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41
욕심을 뽑아 버리라
1980. 9. 6. 토새
본문: 야고보서 1장 12절 - 18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여게 시험이라고 말씀하신 이 시험은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이 왜 시험이라고 이렇게 어려움을 표시했는고 하니 어려운 그것을 인하여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며 어떠한 실력을 가진 자이며 또 어떤 소망을 가졌는가 하는 그것이 그대로 잘 나타나기 때문에, 나타나기 때문에 시험이라 그렇게 표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을 인해서 자기가 어떠한 자라는 것 자타가 알게 되고, 또 자기라는 사람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무엇을 지금 욕망하고 사는지 하는 것이 나타나게 되고 또 그 사람은 무슨 힘으로 사는가 하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시험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 결과로 말하면 시험이요 그것이 당면된 자체로 말하면 어려움입니다. 그것을 당한 자체로 말하면 어려움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나타내느냐 하면 시험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시험이요. 당한 그 본인에게는 어려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그 어려움은 결과적으로 무엇이 나타나는고 하니 이 사람 어떤 사람이며 이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향하여 무엇을 원하고 사는 사람이며 어떤 힘을 가지고 사는고 하는 것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은 다 땅에 속한 그것들만 어렵게 되고 고통스럽게 되지 하늘나라에 속한 것에게는 아무런 그런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움이나 그런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그말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 어려움이 자기에게 어려움이 되지 아니한, 다시 말하면 그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그 어려움에게 해를 받는 어려움으로 인해서 어떤 충격을 받든지 어려움으로 인해서 어떤 요동을 받든지 하는 그런 일이 없이 그 어려움으로 인하여 자기가 아무런 피동되는 것도 없이 그 어려움을 통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 사람은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주신다. 어려움을 닥쳤을 때에 어려움을 힘을 들여서 이기는 사람, 그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그 어려움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을 요동치 않고 계속하려고 이렇게 힘을 쓰고 애를 써 가지고 어려움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 그 어려움이 이 사람에게는 어려운데 꼭 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되지 아니하므로 그 어려움을 인하여 자기 신앙행위가 변동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려우나 어려움을 힘써 이겨서 그 신앙생활이 변동되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 승리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움을 모르고 승리하는 사람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에 이기지 못해서 그 어려움의 소산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운 그것에 피동이 되어서 이런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의 종이 되고, 저런 어려움이 오면 저런 어려움의 종이 되어서 그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견디지 못해서 그 어려움과 하나가 되고야 비로소 끝이 나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려움을 어려움의 해를 받아 어려움화 되어서 어려움과 같은 어려움화 되어서 평안하게 넘어가는 것은 사망이요 또 그 어려움을 그것을 어렵지마는 있는 힘을 써 가지고 그 어려움에 소유가 되지 않고 어려움을 내가 믿음으로 극복해서 이겨서 나가는 그것이 성화요 또 그 어려움이 자기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기쁘고 즐거움이 되어지고 그 어려움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져 그 어려움을 통하여 더 영광스러워지고, 존귀해 놓은 그런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자유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자유생활. 그러면 제일 가치있는 것이 자유생활입니다. 그만 좀 못해도 생명에 속한 것이 성화생활이요 또 제일 못쓸 것 실패되는 것이 그것이 그 어려움에 동화되어서 어려움의 것이 된 그 결과를 맺고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 신앙생활하다가 온갖 종류의 어려움을 만납니다. 물질 어려움도 만나고 인간 어려움도 만나고, 사건 어려움도 만나고, 모든 관계성 이런 합하므로 어려움, 또 나뉘므로 어려움, 많아지므로 어려움, 적어지므로 어려움, 별별 그 종류의 어려움을 우리가 거쳐가는데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만날 때에 그 어려움을 인해서 자기 자유는 믿음 지키는 것이 자기 자유기 때문에 자유로 이렇게 하고 싶은 그 믿음에게 어려움에게 제재받지 않고, 어려움에게 꺽여지지 않고, 어려움에게 맥혀지지 않고, 믿음생활, 하나님에게 피동생활, 이 생활을 자기가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쓴다고 다 되는 아니라 애를 쓰다가 그만 못 이겨서 넘어지는 사람, 또 애를 씀으로 힘이 들지마는 넘어지지 않고 신앙을 그대로 계속을 한 사람,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 어려움을 통과하는 사람.
그러면 이 셋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중생된 기독자라면 그 시험을 이기려고 애를 쓰는 것은 다 있습니다. 애를 쓰는 것은 있으나 그 시험을 겨우 이기는 사람, 이기지 못하는 사람, 이 두 가지 사람으로 나타나고 어려움이 그 사람에게는 하나도 어려움이 되지 않고 기쁘고 즐거움이 되어지는 이런 사람은 참 그것은 복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자유생활하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자유생활하는 사람이고, 어려워도 이기기만 이기면 그만치 성화가 됩니다.
성화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죽을 것이 죽고 살아날 것이 살아난다 그말입니다. 성화란 말은 자기에게 죽을 것이 죽어버리고 왜? 어려움을 당했던가? 죽을 그것이 죽지 않고 자기에게 있어 그놈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놈이 죽고 나니까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제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놈이 죽고 자기에게 자기를 어렵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놈이 있습니다. 그놈이 있는데 그것이 원수요 옛사람인데 그것이 착각하고 오해하고 오산해 가지고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 누가 어렵게 그렇게 오산하고 오해하고 착각하게 했던가? 그것이 내나 죽어야 할 그자가 죽지 않고 바들거리니까 고게 들어서 공연히 내 어려움이 아니고 내 고통이 아니고, 한데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의 고통 내 몸의 고통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시키고, 착각을 주어 그 오산을, 계산을 잘못되도록 고렇게 고게 했단 말이오. 해서 고놈에게 내 마음과 몸이 속아있었을 때에는 고만 고놈이 오해시키고 오산시키고 오해를 시키는 그게 잘못됨인 줄 속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다른 것인 줄 알고 이 마음이 날뛰고 이 몸이 날뛰니까 그 날뛰는 동안에 고통을 받습니다. 고통을 받다가 아무리 고통을 받지마는 환하게 아는 뚜렷이 드러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는 없고 이러니까 계명도 버리지 못하고 그자가 주는 고통도 버리지 못하고 이 두 가지를 애를 쓰다가 아무래도 고통스럽지마는 어렵지마는 내가 계명을 어길 수는 없지 하고 어려움을 무릎쓰고 계명을 지킬 그때에 그만 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어려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계명을 지키므로 고 어려움을 통과만 하면 그때는 기쁨이 옵니다.
그러면 그때에 그 어려움을 무릎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로 통과를 하면 그다음에는 고와 똑같은 일이 옵니다. 고 정도의 일이 와도 그다음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는 것은 왜 어렵지 않느냐? 그 일이 그전과 같은 어려움이 아니라서 어렵지 않느냐? 자기에게 실력이 생겨서 어렵지 않느냐? 또 자기에게 어렵게 하던 그자가 죽어버렸으니까 어렵게 하던 자가 죽어버렸으니까 어렵지 않느냐? 그전과 같은 그런 어려움이 아니라 그런 것 아닙니다. 꼭 같은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움이 되지 않는 것은 둘로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는 어렵게 하던 그놈이 죽어버렸습니다. 오해시키고 오산을 시키고 또 곡해를 하게 되고 이렇게 하는 그자가 이 마음을 공연히 괴롭게 하고, 꾀우던 그자가 죽어버렸으니까 이 마음을 그렇게 네가 이래야 산다 했는데 이래야 산다 하는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이래야 성공한다 하는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그자가 죽어버렸으니까 이래야 된다는 그게 없어지니까 하나님의 계명대로 이래야 된다는 하나 뿐이니까 아무런 고통될 것이 없습니다.
이래서 그렇게 우리를 유혹시키던 그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어려움이 어려움되지 아니하고 그자 대신 그자 대신 성령으로 진리로 중생된 영 자기 이 셋이 합한 자기가 되어지니까 이 길만이 생명길이니까 어려움이 없고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화가 됐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고 또 실력이 자랐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실력이 자라서 어려움이 없고 죽을 자가 나를 꾀우던 그자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다음에 말씀해 놨습니다.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네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사람에게 어려움 당할 때에 내가 주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계명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하나님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내가 믿음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내가 안 믿는 사람으로 살면 어려움 당하지 않을 것인데 내가 하나님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어려움을 당한다. 하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이 하나님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악으로 시험하지 아니한다. 여게 악은 사람에게 사람을 해롭게 하는 그런 고통을 주지 않는다. 사람을 해롭게 하는 그런 고통을 주지 않는다.
너는 지금 네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 고통스러운 것은 네게 해가 되는데, 이 해는 이 고통스러운 해는 하나님이 준다 그렇게 너는 생각을 가졌다. 이 고통스러운 이 해는 하나님이 준다. 참 하나님이 이것은 이루는 것인데 평안 이것은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인데 이 평안의 유익이 있을 터인데 내가 고통의 어려움, 손해를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이런 해를 고통의 해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중심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가진다. 그만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어려움이 온 그것이 자기에게 해로운 어려움이라.
자기에게 옳지 못한 어려움이라. 자기를 공연히 괴롭게 하는 어려움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어느 피조물에게라도 해하는 일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더 구속을 받은 자들에게는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자꾸 좋은 것을 계속해 주시고 유익된 것을 계속해 주시고, 생명되는 거, 평화로운 거, 보배로운 것만 주지 나쁜 것은 하나도 안준다. 나쁜 것은 하나도 안주고 좋은 것만 준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해가 되는 나쁜 것이 되는, 해가 되는 것은 당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해가 되는 것은 주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도 당신에게 해가 되는 그런 것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다. 이러기 때문에 해가 되는 그런 것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니 해를 당신이 영접도 아니하고 해를 다른 것에게 가하지도 아니한다. 좋은 것만 가하시는 하나님이시지. 아니하시느니라.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자기가 공연히 욕심내지 아니할 것을 욕심내는 그것 때문에 그것에게 끌려서 그런 것이다. 그러면 욕심 그자가 뭐인데? 욕심 그자는 어떤 자인고 하니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면 욕심 그거는 죄와 사망만 낳는 자지 욕심 그것은 죄와 사망만 그 결과거 맺지. 그 욕심은 좋은 것은 하나도 안 맺는다. 그러면 이 욕심이 그 욕심이 무엇을 하느냐? 결과적으로 말하면 죄열매 맺고 죄의 결과를 맺고 사망의 결과를 맺고 결과는 이 두 가지 맺는 것이 욕심이고 또 이거 시작할 때에는, 시작할 때에는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접하느냐? 시작할 때에는 미혹, 미혹, 시작은 미혹이요.
욕심의 시작은 미혹이요 우리를 꾀운다 말이오. 욕심의 시작은 미혹이요.
또 그다음에는 어떤 것을 주느냐? 미혹을 주는 미혹으로 시작을 하는데 그다음에는 뭣 주느냐? 고통, 어려움 주는 거 고통 주는 거 이것 뿐이라. 그러면 욕심을 이 세 가지로 똑똑히 드러냈습니다. 욕심이 우리를 척 만날 때에 우리를 만날 때에는 이 욕심이 일차적으로 무슨 공작을 합니까? 무슨 공작을 합니까? 미혹하는 공작을 합니다. 이게 척 만나면 본야 속이는 자요 속인 자요 그자기 때문에 그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이자기 때문에 척 우리를 만나면 욕심이라는 것은 우리를 꾀우려고 우리에게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욕심은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당할 때에 하는 역사가 무엇인고 하니 미혹시키는 것, 꾀우는 것입니다. 꾀우는 것이요. 둘째로는 이것이 무슨 일을 하느냐? 둘째로는 이것이 무슨 역사를 합니까? 둘째로 무슨 역사하지요?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고통스러운 일, 고통스러운 일 합니다. 믿는 사람은 계명 때문에 고통스럽고, 안 믿는 사람은 고통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됩니까 안됩니까? 안됩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도 고통이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이 되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이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계명대로 사는 것이 자기이기 때문에 계명대로 살려고 하니까 고통을 당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왜 고통을 당합니까? 왜 고통을 당합니까? (김응도)목사님 고 자기 욕심대로 달성을 시키기 위해서 그 고통을 당합니다.
달성시키기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다 거기다가 기울여야 되니까 고통을 당하고, 또 그래도 안되니까 고통을 당하고,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고통을 안주는 사람 없습니다.
불신자에게도 그 미혹으로 달라드는 것인데 미혹을 척 받았지요. 미혹을 받았으니까 자기 길이 아니라는 고통은 그들에게는 없지요. 미혹을 받았으니까 자기 길인 줄 알고 자기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그래 가지고 그 결과는 죄와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에게도 이 욕심은 미혹으로 시작해서 고통으로 진행해 가지고 결과는 죄와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모든 불신자들이 사망하는 그 사망은 누가 만들어냈느냐 하면 그 욕심 그놈이 만들어놨습니다. 에덴동산에 아담 해와가 죽게 된 그것도 욕심 이놈에게 미혹받았고 그 결과로 죄와 사망을 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이것은 미혹과 고통과 죄와 사망, 믿는 사람에게도 미혹과 고통과 사망, 이 세 가지 외에는 하는 것이 없는 자가 욕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이 욕심이 미혹을 할때에 미혹을 당하면 그다음에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으나 그 고통을 안 당할라고 그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완전히 미혹의 것이 되겠습니다. 미혹의 것이 완전히 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통 작용이 나오는 것인데 그럴때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계명을 지켜버리면 거기서 뭣이 절단납니까? 미혹이 절단났지. 고통주는 그놈이 절단났지 이러니까 욕심이 절단이 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런 영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네가 모든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한다고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러면 네가 진리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을 버리지 안할라니까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인 진리 때문에 고통 당한다. 이해를 당한다. 해로운 이해를 당한다. 하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이 해를 당한다 하지 마라 그게 해가 아니다. 해가 아니고 유익인데 네 안에서 고장이 나 가지고 그것이 해가 되는 것이지 네 안의 고장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게 해가 아니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좋은 것만 주는데 좋은 것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되고 기쁨이 되는데, 너에게는 해가 되어지느냐? 해가 되어지는 이유는 네 안에 사고가 생겨 그렇다. 네 안에 사고가 생겨 그렇지 공연히 좋은 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오니까 이 바람이 나를 고통준다 바람이 고통주는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시원하고 좋다 하는데 네 속에 고장이 생겨서 그 바람이 네게 고통주는 것이지 네가 병들어 그렇지 그 바람이 그런 것 아니다. 햇빛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
아이구 눈이 바시서 밝은 것이 안됐다. 그것은 네 안에 있는 사고지 그것이 너에게 해가 돼서 해되는 것 아니다. 네 안에 있는 네 사고다 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려움을 이기는 방편이 여럿인데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되지 않고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고 그 어려움이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이 어려움 되어서 그 어려워도 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씀으로 이제 그 어려움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고런 정도의 어려움은 어렵지 안하는 이렇게 그 어려움을 통과하는 사람도 있고 애를 쓰다가 쓰다가 이 어려움을 그만 인해서 고만 계명을 팔고, 어려움의 것이 되어져서 어려움이 하게 하는대로 그렇게 되는 자가 있다.
그러니까 이거는 이 어려움에 대해서 상대하는 것이 세 가지의 것이 있는데, 하나는 너무 어려워서 못 견뎌서 하나님과 진리를 파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을 무릎쓰고 죽자사자 고통을 당해서 그 어려움을 통과하는 믿음 지키는 일을 할 수 있고, 어려움을 무릎써서 어려움을 당하면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기쁘고 즐겁고 즐거움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견디다가 견디다가 못 견뎌서 이제는 하나님과 계명을 파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셋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런 방편으로 이기려고 하지 마라. 요는 뭣 때문에 그 어려움이 되는가 고놈을 뽑아버리라 네가 까시가 몸에 박혔는데 그 어떤 사람은 그 까시밭을 지나갔는데 하나도 아프지 안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까시가 박히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는 것은 까시가 안 박혔기 때문에 안 아프다.
그 어떤 사람은 되게 아프다 아픈데 그 사람이 참고 견디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참으려고만 애를 쓰고 발동을 하다 보니까 이 살이 곪아서 고름이 썩고 상하고 (그 살이 이게 아파서 막 아픔으로 이러다 보니까) 이래 곪아 가지고 이래 툭 터져버리니까 그만 고름과 살덩이가 함께 가시가 나와버리니까 그다음에 나으니까 아프지 않습니다. 그놈이 속에 들어있으면 또 계속해서 아픕니다.
까시가 깊히 들어있다고 하면 그것은 곪아 터져도 또 속에 아프면서 낫고 난 다음에는 또 뒤에 곪아 터지고 이렇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픈 것을 견디려고 하지 말고 쪽지게 가지고 까시를, 까시 고놈을 쏙 잡아 빼버려 빼버리면 고만 고름 곪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이러기에 고때 뭐이냐? 고때에 나를 고통주는 고놈이 있고, 나를 꾀우는 고놈이 있고 고놈이 고놈인데 나중에 가서 계명을 어기는 죄와 사망을 내게 하는 고놈인데 고놈을 발견해 가지고 고놈을 쪽집게를 잡아 뽑아버려라. 고놈이 뭐이냐? 고놈이 고게 대한 욕심이 고놈이다. 고놈은 욕심 고놈은 어떤 놈이냐? 고놈은 꾀우는 놈이요. 고놈은 나에게 고통주는 놈이요. 고놈은 죄와 사망의 결과만 맺는 요 일만 하는 놈이기 때문에 이놈이 내 원수니까 요놈을 발견하고 요놈을 쪽집게로 집어가지고 뽑아버려라 고놈을 죽여버려라 고놈을 없애버려라 고놈이 너에게 뽑혀 나갔을 때에 너는 그 고통이 즉시 하나도 없어진다 없어지고 유유하게 평강과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고 자유생활을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난밤에 주신 이 도를 걸어가려고 할때에 우리에게는 마찰되는 것이 이 욕심이라는 이놈인데 이놈이 온갖 욕심, 그 사람들이 자기는 자기가 관리하지 않는 거게서, 이 욕심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자기 애착심, 자기를 애착하는 자기를 애착하는 욕심, 자기 애착욕 자기 명예 지위 권세 애착욕 이 욕심 이놈을 뽑아버리버리면 자기는 하나님에게 맡겨놨으니까 정죄가 되든지 욕을 얻어먹든지 어떻게 하든지 멸시하든지 그것이 박살이 되든지 되거나 말거나 자기는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는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이 자기요, 자기는 하나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상관없이 요것이 맡겨지고, 완전히 전환이 되어졌을 때에 그 사람을 고통줄 자는 우주와 영계에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보호하지 고통주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욕심에 일차 나에게 접선은 미혹이요 이차 접선은 고통이요 삼차의 접선은 죄와 사망의 결과를 맺는 순전히 요것 뿐이라는 것이 욕심이기 때문에 욕심 요놈을 찾으면 분명히 요리 (고기사) 네 모든 명예를 욕심 고놈이 들어서 다 삼키고 지위 고놈이 들어서 다 삼켰고 권위를 다 삼켰고 영광을 다 삼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다 그것 때문에 버렸고 권능을 그것 때문에 다 버렸고, 고놈 때문에 꼬임받아 가지고 참 좋은 것은 다 버렸고 내게 좋은 것은 그놈이 다 삼켰고 다 매장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심이라는 이것을 가리켜서 무저갱이라, 무저갱이란 유황불 구렁텅이란 말입니다. 욕심 그놈은 불구렁텅이입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무저갱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욕심이 원수라는 것을 발견해서, 이놈만 쪽집게로 뽑아버리면 그만 미혹도 절단났고 고통도 절단났고 죄와 사망도 절단났고, 거게서 영감과 진리만 거기에서 승리의 영생만 마지막으로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영광만 그 결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일생동안 욕심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겠습니다. 욕심 그놈에 미혹받아서 그놈 소원을 이루게 할 아니라 그놈의 소원을 이룰려고 일생을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놈을 작별해버려 그놈을 죽여버려 그놈을 우리에게서 까시 뽑듯이 뽑아버려야 됩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소욕, 우리는 그러면 욕심없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욕심을 뽑으면 성신의 소욕이 우리의 것입니다.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