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기도와 올바른 기도

 

1988. 1. 13. 수새벽

 

본문:마태복음 6장 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이것은 읽으니까  기억이 되지요?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껍데기만 꾸며 가지고서  알맹이 없는 그런 기도를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말입니다.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 상대해서 기도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을 상대해서  그말이오. 하나님 상대하지 안하고 사람 상대해서 기도한다. 그러면 사람  상대하는 거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요.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들리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람에게 무슨 존대를  받든지 존귀를 받든지 칭찬을 받든지 어쨌든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해 주시는 것을 바라는 것이 기도요, 또 기도는  하나님만을 상대해 가지고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인데 그렇게 하지 안하고  하나님 외에 딴것을 상대하는 것이 그것이 다 외식 기도라.

모처럼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모양이나 기도하는 장소나 기도하는 사상이나  기도하는 소망이나 기도하는 상대나 그런 것이 다 하나님만을 상대하지 안하면  모두가 다 껍데기 외식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혜택을 입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택을 입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기  위해서 어쨌든지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이런저런 모든 좋은 그 혜택을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기도가  아닙니다.

여게도 보면 기도하는 것이 사람에게 들으라 봐라, 사람을 상대해서 하는 기도가  그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야 뭐 이렇든지 저렇든지  저만 좋으면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사람의 천사가 항상  너의 하나님 앞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 사람을 책임맡은 그 천사가 항상 우리  하나님 앞에 모시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는 그  결과가 맺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못나도, 못난 사람 그거야 뭉캐 버려도 되고 아무 일  없지마는서도 그 사람의 천사가 있습니다. 아주 또 의로운 사람은 그 사람은 아무  시험에 들 일이 없고 굳건히 서고 요동치 않겠다 이렇게 보이지마는 그 사람에게  달라붙은 또 뭐 있습니까? 마귀 있습니다, 마귀. 이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섰다고  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됩니다.

항상 나를 멸망시키는 마귀가 따라붙어 있고 또 나와의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 곧 연락병과 같은 그 천사가 속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사와 그 마귀를 생각하고 살아야 되지 그거 생각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면 많은 사람의 천사가 하나님에게  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칭찬이 자자하게 됩니다. 갑이라는 사람의 천사가  오더니마는서도 ‘하나님 아무것이가 이렇습니다’ 또 을이라는 사람의 천사가 와  가지고 하나님에게 또 고합니다. ‘그 사람이 이렇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점점 존귀히 보일 것이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고 하나님  앞에 그 축복을 받을 것 아닙니까? 하나가 오더니마는서도 ‘그 사람이 지금 이리이리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의 신앙을  바로 죽여놨습니다. 이런 말 해 가지고 이런 이간을 붙여 가지고 고만 사이를  벌어트려서 그 사람이 그만 신앙이 다 깨져 버렸습니다. ’ ‘고라라는 사람이 있는데 고라라는 사람이, 그 사람이 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고라가 와 가지고서 그만 지도자 모세와 그 지도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 사이를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그만 모세를 부인하게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완전히 신앙줄을 잊어 버렸습니다. ’ 또 이 사람이 와서 또 말하고 저  사람이 와서 말하고 그러면 그 사람의 주인되는 하나님께서 그런 고발이  들어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내가 맡아 가지고 있는 아무것이에 대해서 일을 시켜놓고 품삯을  공평되게 주지 안하고서 억울하게 합니다. 이랬는데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고 지금 속으로 앵통해 가지고서 이라고 있습니다. ’ 그게 비록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대한 천사는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천사가 다 따라붙어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도 따라붙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만유주의 귀에  호소를 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새벽으로 기도할 때에도 아무것이가 그 사람 하는 것  보고서 믿음이 소생됐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살아났습니다. 그 사람이  죄에서 일어났습니다. ’ ‘아무것이 그 사람 때문에 지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는  아무것이는 그만 오늘 기도할라 하니까 자꾸 옆에서 고함을 질러 쌓으니 그만  그것만 자꾸 들어오고 하니까 오늘 새벽에 내나 하나님 당신의 종을 통해서  증거해 준 말씀 다 그만 없애 버리고 다 잊어 버리고 기도도 못 하고 그 말씀의  구원도 이루지도 못 하고 그렇습니다. ’ 그러면 어찌 되겠소? 그러면 하나님이  멀어지고 하나님이 벌어집니다.

그럴 때는 재빨리 마귀란 놈이 그만 와서 달라붙습니다. 벌써 그런 사람이 되면  얼른 와 가지고, 천사는 그 사람에 따라서 피하고 잡고, 그 사람이 바로 되면  천사가 붙들고 수종듭니다. 또 그 사람이 삐뚤어지면 천사는 떠나가고 마귀가  붙들고 지금 작용합니다. 이러니까 그만 마귀가 와. 와 가지고서 그 사람을  붙들고 역사하게 돼.

이러니까, 틀렸으니까 그거 하지 마라 하는 거 자꾸 계속해 하면 얼마 안 가면 그  사람 정신병자 됩니다. 사람 보기에 그 사람은 못쓸 사람, 미친 사람이라 이렇게  되지 안해도 그 사람이 모든 것이 자기 몸 안에서 각 요소와 각 기관이 공평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은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아. ‘저 사람은  욕심쟁이다. 저 사람은 감정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혈기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간교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이간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시기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물욕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정욕의 사람이다. ’ 고만 그 사람이 돼  버려요. 그러면 그리 치우치면 그 사람 되지 않습니까? 그리 치우치면 그 사람  됩니다. 그게 다 뭐이냐? 비정상의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모든 면에 공평해서 이리 보면 꼭 이 사람 같은데 또 저리  보니까 그게 아니라, 딴 사람이라. 이래서 십 년을 이십 년을 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꼭 잡아서 ‘요거는 요거라’ 보니까, 아니야. 또 딴거라.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도 중용을 취하는 그런 사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군자는 불기라’ 참으로 신사는 그릇이 아니다. 이거 뭐 종재기야  항상 종재기지 종재기 제까짓 게 도가지가 되겠습니까? 종재기로 보니까 아니라  도가지. 도가지로 보니까 종재기. 도가지 종재기뿐인가? 나중에 보니까 쟁반,  나중에 보니까 물동이. 이렇게 이거저거 한가지이지 않고 모든 면을 다 원만하게  구비해진다 그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래야 성공하지.

그러기 때문에, 말하기를 ‘성현이라야 능지 성현이라’ 성현이라야 성현을 안다.

사람이 된 것만치 사람을 압니다. 또 사람이 된 것만치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치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이 기도하는 데는 남의 기도를 방해하지 안하도록 노력을 하고 또 자기  기도가 다 달성이 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고 또 새벽으로 나오면은 새벽으로  나올 때는 그날 새벽에 하나님이 말씀 주신 말씀 있으니까 그 말씀을 가지고서  주로 그날 새벽에는 기도해야 됩니다. 고면에 대해서 기도하고 조면에 대해  기도하고 이라면 나중에 원만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이렇게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에  처음에는 성막을 이리 지으라 저리 지으라 전부 총론적으로 전부 다 말했습니다.

다 말했지마는 그래 놓고 모세에게 성전 지으라고 했습니까? 지으라고 하지  안했어. 그래 지으라 하면은 모세가 성전을 바로 못 지어.

이러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지을 때는 ‘네가 요거 해라’ 꼭 할 것 하나만 말했어,  하나. 하나 고놈 말해 가지고서 고거 하나 바로 됐으면 고다음 것 말하고 바로 안  됐으면 고거 새로 고치고 이래서 고렇게 해서 나중에 보면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완전히 준공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하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신구약 성경을 우리가 다 보지마는 하나님이 자기 개인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개인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하고 또 단체라면은 단체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하고, 이래서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것을 오늘 아침에는  설교해라 이렇게 깨닫게 해 주셨으면 설교하면은 그 설교 하나 하는데 그 설교를  통해서 성령은 역사하기 때문에, 방언이 뭐이 방언이냐? 그 사람은 무슨 모세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다니엘에 대해서 깨달아졌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에 대해 깨달아졌고  설교는 한 설교했는데 그 사람은 거게서 깨닫기를 각각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깨달아 가지고서 회개도 하고 믿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그 말씀을 했나, 어데 설교할 때 오늘 그 말씀이 있었나?’  어떤 사람은 ‘오늘 그 말씀했어’ 설교한 사람은 그말 안 했는데 그 사람에 들릴  때에는 그 말씀으로 들렸다 그말이오. ‘오늘 그 설교했어’ 또 조금 더 정신 차린  사람은 ‘오늘 그 설교했나?’ `아니 설교는 내나 이 설교하셨는데 내게 대해서는  이렇게 그것이 깨달아졌어’ 그렇게 자꾸 영감 역사가 이렇게 인간의 공간을, 이  사람과 나 사이에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안 한 그분은 시간에도 제한을  받지 안해. 종류에도 이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종류에도 제한받지 안해. 망라해  가지고서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꼭 우리 신앙이라 하는 것은 성경이라는 이 다림줄, 성경이라는  먹줄. 이 목수들이 먹줄 가지고 딱딱 튕겨서 그렇게 하지 안해요? 성경을 타서  이렇게 해 나가야 되지 성경은 두고서 제 생각대로 이래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이 시간 기도할 것 따로 있고 다음 시간 기도할 것 따로  있고 이래 따로 있는데 항상 그 기도라. 밤낮 그 기도라. 그건 익었거든. 그러니까  그런 건 그거는 생각할 것도 없어요.

이제 날마다 오늘 하신 말씀 듣고 난 다음에는 여게 대해서 기도할라 하니까  생각을 해야 되겠고, 거게 대해서 또 많이 자기가 살펴서 ‘오늘 아침에 주신 이  말씀과 나와의 대조하면 어찌 되느냐?’ 자기 행동과 말씀과 대조하고 자기라는  성질과 속성과 대조하고 자기라는 앞으로 계획과 대조하고 대조하니까 좀 인격을  써야 되겠고 정신을 차려야 겠고 마음을 들여서 가져야 되겠고 이렇게 하니까 고  말씀과 자기와 변화가 된다, 일치가 돼서 변화가 돼요. 그게 성화되는 것인데  이것도 아니고 고만 늘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자꾸 이라니까 그거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입에 익어서 그만 말만 해도 입에 막 좔좔좔좔 나옵니다. 그게 말로써  주문 기도, 주문.

주문 기도라 말은, 주문이라 하는 것은 이래 주를 이래 써 놓고 자꾸 읽는 거라.

이래 가지고서 돌팔이 내나 귀신 점쟁이들은 주문 읽는 건 주문 쓴 것 있어요.

있는데 고것을, 많지도 안해, 그저. 자잔한 글로 요런 거 한 반 페이지나 될 만치  그런 건데 그걸 항상 그것만 외워요, 자꾸 그것만. 언제든지, 이 집에 가서나 저  집에 가서나 이 귀신이나 저 귀신이나 이 탈이나 저 탈이나 뭐 어데든지 그  손비비는데 항상 그것만 외워. 그거 모양으로 그렇게 주문 기도.

또, 자기 입으로 나오고 자기 귀로 들어와서 그 취미가 있어. 음악을 감상하는 것  모양으로 말도 다른 사람 말하면 재미 있지 안해요? 말들으며 얘기해. 그래 제  입으로 제 귀로 듣고 자꾸 자문 자답하는 또 그 기도를 하고, 그리 아니면 이렇게 하다 보면, 그 기도하다보면 나중에 가서 자기가 자기 소리  자기가 듣고 이라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기만 들을 게 아니라 그래 하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야, 너만 듣는 게 아니라 옆에 사람이 지금 듣고 있다, 옆에  사람이 듣고 있다. ’ ‘듣고 있어? 그라면 좀 힘 있게 더 설교를 해야 되겠다. '  이라고 나중에 가서 기도한다 하는 것이 옆에 사람에게 제 자랑만 실컷하고  그건기도가 아니야.

사람이라 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흉한 것은 덮어 가루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이요, 또 자기에게 장점은 다른 사람에게 선전하고 광고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될 거  수치스러운 그런 것 참 그걸 회개해야 되는데. 그런 건 겉으로는 말 안 합니다.

그런 건 말하지 안하고 속으로 감춰 놓고 중얼거리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칭찬하고 좋을 것 그런 자기 자랑하는 그런 거는 지금 들낸다 말이오.

나중에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 자랑만 실컷하고 ‘저 사람은 참 기도하는 거  보니까 그 사람 믿음 좋고 성자다 성녀다’ 그래 보인다 말이오. 그래 보일 만치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실컷 선전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설교하는 것으로  설교하고 이렇게 해서 남에게 들어라 봐라 하는 그런 기도 그걸 여게서 말합니다.

‘회당과 길거리에 서서’ 뭐 길가에 누가 서 가지고서 기도하는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게 뭐이냐? 사람을 상대해서 사람에게 자기를 나타내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무엇을 소망해서, 장가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또 밑천 주는, 자본 대 주는 그 자본주 구하는 믿음  많아요. 집사 믿음도 있고, 장로 믿음도 있고, 권사 믿음도 있고, 우리 교회는  그거는 없는 모양이라. 이번에 다 떨어졌는데 보니까 장로 믿음도 없고 권사  믿음도 없어.

이렇게 우리는 바른 길을 가는 것, 바른 길이라 하는 것은 바른 길이 얼마나  있느냐? 바른 길은 천 길 중에 바른 길이 하나 있습니까? 몇 중에 하나  있습니까? ○○○ 선생, 바른 길은 몇 개 중에 하나 들었는고? 수없는 중에 하나  들었어? 그말 맞아요? 수없는 중에 하나도 안 들기도 합니다. 수많은 천 가지 만  가지 가운데에 옳은 것은 하나도 안 들 수도 있어.

또, 하나만 있으면 거기 옳은 것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하나만 있으면 옳은 거  그 속에 들어 있겠어요 없겠어요? 저 가운데 ○○, 하나만 있는 데는 거기 바른  거 들어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하나만 있어도 바른 거 들어 있을 수 있고 여러  만 개가 있어도 옳은 거 하나도 들어 있지 안할 수 있고, 그러면, 옳은 것은 몇 개나 돼요? 옳은 것은 몇 개나 돼요? 옳은 거 몇 개 돼요,  여기 여반에? ○○○ 씨, 옳은 것이 하나에 대해서, 한 종류에 대해서 옳은 것이  몇 개나 있을꼬? 하나. 하나뿐이라. 하나. 어떤 사건이든지 그 사건에 꼭 바로  하는 건 하나뿐이라 그말이오.

자기가 또 말을 지금 말을 하는데 그 말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옳고 바른  말은 여러 마디 있겠습니까 한 말뿐이겠습니까? 하나뿐이라는 걸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뿐인 이것을 찾아 가지고 요게 명중해야 되기 때문에  얼마나 그것이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나따나 해도 들어맞아? 아무나따나도 하면, 기도할 때도 아무나따나  그 기도해도 그 기도가 들어맞겠는가 그말이요? 혹 맞을 수도 있기야 있겠지.

공중에다 대고 활을 쏘니까, 공중에 활을 쏘니까 혹 그 새란 놈이 지나가다 맞을  수도 있겠지, 있지만 그게 잘 되겠는가! 그런고로, 우리는 외식하면 안 됩니다. 어짜든지 신앙이라 하는 건 진실입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재료도 진실이요, 방편도 진실이요, 또 소망도 진실이요,  목적도 진실이요, 동기도 진실이요 전부 진실이어야 되지 진실 아닌 딴데서는 이  신앙이라 하는 건 되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다 영생인 것입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상을 받았다 그말은 자기는 기도의  효력을 받았다 말이오. 사람에게 들어라 봐라 했으니까 사람 들었으면 사람  들어라 봐라 하는 그 기도에는 그 효력 다 받았지 안했소? 사람이 들었으니까.

사람에게 인정받을라고 기도했으니까 인정받았으면 그 기도의 효력은 다 보지  안했느냐 그말이오. 기도의 효력은 다 봤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기도의 효력을 사람에게서 받지 안하고 하나님에게서 주신 효력을  받아야 되지 사람이 주는 효력 받으면 뭐할 겁니까? ‘저 사람은 참 기도의  사람이라’ 아무리 다른 사람이 칭찬하고 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없는 것보다  좋기야 좋겠지마는서도 그까짓 거 많이 받아 봤자 다 사망선 아래에 있는 것이지  사망을 꿰뚫어 올라간 것은 하나도 아니라 말이오. 사망을 초월하는 것은 하나도  아니라. 생명에 속한 것은 하나도 아니라. 하나님에게 받아야 되지.

여게서,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문을 닫으라’ 문을 닫으라  말은 이 세상에서 있다가서 골방에 들어가 가지고서 문 닫으면 어찌 됩니까?  과거에 보이고 접하고 하던 그 모든 것은 어데 갔습니까? 그 모든 건 어데 갔소?  골방으로 들어갔으니까 자기가 보고 접하고 서로 상관하고 하는 그런 것은 다  어디로 가? 그런 것은 다 뒤로 가지 안했어, 뒤로? 문을 닫았으니까 제가 자기  뒤로 두고 가지 안했어, 뒤로? 온 세상에 있는 온갖 사정을 다 뒤로 두고  기도해야 됩니다, 뒤로 두고.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래 기도하는  사람이 그 사람은 항상 외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기도할 때에는 온 세상  자기에게 관련되는 어떤 중대한 문제라도 그런 것 다 문제를 다 뒤로 두고 일단  ‘이렇게 기도하라’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랬어. 그러면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되는 이 관계를 바로 해서 내가 하나님과 관계된 그것이 다  구별하는 그 구별의 행동이 돼서 구별의 행동된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 구별의  행동함을 받으시도록, 구별의 대우하는 그 대우를 받으시도록, 하나님에게 대해서  자기가 올바른 관계 올바른 행동 이것이 되어지도록 하는 이것이 기도의 제일  첫째 것입니다.

기도할 때 야, 처음에 돈 구해라 뭐 병 구해라 하지 안했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게 대한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기도들은 다 어떻게 하느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문 닫은 걸 말해. 문 닫은 것은 모든 이제 보고 상대하던 것을  다 뒤로 두고, 방 안에 들어가도 문 닫기 전에는 보인다 말이오. 방 안에  들어가도 문 닫기 전에는 보이는데 문들 딱 닫아 버리면 문 밖에, 골방 밖에 거는  하나도 안 보이요. 세상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다 이거는 그거 다 내놓고  이제 하나님하고 상대하는 이게 돼야 된다 말이오. ‘ 골방 안에’ 골방은 뭘 골방이라 하느냐? `네 골방' 네 골방은 네 양심 속에  들어가서 그말입니다. 네 골방 안에 들어가서, 네 양심에 들어가서, 제 양심에  들어가야 주님 만나지, 여게 ‘네 골방이라’ 네 골방. `네 골방에 들어가서' 네 양심 속에 들어가야 주님이  어떤지, 네가 어떤지, 주님이 네게 대해서 노하고 있는지, 네게 대해서 참 마음에  섭섭해 하고 있는지, 분히 여기고 있는지, ‘네가 나를 소경으로 보고 있나? 네가  나를 보는 줄 아느냐? 네가 사람의 눈만치도 여기지 안하고 네가 날 보는 줄  아느냐? 네가 아무래도 날 무슨 이성 판단이 있는 존재로 아느냐? 네가 하나의  목석같이 네 마음대로 네가 주물대로 주물고 그래 하고 있지 않느냐?’ ‘골방 안에 들어가 기도해라’ 네 양심 속에 들어가서 네가 기도하라. 네 진리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네가 성경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아는 성경, 네 성경, 네  성경, 네가 아는 성경대로의, 네가 아는 성경 속에서 네가 기도해라. 네게 대한  영감이 있지 않느냐? 네 영감 속에, 네가 영감 속에도 들어가지 안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영감 속에 들어 계시는 네 아버지를 어떻게 만날 것이냐? 진리  속에도 못 들어가며 어떻게 만날 것이냐? 네 양심 속에도 못 들어가는데 네가  어데서 만날 것이냐? 그거 다 외식이라. 마귀나 만나지 하나님 만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고다음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주기도문은 얼마나 이것이 참 큰 뜻인데  주기도문을 해석한 것이, 해석이 얼마나 바로 깨닫기 어려운 줄 압니까? 주기도문의 주석은 내가 몇 가지 봤는데 봐도 다 그래. 손양원 목사님, 주기도문  강해를 했는데 거게 조금 더러 좋은 게 더러 있어. 주기도문 이거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니까 자꾸 이래 기도 많이 해 가지고서 하고 해서 여기서 가르쳐  주거들랑은 받고서 이거 보배로 알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요새 늘 며칠 동안을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안하도록 해야 됩니다. 올바른 기도는 골방에 계시는 주님, 골방에 계시는  주님이라니? 내 양심 속에 거처하고 계시는 주님이라 말이오. 내 양심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 주님 못 만나요. 내가 아는 성경 진리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 못  만나요. 내게 대한 영감 속에 안 들어가면 주님을 못 만나. 거기 가서 주님 만나  가지고서 기도하는데 기도가 첫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그게 첫째 일호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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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6 외식/ 마태복음 23장 13절/ 870906주후 선지자 2015.12.12
3565 외식/ 마태복음 23장 13절/ 870906주전 선지자 2015.12.12
3564 외식/ 마태복음 23장 13절-24장 2절/ 790729주전 선지자 2015.12.12
3563 외식/ 창세기 13장 8절-10절/ 860404금새 선지자 2015.12.12
3562 외식/ 마태복음23장 1절-12절/ 840606수새 선지자 2015.12.12
3561 외식/ 마태복음 23장 13절/ 790730월새 선지자 2015.12.12
3560 외식/ 마태복음 23장 13절/ 790729주후 선지자 2015.12.12
3559 왜 꺼꾸로 보여졌는가/ 창세기 3장 5절-6절/ 810211수새 선지자 2015.12.12
3558 왕자의 혼인 잔치/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861123주전 선지자 2015.12.12
3557 완전회개/ 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870311수새 선지자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