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기도

 

1988. 1. 15. 금새벽

 

본문:마태복음 6장 5절∼8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덕도 되고 또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고 자기 행위도 차차 고쳐지게 됩니다.

이렇게 외식 기도도 자기 행위 고침에 다소 도움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데도 도움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 주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외식하는 기도도 남에게 양식을 주는 일도 될 수 있고 또 남에게 인정받는  존대받는 일도 될 수가 있고 또 자기가 이렇게 기도하니까 차차차차,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고 붉은 걸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다소  성화가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향이라 이렇게 상징했습니다. 계시 8장에도 보면은 향로라, 향이라  하는 것은 다 그 기도를 말씀한 것인데 기도를 향이라, 향이라는 것은 악취를  제하는 것이, 내음새 제하는 것이 향입니다. 나쁜 내음새를 없애는 게 향이오.

그러기 때문에 시체실에 가면은 향을 피워 놓고 또 자기 방에 내음새가 날 때는  손님이 올 때에는 향을 피워서 내음새가 안 나도록 그렇게 사람들이 악취를  제하는 그런 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식하는 기도도 효력은 있지마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서 응답해 주실 수는 없습니다. 왜? 이거는  외식하는 외식 기도기 때문에 그에게 기도하는 걸 들어 주면, ‘네가 외식하기  때문에 내가 안 들어 준다’ 이게 아니고 외식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은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애터지고 자기는 자기대로 답답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걸 들어 줄 수가 없으니까 자꾸 하나님은 너 이것을 이렇게 하면  그걸 줄 수 있고 네게 필요하지만 이걸 네가 가지고는 이게 네게 필요가 없다.

네가 주의가 부족하면서 쥐잡는다고 쥐약을 달라 하는데 쥐약 주면은 쥐약  줬다가 네가 간수 잘 못 하니까 아이들을 죽이든지 네가 죽든지 죽을 터이니까  차라리 쥐 때문에 고생당하는 게 낫지 쥐약을 너에게 어떻게 줄 수 있노 하는 그  한가지라.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기도의 응답은 듣지는 못합니다.

그래 외식하는 기도를 버리고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해야 되는데  골방에 들어가는 기도, 들어간 기도, 문을 닫은 기도 이것이 장구히 되는 것도  있고 순간적으로 되는 것도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자기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 그런 것을 깨달아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 뭐 우리가 고친다는 것은 여러 달이 걸리고 여러 해가  걸리지마는서도 자기가 잘못된 것을 그 마음으로 돌이키고 주님 앞에 고하는  것은 잠깐 됩니다.

자기가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고하면 사함받는다 이랬습니다.

고하면 사함받는다 요한일서 1장에 말씀해 놨기 때문에 이게 계약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된 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고 ‘이거 내가 잘못됐습니다. 내가 이거  고치겠습니다. ’ 하는, 하나님 앞에 껍데기로 거짓부리로 하는 그거는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에 자기가 진정 잘못된 것을 고칠려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서 잘못된 걸 주님 앞에 고하면서 사해 달라고 하는 고 순간이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시고 그 사람에게 그 정도의 것을 응답해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도 얕은 기도 있고 깊은 기도 있고, 일시 기도 있고 또  장구한 기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대개 장성한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일시에  나타나는 거게 대해서 그것은 자기가 조심만 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크다란 것,  영원한 것,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그런 데 대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기도와 회개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 회개와 기도가 하나이지 회개는 안 하고 기도만 하는 그거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라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도 기도요, 또 하나님 만나는 것도 기도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의논하는 것도 기도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과  이질되어 있는 것, 하나님과 우리와 이질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죄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와 거룩이, 이질이라 말은 그 본질이  다르다 그말이오.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본질과 본성적으로 일치가  되어지는 그것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요, 그것이 회개요, 그것이 주님 만나니까  지금 주님 만나 가지고서 의논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부르짖을 수 있다 그거요.

이것을 한목 다 말 못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을 가지는  데 대해서 말씀한 것도 있고 또 하나님을 향해서 계속하는 열심을 가져야 될  것을 말하는 데도 있고 또 하나님 앞에서 옳고 바른 그것을 자기가 갖추어  가져야 된다.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또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무릇 구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다 받게 된다’ 하는 이런 것을, 한목 다 말 못 하기 때문에 이 면으로 말해서 요 면을 좀 기르고 조 면을 말해서  저 면을 기르고, 그래 한목 말하면 사람들이 고만 너무 억압에 눌리기 쉽기  때문에 요런 것만 말하고 조런 것만 말해도 그걸 다 종합해 보면은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다 구비되어지는 것만치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는 기도할 때에」 여기 6절에, 「너는」 요게는 복수 너희들이라고  이렇게 말하다가 「너는」 한 것은 이거는 단수입니다. 늘 ‘저희’ `너희' 이렇게  복수로 쓰다가, 복수라는 것은 하나 이상 숫자가 복수 아닙니까? 이 다수를  들어서 ‘너희’ 이렇게 말하지마는 여게는 6절에는, 「너는」 단수입니다.

개인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기도할 때에 아무리 다른 사람이 단체가 다 기도를 잘한다  할지라도 그게 자기 기도되는 게 아니라. 기도라는 것은 자기 개인적이기 때문에  개인이 고칠 것을 고치고 만날 것을 만나고 바로 구할 것을 바로 찾고 이래야  되지 여럿의 단체의 혜택을 자기가 입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개인 책임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너는」 ‘너희들은’ 이렇게 말하지 안하고 「너는 기도할 때에」 여게도 「네 골방에」 뭐 다른 사람 다 골방에 천인 만인이 들어갔다고 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네가 들어가야 돼. 「네 골방에」 「네 골방에 들어가」 「골방에 들어가」 골방에 들어가라는 것은 이제, 골방에  뭐할라고 들어가? 골방에 거기에 주님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걸 가리켜서  은밀이라 그렇게 말해.

은밀이라 말은 없는 것은 아니고 있기는 있는데 찾기가 힘든다 그거요. 은밀이라  말은 찾기가 힘들어. 깊이 숨겨 있고 감추어 있어. 그거을 가리켜서 은밀이라 해.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기는, 모든 존재를 다 그분이 만드셨는데 그분이 그  계시는 것이 완전에 계시기 때문에 너무 불완전한 것들이 가득해 가지고 불완전  속에 우리가 파묻혀 있기 때문에 불완전을 헤치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헤치고  나아가고 헤치고 나아가고 헤치고 나아가고 자꾸 이렇게 헤치고 나아가면  만나지는 것을 가리켜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렇게 말해, 은밀한 중에. 숨어  계시는 게 아니라 깊숙이 계신다 그말이오.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래서, 「골방에」 골방은 자기 양심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면 자기 양심이라  하는 것은 뭐이 양심인고 하니 옳게 바르게 할라 하는 것, 바르게 할라 하는 것,  또 잘못된 것을 고칠라고 하는 것, 또 잘못된 것 한 것을 발견해서 회개하는 것,  잘못하지 안할라고 하는 것, 또 옳은 것을 할라고 애쓰는 것, 옳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을 찾는 것, 간단하게 말하면은 그거라 말이오.

양심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아는, 잘못이라 하는 것을 알고 안 해야 될 터인데 한  것, 옳은 것은 알면 행해야 될 터인데 하지 못한 것 그것을 찾아서 자기가 찾는  대로 그런 것이 없도록 한 것을 가리켜서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다, 양심에  가책받을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한다 말이오.

그러면, 이것은 다 자기 주관 행위입니다. 자기의 힘으로써 지금, 양심은 자기  법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대로는 어짜든지 옳고 바른 것을 찾아서 행하고 삐뚤어진 것은  행하지 안하고 잘못된 것은 고칠라고 하는 고것이 자기 법이라 이랬어. 성경에  자기 법을 가지고 산다 그말은 자기 양심 가지고 산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법을 가지고 자기 법으로서 제일 온전한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자꾸 우리가 완전을 찾아감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귀란 놈은 자꾸 완전에서 나오면 자꾸 마귀 그놈  만나게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모든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철학이 없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못쓴다. 종교를 가집니다. 종교를 가지는데 종교  중에도 이 종교가 낫다 저 종교가 낫다 종교 중의 종교를 선택해서 이제  기독교가 이거 옳은 종교다 이래 가지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기독교를 믿는다  그거요.

그러면, 종교 중에는 기독교가 제일이다. 기독교 가운데서도 여러 수십 교파가  있으니까 ‘이 교파보다는 저 교파가 낫다. 저 교파보다는 그 교파가 낫다. ’ 이  교파라 하는 것은 교파마다 교리와 신조가 달라. 교파마다 깨달음이 달라서  교파가 생겨졌고 믿는 그 믿는 것이 달라서 그 교파가 달라졌기 때문에 교파  중에 자꾸 올바른 것을 찾는 것이 우리들이 바로 믿을라고, 그러면 양 사방  다니다가 ‘이 교회보다는 저 교회가 낫다 여기 가르치는 게 뭐이 낫다’ 자꾸 이래  비판해 가지고서 이래서 이제 교파 중에 교파를 자꾸 찾습니다.

그러면, 만일 ‘이 총공회라는 이 노선이 제일 낫다’ 그러면 총공회 노선에  들어왔다 말이오. 총공회 노선에 들어왔는데 총공회 노선에 들어와 가지고는 또  이 노선에 보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하나님의 일군들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데 그 중에 이 사람들이 나으니까 이 사람들을 내가 접해서 이 사람들에게  배워야 되겠다, 또 이 가르침이 낫다’ 이래 가지고 자꾸 거게서 선택해서 찾아  들어갑니다.

그러면, 거게 목표는 또 어데인가? 목표는 하나님이라 말이오.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들어갈라고 자꾸 이렇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어가는 그게 있고,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또 하나님에게서 나와 가지고서 세상으로  나가는 게 있다 그말이오. 세상으로 나가는 게 있어.

그러면, 우리가 하나 찬송가 만든 것, 찬송가를 자꾸 지금 이렇게 이라니까  공통이 안 되니 이게 낫다 저게 낫다 좀 찬송가 중에 좀 낫게 한번 만들어 보자  이라다가 이제는 모든 사람이 다 쓸 수 있는 찬송가를 만들자 해 가지고서 통일  찬송가 만들어서 그저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면 어떤 예수교든지 다 이 찬송을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통일 찬송을 만들자 이렇게 만든 찬송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통일 찬송을 만들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입니까 기어 나오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요? 기어 들어가는 것입니까  나오는 것입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 기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 왜 손 안 들어? 지금 이렇게 자꾸 속화돼서 자꾸 이와같이 되어지니 이제 안 됐다. 이 찬송가가  여러 수십 개가 나왔는데 그 중에 제일 나은 것이 뭐이냐? 그 중에 그래도 나은  것은, 뭐 별별 게 다 있습니다. 신편이 있고신편은 ○○○목사님이 그  신편찬송가를 만드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그분이신편이 있고 또 합동이 있고 또  개편이 있고 또 새찬송이 있고 또 통일이 있고 이렇게 지금 그 중에 제일 나은  것이 한 댓 가지 찬송이 있는데 이 찬송 가운데에서 어느 것을 나으냐? 이제  나은 것을 또 그 중에 찾아 가지고서 나은 것을 찾아 보니까 신편이 제일 낫고  둘째로는 새찬송이 그다음으로 낫고 그다음에는 합동이 낫고 고다음에는 개편이  낫고 고다음에 제일 꼼뱅이는 통일찬송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그러면 신편을 할까? 신편에는 또 찬송이 몇 곡 안 되고 또  우리가 은혜받은 좋은 찬송들이 많이 빠져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신편과  그중에 새찬송을 표본으로 해 가지고 여게서 뽑자. 여게서만 뽑으면 또  통일찬송에도 좋은 거 있는데 빠진 게 거게도 좋은 게 있지 없지는 안하다.

그러니까 빠진 게 있을 터이니까 그것도 찾자.

그러면, 이 찾아 보니까 한 약 사백 곡 되는데 그것은 노래 잘 부르는 전문가들  이런 아주 음악에 소질이 있고 특수한 그런 사람들이 몇 사람이, 우리 서부교회로  말해도 그런 사백 곡 찬송을 다 부르면서 좋아하고 은혜받는 그런 사람들은 불과  한 십 명 이십 명, 어짜든지 이십 명 이내일 거라 말이오. 이십 명 이내라. 이십  명 이내이고 또 한 이백 곡을 가지고서 은혜받는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하면은  그 사람도 겨우 한 천 명이 될까 말까 이래.

이러니까, 안 됐다 이거 그렇츰 어데 나머지기 삼천 명이나 사천 명이 있으니까  그 사람은 어찌 되느냐? 이러니까 ‘백 곡만 하자’ 이라다가 백 곡 가지고는 너무  적으니까 그만 백 오십 곡 하자. 그라면 너무 적으니까 조금만 더 하자, 그래  가지고 이백 일 곡을 했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서 이러면 이거는 보고서 신편 가사가 좋으면 신편 가사 따라가고  통일이 좋으면 통일 따라가고 합동이 좋으면 합동 따라가고 새찬송이 좋으면  새찬송 따라가고 또 개편이 좋으면 개편 따라가고 이렇게 대조해 가지고 고  가운데, 이걸 그냥 보면은 어느 게 더 검고 덜 검은지, 어느 게 검은지 흰지  모르지마는 흰거 하고 흰거 하고 대 놓으면은 이제 더 흰 걸 알 수가 있고 검은  거 하고 대도 알 수가 있으니까 대조를 해 가지고 그 총 중에 조금 나은 것을  선택하자 또 이래 선택을 했다 말이오.

또, 그래 가지고서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흘러 내려오면서 속화가 됐는지  모르니까 근본을 찾자 아이들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이래 혹 해 보면은 오십 명이  둘러 앉아 가지고서 여게서 이 이야기 한다 말이오. ‘곰발은 하나’ 이래 가지고  ‘곰발은 하나’ 이라면 고다음에 ‘곰발 하나' `곰발 하나' `곰발 하나' 하니까 이제  나중에 저 끝에 가면 곰발 둘 곰발 넷이 되고 만다 그말이오. 이렇게 변해 나가.

귀로 들었지마는 듣고 제가 귀로 듣고 입으로 전했지마는 이 전하는 가운데  이렇츰 자꾸 틀려진다 말이오. 이것이 자꾸 속화돼 나가는 것, 변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근본 찬송 지은 사람들의 그 사람들의 찬송이 뭐인고 그걸 또 찾자  이래 가지고 그것을 찾아서, 모르니까 우리가 뭐 어떤 거는 독일어로 한 거는  독일어 모르는 사람은 그걸 모르니까 독일어로 또 이제 또 영어로 불란스면  불란스어로 이래 모두 헬라어는 헬라어로 히브리어는 히브리어로 이래 놓은 것을  원문을 또 찾아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그걸 모르니까 사전을 찾아 가면서 이래  찾아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게 우리 찬송이라 그말이오.

이 찬송은 어째요? 자꾸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라요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라요?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하나님께로 들어간다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하나님께 들어가요.

이런데, 어데 교회가 제일 이거 우리 찬송을 싫어하고 이거 통일 찬송을 좋아  하느냐 하면 어데가 좋아합니까? 부산이 좋아합니까 대구가 좋아합니까 서울이  좋아합니까, 어데가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까? 대구가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통일 찬송가를 대구가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서울이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몰라? 서울이 제일 좋아해요. 서울이 제일 좋아하니까 손 들어요, 서울이 제일  좋아한다고. 서울이 제일 좋아해요. 얼른 손 들어! 서울이 제일 좋아해. 뭐 죽고  사는 게 여기 있어. 공연히 자꾸 말하는 사람 있어. 그만치 서울이 썩어져 가고  있다 그말이요, 알겠소? 자기네들은 자기네들딴에는 우리는 문화를 해서 이렇게 문화해서 아주  지성인이고 아주 문화인이고 현대인이고 다른 거는 다 켸켸묵은 고짜 못쓸 다  골동품이기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말이오.

어째요? 기독교가 자꾸 세대가 자꾸 발달돼 가는 데 따라서 점점 기독교가  이렇게 자꾸 세상이 자꾸 이렇게 전진해서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자꾸 이래  연구해 나가니까 세상은 모두가 다 시대를 따라서 자꾸 이렇게 진화돼 나가는  것입니다. 진화돼 나가는 것. 연습하면 또 그다음에 연습이 더 되면 또 숙달되고  숙달되고 하는 거 모양으로 진화돼 나가는 것이 온 세상입니다. 전부가 진화돼  나가.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지식이라 하는 거는 점점, 이거 또 말하고  보니까 틀렸으니까 또 요래 말하고 요라고 자꾸 진화돼 나갑니다.

자, 기독교는 그 진화돼 나가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요렇다 조렇다 보여 줘서  계시돼, 하나님이 하나 보여 주면 하나 알고 둘 보여 주면 둘 알고 하나님이  계시해서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자꾸 연구에 연구를 가해  가지고서 진화돼 나가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뭐이요? 계시 종교라고 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이것도 지금 없는 말이야. 지금은 신학자들도 다 이거 다 내 버려. 그말해야  아무도 안 들어 주니까 사람들이 내나 인기에 인기술 아닙니까? 모두 인기전으로  다른 사람들이 인기가 끌려져야 되지 인기 안 끌면 돈도 안 나오고 알아 주지도  안하고 명예도 없고 대우도 없고 또 돈봉투라도 안오지 인기 안 끌면 소고기도  한 근 안 갖다 주니까 쫄쫄 고는데 그거 뭐 인기 전술을 하지 그렇게 사람들이  반대하는 그런 걸 팔 필요가 뭐 있어야지! 이러니까 선지자들이 다 굶어 죽었어.

알겠어요? 서울서는 지금 이 우리 찬송 만들었다고 어떻게 시비를 하는지, 이래 놓으니까  이게 좀 낫다는 걸 말해도 안 돼서 할 수 없이 이걸 전부 데리고 앉아서 모두  이래 가지고 뭐, 이거 이 찬송 만든 데에도 골빠진 사람들은 골빠졌습니다.

며칠을 밤낮 자지 못하고 계속했어. 다 사람들이 그런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시간이 여유가 없어. 이런데 내 가지고 이렇게 했지.

또, 이번에 공연히 들으면 될 터인데 안 듣고 자꾸만 반대하고 있으니까 이걸  옳고 그른 것을 비판해 줘야 되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봐라’ 이 지금 이거는 왜  우리가 이 가사를 취했나? 이 가사는 신편에 있기 때문에 신편 가사요, 이거는  새찬송에 있는 가사요, 또 통일찬송에 있는 것도 좋은 거는 두 개인가 뺐어.

거게도 쓸모 있는 거는. 낱낱이 열람해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대조를 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전부를 다 대조했어요. 신편은 이렇고 새찬송은 이랬고 이거  통일은 이라고 있다. 또 우리는 이라고 있다 하는 그걸 다 뺐어. 이러며 통일과  대조해 봐라. 그래 먼저 교역자회 때 다른 것 다 못 하고 그걸 일장으로부터  열장까지 대조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통일에는 전부 줄을 다 그었어. 다 틀렸다고  다 그었어. 내가 다 그었어. 또 이거는 다 옳고.

왜 이러냐? 이거는 처음에 찬송가 지은 사람의 그 가사나 곡이나 오늘 통일에서  한 가사나 곡이나 둘 다 꼭 같은 뜻이고 이런데 앞에 할 말을 뒤에 말해 놓고  앞뒤만 바꿔놓고 말만 위에 것 아래로 바꿔놓고 앞에 것 뒤에 것 바꿔놓고 자꾸  요래 놓은, 내나 그 뜻은 그건데 그렇게 자꾸 고치기 위주라. 이게 마귀가 역사한  거라.

이러기 때문에, 꼭 같은 가치를 가졌고, 꼭 같은 뜻을 가졌고 꼭 같은 의미를  가졌고 꼭 같은 가치를 가졌다고 하면은 하필 그것을 고칠 필요가 뭐 있나?  이거는 과거 내려온 그것을 우리가 보수하는 게 좋다 해서 보수적으로 이걸  보수로 이것을 택했다. 이거 하나 저거 하나 꼭 같을 판이면 왜 이미 내려온  그것을 보수하지 뭐할라고 새로 고친 것 할 필요가 뭐 있느냐? 이런데, 인간들은 고친 게 좋다 말이오. 그거는 이 마귀란 놈이 자꾸 이라는데 뭐  아주 자꾸 이 진화가 돼 나가니까 좋다 좋다 하는데 기독교는 진화 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보수의 종교요. 하나님이 하나 주시면 하나 알고 둘 주면 둘  알고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이래 가지고서 십장까지를 할라 하니까 상당히 그만해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요번에 교역자회 때는 열장까지만 하고 더 이상 못 했다 그말이오. 열장하고  나서, 다 틀렸거든. 이래 놓으니까 ‘자, 그라면 어떠냐?’ 그 반대하는 똑똑한  자들이 입이 콱 막혀서 말 못 한다 말이오.

이래도 이것들이 지식이 있거든. 지식이 있으니까, 내가 살아 있으니까 지금  저거가 말했다가는 그냥 혼이 나는 게 아니라 말했다가는 평가적으로 ‘자, 이러면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어느게 낫노?’ 이라면 입이 막힐 터이니까 말 못  하니까 말 못 하고 있지마는 내가 죽고 나면, 등신들만 모았다 그말이오. 등신들.

다른 교파를 말하는 사람 아니라. 우리 교파에 등신들만 모았어. 눈먼 망아지  원앙소리 듣고 따라가듯이 줄줄 따라가는 이런 것만 지금 모아 가지고 있으니까  나중에 그 사람들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다 증거를 대면은 그게 그러니까 그게  틀렸다 하는 변증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저거가 승리할 거라 말이오.

이래서, 지금 그것을 말하는데 똑똑히 알아서 이걸 깨닫고 이걸 하면은  거석하지마는서도 내 밖에는 그 원수가 얼마나 있으니까 이거 내 전투의  대상자가 얼마나 있다 이거는 생각지도 안하고, 여기서 배워 가지고 ‘목사님은  설교록을 내니까 유명하니 나도 설교록을 내야 되겠다. 나도 설교록을. ’ 내나  여기서 배운 그거 가지고서 또 제 이름으로 무슨 설교록 낼라고, 또 여기서 배운  거 가지고 자기가 이러니까 ‘거게는 자꾸 테이프를 해 재독하고 하니까 나도 이거  자꾸 이거 설교를 해 재독을 해야 되겠다. ’ 이거 흉내는 잘해서 자꾸 이랍니다.

이러니까, 어린 것들은 그걸 뭐인지 그걸 모른다 그말이요, 지금. 이 밖에는  수없는 박사들이 수백 명 수천 명이 꽉 박혀 있습니다. 그 수천 명 수만 명과 다  대항해서 그 이겨서 그보다 옳아야 필요하지, 그보다 옳아야 새 말하지.

자, 그와 꼭 같은 것을 새로운 말로, 꼭 같은 진리를 딴 말로 해 가지고 딴거같이  그래 하면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겠소 의가 되겠소? 죄가 돼, 알겠어요? 과거보다  낫지 안하면은 단어도 바꿀 필요가 없어, 낫지 안하면. 부득이 그 과거 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새 단어가 아니면은 그 진리를 발표할 수 없을 때는 새 단어를 쓰는  거라.

그거 처음에는 저거가 이단이라 말하다가 이제 다 하고 난 다음에 ‘그거나 그거나  뭐 같네’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는 것을 온 전국이 세계가 다 지금  반대하고 뭐 구원이면 구원이지 기본구원이 어데 있고 건설구원이 어데 있느냐고  이라다가 이제 이게 똑똑히 이제 저거에게 딱 대고 난 다음에는 ‘기본구원  건설구원, 모두 구원이라 하면 그 구원 속에 기본구원 건설구원이 다 들어 있지  안했는가? 들어 있는데 뭐 별스러운 것같이 말한다. ’ 이래 가지고 까뭉캐는  위주라. 여러분들이 뒈지는 걸 알아야 돼. 이걸 모르고 아무나따나 예수만 믿으면  되는 줄 알아?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찾아 들어가는 거 있고 기어 나오는 것 있어.

요것만 해도 죽고 살아요. 만나 가지고 ‘저 목사 보자. 저 목사 설교 보자. 저  목사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기어 들어가는 설교하나 주님에게서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설교하나. 저 사람은 세상을 뒤로 두고서 하늘나라 향해서 가나  하늘나라는 뒤로 두고 세상을 향해서 나오나?’ 요것만 해도 다 짐작할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얼마나 다 똑똑히 배워야 될 터인데 요만치 왔는데 이거 와  봤자 몇 명 돼요? 나머지기 사람 그거 죽고 사는 것이 이제 이 듣는  여러분들에게 다 책임이 있어.

아무나따나 ‘그게 그거 다 한가지지’ 전부 도매라. 요새는 도매 세월이 나와  가지고 전부 도매 세상이오. 전부 이거 가릴 게 없어. 다 혼합 세상이지, 다 타자.

그렇게 할 게 뭐 있느냐? 다 타자, 뭐 그래 쌓을 게 뭐 있느냐? 그래 내 엊저녁에도 몇 사람 앉아 가지고, 내가 그 사람 뭐라 하는가 들어 볼라고  ‘뭐 그래? 나도 그렇게 똑똑하고 뾰족하고 뭐 옳으니 그르니 뭐 틀리니 맞으니  하는 아이 그 소리 징그러워 듣기 싫더라. 뭐 서로 화평하고 그만 이렇게 서로  화목하고 이해하고 서로 이렇게 둥글둥글하게 이렇게 기쁘게 즐겁게 살면 좋지  고렇게 까다로운 거 그런 거 싫어. ’ 내가 자꾸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이래 말하니까 옆에 사람들이 어째 그럴 듯하게 조그매 감염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아야, 그래 엊저녁에 내가 말해서 그  옆에 있는 사람들 한 몇 사람 있었는데 ‘저 목사님이 좀’ 뚤레뚤레 해 `저  목사님이 좀 아마 요새 좀 변질이 되고 속화가 됐는가 보다. ’ 그래 여기는 것  같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야 됩니다. 백 개 가운데에서 ‘아, 여게 보자. 백  개 가운데에서 오십 개 이거는 틀림없다. 이거는 틀렸다. ’ 오십 개는 치워버리고  ‘오십 개 남았다' 오십 개 가운데에서 여게서 또 가려 보니까 ‘이십 개는 틀렸다’  이십 개를 떼 버려 버리고 이제 ‘삼십 개’ 삼십 개 가운데서 또 가리고 또 가리고  또 가려 가지고서 `이십 개' 이십 개 가운데에 또 가려서 ‘열 개’ 열 개 가운데에  또 가려서, 또 가려서 이제 마지막에 ‘하나’ 요거 가려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요것이 거룩한 행동입니다.

이러니까, 골방으로 가는 것도 그거라. 자기 양심에 인도를 받아서 자기 양심으로  찾아서 ‘요게 제일 옳다’ 요것이 주님이 좋아하시겠고 요것이 주님과 일치 되겠다.

고다음에 진리로, 자기가 양심을 가지고서 옳고 바른 참되신 주님을 찾는 것이 그것이 자기  주관이요, 성경 말씀을 보고 찾는 것도 자기 주관이요, 이렇게 찾아 들어가면  양심으로 찾는 것보다 성경으로 찾는 것이 좀 보다 낫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영감으로 되는 거, 영감은 주관이 아니고 객관이라.

자기 힘대로 찾아 들어가면 그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이렇다’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거 있어. 자기가 가만히 옳고 바른 걸 찾을라고 애를 써도 자기  힘으로는 이런데 자기 속에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무슨 영감이 날아와 가지고  자기에게 그걸 더 똑똑히 알려 주고 더 넓게 알려 주고 더 강하게 알려 주는  그런 역사가 자기에게, 자기 주관이 아닌 데서 객관 역사로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그것을 만날 거라 그말이오. 그거 그러면 우리가 매일 그런 거 몇  번이든지 체험을 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이제 그 만나 가지고 그분을 만나면은 내가 구할 것도 바로 알고  또 공연히 헛된 걸 구했던 것도 알고, 이러니까 처음에 기도하러 갈 때는 하나님  앞에 이거 가지고 기도한다고 갔는데 들어갈 때는 갔지마는서도 가서 기도하다가  보니까 하나님 만났다 말이오. 헛말 많이 했거든, ‘주님이여, 내가 잘못된 이  사욕으로 내가 구했습니다. 이거 내가 하나님이 줬더라면 내가 영 멸망받는 건데  안 준 것을 감사합니다. ’ 이라고 기도하러 갔다가서 기도 제목 다 집어던져  버리고 ‘나는 집으로 가겠습니다’ 내려간다 그말이오.

이게 기도하는 건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러 가 가지고 만물보다 거짓된 더러운  욕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다 이간 붙이는 걸 이간 가지고 기도하고 또 시기 그거  가지고 기도하고 질투 가지고 기도하고 사욕 가지고 기도해 놓고 고놈을  달성할라고 자꾸 생각하니까, 집에서 생각하니까 분주한 중에 좀 생각하는 생각이 엷은데 어데 산에 들어가  가지고 또 생각하니까 더 짙어지고 짙어지고 이라니까 나중에 가 가지고 꿈도 그  꿈 꿉니다. 꿈도 제가 완전히 썩어서 그 꿈 꾸인 줄을 모르고 꿈에 꾸이니까  ‘꿈에 꾸이는구나 이게 사실이다’ 하나님이 보여 준 줄 알고, 그래 가지고  불건전한 신비주의됩니다. 그런 자는 회개할 수가, 그런 자를 회개시키는 데  하나님이 몽둥이로 때릴 수밖에 없어.

이러니까, 아주 제가 제일 잘 믿고 제가 제일 하나님과 가까운 줄 알지마는  아무리 옆에 사람이 말해야 됩니까? 나중에 하나님이 몽둥이로 몇 번 때려서  죽을 고비가 넘어가도 제것이 옳고 제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인간의 그 원죄, 자기 중심의 원죄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돼요.

자꾸 이래 새벽기도 좀 나오고 이래야 뭐 알 건데 뭐이 나와야지. 이러니까 이거  참 답답해요. 누가 이걸 알아서 지금 전하고, 이걸 누가 알아서 전하고 누가  알아서 계대할꼬? 암만 봐야, 요거는 명철한 면에는, 예민한 면에는, 기억면에는,  요거 또 활동성 면에는, 요 담력 면에는, 그 쓸 게 쓸모 있는데 그런 사람은 한  열 댓 사람이나 스무남은 사람이나 뚤뚤 뭉쳐서 한 사람 만들어야 될 터인데 그  사람이 그래 만들어집니까? 이러니까 이리저리 치우치고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서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에 얼마나 배워야 되느냐 배워야 되는 필요성도 느끼지 않은 그  사람이 뭐 어떻게 갑니까? 실컷 가르쳐 놓으니까 양성원에 가 가지고, 내가  깨달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 시대에 역사하는 것인데 이 깨달아  준 것을 까뭉캐 버리고 흐리게 만들어 버리고 그만, 더 짙게 만들라 하니까 더  짙게 만들지 안하고 흐리게 만들어 버린다 그말이오.

하나님 앞에, 내 심령을 밝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도를 바로 듣고 깨닫게 해  주옵소서.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해, 행하는 것보다도. 바로 깨달아야  행하지. 바로 깨닫는 게 제일 중요하고 다음에는 실행하는 것이, 왜? 실행함으로  뭐 일이 이루어질라고? 실행함으로 첫째 수입이 뭐이냐?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더  바로 깨닫는 일이 돼져. 자기가 붓으로 앉아 연구해 가지고 그걸 실험을 해 보면  되나 안 되나 알 수가 있어. 실행하는 것이 더 바로 알기 위해서. 바로 알면  그다음에는 그만 바로 행하면 다 되는 거야.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골방으로 들어가야 돼. 골방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기도에 대해서 정확한  그런 인식을 가지고서 어짜든지 해 나가야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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