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37
요셉의 신앙
본문 : 히 11 :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브리 11장에 기록된 신앙의 인물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표본으로 나타내서 알려 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 중에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 이 시간에는 우리들로 생각하려 합니다. 창세기 37장 1절로부터 창세기 50장 26절까지를 읽어보면 그 안에 요셉의 신앙 전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역사의 인물로 지나간 것을 우리에게 소개함이 아니고 영원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구원 도리로 그런, 한 형식인 역사를 마련하셨고 또 문서에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런 좋은 신앙의 본을 떠야 되겠다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신앙의 표준이며 법규로 그 형식을 통하고 또 문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셉의 신앙 전기는 우리에게 대한 신앙 법칙으로 하나님이 명해 주신 하나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율법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모범이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이 사실은 우리의 신앙 사람들의 길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길을 걷지 아니하면 그들이 얻은 그 영화로운 건설구원에 우리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의 본뜰만한 그런 위대한 신앙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 하나 하나가 그런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진리인 법칙이기 때문에 이 법칙을 지키지 아니하면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 면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만 몇 가지만 거기서 이 시간 생각하려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기 가족들에게 대해서 신앙 표준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두 번 꿈 꾼 것을 형제들에게 말한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예언이기 때문에 그 예언을 그들에게 전하면 의례히 어려움이 따라 올 것을 생각했지만 자기 가족들에게 대한 예언을 거침없이 다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으로 말미암아 어떤 어려움이 왔는가 하니 형제끼리 불목이 생겨서 열 형제가 요셉을 막바로 살해하려고 늘 계획을 꾸미기까지 그런 미움이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명철한 요셉이 모를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언하라고 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그 명령을 거침없이 그대로 전했습니다. 우리들이 볼 때에는 무지한 사람같이 보여지기도 쉽고 또 자기 자랑하는 사람같이 보여지기도 쉽지만 그의 일생을 통하여 보면 그런 인물이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의 명령을 가족들에게 전하였다하는 것을 우리가 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자 그 형들이 먼데 가서 목축을 할 때에 아버지가 이 미워함을 알고 보내지 아니한 요셉인데 첩첩산중에서 양을 치고 있는 그때에 아버지가 너거 형에게 다녀오라고 할 때에 그는 분명히 사지를 향하여 아버지의 명령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번도 거역하지 아니하고 대답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고 또 그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전하는 그 소식과 형들에게 위함이 되는 것을 그대로 전하려고 가지고 간 요셉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이 자기를 아무리 대적하고 살해하려고 했지만 그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라든지 자기가 할 의무와 책임은 그치지 아니하고 감당을 했고 또 그 뒤에 바로왕 앞에 있을 때 그때는 참 복수를 하려면 그 형제를 당장에 다 전멸을 할 수 있는 그런 복수의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그 형제에게 대해서 복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이 과거의 무지한 행위를 어떻게 하면 회개를 시킬까 해서 모든 깊은 것을 심사하고 마지막에는 그 정을 통하여 통곡을 하면서 그 형제들에게 흐뭇한 형제애를 그들에게 끼쳐 주었고 큰 위로가 됐던 것입니다.
또 그 뒤에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의 안면을 위해서 우리에게 복수하지 안하지 요셉이 반드시 복수하리라는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요셉이 그런 우려를 형제들이 가질까해서 미리부터 말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안위를 해서 자기가 형제들에게 대해서 참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이나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했던 요셉이며 부모에게 대한 효성도 그랬던 것이 우리에게 신앙의 법규로 주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른 형제는 자기에게 어떻게 해할지라도 일생동안 형제를 해할 마음이나 또 미워하는 생각이나 이런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 요셉에게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은 것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요셉에게 대한 악독을 품은 형제들이지만 그 형제들에게 유익이 될 것은 요셉이 하나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의 어려움을 인하여 지체하지 안하고 다 그대로 전했던 것입니다. 두 꿈을 전한 것이 그 당시에는 미움을 가한 것이 됐지만 마지막에 애굽에 내려가고 난 다음에는 과연 하나님의 예언은 변하지 안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밀히 간섭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과 무한하심을 그들이 깨달아서 두 꿈을 요셉이 그들에게 말해준 것은 크게 하나님과 자신들에게 대해서 회개하는 큰 능력이 된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꼭 이를 표준해서 이대로 살아야 되겠고 또 믿음이 앞선 형제는 우매무지한 맹수같은 형제들에게나 가족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요셉으로 우리에게 법규로 주신 이 사실을 깨닫고 이대로 하는 것이 우리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둘째로 요셉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형제들에게 예언 두 번을 하고 또 늘 형제들의 잘못됨이 있으면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어느 형이 이렇게 조금 방종해 나가니까 이것을 아버지가 알고 좀 경계를 해 주십시오.
진정코 그 형제들의 탈선을 염려하고 형제들의 바른 길 가는 것을 안타까워 아버지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 일에 노력했던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랬지만 그 형들은 아무 효력없이 도리어 하나님의 예언을 감당한 이것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찢어 바로 죽이려고 하다가 그 형이 그리하지 말고 저 흙구덩이에 집어 넣자 그러면 거기서 저절로 죽을 것 아니냐.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유다를 통해서 이스마엘 자손들에게 종으로 팔려서 애굽까지 갔습니다. 이래도 그가 애굽에 가서 보디발 집에서 한 생활을 보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말을 보면 그가 가족들에게서 사회에서 국제에서 아주 참 절망스런 그런 일을 첩첩이 겪었지만 요셉은 거기서 낙망이나 절망을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여전히 소망하면서 변하지 안했습니다.
가족에게서 그를 참 절망을 주었고 상인에게서 절망을 주었고 애굽에 가 가지고 종으로 팔릴 때 절망을 주었지만 그는 그 절망에 변동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억울함의 감옥에 들어간 것이나 감옥에서 술맡은 관원으로 더불어 약속한 것이 그 세월이 지나가도 아무 흔적이 없는 것이나 이런 것들은 요셉에게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별적으로 첩첩이 쌓여지는 절망과 낙망을 줄만한 그런 일이지만 요셉은 거기서 한번도 하나님께 대한 절망이나 낙망이나 한 일이 없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니까 언제든지 끝이 있을 것이고 세상에서 이것을 보지 안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니 무궁세계 가서라도 약속 지키다가 하나님 만나려하는 끝없는 그 욕망과 신앙을 가지고 갔고 그 신앙이 요동치를 아니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세째로 그가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 앞에 예언하라는 책임이라든지 아버지가 사지에 심부름을 보낼 때에 그 심부름에 대한 책임이라든지 자기가 보디발 집에 가 가지고서 종으로 보디발이 요셉에게 하나 둘 책임지운 일에 대해서라든지 또 주인이 자기에게 부탁했는데 그 아내의 미혹이 그렇게 왔지만서도 그때에 주인이 맡긴 그 책임이라든지 감옥에 죄수로 들어가 가지고서 죄수로서 살면서 그에게 맡겨진 바의 책임에 대해서 흠이 없었고 그가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도 그의 책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언제든지 함께 하실 수 있을 만치 그는 책임감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줄을 알고 그 일에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거기서 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때에 충성했으며 그 충성이 어떤 어려울 때에 쉬운 때에 어떻게 바뀌어지는 환경에 어떻게 존귀해질 때에 어떻게 천해질 때에 어디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그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맡겨진 책임이란 것을 느낀 다음에는 그 책임에 대해서 조금도 소홀히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신앙의 기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또 넷째로는 요셉이 보디발 집에 가서 살 때에 참 보디발이 요셉을 높여서 그 가정의 제이 인으로 높여졌고 그가 얼마나 존귀했고 많은 재산을 맡아 가지고서 이렇게 했지만 그가 자기 맡은 일에 있는 충성을 다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시는 일에 함께 해주셔서 자기를 믿고 맡기는 그에게 대해서 손해없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나타나지 안했지만 그의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호소가 되어서 하나님이 요셉이 맡은 일을 친히 축복하셔서 하나님을 모르는 그 사람들이 요셉에게는 과연 큰 신이 대주재가 함께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들의 입으로 고백할 만치 그의 책임에 대해서는 자기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이 나타나기까지 자기 책임이라면 신실히 감당했고 또 자기의 주인과 자기와의 세력이 비등비등할만치 됐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말할 때에 주인이 모든 것을 내게 맡겼지만 당신만 맡기지 안했는데 당신은 주인의 아내인데 주인의 아내를 내가 어떻게, 이렇게 취하는 죄를 범할 수 없다고 그는 언제든지 종이요 주인으로 그 위치를 조금도 흐리지 아니하고 어떤 형편, 사정의 미혹이 와도 자기의 위치라 하는 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가 아버지 밑에 아들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형들 밑에 동생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주인 밑에 종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또 감옥에 가서도 그는 자기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도 온 전국이 요셉에게 전체가 정권이 되어 있는데 휘뜩 뒤빌라면 당장 뒤비 가지고서 바로의 왕을 대신할 수 있지만 그는 자기의 지위를 든든히 지키고 월권하지 안했고 남용하지를 안했던 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엄격하게 지켜 하나님이 어데까지 어떤 위치를 줘도 하나님이 주시면 거기는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치를 감당할라고 충성해서 하나님이 안타까워 그 위치의 사명에 동행해 줄만치 했지 자기의 위치가 어떻게 된다고 해가지고서 남의 위치를 탐하거나 자기 위치를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그런 일이 요셉에게 없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기준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섯째로 요셉은 그때 나이가 스물 칠팔세 된 때입니다. 가장 청년의 정욕이 불탈때입니다. 이럴때에 오랫동안에 같이 지내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대해서 탐욕을 품었으니 그가 요셉을 호릴만치 얼마나 단장하고 얼마나 요셉의 마음을 미혹할 만한 그런 일이 있기를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있었지만 마지막에 이것이 최종에 폭로될 때에 요셉은 거기서 그 이성의 혼잡을 일으키지 안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며 자기 위치를 지켜서 무서운 음신의 불타는 음욕의 역사에서도 그는 속화되지 안하고 물들지 안하고 정조를 지켰습니다.
어떤 나라 유력한 존경하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가면 바울도 있겠고 아브라함도 있겠고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나는 제일 먼저 요셉 앞에 가 가지고 경배를 하겠다. 왜? 요셉이 청년으로서 그런 이성의, 남녀 이성에 무서운 유혹이 자기에게 왔고 모든 조건이 범할만한 그런 일이 있었지만서도 그는 거기서 깨끗하게 미혹받지 안하고 자기의 성결을 지켰다.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제일 먼저 요셉을 존경하겠다. 주님 다음에는 요셉을 존경하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는 소리를 제가 직접은 듣지 못했으나 간접적으로 한상동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는 그런 것을 제가 전하여서 들었습니다. 그는 이성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신앙의 표준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습니다.
여섯째로 그가 옥중 생활할 때에 거기서 옥사장이 모든 정권을 그에게 맡겼지만 그는 조금도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거기서 충성해서 모든 접촉한 사람들에게는 다 덕을 끼쳤고 본을 보였고 앙모의 사람이 됐습니다.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이 감옥에 갇혀질 때에 그때에 시위대장 보디발의 감옥에 정치범들을 다 가두는데 그 두 장관이 갇혔을 때에 보디발이 요셉을 불러 가지고서 이 두 장관을 네가 수종들고 잘 섬기라하는 것을 부탁한 것을 보면 요셉을 보디발이 투옥 했지만 그의 인격에 대해서는 그의 신실에 대해서는 그의 결백에 대해서는 분명히 확신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 뒤에 일곱째로 보면 그가 하나님을 바라봤고 사람을 아꼈고 자기의 인격을 더럽히지 안할라고 애를 썼고 모든 일에 책임을 감당한 진실을 이룰라고 애를 쓴 그 신앙생활이 가면 암흑이고 가면 또 암흑이고 가면 또 암흑이고 가면 가면 절망 암흑 참 상상 못할 일들이 그들에게 부딪혔지만 요셉은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이 된 데까지 가는데에도 그의 신앙의 계속이라는 인내는 변하지 안했고 그런 높은 총리대신이 되어도 우쭐해지지 안했고 마지막에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갈 때에 내 해골을 들고 내 본토로 가자고서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자기들의 신앙에 대해서나 자기들의 소망인 천국 욕망에 대해서 도무지 변하지 안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이 요셉을 참 변동시킬만한 그런 일들이 많았지만 요셉은 그런 것으로 인해서 조금도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인류에게 대해서나 자신에게 대해서나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요동치 않은 그 일관된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와 모든 형제들이 애굽에 내려 갔을때에 그때에 요셉은 참 만능잡니다. 바로는 왕이지만 모든 백성들의 마음은 요셉에게 다 끌려가지고 있고 요셉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처럼 그들이 알고 있는 때입니다.
그때에 애굽 사람들의 형편은 목축이라하는 것은 아주 몹쓸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아주 천하게 여기기 때문에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애굽 사람들이 여겨 주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이 바로왕에게 가 가지고서 우리 선조는 대대토록 목축업을 합니다. 이러니까 부모님이 오는데 대우해 줄 것은 아무리 애굽의 어떤 좋은 것을 주어도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고 이 목축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주옵소서 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겨 주신 그 업을 대대로 그대로 나왔고 하나님이 주신 그 업을 세상 어떤 형편과 사정에 번쩍거리는 그런, 모두 유력하고 영광 존귀있는 그런 업이라 할찌라도 그 업을 바꾸지 안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또한 인격이요 지조입니다.
오늘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신앙구원 이루는 데에 족한 업, 또는 족한 지방 족속을 택하여 주는데 시대에 따라서 시골에 있다가 조금 하나님이, 그곳에서 죄 안짓고 살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만 이만한 실력이면 도시에 가도 살 수 있다 해가지고서 도시로 다 기어 나가고 하나님께서 이 지역 이 민족가운데서 네가 이렇게 살아 하나님은 복주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라고 하여 그것을 거기에서 죄 안짓고 남의 발에 밟힘이 되지 안하고 존귀함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면으로 성장시켜 놓으면 이거 제가 잘나 그런줄 알고 모든 걸 집어 던져 버리고 국경을 생각지 안하고 민족과 자기의 족속이나 하나님이 정해놓은 지역을, 업을 상관치 안하고 펄펄 뛰어서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죄 안짓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뛰어난 지능을 주니까 그 지능가지고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살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안하고 이만한 지능으로 여기에 살게 뭐 있냐 높은 자리로 뛰어 올라가자 해가지고 그 업에 대해서 아무런 지조를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그 처소에 대해서 지조를 가지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이렇게 해가지고서 변질되는 사람들에게 큰 경고를 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나라에 그 정권을 가진 총리대신으로서 애굽 전 국민이 목축업을 하는 족속이라 하면 다 상놈이라고 같이 먹지를 안합니다. 말을 하면 그만 천해진다고 말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업이지만 우리는 대대토록 이 업을 합니다. 하면서 그 업을 더럽다하지 안하고 그들에게 아무리 수욕을 당해도 수욕당하는 업으로 생각지 안하고 그들에게 자랑삼아 말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그 기업을 그대로 이어 나간 그것도 우리에게 큰 인격의 한 표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홉째로 하나님과 약속한 데에서 살고 속화되지를 안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어릴 때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을 면키 위해서 아부하거나 또 변질하거나 하여서 형제들의 속화도 당하지를 안했고 또 보디발의 집에 가 가지고 갑자기 존영하게 됐지만 존영에 속화도 안됐고 감옥에 가 가지고도 그런 권위있는 일을 거기서 했지만 거기에도 속화 당하지 안했고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을 했지만 총리대신에도 속화되지 안하고 이는 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자기 하나님 자기의 하늘나라 소망, 자기 민족들에게 특수하게 맡겨 주신 이 신앙 그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뜨거운데 가도 변하지 안하고 차운데 가도 변하지 안하고 높은데 가도 변하지 안하고 낮은데 가도 변하지 안하고 그는 변하지 않는 속화되지 않는 그는 그 신앙인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에게 또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어떤 그 신앙 인물이었던가 하는 것을 그 생애에서 우리가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그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안 잊어 버릴라고 애를 썼습니다. 죽어도 살아도 하나님 놓지 안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그가 참 그 이상 없는 어린 열일곱 살 먹었을 때에 그런 깊은 궁지에 빠지는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그가 그 무서운 미혹, 보디발의 아내의 집에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을 놓지 안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 가지고서 애굽의 총리대신이지만 우쭐거리는 것 하나도 없고 거기서 하나님 잊어버릴까 하나님 안 잊어버릴라고 그가 마지막에 거기서 떠날 때에도 유언한 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내 해골을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으로 옮겨가서 이장해다오 하고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일생의 생애를 보면 어떤 환경과 주위가 변해져도 그는 일편단심 하나님 안 잊어버릴라고 하는 것이 그의 신앙 생애였습니다.
또 그를 보면 그가 어려움이 있고 그럴 때는 살짝 변하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보디발의 아내에게 그때에 자기 마음에 없다할지라도 그때에 반응하면 자기 생명은 끊어지는 것이고 거기에서 응하면 만사형통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안 잊어버릴라고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법규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하나님이 주신 신앙을 버리지 안할라고 거기에서나 저게서나 보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하고 괴로워도 좋아도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했습니다. 으례히 형제들이 먼데 있는 박해보다도 같이있는 혈육의 형제의 박해는 참 무섭고 독한 것인데 그 형제의 박해를 무릅쓰고도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했습니다. 전하라하니 전했습니다.
그의 일생의 전 첫째 중심이 하나님이요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하려고 애쓴 것을 볼 수 있고 셋째로는 그의 신앙인격생활에서 보면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형제들은 그에게 그런 악독을 품었지만 그는 그 형제를 잃을 마음은 한번도 안 가졌습니다. 어짜든지 그 형제에게 마음을 잃지 안하고 양심을 잃지 안하고 정을 잃지 안하고 그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할려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그렇게 애매하게 할 때에도 자기가 툴툴 털어서 바른 말 하면 요셉의 말이 서겠지만 그는 자기를 해칠라고 하는 미혹주던 보디발의 아내에게 대해서도 그 사람을 놓지 안하고 잃지 않으려고 함구하고 나는 그런 일은 없다고 한번 말해도 죄인이 그런거 없다고 할 것 아닌가 그까짓거야 다 묵살시키고 묵살시킬 때에 다시 말하지 안하고 꾹 짊어지고 감옥소에 들어간 것은 그가 사람을 잃지 안하려고 한 것이요 또 뒤에 장관들을 감옥에 가둘 때에 보디발이 그 죄수가운데 요셉에게 말하면서 네가 이 떡맡은 장관, 술맡은 장관 이 두 장관을 네가 잘 수종들고 모시라하는 것을 보면 그가 보디발도 잃지 안한 것이 분명합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요셉을 존경하고 그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세째로는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애 쓴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사람 하나만 잊어버리면 형통할 건데 자기가 온갖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사람을 잊어버린 토막이 없습니다. 그러고 난다음에는 보면 자기가 이런 굴곡 저런 파란 저런 온갖 변동을 다 만났지만 자기의 신앙 인격이라는 그 인격을 절대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자기의 인격을 절대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어디서든지 자기 인격은 그대롭니다.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이 될 때에도 그 인격 그대로 억울하게 죄수되었을 때도 그대로 형제들에게 억울하게 매장되어서 죽음을 당할 그때도 그대로 자기의 인격을 더럽히지 안하려고 자기의 인격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그는 애를 썼고 그 다음에 다섯째로는 그가 자기의 책임감에 대해서 자기는 어떤 위치에서 책임을 맡았든지 그 책임감의 결말은 진실이라하는 한 열매를 맺어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포부만 가졌던 것이 요셉의 신앙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에 한 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이는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다섯가지 아름다운 신앙행위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표준의 명령으로 주신 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칙을, 명령을 우리는 달게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파란과 오해와 고독과 섭섭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자기 생애 법칙인 하나님의 뜻과 자기 인격을 더럽히지 안하는 것과 인간을 잊어버리지 안할려는 이 욕망에서 그의 걸음은 언제나 형통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세상이 주는 굴복이 그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