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00:01
우리 위한 주님의 희생
1988. 12. 11. 주일오후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암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진리를 증거하려면 힘이 많이 있어야 하겠는데 제가 지금 힘이 없습니다.
이번에 그만 교역자회 때에 이동건이니 하는 그런 것 때문에 부절히 늘 말하고 또 밤으로도 늦게까지 자꾸 얘기하고 이래서 아마 내가 절제하지 못해서 과로가 됐는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어서 여기 몇 자를 적어 가지고 와서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적을 이는 적고. 여러 수십 번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거게 대한 뜻을 깨달을 것입니다.
2. 주님께서 다시 순종으로 완전한 소유를 가지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것이니 (1) 우리의 영원한 완전 소유의 기업이요, (2) 이 완전한 소유를 믿음으로 가져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습니다.
둘째, '주님께서 다시 순종으로 완전한 소유를 가지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것이니' 일소지 '우리의 영원한 완전 소유의 기업이요' 둘째 소지, '이 완전한 소유를 믿음으로 가져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3. 중생한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소유는 주님의 대속으로 주님의 것이니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1) 기독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주님의 것이니, (2) 보관도 사용도 지출도 주님 명령 복종으로 하여야 합니다.
다시 한번 읽습니다. 셋째, '중생한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소유는 주님의 대속으로 주님의 것이니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일소지, '기독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주님의 것이니' 둘째 소지 '보관도 사용도 지출도 주님 명령 복종으로 하여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부요 대속을 기심하는 것은 (1) 금생 내 소유 전부를 주님 명령 순종으로 다 없이 해야 하고, (2) 내세 영원 소유를 순종으로 완전 축복 취득하는 것입니다.
다시 읽습니다.
넷째, '그리스도 부요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주님이 기념하라고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일소지 '금생 내 소유 전부를 주님 명령 순종으로 다 없이 하는 것이요' 둘째 소지 '내세 영원 소유를 순종으로 완전 축복의 취득함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소유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다 적었지요? 근본 부요하신 주님이 그 부요를 우리 대속하시기 위해서 완전히 내놓아 털끝만한 것도 주님은 당신의 소유로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고로 땅위에 삼십삼 년 사 개월 생애는 당신은 권세가 하나도 없고 지위가 없고, 영광이 없고, 존귀가 없고, 지식이 하나도 없고, 지혜가 없고 또 총명이 없고, 언권이 하나도 없고, 조그만한 활동권도 하나도 없고 존귀도 없고, 당신의 기쁨도 자유도 소원도 욕심도 하나도 없어 마치 완전 죽은 송장같이 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죽은 송장같이 아무것도 없이 된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없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려 잘못 취득해 가지고 우리가 가진 것 그것 때문에 그 형을 영원히 받는데 어떻게 받아야 되느냐? 영원히 우리의 소유를 털끝만한 것도 가질 수 없게 된 형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는 영원히 우리의 소유가 하나도 없이 영원한 고난을 당하는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못 부요해진 잘못 부요해진 그 대가입니다.
그러면, 잘못 부요한 댓가로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몇 가지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우리가 잘못 소유한, 하나님을 거슬려 하나님을 어겨 잘못 소유한 그 소유의 댓가인 그 형으로 우리가 몇 가지 형을 받게 돼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 이러면 알 수가 있어야지. 쭉 이래 한번 좀 들고 있어 봐. 그래 너 똑똑하다. 너도 맞기는 맞았는데 왜 백지 이이 쌓고 있어? 그래 하지 말지. 두 가지.
여기 어른들은 다 모르는구만, 보니. 아는 사람 몇 사람 없구만. 조그만한 조런 것들은 아는데. 조게 귀신이 아직까지 속에 가서 사람을 버리기를 덜 버려놨고 귀신이 썩히기를 덜 썩혀 놨고 덜 더러워졌고 마귀가 많아 점령을 못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도에 대해서는 훨씬 그것이 앞서 있습니다.
전국과 세계에서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에 견학하러 온다고 시찰하러 온다고 온 사람들이 천이십여 차례를 왔는데 만날 때에 그들이 묻기를 '공과를 어떻게 하느냐?' '공과는 장년반 설교한 것을 공과로 하는데 장년반은 해석이 필요하지마는 주일학생들에게는 해석이 필요 없고 원줄기만 간추려서 가르친다.' '그 주일학생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 들으며 이해하고 소화할 수가 있겠는가?' 다 그렇게 묻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들은 다 모르고 어린 아이들은 다 알게 됐다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귀신이 더 들고 많이 들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귀신이 사람을 더 많이 썩혀 놨고 정신을 썩혀 놨고, 세상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마귀가 많이 점령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게는 하나님의 도를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아직까지 마귀 그놈이 많이 썩히지를 못했고 썩히기 시작해 가지고 있고 마귀가 많이 점령을 못 했기 때문에 마귀의 삐뚤어진 지식이 적게 들어 있기 때문에 훨씬 잘 알아듣습니다.' 그걸 말하니까 왔던 그 목사님들 중에 어떤 분은 깜짝 놀라면서 '옳습니다.' 이래 가지고 간 사람들은 갔다가 그 뒤에 한 번 오고 두 번 왔고, 가 가지고 그 교회가 주일학교가 사 배 칠 배까지 처음 올 때와 비해서 그렇게 많이 부흥이 됐고, 그런 말 할 때에 '무슨 말 그런 소리 할까? 한 살 먹는 것보다 열 살 먹으면 잘 알아듣고 국민학교 졸업한 것보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더 잘 알아듣지.' 이거는 순전히 예수 믿는 도리를 알지도 못하는 목사요 장로들이오.
그런 사람들은 만들어 봤자 이름만 교회지, 내나 세상을 이름을 교회라고 지어 그런 것이지 세상이라 하는 그 세상이나 교회라 하는 그 세상이나 꼭 같은 것이지, 거게 기본구원은 있을지라도 성화구원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이러고 난 다음에 주님이 '왜 이렇습니까?' 말 하지 않고 '옳소이다.
이것이 옳소이다. 이것이 옳소이다. 이것이 과연 그러합니다.' 주님도 말씀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말로 알고 귀신이 주는 이 세상 지식은 서울대학이니 뭐 옥스포드 대학이니 뭣을 하바드 대학이니 뭣이니 그런 거는 큰 줄 알고 세상 지식은 큰 줄 알고 신구약 성경 말씀은 아주 무시당하는, 옛날 그저 노망한 것들이, 늙은 것들이, 세상에서 다 살고 살 희망 없는 그런 폐물들이 들고 있는 책이지 희망이 청청한 소년들이나 청년들은 배우고 가질 만한 책이 못 되다 한 그자들 전부 저주받소. 그만치 저주받소. 목사도 저주받고 개인도 저주받고 그만치 저주받습니다. 내가 받는다 하는 내가 저주하는 게 아니오. 그만치 하나님이 저주를 하십니다. 천지는 변해도 그 보응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하나님을 거슬려 소유했다는 게 뭐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지금 살고 있는 것인 줄 알지요? 아니오. 하나님을 거슬렸기 때문에 저는 사는 것인 줄 알지만 실상은 죽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슬려서 가진 자유 이것 때문에 자유는 점점 저에게서는 멀어지고 없어집니다. 또 하나님을 거슬려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 권세 이 권세 이것이 제 소유인 줄 압니까? 아니오. 이 권세를 주먹만치 누렸으면 무궁세계에서 그만치 소유를 가지지 못하고 소유에 대한 형을 받습니다.
형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의 소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거슬려 가진 것만치 하나는 형이 됩니다. 형벌 형(刑). 형이 됩니다. 하나는 영원한 소유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려 소유한 그 결과로 우리가 받는 해가 몇 가지뇨 하니까 꼬마들은 두 가지라고 이래 떡 손을 내는데 여기 다 모두 큰 사람들은 잘 못 내고, 다 그래도 다 자기네딴에는, '내가 뭐 내가 오십이 돼도 그때 시절에 내가 고녀 졸업인데, 내가 뭐 대학 졸업인데,' 떠들어 쌓지마는 다 헛일이라, 헛일.
왜? 세상 이 지식이 영원히 인간을 통치할 것 같으면 그것이 가치 있지마는 잠시 잠깐 후에는 이 지식 이거는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고 지옥에서도 하나님의 지식이 주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거슬린 가슴치면서 애통하는 그것이 지옥이오. 지옥이 뭐 죽어 없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우리가 이 소유라 하는 것은 잘못하면 그다음에 연보 말을 했기 때문에 물질만 소유로 알지마는 물질도 소유요 우리 자체 외의 거는 다 소유입니다. 우리의 힘도 소유요, 우리의 생명도 소유요, 우리의 지혜도 소유요, 지식도 소유요, 권세도 소유요, 총명도 소유요, 영광도 소유요, 돈도 소유요, 쾌락도 소유요, 모든 기쁨도 소유요, 자기의 뭐 가정도 소유요, 자기 몸뚱이, 전부 소유입니다.
이 소유 이것은 전부 하나님을 어겨서 가진 것이 됐습니다. 왜? 하나님을 반대해서 선악과 먹어서 하나님을 반대한 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반대돼서 전생애가 다 하나님 반대한 마귀법을 따라서 지금 섬겨서 그것이 대대로 이와같이 유전됐기 때문에 그것은 전부 하나님을 거슬려 가진 것입니다. 해석은 다 못 하겠고, 내가.
거슬려 가진 것인데, 예수님이 당신의 그 소유, 도성인신 하시기 전에 가지신 소유, 도성인신 하시기 전에 가지신 소유 그 소유는 무슨 소유입니까?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권세도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 본체 외의 것은 전부 하나님 그분의 소유입니다.
알겠습니까? 소유라는 말과 본체라는 말이 다릅니다. 본체는 불변이요 완전이요 영원이오. 본체가 가지고 있는 거 영광도 권세도 지위도 지식도 능력도 전부 소유입니다.
이 완전 소유 그거는 흠과 점과 티가 없는 완전 소유인데 이 소유를 우리가 잘못 소유한 그 소유의 값으로 몇 가지 받을 것을 예수님이 그 댓가로 내놨습니까? 몇 가지 받을 것을? 녜, 인제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똑똑히 가리켜 봐요. 녜, 두 가지 받을 그 벌을 예수님이 당신의 소유를 내놔 가지고, 우리가 잘못 소유해서 하나님 앞에 받을 벌 두 가지인데 영원히 소유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영원히 소유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이 형, 소유를 가지지 못하게 리는 형, 또 하나님의 소유가 그에게 하나도 부여되지 못하는 형.
이러면 이 형을 받고, 하나는 그 값으로 형을 받는 거 하나는 그 소유를 가지지 못하는 형 이 두 가지 형 이것을 당신이 대속하기 위해서 소유를 내놓은 것입니다.
소유를 내놔서 우리의 두 가지를 대속했습니다. 뭐이냐? 소유 때문에 영원히 형받는 형을 면제해 줬고 영원히 소유를 가질 수 없는 자에게 영원히 소유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길만 열었지 소유 가진 거는 아니오. 소유 가질 수 있는 그런 권세의 길을 열고 자격을 줬습니다. 그러나 소유할 게 있어야 있지 붜? 가질 권세만 가졌지요. 가질 수 있는 그런 길만 열었고 그런 퀀세 그런 위치반 가지게 됐지요.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다시, 완전히 거지가 됐는뎨, 하나도 없는 완전 거지가 됐는데 완전 거지 됐다 말, 예수님이 완전 거지됐다 말이 믿어집니까? 완전 거지된 증거가 뭐입니까? 완전히 거지된 증거가 뭐입니까? 그 증거를 말해 보십시오. 완전 거지된 그 증거가 뭐인지? 저 O집사? OOO씨가? 대답해 봐.
십자가에 죽으심? 저 그 옆에 O선생. 인자로 오심? 녜, 인자로 오신 것은 아무것도 없이 왔다는 그 말이지요. 그 증거가 뭐인지? 증거가 뭐인지? OOO.
뭐라 하노? 그거는 옷을 가지지 못했지요. 옷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요. 옷 한벌도 가지지 못 했지요.
여게는? 당신의 독단으로는 머리털 하나 움직임도 움직일 권세도 없고 소유도 없었습니다. 그게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말하라 하면 말했지 말 한 마디 할 권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 한 마디도 소유 못 했소.
그러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그 말은 머리털만한 것도 없다 그말입니다. 여기 말로 말하면 송곳 꽂을 땅도 없다 하는 그런 말과 같은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능동으로서는, 예수님이 능동으로는 뭣 됐습니까? 능동으로는 뭐와같이 됐습니까? 예수님이 능동으로는 뭐와같이 됐소? OOO씨? 송장. 송장.
능동으로는 송장같이 됐어. 송장이라. 썩은 송장같이 꼼짝 못 해. 요렇게 완전히 소유를 버렸습니다. 이제 다만 아버지가 줄 때에는 그분에게 순종으로 받는 거, 아버지가 명령으로 주실 때에 순종으로 받아 말 한 마디 하고 순종으로 받아 손 움직이고, 순종으로 받아 말 한 마디 하고 순종으로 받아서 보는 것 듣는 것 모든 움직이는 것 가져서, 완전 거지됐는데 아버지에게 완전 순종으로 아버지의 그 충만하고 무한한 소유를 다시 다 가지게 됐습니다.
이거는 주님의 것으로 당신의 능동으로 가진 것 아니고 아버지의 것을 순종으로 유업으로 받아 가지게 됐습니다. 당신 능동으로는 당신 개적으로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요. 개적으로 가진 것은 내 소유권 범죄 멸망하는 여게서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하기 위해서 다 제물로 내놓으시고 아무것도 없는 완전 거지 돼 가지고, 능력으로 말하면 송장같이 돼 가지고, 능력으로 말하면 송장같이 됐어요 예수님이 털끝만한 능력도 없는 완전히 죽은 송장과같이 움직일 그런 능력이 없어. 움직일 힘도 당신에게는 없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가난은 아무것도 없는 거라.
이랬는데 이제 다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순종으로 하나 둘을 가지게 돼 가지고 아버지의 충만이 당신의 것으로서 기업 됐습니다. 이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부자됐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할 때에 그러면 당신의 근본 하나님으로 계실 때에 소유는 어짜고? 하나도 없어. 아버지의 것을 얻어서 아버지의 충만이 당신 것이 됐어. 이것은 순종으로 부요하게 됐어요.
이랬는데 순종으로 부요하게 된 것 그것이 당신이 혼자 이제, 우리 대속하고 난 다음에 혼자 부요하기 위해서 순종으로 부요된 것이 아니고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것은 다 우리를 위해서 희생 했지마는 벌을 메꾼 것뿐이고 단지 소유할 수 있는 길만 열어 놓은 것뿐이지 아무것도 없어요.
이랬는데 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완전 소유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순종해서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과 땅의 모든 것을 예수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순종으로 받았습니다.
순종으로 받은 것은 우리 대신해서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순종으로 부요한 그 부요는 전부 대속함을 받은 우리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이 다 우리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의 소유라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충만을 당신의 소유 삼은 것은 나 대신해서 소유 삼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지신 그 충만은 나를 대신해서 했기 때문에 곧 내 대신 순종했기 때문에 내가 순종하는 것이요 순종한 그것의 댓가로 받았기 때문에 내 순종으로 댓가 받았으니 내 대신 순종한 그 순종으로 내가, 주님이 받으셨기 때문에 내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대신 순종으로 완전 소유자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한 자가 됐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요것을 믿는 자, 요것을 요 사실을 믿으면, 법적으로는 돼 가지고 있지마는 실지로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여기 법적으로는 은행법으로 말하면 은행에 있는 그 은행 총재산이 법적으로 내것이 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내 것으로 알고 그걸 가지고 떡 한 개라도 사 먹으려면 사 먹을 수가 있고 그거 가지고 차표를 하나 사려면 살 수가 있고 사야 되지, 사야 되는 것이지 그걸 믿지 안 하고 사지 않고 쓰지 않고 하면 은행에 자본 권리는 털끝만치도 활용도 못 하고 효력도 없고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것으로 깨닫고 이제는 퍽 잡아 씁니다. '몇천억' 하면 '몇천억' 하면 제가 갖다 쓰려면 쓸 수 있습니다. 몇천억 가지고 몇천억짜리 물건을 시장에 가서 사니까 얼마든지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걸 가지고 제가 누리고 제것을 가지고 누리는 것이지요.
요것이 뭐이냐?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 예수님의 순종으로 얻으신 하나님의 충만 그것은 나를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이니 내가 그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당신이 순종으로 얻은 그것은 순종으로만 내게 흘러내려오지 순종 외에 다른 길로 흘러내려올 수 없습니다. 내가 순종하면 순종하면 아버지의 충만은 내가 다 갖다 쓸 수 있습니다. 다 갖다 쓸 수 있소.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되어지지 기도하지 않고 그렇게 알아지는 것 아닙니다. 여게서 가르치는 것이 벌써 예수님 이천 년이 다 돼 가도록까지 수많은 학자들과 수많은 성경 학자들과 수많은 비평가들이 이렇게 시시비비하고 해도 나오지 않는 이런 모든 교리들을 하나님께서 이 이십세기에 때가 되니까 바보 같은 나를 통해서 당신이 알려 주신 것이지 내 힘으로 안 것 아니오.
이러니까, 세계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이단이라고 막 몰아대고 이렇지마는 그렇게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거는 그들과 거리 멀고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라 하는 것이지. 이단이라 했지마는 오늘은 그것이 이단이 아니라 옳다고 그것을 증거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이런 것을 좀 알아야 될 터인데, 이거 하나님의 역사로 알아야 되자 백 목사 그까짓 거는 무식쟁이오. 아무것도 아니오.
뭐 의로운 의인도 아니요, 의인도 아니요 죄인 중에 죄인이요, 또 아주 의지고 뭐이고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오. 옳은 것이 없는 인간이라. 당신이 그래도 쓰셔서 당신의 감추었던 진리를 나타내니까 내가 뭣을 세계에 제일되는 학자가 돼 가지고 말하면 '이거 하나님이 나타내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근본 유식하기 때문에 한다' 하지마는 판판 무식쟁이를 통해 나타냈기 때문에 당신이 나타냈다는 증거지. 이래도 몰라요? 첫째, '주님의 소유권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어겨 잘못 소유한 것의 영원한 형을 대속하신 것이요' 형을 대속하신 것이요. 둘째로는 '영원히 하나님의 선물인 소유가 하나도 없이 고통당하는 것을 면하게 하심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안 입은 사람들은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소유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도 없어. 하나님의 소유 하나도 없으면 좋겠습니까? 자, 하나님의 소유 하나도 없으면 공기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유 하나도 없으면 공기 있습니까 없습니까? 공기 있소? 없거든 없다고 손만 흔들어. 그러면 내가 따라 하지.
빛이 있습니까? 빈틈이라는 틈 이 공간이 있습니까? 공간 없어요. 모든 이 생기라는 생기가 있습니까? 생기 없어요. 정신이라는 정신, 동물에도 정신이 있고 만물에도 정신이 있고 모든 게 정신이 있는데 하나님 창조한 게 하나도 없으면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신도 없고 정기도 없어.
기쁨은 누가 만들은 것입니까? 하나님 만든 기쁨이 없으면 기쁨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또 쾌락이란 쾌락은 하나님 만든 쾌락이 없으면 거기 쾌락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살아 움직이는 이 활동은, 하나님 만든 활동이 없으면 그 세계에 움직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하나님 만드신 물이 없으면 거기 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하나님 만드신 블이 없으면 거기 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여러분들, 오늘 인간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 없는 거 게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계가 없다는 것을 느껴 봤습니까? 그것을 과연 그러하다 하는 것을 깨달아 봤습니까? 사람에게는 의학적으로 굉장한 신경들도 있고, 정신들도 있고, 정기들도 있고 별게 다 있는데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만드신 신경 안정이 없으면 그것도 아마 심한 고통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경을 만들어서 그 신경을 만든 신경이 제 질서대로 움직여야 되지 그 신경, 그 많은 신경 가운데 한 줄만 이것이 하나님 만든 그대로 있지 않고 이것이 변질이 돼 놓으면 그거 하나 때문에 뛰고 굴리고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소유를 하나님을 거슬려서 취한 그 댓가가 지금은 시작됐고, 영원 무궁토록 있습니다.
거슬려 취한 댓가가 뭐인데? 그 형이 영원한 형이라. 형이 연원한 형이고 또, 형이 영원하고 또 하나는 그분의 것이 하나도 없어. 그게 또 영원한 고통이라.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형을 없애기 위해서 당신의 소유로 대속한 것이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를 선물로 받아 가질 수 없게 된 것을 길을 열어서 받아 가질 수 있도록 길을 틔워 놨습니다.
길을 틔워 놨지마는 이제 받아 가져야 되기 때문에 문제요. 길은 틔워 놨는데.
이러기 위해서 주님이 다시 당신이 아버지에게 매달려 가지고 순종으로써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순종으로 당신 것을 삼아 우리에게, 당신이 아버지에게 순종으로, 아무것도 우리 대속으로 다 없애 버리고 아버지에게 순종으로 아버지의 것을 다 받는 이 수도꼭지 같이 내가 이렇게 유업으로 받는 이 상속의 줄을, 당신이 이것 해서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다 당신이 상속하는 줄을 매놓고 여게 것을 천인 만인에게 이 순종으로, 당신 순종이, 당신에게 순종이 아버지께 순종이라. 이 순종으로 그것이 천지만엽으로 모든 인간에게 충만히 뻗쳐 나가도록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 법칙을 떠나서 무엇을 제가 소꿉장난을 하겠다고 참 어리석소.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비웃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웃으시로다, 저희를 비웃으시로다.' 말씀하셨어요.
뭐 시간은 다 없으니까 그만 읽고 맙니다. 둘째 '주님께서 다시 순종으로 완전한 소유를 가지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것이니' 우리를 대신해서 소유했기 때문에 그 소유는 내 소유라. 우리가 순종만 하면 그것 됩니다. 순종으로 아버지 것 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에게 순종만 하면 주님의 것은 다 내것 됩니다. 이 도리를 인간이 변개할 수가 없어요.
작은 첫째 '우리의 영원한 완전 소유의 기업이 된 것이요' 둘째로 '이 완전한 소유를 믿음으로 가져 누리게 하신 것이라' 순종하면 그것을, 순종하면, 법적으로 내것 돼 있는 게 순종으로 내 실상이 되고 또 순종하면 누리게 돼.
하나님의 소유를 뭘로 누립니까? 하나님의 소유를 받는 것과 누리는 것이 다릅니까 하나입니까? 받는 것이 누리는 것이요 누리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순종으로만 누리게 되고 순종으로만 받게 되지 순종 외에는 거게, 떨끝만치도 거게 착오가 없습니다. 이렇게 정확하신 하나님이시오.
그분이 요 풀 한 포기 여게도 아무리 식물학자들이 연구해서 이 가운데는 뭐 이 잎사귀 하나야 세포가 설마 만 더 되겠나? 만이 되는지 억만이 되는지 이거 아는 자가 없어요.
손가락 하나에 뭐 세포가 얼마라 하지마는 아는 그 의학자가 없어. 이 의학자는 이 손가락 하나에 세포가 몇 억만이라 하지마는 저희들이 모르는 그 지식 외에 몇 억억억억만으로 돼 가지고 조직돼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능하셔. 그분은 복잡한 일에 피곤치 안해요. 그분은 복잡한 일에 착각이나 오산이나 그렇게 분주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완전자지, 완전자.
'이 완전한 소유를 믿음으로 가져 누리게 하신 것이라' 믿음이라 말은 순종이라 말이오. 순종으로 가져 누리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권능을, 내가 어떻게 전능을 내가 어찌 쓰는가? 전능을 내가 어찌 쓰는가? 전능을 쓰는 거는 믿음으로 쓰지.
믿음으로 쓰다니? 믿사옵나이다? 아니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갔는데 그는 전능의 능력으로써 불이 해하지 못해서 불 내음새도 안 났어. 불 내음새도 안 나는 그 능력을, 불 내음새도 나지 않게 하는 그 능력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뭘로 썼어요? 그걸 수속을 밟아서 썼소? 그걸 쓸 때에 뮐로 어떻게 썼소? 손으로 썼소 뭘로 썼소? 뭘로 썼습니까? 히브리서에 분명히 말하기를 믿음으로 썼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불기세를 멸했다 했어요.
셋째, '중생한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소유는 주님의 대속으로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것 가지고 나를 대속해서 이것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을 당신의 소유를 주고 샀어. 영원히 형벌받을 그 형도 샀고, 이 댓가로 형도 샀고 형의 원인이 되는 죄뭉텅이 형의 뭉텅이 된 그것도 샀고, 내게 있는 소유 그거는 형의 뭉텅이라. 이해가 됩니까? 우리에게 있는 이거는 이 몸뚱이도 형의 뭉텅이라, 형뭉텅이. 형뭉텅이라. 권세도 형뭉텅이 지식도 형뭉텅이 전부 형뭉텅인데 형뭉텅이 이것을, 이것도 형뭉텅이라도 당신의 것이라, 당신이 이것을 당신의 것을 주고 이걸 당신이 취했기 때문에 당신의 것이라. 이거는 형뭉텅 이라도 당신의 것이라.
'주님의 것이니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내 소유가 '이거는 주님의 것 아니고 내 소유다' 내 소유다 하면 주님의 대속은 내것이 됩니까 대속은 내것이 안 됩니까? 쉽게, 시장에 가 시장판에 가 가지고 물건을 사 보십시오. 주님이 대속하신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내것이 내 것이라고 하면 주님의 대속이 내 것 됩니까 안 됩니까? 이것이 주님의 것 돼야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됩니다. 이치가 맞아요? 이것이 주님의 것 돼야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됩니다. 주님의 대속은 뭐 형도 없게 하고 또 하나님 소유를 가질 수 있게 한 그 대속의 공로가 내것 됩니다.
그러면 내것을 내것으로 가지고 있는, 이것을 내것을 내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거는 무엇입니까? 무슨 뭉텅이입니까? 이거는 무슨 뭉텅이 입니까? 저 우리 OOO집사님. 이거 무슨 뭉텅이지요? 보석 뭉텅이입니까 이거는 금뭉텅이입니까, 이거 무슨 뭉텅이지요? 형벌 뭉텅이? 뭐라 했어? 형벌 뭉텅이라 했으면 맞았어.
형벌 뭉텅이요 저주 뭉텅이요 영원히 사망하는 사망 뭉텅이라. 그러면 이 뭉텅이가 없으면 좋아요 있어야 좋아요? 없어야 좋아요. 없앨 수가 없어. 이거는 불택자들이 없애려 해도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것이나마 당신이 이 더러운 것을 당신이 죽음으로써 가난으로 다 차지하시고 우리에게는 이것이 하나도 없게 하셨어. 하나도 없이 내 소유가 하나도 없다 하니까 주님이 뺏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마는 주님이 당신의 무한한 부요로 대속하신 그 대속을 내것 삼았기 때문에 형의 염려가 하나도 없고 또 앞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소유를 가질 수 있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아직까지 소유를 가지지는 못했지마는.
그러나 이것을 제것으로 가지면 어때요? 제것으로 가지면 무슨 고장이 나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제 생명이든지, 제 생명이든지 지식이든지 지혜든지 선이든지 사랑이든지 총명이든지 의든지 주권이든지 진실이든지 몸뚱이든지 영이든지 혼이든지 자기의 마음이든지 이거 뭐 전부 다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첫째 손해가 무슨 손해요? OOO씨. 첫째 손해가 무슨 손해요? 주님의 대속이 내것 안 돼. 그게 첫째 손해라.
또 둘째로는 무슨 손해입니까, 이것을 자기 것으로 가지면? 둘째로는 무슨 손해입니까? 저게 자, 이제 오늘 조사된 OOO? 둘째로는 뭣 돼요? 무슨 손해라요? 무슨 손해라요? 틀렸어. 엉뚱한 소리 하고 있어. 무슨 손해요? 그거 뭐인데? 뭐 무슨 뭉텅이인데? 무슨 뭉텅이인데? 형벌뭉텅이, 저주뭉텅이.
형벌뭉텅이 저주뭉텅이, 이 형벌뭉텅이 저주뭉텅이가 한 백 년 가면 이것이 그 형벌과 저주가 없어집니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형벌 뭉텅이 저주뭉텅이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똑똑히 믿어야 돼요. 형벌뭉텅이 저주뭉텅이요. 이것을 불택자들이 이 뭉텅이를 없애기를 원하지마는 없앨 수 있습니까? 없애지 못합니다. 이걸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이 근본 부요 하신 분이 다 내놔서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 소유로 말미암이 형이 됐기 때문에 소유를 내놔야 그거 대속이 되고 생명은 생명을 내놔야 대속이 되고 몸은 몸을 내놔야 대속이 되지 딴거로는 대속이 안 돼요? 그러므로 작은 첫째 기독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것이요 내것은 없어졌어. 내것 없어지면 내것 없어졌다 말은 무슨 말이요? 내것 없어졌다 말은 저주뭉텅이가 없어졌다 말이요, 형벌뭉텅이가 없어겼다 말이요, 암뭉텅이가 없어졌다 말이요, 사망뭉텅이가 없어졌다 말이오. 또? 그거 없어졌으니까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지.
없어지니까 좋지. 또 뭣 때문에 또 좋아? 그거 때문에만 좋아 또 뭣 때문에 좋아? OO교회서 온? 예수님의 대속이 내것 됐어.
대속이 내것 되면 뭐인데? 형 없어지지. 대속이 내것 되면 형 없어지지. 앞으로 하나님의 소유를 내가 가질 수 없게 된 금지 그것이 없어져서 얼마든지 가지려 하면 가질 수 있기만 있으면 가질 수 있는 그 길이 열려겼지. 그러니까 좋지.
이해가 돼요? 이해가 돼? 그냥 그래 가지고는 되는 것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아는 자 쳐놓고는 죄를 안 지어. 아는 자 쳐놓고는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걷지 않을 수 없어. 이 길밖에는 없어. 뭐 탐할 게 있어야지? 좋은 게 있어야지?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해도 휘떡 뒤벼보면 다 알기 때문에 사망뭉텅이뿐인 걸, 저주 뭉텅이뿐인 걸, 하나님을 대적하는 뭉텅이 뿐인 걸.
하나님 대적하니까 하나님이 깨지든지 그게 깨지든지 둘 중에 하나 깨지지.
하나님이 깨집니까 그게 깨지지.
이래서 작은 둘째로는, 보관도 사용도 지출도 주님 명령대로 해. 내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라면 가지고 있다가 부르면 가고 또 이걸 어데 던지라 하면 던지고 가고 또 취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라 하면 또 취하고, 당신 뜻대로 보관도 사용도 지출도 주님 명령 복종오로 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넷째, 예수님께서 항상 기념하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내 피와 살을 기념하라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우리에게 기념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요 대속도 또 생명 대속도 다 기념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부요로 대속하신 기념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기념은 나는 그거 할 수 없지마는 예수님이 하신 그 일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존대하고 또 그의 혜택으로 내가 큰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내가 그와 같은 일을 하지는 못하지마는 그와 비슷한 그런 흉내라도 내는 그런 일을 그때에 주님이 부요로 대속하신 그 일을 내가 그 후에 내 생활에서, 나타내서 그를 그때 형편을 기념하는, 그때 형편을 기억해 가지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렇게 모든 생애하는 그것을 가리켜 기념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여게 대한 기념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금생 내 소유 전부를 주님 명령 순종으로 다 없이 하는 것' 주님이 당신의 소유를 나 위해서 없이 했기 때문에 나도 나는 이제 주님 명령 따라서 내 소유를 없이 하는 것이 주님이 없이 하신, 주님이 없이 하신 그 성격과 본질과 닮고 동류의 일입니다.
'금생 내 소유 전부를 주님 명령 순종으로 다 없이 하는 것' 둘째로는 '내세 영원 소유를 순종으로 완전 내것 삼는 것' 이것이 주님의 이 대속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하는 것 둘. 한 가지는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어떻게 당신의 소유를 다 없애 버렸는가? 당신의 소유를 어떻게 해서 다 사용해서 소멸됐는가? 소멸한 고 성질대로 아버지의 명령 순종해서 다 소멸돼서 없어진 고 명령대로 나는 주님 명령 따라 내 모든 소유가 없어지는 그것이 소극적인 기념이요, 또 내가 주님이 내 대신 해서 하나님의 충만을 소유하신 그 소유를 내가 당신에게 순종함으로 그 소유가 내 소유가 되게 하는 이것이 기념입니다. 이 둘 외에는 기념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 부요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첫째 금생 내 소유 전부를 주님 명령 순종으로 다 없이 하는 것. 둘째로는 내세 영원한 소유를 순종으로 완전히 내것 삼아 누리는 것 이것이 주님의 소유 대속의 기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그렇게 낮아지신 것이요 천해지신 것인데 그 것은 하나님의 존귀의 부요를, 권위의 부요를, 지위의 부요를, 그 모든 부요를 다 내어놔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땅위에서. 지위가 하나도 존귀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존귀가 없기 때문에 저주의 사망을 받았고 날 때도 말구유에 났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하게 그 이상 더 사람으로서는 뭐 사람이 말마구 가서 난 것과 말구유에 보자기에 싸서 말구유에 누운 거 그 이상 더 내려가려 해야 내려갈 수가 없어. 더 내려가려 해야. 그 내려가는 거는 심령으로 유황불 구렁텅이 지옥까지 내려갔으니까 그 이상 또 영적으로 내려갈 것이 없어요.
그것이 예수님의 부요로 대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한당 만난, 예루살렘인이 불한당을 만나서 이렇게 맞아서 상해 가지고 있는데 제사장도 레위 사람들도 다 지나갔는데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구출했습니다. 저들이 원수로, 예루살렘 사람들의 원수로 생각하는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은 예수님 당신을 말한 것입니다. 인간이 다 반대한.
그래 가지고 내려 가지고 당신의 탔던 짐승에게 대신 태이고 당신이 쓰려고 보관허던 기름 모든 약품으로 다 씻기고 포도주로 씻기고 이렇게 기름을 바르고 이래 가지고 주막에 부비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내가 올 때에 모자라면, 혹 모자라면 내가 더 주겠다. 이것을 가지고 주막에다 부탁하면서 잘 간호하라고 한, 그 뭐라 했습니까 그게 뭐입니까? 두 데나리온이라 쓰였습니까 뭐라 했습니까, 거게? 두 데나리온이라 쓰였는데 이 두 데나리온이 말하자면 이틀 품삯인데 이것을 모두 다 해석하기를 예수 강림 이천 년을 말합니다. 예수 강림 이천 년이면 다시 사마리아인인, 이 불한당 만난 자는 우리들인데, 불한당 마귀 그놈이 불한당인데 그놈에게 만나 가지고 상한 인류를 구원하신 이 사마리아인, 인간이 원수로 아는 사마리아 인이 다시 이제 올것이라. 이것을 돈 두 냥을 주면서, 그전 번역에는 두 냥이랴 했는데 지금은 데나리온이라 했는데 그전에는 두 냥이라고 요렇게 번역을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돈 두 냥을 주막에다 주면서 주막에다 줬으니까 주막에는 술 파는 곳이지요. 주막은 술 파는 곳이니 뭐인가? 술 파는 곳은 그것은 오늘날 복음의 술을 파는 것이지. 이래서 지금은 오늘, 새 술은 새 부대에 넣고 헌술은 헌부대에 넣는다고 하나님의 교훈을 이 술로 그렇게 비유해서 상징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묵은 술 새 술을 맡은 이 하나님의 교회에게 지금 맡겨 놨는데 예수님 이천 년이 혹 넘어갈지 혹 모자랄지? 그런데 오실 때에 혹 모자라면 내가 더 주겠다 말한 것은 아마 그만치 줬으니까 예산 없이 주지 안했겠고 그게 정확한 그 비용이 아니겠느냐, 정확한 그 치료할 기간의 비용이 아니겠느냐, 예수님 이천 년 동안이 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받은 우리 성도들을 구속할 그 비용인 그 기간이 아니겠느냐, 이천 년 동안이 기간이 아니겠느냐? 예수님은 그 날 그 시를 알지 못 한다 했기 때문에 딱 그걸 요만하면 될 것이라 했겠으면 거게서 다른 사람들의 모든 의문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하시지 아니하시고 혹 모자라면 내가 더 주겠다 이랬으니까, 이래서 예수 이천 년이면 다 땅위에는 이제 큰 변동이 있을 것이다.
이종교가들이 다 말하기를 예수 이천년이면 땅위에는 무슨 큰 변화가 있다 이렇게들 말해서, 8.15 해방이 벌써 수십 년이 지나갔는데 8.15 해방 직후에는 세계의 교회들이 이제는 아마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다 이러니까 금년이 성탄 마지막이라고 하고 역사에 최고 그 성대하게 성탄절을 지킨 것이 해방 직후 삼 년 사 년까지 지나가다가 또 안 오시니까 흐미해서 지금은 다 그래 보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돌아가고 말았는데, 예수님 이천 년이면 똑 칠 년 남았습니다. 지금이 팔십팔년 아닙니까? 십이 년 아닙니까? 십이 년이라면 얼마 남았습니까 몇 년 남았아요? 이천년에서 팔십팔년이면 얼마 남았어요? 십이 년 남았는데 일반적으로 다 역사가 똑똑히 사 년이 그것은 오산이 됐다 이걸 다 공통으로 지금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뒤에 역사가들이 많은 역사가 있었는데 많은 역사가들이 대조해서 그게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 년을 제하면 괄 년 안 남았습니까? 팔 년 남았는데 오늘이 뭐 십이월 언제입니까? 이러니까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칠 년 안 남았습니까? 칠 년 남았는데, 그래서 올해 우리도 어쩌든지 여게, 오늘 올지 내일 올지, 그날을 똑똑히 모른다 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혹 모자라면' 말했고, 오는 걸, 외상은 예수님이 안 하십니다. 두 냥을 주면서 '내가 올 때 혹 모자라면' 한 것 보니까 당신이 그때에 정확히 오는 것을 그래서 예수 이천 년이면 재림하신다 하는 것을 꼭은 붙이지 못하지마는 대개는 그렇게 지금 생각들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금년에는,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금년이 마지막 일지 모르니까 우리가 전도지를 박아 가지고 이 먼 데는 못 해도 부산 시내에는 매명당 한 장씩을 박아 가지고 우리가 돌리도록 하자 그래 의논을 해서 모두 전도지를 박는데 전도지 대금을 내라 하니까 뭐 어찌 그리 빨리 내는지 바로 광고한 금요일날 광고했는데 토요일날까지 그 금액이 조금 남게 들어왔습니다. 금요일날 광고했는데 토요일날 좀 금액이 남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요번에 전도지의 내용은 조금 다르게 썼습니다. 그랬는데 내가 하나 또 보고 이상하게 느낀 것은 어떤 구역에는 거게 대해서 자기가 보관하고 있겠지마는 하나도 내지 않고 꿈도 안 꾸는 구역도 있는데 어느 구역애는 아주 그면에 대해서 많이 냈습니다. OOO권 사님 구역이 제일 많이 냈습니다. 그거 아마 계산하면 얼마나 됐는지 한 모르겠소 한 육칠백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그래 내가 그걸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는 그분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지금 모릅니다. 여기 수위실에 전도지 자꾸 달라 하면 '이 할마이는 만날 전도지를 어데 갖다 내버리나 어쩌노?' 이러면서 욕도 더러 하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저 할마이는 좀 정신 이상자라고 미치괭이라고 저거 지금 전도지를 어데 처박는 모양이라.' 이러며 욕도 하고 안 준다 해서. 또 인제 사정해서 달라 해 가지고 그래 전한다고. 그래 안제 OOO권사님 구역인 모양이라. 그래 가지고 그분들이 전도지 값은 다 연보를 내니까 성의껏 전하니까 그래 하지 말고 주라고, 주라고 이래도 자꾸 안 주고 지금 그렇대요. 우리 OOO집사님이 아마귀도 못 알아들으니까, 살살 말해 못 알아 들어요. 이래 그렇지 채 그런 줄만 알면 막 얼마나 그 고패를 하지요. 이런데 거게서, 그 하도 그래 쌓으니까 그뭐 만 장 박는데 뭐 십삼만 얼마라든가 이러니까 만 장을 박아다가 방구석에 재어 놓으니까 수북하니까 어떻게 좋은지 말아지 그래 재어 놓고 만 장을 박아 놓고 좋아서 그래 전하다 보니 석 달 지나니까 똑 떨어지고 없더랍니다. 또. 석 달인가? 다섯 달? 십만 장? 십만 장을, 십삼만 원에 십만 장이라. 그랬는데 그래 또 서너 달인가 전하니까 또 없더래요. 없어졌더래요.
그러니까 그 구역에 그렇게 한 사람이 살아서 전도하니까 이 전도지 가지고 전하는 것이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가 할 의무라는 것을 느껴지기 때문에 그 빛이 비추고 비추고 비춰 가지고 그렇게 해서 그 구역이 요번에 제일 전도지 돈을 제일 많아요. 그런데 그 구역이 아마 그 영향으로 혜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을 해 주시는 모양이다 이랬어요. 이랬는데 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나는 아직 한번도 못 봤어요. 늙은 노인이라 하는데. 내가 어떤 분의 뭐 어머니라 말은 들었는데 그분은 어떤 분인고 그 한번 볼까요? 그분 한번 얼굴 한번 보여 봐. 한번 소 하번 들어 봐요. 그분 어데 있는고? 그분 어데 있어요? 어데, 이층에? 삼층에? 그거 또 삼층에 있구만.
그래, 그런데 가 보면 인제 놀랠 일이 꽉 찰 것입니다. 그이는 하루 그렇게, 십만 장을 박혀 놓으니까 좋아서, 다른 사람들은 은행에 통장에 자꾸 돈 예금이 올라가면 좋아하는데 이는 그게 아니고 전도지를 구 석에다가 십만 장을 박아 놓고 수북하니까 이제 흐뭇하고 좋아서 이제 좀 마음 놓고 쓰겠다고 전하다 보니 석 달 되니까 또 없어. 또 없어서 또 지금 수위실에 와 가지고 전도지를 사정해서 오백 장씩 뭐 천 장썩 이래 구걸 또 해다 전해야 돼요. 그래 수위실에서 잘 줘요.
이제 가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을 이 땅위에서 멸시하나 대우 하나 어떻게 하노 하는 이것을 가만히 둬 두고 그래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찬송 지은 데에 '섭리의 고개턱 너머' '섭리의 고개턱 너머 숨어 엿보시는' 숨어 엿보고 있는, 가만히 숨어서 보자 하고 엿보시는 마중의 주님을 우리가 지금 보면서 살아야 됩니다. 숨어 가지고 그분이 창살 틈으로 우리를 보고 있소. 그분이 당신 멸시하는 것 다 보고 계시고, 당신 존대하는 것 다 보고 계시고, 당신 말씀을 무시하는 것 다 보고 계시고, 당신의 말씀을 신실히 어떤 자의 말보다도 더 신청 듣는 것 다 보고 계십니다. 속지 맙시다. '숨어' '섭리의 고개턱 너머서' 섭리하는 섭리, 섭리를 하면 섭리에서 이런 고개 저런 고개 넘는데 거게 고개턱 너머서,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당신은 숨어서 우리를 다 엿보고 계십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