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행위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22일 새벽(토)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신앙생활은 실패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주력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어리석은 길이 아니요 또 실패되는 길이 아니요 유익이  적은 그런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전심 전력 기울이는 이것이 인생  영육, 인생의 영육 성공의 첩경을 걷는 길입니다. 지름길을 가는 길입니다. 삥삥  둘러서 일생 가다가도 만날까 못 만날까 하는 그런 허탄한 길을 걷지 안하고  마치 말하면 첩경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것인고 하니 활을 이래 나무를  휘어가지고 활을 매면 활 그 대로 가는 것은 이래 둘려 가는 것이요 바로 그  줄을 매어 놓은 줄로 가는 것은 곧게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지혜롭게  가장 영육의 성공의 빠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것이 신앙 행위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에도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3장 5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입으면 못 갈 데가 없고 막힐 데가 없고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대주재이신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자이지 완전한 의인이지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지, 옛날은 동행한 사람들이 많지를 못했습니다. 에녹이 동행해 가지고  사망을 이겼습니다. 노아가 동행해 가지고 전 이류가 멸망을 받을 때에 그 멸망을  이겼습니다. 아브라함이 동행해 가지고 인류의 조상이 되어서 인류의 제일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아니오. 예수님은 이 자연인이 아니요  특수인입니다.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하니하고 그  생명책에 흐리지 않는다 그말이란 하나님과 연결되어 된 자냐 아니냐 하는데에  하나님과 연결에서 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그대로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연결로 살게 된다. 하나님과  연결로 살게 된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게 된다. 이기는 자는 살게  된다.

 또,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에서 내가 시인하겠다. 이기는 자는 그의 언행심사의  모든 행동을 행동에 대해서 아버지 앞에 하는 말은 아버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유업으로 주시는 이를 가리켜서 아버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다 주시도록 그렇게 주님이 증명을 해 주겠다'. 내가 시인한다 말은  주님이 이에게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이에게 필요한 것을 이이의 언행심사에  필요한 것을 다 주십시요 하는 것이오. 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주님이 결정 떡  내려서 인을 탁 쳐서 결재를 떡 해서 이에게 주십시요 하면 못 주게 할 자가  없습니다. '그 이름을' 그 언행심사의 행위 말합니다. 그 언행심사에 대해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버지가 은혜로 유업으로 다 주도록 이렇게 내가  결재를 해서 주겠다 그 말이오.

 또, "그 이름을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천사라는 것은 이것은 우리 호위하는  걸 말합니다. 아버지에게 다 받았지 예수님의 대속 다 입었지 이라면 남은 것  찍해야 이 세상에서 있는 모든 마귀와 세상 것들인데 천사를 말하는 것은 호위.

보호하는 호위, 호위병 천사들의 그 호위를 내가 명령하겠다. 시인하겠다 말은  천사들의 호위를 명령하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기는 자. 이기는 자는 다 이러한 은혜를 주시는데. 이기는 자는 어떤  자가 이기는 자인가? 2절에 보면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 하였다.' 그러면 행위의  온전한 그것이 그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행위의 온전한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돈벌이 할라고 뭐 권세 올라 갈라고 또 공부를 해서 뭐 어째서  뭐 기술을 할라고 기술 암만 배워도 하나님이 축복 안하면 기술로 망하고 공부  암만 해도 공부에게 하나님이 축복 안 하면 공부로 망하고. 잘난 걸로 망하고,  언변으로 망하고, 총명으로 망하고 뭐 암만 좋은 거라도 하나님이 쫙 그려 버리면  그것이 전부 다 악용되고 말고 그로 인해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셔서 그 하나님과 연결된 그 행위를  계속 하도록 연결된 행위가 되어지도록. 또 하나님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다  은혜로 다 받을 수 있도록, 또 천군 천사들의 호위와 동행을 이와 같이 해 주도록  이렇게 되는 것이 온전한 행위인데 그것이 이기는 행위인데, 그러면 이것보다 더  된 돈벌이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든 데 주력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주기를 원하는, 예수님에게는 모든 걸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도 그러합니다. 당신과 꼭 같은 자를 만들어 가지고 당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당신이 창조한 그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나 꼭 다름이 없는 같은 이런 역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자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큰 자 이렇게 지극히 큰  자를 만들라고 이 목적을 정했기 때문에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도 했고. 그러면 예정이라 하는 것은 그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순서  이런 순서 나타난 그것이 내 눈에는 어리석어서 혹 갑자기 '저 무슨 이런 일이  닥치노? 이 큰일났네. 하지만 그것도 분명히 내 구원을 위해서 다 순서로 예정된  것이 나타났어. 모든 예정도 이 일을 위해서 예정했고 모든 창조도 이 일을 위해  창조했기 때문에 자기가 처음 보든지 뭐 알든지 모르든지 모든 존재도, 내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모든 순서가 내 구원 위해서 있다. 모든 순서가 내 구원 위해  있고.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서 있다. 모든 움직임은 전체가 내 구원 위해서  있다. 내 구원은 뭐인데? 하나님과 꼭 같은 그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형상의  완성을 이룬 하나님의 대리자.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해 줄 수 있는 이런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목적 정했는데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이 어디서 달성되느냐? 행위에  온전할라고 애를 쓰는 데서 달성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힘쓰노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힘쓰노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분들은, 다 성령의 사람들은 무엇을 전공을 했으며, 무엇을  전업을 했는가? 전업이라 말은 온전할 전(全)자 아니고 전문이라 하는 그  전(專)자 전업을 했습니다. 전력을 기울였어. 거기에다가 전부를 다 기울어  버렸어. 그것만 자기의 하나 할 일로서 전적 그는 전문 행위했습니다. 전문 행위.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뭐 별스러운 하늘의 것만 생각하지만 땅에 있는, 성공하지 못하면  하늘의 성공 못합니다. 땅에는 실패해도 하늘에 성공 있는 줄 압니까? 아니오.

땅의 성공이 하늘의 성공이요 하늘의 성공이 땅의 성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진다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땅의 성공은 땅에서 온 세상을 제 마음대로 해서 온 세상을 제 자유  자재하고 전인류를 자유 자재하고 악령을 자유 자재하고 죄를 자유 자재하고  저를 미혹했던 악성을 자유 자재하고 악습을 자유 자재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해서 왕노릇을 합니다. 땅위에 왕노릇하는 것이오  손양원 목사님 그런 이는 자유 자재했어. 두 아들을 죽여서 그 원수의 굉장한,  사람이 참 기절할 만한 그런 일이 있어도 그것에게 조금도 종되지 안했어. 그걸  호령쳐서 두 아들 죽인 그를 고려 신학교에 그때 입학을 시켜 가지고 공부를  했는데 그 뒤가 어찌 되었는지 나는 그걸 모르지만 어쨌든지 그 뒤에 그 사람이  잘 됐든지 못 됐든지 상관없어. 손양원 목사님 만큼은 이겼다 그거요. 땅위에 못  이긴 게 없어. 죄악도 다 이겼지 마귀도 다 이겼지 자기에 대해서 마귀가 원수로  습격을 해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방편을 가지고 습격을 해도 손양원 목사님은  거기에 대해서 조금만치도 패전하지 안하고 손해 보지 안하고 신앙생활 그대로  계속했다 그 말이오. 그러니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신앙 행위라는 것은 손해 가는 행위가 아니고 인간으로서 가장  지름길을 걸어가서 제일 가장 쉽고 가까운 최고의 성공을 하는 것이 신앙 행위  하는 것입니다. 신앙 성공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돈 벌이 보담은 신앙  행위에 주력해라. 네가 출세 할려는 것보다도 신앙 행위에 주력해라. 네가  공부하는 것보다 신앙 행위에 주력해라. 네가 기술 배우는 것보다 신앙 행위에  주력해라. 네가 땅위에 무엇을 가졌든지 이것 가졌으니까 신앙 행위에 좀 힘 좀  덜 써도 된다 하면 너는 망한다. 너는 소용없다. 어리석다. 모든 것보다 신앙  행위하면 돈 성공도 되고 지위 성공도 되고 권세 성공도 되고 모든 성공이 돼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는 것은 뛰어나는 건 돈만 가지고 뛰어날 수가  있겠소? 지식만 가지고 뛰어날 수가 있겠소? 돈도 뛰어 나야 되고 지식도  뛰어나야 되고 권세도 뛰어나야 되고 모든 지혜도 뛰어 나야 되고 뭐 영광도  뛰어나야 되고 모든 거 다 뛰어나야 된다 그거요  어제 아침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 한테 와서, 그 가족이, '지금 이거 뭐 이  주님에게 바쳐 일할라고 했더만 이거 뭐 이 아이 공부시키고 저 아이 공부시키고  이것 저 다 돌아볼라 하니까 할 수 없어서 후퇴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말하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 앞에서 한번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작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서 죽어도 그대로 계속해 가다가 죽어야 그게 신앙이요 인내인데 그래 할  일이지 그 뭐 가지고 딴거 공부니 뭐니 이것 저것 다 보고 나머지기 네 욕심대로  다 하고, 그놈 죽여야 되는데 네 욕심대로 네 의견대로 네 지혜대로 네 비판대로  네 평가대로 다 하고 이거 내 주관대로 다 했으니까 나머지기 예수 믿는 일 해  보자. 찌꺼러기 그까짓 것 가지고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이 그 쩌꺼러기 받나?  그거 네가 스스로 속는 일이다. 아, 공부도 공부 안 한다고 사람이 안 되는  것인가 어디? 할 수 없는 거를, 예수를 버려야 되고 하나님의 사명을 집어 던져야  되고 그래야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그 공부는 너를 망치는 공부다. 그런 것 집어  던지라.' 내가 그런 말했어.

 여기 또 어제 그 내 자랑이라. 또 말했어. 아, 나는 국민학교 오 학년 이 학기  하다가 공부를 못했어. 가정 형편에 못 했어. 그래 가지고 뭐 이래 저래 일본으로  돌아다니고 이래 돌아 다녔지만 별로 공부 못 했어. 공부 못 했는데 내가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일본에 가서 거의 공장이라고 하는 큰 공장 다 들어갔어.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도 뭐 묻는 데마다 나는 그만 가서 내가 이 공장에 지금  좀 일해야 되겠으니까 넣어 달라 하면 그만 넣어 줘. 가 가지고 한번도 퇴방맞아  보지를 못했어. 다른 사람들은 뭐 돈을 들이고 얼마나 몇 해를 기다리고 운동을  해도 안 되는데 다 갔다 말이오. 그게 뭐냐? 나 공부시킨 거라. 그래 가지고 이것  저것 다 봤어. 그래 놓으니까 아,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만물 박사라 할  만치 참 경험을 했습니다. 이래 놓은 그거 다 주 종합을 해 놓으니까 그게  지식이라. 이래서 집 짓는 데도, 뭐 나무를 심으는 데도. 또 의사들 병 치료 하는  데도 여게도 저게도 떡 닥치면 거기에 대해서 그들이 모르는 걸 알아서 요게  틀렸다. 요래 요래하면 된다. 그저 환하게 알아진다 그 말이오. 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모를 게 뭐 있습니까? 그 분이 인간의 지혜를 두뇌를 만드신 분이,  그 분인데 아, 그분이 모든 걸 만드셨는데 그 분을 내가 차지해 가지고 그 분이  내 하나님이 됐는데 그 분이 내 하나님 됐는데 뭐 모든 것 만든 그까짓 거야 다  있는 것 아닙니까? 왜 이리 뺑뺑 둘러서 가느냐 그 말이오. 바른 직행으로 그만  가 버리지.

 이러니까, 우리 신앙 행위가 돈벌이도 손해 가는 거 아니요. 부부 생활에도 손해  가는 거 아니요, 가정 생활에도 손해 가는 거 아니요 출세에도 손해 가는 거  아니요, 자기 직장에도 손해 가는 거 아니요 신앙생활.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 그 분이 모든 학생들보다 십 배나 뛰어난 지혜 가진  것도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았오. 믿음 지켜 하나님께서 주셨어. 그래  십 배나 뛰어났지 제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또 그분이  외국에서 포로 된 자가 그 본국의 민족들도 많이 있는데 총리 대신 중에 하나가  된 그것도 전부이 믿음으로 돼 버렸어. 믿음으로. 믿음 지키니까. 믿음. 다른  사람은 다 모두 사기 협잡으로 할라 하는데 이 다니엘은 믿음 지키니까 도무지  그 사람에게는 행동을 가지고는 흠을 잡을 게 없다고 말했어. 잡을 게 없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묘하게 조화를 부려 가지고 요게 말씀을  어기지 안하니까 말씀 어기지 아니하는 고놈을 이용해 가지고 고걸 이 정부에  거슬리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렇게 했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 믿음 아니요? 믿음 가지고 망했지, 믿음 가지고 사자 구덩이 집어넣었지. 사자  구덩이 집어넣었었는데 거기에서도 또 믿음 지켰어. 믿음 지키다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으면 그만 말일이지. 믿음 지켜 가지고 사자 구덩이 집어넣으니까 사자  구덩이 집어 들어가 가지고 또 믿음 지키요. 이러니까 저거 죽었다 했는데  사자들이 와 가지고 푹신푹신한 털을 가지고, 내 사자 볼 때마다 그거  생각합니다. 푹신푹신한 털이 와 가지고 이 뭐 발톱도 없지 입도 딱 막아 버렸지  이래 놓으니까 푹신 푹신한 털이 와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그 아마 다니엘이  총리 대신이지만 그렇츰 좋은 사자 껍질 담요 쓰기는 처음일 것이라. 아마 또  후에도 없었을 거라. 사람 보기에는 없는데 속에는 굉장한 오묘한 이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믿음 가지고 나가다가 나중에 보니까 거기에서 그 이튿날  아침에 나왔는데 당장 그 원수를 다 죽여 버리고 다니엘이 죽였소? 왕이 죽여  버렸지 죽이고 그때 총총리가 돼 가지고 성공했어. 믿음 가지고 승리 아닙니까?  이런데, 이거 믿음 지키다가는 내가 면직 당하겠다 믿음 지키다가는 이 상관에게  절단 나겠다. 이 믿음 지키지 안하고 믿음을 양보하고 나갔다가 '전지 전능자  내가 있는데 날 배반하고 그게'크냐? 믿음 지키지 안하고 네 까짓 게 계명 어겨  가 봐라. 안 뒈지는가?' 그래 가지고 폭발해서 뒈지기도 하고 이렇게 한다 그  말이오. 왜 믿음을 버리고 뭘 가지느냐 그거야 이러니까 믿음 지키려고 전심  전력하는 것이 생활이 아닙니다. 돈벌이도 실패 아니요, 농사도 실패 아니요. 아,  보니까 믿음을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하늘의 보고를 열어 가지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다 복을 줘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고  했거든.

 이러니까, 요 믿음 생활을 하는 데에는 이것이 온전한 행위가 돼야 이렇게 돼요.

온전한 행위를 하는 데에는 그 행위하는 방편을 요번에 가르쳐 놨다 말이오.

가르쳐 놨는데 거기에 본론에 이렇게 해 놨어요. 요거는 다른 건 다 아니까 내  본론 한번 읽어보겠소.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성경 지식을 성경 지식을 믿음으로 성경 지식의  인도를 따라 가지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의 양심이라 그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양심을 써서 하나님을 찾아간다. 믿는 사람 이 양심 쓰지 안하면 하나님 찾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양심 써서 하나님 찾아가는 게 뭐인가? 믿는  사람이 자기가 세상 지식 다 집어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자기  지식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활용해서  하나님의 지식이 뭐라고 말하노?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따라 가면 그것이 신앙  양심 생활을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를 따라 가면 누구를 만나느냐  하니 하나님을 만납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복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이러니까 신앙 양심 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만나지  그렇지 안하면 만나지를 못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이 뭐인 데? 신앙 양심 생활은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을 따라 가지고 하나님 만날려고 애써서 나아가는 그것이  신앙 양심 생활이라 그거요.

 이번에 양심에 대해서 많이 말했는데 양심은 불교인은 불교인 양심이요 그  사람은 불교 지식을 따라서 불교 지식을 따라서 돈 지식을 따라서 부자 될려는  그 욕심 지식을 따라서 세상에서 무슨 명예 권세 얻을려고 하는 명예 권세의  욕심 지식을 따라서 가는 그것은 다 양심에 화인 맞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첫째는  신앙 양심 생활을 해야 되고, 둘째로는 양심이 화인을 맞지 안해야 되겠고,  양심이 화인 맞는다는 말은 화인 맞는 다는 말은 그 쇠도장을 해 가지고 불로  구워 가지고 꾹 찍으면 찍힙니다. 화인은 닦아도 안 돼요. 화인은 닦아도 뭐  파가지고 이래 만들었기 때문에 변동이 없다 그 말이오. 화인은 뭐이냐 하면  양심의 주인이 있다 그 말이오. 양심의 주인 양심은 아무데도 매인 데가 없이  자유해야 이 양심은 나침판 한가지인데 말하자면 여기 저 나침판 한가지인데  나침판이 아무 데도 충격 받는 게 없어야 정남을 가리키지 그 옆에 뭐이든지  충격 받으면 그게 정남을 가리키지 못해요, 그만. 그것 때문에 방해를 받아서.

이러니까 양심은 아무 것의 것도 안 돼야 되는데 이 사람들이 양심을 가졌으나  불교인은 불교인 양심 가진 것 모양으로 이 사람들이 다 돈 욕심 그 놈이 양심을  딱 그만 거머쥐고 잇지 또 자기 정욕이나 온갖 이런 저런 모든 사욕의 양심이  되고 안 되면 생의 애착욕, 목숨을 아끼는 것, 생의 애착욕, 죽기 싫고 뭐 참  목숨이 살고자 하는 생의 애착욕 이것에게 종이 돼도 헛일입니다.

 왜 왜정 말년에 모든 신사 참배 났을 때에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왜 신사  참배에 다 굴복을 하고 그런 수치스러운 일생 동안 신앙생활 하던 걸  팔아먹었느냐 하면 고 양심이 그때 생의 애착욕의 화인 맞은 사람들은 다  마지막에 죽을 지경 되니까 그래도 그 이거 국가 의식이라 뭐이라 이래 가지고  억지로 밀어대 가지고 나중에 그걸 했더라 그 말이오. 제가 보니까  ○○○목사님이라고 성결교회 신학교 교장인데 그 분이 아주 신앙생활을  잘했었습니다. 잘했었는데 신사 참배 할 때 나중에 그분이 뭐라고 말한 게 아니라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이라 이렇게 해 가지고 신사 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  말이오. 고게 속에 파고 들어가 보면 양심이 화인을 맞아 그렇다 말이오. 양심이  화인을 맞았어. 양심이 화인 맞은 것이 무슨 화인을 맞았느냐? 생의 애착욕의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 말이오. 양심은 생의 애착욕의 고만 것이 돼서 생의 애착욕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때 양심이 옳은 판단하지 못해 가지고 그만 그때  패전하고 말았다 그거야.

 그런데, 왜정 말년에도 모두 다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 양심에 화인 맞지  안하고 양심이 생생 살아 있는 사람은 양심이 아무래도 이것 안 됐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 잘 잊혀서. 이 무슨 이 진실 조사님이가. 여기 ○○○씨 없나?  ○○○집사? 그저 그 감옥에 감옥에 세 번이나 네 번이나 도로 자복하고 또 신사  참배하겠다고 항복하고 또 나와 가지고는 못 견뎌서 또 들어가고 마지막에  들어가 가지고 최후에 승리하고 죽은 사람이 이 조사인데 그 뭐이지? 아이고 뭐  요새 사람들이라. 그 분은 고문과 고행하니까 못 견뎌서 이제 내 신사  참배하겠습니다. 이래 놓고 나오니까 견디지 못해서 다시 또 들어갔습니다. 또  들어가서 아이고 내가 신사 참배 못 하겠습니다. 그 뭐이냐 양심의 호소라  말이오. 양심의 호소니까 또 들어갔다가 마지막에는 들어가니까 '이놈의 새끼 뭐  지금 이거 저 네가 한번 한다고 했으면 해진 것이지 뭐 다시 재벌이 어디 있노?'  이래 가지고 감옥에 안 들여 놓을라 하는 것을 나중에 감옥 밖에 가 가지고  가지도 안하고 거기서 그만 거기서 있다가 죽어 버렸어. 거기 있다가 굶어 죽어  버렸어. 그 순교자라. 그 뭐이냐? 그렇게 강력하게, 못 견뎌서 나왔지만 강력하게  그와 같이 한 것이 뭐이냐 하면 신앙 양심이라 그 말이오. 양심이 아무 데도 화인  맞지 안했기 때문에 그랬어. 그 악령의 미혹 받아서 양심이 화인 맞으면 그만  헛일입니다. 고 밀에 세밀히 있습니다.

 또, 양심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양심 죽이는 건 어떤 게 양심 죽이는 것인가?  자기 마음에 이거는 확실히 이렇다 옳다 작정한 그것을 어겨서 그것을 꺾고 그  반대로 어겨 나가는 그게 양심 죽여 버리는 것이라 말이오. 양심 죽이면 그만  희망 없소. 양심 죽이면 희망 없는 것은 양심을 죽여 버리면 신앙 행위에  나아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못해. 만나 보지를 못해요.

 또 양심을 매장 시켜서는 안 됩니다. 양심 매장 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 양심  매장 시키는 것인가? 자기 양심에 아무래도 이래 해야 될 것 같은데 하면 양심이  자꾸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거 안 되는 것 같은데 께끄름한데  한번 생각해 봐라. 생각해 봐라. 생각해 보는데 생각해볼라 하니까 생각해 보니까  썩 나옵니다. 생각해 보니까 옳고 그른 게 나온 다 말이오. 옳고 그른 게  나오는데 좀 더 생각했다가는 나중에 이게 옳다 단정하고 난 다음에 안 하면  양심 죽이는 것이 되고 마음에 가책이 더 되니까 그만 어떤 사람들은 술을 먹고  잊어버립니다. 술을 먹고 잊어버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만 그래 가지고  테레비나 보고 그만 그만 에이히 뭐 볼라 하면 그만 자기가 뭐 생각해 가지고  그것이 양심의 인도가 나을 듯 나을 듯 하면 그것을 그만 잊어버리려고 그만  내흔들고 그만 뭐 뛰 돌아 다니고 이래 가지고 양심이 가르쳐 주는 것을 꽉 그만  묵살했다 그 말이오. 그 한 양심이 자꾸 인도하는 것을 묵살해 버리는 그것이  양심을 매장하는 것입니다. 매장하면 그게 나중에 뭐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양심을 매장하지 말아야 되고,

 다섯째로는 양심을 북돋워야 됩니다. 양심을 북 돋우는 건 어떤 것이 양심을 북  돋우는 것이냐? 자기가 성경 지식대로 어쨌든지 옳게 바르게 내가 해야 되겠는데  옳게 바르게 요게 중요합니다. 옳게 바르게 해야 되겠는 데 내가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되겠는데.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되겠는데 뭐 돈이고 뭐이고 이것 저것 다  할것 없이 내가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되겠는데 말씀대로 옳게 바르게 해야  되겠는데 자꾸 고 생각 그것이 양심을 북 돋우는 것이라. 그 양심생활은 아니오.

양심생활은 아닌데 어찌 됐든지 내가 신앙 양심대로 옳게 바르게 해야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합당한 자가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 양심생활 안 하면 하나님  만나지 못한다. 이래서 옳게 바르게 할라고 자꾸 어떻게 하면 바르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곧게 하는 것인가? 옳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인가? 요걸 자꾸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북 돋우는 것이라 말이오. 북을 돋우면 커올라가지  않습니까? 북 돋우는 것.

 그 다음에 여섯째로는 양심을 기르는 것. 양심을 기르는 것은 어떤 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인가? 자기 양심에 이게 옳다 판정했으면 판정이 됐으면 뭐 가족의  사정이 있고 뭐라 하든지 롯 모양으로 롯 모양으로 그렇게 천한 걸음. 무능한  걸음, 그렇게 신조 없는 걸음 걷지 아니하고 가족들이 아 뭐 만일 나쁜 가나안,  자산 만나면 우리 짐승도 다 죽을 것이고 뭐 목부들도 말하고 야단을 지기니까  어짤 수 없이 피익 자빠져 가지고 그만 삼촌이 그렇지만 하도 저거들이 저래  쌓으니 어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요단들을 차지하지요. 그것이 양심을  꺾어 죽이는 것이라.

 양심을 기르는 것은 뭐요? 아브라함이 양심을 길렀어. 가족들이 암만 해도 내가  볼 때에 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을 물질보다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이것을  양보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이것을 양보하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요게 모든 주권과 전능이 달렸다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버려  버리고 요게 위주로 이와 같이 가다가는 하나님이 섭섭해하시겠다. 고 신앙 양심  생활했다 말이오. 아, 그러니까 승리했어. 뭐 자기 마음에 요게 단정하고 확신이  됐는데 확정이 돼 가지고 있는 그 길을 가면서 자꾸 가정 형편이 이렇고 저렇고  하니까 이거 어째야 되느냐? '아, 이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디  있노? 뜻을 묻기를 뭐하러 묻노? 확실히 알고 그게 확정된 일인데 뭐 묻기는  뭐하러 물어? 물어서 '딴 뜻대로 해 봐라.' 나까지 죄 지으라고 하고 있느냐?"  속으로 '나까지 죄 지으라고. 그러니까 아, 혹 그런지 모르니까 마음대로 해라.

어떻게 할래?' 그러면 거기 대해서 나도 그라면 죄 짓는 거라. 아. 하나님의 뜻은  요게 뜻인갑다 하고 양심에도 생각하고 학정돼 있는데 확정돼 다시 뭐 또 진리가  둘이냐? 옳은 작정했으면 고 갈 일이지 옳은 작정은 단행을 해야 되지 옳은 작정  외에 또 옳은 작정이 뭐 있노 있기는? 그 양심을 기르는 것은 자기 마음에 옳다  인정되면 그대로 단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단행 할라고  하면 뭐 별별 일이 다 있지 않습니까? 죽는 일이 있어.

 여러분들이 또 저거 백목사 또 제 자랑한다 이래 하면 여러분들. 여러분들  때문에 내가 자꾸 그 어리석은 소리를 자꾸만 미친 소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제가 지금 ○○목사님 그때 그 농산 교회 있을 때에 6.25 때인데 '아 우리가  그들이 소고 뭐이고 다 잡아 가버렸고 돼지 한 마리는 아무도 모르게 숨겨서  숨겨서 이랬는데 이제 한번 하나님의 종들 모시고 한 번 이래 대접 할라고 한  것인데 요 오늘은 돼지를 잡으니까 오십시오' 그때 고기가 없어. 그들이 다 와  잡아먹어 버리고 말이지. 그래서 나를 청했어요. 농산 교회서 청했어요. 가니까  교역자들을 모두 청하기는 청했는데 겁이 나서 못 와. 오다가 인민군에게 잡히면  안 되니까. 그랬는데 그래 갔었어. 가 가지고 그 날 인제 도야지 고기 잘 먹고,  먹는데 산에 가서 먹었어요 저 산에 가서. 그때는 첩첩 산중이 어떻게 좋은지  내려다보니까 저 밑에 인민군들 뭐 모두 다 차 타고 뭐 찌뿍찌뿍 이래  돌아다니는데 거기 가면 지옥이고 그 산골짝이 천국이라.

 그래 거기 가서 도야지 고기를 먹고, 인제 그 날 저녁에는 아. 수요일인 데 그  수요일인데 오늘 저녁에는 그만 거기 갈 게 아니고 여기서 예배를 보시이소.

모두가 이래 붙드는 참인데 '아, 그래도 가야 뒵니다. 내가 지금 인민군이  들어오고 이랬는데 한 번이라도 대 예배를 빼면 그 교인들에게 큰 신앙에 요동이  될 터이니까 빠지면 안 됩니다.' 이라니까 하 모든 사람이 붙잡아 쌓아서 '여기도  좀 하룻밤 좀 증거를 해 주고 가면 좋지 않습니까? 요게는 교인 아닙니까?' 하도  그래 쌓아서 '그러면 그라자' 하고 거기 누워 잤다 말이오. 누워 자고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목사하고 나하고 둘이 한방에 누워 잤는데 누워 자고 보니까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옷이 젖었어. 내가 뻐뜩 생각하기를 양심적으로 생각하기를  아, 이 오줌이면 곧 거름인데 이 썩는 건데 네가 이놈아 여기 있으니까 네가 신앙  썩어진다. 네가 변해 지금 썩기를 시작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내가 깨달아진다  말이오.

 깨달아 질 때에 깨달아지는데 그때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깨달아지는데  고 전날 오기를 고 우리집에 아내 ○○○권찰이 달려 왔어요 와 가지고 내일은  인민 재판인데 인민 재판에 그 이 호가 조사님인데 일 호는 다 어디로 도피하고  없고 그러니까 조사님이 일 호인데 인민 재판한다고 지금 내일 모두 다 이렇게  설비하고 이랬는데 인민 재판에 첫째 사형이 조사님이니까 내일 안 와야 된다.

이렇게 딱 기별이 왔다 말이오. 기별이 왔는데 기별이 와서 그날 저녁에 그만  거기 자고 '그라면 꼭 그랄 게 뭐 있습니까? 여기서 예배보고 뒤에 가지요.' 아.

이랬는데 고날 저녁에 아침 자고 일어나니까 오줌을 쌌어. 그라고 그때 내가 뻐뜩  깨닫기를 '오, 내가 그 말을 듣고 요게 있는 것은 생명을 아껴서 여기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거는 내가 썩어지는 것이다.' 요걸 딱 단정하고 난 다음에  여기서 얼마요? 십오 리 되는데 그만 거기에서 막 달음질로 나섰어. 달음질해  달음질 쳐가는 것은 어디 가느냐 하면 사형시키는 그곳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위천 교회서 사형시킬라고 그래 했는데 그날 자꾸 인제 내 아내가  와 가지고 그래라 해서 그러면 그날 저녁에 거기 잤다 말이오. 잤는데 사형을  찾아가는 거라. 막 달음질해 가지고 어짜든지 예배 시간 전에 갈라고 막 죽자  살자 뛰어 가지고 가니까 예배 시간 십분 전이라 십분 전에 들어가니까 어 뭐  제직들이 막 깜짝 놀라서 '어쩔라고 지금 오늘 옵니까? 어제 사람 안 보냈습디까?  어짤라고 오십니까?' 야단을 지겨요. 이라는데 그만 거기서 이야기하면 안 될  거고 그만 그대로 성경 가지고 쫓아 그만 강단으로 뛰어올라가 버렸어. 강단에  뛰어 올라가 가지고 그날 설교했는데 그날 설교에 은혜가 굉장히 있었습니다.

생명 내놓으니까 당신이 또 좋아서 한다 말이오. 고게 그때에 고래도 고 양심을  기른 거라. 그 양심을 길렀어. 그때 고래도 그만 마음에 이게 아니다. 틀렸다 하고  작정하고 난 다음엔 그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에 이게 옳다 확정되고 난 다음에는 뭐 생명 관계나 소유 관계나 명예  관계나 자기 신체 관계나 자유 관계나 무슨 감옥에 갇혀도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양심의 인도대로 단정하는 단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양심을  기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라면 길러 놓으면 성장한 양심을 어떤 양심이 성장된 양심이냐?  자기의 모든 소유를 양심이 주권합니다. 양심이 주권해. 또 자기의 모든 행위를  양심이 주권합니다. 자기 신체를 양심이 주권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양심이  주권하요, 그만 양심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감옥에 갇히라면 갇히고  어떤 것이든지 양심이 소유나 행위나 신체나 생명이나 그 그것을 양심이 주권해  가지고 양심이 명령하면 신체도 소유도 자기 행위도 꼼짝 못하고 양심대로  복종하는 그것이 장성한 양심이라 그 말이오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모두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목을 안고 울면서 '지금 가면 이제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예루살렘에 기다리고 있는데 어짤라고 갈라 합니까?' 이라니까 사도  바울이 내 마음에 붙들린 바 되어서 내가 안 가고는 못 견디겠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이요? 그 마음이 양심이라 그 말이오. 예루살렘에서 모두 죽일려고 모두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어도 거기는 안 갈 수가 없다. 양심에 가라 이라니까  그게 옳은 줄 알아 놓으니까 안 갈 수가 없다는 그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되어지는 장성한 양심을 만들어야 된다 그거요.

 내가 어제도 주욱 과거를 내가 어떻게 받았으며 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모두  과거에 모든 것 다 이래 생각해 보면 주님이 그래 하셨는데. 요번에는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래 이긴 것 아니오. 믿음이 있어 그래 이긴 것 아니라. 아,  공산주의가 집회하는데 여기 총을 가지고 털컥 그러며 보니까 꽝. 그러는데 이  문에 공산주의가 와서 딱 포위하고 있지 저 문에 포위하고 있지 저 포위하고  있지 문 셋뿐인데 세 군데 딱 총을 들고 딱 포위해서 총을 가지고 딱 놓으니까  꽝! 그러는데 그때는 또 나도 꽝! 그러면 그런 소리하면 깜짝 이렇게 하는데  그때는 또 하나님이 도와서 깜짝도 안 했어 깜짝도 안 하고 이 뭐 이래 이래  가지고 보니까 인민군들이 딱 둘러섰다 말이오 너거 오거나 말거나 설교하는 게  나 할 일이고 주님의 뜻이다. 하고 설교를 자꾸 한다 말이오. 하니까 나오라고  호통을 해요. 호통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설교하고 있오. 설교하는데 그때 이만기  목사님이 집사인데 하도 막 야단을 지겨 놓으니까 나를 가 데리고 나오라고.

이라니까 나와. 이 앞으로 걸어와요. 걸어오는데 내가 그때 고함을 질러서. '어디  걸어오냐고 들어오길. 안 물러가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할 수 없어 그 명령이  그렇지만 내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크다 말이오. 할 수 없어 저 밖으로  기어 나갔지. 그래도 그래 놓고 설교 꼭 끝을 마치고 주기도문으로 폐회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나갔오. 그라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그라니까 ○○○목사에게  고함을 지르고 이라니까 그만 그 사람들이 턱 앉아요. 앉아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배보러 왔습니다. 떡 그래 버려요. 그 사람들 그때 여러번 변동  많이 했어요. 그러더만 또 하도 위에 명령이 그래 하니까 아, 빨리 나오라고 또  그라고, 하거나 말거나 다 마치고 그래 나갔소.

 그걸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한 것 아니오. 나는 그때 믿음이 어려서 그런  담력이 없어요.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신사 참배 이긴 것도 말이야,  마지막으로 견디다가 견디다가 마지막으로는 인제 그때 최고로 잡으러 와 가지고  그 이튿날 오는 날인데 내게 알려줘 그날 뭐 산에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 금식  기도하러 가야 되겠다. 그 화산 만당이라고 하는데 가서 금식 기도하러 가서  갔었는데 고 날이 최고라. 고날 와서 잡으러 오니까 내가 집에 없으니까 할 수  없어. 최고인데 그날 가서 내가 산에 기도하러 금식하러 가면서 거기에 좀 무서운  만당이고 짐승이 많은 만당인데 기도하러 갔는데 어떻게 갔느냐 하면 그 가마니  두개를 가지고 갔더라 말이오. 가마니 두개를 가지고 가 가지고 한 가마니 속에  들어가 가지고 또 가마니 한개 위에 딱 이래 한개, 가마니 속에 쌀 가마니  모양으로 뭉쳐 있지 안해?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그 짐승이 와서 물면 겁이 나서.

그 믿음이 없다 그 말이오. 그 무슨 믿음이 있습니까? 사자 구덩이 그런 믿음  아니라. 그런 믿음인데 그래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거기에서 이래 기도하고  있으니까 공중에서 고함소리가 세 번이 나. 주의 재림이 가까왔으니 인내로 구원  얻으라' 하는 소리가 한 번 나. 깜짝 놀라 무슨 소린가 하니까 두 번째 또 나고  세 번째 또 나. 그라고 난 다음에 인제 금식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내게 신사 참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해요. 말을 한 번도 안  해. '신사 참배 어짜노?'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를 안해요.

 그래서, 그때 가만히 생각하니까 가마니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래 있는 것이  무슨 믿음이 있습니까? 그 믿음이 있는 게 아니라 말이오. 그 뭐 호랑이나 그런  거 오면 잡아 먹힐까봐 겁이 나니까 그때 가마니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만  어짜든지 잠이 올라고 잠이 와서 잊어 버릴라고 그러니까 믿음 없다 그 말이오.

믿음이 없는데 당신이 지켜 주셔서 그렇게 못 할 말도 했고 담력도 많았고, 아,  '천조대신 그 가미다나 내손에 주라 내가 불에 사뤄 볼께.' 또 너거 국기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일본 부장이 그라기 때문에 '국기 그거 내 손에 도라. 내가 불에  태워 볼께. 그 신이 아니다. 태우면 내가 벌 받을 거 아니가? 벌 받으면 내가 벌  받으니까 태워 볼게. 나 국기 줘 봐라. 속지 말아라. 그거 다 신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일본 부장 앞에서 그랬으니까 그 말이 어디 그때 왜정 말년에 해당된  말입니까? 그거는 참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더만 이거는 천지를  모르고 그래 한 말이라. 그래 또 그 사람들이 그말 듣고도 아무 말도 안하고 또  말을 안 했어. 이러니까 하나님이 순전히 지켜 주셨어요. 나는 그때 그 만한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러니까, 하기는 양심이라는 것이 장성한 양심이 되면 죽을 곳이라도 양심이  명령하니까 꼼짝 못 하고 재산이다 뺏겨도 양심이 명령하니까 꼼짝 못 하고 그  양심이 자기의 소유에 대해서나 행동에 대해서나 몸에 대해서나 생명에 대해서  자유 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진 양심이 장성한 양심입니다. 그 양심이 되면 그  양심이 되면 그만 우리는 되는 거라.

 그라면, 우리가 양심 행위 하는데 양심 행위와 신앙 행위는 다릅니다. 신앙 양심  행위와 신앙 행위가 다릅니다. 신앙 양심 행위는 인적 요소요 인간편에서 있는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는 받았지만 그 인적 요소가 주체돼 가지고  있는 것이오. 그 신앙 양심 행위와 신앙 영감 행위가 신앙 행위입니다. 온전한  신앙 행위가 됩니다. 신앙 양심 행위는 인적 요소요 신앙 영감 행위는 인제  성령이 나를 주권해 가지고 이렇게 하는 행위가 신앙 영감 행위니 영감 행위가  되면 성령이 인정한다 말이오. 성령이 인정하면 영감 행위가 되면 그것이 막바로  뭐이 되느냐? 온전한 신앙 행위가 됩니다. 그 신앙 행위가 되면 무어냐?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신앙 행위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거 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신앙 양심 행위가 안 되면 신앙 영감 행위는 안 되고 신앙 영감  행위가 안 되면 온전한 전능의 신앙 행위는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행동 가운데에는 아홉째는 모든 지체로 일하는 것 보다  우리 손으로 일하는 것보다 요거는 어려운 말이오. 모든 지체를 일하는 것보다  양심으로 일하는 것이 수입이 크다. 양심으로 일하는 것보다 영감으로 일하는  것이 수입이 크다. 영감으로 일하는 데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수입이  제인 크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해서  하나님의 축복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 행위가 손해가는 거 아니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는 양심 행위한 그 사람이 최고의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온전한 행위에 나아갑시다. 온전한 행위 신앙 행위는 결단코 영육에 실패  없습니다. 금생과 내세에 실패 없소. 이것이 첩경을 걸어가는 것이오. 지름길을  걸어가는 것이오. 이보담 더 빠른 성공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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