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경

 

1989. 5. 28. 주일오후.

 

본문: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종맡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위함이라

 

 오전에는 로마서 11장 끝절을 봉독하고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은 꼭 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마는 성경을 보고 깨닫는 것은 각각 다릅니다. 그 깨달음을  가리켜서 교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교리라 말은 예수교의 이치라하는 말입니다.

예수교의 이치.

 그러면 우리가 예수교를 믿는데 예수교의 이치가 어떠하냐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교리가 어떠하냐? 또 신조라 말은 우리가 어떻게 믿나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신조라고 말합니다. 또 이 행정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깨닫고 믿는데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서로 합하여서 신앙생활할 때에 그 단체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그 단체의 조직은 어떠하며, 또 권면과 행위는 어떠하며, 또 잘못된  것을 치리하는 그런 치리는 어떠하냐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행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오전에는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알고 있을 것은 세 가지를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교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는 것도  많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또 우리가 머물고 있는 물질계  우주보다도 영계는 더 크고 오묘한 광대한 세계입니다. 이래서 뭐 어떤 세계가  있고 어떤 종류의 것들이 있든지간에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에게서 나왔다 하는  것을 우리가 요렇게 지식하고 있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일어나는 운동도 움직임도, 또 크고 작은 모든 존재도, 공중에 바람부는 것이나  뭐 또 춘하추동이 지나가는 사시가 지나가는 것이나, 악령이 이런 저런 역사를  하는 것이나, 뭐 그런 것 무엇이든지 그것이 다 주님 한 분에게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나왔다 하는 요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하는 이 사실을 믿을라고 할 때에 믿기  쉬운 것도 있고 믿을라고 하면 생명을 내대야 '이렇다'하는 걸 증거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개 순교한 사람들은 옳고 바른 그대로 행하려고  할 때에 그 행함이 힘이 들어서 생명 바친 사람들 많지 못합니다. 다 옳고 바른  것을 행하려고 할 때에 그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아서 그때  양보하지 안하고 그대로 계속하려고 하니까 그 세력들에게 죽임을 당한 그것이  대부분의 다 순교들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잡는 데 대해서 제가 언제 그렇게 증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결사적으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 첫째 뭐이냐? 첫째는 올바른 성경을 내가 가지도록 이 일을 위해서  전심전력과 생명을 기울여야 된다 하는 그런 증거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바른 성경을 가지려고 할 때 지금은 뭐 '성경 돈 주고 사면 되는데' 이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어느 한 때는 성경을 사다가 죽은 사람 많이 있습니다. 여러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또 성경을 읽지 말라는 그 성구를 읽다가서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행할라 하다가 행할라 한다고 죽임 당한 사람도 많았지마는 이렇게 올바른  성경을 우리가 구해야 예수 믿는 올바른 이치를 알지 잘못된 성경 구해 놓으면  예수 믿는 바른 이치를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귀란 놈은 쉬지 않고  이 성경을 변동시킬라고 자꾸 애를 씁니다.

 이래서 원본 성경은 한 권뿐입니다. 원본 성경은 신구약 육십육 권으로 된  하나뿐인데 그것을 그 원본 성경의 말대로 원어로 사본한 것은 많이 있습니다.

또 원어로 사본한 것, 원본 성경을 보고 베낀 그 사본 성경들은 많이 있습니다.

또 그 사본 성경을 구약은 히브리, 신약은 헬라어인데 이것을 각 나라 방언으로  이렇게 번역해 놓은 것은 더 많습니다. 이러니까 원본 성경이 사본 성경이 될  때에 다소 거기에 하오가 더러 있게 되고 또 이 원어 성경을, 베낀 것도 원어는  원어로 있기 때문에. 원어 성경 그것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할 때에 또 번역이  잘못돼 가지고서 약간 또 틀리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랬는데 이번에 천주교와 개혁교가 갈라질 때에 수십만 명이 이 개혁파 교리를  가지고 이대로 예수 믿을라 하다가 죽임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뭐 수십만 명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싸워서 겨우 세워 놓은 이 교리와  신조를 그 자손된 오늘 교회들은 '뭐 이거나 저거나 다 같지 그렇게 뭐 까다롭게  편벽되게 할 게 뭐이냐?' 이래 가지고 번역할 때에 천주교하고 이 개혁교하고  합동번역을 하자고 이래 가지고 합동번역이 돼서 합동 번역된 그 성경은  엉망입니다.

 그래 이 합동번역하는 이것을 반대를 하는 사람 가운데에 우리 한 국에서는  제일 반대한 사람이, 그거 내가 이름을 또 잊어버렸는데. 하종택. 하종택  목사님이 문서 반대는 혼자 했습니다. 세계에 반대한 나라들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그분 하나가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마는 다른 사람들이 다 뭐 아주  코똥끼고 그까짓 거 뭐 말같잖이 들어서 아무 일 없이 그렇게 합동번역을 해  나왔습니다.

 또 그 반대하는 사람들도 보니까 이렇게 다 모두 그라고 있는 것을 뭐 그래  봐야 소옹 없으니까 그저 만나는 대로 반대를 하고 우리 서 부교회서도 성서공회  사람들이 여기 서부교회 오면은 재미를 봅니다. 아주 수입을 많이 하고 가는데  그때 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앞으로 그 성서공회에 거기에  대해서 협력하는 일은 그만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네들이 합동번역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합동 번역은 그것은 순전히 마귀의 역사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줄 알기 때문에 거기에 협력하는 동참을 안 하겠습니다.' 그분에게 그렇게 제가  말했습니다. 말하고 '이제까지는 거기 회원돼서 내치 그랬지마는 지금부터는  회원된 뭐 미납된 돈도 본인들이 어떻게 하지만 나는 거기 독촉하거나 나는 그거  다 완납의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그라고 그후는 손을 끊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성경을 이걸 아무래도 우리가 가져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 성경을 가질라고 애를 쓰고 또 지금 합동 번역에는  그걸 고쳐서 이래, 고쳐 가지고 이래 가질라고서 애를 씁니다. 첫째는 성경을  올바른 성경을 가져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있고 또 두번째는 아무리  성경을 바로 가진다 할지라도 바른 깨달음을 가지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져야 신앙생활을 바로 하게 됩니다.

 칼빈 선생이 주후 천오백 년경에 그때에 출생하신 분인데 그분은 지금으로부터  사오백 년 전에 그 시대에는 칼빈 선생이 깨달은 그 교리와 신조 가지고 능히 그  시대를 다 감당을 하고 승리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벌써 그후 사오백 년이  지내가는 가운데에 세상도 많이 변해졌고 또 세상 지식도 땀이 변해졌고 악령의  역사도 많이 성장되고 연구되어서 그 교리와 신조 가지고는 지금은 안 됩니다.

지금 또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리와 신조를 하나님께서 아마 이 지방 저  지역에 다 뜨문뜨문 하나님의 종들을 둬 가지고 깨닫게 해서 그렇게 다 새로운  또 교리를 연구해서 그래 지금 모두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는 안 돼서 새로운 또 교리와 신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내나 그 성경 깨달음이지 뭐 성경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의 새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신앙생활 할라 하니까 묵은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과 대립이 돼 가지고서 그들과 대립이 돼서  그들은 그래 해야 된다 하고 또 이래 해야 되고 그래서 거기에서 많은 시비가 나  가지고 저도 거기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교리와 신조로 쫓겨난 것은 제가  쫓겨났고 그 행정에 대해서 행정이 틀렸다해서 행정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그때에  이인제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그런 분들이 행정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 하려고 하면은 첫째 올바른 이 성경을 우리 손에 넣어야  하고 둘째로는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또 우리 손에 넣어야 합니다. 이래서 한  가지 에을 들면은 과거 교리와 신조는 '구원이면 하나다' 이렇게 하고서 했는데  구원이 하나를 가지고는 성경이 아무래도 해석이 되어지지 안하고 성경에는  보더까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쑴이 있는데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을 기본구원애다가 대 놓으니까 기본구윈이 박살이 나 버리고 안  됩니다. 또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옳 건설구원에다가 대 놓으니까 건설구원에  힘쓰고 애쓸 필요가 없이 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이러니까  이걸 밝히지 않고는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 이래 가지고서 시비 생기는 것이  그건 것입니다.

 또 행정으로 말하면 '어짜든지 세례받교 목사 안수받은 목사 장로들이 모여  가지고서 외논을 해서 결정한 것이면 그것은 다 올바른 것이니 그대로 해야  된다.' 이렇게 하는 주장들이 있고 '아무리 목사 장로들이 모여서 의논해서  합의된 일이라도 성경에 틀린 것이 있다. 성경에 틀린 것이 있으면 그런 것은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 된다.' 하는 또 그건 행정들이 있어 가지고서 행정과  행정이 서로 대립이 된 것입니다.

 주후 삼백 년경부터 사도 교회가, 요새 그래서 그리우니까 인제 사도 교회라  사도 신앙 교회라, 사도 신앙 교회라 하는 그런 교회가 요새 뭐 생겨서 또  야단이랍니다. 이런데 사도들이 믿는 그 신앙 교회가 로마 교회였었는데 아주  정통으로 믿었였는데 로마 교회가 차차 차차 저 완전히 우상 종교인 천주교로  저렇게 그만 완전히 변질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변질된 그 순서가 어떻게 그리 돼 그량 됐느냐? 그때에 장립받은 모든  교훈 장로돌 또 은사 위치에 었는 사람들 또 그때에 신부라는 말도 이래  났었는데 그것도 정치적으로 큰 싸움이 났지마는 교권들이 들어서 이렇게 해야  된다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다 죽어 버리고 신부라는 그 제도가 생겨져  가지고서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때에 장립받은 사람들 은사 위치에 있는 그 사람들이 단합해서 결의하면  그것이 막바로 성경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서 다수 가결을 해 가지고  나감으로써 아주 성경과 정반대인 천주교가 됐던 것입니다. 천주교가 됐을 때에  '어떻게 이렇게 반대를 하느냐?' '이것은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래 됐습니다. '성경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면 성경도 사함이 기록한 것이 아니냐? 그러면 사람이 기록한  것이니까 믿는 은해받은 사람들이 협의해 가지고 결정지운 것이면 성경과 다름이  없지 않느냐?' 하는 이런 시비가 생겨졌습니다. '그럴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 천주교에서 제일 은혜 많이 받고 은혜 있고 권위 있고 제일  진리를 잘 깨달은 사람이 교황인데 교황이 그러면 깨닫는 것과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같지 않느냐? 이래서 교황이 깨닫고 주장하는 것은 이건 성경과 같이  정확 무오하다.' 하는 이것을 주장을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도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성경은 요한계시록 22장에 끝을 맺어 놨기 때문에 그뒤에는 다시  성경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이것으로서 완료가 됐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교황이 말하는 것이라도 그거는 하나의 사람이 깨달은 교리지 성경은 될 수  없다.' 하는 거기에서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보수하려고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오늘도 지금은 목사 장로 이 노회 총회원들이 결정했으면 그거는 다 성경이야  이렇게 하든지 저렇든지 말든지 그들이 결정한 것이면 그거는 다 완전이다  이렇게 하는 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과 세계 교회들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아무리 목사 장로 수백 명 수천 명이 의논을 해서 다 결의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이 정죄하지 아니할 때에는 혼자 말하는 것보다  여럿이 말하면 그게 좋다. 다수가 좋다. 그러나 성경이 이거는 틀렸다 할 때에는  그것은 아무리 뭐 몇만 명 몇천 명이 말해도 그거는 틀린 것이니까 성경이  정죄할 때는 그거는 정죄를 받아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이 정죄하지 아니하는 한 또 성경이 인정하는 한계 안에서는  하나보다 둘이 좋고 둘보다 서이 좋고 소수보다 다수가 좋은 것이지마는 그것이  성경대로 완전이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결의는 성경에다  결의를 세워야 된다. 성경대로 결의해야 된다.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든지 적은  사람들이든지 결의할 때에 '이게 성경대로냐? 성경이 정죄하지를 못하고 성경에  틀렸다고 할 것이 없다.' 이럴 때는 그게 서 나갑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거  틀렸다' 하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으면 그것을 버려야 되고 성경대로 해야 되는데  거기에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앞으로도 이것 때문에 큰 싸움이 일어나서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믿는  것이 지금은 천하게 예사로 생각하지마는 이것을 지킬라고 하면 앞으로  블신자에게 뭐 죽임 당하는 게 아니고 믿는 사람들에게 죽임당할 사람들이 뭐 만  명이고 십만 명이고 몇십만 명이 될란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이만치 교리와  신조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우리 생명보다 중하냐 하면은  그것을 보수하려고 하면은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둘째로 두고 그걸 첫째로  삼아야 보수할 수가 있지 생명을 첫째로 삼고 그걸 둘째로 삼으면은 이걸 보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다가 우리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바칠 그것이 우리 교리와 신조입니다.

 이런데 오늘 교리와 신조는 그렇게 중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안하는 것은 '뭐 교리와 신조를 그렇게 하다가 하나 반대하면 형편되는 대로  좋은 대로 이리 하면 이라고 저라면 저라지 꼭 그것을 그래야 된다고서 고수할제  뭐 있느냐?' 이러니까 전부 창기적인 신앙입니다. 전부 창기적인 신앙이오.

이래서, 이 설교록이 나갈 터인데 이거 뭐 다 욕한다고 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깨달은 교리와 신조 그것 때문에 어려움이 오면은 그만 형편에 따라서  교리 신조는 집어던져 버리고 자기 좋도록 하는 그것은 창기적인 신앙이라, 잡년  신앙이라! 잡놈 신앙이라! 이 잡신앙이라 하는 것을 지금 제가 크게 여기서  고함지르는데 이게 뭐 설교록이 세계에 다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행해야 되고 또 올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모든 단체들이 움직여  나가는 이 행정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일들이 여러가지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이걸 알고 교리와 신조의 가치와 보수를 해야 되지 이거 뭐 사람들이  아무나따나, 말쟁이가 이래도 말하고 저래도 말하고 말 하고 싶은 대로 말해  가지고서 해 놓은 그런 말 같으면 그건 말은 뭐 전부 정죄를 다 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왜 죽입니까? 천주교 때도 많이 죽였고 앞으로도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죽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식 신자들이 진실한 신자를 죽였지  진실한 신자들이 이방인에게 죽은 일이 없습니다. 다 외식 신자들에게  죽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네들 교리와 신조와 맞지 않는 교리와 신조를 양보해서  저거와 타협해서 같이 하지 안하고 요것을 그대로 지킬라고 함으로 다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뚜드려 맞고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 그 사람들 하자 하는 대로 안 할라 하는 데에서 그것도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꼭 같은 성질의 어려움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올바른 교리와 신조 이것을 그대로 행동하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러면 올바른 교리와 신조가 어데 있느냐? 그것은 신구약 성경을  바로 깨달은 그것이 바른 교리 신조요 잘못 깨달은 것이 삐뚤어진 교리 신조이기  때문에 이 교리 신조가 올바른 성경을 가지는 그 다음으로는 중요합니다.

 또 셋째로는 우리가 올바른 교리와 신조와 행정대로 실행하는 것을 우리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쳐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에는 다 자기 소유 몸과  생명을 바쳐서 이 세 가지는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 가치가 더 크다고  봐야 되지 크다고 보지 안하는 사람은 이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교리와 신조가 뭐인데? 올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사는 것은  올바른 예수 믿는 이치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올바른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성경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둘째로는  올바른 교리 신조 행정을 가지는 것이 둘째로 중요하고, 셋째로는 이대로  단행하고 요대로 지켜 사는 것이 그게 셋째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 하여지고'  그러면 주 안에서 강건해야 되고 또 주님의 힘으로 강건해야 됩니다. 주님의  힘으로 강건해야 되고 주 안에서 강건해야 돼. 주 밖에는 사망뿐입니다. 주  안에서 강건해야, 주 안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또 그의 힘으로 가지고  강건해야지 그의 힘 아닌 그까짓 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는 홍수 심판이 왔을 때에 그때에는 무슨 능력이 홍수 심판을  이기게 됐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하는 능력이 홍수  심판을 이겼던 것입니다. 지금 오늘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그 힘은  무슨 힘인가? 그 힘은 예수 안에 있는 힘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힘인데 예수  안에 있는 힘은 무슨 힘입니까? 이것을 달리 생각해 가지고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 힘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힘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  사죄 칭의 화친 또 부활로 한 영생 이 네 가지 사활의 대속인데 이 사활의  대속은 나타나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사활의 대속을 베푸셨고 또 그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들에게 전가해서 우리 것이 되어지도록 역사하는  이는 성령이라, 또 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경영하신 이는 성부라 이렇게  대개 말들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삼위일체가 같이  박혔고 또 부활할 때도 같이 부활하고 사활의 대속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꼭 같이 그 대속을 베푸신, 삼위 일체가 역사해서 완성을 이루어 놓은 것이  사활의 대속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 안에서와' 하는 그말은 예수님이 그 사활의 대속의 표현이요  외부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성령이 계시고 성부가 계셨습니다. 이것을 '언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지 무슨 성령이 거기에 관계 있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지마는 다른 성경에 에베소 1장에도 보면 그 힘의 능력이 들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도 하고 또 부활하게도 했다고 했습니다.

 이래서 '주 안에서 그 힘의 강력이라' 말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힘으로  네가 강해져라 그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힘으로 강해져라. 예수님의 대속의  힘으로 강해져라.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라면은 자기 몸에 나온 데가 없이 전부 폭 싸서 그렇게 전쟁하는 데에  원수의 화살을 막고 대적을 막게 하는 그것이 갑옷입니다. 갑주입니다.

갑주인데,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뺑뺑 둘러싸서 이렇게 보호하는  게 뭐이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죄로 죄를 들어을 틈이 없이 막고, 또 칭의로서 하나님의 공심판이 해하지  못하도록 막고 화친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서 완전한 생명이 들어서 모든  것을 다 능가하도록 하고, 또 부활하심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도록 이렇게 하는 이것만이 모든 온갖 죄와 마귀와 모든 사망을 다  막습니다. 이거는 사망도 다 막고 죄도 막고, 마귀도 막고, 모든 것을 다 막고  하나님으로 하나가 돼 가지고서 완전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데 '우리의 씨름은 혈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요 말은 우리가 싸우는  목적이 어데 있느냐? 또 우리가 싸우는 능력이 어데 있느냐? 싸우는 능력도  목적도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말은 혈육의 것이 아니라. 혈육의 것이  아니라 말은 넓게 말하면은 피조물의 것이 아니라 물질계의 것이 아니라 물질계  이까짓 것 보고 우리가 싸우는 것 아닙니다. 요거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서 지난  금요일날 밤에도 했는데, 물질계 이것 보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치로 삼기를 이 동양을 점령한다 서양을 점령한다, 뭐 세계 강대국을 점령한다  그런 것을 우리가 가치로 삼아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우주를 차지한다  해도 그것 가지고서 가치로 삼아서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소망으로 그런 목적으로 그런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 가치를 거기에 두고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싸우는 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그분에게 가치를 두고 또 그분의 모든 자체와 능력과 또 그분의  그 아름다움과 또 그분의 모든 이미 영원히 우리에게 주실라고 약속 가운데에서  가지시고 있는 하나님의 충만 그것을 우리가 소망해서 그거 얻을라고 우리가  싸우는 싸움인 것입니다.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말은 물질의 것을  보고 싸우고 그거 얻을라고 싸우고 그거 성공하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 이것을 우리가 완전히 자기 것을 삼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

 그러면 자기 것을 삼는 것은 우리의 영은 자기 것을 삼아 가지고 있는데 영은  삼아 가지고 있지마는 우리의 이 심신은 자기 것을 삼아 있지 못하는데 영은 다  꼭 같이 자기 것 삼았기 때문에 같지마는 이 심신은 자기 것을 삼은 것이  억만분의 일을 삼은 것도 있고 억만분의 일도 삼지 못한 것 있고 백분의 일 삼은  것도 있고 그걸 전부를 다 자기 것을 삼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 차이가  하늘나라에서 모든 형체가 땅에 있는 모래알도 형체요 하늘에 있는 태양도 하나  형체인데 한 태양과 한 모래알의 그 영광과 가치가 얼마나 다르냐?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들이 이렇게 차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활의 대속인 지극히 큰 이 구원을 가질라고  하니까 우리가 혈과 육에 대해서 그걸 가치로 삼아서 그런 것으로 싸운다면 뭐  하나 죽이고 나 하나 죽든지 그래도 뭣을 하지마는 우리는 순전히 그것을 가치로  취득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총칼이나 원자탄이나 수소탄이나 그까짓 걸 가지고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영원 자존자이신 완전 능력, 영원 불변 능력, 연원한  능력, 전부 이 멸망을 초월한 그 완전성 이상의 차원의 것들을 가지고서, 이  피조물에게 있는 게 아니라 창조주 완전자에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 힘을  삼아 가지고 또 그분을 우리가 얻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우리 싸움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래 싸울라고 하니까 이것을 우리들로 하여금 가질라고 하고 또 입고  이 사람으로 살라고 하고 하니까 못 가지도록 하고 또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누가 못 하게 하느냐 하면은 정사들이 못 하게 합니다. 정사. 정사는 가정에서는  가정 정사에서 이대로 살라 하니까 가정 정사에서 못 살게 합니다. 또 회사서도  못 살게 합니다. 사회서도 못 살게 합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들을 총칭해서  정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라고 할 때에 이 정사들이 이렇게 살지 못하도록 반대를 하고  또 모든 그 권세들이 살지 못하게 반대를 하고 또 어두움에서 세상을 주관하는,  이 모든 어두움의 세상 주관이라 하는 것은 삐뚤어진 세력들을 말합니다.

어두움에서 세상 주관자들이라 말은 하나님의 완전법에 비추어서 뻐뚤어진 그런  거 가지고서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그런 것들과 마찰이 됩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영으로 더불어 마찰이 됩니다.

 그러면 이 마찰이 되는데, 마찰되는데 이 마찰이 뭣 때문에 마찰이 되느냐?  마찰이 되는데 마찰이 뭣 때문에 마찰이 되느냐? 올바른 교리와 신조와 행정  때문에 마찰됩니다. 행정이 달라서 마찰되고 믿는 것이 달라서 마찰되고 깨달은  이치가 달라서 마찰이 됩니다. 그러면 마찰이 되면은 누구와 마찰이 되느냐?  여기 네 가지를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네 가지가 마찰이 돼 가지고 이와같이  대적하고 싸우는데 이 대적을 이기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이기느냐? 요거 지금  내가 두 가지를 말합니다. 대적을 이기는 데는 어떻게 해야 이기느냐? 13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래야 악한 날에 모든  것을 대적하고 이기고 남는다. 악한 날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악한 날이라  말은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을 가리켜서 악한 날이라 말합니다.

 이 악에 대해서 정의를 우리 총공회 교리 신조에서 악의 정의를 말한 것은  오늘까지 세계 교회가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와 신조가  맞습니다. 이것을 따라오지 안하고 자기네들 하던 게 좋다고 반대하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해석에 중요한 것은 해석을 다 못 합니다. 해석이 다 삐뚤어지고  꺼꾸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이십세기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지 백 목사 그까짓 거야 통통  무식꾼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공부를 못 하게 한 거라. 내가 만일 뭐  대학이나 몇 개 졸업했으면 유식하니 그렇다 하지마는 나는 공부를 안 했어.

공부를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안 했어요. 안 했는데 이래 놓으니까 내가 뭐 알아  한 것이요?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이래 말했는데 이단이라고 시비가  많지마는 결국은 승리입니다. 이단이라 한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지금, 지금은  항복은 안 합니다. 안 하고 있지마는 지금 항복하면 심판 안 받지마는 지금 항복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심봔을 받아야 합니다.

 '악한 날에' 악한 날이라 말은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기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피조물 중심으로 위주로 하고 있는 이 날이라 말이오.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  이것이 전부 온 세계가 다 돼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이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로 되어 있는 여기에 이기는 법은 뭐입니까? 자기  부인하는 법입니다. 간단합니다. 자기 부인하는 법.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를 부인하면 어떻게 부인합니까, 자기를 부인하면? 예수님이 대형했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의 종이요, 주님의 성전이요,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심부름꾼, 주님의 제사장이요, 주님의 선지자요, 주님의  왕이요, 이러니까 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자기를 부인해야 대속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신갑주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가리켜서  전신갑주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기도해야 알아지지.

 그래서 지금 알기 쉽게 그저 말할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교리 신조라 하면은  별 유식한 사람들이나 말하는 것이지 우리 일반 교인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일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데 그 교리가 아닌 신앙생활은 다 마귀입니다.

알겠습니까? 교리에 맞아야 되고 신조에 맞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행정에  맞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 전신앙생활은 어떻게 신앙생활 하겠느냐? 성경을 보고 깨달은  교리와 신조대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사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이요 삐뚤어진 교리와 신조대로 사는 것은 삐뚤어진 신앙생활이다. 또  성경 정치대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성경에 위반된 정치대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에 대구 가 가지고 그것을 비로소 선포를 했습니다. 그것을 나는  많이 여러 수십 년을 생각하고 있지마는 그걸 말하면 이 세상 세력이 왕창  달라들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만 까뭉캐져서, 뭉캐 질까 싶어서 그걸 말을  못하고 이래 있었는데 이제는 이 교리 신조가 세계에 나가 있기 때문에 뭉캐도  내가 뭉캐져도 하나님이 또 당신이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담대히  말했습니다.

 '우리 총공회 교리와 신조 행정은 이제까지에 내려온 장로교와 다른 게 있다.

장로교와 꼭 같은데 장로교에 다른 거 그 몇 가지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서 싸워  가지고 갈라지게 됐다. 이 다른 이것이 이십세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교리와 신조를 똑똑히 알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교리 신조라는 여기 대한 지식을 못 가지고 이것을  무슨 신앙생활과 교리 신조 생활이라 하는 것이 딴것인 줄 아는데 아니오. 교리  신조대로 그대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올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살면 올바른 신앙생활이 된 것이고 삐뚤어진 교리와 신조대로 살면 삐뚤어진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고 올바른 성경 행정대로 하면은 옳은 신앙생활이요  삐뚤어진 행정대로 하면은 그것이 삐뚤어진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는 교리 신조라는 데에 이제는 좀 한걸음 나아가서 인식을 가지고  '보자, 오늘 설교 듣는 말씀에는 이 설교에는 교리가 뭐꼬? 이 설교에는 신조가  뭐꼬? 이 설교에는 행정이 뭐꼬?' 그렇게 따져서 '여기에는 이 교리가 이것이  교리다. 이런 교리다. 또 이런 신조다. 이런 행정이다.'  이래 가지고 그걸 거머쥐고 그대로 지킬라고 하니까 대적이 오기를 그렇게  지킬라고 하니까 몇 가지 종류의 대적이 온다고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종류의 대적이 온다고 말랬습니까? 녜, 네 가지 종류의 대적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 네 가지 종류의 대적 외에 빠진 게 있습니까? 빠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 솔빡 다 들었습니다. 가정에서 싸우는 것도 또 뭐 당회에서  싸우는 것도 세계에 싸우는 것도 전부 종류라 하는 것은 요 네 가지 속에 다  들었습니다.

 이런데, 그래서 오전에증거한 말씀을 계속 좀 더 증거할라다가 그보다 이게 더  급한 것 같아서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데 여러분들이 교리 신조 행정 여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서 여기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신앙생활  할래?' '나는 교리대로 신조대로 행대로 나는 그렇게 신앙생활 할란다.' '그러면  네 교리는 어떠하냐?' '내 교리는 이러하다' '네 신조는 어떠하냐?' '내 신조는  이러하다' '네 행정은 어찌 하나? 네 정치는 어찌 하나?' '내 행정은 이러하다'  이렇게 이것을 또박또박 따져 가지고서 이것은 '이 설교에는 이런 교리다 저런  신조다'  오전 설교한 교리는 거기에 몇 가지 교리가 있었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이거 교리요 또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있다 요게 또  우리 교리요, 또 '그것이 마지막으로는 뭐 간단하게 그 임시 임시로 끝이  맺어지든지 마지막으로 종결로 맺어 지든지 끝이 맺어질 때에는 결국은 다  주님에게 가 가지고 끝이 맺어진다. 결말은 거기에서 지운다. 결론은 거기에서  지운다. 마지막에 종결 판결은 거기에서 난다. 하는 그것이 우리가 믿는 우리의  교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고, 신조는 어떠하냐?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몇에 대해서 요렇게 세 가지를 우리가 깨닫고  믿으면서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모든 데 대해서 감사해야 된다. 감사해야 된다.

왜? 그 하나도 내게 필요 없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전지  전능의 하나님, 나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을 믿고 보니 그분의 전지 전능이 하신 일이니까 나는  안심하고 좋게 해 주는 줄 알고 범사에 감사해야 되겠다 그거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뭐이냐? 그 현실이 와서 과거에 잘못된 순서가 돼  가지고서 이런 것 왔으면 그 닥쳐진 현실에서 과거를 또 파볼 때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잘못된 게 없이, 잘못된 거 없고 내가 바로 해 가지고 그 일이  닥쳤으면 감사하고 또 그라면 감사, 잘못된 거 고쳐 회개, 감사, 회개. 앞으로는  하나님이 이 일을 내게 대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내 현실을 줘서 내가  엉망친창 죄인이 되도록, 나로 하여금 또 버뜩 의인으로 높이 들었다가 쿡  처박히다가 또 뭣이 형통하게 하다가 불통하게 하다가 이렇게 하는가? 이라는 데  내가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또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총결론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여기에서 '왜 이 일을 하나님이 주시는가?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그 뜻을 바로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발견했으면 죽든지 살든지 네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거기에 순종하는 생활로서 끝을 맺어야 한다 하는  이것이 우리의 교리요 신조입니다.

 이렇게 교리대로 신조대로 성경 행정대로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세상에서  방해하는 방해물이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방해물이 몇입니까? 방해물이  너입니다. 넷이라. 넷이라고 했습니다. 넷이 방해할 때에 그러면 방해한다고  우리가 이 교리 신조, 총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대로 이대로 우리가 해야 됩니까  교리 신조 행정을 버려야 됩니까? 이대로 해야 됩니까? 이대로 해야 됩니까  버려야 됩니까? 버려야 된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이대로 해야 된다고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대로 하려고 하면은 나중에 가서 소유를 뺏으면 어짤 겁니까? 소유를  떳겨도 이대로 해야 됩니까? 자기 몸뚱이가 뚜드려 맞아서 다 떡이 되고 감옥에  갇히고 이래도 해야 됩니까? 마지막에는 생명을 빼앗아도 해야 됩니까? 그러면  이것 다 이 세 가지,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뺏겨도 교리 신조 이 행정은  뻐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게 우리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마음으로는 소원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마는 실상으로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상으로 되면은 우리가 이겼고  살상으로 안 되면 우리가 패전했습니다. 그러면 그 실상으로 그 일이 승리가  되도록 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그 실상으로 승리가 되도록 된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뭐입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뭐인데?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내나 사죄 칭의  화친 또 부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러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영생  이것이 교리요 신조인데 그대로 믿을라 하니 이 네 가지 큰 세력들이 달라붙는데  또 뭐 사죄 칭의 화친 하늘에 대한 소망 영생,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예수님의  사활위 대속 때문에 우리가 그런 고난을 당하는데 사활의 대속을 입으라. 대속을  입으라. 대속을 입으면 그것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온다.' 요게 제일  문제입니다. '능력이 나온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이 뭐인지? 요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실행을 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서 죽으심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사죄라 말은  사죄라 말은 이 세 가지 죄를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없애 주실라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세 가지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세 가지 죄가 무슨 죄인가? 세 가지  죄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죄요 하라는 것을 아니한 죄요, 하나님  모시고 살라 했는데 하나님 배반한 죄요 이 세 자지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형벌받아 죽어 가지고서 우리에게 이 사죄를 주셨습니다.

 또 칭의도 우리가 행할 것 세 가지, 하지 말라 하는 것은 안 해야 되고 그거  하나, 또 하라 하는 것은 해야 되고, 또 하나님 모시고 살라는 대로 모시고  살아야 되고 그 세 가지가 합해서 의인데 그 세 가지를 행하기 위해서 주님이  생명을 내놓고 전부를 다 투자해 가지고 긍 세 가지를 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는 안 했고 하라는 건 다 했고 하나님 모시고 살라는 건 모시고 화친으로  살았고 그 세 가지 했습니다.

 그러면 사죄는 사죄는 몇 가지 죄입니까? 세 가지 죄. 또 칭의 의는 몇 가지  의입니까? 세 가지 의. 이랬는데 이제 이것을 입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게  아주 오묘한 이치입니다. 자세히 들어요.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내가 함으로 지은 죄를  담당하셔서 없이 하셨다. 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안 한 죄에서 죄의 형벌을  죽기까지 형벌받아 가지고 대신하셨다. 또 하나님 모시고 살라 하는 데 대해서  모시고 살지 아니함으로서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형벌을 받아서  대형으로 사죄하셨다.' 요것을 생각을 하고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내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요 형을 받아서 나를 구출해 죽으셨는데  나도 이렇게 구원해 주셨는데 내가 어찌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것을 내가 할 수가  있겠느냐?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이렇게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나도 죽어도  하지 말라는 것 안해야 되지.' 하는 그런 마음을 한번 가져 보십시오.

 그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을 가지면, 인간이 그 마음 가지는 거야 그까짓 거  뭐 몇닢푼치 됩니까, 그 마음 가지는 게? 그 마음을 가질 때에, 그 마음을 가질  때에, 그래 가지고서 그 마음을 가지고서 '이러니까 하지 말라는 것 내가 안  해야 된다.' 제가 안 하려고 할 때에는 안해집니다. 안 하려고 할 때에 아무도  하게 못 합니다. 저만 안 하려고 할 때에 누가 강제로 하게 못 합니다. 저만 안  하려고 하는, 제 속에 안 하겠다는 단정만 지워 있으면 온 천하가 달라들어도  그게 와 가지고서 나를 해하거나 굴복을 시키지 못합니다. 요것이 신비한  일입니다. 요것은, 요것을 암만 말해도 요거는 들을 수도 없고 요거는 알 수도  없는데 요거는 꼭 체험해야 압니다. 자기가 이 사죄에 더해서 생명을 자기도  바쳐서 이 사죄를 '내가 벗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사죄를  벗지 안하려고, 생명을 내어놓고 사죄를 벗지 안하려고 한번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해 보십시오. 되는가 안 되는가? 반드시 됩니다.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다 됩니다. 안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요 이상해요.

다니엘이가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을 때에 무슨 거기서 사자 입을 철망으로 막은  것도 아니요 대적해서 막은 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닌데 요 능력  가지고 막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 개별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안하면 사자가 억만 마리가 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안하는  사자가 내게 하나도 해하지 못한다.' 요걸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고  요것을 양보하지 안할 때, 그러니까 사자는 웅크리고 이라는데 다만 그때에  다니엘이 '아이고 하나님이 나를 사자에게 인제 먹여 죽는가베. 사자가 이렇츰  많으니 내가 이제 뭐 사자밥이 안 될 수가 있나?' 하면 '어흥!' 하고서 탁  물어서 삼켜 버리는 것이오. 고거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니 사자 네까짓 게  암만 해 봐라. 자-이래 한번 손을 썩 내며-한번 대 봐라. 아무리 해도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의 이 주권 능력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자  네게 붙여야 되지 너 혼자는 안 돼. 우리 주님의 주권 개별 섭리가 나에게 붙여  줘야 되지 안 붙여 주면 안 돼.' 요거를 믿는 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요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가 그건 것입니다. 내가, 어제 내가, 또 이름이  뭐이더라? 또 그만 그 이름 잊어버렸다. OOO권사님 구역에 있는 무슨 권찰님인데  그거 내가 얼굴은 보면 내가, 아마 내 얼굴 짐작에 그럴듯한데 그분인지 똑똑히  모르겠어. 아마 그분 같애요. 양산동에 기도하러 갔더니마는, 기도하러 가는데,  내가 그래서 똑똑히 물었어. 똑똑히 물어도 또 지금 시원치 앉아서 내가 언제  한번 양산동에 데리고 가 가지고 요게 앉았더나 요게 앉았더나 그걸 지금 똑똑히  물을라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저 아래 OOO집사님 구역이 양산동 상날망에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재독을 하고  인제 모두 각각 나뉘어서 기도하러 갈라고 모두 너머로 가고 아리 오고 하는데,  OOO이 손 들어 봐. 저 OOO집사가 거기에서 아래로 기도하러 올라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라니까 뭣이 뿌스락 뿌스락거리는데 사람이 올라오는가 싶어서  이제 비껴 줄라고 이래 옆으로 이리 비끼니까 지나올라가는데 보니까 늑대 큰 놈  두 마리가 이렇게 올라가더라고서. 올라가는데 뭐 씩씩 맡던가 한번 달라들고  응크리던가? 어? 가만 올라가? 가만히 올라갔을 거라. 가만히 올라갔어.

 인제 그래서 그걸 거석하고 또 이놈 내가 좀 진찰을 하기 위해서, 또 그분에게  뭐 '기도하러 가니까, 기도하러 가서 늑대가 나와 가지고 그래 있는데 오전에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아주 오후에 내려올 때까지 그놈이 내 앞에서 가지 안하고  그래 가지고 있었다.' 하는데 나는 이해가 돼요. 이해가 돼서 내가 엊저녁에  인제 물었어. 물었는데 그래도 그분이 똑똑히 말하는지 더 내가 지금 조사를 해  가지고 똑똑히 물을라 하는데. '그러면 얼마나 떨어져 있었느냐?' '가니, 가서  앉아서 기도하려고 보니까 거기에 앉아 있는데 그뭐 한 뭐 서너 자욱,' 이라는데  내가 그말을 믿지를 못해. 세 자욱인지 서 발인지 또 서 발도 더 되게 삼십  발인지 얼마인지 내가, 어데 앉았더노 그걸 내가 똑똑이 물을라 하고 있어.

 가니까 쪼글치고 앉았는데 인제 '아마 어떤 목사님이 기도하러 오시니까 개가  따라와 가지고서 저래 가지고 하는가보다' 커다란 개가 쪼글치고 이렇게  앉았는데, 가만히 이래 쪼글치고 이래 커다라이 꼬불쳐 가지고 앉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거 보고 '개 그놈 참 젊잔하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서, 배가  홀쭉하니까 '아마 배가 되게 고픈가배. 좀 불쌍하다, 배가 고파서.' 또 그렇게도  생각을 가지고서 그래 있는데 암만 해도 가지도 안하고 그래, '어짜고 있더노?'  가끔 가다 하품을 하고 그래 있더라. 또 이제 제 모가지를 몸뚱이에 이래 댔다가  또 이랬다가 가끔 가다가 이라면서 그래 있는데 그래 안 가고 자기가 내려오고  난 다음에 갔는지 안 갔는지 몰라도 자기 내려올 때까지 가지도 안하고 거기  앉아 있었다 그래 내가 '눕지 안하더나?' '눕지 안하더라' 하니까 그거 내가 알  수가 있어. 그 짐승이 말이지요 그래 있다가서 딱 드러누으면 그놈이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또 드러누워 가지고 꼬리에다 힘을 빳빳하게 내 가지고 요래  거석하면 용을 쓰는 것이오. 이런데 벌써 그놈이 하품하고 또 이래 오래 앉아  가지고 몸을 거석하고 하는 것은 아주 낙관이 돼 가지고 아주 평안한 거라.

그러니까 대적이 아니고 좋은 친구를 만났다 그거요.

 그래 인제, 왜 또 그라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어떤 사람이 가 가지고 그만, 어떤  늙은이가 올라가 가지고 죽었는데 그래 시체를 보니까 머리는 머리대로 팔은  팔대로 이래 따로 떨어져 가지고 이래 있었다. 그래 모두 말하기를 아마 짐승이  그랬는가보다 이렇게 말을해서, 죽은 것을 또 그놈이 죽은 걸 잘 먹어요. 썩은  걸 잘 먹어. 그러니까 '아마 늑대가 그놈이 아마 그랬는가?' 그걸 내가 좀  추리해서 좀 알라고 이렇게 해 봤는데 내나 거기에라. 내나 그 어데라. 늑대  봤다 하는 거기에도 서 목사님 천막 있는 데 바로 거기고 또 OO씨 만났다 하는  데도 바로 거기고 시체가 죽은 그것도 내나 그 밑에라.

 그 밑에 거기인데 나는 '이놈이 아마 사람 송장 맛을 보고서 지금 우리 그  집사님이 기도하는 걸 보고서 지금 가만히 있으니까 저게 드러눕나 저게 발동을  하나 이거 볼라고서 이래 하고 있다가서 그만 가만히 있으니까 그놈이 그만  갔는가보다.' 나는 그래 생각을 하고 지금 찾아서 자꾸 이제 연구를 하고  찾았습니다. 찾으니까 인제 확실히 알았어.

 알아서, 해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거기에도, 그래 내가 어제 그랬어. '그라면  그래 한번도 말도 안 해 봤느냐?' '아무 말도 안 해 봤습니다.' '그래 네가 뉘  집 개고 그래도 안 물어 봤느냐?' 이라니까 물어 보지도 안 했다고. '그러면 너  배가 고프냐 그것도 안 물어 봤느냐?' 물어 보지 안했다고. '그러면 여기 어찌  왔느냐? 그래 물어서 그래 대화를 좀 안 해 봤느냐? 이라니까, 아이구, 대화 안  하고 그만 그대로 있다가 했다고서. 그 대화하면 대화가 잘 됩니다. 대화가 잘  돼요.

 그거 사람이 거기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가 가지고 해하지 않는다는 그런 것을  지금 하나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온 거라. 밤에 혼자 내려오는데 그 늑대  큰 놈 두 마리가 올라가면은 그라면 그놈들이 피하든지 하지 길에서 서로 이래  같이 비껴서 이래 간다는 그것이 뭐이냐? 그놈들도 거기에 하나님이 보내서 아주  천년왕국을 지금 만난 거라. 그 마음도 그렇지 또 교인들도 그렇지.

 내가 그래 그분에게 말하기를 그분이, 그게 늑대입니다. 늑대는 분 명한 거라.

왜? 개가 거기에 왔으면 개는 그렇게 오전에 거기에서부터 저녁 때까지 그러면  아마 한 너덧 시간 됐겠는데 너덧 시간을 개는 가만히 있지를 못해, 요거 가볍고  조급해서. 맹수는 그만 가만히 있어요. 양이 같은 것도 그런 것도 오래  견디지마는 그런 거 오래 못 견뎌요. 이러니까 거기 있었으면 벌써 그놈이  누웠든지 그래 못 앉았어요. 그래 누웠든지 그리 안 하면 이렇게 뭐뭐 또 좀 뭘  일어나든지 이라지 가만히 그래 가지고 있는 그게 맹수는 맹수인데 그거 사람을  보고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라. 그거 그래 좀 말을 해 볼 것이지.

 그거 그때 혹 내가 만났으면 '야, 네가 이름이 뭐꼬?' 좀 얘기도 하고, 짐승이  말 잘 듣습니다. 새들도 말 잘해요. 그 말을 우리가 알아들으면 그 말을  기뻐하는 것도 알아들을 수 있고 이 환난났다 하는 것도 알 수 있고 근심 있다는  것도, 여기 원수가 왔다 하는 그런 것도 환하게 다 알 수 있어요. 까치 지저귀는  거 보면 '아, 저거 배암 왔구나. 저거 기뻐서 좋아 지금 홰치고 있구나, 저게  먹을 것이 있다고 저거 동무 청하는구나.' 그런 걸 다 알 수가 있다 그거야.

 이래서 그래 우리가 그런 것도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요렇게 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이 또 믿음을 가집니다. 우리 사람이 선하게 하면은 그것이 선하게  합니다. 그 말이 있어요. 성삼문이가 쪼그만하고 업고 갈 때에 보니까 앞에 이거  범이 와 가지고서 엉크리고 이라니까 업힌 조그만한 젖먹이, 업혀 있는  성삼문이가 있다가서 그 보고서 '이놈 얼른 물러가라. 가거라.' 이라니까 그만  가 버리더라고서. 그래서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잃지 말아라'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도 사람이 사람 노릇 하면은 짐승이 달라들지를 못합니다.

 인제 사람이 가 가지고서 그만 짐승이 아닌 말이요, 사람이 짐승 아닌 그런  짐승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면 그 짐승들과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개 마음 가지면  개니까 뭐 잡아 먹어야지. 도야지 마음 가지면 도야 지니까 잡아먹어야지. 사람  마음 가지면 잡아먹을 수 없어. 하나님 마음 가지면 하나님을 늑대가  잡아먹어요? 못 잡아먹어요. 허허.

 그래서 우리가 어짜든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입고, 사활의 대속이 자기 안에도 있고 사활의 대속이 자기 밖에도  있어서 사활의 대속을 벗지 아니하려고 하는 그 자에게 사활의 대속을 벗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공연히 제가 놀래 가지고서 사활의 대속을 벗어서 탈이 나지  사활의 대속을 입고는 탈을 당한 일이 없습니다.

 또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살라고 할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응하지 거기에 해하지  못합니다. 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뭇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걸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활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사활의 대속을 입어서 죄 없는  인간으로, 의로운 인간으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인간으로,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가진 인간으로 이라면은 만물의 영장인데 그것들이 영원히 내 밑에 붙어  살아야 되는데 그게 나를 해할리가 있어야지요?  거기 내가 언제 금정산에 가니까 막, 상봉에 가니까 그 바위가 허여이 늙어서  머리가 허여이 이래 가지고 큰, 거기에는 그 산에는 한날망이 바위라요, 내가  보니까. 제일 한날망이, 절정 이. 그래 '야, 네가 나이가 참 많구나. 몇 살이나  되느냐?' 이라니까 '육천 세가 다 돼 갑니다.' 그래. '엔간이 나이가 많다'  이라면서 '네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영원 전부터 있는데 나이가 영원  전부터이기 때문에 얼마가 되는지 계수를 못 한다.' '아이구, 그라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 곧  그리스도인이다.' '아이구 우리 왕님이 오셨습니까?' 하면서 그만 그 바위가  엎드려 가지고 절을 하고 이래 하는데 그 아주 재미 있는 생활 했어요.

 내려오니까 새들도 와 가지고 인사를 하지 또 은행나무가 이래 한 아름되는 게  있어서 '아따 야, 너는 나이가 몇 살이냐?' 이라니까 '이제 사백 세가 다 돼  갑니다.' '몇 해나 더 살겠느냐?' '모르겠습니다. 한 이백 년 더 살란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믿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자기가 입고 벗지 안할라 하는 요  마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자기가 깨닫고 전신갑주를 생각하고 전신갑주를 입고  벗지 안하려고 이 전신갑주를 생각할 때에 자기 속에 담력이 오는 걸 알 겁니다.

평안이 오는 걸 알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문제 아니고 만물이 다 나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것이 뭐 '이상스럽다' 물을 베드로가 걸어가는데 쩌뻑쩌뻑 물위로 걸어가니까  '어찌 걸어가노?' '주님이 나를 오라 했기 때문에 내가 걸어가는 것이지' 떠뿍  들어갑니다. '왜 들어가노? 저는 몰랐지마는? '왜 적게 믿는 자여 의심하였느냐'  믿고 의심하는 것이 자, 주먹덩이 같이 표가 납니까 표가 없습니까? 믿는 것과  의심하는 것이 주먹덩 이같이 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 표 없어.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따라서 믿으면 그렇다는 천지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에 따르지 안한 제 독단으로 자행하는 그런 믿음은 암만  해 봤자 소용이 없는 거라.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벗지 안하면은  우리는 뭐, 앞으로 불심판이 올 때에 불심판을 뭘로 피합니까? 뭘로 피합니까?  피하는 게 뭐이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입는  방법이요 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한다는 그것도  하나님의 의를 입고 있는 거라.

 그래 나중에 마지막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렇게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그런 노력한 사람이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이라? 어? 몰라요? 그  사람이 뭣 하는 사람이라? 의인이라, 의인.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는 본다고 하지 안했어?  그게 의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의입니다. 그 의를 입는 방편이  거룩 경건 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그것이,  그라다가 보니까 의를 입고 벗지 안했으니까 의를 입고 벗지 안한 것은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새 하늘과 새 땅에 의가 가는데 의가 몇 가지 있어요, 우리에게?  손가락으로,의가 몇 가지 있습니까? 의가 몇 가지? 한번 들어 봐. 너는 다섯  가지가? 여기에 의가 몇 가지? 아, 요 쪼맨한 요게, 네까짓 게 어째 알아? 의가  두 가지 요 맞기는 맞았는데 네가 알아? 조 뒤에 꼬마 조거 말이요? 의가 두  가지인지 알아? 네가 손가락은 들었지만 잘 알까? 예수님의 대속의 의가 우리의  기본 의입니다. 그 거는 하나님의 의요. 내가 그 의를 입고 산 것만치 그것은 내  의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절대의 능력을 가진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것을 우리들이 믿어야 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양산동 산에 가 가지고서 이제 늑대 나오거들랑은 한번 대화를 해 봐요.

여러분들이 변하지 안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그거 참 선물이라. 이제 도야지  돈만 아는 꿀꿀거리는 도야지 같으면 이리 그놈은 늑대는 도야지를 좋아합니다.

닥치면 그만 깨물어 버려. 이러니까 인제 도야지 마음도 가지지 말고 짐승 마음  가지지 말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요. 그라면 큰 재미  있는 꼴을 닥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누가 좀 대화도 하고 좀 그래 할 건가?  OO씨 한번 더 가 봐, 만나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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