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8:22
외식 기도와 주기도문
1988. 1. 16. 토새벽
본문:마태복음 6장 2절∼11절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절 이하에 우리가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구제를 하지 말아라 구제하는 것은 남을 돕는 것은 다 구제가 되겠습니다. 남을 돕는 것은 다 구제가 되는데 그 구제를 해도 참 상대방에게도 효력이 있고 또 자기에게도 효력이 있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구제는 진실한 구제인데 외식하는 그 구제를 벗어나야 진실한 구제가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진실한 구제는 여게도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보고서 그렇게 구제해야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하는 이것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도 있지마는서도 그 구제하는 것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좀 많이 어려워서, 그러면, 우리가 남을 돕는 일은 내가 돕는 그 일에 하나님이 같이 도우셔야 되지 하나님이 같이 돕지 안하면 인간 돕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 가치 없습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그 일이 하나님이 같이 도우실 뿐만 아니라 내가 남을 돕는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나에게 도울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자꾸 계속해서 주심을 받아야 됩니다.
남을 돕는 구제하는 일을 할 때에 그 구제하는 일이 상대방에도 유익하고 내게도 유익하고 하나님도 참 기뻐 책임질 수 있는 이 일이 돼야 된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서 깊이 가서 좀 연구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 해석할라 하면 그 하나만 해도 몇 시간 가야 되니까 해석할 시간 없고 그저 가 가지고 이 말씀을 보고서 연구하도록만 해 줍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지금 모르요, 이 말. 듣고 기억하고 가서 자꾸 연구하고 깨달으면 이제 진리를 바로 알 수 있도록은 그 뚜껑을 떼 놨으니까.
구제할 때에는 내가 구제함이 상대방에게 참 유익이 있어야 하겠고 또 내게도 유익이 있어야 하겠고 또 하나님도 기뻐서 당신이 그 일을 협동하셔야 되겠고 이래야 이 구제가 바로 되지 그렇게 안 되면 다 헛 구제입니다.
그러면, 인간 저거끼리만 하는 놀음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관계 없어.
인간 저거끼리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남에게 뭘 줬다 할지라도 그까짓 것도 아무 소용 없고 주면 자랑이나 되고 그 사람에게 못쓸 사람만 돼지게 되지, 이러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구제함으로써 구제받는 그 사람을 못쓸 사람 만들면 안 돼. 내 구제함에 하나님이 기뻐서 그 일을 같이 협동해 주셔야 그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내가 뭐 돈으로 구제하는 것도 있고 내 인력으로 하는 것도 있고 내 지혜로 하는 것도 있고 기도로 하는 것도 있고 뭐 오만 거 다 있는데 하는 그 일이 하나님이 같이 도우셔야 되지 하나님이 거게 돕지 못하면, 도울 수 없는 것은 거기에 부정하면, 불의하면 하나님은 거게 참석을 못 해.
어떻게 그 사람 같지 않은 노릇을 하는데, 사람도 좀 된 사람은 거게 같이 참석을 할 수 없는 건데 하물며 사람 같지 않은 일 하는 일이고 하나님 보실 때 가증스러운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동참할 수가 있느냐 그거요. 구제할 때도 하나님이 동참할 수 있는 구제가 되도록, 동참하시면 어찌 되느냐? 동참하시면 그 일을 내가 하는 거야 그까짓 거야 쪼그매 시작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도우셔야 되지 하나님이 돕지 안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이 협동해서 나는 고것만 하고 말아도 하나님이 그 일을 인계 맡아 가지고 책임지시고 완성이 되기까지에 하실 수 있는 이 구제해라.
또, 너도 구제한 거게 대해서 하나님이 보시고 잘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하나 하면 둘 할 수 있도록 자본 주시고 또 셋 할 수 있도록 자본 주시고 자꾸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본을 주심을 받을 수 있는 그 구제를 해라 하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이 말은 이제 구제할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그 뜻도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구제할 때에도 꼭 은밀한 중에 계시는 그분을 상대해서 하고 다른 것을 상대하지 마라. 네가 너도 알도록, 모르게 하라 말은 너도 아는 그것이 하는 데는 필요 없다. 다만 꼭, 네 오른손 아는 것도 왼손 아는 것도 필요 없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그분만이 알아야 된다.
그분만을 상대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좀 어려운 일인지, 우리가 차차차차 하는 이걸 목표를 두고서 향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 5절 이하에는, 외식하는 기도 하지 말아라. 외식하는 기도 하지 말고 진실한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진실한 기도를 해라. 외식하는 기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진실한 기도를 해라. 잘못하면 외식하는 자 이방인 기도 하기 쉽다.
그러면, 외식하는 기도는 무슨 기도인가?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 빼놓고 인간끼리 서로 협동하고 대화하고 의논하고 인간끼리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거게 빼놓고 한다. 인간끼리 하는 그 모든 기도는 다 외식하는 기도가 된다. 그것은 다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그 모든 기도는 다 하나님 빼놓고 하는 그 기도들이다.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는 그런 진실한 기도를 해라.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어제밤에 여게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구하기 전에 안다는 것, 또 외식하는 기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진실한 기도, 그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 안 하시고는 안 됩니다. 왜? 그것이 올바른 그 의로운 기도이기 때문에 의로운 기도를 의를 하나님이 이루지 안할 수가 없어요. 안 이루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9절에, 인제 주기도문인데 이 주기도문을 그렇게 주님이 간단하게 기도를 이렇게 가르쳤는데 이 주기도문에 대해서 올바른 그 깨달음을 가진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 주기도문의 해석을 제가 많이는 못 봐도 어북 많이 봤습니다. 했는데도 그 중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해석해 놓은 것이 제일 으뜸이 가고 있읍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때는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바로 찾아 가지고서 바른 관계를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 하는 이것을 첫째로 강조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하고 둘이 의논하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와 서로 대화하는 것이고 또 모든 일을 같이 계획하는 것이고 경영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하는 그 기도는 다 소용 없는 기도입니다.
땅 위에 사람들이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저거대로 다 기도합니다. 저거대로 다, 기도라 말은 빌 기자 빌 도자인데, 비는 것인데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기도 다 하는 사람이요, 안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요, 외식하는 기도라. 인간끼리만 하고 있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피조물끼리만 하고 있는 것이지 창조주와는 상관없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것은 암만 해 봐야 전부 사망이요, 사망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다 말은 공간적으로 높은 데 계신다는 뜻이 아니고 첫째는 가치적으로 제일 높다 말이오. 가치적으로 제일 높다 하는 그말도 좀 알아 듣기가 좀 힘드는 말인데 아무리 이 면은 평가해 봐도, 이 면을 따져봐도 저 면을 따져봐도 하나님보다 높은 이가 없어. 제일 높아.
평가적이라 말은 권세적으로라 말이 아니고 지혜적으로라 말이 아니고 이모 저모의 모든 면에 가치를 따져봐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이가 없다 그말이오.
평가적으로 제일 높은 평가, 또 그다음에는 이제 도덕적으로 하늘에, 또 지혜적으로 하늘에, 능력적으로 하늘에, 또 소원적으로 하늘에, 소원으로서도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된 소원이라. 또 경영적으로 계획적으로 모든 면으로 ‘하늘에 계신’ 그라면 여러분들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말로만 지금 이렇게 표현해서 이래 말하는 것이지, 그러면 우리가 기도의 상대로 삼는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바로 알고 이렇게 기도하는 이것이 제일 효력 있어. 하나님을 만나야.
예를 들어서 사람이그게 아니지마는어떤 참 아주 의인을 하나 만났는데 그 의인을 도적으로 알고 만났으면 잘못 알고 만나면 거게 대해서 잘못 알았기 때문에 잘못 인식한 인식으로 인해서 잘못 상대하니까 그분을 바로 상대하지 못하니 그 상대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실패될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이러면 떡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만 말해 가지고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되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아는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이랬으면 「하늘에 계신」 이래 놓고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는 것을 자기가 자꾸 새겨야 될 것입니다, 자기가.
내가 기도하는 분은 어떤 분인가 자꾸 새겨서 그분을 아는 것만치 나는 그분에게는 기도해야 되겠고 아는 것만치 그분에게 대해서 바로 기도를 하겠고 아는 것만치 그분이 내게 응답하고 내 소리를 들어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서로 의논할 수 있는, 사람도, 서로 말할 수 없다 말이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말이오. 그 사람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화할 수가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사람하고는 무엇을 의논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무엇을 같이 할 수가 없다. 같이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는 되는 것 아니니까,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랄 때에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내가 자꾸 이렇게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자꾸 생각하고 깨달을 때에 나도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만치 내 자신도 알게 되고 또 그분을 아는 것만치 그분을 바로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자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람을 상대할 때에도 상대방을 아는 것만치 자기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벌써 상대합니다. 암만 의인이라 해도 저놈은 도둑놈이다 이렇게 똑똑히 알면 내가 모든 대화하는 그 전부는 말로는 겉어머리 그 사람을 이래 껍데기로 이래 대우해도 속으로, 말과 마음이 딴거 같아도 실은 말과 마음이 하나입니다. 마음 있는 대로 말합니다. 껍데기 음만 다르지 속은 같다 그거요.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이거는 지극히 크심을 말합니다. 지극히 크신, 지극히 온전하신, 지극히 깨끗하신, 지극히 공정하신, 지극히 모든 것이 다 정확 무오하신 하나님, 절대이신 하나님,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깨닫고, 자기는 거게서 났다 하는 것을 깨닫고 거기서 났으면, 마치 육체로 말하면 육체의 부모라 하면은 나는 거게서 나왔다,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말 들으니 언제 그 이산 가족을 찾는 그때에 자기의 그 부모, 자기의 결혼한 시부모니까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마는 그 남편과 사니까 시부모라서 그 시부모를 찾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써 가지고 찾았는데 찾고 난 다음에는 수십 년 같이 있는 사람보다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마는서도 자기는 참 부모로 알고 부모로 대접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고 이렇게 한다는 말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 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는가? 이 아버지라는 인식을 똑똑히 하는 것이 기도하는 데에 세째가 되는 것이요, 세째가 돼.
첫째는 뭐이요?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아는 것이 기도하는 데에 제일 첫순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우리」인데 세째로서는 「아버지」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떻다 하는 고것을 똑똑히 아는 것이 세째로 중요하다.
아버지라면 양자 아들도 있고 적자 아들도 있는데 우리를 양자 아들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는 피조물이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야고보서에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우리를 직접 낳았어. 우리가 신적 요소로 탄생한 자요, 우리가. 신적 요소로 출생한 자라, 우리가 신적 요소로.
신적 요소라니? 부종, 부정이 아니고 부종, 저는 부종이라고 가르쳤어요, 부정이라 하는데 그건 아이들이 몰라서. 부정이라는 말이 맞는데 부종이라 종자라고 ‘종’자를 가르쳤어. 부종 모혈로 우리 육신이 생겨졌어. 우리 육신은 부종 모혈로 생겨진 거와같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아들은, 신격의 모형인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의 사람은 뭘로 났느냐? 신적 요소로 우리가 출생됐어. 물질로 난 게 아니고 신적 요소로 출생했어.
‘너희들이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이제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은 우리는 물질로 된 이 형상, 꼭 첫째 아담과 꼭 같은 지체로 요소로 다 생겨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하늘에 속한 자의 요소라’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는 곧 예수님이신데 그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요소로 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는 창조주 피조물, 신성 인성 양성의 요소라, 양성의 요소. 또 영감은 신성의 요소라. 진리는 신성이 역사하는 그 법칙의 요소라.
이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난 우리들이라. 그 자기를 깨닫는 거, 이게 뭐이냐? 이것이 자기가 뭐인 줄도 모르면 우리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될 리도 없고 힘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금 그 아들을 잊어버려 가지고서 그걸 벌써 어릴 때 잃어버려 놓으니까 못 찾고 이래서 항상 아이에 대해서 참 근심을 하고 포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한 댓살 먹어서 발견이 돼서 찾았어. 찾았는데 그 찾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알기를 우리 아이는 어데 점이 있다, 뭣이 있다 이라니까 확실하다 말이오. 확실하니까 그 잃어버린 아들 찾아 놨으니 얼마나 좋겠소? 이래 놓으니까 모든 게 아까운 게 없고 다 주고 싶지마는서도 아들 이놈은 누가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아버지라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믿어지지 안하니까 아버지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그 소망의 은혜가 그게 정상으로 될 리가 없어. 이런 거 다 끌어다 붙여 가지고 이렇게 알도록 하기 위해 이라기 때문에 이런 것이 다 하나의 비유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그저 알아 듣기가 좀 그래요.
아버지 어머니는 보니까, 이게 그 아이라 하지마는서도 그 아이라고 믿을 수가 어데 있나? ‘우리 아이는’ 아버지는 아는 데가 있다 말이오. 아버지는 아는 데가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는 알아서 ‘보자’ 그 아이를 훔켜간 유괴한 사람이야 그 어데 알 리가 있습니까? 모르니까 그런 거 주의를 안 줬지마는 이 아버지 어머니는 아니까 ‘보자 너는 다리에 뭣이 점이 어째 있고 또 뭣이 있고’ 표 나는 게 있으니까 ‘그게 보자 있는가?’ 보니까 확실히 자기가 아는 대로의 자기 아들이라. 그러면 얼마나 반가울 것이요? 얼마나 기쁠 것입니까? 이 기쁘고 이러니까 뭐 좋아서 이래 하지마는서도 그 아이는 믿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지마는서도 ‘이분이 그 뭐’ 아버지인지, 이제까지 유괴해 가지고 가서 키운 그 사람만 좋아하지 이게 알 리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알 리가 없으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아들이 됐지마는서도 그 아들로 말하면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참 부모의 관계를 모르다 보니까 그 아이가 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이나 또 경영하는 것이나 모든 믿는 것도 그러하고 소망하는 것도 그러하고 의지하는 것도 그러하고 바라보는 것도 그러하고 뭘 부탁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청하는 것도 그게 다르다 그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이 무슨 말인지! 의례히 지금 모두 옷도 사 주고 밥도 주고 공부도 시키고 이래 가지고 얼마나 다 한다는 그걸 참 알았으면 거게 대해서 아이가 평강도 누릴 것이고 또 소망도 가질 것이고 상대도 가질 것이고 행복감도 느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정상이 될 것인데 모르니까, 믿어지지 안하고 모르니 그 하는 모든 일이 다, 배가 고픈데 이거 밥을 또 어찌 달라 해? 이거 옷을 어찌 달라 해? 옷을 갖다 주니까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거 옷을 주시니 또 밥을 주시니 고맙다고 뭐 학교 보내 줄라 하니까 이거 고맙다고 이거 큰 신세를 진다 이렇게 생각하면은 부모도 섭섭할 것이요, 안 그렇겠습니까? 부모 섭섭하겠어 안 섭섭하겠어? 부모도 섭섭할 뿐 아니라 그 아이 자체도 그 부모에게 정상적인 소망을 가질 수 없고 의지를 가질 수 없고 믿음을 가질 수가 없고 관계를 가질 수가 없고 계획을 가질 수가 없다 그거요. 그거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 학생들 좀 대답해 봐. 저 안경 쓴 학생. 있겠어 없겠어? 좀 인제 깨달아져? 아버지를 바로 찾아야 되지 아버지를 인식하는 그것을 주님이 가르쳐요. ‘네가 아버지를 똑똑히 알아서’ 이 아이 하나는 그 어째 멀뚱멀뚱하고 밥을 먹으며 이렇게 하는데 보니까 자꾸 미안스러워합니다.
야야 밥 먹으라 이라니까 미안해 하는데 한 놈은 훌떡 뛰어와 가지고서 의례히 밥을 먹을 줄 알고 뭐 반찬이 없으니까 트집을 잡습니다. ‘에이 내 안 먹을꺼야’이래 가지고 좀 트집을 잡고 이라는 그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똑똑히 알아 놓으니까 인제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모든 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말이오.
하나는 지금 아버지를 몰라 놓으니까 태도가 다르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된다.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됐느냐? 아버지가 됐느냐?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내가 우리가 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됐지. 이걸 알아야 돼요. 내가 우리가 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됐지.
우리라니? 우리라는 것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라는 것은 복수니까 뭣 때문에 내 아버지면 내 아버지지 우리라는 복수를 했소? 그 복수가 뭐이 들어서 복수가 됐습니까? ○○○씨 부인 대답해 봐. 그래, 우리를 대속해 주신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됐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서 아버지됐다 그말이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으로서 그만 하늘에 계신 그분을 깨달으면 하늘에 계신 그분 한 분이 나를 봐 준다면, 그분 한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분 한 분이 나를 돕는다면, 그분 한 분과 나와의 좋은 관계가 맺어져 있다면 그 이상 원할 게 없어. 그분이, 모든 게 다 그분의 전부인데. 하는 역사는 전부 그분 혼자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를 하시는 그분이신데 그분이 지극히 크심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서, 너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이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이것을 깨달아야 되는데, 엊저녁에도 내가 설교하고 어떤 사람 만나니까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아무 깨닫지 못하고 재미가 없고 아주 그렇다고서 그런 말 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서 ‘네가 깨달을 리가 없다. 얼마나 어려운 그 말씀인데 그렇게 깨닫겠느냐?’ 여기도 지금 깨달아지지 안하니까 자꾸 네가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 저런 말 자꾸 끌어다 붙여서 지금 비유로 알려 주도록 할라 하는 것인데, 「하늘에 계신」 내가 상대하고 있는, 내가 상대하는 그분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가 그분과 상대하는 그 상대는 크고, 또 자기가 상대하는 그 권위는 크고, 그분이 큰 것만치 자기도 크다, 그분을 상대하게 됐으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됐다. 그러면 호칭 아버지냐? 부르기를 그렇게 아버지를 부르는 아버지가 됐나? 또 법적으로 아버지냐? 육체의 인정으로 아버지냐? 그러면 핏줄로 아버지가 된 아버지냐? 아니라. 그러면 그저 말로만 아버지고 그런 인연이 있다는 그런 인연으로 아버지냐? 이 아버지를 아는 데에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내 육체는 육체의 부모로 말미암아 내가 났고,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씨는 아버지의 씨요 기르기는 어머니가, 모두 다 자기의 육체의 요소를 길렀기 때문에 나고 난 다음에, 났는데 그게 보니까 눈 보니까 눈은 꼭 아버지 닮았다. 입은 어머니 닮았다. 이상하지 않소? 보면 꼭 닮았다 말이오. 닮은 것은 그 요소가 빠져 나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닮았다 그거요. 그 요소가 빠져 나와 가지고 생겼기 때문에 닮았어.
그러니까, 이것은 뗄 수가 없고 자기 몸이요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요 참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게 인연을 다른 인연보다도 그 인연이 강하다 그거요. 그래 안 믿는 사람들은 통계에 말하기를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말은 모든 물질 그 모든 것보다 이제 피와 살로서 이렇게 연결된 그 부모는 다르다 그말이오. 아까 유괴당한 아이 말한 그런 것도 다 자꾸 여러분들이 가서 새겨보면 알 거라.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은 우리는 그라면 칭호적이냐? 그런 게 아니라. 신인 양성 일위이신 그분의 요소로 우리가 됐어, 그분의 요소로. 주님의 신인 양성 일위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를 베푸신 그분의 요소, 그러면 그분의 피의 요소는 인적 요소입니까 신적 요소입니까? 무슨 요소요? 뭐이야 이거는? 여기 학생, 무슨 요소야? 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거듭나지 안했어, 중생되지 안했어? 신적 요소? 그라면 가서 배워 가지고 가 봐야 안 돼. 바로 알아야 되지.
또, 그다음에 있는 옆에 있는 학생? 신인 양성 요소라 그말이요, 신인 양성 요소.
이름이 아니고 실지로 신인 양성의 양성이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게 뭐이냐 하면은 대속인데, 만들어 놓은 게 대속이고 구속인데, 구속, 그 이름만 가지는 게 아니라 구속 그 자체, 구속 그것 가지고 됐어, 구속.
그러면, 구속의 내음새로 됐소 구속의 그림자로 됐소 구속이라는 그런 이름으로 됐소 실지로 구속이, 구속 그 자체가 본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됐습니까, 뭐입니까? 이름이요? 주님의 피로 우리가 거듭났는데 그러면 그 피가 말로입니까 이름으로입니까 또 그런 이치로입니까 그 실제로 피와, 주님의 신성과 인성, 신인 양성 일위의 그 실상이 투자돼 가지고서 변화된 거라 그거요.
이걸 모두 사람들이 안 믿는데,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인데 아주 그, 이번에 뭐이라 했나? 여자, 칼기 거석한 그 이름이 뭐이지? 마유미, 마유미라 하는 그 사람은 중국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하고 일본말도 잘하고 또 어데 말 한다 하더라? 네 나라 말인가 했어. 그 아주 재주 있는 여자라.
이런데, 그 사람이 그라면 하나 말합시다. 중국어를 잘 알고 있다 하면은 중국어가 그 사람 뭣이 들어서 중국어 됐소? 그 사람 뭣이 중국어로 변화됐지? 저 뒤에, 뭣이 들어서 그 사람의 중국어를 아는 중국어가 됐소, 중국어의 지식이 됐소? 뭣이 들어서, 뭐이 들어 그리 됐소? ○○○ 목사님, 이 자주 안 오는 것도 아는가배. 정력. 그 여인의 정력이 변해서 중국어도 됐고 영어도 됐고 일본말도 됐습니다. 알겠어요? 그 정력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의 어학으로 변해졌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어학 가진 것은 그 사람의 바로 정력이라. 정력 그게 들어 가지고 정력 그것이 어학화됐다 말이오. 정력이 어학화됐어.
신인 양성의 그 전부가, 신인 양성의 정력의, 신인 양성의 그 양성의 백분지 일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천분지 일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혹 그러면 일부분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전부가 다 들어 가지고 대속이 됐습니까? 뭐이 됐습니까? 전부가 다 들어 가지고서 대속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전부가 다 들어 가지고 대속 됐어.
이러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신인 양성 일위의 그 요소, 실상 정력 그 정력이 내 속에 들어와서 뭣 됐습니까? 우리의 새사람의 신령한 사람,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이 아들로 태어날 때에 그 종자는 뭐이 종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종자라. 이 실상이라는 걸 자꾸 알아야 돼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실상이 와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의 요소인데 그 요소는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 둘의 실상이 와 가지고서 내게 종자가 됐다 말이오.
종자가 됐는데 그것을 키우기는 뭐이 키웠어요? 어머니의 피와 살이 키웠는데 이것은 영감과 진리가 키웠어. 영감과 진리가 내게 와 가지고서 이제 이 셋이 와 가지고 자꾸 나에게, 이 종자가 돼 가지고 내가 나왔는데 내라는 이 종자가 그라면 뭣 속에 들었습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그 요소, 진리의 본체, 진리의 본 요소 이것이 들어와 가지고서 내게 새로 난 자, 처음에 난 것은 아담 해와로 났지마는서도 두번째 다시 난 것, 우리가 거듭났다 그말은 죽은 것을 살렸다는 것, 죽은 것을 살렸다는 그게 있지만 그거는 껍데기야.
죽은 것을 살렸다는 것은 껍데기이고, 죽은 것을 재생했다는 게 아니라, 한번 난 거는 첫째 아담으로 났고 다시 두번째 새로 났다, 두번째 또 난 거 있어.
우리가 그러면 우리가 나기를, 우리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무슨 요소로만 났습니까? 피조물 요소 창조주 요소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무슨 요소로만 났습니까? 피조물 요소로만 났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요소로 났습니까? 무슨 요소로 났소? 육체의 사람은 피조물의 요소로 났고 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신령한 사람은 창조주의 요소로 났습니다.
그러면, 창조주의 요소로만 났습니까? 신령한 아들은 뭘로 났어요? 창조주의 요소로 났어요? 뭘로 났어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이 요소는 창조주의 요소로 났습니까 피조물의 요소로 났습니까? 창조주의 요소와 피조물의 요소 양소로 났어. 그게 뭐이냐? 그게 씨라.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 씨로 났고 창조주 씨로 났어. 이걸 깨달아서 알아야 하나님 아버지와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맺어져.
야고보서 1장 18절에 보면 ‘그가 그 조물 중에’ 피조물 중에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로' 왜 우리로 복수가 돼? 우리로가 뭐이야? ○○○ 조사님, 우리로가 뭐이요, 이거?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가 뭐인데? 그래 그걸 똑똑히 알기 위해서 ‘우리로’ 자꾸 이라는 거라.
‘우리로’ 대속입은 우리로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한' 하는 요거 `하나 둘' 하는 그 ‘한’이 아닙니다. 요 `한'은. 요게 `한' 하는 것은 하나 둘, 그러면 일호 이호 하는 게 아니라 하나뿐 되는 거라. 하나뿐만이라, 하나뿐. ‘한’ 하는 이거는 하나뿐이지 딴게 없어.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그러면 첫열매라 하는 이것은 인제 둘째열매 세째열매 자꾸 더 있다 말이오. 이거는 순위를 말하는 것이고 ‘한’ 하는 이거는 하나 단일을 말합니다. ‘한’ 하는 것은 단일성을 말하고 그다음에게 `첫' 하는 것은 순서성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말이오. ‘첫열매가’ 열매라 말은 당신이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 결과라 그말이오. 열매라 말은 그 결과.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창조하신 목적이 뭐이냐? ‘창조하신 목적의 결과로’ ‘목적의 결실로' `목적의 완성으로' 그것을 가리켜서 첫열매라.
열매란 이것도 얼마나 알기가 어려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다 주석을 찾아 봐, 어째 가지고 있는지? 이러나 이걸 듣고 난 다음에 시비를 해 보란 말이요, 어느 게 옳은가! 이거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 이제 설교록은 다른 데에서 다른 목사들이 사 가지고 가는 것은 뭐 백몇십 명이 돼요. 이런데 우리 총공회 속한 목사들은 설교록 사 가지고 안 가. 저거가 몰라.
알맹이를 아직 몰라. 이것을 정말로 알면 가 가지고 어데든지 가서 어데든지 뭐 미국이고 일본이고 뭐 어데든지 가 가지고서 요 진리를 바로 증거하면 마구 뒤비지고 이럴 건데 이거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만날 부흥 안 되고, 그 중에서 왕이 될라고, 왕 될라고 제가 뭐 주권하지 안할 거, ‘이거는 내가 관계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관계가 없으니 이거는 내가 누구에게로 미뤄야 된다’ 제가 하지도 안할 일도, 닥치지도 안한 일도 전부 다 꺼머당겨 가지고서 제가 할 듯이 왕노릇만 하고 싶어서, 아직까지 그 참 날개도 나지 않으면서 날아다닐라고서 이래 가지고 왕노릇할라 하는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우리와 함께 왕노릇 하기를 원한다. 우리 없이 네가 왕노릇 할라고 하지 말고. ’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이러니까,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이 목사들은 제가 왕될라고, 어림도 없어.
제까짓 거 가지고는 지금 이 세계에 대적이 여러 수천 수백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이런 대적인데 그분들로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인데 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지금 배워 가지고 몇 가지 배우면 그만 그거 팔아 가지고 왕노릇 할라고 제가 다 안듯이 왕노릇 하라고, 여게 ○○교회 ○ 목사 보니까 좀 내가 저를 좀 열심히 그래 하니까 좋다고 그래서 희망 있어서 열심히 하라 한번 이래 놨더니만, 말 한번 칭찬했더니만 고만 제가 제일인 줄 알고 얼마나 자꾸 항상 자랑하든지 그 교회에서는 ‘우리 ○ 목사님이 제일이라. 백 목사님보다 훨씬 위에 있다. ’ 나보다 위에 있다 하는 그걸 내가 무슨 시기해 그런 게 아니고 그러면 벌써 더 자라가지를 못하니 그게 참 애처럽고 마귀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 지금 그짓하고 있는 것이지 마귀에게 안 끌리고 성령에게 끌리면 그렇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마귀에게 끌린 것이 안타까워서 말하고 있는 거라.
‘첫열매가’ 첫 창조의 목적인, 열매라 말이 뭐이요? 열매라면 뭐입니까? 창조의 목적의 뭐이요, 열매라 말은? ○○○목사, 아니야.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열매가’ 그 열매라 말은 첫열매가 뭐이요? 목적의 첫결실로, 첫결과로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거 못 따라오고 모르고 있는 것이니까 이래 놓으니, 그래 놓으니까 자꾸 밑에 교인들은 그래. 자기도 모르는 설교를 자꾸 하고 있다고, 지금.
그때 그 ○○○교회에 ○집사라고 있었는데, ○○○집사님의 그 남편.
○○○집사님은 지금 살아 있어요, 남편 그분은 벌써 일정 때 일본서 와세다대학인가 뭐 동경제대인가 거기 나온 사람이라. 이래 놓으니 그 사람들이 그런데 여기 와 배워 가지고서 이걸 새기지도 못하고 말해 놓으니까 ‘자기가 모르는 소리를 자꾸 설교를 하니’ 그 밑에 들으면 안다 말이오. `저거는 깨닫고 한다. 저거는 모르고 앵무새 모양으로 지금 녹음기 모양으로 전하기만 한다’ 그걸 안다 그말이오. 그런 소리를 하면서 이거 참 마음에 탄식이라고 그분이 한번도 마음에 만족을 가지지 못하고 그래 내가 죽은 걸 알아요.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자기의 뜻이라니? 자기의 뜻대로 말이오. ‘자기 뜻을 좇아’ 말은 어떤 피조물에게로 아니라 주권 의지로 그말이오.
주권 의지로 ‘뜻을 좇아’ 주권 의지로, 누구의 뜻에 침노를 받거나 간섭을 받거나 가담을 했거나 협동을 했거나 타협을 했거나 그런 게 아니고 단독 당신의 주권 의지로,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진리 말씀 가지고서 나온, 분반이라 했나? 분만, 산부인과에서 쌈가른다 하는 거, 내나 어머니에게서 아이 갈라 내놓지 안해요? 이러니까 그걸 분만이라 하요.
분만이라는데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면 진리 말씀이 분만한 분만 역사를 했다 말이요, 분만 역사를 했다 말입니까 진리의 말씀의 씨가 우리가 됐다, 진리의 말씀의 씨로, 진리의 말씀의 그 요소로, 진리의 그 요소로 우리를 낳았다 말입니까? 뭐이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면 이 진리가 우리를 분만하는 데에 돕는 조산하는 역할을 했다 말입니까 이 진리가 우리가 생산된 그 생산의 요소라 말입니까? 무슨 말이요? 저 ○ 목사, 뭐이라 말이요? 산파가 아니고? 산파요 바로 종자라 말이요? 산파가 아니라. 바로 종자라 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또 베드로전서 1장 23절 이하에 보면은 거게는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거듭났다 말은, 나는 이제까지 늘 그전에는 그랬어요. 거듭났다는 것이 이것을 ‘죽었던 것이 새로 살아났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새로 났다 그말이요, 새로. 이중으로 났다 그말이오. 처음에 난 거 있고 또 한번 났고 우리 두번째 났어, 두번. 두번 생겨졌기 때문에 두 요소로 났어. 두 종자라. 그러기 때문에, 혈육의 우리요 또 신령한 우리가 됐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똑똑히 요렇게 말해 놨어.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이걸 똑똑히 아는 것을 주님이 첫째로 말했어. 네가 이렇게 기도하라 했는데 이렇게 기도하라 해 놓고서 일호가 뭐이요? 제일 일호로, 중요한 중에도 순서적으로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이분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해. ‘하늘에 계신’ 그다음에는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되지 양자 아들 그건, 이름으로, 아이가 고아원에 가니까 아들이 많은데 고아원에 있는 그 원장을 보고 ‘아버지라 해라. 아버지라 해라. ’ 하라 해 아버지된 것처럼 그렇게 된 거와 실상 유괴당해서 이거 모르고 있다가 이제 아버지를 찾아와서 아버지를 알고 나면은 아버지의 사랑은 이런데 저는 그걸 모르면 안 될 거라. 그걸 다 알면, 아들 중에 저를 제일 사랑하고 이러니까 제일 밀접한 친밀한 그런 아주 뜨거운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걸 알아야 제가 그 사람으로 살지 그래야 그런 걸 다 요구할 수도 있고 그런 권세를 부릴 수 있고 효력을 다 누릴 수가 있지.
이러니까, ‘아버지’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버지 됐느냐? 우리로 말미암아 됐어.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 하나,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됐기 때문에 아버지 됐어, ‘우리 아버지’ 이래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을 어제 말했는데 그거 말할 시간은 지금 없고 그것도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서 새기면 이만하면 주기도문은 지금 다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벌써 딱까리는 다 뗐기 때문에 이제 그다음에는 다 생각하고 자꾸 깊이만 자꾸 생각하면 다 깨달을 수가 있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 이것도 주기도문을, 세계 어데든지 주기도문은 다 한 주기도문이니까, 주기도문은 세계의 기독교가 다 한 주기도문이라. 이 주기도문을 바로 깨달아서 여러분들이 어데 갔든지 강의를 해 보라 말이오. 정말로 제가 깨닫고 나서 강의를 해 봐. 미국도 뒤비질 거고 아무데라도 다 끌어 엎고 그 위에 대가리에 올라 설 수가 있어.
아무나따나 자꾸, 이거 백 목사 일자 무식이라 하더니마는 뭐 일자 무식은 아니지마는 ‘국민학교 오학년까지밖에 안 했는데 제가 뭘 알아?’ 하나님 아버지가 알려 줘서 알아. 그러기에, 저도 아는 것이 자꾸, 내가 설교해도 자신없는 설교 있어. 이거 모르니까 내가 들어서 하는 거 있고 하나님이 주셔서 안 거 있고.
이런데, 이거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이니까 이것을 우리가 바로 전해야 이 세대를 구원할 수가 있는 것인데 이 속에 왕이 되고 싶은 요게 있고 시기심이 들어 있어 가지고서, 제가 저게 외국에서 배워 가지고 온 거 그거는 여기 모르거든. 모르니까 그걸 여게다 가르쳐 가지고 세월이 있도록 할라 하고 요것은 어쨌든간에, 그래 사람들이 ‘아이구, 이상하다. 이상하다.
’ 「놀래」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놀래」 이랬는데 고거 까뭉캐기를 뭐이 까뭉캤어? ‘놀래’ 하는데 뭐이 까뭉캤어? `놀래'를 뭐이 까뭉캤지? ○○○ 조사님, `놀래’ 뭐이 까뭉캤지? 고게 들어서 까뭉캤어. 고게 들어서 까뭉캤어.
그래 놓으니까 고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 깨닫지 못한 고게서 멸망을 받고 말았다 그말이오. 왜 이말을 내가 왜 해? 이러니까, 이거 ‘뭐 놀래기는 뭐 놀래? 내나 지금 천 년 전에도 이천 년 전에도 다 그때 말한 그건데. ’ 이래 가지고서 그걸 묻어 버리고 보편화시키는 건 뭐이냐? 제가 왕이 되고 싶고 ‘이렇다’ 해서 이게 왕되겠으니까, 이 진리는 이 시대에 우리들은 사람들은 다 그 사람에게 다 준 것이니까 책임이니까 어짜든지 이 진리를 지금 우리가, 내가 안 거 하나면 또 저 사람이 안 거 하나 이렇게 자꾸 이 진리를 합해 가지고 알아 가지고서 이 세대를 구원해야 될 터인데 나눠지기 때문에 구원이 안 돼, 지금. 서울은 서울대로 왕이 꽉 찼어.
서울에는 서울대로 왕이 될라고. 다 알아요, 다.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들 다 나가 버렸어.
왜? ‘에이고 거기도 그렇더라. 보니까 아무것이파가 있고 아무것이파가 있고 아무것이는 제가 왕될라 하고,’ 왕 그리 근방에 가지도 못할 게. 박사 그까짓 거 대? 어림도 없어! 암만 놓고 가르쳐 봐도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뭐 어찌 될 거라, 되기를! 이래 가지고 보면 알아. 파가 있어. 아무 파 아무 파 아무 파 아무 파, ‘뭐 백 목사만 세상 뜨면 이제 몇 쪼가리로 갈라질 것이다’ 고것도 알아. ‘몇 쪼가리로 갈라질 것이다’ 아무것이는 아무 파에 속했고 아무것이는 아무파에 속했고 아무것이는 아무파에 속했고 다 그걸 다 보고 있다 말이오. 그것 때문에 이 복음이 활발 있게 힘있게 전해지지 안하고 깨어지고 있다 그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찬송가도 이걸 암만 이 찬송가 이래도 이게 또 여기서 했기 때문에 시기 나, 차라리 통일찬송으로 다른 이거 일반 하는 그게 좋지 우리 진영에서 이거 서부교회서 내가 말했기 때문에 싫다, 나하고는 속으로는 적이라, 언제든지. 그래 가지고 이 진리가 저거 속에 들어가? 안 들어가니까 저거만 죽고 실패하지 소용이 없어.
그까짓 거 뭐 요번에 ○○○교회 오억 오천 건축 연보 난 게, 오억 오천 그게 그렇게 큰 거라서? ○○○이 요번에 선거 운동하라고서 하나씩 앞에 오십억도 줬고 또 뭐 오백억을 줬다 하든가, 오십억을 줬대요. 오십억 줬는가 뭐 얼마씩 줬는가 그렇게 뉘가 하는데 뭐 오억 그게 커, 그까짓 거? 돈이 큰 게 아니라.
진리가 크고 하나님이 크지. 이래 가지고 모두 다 헛된 걸 가지고 자랑을 모두 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거 탈이야 여러분들이, 잘못 깨달으면.
이래서, 이거 찬송가를 할 수 없어서 지난 교역자회는 열 문제, 일장으로부터 열장까지 해석을 다 해서 이거 전부 통일이 이래서 통일을 버리고 이것 취했다 하는 걸 이것 낱낱이 이럴라 하니까 그래 가지고 내가 한 대엿새 동안 밤낮으로 이래 고통을 하니까 내가 또 이제 몸치를 알아 가지고서 병이 날 뻔했는데 병은 안 났어.
이거 말해 주면 들으면 될 터인데 안 듣거든.
이래도, ‘영 죽은 나를 살리려’ 이랬는데 그것을 `영 죽을 나를 살리려' 이래 놓고 그게 자꾸 옳다고 들이 쏘아대는데 교역자들 모인데 ‘그러면 저것들이 옳게 하는가 보자’ 오층에서 들으니까 내치 이래 말하고 저래 말하고 그거 하나도 규정을 지우지 못하는데 내가 떠나고 나면 내가 증거한 이 말씀을 저희들이 규정을 지워? 못 지워! 후계자가 없어! 후계자 될 놈은 하나님이 이와같이 그만 데려가 버렸어. 죽고 없어져 버렸어. ○ 목사는 죽어 버렸어. 그거나, 고거 좀 진실되게 이렇게 해서 고거나 소망했는데 그거 고만 가 버렸다 그말이오.
후계자가 하나도 없어. 이걸 바로 전달할 자가 없다 그말이오. 어데 있어? 요거는 요리 삐끌어지고 조거는 조리 삐끌어지고, 이래 가지고 한 다섯이나 열이나 뚤 뭉치면 될 것인데 그 다섯이 열이 뭉쳐집니까 다 제가 또 왕될라고 다 갈라지는데? 이러니까 이거 탄식이라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보니까 그걸 규정지우지 못하고 ‘이러니까 자, 우리가 그만 다수결로 결의를 합시다. 여기서 이래 놨으니까 부득이 따라가야 될 것 아닙니까?’ 다수결로 결의해 가지고 손을 들어 가지고서 그러면 옳은 걸 취하자 그래 가지고서 이제 이쪽에서 해 놓기를 ‘영 죽은 나를’ 했으니까 영 죽은을 이거 우리가 취하자 다수 가결로 그랬지 다수 가결 그까짓 그거보다 더 많은 수가 오면 또 다수 가결은 깨어질 것 아니요? 교역자 모여봤자 한 백여 명밖에 안 되는데 한 삼백 명이 와 가지고 틀렸다 하면 다 그대로 또 가야 될 것 아니라? 그렇지 않아? 안 그러나? ○○○ 목사 어때? 절대 다수로 이렇게 결의를 했는데, 손 들어 가지고 많은 다수로 결의했는데 그러면 그보다 더 많은 다수가 말하면 그리 또 다수로 가야 될 것 아니야? 뭣 하고 있어? 여러분들이 그만치 어두워. 그거야 뭐 환하게 아는 건데 몰라? 그래 내가 가서 할 수 없어서 ‘저거 안 됐다’ 내가 가 가지고서 그 말하니까 뭐이라 했어? 그것은 성경에 보면 ‘죽을 자라’ `죽은 자라’ 그렇게 다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죽을 자로 말해도 되고 죽은 자로 말해도 되고 되지 않느냐 이라니까 대답도 없어.
그거 그때 그래 놔 두고는 모를 거야. 뭐이야? 그라면 자, ○○○ 목사, 어때? 죽을 자라고도 성경에 말해 놨고 죽은 자라고도 성경에 말해 놨으니까 둘 다 성경에 말하는데 죽은 자로 하든지 죽을 자로 하든지 다 괜찮지 뭐, 죽은 나로 하든지 죽을 나로 하든지 괜찮지 뭐 꼭 한 가지로 고집할 게 뭐 있는가? ○○○ 목사, 기본구원에 대한? ○○○, 이제 이거라야 변동이 없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 ‘영 죽을’ 하는 것은 그것은 몸을 말했어. 이러니까 건설구원을 말하는 데는 죽을 것이고 ‘죽을 몸도’ 그거는 건설구원이니 `죽을 몸 하니 이해가 되지 안해? 다 죽지 안하지 안했어? 지금 죽어가고 있지. 그러나, ‘죽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말했기 때문에 고거는 기본구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요거는 ‘죽은’ 이라야 맞다 말이오. `죽을' 하면 틀려요.
이런데 이거 범벅을 해도 아무 판단을 못 하고 ‘자,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모르니까 그러면 우리가 손을 들어서 가결합시다. ’ 손을 들어 가지고서 다 가결했으니까 그까짓 거 백 명이면 그까짓 것들이 손 들어 가결한 것을 삼백 명이 오면 바싹 까뭉캐 버리지, 다수를 따라갈라 하면? 안 된다고 억세게 말하면 소용이 있는가? 기본구원 건설구원에 관한 것을 봐라, 네가. ‘죽은’ 하는 데를 알아보고 또 ‘죽을’ 하는 데를 알아 봐라. 성경을 봐라. 기본구원 건설구원으로 구별했다 하는 것 요것을 딱 말하면 천하 인간이 다 달라들어도 못 이겨. 우리가 이겨.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이렇게 큰 거라.
이러니까, 이렇지 안하면서도 왕노릇을 하고 싶어서 자꾸 마귀노릇하고 있다 말이오, 왕노릇을 하고 싶어서. 이래 놓으니까 자꾸 실실, 저를 거석할까 싶어서, 저거끼리 모이면 알아요. 저거끼리 모이면 백 목사만 훼방하면은 왕 자가 되거든 한쪽머리로는 백 목사 훼방하도록 이라고 난 다음에 ‘뭐 그래 쌓아?’ `에이 뭐, 이렇고 이렇고. ' 이제 나한테 욕이나 한 마디 하고 훼방 한번 하면 인기가 이렇게 올라갑니다.
올라가고 ‘뭐 따라가지 그래 쌓아, 그만. 좋은 게 좋지. ’ 그게 뭐이냐 하면은 지금 나를 훼방해. 나를 훼방하는 거야 나 백 목사 그까짓 놈의 새끼야 훼방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지마는서도 이제 진리와 나와 하나됐는데 훼방하면 하나님 훼방이라. 고게 성신 훼방죄라. 고 뭐이 들어 그러느냐? 왕되고자 하는 고게 그래.
요거 다 나갈 거야. 저거들이 나가면 저거 귀에 듣고 다 이거 뭐꼬? 테이프가? 이걸 들어야 돼.
그래 가지고 다 헛일이라. 그거 내가 말하기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이제 그 사람이 베드로를 딿습니다. 베드로를 는데 모든 사람이 나은 것 보고 이상하다 하고 이렇게 했는데, 뭣 보고 사람들이 막 그리 들이 모아들었습니까? 뭣 보고 모아들어? 그 앉은뱅이 나은 것 보고 모아들었소 뭣 보고 모아들었지? ○○○ 목사, 앉은뱅이 나은 것 보고 모아들었어? 틀렸어, 틀려.
그래 알면 헛일이라.
이번에 ○○○교회 가서 부흥회 할 때 한 가지만 말하라 했는데 한 가지만 말해서 고렇게 깨달아져아 돼. 뭣 보고 모아들었어, 거게? 앉은뱅이 나은 것 보고? 그 모든 사람이 우 모아든 거는 앉은뱅이 보고 모아든 게 아니라.
나은 자가 베드로를 붙들고 이렇게, 붙들고 막 이래 가지고 좋아 못 견뎌서 베드로를 붙들고 베드로를 좇고 베드로를 붙들기 때문에 베드로를 따르기 때문에 그거 보고 모아들었어. 고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돼. 성경을 봐요. 나은 자가 베드로를 붙잡고 따라붙고 거게 딱 속하고 하나된 그것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모아들었다 요걸 깨달아야 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진리 주신 이 진리보다도, 진리는 진리야, 이상이 없지마는.
진리를 배운 자들이 똘똘 뭉쳐서 그 진리에 따라들어 가지고서 한덩어리가 되면은 이 복음 운동이 세계에 퍼쳐나갈 것인데 이게, 뭐 세계 제일 큰 어린이 교회가 있다 이래 가지고서 우리 교회에 벌써 주일학교에 온 것이 얼마? 숫자가 얼마라? 팔백 칠십 네 군데에서 와 가지고 시찰하고 갔지만 이거는 저거딴에는 그 소리만 하면 피 피하고 ‘저 소리가 없어야 거석할 건데’ 이래 놓으니까 `우리 교회도 시찰을 많이 오도록 해야 될 건데’ 이 생각하고, 내나 이 교회가 주님이 하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 하신 게 주님이 하신 운동이니까 이 운동에 협동해 가지고 하나돼 가지고 할라 하는 고 마음이 없고 하기 때문에 마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 왕되자 하는 왕마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게 제 원수인 줄 알고 죽일라고 애를 써도 안 죽는데 그거 자꾸 될라고 애를 쓰니까 언제 죽어, 죽기를? 새카매. 참 불쌍해.
이러니까, ‘에이고, 뭐 인제 따라봤자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거. ’ 모든 사람이 ‘이 서부교회 이렇지마는서도’ 택시를 타니까 택시 운전사가, 믿는 표가 나니까 ‘어느 교회 다닙니까?’ 그래 서부교회 다닌다 하니까 ‘하, 서부교회 그 백 목사님은 참 거석하지마는서도 백 목사님 그 후계가 있는가 몰라요, 후계자가 있습니까? 그 후계자를 모두 우리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후계자가 없으면 다 헛일인데. ’ 후계자가 있는가 염려를 하더래.
이렇게 똘똘 뭉쳐서 이래 되면 ‘저거는 반석같이 깨달았기 때문에 저렇게 하나된다’ 암만 배워봤자 하나되는 거 아니고 배우니까 왕만 자꾸 생깁니다.
배우면 왕 생겨. 배우면 왕만 생겨. 이게 순, 우리 ○○○ 목사님 여게 구두닦이야. 구두닦이 할라고 와 가지고서, 구두닦이 한지가 몇 해 됐노? 한 이십 년 됐어, 삼십 년 됐어? 이십 년 전에 구두닦이야. 이런데 인제 저 서울에 ○○○교회라면 큰 교회인데 ○○○교회에 부흥 강사로 갔었어. 가서 요번에도 은혜를 끼쳤을 거라.
이런데, 베드로를 붙들고 따르니까 모든 사람이 모아들었소. 모든 사람이 모아 들었는데 또 모든 사람이 모아 들었다가서 가지 안하고 거게 끝까지 따르고 이래 한 것은, 베드로가 ‘왜 너희들이 나를 주목하느냐? 우리 내 개인이 뭘 개인이 나혼자 단독이 뭘 한 거같이 나를 주목하느냐? 하나님의 종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셨다. 내가 한 것 아니다. ’ 요렇게 또 돌리니까 이제 고 순서가 바로 돼서 이 복음 운동이 되는 것을 가르쳐 줬다 말이오.
가르쳐 줬는데, 이거 하나도 깨닫지 못한 게, 근근히 말도 똑똑히 못할 만치 이만치 진리의 말도 앵무새 모양으로 그 흉내도 못 하면서 벌써 왕은 되고 싶어서 야단이라. 왕되고자 하는 그놈이 저를 죽인 원수 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 고것이 악성이라는 원죄라는 걸 알아야 돼. 악습이라는 그 본죄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래 놓으니까, 지금, 저 먼저께도 교역자회 모일 때에, 이걸 내가 자꾸 이러는 걸 저거가 듣거든, 테이프도 듣고 이래 전달해 듣고, 여기 말하는 걸 들어, 듣기를.
또 간교한 마귀들도 있는 것도 알아. 가 가지고 속삭속삭속삭하면서 ‘이렇고 이렇고 이렇더라’ 가 가지고서 이간 마귀가 가 가지고서 또 이간을 붙여서 ‘그래?’ 이래 뻘쭘하게 벌써, 이간 마귀가 붙어 가지고서 이간이 많아 벌어져 가지고 이렇고 있습니다. 이간 마귀.
인류에게 제일 첫 마귀가 무슨 마귀요? 첫죄가 무슨 죄라? 첫죄가 무슨 죄라? ○○○, 이간죄가 제일 첫죄라, 알겠소? 이간죄. 이간 마귀가 첫마귀야, 이간 마귀.
그다음에는 둘째 마귀는 무슨 역사했어? 저 ○○교회, 미혹? 그러니까 천리 만리 거리가 멀어. 다 이까짓 걸로 이래 배우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화가 되지 안해. 이러니까 왕이 꽉 찼어.
그 교회 가면 어찌 됐든간에 왕되기는 생각하고 뭐 왕될라고 어짜든지 ‘이거 교인들 보자. 이 교인들은 부산에 백 목사하고 연결이 좀 있으니까 이거부터 내가 끊어 놔야 되겠다. 또 이거는 보니까 총공회와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총공회와 연결부터 끊어 놔야 되겠다. ’ 이러니까 총공회와 연결 끊는 그 작업을 합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백 목사 연결 끊는 작업을 합니다. ‘다 끊고 나와 둘이 단합이 되자’ 그게 뒈지는 거라. 그게 귀신인데 그게 무슨 목회해, 목회하기를? 둘째 죄는 시기죄라, 시기죄. 이간 마귀 시기 마귀, 시기 마귀 들고 이간 마귀 들어 가지고서 그 마귀노릇 벗어나지 않는데 그게 가봤자 그 놀음이지 뭐 하고 있어? 이러니까 이래도 부득이 양떼들 있으니까 그래라도 가 가지고서 전하도록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인데 이제는 내가, 이제 그거는 숫자가 너무 작아서 이래서 한 백여 교회가 됐기 때문에 백수십 교회가 됐어, 이제. 우리 분교 다 된 것까지 다 하면은.
이래 됐는데, 이제는 개척교회 나는 투자하지 안해요. 개척교회에 투자하지를 안해. 이제부터는 뭐 하느냐? 이제부터는, 암만 해봐야, 교회 암만 세워봤자 그 교회는 다른 후임 오면 제것 만들어 버리고 제것 만들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어. 그거 그래 임시 임시 사람 구원하는 것뿐이지 그거 장구하지는 못해요. 그 교역자 틀리면 그만 가 버리면 달라져요.
저 서울에 큰 교회 ○○교회, ○○○에서는 제일 큰 교회인데 그 ○○교회를 우리 서부교회에서 세웠어. ○○○교회도 또 세웠고 ○○교회도 서부교회에서 세웠어.
이랬는데 교역자 바꿔지면 그거는 그만 그 교회는 그 사람 교회되고 마는 거라.
이러니까, 이제는 이 편집실에다가 전력을 기울이려고 하고 있어, 이제. 편집실 전력 기울여서 우리 서부교회에서 어짜든지 이 편집실에 전력 기울여 가지고서 편집실을 제대로 될 대로 만들 대로 만들어 가지고서 이것을 여게서 진리를 자꾸 증거할라고서 그라고 있어.
이러니까, 칼빈이든지 뭐 루터니 그런 사람들 다 그런 사람들이 세워 놓은 교회는 다 풍지박산 돼 버리고 말았고 이제 그분들이, 그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고 진리만을 보수한 그것만이 살아 있고 그것만 지금도 일하고 있어. 칼빈이 지금 칼빈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달은 그것만이 지금 일하고 있어요. 그라니까 어데 있든지 칼빈의 그 사상만이 일하고 있어요.
이러니까, 이 진리를 보수해서 증거하는, 지금은 증거하는 거는 책자로 증거하고 또 테이프로 증거하고 이라는데, 며칠 전에 말해. 이 테이프는 암만 조그만한 포켓트에 녹음기 넣어놔도 이라다가 들을라 하면 또 새로 또 틀어야 되고 또 이라고 이래 이랄라 하니까, 또 귀에다 자꾸 이래 대고 이랄라 해도 이렇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지금 학생들 청년들은 자꾸 독서를 자꾸 말하기 때문에 독서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요런 것을 조그만하게, 요거 만일 우리 총공회서 깨달은 계시론이라면 계시론, 신론이라면 신론을, 인론이라면 인론을, 구속론이라면 구속론, 말세론이라면 말세론을, 대속론이라면 대속론을, 영론이라면 영론을, 영론은 지금 깜깜해. 영을 알지도 못하는데, 영을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데 뭣이 있어? 영론 이거 지금 이거 내 놓으면 세계에서 지금 또 은혜를 받을 것이라 말이오.
이제 이것을 요렇게 누구든지 하나 만들어 가지고서 조그만한 책자로 요래 포켓트 요래 넣구로 만들어 주면은 요걸 가다가도, 뻐스 타고 가도 보고, 일하다가도 보고, 언제든지 넘겨서 닥치는 대로 봐 가지고 익혀서 이라면은 사람들에 구원이 될 것이라 해서 그런 걸 누가 말해 줘. 그게 옳은 줄 알지만 그렇게 할 사람이 있어야지? 그렇게 만들 사람이 없어.
이래서, 그렇게 만들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 지난번에 ○○○ 목사님에게 이제 이 모든 과로, 부로, ○○○박사는 이 조직 신학을 몇 부로 했느냐 하니 칠 부로 해 놨다 해. 칠 부로 해 놨다 하는데 그러면 칠 부만 할 게 아니라 한 사십 부를 만들어라. 사십 부도 앉아서 그 종목을 기록하기가 쉬워.
그래 놓고 그거 나올 터이니까 나오거들랑은 하나라도 어느 거라도 하나 맡아 가지고 ‘나는 요게 대해서 나는 지금 연구를 해 가지고서 요 면을 내가 담당해 가지고서 요 면을 완전히 연구하도록 하겠다’ 고런 사람들이 사십 명만 나와 가지고 하면은 그게 능력 있는 거고 그게 실력 있는 거고 그런데 그거는 하나도 연구하라면 하나도 안 해. 안하고 남 해놓은 걸 따먹고 왕노릇 하기에만 지금, 왕노릇 고 수단만 지금 거석해. 왕노릇하는 고 수단만 지금 열중하지 딴데는 열중이 없어.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라니까, 지금 날 싫어서 자꾸 이래. 나 싫으면 내야 그거 인간이니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진리를 붙들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싫으면 싫어하는 것만치 제가 설교도 안 될 것이고 안 될 것인데, 반드시 그라면 후회가 될 것인데 모두 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