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현실관


선지자선교회 1980년 7월 20일 주후

 

본문 : 마 28:16-20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에 종교도 많고 도도 많고 주의와 사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교와 같은 이런 도는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과 또 주장자들이 많이  있지마는 누리가 믿는 이 주장자와 같은 교즈들과 같은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외에 다른자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종교의 교주들은 다 주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하나입니다.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지은 것이 없다고 요한복음 1장 2절과 3절에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우리 믿어야 합니다. 석가무니는 지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유교에서 말한 공자니 맹자니 하는 그런 사람도 예수님이 지은 인간  중에 한 사람이요, 모든 종교 창설자들이 다 그러합니다. 주님 만이 인간 중에  한 사람이요. 모든 종교 창설자들이 다 그러합니다.

 주님만이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분을 우리가  믿습니다. 또 지으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영계 것이나 물질계의 것이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입니다. 그분이 임자입니다. 그 분이 주인이요, 그분으이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애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정치적으로는 김일성이가 우리를  자꾸 죽일라고 노리는데 김일성이도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이었소, 주님의  것이요. 세계의 인기를 끌고 있는 모든 과학자 그들을 지으신 분이 주님이시오,  그것이 다 우리 주님의 것이요.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요. 또 지으신 것을  다시 그것을 이것 저것 종합을 해 가지고서 재장조하시는 분도 주님이시오.

 또 이런 것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활용하는 그 모든 활용도 주니이 혼자  주권해서 하십니다. 물론 수많은 천사들도 인간들도 만물들도 시켜서 하시지마는  당신이 하고져 하시는 꼭 그대로 시켜서 하십니다.

 아무도 거기에 가감을 못합니다.

 이런데 이 지음 받은 것 들이나 이런 것이 다 우리 구원을 위햇서 생겨지게  됐고 구원을 위해서 보존 됐고 구원 위해서 이용되고 구원위해서 활동되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임시 임시 하시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작정하신 영원정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지금 순서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궁세계의 영원  무궁토록 무궁 세계에서 우루어져 나갈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단번에 예정해  놓으신 그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언제나  영원하신 이 하나님이 우리의 구주시오 주재십니다.

 이분이 당신 위에서 우리를 목적하셨고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당신위해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십니다.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당신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셨고 이 일을 위해서  만물을 지으셨고 오늘까지 섭리하시고 또 십자가의 대속도 베푸시고 지금도 계속  역사하십니다. 멸망도 이분이 정하신 대로요 구원도 이분이 정하신 대로입니다.

 이 멸망과 구원으로 당신은 어떠하신 분인 것을 나타내시고 또 당신의 약속은  당신의 법칙은 어떻게 신실하시고 변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또 나타내십니다.

 이리하여 유황불 구렁텅이라고 하는 지옥은 같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이렇게  저렇게 멀리하고 업신여기고 배반하고 거역하고 또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제  주장대로 여러 모양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그 수많은 종류들이  수많은 거슬림의 그 종류대로의 수많은 그 결과의 보응으로서 사망이 이루어진  그 수많은 종류들을 영원히 증거하면서 보여주고 있어 멸망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그것이 지옥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당신의 법칙에 맞은 자를 구원하시는데 요렇게 맞은 것은 요런  구원이 됐고 조렇게 맞은 것은 조런 구원이 됐고 성글게 맺은 것은 저런 구원이  됐고 전적 그와 결합된 거는 이런 구원이 됐다 하는 수많은 구원의 종류  이것으로서 수많은 하나님과의 결합의 것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은 당신의 법과 당신에게 맞은 자를 이렇게 존영하게 책임지시고  보수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지옥은 어떻게 해서 인간과 만물이 망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지옥이요  이렇게 하는 자들을 망친다는 것을 망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지옥이요 어떻게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과 구원이 되어지고 어떻게 하는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 지옥은 망하는 법칙과 망치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구원얻는 법칙과  구원시키는 하나님을 증거해서 진노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지옥이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종교와 종교는 같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것들이니까 하나님과 비유하면 하늘과  땅과의 높이의 차이로도 비교할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데 지음받은 것들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는 그것이 막바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택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대속해 놓으신 모든 구원을 다  절단내는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믿는 구주는 영계나 물질계에 있어  제일 크신 분이라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이분이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만 믿을 것이 아니라 내 앞에 크고 작은 것이 있을 때에 요것도  주님이 지었고 큰 것 저것도 주님이 지었고 주님이 짓지아니하신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주님은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상대하는 것이 옳는  것입니다.

 또 지금도 그것들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것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니 곧 내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못난 것들이요 우리 이  세계를 저거 것이라네 내것이지 여러분들의 것이지 그들이 나를 목을 메어  죽어도 영원히 내것 돼. 변동 못해. 영원히 내것이야 또 여러분들의 것이야  믿는자의 것이라 그런다고 모욕 준다고 모욕시킨다고 죽이고 그 죽이는 것이  옳은 것 증거하다가 죽였으니까 나 죽인 것이 영원무궁토록 나를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는 나를 위하는 존재입니다. 해할 수 없습니다. 믿는 여러분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닥쳐지는 현실 이 현실은 주님이 혼자 예정하셔 가지고  혼자 능력으로 베푸실 때에 이런 것을 이용하시고 저렇게 이용하시고 이것을  재료로 삼고 이래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만드셨으니 우리 현실은 당신의 뜻에 딱  들어 맞은 현실로 내게 왔고 또 주님이 큰 힘 들여서 내 현실을 만드셨고 이  현실은 나의 구원 여러분들의 구원 곧 그 본인의 구원을 위해서 현실을 주님이  마련한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현실이라면 어떤게 현실인가? 이 시간 내 마음에 접촉되는 것이 내  현실입니다. 내 마음에 생각되는 것, 느껴지는 것, 또 내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  접촉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요, 내 몸이 접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내 마음이 생각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 소원하는 것, 미워하는 것,  싫어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원망스러운 것, 원수스러운 그런  모든 것 다 마음의 접선되는 것이요. 내가 들리는 것, 보이는 것, 접촉되는 것,  생각나는 것, 만나지는 것, 그것이 다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사람도 들었겠고 짐승도 들었겠고 물건도 들었겠고 일도  들었겠고 욕도 들었겠고 칭찬도 들었겠고 우리 현실에는 손해도 들었겠고 유익도  들었겠고 폭리도 들었겠고 폭망도 들었고 형통도 들었고 불통도 들었고 나를  좋아하는 것도 들었고 싫어하는 것도 들었고 미운 사람도 들었고 고운 사람도  들었고 큰 것도 들었고 작은 것도 들었고 억울한 것도 바른 것도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곧은 것도 나에게 접하는 그 모든 것을 가르쳐서 자기 현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우리는 요것이 신앙의 터입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요것은 첫째로 우리가 요동치 말 것은 이것은 주님이 큰  힘 들여서 나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하는 것 요것 요동 안해야 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공연히 믿는 것 아닙니다. 사실이니  사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것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구원을 이루는데에 필요한 것으로 주님이  주셨다 하는 것도 요동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는다고 총뿌리를 대고 쏴도 그걸  주님이 만드셨고 그것이 내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잘하면 구원되고 잘못하면 사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는 요동하면 안됩니다. 누가 와 가지고 나를 욕을 합니다.

나를 욕을 합니다. 우리 믿느 사람들 욕을, 자기를 욕을 한다 그말이요. 욕을  하면 욕은 원수가 하든지 친구가 하든지 아는 사람이 하든지 모르는 사람이  하든지 미치괭이가 하든지 억울한 욕을 하든지 참 욕 얻어 먹을 일이 있어 욕을  하든지 어쨌든지 욕을 하면 우리는 요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욕은 주님이  이것들을 시켜서 나를 욕한다 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욕은 변함이  없습니다. 요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김계운씨 깨달아요. 말을 자꾸 알아  들을라고 애를 써 그저 사람묘하고 인간이 보기에 묘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그것  몇 잎부치 안됩니다. 몇 잎부치 안돼요 그것 몇 잎부치 안됩니다. 환경이 변하면  변하고 시간이 변하면 변해지고 뭐 그거 아주 허무한 것입니다. 그저 주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걸 연습해서 그게 돼야 되지 자기에게 있는 그런 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 욕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라 하기야 친구가 할 때도 있고 원수가 할 때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할 때도 있고 그거야 그 도구가 돼 가지고 하는 그런 거야  여러 가지가 있지요. 있으나 그것을 조성하시는 이가 주님이시오 그것을  이용해서 그렇게 하시는 이가 주님이신데 일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전  그렇게 하기로 예정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우리 구원이  그렇게 임시 임시 휘뜩 그런 그런 구원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이니 요것을 요동치 말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요동치 않고  가져야 될 신앙 기본이 뭐이냐? 아, 이것은 틀림없이 내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나를 위해서 주님이 이렇게 이것을 만드셨어 이것도 요동하면 안됩니다. 이것도  요동 안해야 됩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해야 됩니다.

이 둘은 우리의 신앙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입니다. 요동하면 안됩니다.

 이제 그러고 난 다음에는 우리는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주님이 만드셨고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이것을 만드셔서 내 현실로 주셨는데 그러면 우리  구원이 뭐인가? 우리 구원이 뭐인가? 녜 우리 구원은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과  사람이 다른 것을 고쳐서 주님과 같은 사람 되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아는 것이 주님과 다른 것을 이것을 고쳐서 주님과 아는 것이  같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 구원이 무엇인가  주님이 행하시는 것과 우리의 행위가 다른 것을 고쳐서 주님과 나와의 행위가  같이 되어 같은 결실을 맺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가가  되는 것이요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구원이 이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영원전 예정하시고  수많은 것을 예정하시고 수많은 현실을 내게 주시는 것은 이 수많은 현실에서  당신과 나와 사람이 다른 것을 알려 주시고 당신과 나와 사람이 다른 것을 알려  주셔서 당신과 나와 같은 그 인격성 같은 자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현실을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에서 주님과 나와의 다른 그것을 여기에서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그 현실을 주님은 원하시는데 나는 싫어하면 다릅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데 나는 원하면 다릅니다. 그 현실을 주님은 미워하시는데 나는  사랑하면 다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데 나는 미워하면 다릅니다. 주님은 그  현실을 깨트리는데 나는 그 현실을 보존할라 하면 다릅니다. 주님은 보존할라고  하시는데 나는 그 현실을 깨트릴려고 하면 다릅니다.

 그 현실에서 주님과 나와의 사람이 다른 것 요 사람이 다른 것을 그 현실에서  우리는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또 현실에서 주님이  아시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지식이 같든지 다른지 비판이 같은지 다른지 평가가  같은지 다른지 이 현실을 주님은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알고 어떻게 원하고  어떻게 행해서 어떤 결과를 맺을 것인가?  그런데 나는 주님과 과연 같은지 다른지 주님은 이렇게 보는데 나는 이렇게  보는지 주님은 저렇게 아는데 나는 이렇게 아는지 주님은 귀하다고 보는데 나는  천하게 보는지 주님은 천하게 보는데 나는 귀하게 보는지 성경을 우리가 배웠기  때문에 주님이 그것을 어떻게 보시는지 하는 그것을 현실을 턱 부딪쳐 놓고 자,  이 현실을 너는 어떻게 보느냐? 이 현실을 너는 어떻게 아느냐? 이 현실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비판하느냐? 어떻게 평가하느냐? 너 현실에 대해서 어떠한  대책을 세우느냐 어떤 계획을 세우느냐? 네가 어떻게 아느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 이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아는데 성경에는 저렇게 알라고 하니까 꼭 나는 이라면 죽겠는데  이러면 죽는 것인데 성경은 그게 산다고 하니 성경 지식을 따라 가야 되겠느냐  내 지식을 따라 가야겠느냐? 아무리 이러면 죽기는 죽습니다. 내가 아는 게 바로  알았지 주님이 성경 말씀에 말한 거 바로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과 다른사람 돼 버렸소. 나 보기에는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죽는 일이지마는  주님이 이것이 사는 일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사는일로 인식하고 사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면 주님과 나와 그 지식이 같아졌습니다.

 이래서 행동도 주님은 행하시는데 나는 안행하면 주님은 거기에 대해서는  행동을 안하시는데 나는 행동을 하면 주님은 파괴를 하는데 나는 건설을 하면  주님은 건설하는데 나는 파괴하면 주님하고 나하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맺어진 그 결과가 주님과 나와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이요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주시는 이 현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니 우리의  구원은 나와 당신과 다른 점에서 당신을 나 따라오라고 할 것이 아니고 당신이  양보하고 나도 양보하고 이렇게 서로 화합할 것이 아니라 당신은 영원 불변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당신과 나와 다르면 당신은 변하지 안하시니 내가 변해서  당신과 같이 되어져야겠고 그러면 이 현실에서 나와 당신과 다른 점을 내가  변하여 당신과 같이 되어져야겠고 내 지식과 당신 지식이 달랐을 때에 이  현실에서 내 지식 당신 지식이 다를 때에 이 현실이 지나가기 전에 이 현실에서  내 지식을 부인하고 당신의 지식을 따라서 당신 지식과 내 지식에 하나가 돼야  되겠고 행동도 이렇게 이 현실에 나는 이라 행동할라고 당신은 저리 행동할라 할  때에 내가 당신따라 오라 해야 안되는 것이니까 멸망이니까 내 행동을 버리고  당신의 행동을 따라서 행동하여,  이러니까 이루어 놓은 결실이 결과의 열매가 당신의 열매와 내 열매가 하나되어  사람이 같이 되고 지식이 같이 되고 행동이 같이 되고 결실이 같이 되어 지식이  같이 되고 행동이 같이 되고 결실이 같이 되어 당신은 창조주요 나는  피조물이지마는 당신과 나와같은 자 되어지는 이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당신이 찾고 있습니다. 이걸 찾습니다. 이 자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그에게 상속시켜 줍니다. 이는 조물주가 아니지마는서도 당신과 같이 준비 세상  훈련 세상에서 방해물들이 있는 세상에서도 당신과 함께 동하고 정했기 때문에  이는 마귀를 영원히 무저갱에서 가둬놓은 그 영원한 세계에서는 당신과 함께  동하고 정할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당신의 소원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인고로 완전히 만물에게 이루어지니 당신이 하나, 교회가 하나, 한 가지기  때문에 만물을 교회위에 세워 복과 생명의 기관으로 하나님의 충만을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이 생명과 복의 기관으로 세우시는 것이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에서는 어떤 것을 우리가 작용해야 되느냐? 터가 되는 둘은  요동치 안해야 되겠고 터가 되는 둘은 요동치 안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 건설에  있어서는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는 이  바라봄을 요동치 안해서 절망하지 말고 낙망하지 말고 이 소망을 굳게 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이 현실은 주님과 나와의 어떤 다른 점을 고치라고 주시는 것인가?  이 현실은 당신과 나와의 어떤 다른 점을 고치라고 주시는 것인가? 이 현실은  당신과 나와 다른 점이 무엇을 지금 나타내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당신과 나와  사람이 다른 것을 고치는 이 현실인지 결과 다른 것을 고치는 현실인지 비판과  평가가 다른 것을 고치는 현실인지 소원이 다른 것을 고치는 현실인지  희로애락이 다른 것을 고치는 현실인지 뭣을 고치라고 주시는 현실인지 이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서 바로 깨닫는 것 요것을 생각해서 바로 깨닫는 것, 바로  깨달으면 고치라면 고치고 시작하라면 시작하고 버리라면 버리고 계속하라면  계속하고 순종하라면 순종하고 이렇게 해야 되겠으니 이 현실에서는 나 고치라면  어떤 면을 고치라는 것인지 어떤 면을 시작하라는 것인지 어떤 면이 너무  지나쳤다고 이것을 조절하라는 것인지 어떤 것을 새로 깨달을라고 하는 것인지  어떤 회개를 하라고 하는 것인지 (참 조는 분들 안타깝습니다) 이거 아니면  구원은 헛일입니다.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일입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요. 여러분들이 참 보배를 떨굽니다. 돈 없어도 좋소. 권세 없어도  좋소. 무식해도 좋소. 인간에게 천대받아도 좋소. 터가 되는 요 두 가지 굳게  잡고 현실은 나위해 피흘려 구속해 주신 주님이 만드신 현실이다 이는 내 구원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주님과 나와의 사람 다른 것을 고쳐서  주님과 나와의 하나되는 이것이든지 주님과 나와의 지식이 다른데에서 하나되게  하는 이것이든지 주님과 나와의 행동이 다른 것을 고쳐 하나되게 하는 것이든지  희로애락이 주님과 나와 다른 것을 하나되게 하는 것인지 명령인지 순종인지  고치라는 것인지 더하라는 것인지 덜하라는 것인지 계속하라는 것인지 무엇인지  요것만이 내 할 일이라는 것을 굳게 잡고 요것만이 자기 할 일이라는 것을 굳게  잡고 요것을 위하여 주님과 자기와 주님의 희로애락과 자기 희로애락과 주님의  행위와 자기 행위와 하나되어 주님의 결과와 내 결과와 하나되는 요 일을 자기  일로 삼고 나간다면 이 사람은 천하에 천상 천하에 예수님 다음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존귀한 사람 하늘에 천군 천사 있지마는서도 이  사람 만치 존귀한 사람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완성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당신이 다른 것을 같이 하고 갔소.

 이러기 때문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이 일을 완성하고 요한복음  14장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말씀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 말씀했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은 점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다른  점을 같이 합니다. 내가 아버지와 다른 점을 같이 해서 아버지와 다른 점을  완전히 승리해서 아버지와 하나되는 꼭같은 이 일을 성공했으므로 아버지 보좌에  내가 함께 앉는 거와같이 너희들이 나와 다른 점을 고쳐 나와 다른 점을 다  이것을 정복해서 나와 꼭같이 되면 내 보좌에 너희들도 함께 앉으리라 요것을  자기 일로 알고 해 나가면 요것을 자기 일로 알고 해 나가면 웃으라 할 때에  웃고 참으라 할 때에 참고 미워할 때에 미워하고 사랑하라 할 때에 사랑하고  봉사하라 할 때에 봉사하고 정직하라 할 때에 정직하고 이렇게 해 놓으면  의식주는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아는고로 많게도 적게도 하지 안할  것이고 조절해서 적절하게 할 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없이 일만 합니다.

요것만 하라하는 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요대로 하면 당신이 어떨 때에는 그  회사에서 제일 높은 자라도 앉혀 줄 것이고 어떨 때는 제일 매장도 시켜 줄  것이고 당장에 사장도 될 수 있을 것이고 사장됐던 것을 당장에 저 말단에 아주  천물로 돌리게도 해 줄 것이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어떻게 해도 내 현실은  당신의 선물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요동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이 어떤고 여기에서 나는 당신과 나와 하나되는 것, 당신과  나와의 지혜 지식이 하나되는 것, 행동과 능력이 하나되는 것 이루어 놓은  결실이 하나되는 것 이것만이 나 할 일인 줄 압니다. 하여 이와같이만 하는  사람이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의 구원에 필요하면 당장에 일확  무식자를 세계에 강대국에 당장에 왕으로 세울 수 있어 세워도 아무도 대항할  인간 없어 이분이 할 때는 대항 못해 인덕을 떠나서 이분이 하면 땅에 있는  인간들은 항의를 못해 이 사람을 요구합니다. 이 사람을 찾습니다. 이 사람을  소위 세상을 이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을 자기를 이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순정하여 그와 하나되는 이  구원만을 소망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걸음입니다. 이것이 구속받은 자의  가치입니다. 구속받은 자의 가치요 이것이 실력이요 돈은 구속받은 자의 가치가  아니라 그것은 다 썩을 것이라 권세도 가치가 아니라 세상에 인간의 머리에 나온  지식도 가치가 아니라 피조물 어떤 것으로도 가치가 아니라 이는 당신과 같이  되는 것, 당신같이 되는 것, 당신같은 사람 당신같은 실력 당신같은 행위  당신같은 결과 당신과 같이 하나님에게 피조물들에게 당신같이 위에 있는  하나님에게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우리가 되는 것이 인생의 가치요 실력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이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믿는자의 흉년은 어디냐? 믿는자의 흉년은 어디냐? 세상 것으로  부요한 것이 흉년입니다. 왜? 부자로서는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믿는자의 풍년은 어딘가?  믿는자의 풍년은 변동많은 세계요 변동많은 세계요 질서가 혼란된 세계요 선악이  구별되고 진가가 구별되어 진가가 혼합되고 선악이 혼합되어 사이비한 것으로  가득차서 어서 빨리 다 투자될 수 있어 투자 안하고는 견딜 수 없어 빨리  투자되어 하나도 허비도 낭비도 없이 솔빡 녹아지는 소금으로 완전히 녹아지고  십자가로 완전히 다해 쓰여지는 그 자리가 풍년입니다. 그 자리가 풍년이요.

 이래서 미국을 가르쳐서 흉년된 곳이라 신앙흉년의 곳이라 말합니다. 한국을  신앙의 풍년진 곳이라 말합니다. 월남과 크메르는 신앙의 풍년이 드는 곳인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풍년을 감당 못해서 흉년보다 더 흉년으로 다 통과해 보고  말았으니 불싸아고 가련합니다. 거기에는 옳은 복음이 없었습니다. 진리가  없었습니다. 보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천주교가 거기에서는  주권을 잡았었습니다.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는 짜게 못합니다.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월남과 크메르에서도 이 복음  가졌으면 월남의 전부는 그 사람 위한 것이 되었지 그 사람의 것이 되었지  영원토록 그 사람을 존귀케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나라는 생겼고 공산주의는  생겼고 영원히 공산주의와 그 모든 것은 그 나라를 위해서 찬양을 해야지 그  사람을 위해서 찬양을 해야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져야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유익이  됩니다. 이제 당하는 세상과 장차 받을 영광은 비교가 안됩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따라합시다.

 십자가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 이를 위해서 살지 않는자는  십자가의 다 원수입니다. 육체로 살아 자기 마음 자기 몸뚱이 하고저 하는대로  살아 썩어진 것을 구하고 썩어진 것을 거두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몸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으로 산자는 영생을 거두느니라.

 따라합시다.

 십자가의 군병, 십자가의 장병, 승리한 십자가의 장병, 승리한 십자가의 장병,  불원간에 해와같이 빛납니다. 불원간에 해와같이 빛납니다. 우리는 그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세상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길가는 행인입니다. 우리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잠깐동안 세상에서 영원을 위해서 온갖 시련의 훈련  받고 여기에서 하나님이신 만왕이신 주와의 영원한 관계를 맺고 떠날  우리들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땅의 것을 탐하지 맙시다. 땅의 것을 소망하지 맙시다.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 한 분뿐이십니다. 땅위에 번들 번들한 것들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홍포입은 부자가 물 한 방울의 요청이 응해지지 안했습니다. 그것은 지옥의 한  실물을 우리에게 갖다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멀리 보는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성경으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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