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36
요셉에게서 배울 4가지
1981. 2. 22. 주일오전
본문:히브리서 11장 22절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사적이 창세기 37장 이하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기록대로의 사실을 간략하게 말하면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라헬이 낳은 장자입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낳았는데 베냐민을 낳고 죽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가 일찍 죽은 것과 또 그 아이들의 믿음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이들 중에 요셉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요셉이 17살 될 때에 꿈을 꾸고 꿈 얘기를 형들에게 두 번 말했습니다.
한번은 곡식 단 열둘이 있는데 자기 단은 일어서서 있고 다른 단들이 둘러서서 자기 곡식 단을 향해서 절하는 꿈 얘기를 해 줬고, 또 두번째는 해와 달이 있고 열한 별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하는 꿈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네가 우리 중에 왕이 되며 또 부모들도 너에게 굴하겠느냐?’ 하면서 비웃고 시기하고 미워했지만, 아버지 야곱은 마음에 ‘하나님이 어떤 뜻의 계시를 주셨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이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 옷을 지어서 입히고 다른 아들들보다 어머니 없는 연고와 그 아이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보고 우대를 했는데, 이것 때문에 형제들의 많은 시기와 질투가 있었고 아주 불평스럽게 요셉에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형제들이 탈선돼 나갈 것이 보이면 아버지에게 걱정을 하면서 그 얘기를 해서 아버지에게 권고도 교훈도 책망도 받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반성하지 않고 아주 요셉을 심히 미워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목축을 했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다 짐승 먹이러 산으로 보냈지만 아무래도 그 형제들이 해할 것 같아서 요셉과 베냐민은 함께 보내지 않았는데 한번은 아버지가 요셉을 불러서 ‘형들이 양 치는 곳에 가서 형편이 어떤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형들은 성질이 과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요셉으로서는 대단히 위험한 걸음이었습니다. 그 부근에 있는 블레셋 사람을 남자는 모조리 죽인 무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요셉이 형제들을 찾아갔지만 그곳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으니까 도단 땅으로 가더라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갔습니다. 형들이 멀리서 요셉이 채색 옷을 입고 오는 것을 보고 ‘저 꿈꾼 놈이 온다. 항상 우리를 아버지에게 고발하는 놈이니까 우리가 죽여서 그 옷에다가 양을 잡아서 피를 묻혀가지고 주웠다고 하면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은 줄 알 것이라.’ 하고 의논했습니다.
의논 끝에 맏아들 르우벤이 요셉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한 핏줄인데 꼭 피를 흘리는 것보다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할 깊은 구덩이가 많으니까 거기다 던져버리면 시들어 죽을 것 아니냐?’ 했습니다.
그 말을 형제들이 좋게 여겨서 구덩이에 던졌는데 깊은 구덩이라서 올라오지는 못하고, 물이 없으니까 익사는 안 하고 거기 있습니다. 좀 있다가 유다가 말하기를 ‘야, 그렇게 죽여 없애는 것보다 이스마엘 장사꾼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니까 돈을 받고 팔면 어떻겠느냐?’ 해서 그게 의논이 됐는데, 그것은 유다가 요셉을 구원하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좋게 여겨서 은 20에 장사꾼들에게 파니까 그들이 요셉을 종으로 사서 애굽 나라의 시장에 내놨습니다. 마침 애굽 나라에 대장 보디발이라는 사람이 종을 하나 구하려고 시장에 갔다가 얼굴이 준수하고 똑똑해 보이는 소년이 있어서 돈을 주고 샀습니다.
요셉을 사온 후에 그 아이의 행동도 단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그날부터 보디발 집을 축복하셔서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되고, 모든 생산이 복을 받아서 잘 되니까, 보디발 시위대장이 ‘이는 분명히 하나님을 섬기는 요셉으로 인해서 복 받은 것이라’ 그렇게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보디발 대장이 자기 가정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재산의 관리나 경영을 전부 요셉에게 일임시키고 다만 자기 식사만 자기들이 주장을 했습니다.
그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용모도 준수하고 모든 면이 아름다우니까 그만 요셉에게 동침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당신의 주인이 가정의 모든 것을 다 내게 위임했으나 당신은 나에게 위임하지 않은 것은 주인의 아내이기 때문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과 동침하는 배은망덕의 죄를 짓고 또 하나님 앞에 큰 벌 받을 죄를 범할 수가 있겠느냐?’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랬지만 요셉에게 간청하는 유혹이 계속되니까 그 집에 출입을 금하고 꼭 필요한 사무가 있을 때에만 출입했는데, 한번은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사무적으로 불러서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 여인이 요셉을 붙들고 간청하기 때문에 요셉이 면할 수가 없어서 붙드는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쳐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고함을 지르기를 ‘이 히브리 종족으로서 종으로 사온 이 자가 내게 욕을 보이려고 해서 거절하니까 옷을 벗어 던져놓고 도망갔다.’ 하면서 큰 소리로 외치고 남편에게 그대로 고했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이 요셉을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에 가뒀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정죄받고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을 지냈는데 전옥, 지금으로 말하면 교도소 소장이 요셉을 신임해서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기고 처리하도록 해서 전옥의 대리로서 교도소 소장 노릇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애굽 왕 바로의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 두 사람이 왕에게 정죄를 받아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이 하룻밤에 꿈을 꾸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의 꿈을, 떡 맡은 관원장은 떡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인해서 근심하였습니다. 요셉이 ‘왜 근심을 하고 있느냐?’ 물으니까 그들이 요셉에게 꿈 얘기를 해 줬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듣고 술 맡은 관원은 3일 후에 복직될 것이고 떡 맡은 관원은 3일 후에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해몽해준 대로 바로 왕의 생일 잔칫날에 왕이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을 시키고 떡 맡은 관원장은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때 요셉이 해몽해주면서, ‘3일 후에는 당신이 복직되면 바로 왕 가까이서 접촉할 터인데, 나는 실은 여기 들어올 죄를 범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나가서 잊어버리고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후에 바로 왕이 이상한 꿈 두 가지를 꿨는데, 하나는 소 꿈이고 하나는 곡식 이삭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자기 나라 술객들과 박사들을 다 불러놓고 번민스럽고 고민스러운 그 꿈의 해몽을 하라고 해도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생각하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히브리 사람으로서 잡혀온 사람이 해몽한 그대로 됐으니 그 사람을 청하면 해몽을 할 수 있으리라.’ 했습니다.
왕이 즉시 감옥에 있는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하기를 애굽에 7년 대풍년이 들것이고, 그 후에 7년 대흉년이 들어서 온 국민이 전멸될 것이요, 부근의 나라들도 다 절단날 것이라고 해몽해 주면서, 왕은 지혜 있고 명철한 사람을 택해 세워서 이 일을 예방하면 7년 풍년 든 것으로 7년 흉년의 어려움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하면서 왕에게 해가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왕과 대신들이 같은 뜻으로 ‘아무래도 하나님의 신이 같이 하는 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또 믿을 만한 사람이 있겠느냐? 이러니까 이 사람을 우리 나라 총리대신으로 세워서 우리의 어려움을 면하자.’ 하는 것으로 통일이 됐고, 그날로 바로가 요셉을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으로 세웠습니다.
요셉이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어서 전국을 답사하고 미리 창고들을 다 마련해서 대풍년 7년 동안의 곡식을 하나도 허비치 않고 잘 저장하니까 7년 후에 흉년이 들어서 연방 국가들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났지만 애굽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흉년이 든 지 2년째 되는 해에 가나안에 있던 야곱의 가족들도 견디다 못해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고 하니까 양식을 구해 와서 우리가 죽지 않도록 하라.’ 하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서 열한 형제 중에 베냐민만 남겨 두고 열 형제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양식을 사러 가니까 요셉이 그 모든 것을 홀로 주관하고 있는데 형제들은 요셉을 모르나 요셉은 그 형제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는 표시를 내지 않고 ‘너희들은 우리나라를 정탐하러 온 자들이니까 양식을 줄 수 없다.’ 하면서 그들을 가뒀습니다.
며칠 후에 그들을 풀어주면서 ‘바른 대로 말을 하라.’ 하니까, 형제들이 가족의 모든 형편을 말하면서 ‘열두 형제 중에 하나는 짐승에게 죽었고 하나는 아버지가 같이 보내면 위험하다고 해서 집에 있고 우리 열 형제만 왔는데 우리는 정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말째 동생을 데리고 오면 너희 말이 사실인 줄 알겠고, 데리고 오지 않으면 정탐꾼으로 알겠으니까 동생을 데려오는 동안 너희 중에 하나는 남겨 둬라.’ 하면서 시므온을 결박하고 아홉 형제에게 양식을 주면서 돌려보냈습니다.
보낼 때 양식 값은 자루 안에 넣어서 보냈는데, 그들이 가다가 중간에 돈을 발견을 하고 놀랐으나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굶어서 어떻게 되더라도 베냐민은 보낼 수 없다. 두 아들 중에 하나는 짐승에게 죽었고 또 남은 것도 없어진다면 늙은 내가 슬퍼서 죽을 것이니까 안 된다.’ 했습니다.
그랬지만 워낙 배가 고프니까 어쩔 수 없어서 유다가 베냐민을 책임지고 양식을 사러 내려갔습니다. 가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이 자기 동생이 온 것을 보고 청지기를 시켜서 식사를 준비시키고 ‘이제야 너희가 정탐꾼이 아닌 것을 알겠다.’ 하면서 시므온을 내어 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니까 열한 형제가 양식을 싣고 내려가는데, 요셉이 자기가 사용하는 잔을 베냐민 자루 안에다가 넣으라고 시켜서 보내면서 성문에 나갈 때에 사람을 뒤따라 보내 가지고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가 너희를 후대했는데, 어떻게 너희가 주인의 잔을 도둑질할 수가 있느냐?’ 하니까, 그들이‘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그 잔이 나오면 그 사람은 죽이라. 또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했습니다.
하나씩 들춰나가다가 베냐민의 자루 속에서 잔이 나오니까 ‘너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베냐민만 종이 되리라.’ 하면서 잡아갔습니다. 그럴 때 그 형들이 ‘만일 베냐민을 두고 가면 우리 아버지의 생명이 끊어질 것이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겠고 또 약속하고 한 바이기 때문에 안 된다.’ 하면서 동생을 대신해서 종이 되겠다고 간청했습니다.
그제야 요셉이 형제간의 불목의 죄를 회개한 것을 알고 자신이 요셉이라고 알리고 방성대곡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의 가족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생각해서 그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애굽에서 제일 좋은 땅을 내어줬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떨고 있을 때 ‘형제들이 나를 이리로 보낸 게 아니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당신들보다 앞서 이곳으로 보내서 하나님의 약속된 이 민족을 멸하지 않고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 보냈기 때문에 온 것이지 당신들이 팔아서 온 것이 아니라.’ 하면서 위로하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이 17년 동안 애굽에서 살다가 147세에 죽을 때 말하기를 자기 유해를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장례하라고 해서 그 유언대로 장례를 했습니다.
그 후에 요셉이 죽을 때도 ‘나를 가나안에 장례하려면 애굽 사람들이 듣지 않을 것이니까 내가 해골이 되거든 내 해골을 선조들이 있는 가나안으로 옮겨 달라.’고 유언했는데, 그것이 오늘 히브리 11장에 읽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과 가나안에서 목축업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7년간의 무서운 흉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보존된 것과 또 그 자손들이 번식하게 된 것은 요셉이 아니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형들에게 배척당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종으로 팔려갈 일이 없었을 것이고, 팔려가지 않았다면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종 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시위대장의 아내에게 억울함을 당하지 않았으면 감옥에 투옥되지 않았을 것이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술 맡은 관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 관원의 꿈을 해석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왕의 꿈을 하필 요셉에게 해몽하라고 했을 리 없었겠고, 요셉이 해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애굽 총리대신이 될 리가 없었겠고, 총리대신이 되지 않았으면 야곱의 열한 아들들이 애굽의 유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형제에게 당한 일이나, 상품으로 팔려간 일이나, 보디발 집에서 억울한 꼴을 당해서 죄인으로 감옥에 들어간 일이나, 죄 없이 죄인이 되어서 오랫동안 억울하고 비참하게 된 것을 피상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요셉이 당한 그 순서가 바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출세의 순서요, 길이요,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순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토막이라도 없었더라면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또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이분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주재시고 주권자시고 모든 것을 통치 섭리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성경으로 잘 보지 못한 때였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버리지 않을 것이요,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고난이요, 다 필요한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 줄 든든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끝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하고 나갔기 때문에 한 번도 불평이나 낙망하지 않았고 순서마다 죄 없는 순서로 걸어 가지고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일시 좁은 생각으로 ‘이는 억울하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참 섭섭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원망 불평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우리에게 없어서 안 될 순서로 주신 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실 그 결말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요셉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요셉을 인도하는 걸음을 보면 형제들에게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당해서 종으로 애굽에 팔려갔지만 애굽의 시위대장이라면 제일 부자요 권세 있는 사람인데 그 집의 소유와 그 집에 속한 사람들을 다 자기가 위임 맡아서 보디발 시위대장 부부 다음 가는 존귀한 위치에서 환영을 받았으니까, 요셉을 판 형제들이 보기에는 비참하고 험악했지마는 형제들이 모르는 그 속에는 그런 취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행복이 있었던 것을 뒤에 볼 수가 있습니다.
또 보디발 대장의 아내에게 애매하게 정죄를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지만 애굽의 정치범들이 갇힌 그곳에 전옥이 모든 권세를 요셉에게 맡겼으니까 겉으로 보면 죄수나 속으로는 큰 교도소 감옥장입니다.
별별 정치범 경제범 굵직굵직한 죄수들이 다 요셉에게 관할을 받고 요셉의 친절을 받고 요셉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벌써 요셉은 그곳에서 앞으로 총리대신이 되면 손잡을 만한 위대한 사람들을 다 교제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겉은 억울한 죄인으로 매장됐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긍휼로써 그 가운에 영광과 존귀와 대우와 모든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그를 감옥에서 한 두 해가 아니라 그렇게 오랫동안 썩혀 두고 술 맡은 관원도 철통같이 약속했지만 2년 동안이나 생각하지도 못하도록 숨겨놨다가 왕이 꿈을 꿨을 그때 비로소 생각나도록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섭리로 때를 맞추고 장소를 맞추어서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해몽하는 사람으로 등용했기 때문에 애굽 나라 총리대신이 됐지 그렇지 않고 유명하다고 해서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본토로 돌아갔더라면 무슨 그런 성사를 하겠습니까? 그런고로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자는 제삼자들이 볼 때에는 비참하지만 남이 모르는 하나님의 긍휼과 측량 못할 하나님의 사랑의 행복과 평강이 있는 것을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기서 깨달을 것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당한 억울함을 어떻게 참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통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꿈을 꾸고 나서 형제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는 형제들 위에 뛰어날 것이고 형제들은 자기에게 굴할 날이 있을 것을 든든히 믿었고, 그들이 종으로 팔든지 구덩이 속에 던져 넣든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기를 존귀케 하시려는 것인 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신실히 자기에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형제들이 자기를 어떻게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순서 중의 하나지 결단코 나를 죽이지도 못하고 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망치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형제들에게 당한 억울함도 능히 이길 수가 있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미인의 유혹은 젊은 청년들, 독신 청년의 참 어려움인데, 한상동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서 누구에게 가서 절 할래 하면, 청년 남자로서 아리따운 보디발 아내가 그렇게 간청할 때 그 죄에 말려들지 않은 요셉에게 나는 가서 먼저 절하겠다.’ 하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참 위대한 깨달음을 가진 목사님입니다.
청년으로서 천인 만인이 넘어지기 쉬운 그때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는 무난히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두려움을 벗어날 수가 없고, 자기에게 축복하실 그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그런 것을 이기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해서 감옥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의 끝이 있으리라는, 존귀의 끝이 있으리라는 소망으로 그 억울함을 견디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보디발 집에서도 남이 모르는 은혜를 베푸는 것을 봤기 때문에 감옥에 있으면서도 애 터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니 자기가 감옥에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그는 억울하거나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바로 왕에게 불려갔을 때에도 ‘이제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서도 해몽을 바로 하게 해 주실 것이라.’ 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는 안심하고 깨달아지는 대로 해몽을 했고, 또 그들이 그렇게 높이 등용을 해 줘도 거기 가서 우쭐하지를 않았습니다.
불학무식한 자기가 애굽 나라에 총리대신을 맡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늠름하게 감당할 용기를 가졌던 것은 자기의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고, 함께 해주시고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그 직책에서 14년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잘 통과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들어서 바로 왕의 아비를 삼았으며 애굽 백성들의 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감옥에 있을 때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나 꼭 같지 뭐 우쭐할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인도대로 잘 감당하려고만 애썼고, 하나님 기쁘시게 하려고만 애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만 애썼지 애굽을 다 맡겨도 그까짓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래서 요셉이 억울함을 견딘 것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수월하게 견뎠고, 보디발 집에서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주목될 때도 우쭐하거나 세부리지 않고 경건한 계속적 생활을 한 것도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서 견딘 것이나, 총리대신으로서 직책을 감당한 것이나, 그 후에 형제들을 만났을 때도 형제들에게 거리끼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 하나가 형제들에게 박혀 있는 죄악을 회개시키고 그들을 옳은 참 사람이 되게 하려는 운동 뿐이었지 인간 감정으로 인한 복수나 실수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그분과 연결을 가지고 그분과 의논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리 큰 것을 봐도 놀라지 않고, 어떻게 처박혀도 거기서 능히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과 연결됐기 때문에 저자세의 사람이 되거나 굴하거나 낙망치 않습니다.
아무리 원수라 해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도 광대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보기 때문에 인간의 개개인에 대한 복수를 초월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다 믿음의 힘입니다.
요셉도 이 믿음으로 인해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것 견뎠고, 참을 수 없는 것 참았고, 복수하지 않을 없는 일이지만 복수하지 않았고, 선도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선도했고, 감당치 못할 어려운 일을 잘 감당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다 우쭐하고 올라갈 수 있는 자리지만 올라가지 않았고, 낙망으로 처박힐 수 있는 자리였지만 처박히지 않고 그의 생애는 언제든지 청청했습니다.
넷째로 깨달을 것은 애굽에 있는 동안에 바로 왕이 자기를 아버지같이 여겼고 모든 백성이 자기 생명같이 구주로 여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다 통치했습니다.
그럴 때 ‘이것이 내 세계라, 내 나라라.’ 하면서 그 곳에 정붙이고 폭 빠져서 자기의 묘를 그곳에 썼다면 얼마나 웅장하고 굉장했겠습니까? 그래도 요셉의 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그곳을 고향삼고 본토삼고 그곳을 승리의 곳으로 삼고 자기가 머물 곳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한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 ‘내 해골을’ 왜 해골을 부탁했습니까? 요셉의 시체를 가나안에 장사하려고 하면 애굽 백성들이 막 그 시체를 물고 빨 것인데 그냥 보내겠습니까? 그러니까 애굽에 장례를 했다가 다음에 너희들이 애굽에서 구출되어 나갈 터인데 그때에 내 해골을 꼭 가져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그는 땅위에 모든 굴곡과 파란 곡절을 다 초월해서 살았고, 땅위에 모든 것이 형통했지만 거기에 정과 욕과 소망과 안정을 쏟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약속한 소망을 이루어 가는 한 노정에 지나지 않은 것이요, 한 방편에 지나지 않은 것이요, 한 나그네 생활로 여겼기에 그는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을 소망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셉에게서 이 네 가지를 배워서 우리도 요셉의 신앙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요셉의 신앙과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도 요셉의 신앙과 어제 하나님께 대한 절대성 있는 그 신앙을 볼 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도 장시간 요셉의 신앙에 비해서 너무 하나님 앞에 죄송해서 장시간 울음을 울었습니다.
우리는 이 요셉의 신앙을 본받읍시다. 요셉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요, 요셉에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꼭 그와 같이 하시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맡기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끝없는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이렇게 토막토막으로 변동이 되고 있는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일생은 어떤 일생이든지 없어서는 안 될 일생으로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가는 이 걸음을 제삼자들이 보면 참 통곡할 걸음이지만 자기에게는 한없는 평강의 걸음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걸음은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것과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사랑을 든든히 의지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파란 굴곡에 조금도 요동치 않고 일관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는 소망을 땅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