '자기가' 하는 말은 자기 단독을 말하는 것 아니오. 자기도 남한테 가르치고 지금 나도 여게 단 속하지 안하면 도리어 내가 절단나는 것처럼 남은 가르칠 줄 알고 자기는 가르칠 줄 모르면 이것 헛일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자기를 가르치 지 못해 가지고 실패한다. 이러기 때문에,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 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 지금 이 말씀을 증거하는 목적은 아직까지 말하지 안했습 니다. 그러면, 고 위에 보면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승리를 하고자 하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 절제가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절제 라 말은 조절입니다. 조절.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됩니다. 많아도 안 되고 적 어도 안 돼. 물론 차가 굴러가는 데야 휘발유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기름이 중요 하지요. 차가 굴러가는 데는 기름이 중요하지만 기름이 안 나을 때 나오면 저는 죽습니다. 저는 죽어. 기름이 안 나올 때는 안 나와야 되지. 기름이 안 나을 때 암 만 브레이크는 있다 할지라도 기름이 확 많이 나와 가지고 확 폭발되는데 브레이 크 밟으면 차가 휘떡 꺼꾸로 뒤집어 가지고 저는 죽습니다. 차에야 기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없으면 그만 죽은 건데 차가 그만 꼼짝 못 하고 죽은 건데. 이래도 알맞게 있어야 되지 많이 있으면 안 됩니다. 또 좀 많아야 될 터인데 적어도 그 차는 오르막에 못 올라가고 뒤로 빠꾸해 죽습니다. 요새 또 겨울에 추울 때 시동 을 걸면서 자꾸 휘발유만 자꾸 내놓으면 기름이 많으면 또 시동이 안 걸립니다.
시동에도 또 기름이 알맞아야 시동이 걸린다 말이오. 모든 게 다 알맞은 것. 절제 하라 많은 알맞아야 된다 그말이오. 알맞아야 된다. 모든 것을 잘 조절해서 알맞 아야 된다. 요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첫째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알맞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보면 신앙의 미 치괭이가 돼 가지고 있어. 그게 주관 행위라. 제 주관대로, 하나님은 제 주관에 맞 은 하나님인 줄 알고 제 주관대로 하나님을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해 가지고 그 미치괭이 신앙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말이오.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거리가 멀며 얼마나 친밀하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지금은 진노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은 저를 제일 유일로 사랑하는 줄로,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봐야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바로 봐야 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거리를 바로 재야 됩니다.
사람도 밉상스러운 것이 저 아랫자리에 앉을 것이 제일 상좌에 떡 앉아 있으면 됩니까? 그라면 '저 아래로 내려 가거라. 너 왜 여게 와 있노?' 쫓아 보낼 것 아닙 니까? 암만 부부간이라도, 부부간이라도 좀 잘못한 행위 있어 조금 밉상스레 보이 면 그래도 좀 삼가해서 멀리 피해 있든지 해야 되지 밉상스럽게 옆에 들어 붙으 면 발길로 채입니다. 그런 거 아니겠소? 안 그렇소? 그 힘이 센, 여자는 안 그런 줄 압니까? 여자도 제게 맞지 안하고 서로 틀린 것이 남자가 옆에 붙으면 안 그 런 줄 압니까? 여자도 제게 맞지 안하고 서로 틀린 것이 남자가 옆에 붙으면 왈 칵 밀어 버리든지 그 뭐뭐 그럴 것입니다. 욕을 하든지 할 겁니다. 뭣이든지 하나 님도 우리가, 완전한 인격을 만드신 하나님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상 대해야 됩니다. 인격에 거슬려서 상대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그 사자를 보내 가지 고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닫게 하시리라. 하지 안했느냐?' 예수님이 말하기를, '내 가 뭐 성전에 뛰든지 뭘하든지 하나님은 날, 하나님 아버지는 날 도우시지.' 그렇 게 절제 없는 그런 일 안 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느니라' 내가 하나 님이 성전이 아니라 하늘에서 뛰어내려라 하면 내가 뛰어내리지만 내가 뭐 앞서 가지고 성전에 뛰어내리면 하나님 나 도와 주시겠지 그렇게 내가, 하나님을 내게 잡아 부리는, 내가 능동이 되고 하나님은 내게 대해서 피동되도록 그렇게 하는 일 을 하지 말라고 했다 딱 절제하니까 사탄이 물러갔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똑똑히 자기를 알아서 지금은 하나님이 노여워했기 때문에 아, 이 노를 풀어야 되겠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거 하라 하는데 하라 하 는 일은 하지 안하고 엉뚱한 일을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하 나님과의 관계가 어찌 돼 가지고 있는지 그걸 알아서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면, 하 나님은 노여워하고 있는데 생긋생긋 웃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면 그거 참 밉상입니다. 그렇지 않소? 노하니까 노를 풀어야지, 그럴 때 아, 하나님 내가 이걸 잘못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걸 회개해야 되고, 눈물 흘리며 회개해 야 될 것이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날 사랑하신다.' 이러니까 안 된다 그거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알고 바로 맺는 것이 그것이 좋습니다. 그게 첫째 절제할 것입니다.
둘째 절제할 것은 뭐이냐? 하나님에는 말씀과 영감과 다 하나입니다. 다 하나님 요소요. 그 다음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절제해야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 자기가 공 연히 사람들이 높여 주면 얼마든지 올라갈 줄 알고, 다른 사람이 높여 주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꼭 높아져야 될,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이유가 있고 꼭 높 아져야 된다는 것이 평가적이요 비판적인 때는 자기는 그걸 안 높아질라 하면 그 것도 죄가 되기 때문에 높아지지만 그렇지 안하는데 자기를 칭찬하고 높이면 자 기를 놀려 먹는 거요. 자기를 이 등신같은 이거는 비행기를 태우면 잘탄다 놀려 먹는 건 줄, 알고, 그 모욕당한 것인 줄 알고 숙여져서 자기 자리로 내려가야 되지 그 자리에서 건들거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인인 관계를 아주 주의해야 됩니다. 인인 관계 주의하지 못하면 안 돼. 인인 관 계 중에 제일 요긴한 인인 관계가 뭐인 줄 압니까? 인인 관계 중에 제일 요긴한 인인 관계가 뭐이요? 뭐이요? 인인 관계 중에 제일 요긴한 인인 관계가 뭐입니 까? 몰라요? 부부 일심이라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인인 관계는 그거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한 몸이기 때문에 고장나면 안 돼. 부부 일심. 인인 관계를 잘해야 돼. 인 인 관계를 잘하는 것은, 언제든지 보면, 내가 경험 많이 허기 때문에 그래 하요.
여러분들도 안 그런지 모르지만 여러분들 다 그렇지 뭐 별 사람이 없을 거라. 부 부간에도 너무 좋으면 싸웁니다. 쫓고 난 다음에 싸우요, 반드시. 좋은 것을 좀 절 제하고, 싫어도 좀 절제하고, 싫어도 좀 거게 인내라는 것을 가지고 좋아도 인내는 가지고, 그래서 喜怒愛樂의 未發이 中이라 이랬어. 희로애락 그것이 발달하지 않는 것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중이라, 중용지도(中庸之道)라 그말입니다. 중이 라 말은 중심이 그게 옳다 그말이오. 이런 말과 같이 모든 것을 조절하고 절제해 야 되지 절제 안 하면 헛일입니다.
내가 볼 때 우리 교회에 실패는 부부 조절에서 전부 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에 부부 조절에서 망하고 있어. 부부 조절에서 너무 아내 좋도록 하기 위해서 부도를 내가지고 망하지, 아내 좋도록 하니까 아 제가 요만한 자리에 있을 것이 아내한테 너무 과시하기 위해서, 과시, 지나치게 보인다 그말이오. 잘 보이기 위해 서, 과시하기 위해서 요만한 위치에 있을 것이 요만한 위치에 있으면 그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드는 것입니다. 나중에 부도가 나야 됩니다. 또 제가, 사랑하는 자기 를 보일라고 하는 과시에서 사람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보일라 하는 데서.
이래 가지고 내가 언제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그 사람이 국회 의원 인데, 국회 의원인데 그날 자기 뭐 애인하고 놀러 갔더래요. 놀러 가서 해수욕을 갔다던가 뭐 갔는데 나는 이름은, 이름은 내가 기억 못 해요. 해수욕을 갔는데, 그래 이 사람이 나이가 그래도 한 뭐 오십여 세인가 칠십여 세인가 됐으니까 노인 축에 가는데 노인이라는 건 잊어버리고 그 애인에게 건강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그날 마 구 수영을 하고 막 이래 가지고 날뛰었다 말이오. 그래 날뛰고 하니까 이거 그만 죽을둥 살둥 모르고 과시할라고 이래 날뛰고 그날 밤에 와서 죽어 버렸어. 그 고 장은 어디 있느냐? 저를, 잘 보이면 뭐 할 겁니까? 과시하는 그것도 욕심으로 죽 었다. 인간 죽은 걸 전부 다 통계를 맞추면 욕심으로 죽은 것이 백의 구십 구입니 다. 이 원수가 우리 속에 있는데 이걸 알지 못하고 발견 못 하고 조절 못 하면 안 망하고 어찌 되겠습니까? 이렇지, 또 보면, 내가 말하기를, 어떤 자리에서 '사람이, 부부간에 제일 중요한 거 뭐, 이 가정 생활 모든 거 다 있지만 모두 다 자기를 과시할라 하는, 지나치게 보일라 하는 데에서 거기서 절단이 난다 그것을 말하고 또 말하기를 '이제 부부의 이성 관계 그것을 절제 못 하면 절대로 승리는 못 한다' 내가 어떤 사람한테 말했 어. '너는 내가 너 건강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너는 신혼 부부에게 말했어 너는 일주일에 한 번 관계해라' 이랬더니만, 내가 며칠 전에 좀 나무랬더니만, 이라니까 그래 뭐 말하기를 '목사님이 그때 말씀해 주신대로 고거는 꼭 그대로 내가 지금 지키고 있습니다.' 나한테 찾아 와서 그래 말해요. 지키고 있으면 돼요.
그것도, 그것도, 우리가 첫째는 예수 믿고 그 다음에 살고 예수 믿는 게 일호, 그 다음에 사는 게 이호. 그 다음에 밥 먹는 것이, 먹는 것이 삼호, 이런데 그 호수를 바꾸면 안 돼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이라 하는 것은 우리 몸은 식물을 위해 서 우리 몸이 있는 것 아닙니다. 음란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고 성경에 말해 놨 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뭐 위해서 있습니까? 주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주를 위해서 그러면 주님에게 대한 본분을, 주님에게 대한 본분을 다하고 남은 힘 있으 면 淫慾을 위해서 할 수 있지요. 性慾을 위해서 할 수 있다 말이오. 이것도 못 하 고 여기다가 기울이면 그거 꺼꾸로 됐기 때문에, 절제 못 했기 때문에 헛일이라.
이 일 다 하고 남는 것 있으면 하고 이 일하고 남는 것 없으면 못 해야지.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남은 생명이 없으면 예수 믿고 죽어야 돼요, 살기 위해서 예수 믿 는 걸 내놔야 돼요? 어째야 됩니까? 예수 하나밖에는 못 믿으면 예수 하나 믿고 죽어야지. 예수 믿는 걸 내놓고 사는 것부터 먼저 해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이걸 말하니까 어떤 사람이 여기 있다가서, 목사님은 추접한 소리를 하신다 고 이래. 추접한 게 아니라 네가 그거 때문에 지금 말하고 있다. 바로 너한테 말 하는 거다. 내가 그래 좀 야단을 쳐버렸어. 이것을 과거에 우리 한국에 있는 목사 중에 제일 성경 잘 알고 유력한 목사님 OOO목사님이 여게 대해서 교훈을 했습니 다. 제자 목사들 데려다 놓고 이것을 교훈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목사들은 그 걸 추접한 것을 교훈 안 해 가지고 거기서 다 빠져 가지고 다 죽었어 다 빠져 가 지고 다 죽었어. 유명한 목사들이 보면 전부이 자기 마누라에게 끌려 가지고 마누 라 말 듣다가 하나님 말 듣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다 실패하고 말았어. 그러기 때 문에, 한 말로 말하면 마누라가, 사모들은 이세벨이다. OOO목사님이 주석을 썼는 데 이세벨을 사모들이라고 해석하는 그런 해석, 주석가도 있다, 자기는 그렇다 말 은 안 하고 거기도 아마 좀 동감이 되는 모양이지요. 있다, 이래 말해 놨어. 거기 눈이 떠서 방비할 줄 알면 되지만.
그러면, 아 여게 세상에서 마누라 말 안 듣는 사람 이리 나오너라' 하니까 다 나 오고 한 놈 안 나가더래요. '너는 왜 안 나오노?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나? 우리 마누라가 여럿이 가는 데로는 가지 말라 하더라. 그거 더 듣는 놈이라. 그거 그말 내가 누구한테 배워냐 하면 그 OOO목사님 한테 내가 그말 들었어. 그말 들었는 데 나는 그걸 그때까지 내가 그런 소리를 못 들었어요. '아, 세상이 다 이렇다는구 나.' 그걸 못 듣고 이랬는데, 거게 대해서 조절 못 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합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 듣고, 하나님 말씀 듣고, 하나님 말씀을 마누라가 하면 마누라 한테도 예 하고 들어야지요. 원수가 말해도 예 하고 들어야지요. 하나님의 말씀 한 분의 말씀만 들을라고 하면 그만 됩니다. 아무리 그 사람 회사 들어가 일하더 란대도 사장과 공장장 말 듣는 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 말씀 듣는다 딱 요걸 쥐고, 아, 들어 보면 아, 하나님이 시키는 말씀, 성경에 위반되지 안한 말씀, 성경대로의 옳고 바르고 곧은 말씀 이 말씀을 공장장이 합니다. '예' 죽도록 충성해라 그 말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어. 그 말에 선한 충성을 다해라. 그라다가 죽으면 그게 순교 자입니다. 회사 가도 그렇고 어디서든지 다 그렇습니다. 어디든지 자기 활동에 대 해서 그렇게 하라 말이오. 이래서, 주님 한 분에게만 순종, 그분의 말만 듣는 것 이것만 하면 아무 일이 없어.
그래 자기가 뭐 누구 말 누구 말 할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 주님 말씀만 나는 듣겠다' 요것만 작정해 놓으면 간단합니다. '주님 말씀 외에는 나는 안 듣겠다' 아, 아이가 말해도 '보자. 주님이 이 아이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는 것이냐?' 주님의 말 씀은 신구약 성경에 딱 나다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아이가 말해도 '아, 내 선생님이다.' 예 하고 듣고, 아무리 원수가 말해도 듣고, 아무리 똑똑한 척 해 가지 고 왕이 말해도 '보자. 아, 이거는 주님의 말씀이 아니고 이거는 왕 제가 하는 말 이다.' 안 듣습니다. 고게 순교자요. 다 순교자들이 그래 다 순교했소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하라고 그렇츰 거석해도 주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안 들어, 아, 6.25때도 그들이 '이제 탄환 짐 지고 가는데 탄환 짐을 지고 가지는 못하 지만 여게 감독으로 좀 같이 좀 인솔해 가지고 좀 갔다 오이소' 안 가. 그들은 죽 이기 위해서, 그라고 그만 거기서 죽여 버릴려고 하는 건데. 주님의 명령 순종할라 하니까 거게 살았어. 그래 자꾸 밤마다 찾아와 가지고 '오늘 좀, 인솔 좀 해 가지 고 가십시오. 가십시오.' 자꾸 '오늘 내가 뭐 안 갑니다. 못 갑니다. 못 갑니다.' 이 라다가 안 되니까 그래 그 사람이 있다가서 '아, 이거 내가 이거. 자꾸 이거 마귀 가 찾아오는 것은 마귀가 내 속에 붙어 그렇구나.' 그 뒤에 올 때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전도하고 설교하고 교인들 기르라 하는 목회하라는 것만 주님이 나에게 명령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다른 일은 못 합니다. 목회 외에는 못 합니다. 이라니까 조사노릇 밖에는 못 합니다. 그러니까, 뭐 인민군을 다 예배 당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그라면 내가 설교는 내가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거나 할까 딴거는 못 합니다,' 고라고 나니까 다시는 그 미혹이 오지를 안하더랍니다.
다시는 그 다음에 '가십시오' 소리를 안 했어. 하나님의 종이란 말만 했으면, 진작 했으면 그렇게 괴로움 안 당할 건데 '하나님의 종이니 나는 딴거 못 한다. 요거 외 에 못 한다.' 아, 요 말 하면 하나님이 들으실 건데 하나님이 그때는 필요가 없는 줄 알고 하나님도 그때 무능한 줄 믿는 거라 하나님 말만 떡 내놓으니까 그만 그 마귀들이 그만 꼼짝도 안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합시다. 사람에게 대해 절제하는 데 대해서는 부부의 절제 가 제일 중요합니다. 부부의 절제가 제일 중요해서 부부에 대해서 절제하는 거는, 같이 살다 보니까 친근해 가지고 희로애락이 있으니까 희로애락의 절제, 희로애락 이, 부부간에 희로애락이라는 거는 부부간에 성낼 것 성내고 성 안낼 거는 안 내 고 웃을 거는 웃고 그걸 잘 절제를 해야 되지, 조절해야 되지 안 웃을 웃음 한번 웃어 놓고 안 낼 성 한번 성 내놓으면 그 뒤에 비용이 많이 들고 수습이 뒤에 할 라면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니까, 희로 애락의 절제를 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이성 관계에 절제를 해 야 됩니다. 그것 절제 못 하면 저는 성공 못 합니다. 또, 더우기 이거는 부부뿐만 아니라 이성이라 하는 것은 뭐 여자 하나뿐 밖에 아니고 남자 하나뿐 아니니까 많은 여자 속에서 살고 믿은 남자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거게 대해서, 여게 대해서는 이성 관계가 있어야 되나 없어야 되나 하는 그런 것을 잘 조절해 가지고 절제해야 되지 마구 망라해 놓으면 그뭐 잠깐 찰나의 실수해서 자기 몇십 년이나 거게 대한 큰 희생과 손상을 당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절제, 그 다음에는 물질의 절제, 경제 절제. 경제에 대해서 나는 돈을 얼마든지, '내가 이러면 이 돈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돈은 내가 써야 될 돈이니까 얼만 내가 쓰고 얼마 하나님께 바칠 돈이냐?' 경제 절제 경제에 대해 그걸 조절을 잘해야 되지 경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헛일이라. 어떤 사람은 보 면, 그전에 제가 무림에 살 때 OOO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돈이 요새 돈으로 말하면 아마. 한 만 원 돈 될 거야. 만 원이 들어오면 이웃 사람이 다 압니다. 만 원이 들어오면 고만 그거 가지고 쌀 그것 팔고, 고만 무슨 그 고기 나 반찬이나 사 가지고 고만 삼 이웃이가 압니다. 이 사람도 소리하고 저 사람도 소리하고 막 그래 가지고, 압니다. 오면 딱 보고 '아, 저 사람에게 돈이 만 원 수입 됐구나.' 요새 돈으로 말합니다. '만 원 수입 됐구나. 아, 저 사람에게, 돈이 떨어졌 구나, 아, 저 사람이 지금 이틀 그리 하는 것 보니까 이만 원 수입됐구나. 삼만 원 수입됐구나.' 환하이 다 압니다. 이래 놓으니까 만날 거지고, 만날 거지고 만날 잔 치고 그래. 만날 잔치고 만날 거지고 절제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여자 있으 면 집구석 망해요. 남자도 그런 사람 있어. 남자들은 자꾸 꺼머들이기만 꺼머들이 지만 그 모든 걸 절제는 안 살림에서 여자가 절제를 잘 해서 그래 살아야 합니다.
그 OOO목사님 저게 OO교회 있을 때에, 그때에 돈이 그러니까 그때 삼만 원 줬 든가, 삼만 원 줬는데 삼만 원 준 걸 가지고 이걸 가지고 자기 부인한테는 만 원 주고 이만 원 제가 돌아다니며 쓰고 이랬소. 그거 고생한다는 소리를 내가 듣고 한번 O목사를 불렀지. 그때 조사인데. 네가 여기 삼만 원 받는데 집에 얼마주지?' 이라니까 만 원 줍니다' '이만 원은?' 이만 원은 뭐 이럭저럭 씁니다,' '너 언제 이 만 원 쓰고 집에 거석해? 그게 막바로 그게 도둑놈이다. 그게 도둑놈. 그게 도둑 놈,' 그거 남의 돈 거석한 게 아니라 제가 줄 돈 안 준 것도, 그것도 도둑놈이야.
그래도 그 만 원 가지고 살았는데, 어째 살았는지 쌀은 안 떨어지고. 그러니까, 이 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렙다 과부의 집에 베푸신 은혜를 베풀었어. 그 쌀은 먹었 는데 어쨌든지 쌀은 몇 되 팔았는데 '얼마 팔았노?' 쌀 몇 되 팔았다 하는데 지금 도 쌀이 있대요. 쌀독 안에 장 있어. 장 그거 긁어먹고 나면 또 있고 이래서 이래 살아 나온다 하는데, 그래 가지고 내가 그 사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도 만나보지 를 못했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 어떻게 겸손한지, 날 피해서 어디 숨었는 지 만나보지를 못해. 한 번도 대면을 해보지 못했어. 그래. 내가 그렇게 존경을 하 고, O목사에게 대해서 지금도 내가 야단을 더러 치고 '지금은 그, 행세 안 하나?' 내가 이래 좀 하고 있는데. 그 경제, 경제에 대한 절제를 못 하면 헛일입니다.
첫째 절제가 무슨 절제요? 하나님에게 대한 절제, 둘째로는? 사람 절제인데 사람 절제는 뭐 부부 절제 잘하면 부부 절제가, 부부라 하는 그거 묘한 것입니다. 부부 라 하는 것이 이거 온상과 같소. 부부라 하는 것이 조그만한 사회에 부부의 절제 를 잘하면 수천만 명 있는 이 사회에 나가도 그 절제가 바로 됩니다. 이게 바로 된다 말이지요. 이러기 때문에 요게서, 온상에서 시험해 가지고 요게서 잘 성숙하 면 바깥에 사회 나가서 어디든지 할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게서 모든 사회 활동할 준비를 여게서 해야 되는데 그 아내가 이것을 조절해서 이렇게 해 줘야 되는데 남자들은 어리석어. 어떤 할머니가 보니까 참 잘 사는 할머니인 모양인데 테레비에 나오는데 보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디다. '남자는 어리석고 여 자는 깍쟁이고 그래 말해, 자기가 그래 말하는데 웃으면서 그 말하면서, 남자는 어 리석어요. 질팡갈팡 아무 조절 없이 질팡갈팡 벌로 덤비는 게 남자요. 이러니까, 그걸 잘 조절해서 이렇게 해야 되지 그렇게 안 하면 남자는 내일 죽어도 오늘 야 단지기는 게 남자요. 여자가 들어서 남자를 잘 조절해 가지고 이래서 모든 면에, 그뭐 희로애락 조절면, 조절에는 첫째가 희로애락 조절, 그 다음에는 이성 조절, 그 다음에는 경제 조절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 우리는 모든 일 할 때에 이 모든 사물적인 조절면, 모든 자기 활동하는 그런 것을 잘 조절해서 자기 힘의 역량을 알고 해야 되지 자기 힘도 모르고, 자기 힘을 고래 쓰면 몇 해든지 써 나갈 수 있 는 걸 일시에 발칵 써버리면 그만 그 다음에 못 씁니다. 그만 병신돼 버리고 말 아.
그러기에 요새는 뭐 과로란 말 필요도 없어. 요새 젊은 사람들은 전부 어떻게 약 아 놨는지 할 일에는 약아서, 자기 옳은 일에는 과로된 사람이 요새 사람 없습니 다. 옳은 일에는, 과로된 사람 없어. 전부이 죄 짓고 행락으로 그러는 통에 삐쩍 말라 다 뒈져 가지 옮은 일에는 과로되는 사람이 없어. 옳은 일에도 자기가 지나 친 과로가 되면, 과로가 되면 과로는 그만치 쉬어야 되지 과로는, 약 먹고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로는 또 어떻게 운동 가지고 풀리지 않습니다. 과로는 꼭 쉬어야 풀린다는 것 그것이 세계 통계로 되어 나와 있습니다. 과로면, 말하기를 '아마 과로돼 그런갑다' 이라면 듣기 좋아 과로된 갑다 하는 그걸 하면 '아, 내가 일 많이 했다 하는가보다.' 과로는 네가. 죄 짓는 과로라, 죄 짓는 과로. 남녀 이성 관계 과로 때문에 다 병들고 있다 그말이오. 다 그래 알고 있어. 다 그래 주글주 굴 하이 병 들어 가지고 있어. '아, 너무 과로했는가보다' 이라면 그 무슨 일 많이 했다 하는 줄 알고 이게 더 게을 부립니다. 뭐 반사들도 내가 과로하지 말라 하면 '아, 심방 많이 해서 내가 병들었다 아마 그래 하는가보다 심방 좀 적게 해야 되겠 다.' 심방 많이 해 그런 거 아니라 다 죄 지은 과로해 가지고 그런 줄 알아요. 회 개를 해.
이래서, 절제 못 하면 헛일입니다. 자기가 일도 말이요. 속담에 말하기를, 제 힘 모르고 한강 달라든다고. 힘도 없는 게 한강에 달라들면 떠내려가 죽지 뭐할 것입 니까? 제게 알맞는 일을 맡고, 아예 계산해서 제게 알맞지 못하면 말아야 되고, 또 자기 힘을 절제하게 해서 하루 얼마씩을 쓰면 얼마 써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라 면, 아, 물이 나오는데 물이 우물에 물 나오는, 생수에 나오는 양하고 자기 사용하 는 양하고 이게 딱 요래 해 놓으면 언제든지 고 물은 졸졸 나와서 고대로, 보충이 되고 고거 영락없이 고대로는 되지만 물 괸 것 보고, 나는 것 얼마밖에 안 되는데 이 괸 물은 얼마 가면 떨어질 근걸 계산하지 안하고 그대로 사용할라고 이 물이 이만치 있으니까 이렇게 이만한 물 소비량을 해서 사업을 해도 되겠다 했는데 그 우물 있는 것 다 써 버리고 내가 아무것도, 나오는 것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면 제가 모든 설비니 모든 기설하는, 기공해 놓은 거는 다 헛일이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일에 우리는 절제해야 되지 절제 안 하면 안 됩니다. 절제 없으면 안 돼. 절제는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요. 조절. 아, 비행기 그 운전 수인 그 조종사가 제가 조절하지 안하고 그거 조절하지 안하면 저는 떨어져서 당 장 즉사해 버립니다. 그 조종사는 조절을 안 하면 바로 즉시 떨어져 죽습니다. 운 전 기사도 조절 못 하면 아마 몇 미터 안 가서 그만 떨어져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절제, 모든 면에 절제 이것을 '아, 조절해야 된다 나는 무슨 조 절을 못 해 가지고 이꼬라지 인가?' 그 어떤 사람은 경제도 고 경제 가지고도 넉 넉히 고래 살고 이라는데, 어떤 사람이 그랬대요. 자기가 목회로 나가면서 새벽 두 시에 아이들과 마누라 다 깨워 놓고 말하기를 '자, 우리가 이래 되면 과거에 이래 살았던 사람이 이래 살아야 되는데 이 경제 가지고 살겠나?' 그 사람 밤새도록 잠 안 잔 사람이라. 잠 안 자고 밤새도록 생각하다 생각하다가 이제 새벽에 '내가 목 회로 나가는 날이면 이렇고 이렇고 해 가지고 경제가 이럴 모양인데 이래 되면 이리 이런 그런 여파에 그런 그 모든 부작용이 일어날 터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하 겠느냐?' 이걸 물었대요. 물으니까 자기 부인이 이 부작용은 이렇게 대비하고 이 부작용은 요렇게 대비하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나도 그런 걸 다 연구해서 다 대 비를 하고 그랬다 하니까 아이들도 다 그걸 각오를 하고 있더래요. '그라면 나서 자' 그래 목회 나섰대요. 모든 일을 우리는 예산해 가지고, 네가 망대를 지을 때에 앉아서 그 비용이 족할런지 모자랄런지 네가 앉아서 계산하지 않겠느냐, 만일 계 산하지 안하고 그 공사를 시작하면 준공하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터이니까 그 탑을 쌓는 것은 명예탑인데 다, 탑이라 하는 것은 수치를 당할 터인데 네가 앉 아 예산하지 않겠느냐, 아예 계산이 안 될 상 바르면 그 탑 쌓기를 시작하지 말아 야 된다 그랬어. 성경에 누가복음 14장에 말씀해 놨다 말이오.
아,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지금 모든, 천성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니까 조절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기 역량에 맞도록, 하나님께서 무리한 걸 원하지 안해 요, 두 냥쭝 주신 분이 알아요. 두 냥쭝 받은 자는 두 냥쭝 가지고 하고 또 넉 냥 쭝 받은 사람은 넉 냥쭝 가지고 하고 닷 냥쭝 받은 사람은 닷 냥쫑 하고, 자기에 게 주신 은혜가 있으니까 고게 맞춰서 이렇게 조절하고 절제해서 하는 것은 누구 든지 다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는 전투인이라. 우리는 전투인이기 때문에 전투인에게 는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 향방을 바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적 을 바로 알아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적을 바로 알지 못하면 싸워서 이기지는 못한 다. 그 적은 누구인가! 적은 자기의 심신이 자기의 적이다. 심신이 적이기 때문에 심신부터 점령해야 되지 심신을 점령하지 못하면 안 된다. 자기 마음을 점령한 것 은 이제 큰 성을 점령하기보다 힘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성을 점령하는 것보 다 힘든다. 자기 마음을 점령한 사람은 천하를 점령한 것보다 큰 것을 점령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이러기 때문에, 원수를 바로 알아야 되지 원수도 깨닫지 못하고 공중을 향하여서 칼을 빼는 거와같이 그런 일 하지 말아라. 이래서 내가 내 몸을, 내 심신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다른 사람은 가르치고 나는 가르 치지 못해 가지고 내가 망할까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이냐? 절제다, 절제다, 절제 못 하면 헛일이다 말씀했습 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다른 설교를 할라고 준비했었는데 이 자리에 와서 여러분들을 보고 내가 이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왈칵왈칵 벌로 덤비지 말고 어짜든지 약게 굴어야 됩니다. 약아서, 약게, 실패 없 는 걸음을 걷고 실패 없는 주장을 해야 되고 실패 없는 일을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