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회개

 

1987. 3. 11. 새벽 <수>

 

본문: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리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우리의 이 구원 관념이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둘이 있는데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나누어서 말하는 것을 그것을 별스럽다 이단이라 이렇게 정죄를 하고 있는 현시대니 우리가 참 이 구원에 대해서 들어도 모르고 또 봐도 모르고 꼭 자기가 행해 봐야 알지 그 전에는 모르는 이 구원 도리입니다.

인류 시조 때부터 사람을 꾀우고 속여서 제가 사람을 유혹으로 설득시켜 보지 못한 일이 없고 또 사람을 점령해 보지 못한 일이 없는 그 사탄이 쉬지 않고 일하는데 우리도 별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유혹이 가득 찬 세상인 것을 알고 예비해야 되지 그저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어 못 하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참 아주 참람된 생각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되고 안 주시면 안 되는 그것이 성경입니다. 내가 하면 되고 안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하고 아니하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그것이 제게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의 강퍅한 그 나태성을 없애기 위해서 네가 힘만 써서 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은 그래도 다소 껍데기 교훈입니다. 실은 인간이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첫째는 예정대로 되는 구원이요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는 구원입니다.

이러기에 어떤 사람이 우리의 구원은 건설구원과 기본구원 둘이 있어 기본구원은 영이 중생되는 구원이니 그 구원은 본인이 알기도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택한 자들에게는 다 이루어지는 구원이니 이 구원은 꼭 같다.

또 건설구원은 영이 구원받은 그 사람으로서 심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중생된 영과 성령과 진리가 합해 가지고 이 심신 성화 구원을 이루는 이것이 건설구원이다.

둘로 나누는 사람도 있고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고, 둘로 나누는 사람을 별스러운 말한다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사람도 있고 또 정죄를 받아도 그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잘하고 잘못해 가지고 구원에 대한 그 주권을 제게 돌리는 것과 하나님께 돌리는 그것이라면 그것이 가치가 사람만치 가치있고 실패가 사람만치 실패하는 것이지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그 불행이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이 주신 그 불행이요 행복이 하나님이 주신 행복이기 때문에 불행과 행복은 유한한 것입니까 그게 무한한 것입니까? 무한한 것입니까 유한한 것입니까? 무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으로 구원되는 그 구원이 무한한 구원이요 또 하나님의 주권 예정에 그 사람은 구원을 하나로 본다, 또 그 구원은 인간이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고 주권이 사람에게 있다 이렇게 모든 잘못 깨닫는 거, 잘못 깨닫는 것이 그것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시발된 것이라면은 그 불행은 어떤 불행입니까? 무한한 불행의 불행입니다, 무한한 불행.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구원에 대해서 예정이 되어 있는 것이 어떤 사람은 ‘구원은 뭐 하나뿐이지 뭐 구원이 둘이라?’ 이라는 그 사람은 평생 가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왜? 회개하고 믿어 구원 얻는데 이 예배 시간에 또 이 시간 성경 봐 깨달으니까 모르던 죄가 또 나오고, 집회 참석하니까 또 나오고, 성경 보니까 또 나오니까 평생 그 죄를 뿌리 뽑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구원은 항상 미결에 있다. 하나님이 나를 옳다 인정해 주면 될까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이러니까 평생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나누어 있는 사람은, ‘기본구원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내가 알기도 전에 나를 택하셨고 택한 나를 중생시켜서 중생된 지 얼마 후에 내가 예수 믿기 시작했다’ 하는 요 교리를 성경대로 아는 사람은, ‘아, 천국은 내것이 되어 있다. 하나님 아버지 자녀가 되어 있다. 이런데 그 자녀의 실력을, 천국 시민의 실력을 갖추는 그게 문제이기 때문에 이 실력 갖추는 게 문제지 천국 시민이 되나 안 되나 하는 그런 것은 이미 다 변치 못할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 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람은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이 구원 도리를 잘못 깨닫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많고, 어떤 사람은 구원 도리를 차차 차차 자꾸 깨달아서 점점 깨달아 가는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잘못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말해 주면은 깜짝 놀라면서 바로 깨달을라고 애를 써서 고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깨달은 그것으로써 다지 바로 깨닫는 그 새로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침 받든지 제가 어떻게 하든지 해도 그것을 무시하고 이단이라고 반대하는 그런 사람도 있는 그것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원 무궁 세계에는 지옥과 천국이 있는데 지옥은 뭣하는 곳이냐? 지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도리, 하나님의 언약을 이렇게 무시한 사람은 이런 결과로 비참하고 저렇게 무시한 사람은 저런 결과로 비참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시된 도리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그 종류 종류대로 이렇게 배반하는 것은 이렇게 됐다 이래 된다 그것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그것이 지옥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순종하되 순종하는 그 종류도 뭐 헤아릴 수 없어.

억억억억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한없고, 그러기에 하늘나라에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같지마는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뭐 억억억억 그래 셀 수도 없이 그렇게 많은 층어리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대해서 요런 면만 믿고 요 면은 믿지 안하고, 요 사람은 몇 가지 면을 믿다가 시작만 하다 말고, 또 중간에 가다가 말고, 요 하나만 끝을 맺고 나머지기는 다 못 하고,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행하는 것을 만일 행하고 행하지 안하는 것이, 행하는 것이 열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행위를 몇 가지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몇 가지? 열 가지 가르칠 수 있지. 또 하나님의 도리에 거역한 것을 열 가지를 가르칠라고 하면은 몇 가지 거역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까? 열 가지 거역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지.

하나님의 도리가 억억억억?만만 이렇게 하면은 그거 어긴 것을 하나님께서 요래 어긴 것은 요런 결과의 사망이 되고 조래 어긴 거는 조런 결과의 사망이 된다고 하는 그걸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라고 하면은 그거 어기는 자가 몇 가지 종류나 있어야 되겠어? 백 가지 가지고 되겠소 그 종류대로 억억억억? 그만치 어기는 종류가 있어야 되겠소? 그만치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는 수많은 어김의 종류의 성격의 형태의 뭐 별별 어김의 수많은 어김의 종류가 그 결과를 받아 가지고 영원히 이렇게 요런 어긴 것은 요런 결과를 받는다 하는 것을 그 실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게 지옥이오. 그와 정반대로 하늘나라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실은 신앙이 하나님의 예정을 확신하지 안하는 신앙은 그 신앙은 그까짓 거 어린 신앙이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을 내봤자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예정을 믿는 신앙이야 되고, 예정을 믿으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그 신앙이라야 되고, 또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음으로 다 믿고 해결된 그 신앙이라야 그 신앙이 건전하고 바로 되는 것이지 그 이하의 신앙들은 그 아직까지 지금 바람에 나는 갈대와 같아서 그게 어떻게 될란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꾸 그랄라면 자기가 이렇게 믿음의 행위를 해야 거게서 깨닫지 사람 말 가지고는 아무리 해 봐야, 경험한 사람은 말을 하는데 경험하지 안한 사람은 자꾸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데도 이렇게 자기가 그 일부분을 믿고 그 외에는 더 없다 요렇게만 일생 동안을 살고 가는 자, 어떤 자는 삐뚤어진 걸 옳다고 주장을 하고 살고 가는 자, 여기 저 박태선씨 그 사람은 요새는 또 뭐 집 위에다 보니까 뭐 뭣을 날개같이 이래 만들어 놨는데 그거 뭐인고? 벌써 그 사람이 내가 알기에 구주가 여러 번 바꿔졌습니다. 지금은 뭐 어데 무슨 교? 천부교? 천부교, 천부교라 하다가 그 다음에는 또 그때 뭐 천도교라 했던가, 그전에 또? 또 천년성 또 전도관 또 이래 가지고 또 이라다가, 그래도 사람은 속습니다. 그래도 거기 속아서 요새도 뭐 어데? 세례 받으러 뭐, 세례 받으러 온다 하던가 안수 받으러 온다 하던가 오다가 차가 넘어져 가지고 뭐 몇 사람 죽고 이랬다 하더만 그게 사실인가? 그렇게 사람들은 마귀란 놈이 들어서 그 속에 들어 가지고 꼬우기 때문에 마귀 꾀임에 안 꼬인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귀 꼬임에 안 꼬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에게 다 꼬입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꾀이지 않도록 하는 그 사람만 안 꼬입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너는 억만분지 일만 꼬여라. 너는 억만의 억만을 다 꼬여라.’ 이렇게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대해서 베풀어 주신 대로 됩니다.

그것도 하늘나라 가서 ‘봐라. 내가 열 가지만 안 꼬이게 하니까 열 가지만 안 꼬였지? 한 가지만 안 꼬이게 하니까 한 가지만 안 꼬였지? 이 사람은 만 가지 꼬이게 했으니까 만 가지 꼬였지?’ 하나님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된다는 것,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이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멸망과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 받은 자들이 하늘나라 가 가지고 아무도 교만하지 못합니다.

왜? 제가 뭐 행함으로 된 게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됐기 때문에 자랑할 수도 없고 교만할 수도 없고 멸시할 수도 없어.

사람이 이렇게 어리석고 이렇게 이렇다 하는 그 사람도 또 그 면에 대해서 깨닫지 못해 그래.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명철한 사람이라도 그 명철이 저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명철은 먼지만한 것도 없어. 저로 말미암아 명철 만들어진 거는 하나도 없어. 전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명철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명철 만들어지지 못한 사람 볼 때에 저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나도 그와같이 만들었으면 그와같이 되고, 제일 바보되게 만들면 제일 바보되고 이러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는 감사하고, 모든 사람 볼 때에는 마음에 미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보나 할 때에는 ‘그 사람도 나와 꼭 같은데 하나님께서 나는 이렇게 주시고 그는 그렇게 주셨으니 주님이 그 사람도 그렇게 해 주시면 주실 수 있고 나와 꼭 같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의 노를 풀 것이고 ‘그 사람 안 주고 나만 주셨으니 참 감사합니다.’ 하면은 하나님의 그 신성을 몰라서 하나님에게 거슬리게 될 것이고, 이런데 왜 이 말씀을 하느냐? 어떤 사람은 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알면 됐다.’ 알면 됐다 하는 것으로써 그것으로써 자기로서는 완료 완성을 이렇게 생각하고, 아는 것으로 완성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또 아는 것만으로서는 성경에 말하기를 알고 그대로 행해서 실상을 이루지 못하면 마지막에 심판은 뭐이 심판한다 했습니까? 뭐이 심판합니까? 뭣이 심판해요? “내가 너희들을 심판할 것이 아니라” 뭐이?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과 모세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 너희들을 심판하리라” 모세가 일러 줬다 말은 구약 성경을 가리켜 말하고, 오경만 말하는 게 아니고. 또,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라는 것은 도성인신하신 이후에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거,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말씀하신 거, 못박히시고 승천 후에 주의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거 그것이 다 말씀인데, 말씀을 하라 해서 ‘이래라’ 했는데 그래 하면 뭣 됩니까? ‘이렇게 해라’ 했는데 그렇게 하면은 뭐이 되겠습니까? 뭐 됩니까? 그거 뭐이 돼요? 이렇게 하라 하는 대로, 하라 하는 대로 했으면 그거 뭣 됩니까? 왜 말 못 해? 뭣 돼? 여기 말해 봐. 뭣 돼?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시는 대로 그렇게 했으면 뭣 돼? 뭣이 돼? 구원 안 돼요? 안 그렇소? 구원되지 안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는 대로 했으면 구원이 되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대로 하지 안했으면 뭣 돼요? 심판이 아니지 뭐.

심판은 조사하는 게 심판이고. 벌 받지. 사망 아니요? 그렇지 안해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십계명도 그렇소. 십계명을 지키면 구원되고 안 지키면 사망되고 그런 거라.

이러니까 이걸 깨닫고는, 내가 이 하나님의 모든 도리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은 아는 대로 행하여서 구원 이루라고 하시는 것인데 내가 알고 행하지 안했으니, 그 말씀이 그렇게 하라 했는데 안 했으니까 하나님이 오시면 뭣 받습니까? 상 받겠소 벌 받겠소? 벌 받을 건 정한 이치 아닙니까? 모든 게 안 그렇소? 우리가 이 사람이라도 이렇게 해라 시켜 가지고 시킨 대로 안 했으면 나중에 칭찬받습니까 책망받습니까? 책망받지 않소? 그게 벌이라. 그게 멸망이라.

이러니까, 알고 행하지 못하니 고민하는 사람, 모르다가 아니까 이것으로 다 됐다 하는 사람, 알지도 못하고 거꾸로 알고 그게 좋다고 지금 박태선씨 모양으로 저와같이 지금 자꾸 고집통을 부리고 자기 망하는 일을 자꾸 지금 끌어대는 사람, 그거 몰라 그렇지 그게 자기에게 얼마나 큰 벌이 된다는 걸 알면은 저 일을 죽여도 안 할 거라. 죽여도 하지 안해요. 그렇지 안하겠어요? 이런데 그 사람이나, 알고 행하지 안하면은, 알고 행하면 뭣 돼요? 저뒤에도, 알고 행하면 뭣 됩니까? 구원. 알고 행하지 안하면 뭣 됩니까? 벌. 멸망 받아.

이렇게 깨닫는 사람도 저렇게 깨닫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이 ‘아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행하지 안하면 이거 벌받을 터이고 이거 멸망이다. 알고 행하지 안하는 것은 멸망이 된다. 이 말씀이 도로 우리를 정죄한다.’ 이렇게 알도록 예정된 사람은 그렇게 돼 가지고 있고, 또 이 사람은 아는 것으로 족하다 하고 행하는 것은 상관없이 알면 된다는 것으로 알고 족하게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죽는 열흘 전까지는, 열흘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다가 죽음을 열흘 두고 난 다음에 그때사 깨달아서 그때사 ‘아이구, 내가 지금 석 달만 살면, 한 달만 살면, 며칠만 살면,’ 마지막에는 ‘사흘만 살려 주면 내가 좀 하겠다' 하는 그때 그렇게 깨달은 사람, 천층 만층이라.

그러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못 행하는 거 행하는 거 그것이 사람으로 난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났습니까? 하나님으로 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났으면, 사람으로 났으면 그 행불행이 뭣만치 행불행이 됩니까? 사람의 실력만치 행불행이 되지. 그것이 무한하신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행복과 불행이, 행불행이 어느 정도 행불행이 됩니까? 무한한 행불행이 됩니다. 이러니까 이걸 깨닫지 못하니 자꾸 사람들이 어리석어.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이와같이 하는 것은, 증거하는 것은 이것이 예정된 증거입니까 예정 없는 증거입니까? 이 증거는 구원하기 위해서 증거하는 것입니까 멸망시키기 위해서 증거하는 것입니까? 아니오. 구원하기 위해서 증거도 하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증거합니다. 여게 멸망할 사람도 있는지 모르고 구원받을 사람도 있는지 모릅니다. 전부가 다 멸망할 사람이면 다 전부 다 싹 멸망해.

‘네가 이랬는데 이렇게 했으니까 멸망받아야 되지 않느냐?’ 그 멸망시키기 위해서, 모든 하나님 말씀은 멸망시키기 위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지금은 하나님의 긍휼의 말씀이지마는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이 됩니다.

이러니까, 이 성경을 하나씩이라도 믿어서 행해야 되는 것인데,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이 성경을 하나라도 들으면 지켜야 되지. “읽는 자와” 또? “듣는 자들과” 그거는 복수로 “듣는 자들과” 또? 지켜 행하는 자들이 복 있어.

이러니까,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와 같다” 이거 어제 아침에 증거했는데 좀 생각해 봤어요?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와 같다. 노아의 때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있으면서 멸망할 그 시간까지 몰랐다. 깨닫지 못했다.” 이거 어제 말씀을 증거했는데 요거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나는 그라면 지금 노아 홍수에서 멸망받은 사람과 같이 멸망받을 사람이 내가 되어 있나 구원 얻을 사람이 되어 있나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한번 생각해 본 사람? 자기를 한번 생각해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손 한번 들어 봐요, 생각해 본 사람. 어제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봐. 한두 번은 생각했겠지. 어제 한 백 번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봐. 백 번 생각해 본 사람.

어제 계속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봐. 계속 생각해야 돼.

계속 생각하다니? 그 문제가 계속 생각이 어찌 그리 자꾸 계속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기가 고치기로 시작한 사람은 계속하지 안할 수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여게 마태복음에 기록하기는 몇 가지 하면서 알지 못하고 멸망했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하면서 알지 못하고? 몇 가지 하면서 이 구원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 뭣 뭐? 세 가지? 네 가지? 뭐 한번 네가 네 가지 말해 봐. 그래 네 가지인가? 먹고 마시는 건 한 가지지, 뭐. ‘먹고 마신다’ 있어. 있어도 먹는 거 마시는 거 다 먹는 거 아니야? 마시는 것도 먹는 거 먹는 것도 먹는 거 아니야? 먹는 것, 또? 시집가고 장가가고. 시집가면 장가가고 장가가면 시집가고 혼자 시집갈 수 있나? 그래 둘이지, 둘.

이것이, 자, 시집 장가 가지 말라 말이요 먹지 말라 말이요? 이거 뭘 말하는 것입니까? 노아 때에 ‘홍수가 와서 너희들을 멸한다. 그러기 때문에 방주를 예비하라.’ 이렇게 자꾸 입으로는 전하면서 노아는 자꾸 방주를 만들고 이랬다 그거요.

이랬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안 들은 사람도 있을란지는 모르지마는 다 들었다고 보고 말이지요, 보는데, 여게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으면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짓 하다가 멸망받았다” 이랬는데 이것은 그러면 그 사람들이 멸망받는다는 노아의 예언을 듣고 거게 대해서도, 들은 사람들도 있을 거라. 여기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뭐라 했습니까? “깨닫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다. 그러면 알지 못했다는 말과 깨닫지 못했다는 말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배울 때 뭐라고 가르쳤지요? 말씀을 우리가 배울 때 배워 가지고 깨닫는 것은 어떤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지요? 뭐라고 배웠어? 여기서 뭐라 했어, 여기는? 뭐라고 배웠어? 깨닫는 것과 아는 게 다른 게 뭐이야? 그래, 깨닫는 거는 여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 자기가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 행동을 알게 되는 것이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거 아는 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으니까 이거 알고 있었소 없었소? 깨닫지 못하는 거는 행동할 자기가 믿지 안하고 ‘이렇게 내가 행동해야 되는데’ 행동할 것을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랬는데, 아무리 예언의 말을 들어도 자기 행동이 홍수 심판인 거기에 관한 일을, 거게 관한 그 준비하는 것과 또 자기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거게 대한 것과 자기의 심신의 기울어지는 것이 어떻습니까? 만일, 먹고 마시는 거 그것도 하고 또 홍수 심판 그 문제도 또 대해서 노력을 하고, 하는데, 두 가지 일을 다 하는데, 두 가지 일을 하는데 여게서, 두 가지 일을 다 하는데, 두 가지 일을 다 하는데 여기에 성경은, 두 가지 일을 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멸망받고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는다 했습니까? 저 ○○○조사님? 그러면 원과 부로 말했네? 원과 부, 그거는.

원과 부 그것을 성경에 가리켜서 보다를 많이 말했습니다, ‘보다’ 그것도 해야 되지마는 그것보다 이것을 해라. “네 목숨보다 나를 사랑치 안하면 안 된다” 또 “자기 가족을 미워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말 속에는 뭐 말이요?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랬는데, 그 원과 부를 말했는데 그러면 제일 먼저는 구원 준비하고, 다음에는 의식주 모든 가정 그런 거 준비하고 그러면 그래 하면 된다. 만일 구원 준비는 하거들랑은 자고 일어나서 구원 준비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모든 의식주 준비하고 그라니까 착수는 구원 준비를 먼저 착수하고, 또 구원 준비에 대해서는, 스물네 시간인데. 구원 준비에 대해서는 한 열세 시간이나 하고 의식주 준비는 한 열한 시간이나 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됩니까? 그렇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그러면 어떻게 해? 시작도 순서가 먼저, 또 양도 구원 준비에 양이 많고, 그래도 안 되면 어째야 돼요? 어째야 돼요? 어째야 된다 말인가? 그걸 알아야지. 알아야지. 저 대구서 온 ○집사? 뭐라 하노? 뭐라 해? 뭐라 해요? 엉뚱이, 뭐 지키고 행하는 거는? 지금 다 지키는 데 대해서 말하는데.

자, 어떻게 해? 거기에 예수님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니까 그 사람 꼭 예수님만 생각하고 있습니까 다른 모든 세상살이를 합니까? 세상살이를 합니다.

그런데, “나로 인하여”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으니까 주님으로 인하여 살면은 그 사람 생활 가운데에 몇분지 몇이나 주를 위해서 살면 됩니까?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으면? 전부가 주를 인해서 살아야 됩니다. 주를 인해서 모든 것을 합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러면 지금 신경도 움직이고 모든 것도 움직이고 모든 게 다 움직이는데 이거는 신경의 움직임이다. 이거는 감정의 움직임이다. 이거는 또 근육의 움직임이다. 이거는 생명의 움직임이다. 그러면 어데까지가 생명의 움직임이겠습니까? 생명의 움직임은 뭐입니까? 어데까지 생명의 움직임입니까? 전부는 생명의 움직임입니다.

생명의 움직임, 생명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근육도 신경도 뭐 감정도 기억도 뭐 이성도 다 움직였어. 생명 떠나면 하나도 못 해. 생명으로 인하여서 그 모든 여러 수많은 말이지, 그것도 수 아마 천만이라 해도 될 만치 세포로 말하면 그만치 많아. 이래도 요 생명 하나로 인해서 그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어. 이 생명 하나 떠나버리면 그거 다 죽어버리고 썩어버리고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영생을 할라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그라면 남은 거 없는 거와 같이 이래야 된다는 요 말씀과 꼭 동일입니다.

그러면 이 방주 예비하는 것이 이게 다른 거 하고 뭐 백분지, 만일 만분지 일은, 만분지 일은 방주 예비하는 일 안 하고 다른 거는 방주 예비를 했으면은 만분지 일 그거는 어찌 됩니까? 만분지 일 그걸 안 했으면 이 방주 예비에 온전은 안 되고 만다 그말이오. 그만치 우리 구원이 힘이 듭니다.

힘이 드니까 이라면은 자꾸 이걸 깨달으면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아예 이루지 못하겠다. 그러면 건설구원에 대해서 그 사람이 칠십 살 먹어서 세상을 떴는데, 주일학교 때부터 다녔는데 주일학교 때에 한 시간 그 사람이 예를 들면 한 시간 신앙 생활 했습니다. 신앙 생활 그 다음에는 그만 방종해서 신앙 생활 못 하고 죽을 때까지 회개를 못 하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 말씀을 다 믿지 못하고 완전히 이 사망에 속한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생명에 속한 것을 자기가 소망하면서 완전한 회개를 가지지 못하고 죽었다면은 그 사람 한 시간 신앙 생활한 것이 썩습니까 삽니까? 썩습니까 삽니까? 썩습니다. 그 불택자요.

그 사람이 한 시간 신앙 생활 하고 남은 때는 다 이렇게 하다가 그러면 한 시간 신앙 생활한 그것이 무궁세계에 효력이 있고 없는 것은 언제 효력이 있고 없겠습니까? 언제 효력이 있고 없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지를 안해요.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지금 왕창 저의 수입만 보고 있어. 전부 마귀 수입이라.

그 사람이 한 시간 구원 이룬, 그 진리대로 산, 영감대로 산,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았는데 한 시간 산 그것은 그러면 그후에 평생 칠십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한 시간 산 그것이 만일 그 자기의 구원이 될라고 하면은 어떻게 돼야 구원이 됩니까? 완전 회개가 되는 그게 있어야 그때에 그것이 비로소 그것이 등용이 되고 그것이 산 것으로 자기의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이렇게 살다가ㅡ 이거 참 어려운 건데ㅡ 주님 말씀하시기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했으면 빼 버리라. 한 눈 없이 온 몸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도 한 눈 빼 버리고 네 몸이 하늘나라 가는 게 낫다.” 이랬으니까 그거는 뭘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 전신에 범죄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된다 그말입니다.

그말 아닙니까? 전체 완전을 말합니다, 전체 완전. 그러면 그거는 끊어버렸기 때문에 남은 것은 전체 완전이 되면 된다 그말입니다.

또 그 온전한 행위가 아니면 안 된다 이랬으니까 온전한 행위는, 그러면 지금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데 그 현실에는 온전케 살았지마는 그 다음 시간에 또 그만 범죄해서 헛일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토막토막이 이렇게 그 온전한 행위한 그것은 어찌 됩니까? 이것이 언제 살아나게 되느냐? 어짜든지 전신이 살아나야 되지 안 살아나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지라도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성경 말씀대로 전부 다 살고 싶은 그 사람이 돼요. 사람이 택한 자는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완전 회개를 한 시간 하고 죽는 사람도 있고, 완전 회개를 십 분 하고 죽는 사람도 있고, 완전 회개를 한 삼 분이나 일 분 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전 회개.

그때 같으면 그래 덜 급하지마는 마지막에 죽을 때에 되니까 택한 사람은 모두 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전부 후회하고 말씀대로 살고 싶은 간절을 가지고 ‘내가 지금 살면, 나를 지금 살려 주면 말씀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요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금 살 수 있는 지금 여유가 없어 그렇지 그때는 완전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완전 회개하는 것.

택한 자는 요 완전 회개가 있습니다. 완전 회개가 있어서 완전 회개를 어떤 사람은 한 시간 한 사람, 십 분 한 사람, 삼 분 한 사람, 저도 완전 회개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거 아마 삼 분은 안 될 거고 한 이 분 동안 완전 회개하고, 평생 설교 말씀 전도 뭐 얼마든지 많이 들었지마는 완전 회개 이 분 동안 하고 구원 얻은 사람 봤어.

어떤 사람은 평소 예수 잘 믿습니다. 아주 열심히 잘 믿소. 잘 믿는데 그 사람이 완전 회개는 한 번도 하지 안 하고, 평소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 이랬는데 완전 회개를 한 번도 못 했어.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사람은 그 완전 회개를 하지 못하고 그래도 땅에 있는 미련을 가지고 땅에 살기를 원하고 땅에서 죽는 것이 섭섭하고 이제 완전히 방향을 전환을 안 하더라 말이오.

기본 회개를, 뭐이 기본 회개냐 하면은 이 피조물을 향하던 것을 창조주를 돌려 향하는 것이 그것이 기본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에 그만 말도 안 하고 그만 말문 닫고 난 다음에 푸푸 그라다가 떠난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뭐 방종하게 살아도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 되니까 그때 후회하면서 내가 모든 거 잘못한 거 생각하고 지금 조그매만 더 살려 주면 하루 살려 주면 하루는 주를 위해서 살겠고 헛된 생활 안 하겠고, 한 달 살려 주면 뭐, 삼 년만 살려 주면, 이렇게 다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럴 때 완전 회개가 되는 사람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어.

어떤 사람은 그만 나중에 죽을 때 그때, 세상에서는 다 뭐 예수 믿는 일을 잘 하고 도덕 생활 모두 신덕 이런 것을 위해서 많이 했는데 세상 뜰 때가 되니까 그런 것 다 잊어버리고 그만 세상에 살지 못하고 떠나니까 세상에 미련과 세상에 애착, 땅에 있는 모든 애착 그것만 가득히 차고 마지막에 세상 뜰 때 보니까 하늘나라는 아무것도 없고 세상 것이라. 그 사람 무슨 사람이요? 그 사람이 평소에 신앙 생활 할 때 뭘로 했습니까? 악으로 했어, 악으로. 악으로. 피조물로 한 사람이지 그거 한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은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택함을 받은 사람이 완전 회개를 일 분 하고 간 사람도 있고, 십 분 하고 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모진 병이 드니까, 병이 드니까 그저 죽을 지경이니까 그 병으로써 석 달 고생한 사람, 한 달 고생한 사람, 두 달 고생한 사람, 했는데, 그 병이 들어 가지고 엔간히 거석하니까 낫기를 소망했지마는 나중에는 낫기를 소망하지 안하고 나을 소망이 완전히 절망이 되고 난 다음에는 땅에 것이 다 절망되니까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소망을 옮기더라구요.

옮겨 가지고 그 사람이 한 달 고생하다가, 두 달 고생하다가, 순전히 땅에 소망 두지 안하고 하늘의 소망만 완전히, 하늘의 소망만 완전히 가지는 그 사람으로서, 병이 있으니까 살아 있는 몇 달 동안 고생하다 떠난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그만 이렇게 건강하게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생명이 딱 떠나 버려.

떠나 버렸는데 그 사람이 만일 평생 회개를 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도 평생 회개를 하지 못하고, 완전 회개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택한 자라 볼 수가 없어. ‘택했으면 구원 얻고 택하지 안했으면 구원 못 얻었다’ 우리는 그렇게 판단을 해야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완전 회개를 했을 때에, 완전 회개를 지금 일 분 동안 했으면은 범죄하던 그 지체를 다 어떻게 했습니까? 범죄하던 지체를 다 끊어 버린 택입니까 가지고 있는 택입니까? 범죄하는 지체를 그것을 다 범죄하는 것은 팔을 끊지 안했지만 범죄하는 그 범죄성은 완전히 이별했습니까 가지고 있습니까? 완전히 이별했어.

완전히 이별했으면 과거에 사십 년 전에 한 시간 믿음 생활한 그것은 지금 그때에 들려와 살아납니까 그대로 죽어 둡니까? 기다리고 있다가 그때 살아납니다, 그때 살아나.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행한 것은 하나도 남김 없이 그대로 다 하늘나라 구원이 되고 영생이 되지마는 온전을 이루지 못할 때에는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뿌스러기 구원이라도 자꾸 알뜰히 이루어 모아야 되는 것이고,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는 어떤 자가 갑니까? 하늘나라는 어떤 자가 갑니까? 온전한 자가 갑니다, 온전한 자가. 털끝만한 죄가 있는 자가 갑니까 못 갑니까? 못 갑니다. 털끝만치라도 죄가 있는 자는 못 갑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의 그 무한한 법이 있는데 하나님의 전지 입법인데 그 입법에 하나라도 걸리면 갑니까 못 갑니까? 못 갑니다. 하나라도 걸리면 못 가.

그러면 사람이 전지의 입법을 어떻게 다 행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다 행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거 외에는 구원을 못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걸 얼마나 지금 가르쳐야 될 터인데 이거 또 시간이 없지,

이러니까, 자기가 모든 의식주나 가정 문제나 그런 것보다, 그런 것보다 불심판의 문제가 더 크다. 불심판의 문제를 더 크게 중하게 여기면 됩니까, 보다 이걸 중하게 여기면 됩니까 또 불심판도 대해서 준비하고 세상의 준비하고 둘로 갈라야 됩니까? 가른 데에 불심판에 대한 준비에 중량이 좀 많으면 됩니까? 또 시작을 먼저 하면 됩니까, 양이 많으면 됩니까? 더 가치 평가를 그걸 더 높이 가치 평가를 하면 됩니까? 자, 그러면 여게 구원 얻는 도리를 지금 내가 말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선생? 그래, 시작을 먼저, 시작만 먼저 해도 안 되고, 양이 많아도 안 되고, 전부가 돼야 돼요. 알겠습니까? 전부가 돼야.

전부가 되기 전에는 다 그것은, 전부가 되기 전에 자기가 부분적으로 행동한 것은 그 어찌 됩니까? 다 헛일이 됩니까 그것이 지금 미결로 남아 있습니까? 미결로 남아 있어.

미결로 남아 있는데 그것이 언제 그게 살아납니까? 전부가 회개될 때 그때 살아납니다. 요것을 성경에 보면 다 있는데 말이지요. 요것을 사람들이 생각지 안하고 자꾸 그냥 거석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전부가 되지 안하면 구원에 이르지 못해. 부분으로 된 그것은 전부가 될 때까지 부분 구원 그거는 기다리고 있다가 전부가 되지 안하면 다 헛일되고, 될 때에 그것이 다 그게 간추려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라고 말했습니다. 행동록에 기록한 거.

행동록에 기록한 것은 다가 아니라도 부분적으로 살아나도 그 살아난 것이 전체 회개가 될 때에는 그것이 구원에 속하게 됩니다.

이러면 “너희 행위의 온전한 것을 보지 못했다” 온전치 못한 거는 죽었다 했습니까 살았다 했습니까? 죽었다 했어. 이러니까, 또 다해야 돼.

그러니까 베드로후서 3장에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그말은 그 의는 흠이 있는 의입니까 완전한 의입니까? 완전한 의를 소망하는 자는 완전한 의인은 완전한 의의 세계에 옮겨 피난함을 받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의, 이거는 흠 있는 의가 아니고 흠 없는 완전한 의입니다. 완전한 의를 가진 자가 뭐 완전한, 어떤 자가 완전한 의를 가진 자입니까? 예수님의 열한 가지 이 구속을 가진 자가 완전한 의를 가진 자입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는 거는, 깨어 있는 것은 어떤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열한 가지 완전한 의를 가진 그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외형은 꼭 같은데 속 내부가 어떤 자만 데려갑니까? 어제 아침에 가르쳤는데. 어떤 자가? 어제 아침에 몇 가지로 가르쳤소? 데려가는 사람 몇 가지로.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 뒤에도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뒤에 온 사람도 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

들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 모두 다 신경통이 다 있는가배. 팔 못 펴는가배. 뻐뜩 들어 봐. 저 뒤에 뻐뜩 들어 봐. 서이, 이래 들었어. 이 영감탕구도 이래 드는데 이 서이 이래 좀 들어 봐요, 이래 좀.

그래, 서이인데 하나는 뭐입니까?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또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 목적은 그겁니다. 또 방편은? 열한 가지를 입고 사는 것. 열한 가지를 입고 열한 가지를 받아 가지고 제가 가지고 사는 것, 열한 가지 안에서 사는 것.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자리에 하지마는 동기와 목적과 방편이, 껍데기는 꼭 같애.

껍데기는 꼭 같은 껍데기 그거는 이 열한 가지 깬 생활, 깬 생활 하는 무대라. 깬 생활 하는 장소라. 깬 생활 하는 데 이용되는 모든 도구들이라. 이게 이렇기 때문에 생활하는 속에 알맹이는 달라.

이래야 되는데 우리들은 이 건설구원을 너무도 깔보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깨서, 봐요. “깨라” 또 “의라” 전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소유를 다 맡기는데, 하나님의 소유를 다 맡기는데 깨어 있는 자에게 맡기는데 깨어 있는 자는 어떻게 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 깨어 있는 것도 몰라요. 알기 어려워요. 깨어 있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이라. 영육이 다 피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이 깨어 사는 사람이라.

그 사람은 그라면 뭣 줘요, 하나님께서? 뭣 준다 했습니까? “깨어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주인이 올 때 있는 걸 다 맡겨 준다.” 그라면 “깨어 있는 걸 볼 때에” “깨어 있는 걸 볼 때에” 이 볼 때는 언제입니까? 깨어 있는 걸 볼 때는 언제야? ○○○선생 한번 대답해 봐. 현실 현실? 예수님의 재림 아니고? 너는 아는 게 탈이라. 참 저게 좀 바보가 돼서 모르면 좀 좋겠어. 알기는 아는데 그 좀 행하지는 잘 안 하는 거 같애. 좀 행해야, 행해야 되지 그라면 안 돼.

녜, 깨어 있는 걸 볼 때에, 깨어 있는 걸 볼 때에, 그 답은 백점짜리 했어. 현실 현실마다 그 깨어 있는 걸 보면은 뭣 줘요? 하나님의 모든 소유 줘요.

언제 누가 와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라기 때문에 깨어 있으면, 당신이 눈이 어둡지 안해요. 우리 모양으로 눈이 어두워서 더듬지 안 해요.

그분은 그 눈이 번개 같애. 빨라.

이러기 때문에 깨어 있는 자에게 줘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기가 더딥니까 깨기가 더딥니까? 문제가 뭐이요? 깨어 있으면 돼. 이 사람이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벗지 안하고 구속 안에 살면 그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겨도 일 없어. 우주를 다 맡겨도 그 사람이 실수하지 안해요. 그거 가지고 교만하지도 안하고 그거 가지고 남용하지도 안하고 그거 가지고 월권하지도 안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쉬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자꾸 비교해요. 멸망받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었으니까 나는 멸망할 건가 안 멸망할 건가, 나는 현재로서는 멸망 가운데 있는가 없는가, 나는 멸망에 속했는가 구원에 속했는가 그거 좀 생각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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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3 옳은소원을 가지라/ 야고보서 1장 2절-4절/ 791012금새 선지자 2015.12.12
2052 옳지않은 청지기의 지혜로움/ 누가복음 16장 8절/ 880208월새 선지자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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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완전 호신 직책/ 에베소서 6장 10절 / 880613월새 선지자 2015.12.12
2049 완전보증/ 열왕기하 2장 1절-18절/ 821003주전 선지자 2015.12.12
2048 완전보증/ 요한일서 5장 5절-8절/ 1983. 2. 27. 주일학교공과 선지자 2015.12.12
2047 완전보증/ 요한일서 5장 5절-8절/ 830227주전 선지자 2015.12.12
2046 완전보증/ 열왕기하 2장 9절-10절/ 821003주후 선지자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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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 완전한 가치를 이루라/ 창세기 6장 1절-7장 24절/ 880508주전 선지자 2015.12.12
2042 완전한 안보/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30824수새 선지자 2015.12.12
2041 완전한 행위가 영생/ 요한계시록 14장 1절-5절/ 870308주전 선지자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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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9 왕자의 혼인 잔치/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861123주전 선지자 2015.12.12
2038 왜 꺼꾸로 보여졌는가/ 창세기 3장 5절-6절/ 810211수새 선지자 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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