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기도

 

1988. 1. 15. 금저녁

 

본문:마태복음 6장 5절∼1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5절로부터 8절까지에는 이미 여러 새벽을 거쳐서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오늘밤에는 9절로부터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대해서 증거를 할 터인데  먼데서 온 교역자들 때문에 간단하게 5절로부터 간단하게만, 집에 가서 연구하면  깨달을 수 있도록만 증거하고 주기도문의 해설로 끝마치겠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를 조심해서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상대해서 기도하는 것이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런 것을 그 밑에  여러 가지로 말씀해 놨습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랬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을  상대해서 사람이 알아 주기를 또 사람에게 들으라 봐라 사람에게 인정받고 또  사람 상대해서 사람이 자기에게 어떻게 해 주는 것을 소망한 기도이기 때문에  이런 기도는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고, 그러니까 기도한  효력을 다 받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갚아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말입니다. 이것을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사람이 사람  상대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상대하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잘해 주든지  못해 주든지 할 일이지 하나님이 무슨 상관 있습니까? 외식하는 기도에는  하나님은 상관이 없습니다. 고것만 알고, 또,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여기에는 저희니 너희니 이렇게 복수를 쓰지 안하고 단수를 썼습니다.

‘너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렇게 단수입니다.

그러면, 골방에 들어가는 것도 개인, 천인 만인이 골방에 다 들어가도 제게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제가 들어가야 됩니다. 또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도  제가 만나야 되지 뭐 서부교인들이 다 만난다고 그 중에 그 도매금에 자기가  쓸려서 함께 무슨 효력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도에 대해서 갚아 주실 때에 개인 개인에게 갚아 주시지  다른 사람들이 다 받는다고 해서 저도 거기서 동참해 가지고서 받지 못합니다.

‘네 아버지가’ `네게' `너는' 여기에 특별히 단수로 말씀한 데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집에 가서 연구를 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말은 찾기 어렵게 계신다 그말이오. 깊이  계신다. 계시기는 계시는데 깊숙이 계신다. 잘 보이지 않고 찾기 어렵게 계신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은밀한 중에 계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네 골방에 들어가서’ 네 골방에 들어가서 만나라. 네 골방이라 하는 것은 네 양심  속에 네 하나님이 계시니까 네 양심 속에서 네 하나님을 찾아라. 또 네 진리  속에서 찾아라. 네 영감 속에서 찾아라.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고 또 소개해 주고, 진리가 소개해 주고 영감이  소개해 주는데 거게서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네 양심 안에서 네 양심을 찾아  가지고 양심 안에 들어가면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데 양심을 찾아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 못 만난다.

네 진리를 찾아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 못 만난다. 신구약 성경이 많이  있지마는서도 사람 사람마다 그 현실에 그 사람에게 대한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징계하겠다. 내가 네게 대해서 섭섭하다.

네게 대해서 이것을 회개해라.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나? 왜 이것을 하지 않나?’  사람마다 주님이 지금 자기에게 대해서, 입법해 놓으신 그 진리가 자기에게 자기  현실에 해당되는 그 법칙이 있으니까 그 법칙을 찾으면 네 아버지가 거게 계신다.

또, 네게 대한 영감 안에 네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영감을 만나야 그 안에  계시는 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7절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어쨌든지 말만 하면  되니까 말 한번 하면 안 되니까 또 두번 하고 자꾸 많이 말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를 말해야 되고 말만 하면은 다 하나님이 들으실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하고 뭐 한 가지를, 자꾸 계속 기도하라 했으니까 한 가지를 백  번 기도하지, 한 가지를 천 번 기도하지, 또 많이 기도하라 했으니까 이것 저것,  저거 이거 모든 것 천 가지나 기도하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실 줄로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은 이방인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종교가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너희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그말입니다.

8절에,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저희를 본받지 말라」 그런 식으로  기도하지 말아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가  아시느니라」 네가 구하기 전에 너에게 있어야 할 것, 너한테는 몽둥이가 있어야  될란지, 너한테는 위로가 있어야 될란지, 너한테는 지금 어떤 감옥이 있어야  될란지, 너는 병이 있어야 될란지, 너는 네게 있어야 될 것, 네게 있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아버지가 다 알고 계신다.

아버지는 지금 매를 들고서 매를 칠라고 하고 있는데 제딴에는 지금 상받을 줄  알고 ‘주님이여, 나에게 이 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에게 무슨 영광스러운 이  승리를 하게 해 주옵소서. 내 소원 성취를 하게 해 주옵소서. ’ 아버지는 그에게  채찍을 때려야 되겠는데 이거 엉뚱한 것 기도합니다. 이래서, ‘구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 네게 있어야 할 것 다 아시느니라’ ‘있어야 될 것 다 아시느니라’ 네가  기도하기 전에 네게 대해서 아버지가 똑똑히 알고 있다. 네 성질도 알고  버르장이도 알고 있고 네 장점도 단점도 네 강퍅도 악독도 거짓도 죄도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으니까 네가 중언부언으로 말만 하면 되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골방 안에 기도’ 그대로, 네가 네게 대해서는 아버지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고것을 알아서, 아버지의 노를 푸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고 그다음에는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게 뭐인지 그걸 알아 가지고서 그래 해야 돼지지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자체가  아버지에게 자꾸 달라고만 하면 될 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을 듣지 안하고 아버지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지금 ‘저놈은 과거에 내가 돈 준  게 후회다. 그놈에게 좋은 뭘, 우리나라에 없지마는 좋은 승용차를 하나 사  줬더니마는서도 공부 잘하고 어짜든지 학교 잘 다니라고 했더니마는 그거 사 준  게 후회다. ’ 지금 준 것이 후회가 자뿍 돼 가지고 있는데 뭐 자꾸 달라 하면,  자꾸 달라 하면 주겠습니까 더 밉상이라고 준 것까지 다 뺏들겠습니까, 어떻게  해요? 저 ○ 목사, 준 것도 뺏들어.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중언부언으로 그렇게 말만 하면 되는 줄로 하지 말아라.

‘먼저 너는 네게 뭐 있어야 될란지 아버지께서 뭘 주기를 지금 원하고 계시는지,  폭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사탕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너에게 평강을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 그리 아니면 모진 질병으로 개갈개갈 거리도록 그렇게  질병을 주시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시는지 그걸 알아 가지고서 네게 불의한 거  있으면은 그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다 해결짓고 사유함을 받고 노를 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되지 그런 거 아니면 구해도 소용 없다 그말입

9절에, 이제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이  주기도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주기도문을 예배  순서에도 같이 외우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면 주기도문에 간단하게 가르쳤지마는  주기도문의 이 뜻을 깨달아서 순서도 그 순서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순서로,  또 주님에게 기도하는 그 종류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 종류도 그대로 또  기도하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그대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다 이 말씀은 저 영계에 계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다 말은 지극히 높으신 데 지존하신 데  계시는 아버지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에, 또 지극히 큰 그 전능의 위치에,  전지의 위치에, 대주재의 위치에, 창조주의 위치에, ‘하늘에 계신다’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높으심을 표시해서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라 말은 여게 복수인데 우리 아버지라 말은 내  개인 아버지는 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 아버지로 복수의 단체의 아버지로  이래 하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한덩어리가 돼야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되지  주님과 끊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대하면 멸망받지 아무것도 은혜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은 우리의 대속주, 우리의 구속주, 주님과 나와의 하나된 이  복수를 가리켜서 여게서 우리라고 그렇게 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화친으로 아버지가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기도할 때에 기도는 서로 대화하는 것인데 서로 상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게  기도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상대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 지극히 완전하신 분, 모든  면이 완전하셔서 지혜도 그 이상이 없는 완전하신 지혜, 완전하신 능력, 완전하신  성결, 완전하신 공평 이렇게 이런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만치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바로 아는 것만치 그 기도할 자격은  있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암만 해 봤자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의 대상,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우리의 대화자가 되는 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지존하신 분인 것을  깨닫고 이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는 것으로 상대해야 되지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면서 아주 저거 동무 상대하듯이, 얼러 키운 호로자식이 부모에 만만하게  대하듯이 이렇게 버르장이 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서, 기도할 때에 함부로  입을 벌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우리가 구하는 상대, 이 하나님은 이분은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는 기도를 하게 되고 또 조금  알면 조그만 기도할 수 있고 많이 알면 많은 기도할 수 있고 다 알면 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어떤 분인 것을 내가 믿는 거기에서 하나님도 내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나도 또 하나님에게 정당한 기도를 하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도 모르고는 기도해 봤자 그거는 여기 미신자들이 그저 돌팔이 점쟁이들이  귀신에 소리 하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이지 그거 소용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아야 된다 하는 것을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이거 멸망받을 인간인데 우리 구속주 예수님과 나와  합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된다 하는, 주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된다. 하나님과 나와는 이렇게 친밀하고 밀접한 바로 부자간 된다.

육신의 부모는 부정 모혈, 부정인데 나는 부종이라 해, 아이들 주일학교 할 때는.

종자라고, 정이라 하면 아이들이 잘 몰라요. 부종. 아버지의 종자와 어머니의  기룸의 피 그래 이제, 부종 모혈로 났지마는 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은 예수님께서  흘려 주신 피공로, 또 영감, 진리 이 셋으로 났습니다. 부종과같이 예수님의  대속의 종자로, 모혈과같이 영감과 진리로 이제 대속을 우리에게 충만시켜 줘  가지고서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부르기야  얼마든지 자유로 부를 수 있지요. 불러도 저 혼자 부르지 대답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자임을 모르면 그 사람의 행동한 것이 자연히, 아버지가  만일 그 사람 만날라고 오면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면 그  행동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오시면 벌받아 죽을 일이라 그말이오.

빛이 오는데 빛을 청하는 것은 어두움이 빛이 와도 녹아지지 안할 수 있는 게 돼  가지고 빛을 청해야 되지 어두움 그것이 빛을 청하면 빛이 오면은 어두움은  소멸돼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을 모르면 암만  불러도 대답도 못 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밀접한 관계가 됐다. 됐는데,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됐는데 곧 아버지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실지로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다. 육신의 부모는 부종 모혈로 우리의 부모가 됐고 우리의 영의 아버지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아버지됐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우리를 낳았어. 야고보 1장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너희를 출생하셨느니라' 말씀했어.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는 기도의  상대방이 되는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또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는 걸 알고 또 이 관계는 하나님 대 나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됐다 하는 이런 인연을 똑똑히 알아 가지고  믿음으로써 이제 기도의 대상을 바로 찾아라 그말이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게까지는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상대를 바로  알고 바로 상대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위에 한 데는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를 찾아 가지고 기도해라 하는 그  말이나 꼭 같은 그 뜻을 가졌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자체, 하나님 자체, 하나님 본체, 내나  위에 말한 대로 ‘하늘에 계신’ 말씀한 대로, `이름이' 이름이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 지극히 크신 분이시라. 완전하신 분이시라.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지극히 거룩한 분이시라.

불의를 용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라. 이것도 이름입니다. 또 이분이 어떤 역사를  하는가? 이분의 자체와 이분의 역사 이것을 가리켜서 ‘이름이’ 이름이 하는 이 이름은 이  하나님 자체의 어떻게 그 크심 또 그분의 역사의 어떻게 크고 세밀하고 충만하심,  그 자체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 역사를 통틀어 한마디로 말해서 이름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거룩히 여김이라는 것은 구별하고  구별해서, 거룩이라 하면 여러분들이 오랫 동은 공부했는데 거룩이라 하는 것은  많은 것 가운데서 구별하고 구별하고 또 구별해서 또 거게서, 선별하고 선별하고  선별해 가지고서 나중에 완전에 도달하는 그것을, 과정과 완전에 도달한 그 결과,  과정과 그 결과를 합해서 거룩이라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면 하나님 그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 자체와  그 역사를 구별해서 대우하는 그 대우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자체와 하나님의 그  역사를 구별해서 상대하고 구별해서 그분과 관계를 가지고 구별해서 상대함을  ‘거룩히 여기심을’ 구별해서 상대함을, 「받으시오며」 구별해서 상대하는 우리가 되게 하사 구별해서 상대하는 것이  구별만 해서 상대하는 게 아니고 구별해서 상대한 그것이 하나님이 구별해서  상대하심을 받으실 수 있는 그런 구별을 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뭐 나는 말 재주가 없어서 다른 말로는 표시를 못 하겠는데  나로서는 그 이상을 표시를 못 해요. 이러니까 알아 듣는 사람은 들을 거라.

「하늘에 계신」 그만하면 알 거라.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 이제 여게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분과 나와의 어떤 관계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맺어져 있다  하는 이것을 먼저 언제든지 기억해야 돼, 먼저 기억하고. 맺어져 있는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그분 자체를 그분 자체로  상대하고 대우하고 또 그분의 모든 행사와 이력을 또 이력대로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상대하는 생활이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가  알고 거게 대해서 합당하게 정당하게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하는 우리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는 고 말이 아닙니다.

상대하는 우리 생활이 되는데 상대해서 생활하는 이 생활을 당신이 ‘오, 됐다. ’  ‘과연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두려워함을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니 내가 너한테  욕보는 게 아니고 네가 나를 정당하게 두려워한다. 또 네가 나를 인식하기를  이렇게 인식해 가지고 인식을 하고 하니까 그 인식이 내게 대해서 바로 인식을  했다. ’ 해서, 「받으시오며」 이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래 내가 아까 좀 전에 ‘이름을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했나‘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했나 하니까 `이름을' 해. 그래서 내가 ‘저것도 벌판이로  외우고 돌아다니는구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러면 여러분들이  자꾸 이래 새겨 가지고서 깨달아라 그거요. 이것이 우리 기도하는 데에 제일 첫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호 기도라 그말이요, 일호 기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도록 해 달라는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일호 속에 든  기도요, 또 그분이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실상을 알아야 될 대로 알도록, 그러면 다 알고  간 사람이 있느냐? 다 알고 간 사람이 없어. 영원히 알아도 부족해. 여게 대해서  바로 알도록 이렇게 아는 자 되도록 하는 것이 일호 속에 들었고, 그런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 이름이 거룩히’ 그 자체와 또  그분의 모든 하는 역사가, 구별해서 바른 데에 도달, 구별해서 정확히 알아  정확한 대우를 우리들이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 기도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심을 우리들이 알도록 무한하심을 우리가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은 정확 무오하고 진실하시니 그분은 거짓부리나 삐뚤어진 것을 하나도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와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와 그 기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르요  같소? 하나 예를 들면은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심을 우리들로 하여금 알고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와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함을  받으시도록 하게 하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같소 다르요?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인지,  어때? 저 ○ 선생 한번 대답해 봐. 어떻게 달라? 다릅니다.

하나는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게, 거룩하다 말은  ‘하나님은’ 구별이 `이 우주에 삼라 만상의 만물이 있다. 만물이 있다. 그거는  지음받은 것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 또, 이렇게 모든 인간들의, 요새 세계가 강대국의 대원수라 하면은 자기네들이  지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듯이 그 나라의 제일 머리되는 사람하고 머리되는  사람하고 지금 정상 회담 정상 회담 그래 쌓는데 그 사람들에게 권리 있는 것  같은데 그 정상 회담하는 세계의 머리되는 사람들 회의가 있는데 그 사람  머리되는 사람들의 회의하는 회의와 우리 하나님과, 거룩히 여기는 것은 우리  하나님과 그와는 구별해서 ‘그거는 피조물이라 오늘도 그분이 숨 딱 끊으면 다 쭉  뻐드러져서 송장되고 그분이 없게 하면 없어지고 있게 하면 있게 하는 그분이다.

’ 이제 그와 피조물과 창조주의, 피조물의 역사와 창조주의 역사를 구별하고  구별하는데 구별하는 데에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 조금 구별하는 사람, 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구별하는데 이렇게 똑똑히 구별해서 하나님  섭섭지 않게, 큰 거는 크다 작은 거는 작다 이래서 하나님과 모든 데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이 구별을 정확히 하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고 말과 정확히  함을 주님이 받으시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달라.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불합격이 많다  그말이요, 불합격이 많아.

불합격이 많은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님 본체와 하나님의 그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혼자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하나만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구별은 어째요? 구별은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됩니까 하나만 가지고 구별이 됩니까? ‘이것보다 이거’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된다 말이오.

구별하는 것을 여기 뭐 모든 수많은 피조물 있지 않습니까? 모든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는데 이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언제든지 내가 보고 접할 때에는  여게서 구별해서, 아무리 불미 속에 집어 넣어 죽인다 이래도 거게서 구별해서  ‘죽이는 것은 불이 죽이지도 못하고 느부갓네살 왕이 죽이지도 못하고 죽이는  권리는 주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그것은 거룩히 여기는 것이라 말이오.

거룩히 여기는 것인데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면 거룩히 여겼는데 거룩히 여긴  그것이 합격이 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합격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말이오. 여게까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이니까 주기도문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제일호 기도가 이겁니다.

그러면, 일호 기도가 하나님께 대한 기도인데 그 일호 기도가 돈 달라는  기도입니까 뭐 권세 달라는 기도요 병낫게 해 달라는 기도요? 그 기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나로 하여금 똑똑히 아는데 내가 아는 것을, 내가  똑똑히 아는 것을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실 수 있도록 똑똑히 알게 해 주옵소서.

또 모든 거와 구별할 때에 그 구별이 하나님 보실 때에 ‘오, 네가 바로 구별했다.

’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 구별에 도달하게 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그분을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크신 분을  크신 분만치 대우 못 하면 그 모욕 아닙니까? 기독자의 신앙 생활이 짜다라 연보하고 뭐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이 사람은 아무리 땅 위에  큰 것도 복잡한 것도 찬란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모든 것이 있지마는서도 거게서  이름을 거룩하게 자기가 구별하는데, 그분의 크심과 그분의 역사를 구별하는데  구별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구별해서 하나님을 대우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 구별해서 대우하는데 이 대우한 이것이 과연 그분이 보실  때에 ‘됐다’ 이렇게 하시나 나는 구별한다고 했지마는 그분이 보실 때는 도리어  걱정거리가 됐나?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마는서도 이렇기 때문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설 걸 생각하니까 항상 두렵고 떨리는 것뿐이다’  말한 것이라 말이오.

이래서, 뭐 이렇게 뭐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거 좋기는 좋지마는서도 우리가  어데를 대하든지 무엇을 대하든지 하나님과 그거와의 관계를 똑똑히 판단해  가지고서 그분을 그분으로 대우하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합니다.

이래서, 시편 91편 14절에는 보면은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바로 대우하는 그것이 피조물 위에 뛰어 올라가는  거라. 그러면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주지마는서도 이것이 아주  버르장이 없는 거 모양으로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날뛰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줘 놓으면 저 망하고 말지 유익되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것을 자꾸 이거 말로만 해 가지고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명상하고 기도하면서 이것은 자기 생활 가운데에서 자꾸  날마다 자기가 변화되는 것만치 알아지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러니까 기도할 때는 똑똑히 상대를 바로 찾아  가지고 기도해야 되지 기도의 대상을 찾지 안하고 벌로 기도하는 거는 소용 없는  기도다 그말이오.

위에도 내나 해석하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들 회당과 거리 위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그것은 기도는 하나님을 서로 상대해 가지고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인데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항상 사람만 상대해 가지고  기도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효력도 다 받았다. 너는 사람보고 상대했기 때문에  사람이 너 갚아 줬으면 갚아 줬지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꼭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바로 찾아 가지고  바로 상대해서 대면해 가지고서 기도해야 되는데 이분을 찾을라고 하는 데에는  골방에 들어가야 거게 계신다. 딴데 계시지 않는다. 거게 계신다.

네가 네 양심 속에 들어가야, 양심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자기가 자기 양심으로  생각할 때에, 자기 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옳게 바르게, 안할 것  한 거 할 것 안한 거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 그런 것을 자기 지능대로는 찾아  가지고서 옳고 바르게 할라 하는 고 마음을 가지고 고 사람이 되어서 그럴 때에  옳고 바른 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다 보니까 고게 너거 하나님이 계신다.

‘네 진리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 진리도 이 시간도 지금 여기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다 우리 각각 자기에게 주신 진리가 있습니다. ‘너는 너는 좀 도둑이다  정직해라’ ‘너는 간사하다. 너는 좀 원만해라' `너는 질투다' `너는 시기다' ‘너는  원망 불평이다’ `너는 돈 욕심이다' `너는 권세 욕심이다' 이 각각 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대해서 지금 주시는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각각.

그 다른 사람이 다 맞은 게 아니라 자기는 자기대로의 자기에게 해당된 진리가  있으니까 고 해당된 고 진리를 찾아 가지고서 거게서 해결을 지워야 주님 만나지  딴데서는 만나지 못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거는 기도의 상대를 똑똑히 바로  찾아 가지고 기도해라.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시다. 요것은,  하늘에 계신다는 이것도 무슨 영계에 계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어린 사람들은  이 공중에 계신다 이래 생각하는데 이거는 평가적으로 하늘입니다. 평가적으로.

또 비판적으로 하늘이라. 가치적으로 제일 그 이상이 없는 거게를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말한 것이고 비판적으로 옳고 옳은 데 그 완전 무결인 거게를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공간적인 하늘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런데 이분이 지극히 크신 분인데,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고. 전지, 전능, 완전, 주권, 주재, 창조주 이분이신데 그분이 ‘내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 그분이 우리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나와의  이래 큰 이제 부자의 밀접한 관계가 돼졌다.

내가 첫째 아담에 속한 내 육체로 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혈육을 받아  가지고 났고, 이랬는데 우리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그 인격이 들어 있으니 이  영육은 항상 그 영육인데 그 영육이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화 된 그 영육으로  살던 것을 이제 거게서 해방시켜 가지고 이제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이  영육이 됐으니 영육은 그 영육이지마는서도 그 영육의 기능이나 그 영육의  본질과 본성이나 그 영육의 가치나 그 영육의 생명은 첫째 아담의 생명 그런  것이 아니고 이거는 다 하늘에 속한 자의 생명이 됐다 그거요.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 본체도 다 포함해서 이름이라.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고 저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다 포함해서 이름이라.

「거룩히 여김을」 이래서, 하나님 본체와 모든 존재와, 모든 존재가 많이 있는데,  모든 존재가 천상 천하에 영계나 물질계에 꽉 찼는데 존재와 존재를 구별할 때에  하나님 본체와 모든 존재와 구별하는, 이 구별해서 하나님의 본체는 어떤  존재이며 또 모든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요 구별을 바로 하는 고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요 구별을 바로 하는 게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와 땅 위에 있는 모든 수많은 것들이 다 움직이고 있는데  움직이는 그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고 땅 위에  있는 움직임들은 다 이렇게 역사한다. 그 역사하는 그것을 구별하는 그것을  우리가 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고, 구별하는데 구별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면은 구별 대우함을 하나님이  받으셨다 그말이오. 내가 구별 대우를 했지마는서도 그게 잘못 될 때는  하나님께서는 그 대우를 받지 못해요. 내 구별해서 대우함이 하나님 앞에 과연  상달이 되고 하나님이 그 대우를 받으시기에 기뻐하실 수 있고 받으실 수 있는  온전한 완전한 그런 구별 대접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말이라 그거요.

이거는 좀 어려운 말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래 자꾸 들으면 이런  가운데서 여러분이 자꾸 성화가 돼 나가지 이해가 되는 거는 아니야. 이제 말한  게 다 그래요.

그래서, 땅 위에 온갖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있는데 이제까지 모든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그 구원 역사, 구원 역사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으로 이래 가지고 하고 계시지마는서도, 그 구원 역사는  주권하고 계시지마는 뭐 개미 한 마리가 나고 가고 개미 수염을 요래 흔들고  조래 흔드는 그런 거까지 하나님이 다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은 그것은 뽀얀  거짓말이다 이래 가지고서 모두 다 오늘까지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떻게 주권  역사를 하고 있느냐? 굵닥굵닥한 그런 것만 하나님이 주권 역사하고 계신다. ’ 또, 하나님이 예정은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이 예정도 간추려서 대들보 같은 아주  중요한 것들만 다 예정했다 이랬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이 다릅니다.

주권은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리 흔들고 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 그분이  낱낱이 주권해서 하지 다른 거는 아무것도 월권하지 못한다. 하나님 그분이 홀로  주권한다는 것은 다른 데에게 도움이나 침해나 받지 안하고 당신 꼭 뜻대로  고것을 혼자 주장대로 혼자 능력으로서 그 일을 역사한다 하는 것을 주권으로  역사하신다 주권 섭리라 이렇게 말하고.

또, 어떤 분들은 ‘대략만 그렇지 전체는 다, 큰 것만 그렇지 작은 거는 그렇지  않다. ’ 하나님의 예정도 우리가 지금 믿는 예정과 우리가 깨달은 또 하나님의  주권과 다릅니다.

그러면 어때요? 강령만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그 예정과 모든 지극히 작은 것,  개미 한 마리가 났다가 죽었다가, 하루살이가 요리 나고 조리 났다고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예정이라, 열 마리 나왔고 스무 마리 나왔고 다섯 마리 나온 것도  예정 고대로 딱 숫자가 나왔고 그대로 또 죽어지지 그 예정의 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예정 고대로다 요렇게 예정을 믿는 것과 그렇게 그렇지 안하고 그저  강령적으로 대략적으로만 이래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하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두 종류가 있는데 오늘까지에 내려오는 학자들의  예정론과 또 하나님의 주권론과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정론과 주권론이  다른데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인지! 우리가 깨달은 것이 하나님 앞에 ‘오, 너거가 나를 그렇게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대우한 것이 그것이 맞다. ’ 하실란지, 오늘까지 ‘그런 것까지는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예정하시고 주권하시는 게 아니고 대통틀어서 그 아주 원  줄기 굵닥굵닥한 것만 예정하시고 그렇게 주권하시지 그런 자잔한 뽀스래기까지  다 그렇게 하시지를 안했다. ’ 이렇게 하나님이 하실란지! 그러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구별하는 것을  당신이 지금 평가하실 때에 인정하시는 평가를 말하는 것이 거룩히 여려을  받으시오며 한 것입니까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 인간편에서 거룩히 여기는  행동을 개시하고 행동했으면 행동을 가리켜서 여김을 받으시오며 한 것입니까,  어느 것입니까? 첫째 것이요 둘째 것이요? 첫째 것. 요것이 중요합니다. 그라면 누가 받을란지  몰라.

이다음에 우리가 깨달은 그 예정론과 주권론을 하나님이 받으실란지 또  오늘까지의 모든 학자들이 말해 놓은 그걸 받으실란지, 그걸 받으면 우리는 낯을  뻘거이 해 가지고 돌아섭니다. 우리는 그때 수치를 당합니다. 또 우리 한 것을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면 이제까지의 말한 그런 것은 얼굴이 뻘거이 수치를  당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데 이런 것이 기도에 제일호의 중대한 문제라. 기도에  대해서는 기도의 대상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하시고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라고 하는데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올바른 관계 가진 생활을 할라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받을 수 있는, 합격될 수 있는 고 생활이 되게  해 주옵소서.

요것이 우리가 돈 구하는 것보다 뭐 죽음에서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권세 구하는  것, 모든 것 구하는 것보다 이것이 구하는 것이 제일 일호라 하는 것을  주기도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또 그다음에는 뭘 기도할 건가? 또 돈 기도하지 안해.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말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모든 나라인데 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이 통일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를,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조직과 정치가 다 수립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죽음이 없는 영생하는 나라, 완전한 나라, 사랑의  나라, 진리의 나라, 이 하나님의 나라,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천국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내가  천국 사람이 되기를, 모든 천국 조직과 천국 건설들이 다 되기를 이걸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두번째 기도입니다. 두번째 기도. 이거 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소망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또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이것이 성도들이  우리가 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것을 두번째로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 되기를,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모든 이 교회가 다 천국이 되기를,  천국은 뭐이 천국인데?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 진리 법칙이  그 나라의 법칙이 되고 조직이 돼 가지고서 통치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기도하고,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체에도, 자기 생활에도, 하루에도, 내 생활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내 마음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성질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행동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사상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내가 같이 일하는 그  모든 단체에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천국 이루어지는 이 천국 이루어지는 것은  다 영생이 있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완전이 있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로써 통일되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이것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세째로 원할 것은  하나님의 뜻 이루기를,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하나님의 이 천국 건설의 이 뜻이  요것이 완성되기를 요것을 원하는 것이 우리들이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것은 세 가지 기도인데 세 가지 이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구할 때에 그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구할 때에  그 사람은 차차차차 자꾸 온전한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이거 외에 딴것을 구하는  건 다 불탈 것들이오.

그다음에는 일용할 양식 주시고 하는 이거는 일용할 양식은 거석해 봤자 이런데  이거 왜 네째로? 이거 은혜 하는 것은 위에 세 가지 기도한 이것이 밥을 먹어야  된다 그말이요, 먹어야 돼. 먹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거라. 일용할 양식을 주는  거는 많은 양식을 말하지 않고 하루 먹을 양식이라 그말은 하루 종일 자기가  먹는 것이 이 세 가지를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그 자본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대상을  먼저 바로 찾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다. 기도의 대상을 바로 찾는다 말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자기와의 관계가 어떻다 하는 그 관계를 바로 알고 기도해야  되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그와 자기와의 어떤 관계가 돼 가지고 있는 거  이것을 아는 것이 이것이 기도의 제일호로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하나님은 모든 역사와 구별하는 역사, 또  본체와 모든 본체들과 구별하는 문제.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땅 위에서 어떤 존재를 봐도 ‘이 존재는 주님이 다 지으신  것이다. ’ 어떤 움직임을 봐도 ‘이것은 주님의 움직이심이다. ’ 주님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 하나도 없어.

이번에 칼기 사건에 사람이 몇 명이 죽었다 하나 그런 것도 이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가 뭣이 잘못했다, 뭐가 잘못했다. 아, 이거는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해 가지고 이래 하셨는데 뭣 때문에 이렇게  됐나? 왜 이 일이 왔나?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뭐이며 우리가 할  일이 뭐이며 여게 대해서 취할 태도는 뭐이냐?’ 이것이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인데 고게 하나님 앞에 ‘합격’ 됐으면 여김을 받으신 것이라. 합격되기까지  할라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거 뭐 대번에는 안 될 것이고, 앞으로, 요새 새벽으로 늘 계속하는데 새벽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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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3 외식 신자와 진실한 자의 대립과 할일/ 사도행전 12장 1절-24절/ 880327주전 선지자 2015.12.12
3572 외식 신자와 좁은 길/ 사도행전 12장 6절-17절/ 880330수새 선지자 2015.12.12
3571 외식 신자와 믿음주의/ 사도행전 12장 1절-11절 / 880331목새 선지자 2015.12.12
3570 외식 기도와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 2절-11절/ 880116토새 선지자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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