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십일조

 

1981. 2. 1. 주일오후

 

본문:고린도후서 9장 10절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심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가진 것을 버리는 것같이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내어 뿌리는  것입니다. 뿌리되 불에 뿌리면 타 버릴 것이고, 또 헛된 데 뿌리면 썩을 것이고,  옥토에 뿌리면 그 하나가 나서 한 줄기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는데, 한  알이 떨어지면 열 줄기도 되고 다섯 줄기도 되고 몇 줄기도 됩니다. 그러면 뭐  천이 될런지 천 몇 백이 될런지 그렇게 많이 버는 것입니다.

 이건 비유입니다.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에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에다가 심는 것, 하나님의 계약하신 그 계약을 믿는고로 그  계약대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다른 데는 말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사업에 같이 투자하는 것이라, 하나님에게 꾸어 주는 것이라 그렇게도  말했습니다. 왜?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요새 주식회사라 하는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 회사에서 하는 그 일에 자기도 자본을 투자한다. 그래 가지고 한  주를 산다, 두 주 산다, 세 주 산다 이래 가지고 그것 샀는데 그 회사가 망하면  실패요 그 회사가 점점 흥왕하게 되면은 만 원을 주고 한 주를 산 것이 그  회사가 십 배가 흥왕된다면 십만 원이 되겠습니다. 백 배가 흥왕되면은 백만 원이  되겠습니다. 그런 것은 그 주에다가 자기가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것을 말하고 가진 씨를 옥토에다가 뿌리면 자기 손에는  없어졌지마는 옥토에 뿌렸으니까 그것이 싹이 나 가지고서 자라면 몇백 배 몇십  배가 될 수 있는 그와 같이 하나님이 계약하신 그 계약을 믿고 계약하신 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을 구제하는, 인간을 봉사하는,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여기에 투자하는 것을 가리켜서 심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를 준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실 때에 그 주신  것에는 다 자기가 사용할 것도 아니요 이것을 다 하나님이 인간 구원, 인간 구제,  요새는 아주 어려운 불우의 이웃을 돕자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세상이 있어 갈수록 점점 이것이 더 커지고 굳어질 것입니다. 왜? 그것은 인간의  머리가 열릴수록 그것이 옳은 주장이고 그 결과가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도 그 면에 차차 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소유든지 심신이든지 시간이든지 그 모든 것에는  전부 저만 위해서 사용하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믿는 사람에게도 다 그 주실 때는 얼마는 너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을  하고 얼마는 너를 위해서 사용하라 이것이 말 없는 가운데에 똑똑히 계산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자기 쓸 것을 가리켜서 먹을 양식이라, 너 먹을 양식이라 하는 것은 자기  쓸 것을 말하고 씨는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인간 도움을, 인간 구원을,  다른 이를 위해서 쓰는 그 종류를 가리켜서 씨라 말했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를 준다” 자기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이 주실 때에 구별해서  주신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이래 나만 먹을 게 아니라 나만 먹고 배고픈  사람이 있는데 되겠느냐? 나만 할 것이 아니라, 나만 위할 것이 아니라 이것 내  옆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이 사람을 도와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것이 다  자기 양심으로 심을 분량을 자기가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니 소련이니 말하면 미국에서 소련을 양식 안 주면 그만,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삼 년만 안 주면 굶어 죽습니다. 삼 년 안 돼서 그 소련 다 굶어  죽어버립니다. 이러니까 참 모가지를 딱 거머쥐고 있는 것 한가지요. 이렇지마는  소련은 미국이 양식 안 주면 어짤까 하는 그런 데는 염려 하나도 안 가집니다.

 왜? 그들이 벌써 미국 사람들의 종교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심을 것은 있는데  너거에게 주는 것은 우리 먹고 살 것까지를 다 양을 합해서 준 것인데 너희들이  먹을 것 안 주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진노받고 망한다.’ 하는 그걸 딱 약점을  잡고 있어.

 촉분 지르는 것 봐서는 이놈을 굶어 죽이든지 말든지 안 주고 딱 끊어서 삼 년  이내에 저가가 굶어서 죽을 지경이면 뭐 전쟁 기구고 뭣이고 다 안 할 터이니까  밥 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마는 안 주면 하나님께서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준다” 너희들이 그들이 배고픈 것 네게 책임 있는데 네가 봉사할 것  다른 이의 이웃을 위해서 투자할 것 투자하지 안 하면 너거에게 너거 먹을  양식도 안 준다. 씨도 안 준다. 이러니까 안 줄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 인도에서는 ‘우리 굶어 죽는다. 일 분 동안에 사람이 하나씩 굶어  죽는다.’ 아니 ‘삼 분 동안에 하나씩 굶어 죽는다.’얼마 동안 막 떠들지  안했습니까? 이래 떠드니까 ‘아이구, 이것 굶어 죽는 것 우리 책임이니까 이것  안 줄 수가 없다.’ 이래 가지고 마구 원조를 해 주니까 그쪽에서는 그말 해  가지고 주는 원조 가지고 딱 핵 준비를 딱 해 버렸다 말이오.

 지금은 원자 준비를 핵 준비를 해 놨기 때문에 인도를 아무도 세계 나라가  깔보지 못 합니다. 안 되면 팡 터주면 너하고 나하고 같이 죽자 하니까 이제는  꼼짝 못하게 된다 말이오. 이래도 왜 심을 것 심으지 아니하고 못 견디느냐?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새 저는 기도 가운데 기도 제목 하나는 그것입니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제일 으뜸가는 우위는 미국에게 맡겨야 되지 소련에 맡겨 가지고는  그건 잔인해서 도무지 세계가 혜택을 못 볼 터이니까 등신이니 바보니 해도  그래도 미국이 제일 높은 우위를 가져야 온 세계에 평화가 유지되겠습니다.

미국에 우위를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을 제가 오래 전부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이 말씀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심는 자에게, 많으면  심을 것도 많고 적으면 심을 것도 적습니다. 자기가 꼭 하루 세 끼 죽밖에 못  먹을 수 있는 그런 형편에 있는데 옆에 죽도 못 먹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밥을  못 먹는데’ 할 게 아니라 그래 그보다 나으니까 ‘내가 줘서 죽을 같이 먹어야  되겠다’ 그것이 심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목숨이 있고 내가 예수를 믿고 지내니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먹고 쓸 것을 애껴 좀 덜 먹고 덜 쓰고 이것을 가지고서  거게 선교사를 파송를 한다, 믿는 전도사를 파송한다, 교회를 세운다, 이러면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서 멸망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나 넉넉히 쓸  것 모자란다고, 쓰고 먹고 남는 것 없다고 해 이게 되겠느냐? 여게서도 그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 해서 여기에 투자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심는 자라 이랬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그런고로 우리는 가지고 있는  재물이든지, 가지고 있는 내 몸에 건강이든지, 가지고 있는 내 지혜 총명이든지,  가지고 있는 내 생명이든지, ‘뭐 내 생명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나만 위해 살아야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살면서 내가 다문 며칠이라도 봉사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내가 이렇게  건강하니 하다 못해 안 되면 이웃에 무엇이라도 좀 이 건강 가지고 나만 다 쓸  게 아니라 돕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인간 구원을 내가 알았으니 내가 이 건강 가지고 다문 얼마라도 복음에  바쳐야 되겠는데 내가 사족이 성해서 돌아다니지 못하면 생명이 있으니까 누워서  내음새를 피우면서라도,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마는 이래 누워 가지고 기도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게 심는 것이라 그말이오. 심는 것 양식, 자기가 쓸  것과 심 는 것, 요 두 가지를 많든지 적든지 반드시 한 가지만 주는 일이 없고 두 가지를  겸해서 주시는데 주시는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요것은 적지마는, 나 혼자  쓰기도 적지마는 그래도 심을 분량 요것은 심어야지.’  이렇게 해서 심을 것은 심고 자기 먹을 양식은 자기가 먹고 이리 하는 자에게  “너희 심을 것을 주사” “너희 심을 것을 주사” 너희가 투자할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네 먹고 사는 것도 풍성하고 남을 돕는 일도 풍성하고,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네가 옳은, 네가 옳은  인생의 결실을 더하게 하시리니, 네가 옳은 일을 더하게 하시리니, “의의 열매”  좋은 결과, 의의 결과, 좋은 성과 “그것을 더하게 하시리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서에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디다.

어느 서에서 저에게 전화가 왔는데 전화가 와서 ‘서부교회냐’고 `서부교회라'고  `서부교회 목사님이십니까?' 그래 내가 그렇다 하니까 아주 그 사람이 처음부터  존경을 하고 이렇게 참 아주 반가운듯이 이렇게 전화를 하면서 ‘서부교회는 참  남을 돕는 그런 봉사의 일을 많이 한다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 들을 때 내가  어떻게 깜짝 놀라고 부끄러운지 말이지. ‘아이구, 당찮은 인사입니다. 그런  인사는 제가 감당하지를 못합니다. 그런 일이 없습니다.’ ‘아니, 제가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인제 교회에 여러가지 실정을 자기가 묻습디다. 그래서  제가 아는 대로 대답을 해 줬습니다.

 또 좀전에 어느 동회에서 저에게 또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왔는데 또 그런  전화 가 와. 내가 그럴 때에 어떻게 마음에 부끄럽고 초조한지. ‘야, 이것 내가 한 일  없이 칭찬을 받고 이렇게 존대를 받으니.’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마는 우리로써  참 할 대로는 이 복음 운동 인간 구원 구원 운동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 일반  사회에서 알도록 뭣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일 년에 몇백만 원 구제로  이래 여게저게 하는 것뿐이지 별로 없는데 이런 인사를 할 때에,  그때에 내가 느껴진 것은 ‘참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실 수밖에 없겠다.

그분들이 뭣 때문에 나를 보고 욕을 할 것이고 그리 안 하면  몰라 지나갈 것인데 이렇게 좋아하고 칭찬을 할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만물의 영장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형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심입니다. 요즘에도 보니까 불우의  이웃을 돕는다는 이런 일을 위해서 뭐 자기 힘껏 해 가지고서 그저 자기 생활은  어찌 되는지 모르고 근근히 생활하고 자기 업체가 넘어지지 안하도록 이것을  유지해 나가고 온 그 직원이 꼭 동등으로 같은 생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근근 절약해 가지고 함께 의논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그런 일을 하는  그런 회사는 떳떳하고 직공들도 ‘야, 우리가 좀 박봉으로서 굶어도 참 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이래 가지고 이번에 돕는 일을 얼마를 하지 안했느냐? 어떻게  하지 안했느냐?’ 이러니까 그분도 삶의 보람을 느끼고 근검 절약 그 절식하는  그런 데서 참 보람을 느끼고 그 사원들이 사니까 그 회사는 자꾸 잘 돼.

요새 불경이니 뭣이니 해 가지고 절단나는 회사는 넘어지지마는 속으로 굉장한  견강한 힘을 가지고서 일어나는 회사는 일어납니다. 그것은 다 뭣이냐? 인간의  본궤도에 서서 인간의 본정신을 가지고 사는 모든 기관들이요 단체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은 이 복음 외에는 이방인들이 그것을 알고 하는 일이지마는 우리는  그것보다도 이 육을 구원하는 것보다도 영을 구원하는 게 더 크고, 세상만을  구원하는 것보다 무궁을 구원하는 것이 더 크고, 일시 구원하는 것보다 영원  구원이 크고, 물질의 구원보다도 그 사람의 행위와 사람을 고치는 이 일에 돕는  일이 크다 이렇게 우리가 평가하기 때문에 우리 힘있는 것을 복음에 기울여  바칩니다.

 얼마 전에 여기 주일학생들 때문에 참 이 이웃에서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  이웃들도 다 그분들도 다 양심가들이오. 양심가들인데 시비가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래 나는 한번도 안 나갔습니다. 내가 얼핏 들으니까 ‘어린아이들  코묻은 돈까지 전부 긁어 가지고서 마구 목사라는 그 인간이 부자가 됐다.’ 이런  말이 퍼뜩 들려. 이래서  ‘이분들도 양심을 가진 분들인데 이분들이 잘못 알아서 오전을 듣고 오해를 해  그렇구나. 다음 주일에는 내가 나가 봐야 되겠다.’  분쟁이 싸움이 일어났는데 내가 나갔습니다. 나가니까 나는 모르지만 그분들은  내 얼굴을 잘 알기 때문에 와아 뭉쳐 옵니다. 내가 와서, 왔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수고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내가 그만 단도직입으로 그만 첫말에  말했어. ‘이 예배당은 아무의 집도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의 집들입니다.

당신들의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내 소유는 일전 한푼도 여기 없습니다. 이 모든  명의 등기는 이 교회로 돼 가지고 있고 이 교회로 돼 있지 아무 이름으로도 돼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여게서 얻어먹고 입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명령 내리면  여기서 그만 이동되면 나는 침구 하나도 내것 없고 입은 옷뿐이지 심지어 옷장  있으면 그것도 이 교회 것이지 내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것이 없는 내 입은 단벌  이것만이 내것입니다. 오늘 가면 갑니다. 당신들도 예수 믿으면 이것 다 당신들의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밝혔습니다.

 이러니까 그분들이 당장에 확 바꿔져 버려. ‘진작 목사님이 나오시면 좀 아무  이렇지는 안할 건데 목사님 안 나오고 딴 사람이 나와 가지고 자꾸 이래 쌓아니  말도 통하지 안하고 부애가 나서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나, 그 사람들도 대번에  알아.

 ‘이것이 과연 자기를 위함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모든 사람의 행위를  고치고 모든 악을 징계하고 선을 숭상하는, 사람을 선도하는 이런 일에 투자하는  것이고 개인의 사욕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발견할 때에 오히려  부끄러워 여겨. 여기더니마는 ‘그러면 이제 마음에 흐뭇합니다. 목사님을 못  보니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가겠습니다.’  그래 내가 그 자리에서 ‘어서 다 나와서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읍시다. 그러면  이것 다 당신들 것들입니다. 믿으면 달라집니다. 그 아이들 보는 것도  달라집니다.’ 이러니까 ‘예, 전도는 뒤에 하시고 오늘 이래 싸우는 판에  전도하면 됩니까? 이제 우리가 알았습니다. 갑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한번도  그분들이 말한 일 없었습니다. 우리도 다 양심이 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심으면 더 많이 주고 또 심으면 더 많이 주고 심으면 더 많이 주고  심으면 많이 줘서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의로운 결실을, 의의  결과를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더하게 하시리니” 저는 얼마 전에,  오전에 설교한 것과 같이 ‘이거 야, 우리 교회도 이것 경제에 대해서 어려움이  있구나.

예배 처소를 어떻게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내게 처음에  하나 생각이 나왔습니다. 나와서 이부 삼부로 보면 되겠다.

이것을 생각했습니다. 이부 삼부로 보면 되겠다. ‘오, 주여, 이부 삼부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일차 해결을 봤습니다.

 그래 가지고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자기들이 실무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다 실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내가 이 발표를 했습니다. 하니까 이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은 그분들은 실질적으로 해 봤기 때문에 나보다 더  똑똑히 알고 있다 그말이오. ‘안 됩니다. 이런 조건으로 이부 삼부가 안 됩니다.

저런 조건으로 안 됩니다. 장년반은 돼도 유치반은 안 됩니다.’ 이랬습니다.

 ‘자, 그러면 또 더 좋은 안이 있습니까? 안이 있거든 말하이소.’ 다 말하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이 문제를 가지고서 우리가 좀 연구해 봅시다.’ 가서  돌아가서 가만히 침상에 누워서 밤새도록 생각해도 안 되겠다 그말이오. 이부  삼부는 안 돼.

 ‘하, 이것 내가 처음에 이부 삼부로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은 성신의 감동으로 준  것이 아니고 이것은 이것 인본주의 내 생각이다. 이것 틀렸다.’ 이제 다시 그만  기도 제목이 바꿔졌습니다.

 그다음부터 하나님 앞에 이제 ‘이 어쩌렵니까?’ 이 처소를 위해서 기도를  내가 한 사날 했습니다. 한 사날 하니까 내게 깨달아지는 것이 ‘야,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가 더 맺게 하신다고 했는데  이제 너거 교회에 새 부자가 많이 날 것이다.’ 이게 내게 확 확신이 됐습니다.

 오, 하나님 앞에 계약대로 심을 것 심으면 조그만하지마는 한 닢푼치밖에 안  되지마는 심으니까 또 두 닢 줘, 두 닢푼치 심으니까 또 네 닢 줘, 네 닢푼치  심으니까 또 열 닢 줘. 열 닢 심으니까, 자꾸 주는 대로 심는 대로 또 주고 심는  대로 또 주고 또 주고 이러면 몇번만 거석하면, 내가 그때사 웃으며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서부교회에 교인의 수가 늘어 나가서 죄인들 구원 얻는 수가  많은 동시에 경제 부흥도 이제 일어나겠구만요. 주여, 감사합니다. 내가 여게  대해서 이제 확신을 가지고 안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언제 내가 이것을 그러면  증거하오리이까?’  그동안에는 늘 허락을 안 하다가 오늘 주일날 이것을 증거하도록, 다를 때는  내가 설교할 때 언제든지 예배보는 십 분 전, 이십 분 전, 혹 이르면 한 시간 전,  그 전에는 무슨 설교 할지를 받지를 못합니다.

 만날 죽자껏 ‘뭐입니까? 뭐입니까? 뭐입니까?’ 이래 사람이 가슴이  도근거리고 요래 있다가 어떨 때는 한 십 분 전에, 예배 시간은 됐는데 있어야  말씀을 안 줍니다. 이러면 죽을 지경이오. 참 바짝바짝 마릅니다. 이러다가 오 분  전에나, 어떨 때는 강단 위에 할 수 없이 시간 됐으니까 섭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 낭독하시고 이어 증거해 주실 겁니다’ 하니까 안 나올 수는 없고 나오면  그때사 줄 때도 있다 말이오. 이번에 이 오늘 설교한 것은 삼 일 전부터 결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하라고 해서 허락해서 결정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도리를 깨닫고, 이제까지는 가난하니까 여러분들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가지고는 지금 그것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오전에  설교한 대로 지금부터 하는 것, 또 자기가 과거에 했던 것, 어떤 사람은 과거에 해  나와서 십일조 바치던 사람은 바치고, 이제까지 안 하고 있던 사람은 이제  수입되는 것 오늘부터 하는 것이라도 요것을 시작하면, 자, 십일조를 바쳐,  하나님께서 하늘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창고가 없을 만치 부어 주나 안 주나  시험해 보라 하니까 여러분들 그래 봐 가지고 안 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호소를 하십시오.

 다른 것 없어도, 여기는 십일조 말해 놨어. 십일조 말했기 때문에, 십일조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물질에 대해서 자기가 한 끼 채소 먹는 것도,  근채까지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인과 의와 신, 이것은  인격을 바치는 것, 인격 바치는 건 뒤에, 우선 물질 십일조부터 바쳐서 하나님  한번 시험해 봅시다. 여러분들에게 축복이 있는가 없는가?  그렇게 해서 바치니까 또 하나님이 주시고 바치니까 또 주시고 이러면 우리 이  교회에 물질 풍성되는 것보다도 십분의 일이 와 가지고 교회에 물질 풍성이 되면  우리 교인들에게는 십분지 구가 쌓이는 것 아니요? 교회가 하나 부자 되면  여러분들은 아홉 부자 됩니다. 아홉 부자 돼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경험하고 체험해 나온 것입니다. 나는 처음 믿을 때부터 그  생활했어. 말라기에 보면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도적질이 뭣이뇨? 도적질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도구로 쓰시는 것은 사람도 쓰고, 물질도 쓰고, 자연도 쓰시고, 나라도 쓰시고  오만 것 다 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구로, 주시는 기관으로 쓰시는  것은 모든 걸 쓰시지마는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경제 부흥을 준다고 해도 국가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요, 하나님이 쓰시는 기관이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요,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모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도 부모는 우리의 은혜의 기관이요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주었다, 주신 주인을 다른  것으로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오는 이 모든 것을 어느 인간이, 어느 사회가, 어떤 방법이, 어떤  지식이, 어떤 과학이, 자기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줬다고 하는 그것이  도적질이오. 우리가 요 죄를 회개를 해야 할 것이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온전한 십일조는 첫째는 지성적 십일조를 말합니다, 지성적 십일조. 지성의  십일조. 아는 십일조 말이요, 아는 십일조. 지성 십일조. 지성적인 십일조. 아는  십일조.

어느 사람을 통해서, 토지를 통해서, 시기를 통해서, 시대를 통해서, 국가를 통해서  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통해서 나에게 주셨으니 첫째로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셔서 주셨으니 거게 대해서도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이걸 주실 때 하나님께서 쓰시기는 이런 것  저런 것 여러가지를 쓰셔 가지고 주셨으니 그도 고맙고 그도 나에게는 참 보배고  귀중한 것이라.’  ‘이랬는데 하나님이 주실 때에 이것을 주시기를 남과 나와, 다른 사람과 나와  꼭 같은 동일의 것으로 알고 이것을 사용하라고 주셨다.’ 이러기 때문에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너희들이 도적질 하던 자가 도적질을 회개하고 손으로  선한 일을 할때에 남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해라”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너 먹을 걸 먼저 말하지 안했어. 저 먹을 줄밖에 모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남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네가 부지런히 일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 이것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어느 것을 통해서 나에게 주셨는데  책임이 있다. 아무것에게는 주지 안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주면은 훅 둘러마실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줬으니 이것 나도 나 혼자 이것을 쓰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암만 하나님이 주셨다고 해도 나 혼자 쓰려고 하면  도적질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얼마는 이웃을 위해서 쓰고 얼마는 내가 쓰고  이래서 씨와 양식이 둘로 구별돼 있다. 이것은 절대 내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  위해서 준 것 아니다.’ 요게 지성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것을 네가 그래 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주실 때에 하나님이 너에게  내가 주실 터이니까 주시는 걸 사용은 그래 하고 주신 분은 어떤 분이라는 걸  네가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표로 계약할 때에 계약하는 계약의 그 표가 뭣이냐?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이웃과 나를 위해서 주셨다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표로 십분지 일을 이 표시로 드릴 때에 과연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지고 그것을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  법정을 정해 놨습니다. 에덴동산에 모든 과실은 먹지마는 중앙의 선악과 한  나무는 먹지 못하도록 금한 것이 뭣이냐? 모든 과실은 하나님이 먹게 해서 먹지  먹으라 소리 안 하면 먹지 못한다. 모든 과실의 주인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요 그 인식을 버렸을 때에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  지식을 알고 십분지 일을 드리면서 속하는 것, 그게 지성입니다.

 또 하나는, 그게 지성이오. 지성적 십일조. 하나는 감사의 십일조.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보다 더 아시고 나에게 구비하게 적당하게, 많지도  적지도 안하고 적당하게 양이 적당하게 시기를 따라서 종류를 따라서 종류를  적당하게 이렇게 필요한 것을 알아 주시니 감사하다. 이것을 가지고 나만 위해서  주셨다면 내가 그 이웃의 저 입을 어떻게 막으며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나와 이웃에 꼭 같이 쓰도록 이렇게 해 주셨으니 참  감사하다.’  ‘또 이렇게 주님이 십일조라는 제도를 정해 가지고서, 깜빡 잊어버리고 그만  이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러다가도 바치는 요게 없으면 가다가 보면은 이것  스스로 생긴 줄로, 어느 인간이 준 줄로, 내가 거석한 줄로 이럴 건데 꼭 십일조  이것 때문에 요 사실을 경성시키고 경고시켜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요렇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 요것 가지고 요다음에 다시 받을 연결을 짓게 하니 감사하다.’  이래 가지고 진정 감사함으로 요 감사적 그 십일조가 요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또 그러고 셋째 하나는 더 있는 것은 뭣이냐? 잘못하면 우리가 작은 것은  십일조를 드리고 큰 것은 아까와서 십일조 안 드리기 쉽고, 큰 것은 십일조로  드리고 작은 것은 또 이까짓 거야 하고 십일조 안 드리기 쉬우니 그것도 주님이  안 주면 되겠습니까? 그걸 만일 제게 안 준다면 저는 죽지, 어떤 작은 것이라도.

 이러니까 모든 자기가 인식하는 대로 자기 지식이 뻗치는 대로 모든 종류를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거기 대해서 머리를 떼서 십일조를 드리는 요것이 모든  종류대로의 구비 십일조라.

 그러기에 지성적 십일조가 돼야 되겠고, 감사적 십일조가 돼야 되겠고, 구비적  십일조가 될 때에 요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니 요렇게 해서 네게  부담된, 네게 부담된 하나님의 집에 물질 부족함이 없도록 해 봐라. 시험해 봐라.

“하늘문을 열고 너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네가  시험해 봐라”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도적질이라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 참 믿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제것이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가  주의 것인데 자기 소유야 으례히 주의 것이지 자기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내가 가지고 쓰는 것은 쓸 데로 쓰고, 이걸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셔 가지고 보관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으며 이래 쓰라 저래 쓰라 하는 대로 내가 쓴다.’ 주인이  하나님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하는 그것이 도적질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닌 어떤 자의 것이라고 하는 그게 도적질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시험에 우리가 들지 안해야 되겠고,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쓰라 하는 데 나는  쓰겠다.’ 그러면 든든하고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몰라 가지고 이런 도적질하는 죄를 짓기 쉽다 말이오. 이제는 알아서  도적질하는 죄를 짓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여기 대해서 온전한 지식,  지성적인 십일조, 하나님의 것이요 주인이 다른 이가 없어. 하나님이 것이라는 것  나에게 아버지가 유업으로 선물로 주신 것, 이것은 나와 이웃을 위해서 둘이  쓰라고 준 것, 씨는 이웃 위해서 쓸 것이요 양식은 나 위해서 쓸 것,  주신 것, 주실 때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제일 우두머리  머리를 떼서 십분지 일을 드리는 그것으로써 내것도 아니요 아무것의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도적질이 면해지고 또 하나님에게 갈라 쓰라는  그것이 이제 성공이 되어지고, 이 십일조는 지극히 작은 연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하면은 속해집니다. 십분지 일 머리를 떼서 드리는 것은 이것을 속하는 것이라.

이것으로 속하는 것이라. 구약에 말해 놨습니다. 레위기에 말해 놨어.

‘속하는 것이라. 이것으로 이것을 깨끗하게 이제 다 해결을 짓는 것이라, 속하는  것이라. 이렇게 해서 십분지 일로 속하게 했다.’  요것을 알고 ‘그럴 때에 법적으로 작정할 때에 그 액이 정해 있는 것이다.’  요것이 지성적 십일조입니다. 지식을 알고 지식을 가지고 십일조 드리는 것이오.

요것이 완전 십일조의 삼분지 일입니다.

 지성적 십일조요, 이러니까 자기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왜?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니 전주가 주면은 전주가 죽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나라에서 주면 나라 흥망도 있고,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튼튼한 분이 주시니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이분이 내게 형편과 사정을 알아서 적당하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을 주실 때에 쉽게도 안 주시고 어렵게도 안 주시고 나로 하여금  거게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적당한 순위를 통과해 가지고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을 나만 위해 줬으면은 이 문제가 해결인데 꼭 둘이 동등으로 씨와 양식으로  요렇게 한테 합해 가지고서 딱 구분해 가지고 줬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다시 요 십분 일로써 해결을 짓는 일을 해서 잊어버리면,’  그렇습니다. 옛날 보면 남의 토지를 주인이 있다가 그 사람들 형편이 불쌍해서  ‘너 삼 년만 도조 대지 말고 붙이라.’ 그러면 삼 년 도조 안 대고 붙여버리면은  그 주인의 토지라 하는 걸 잊어버립니다. 그만 제것인 줄 알아 버려. 그 삼 년  만에 도조 붙이라 하면 꼭 공것 주는 것처럼, 삼 년 공 것 먹었으니까 감사할  것이지마는 삼 년 동안 도조를 안 대다 보니까 그다음에는 안 댈 걸 대는 것같이  아까와하고 툴툴거린다 그말이오. 인간은 그렇기 마련이라.

 이러니까 십분지 일을 드림으로, 드릴 때 ‘하나님의 것이지. 아무것의 것도  아니지. 요것을 같이 동등으로 쓰라고 씨와 양식으로 합해 주신 것이지. 여게  십분지 일을 드리면은 요 해결을 짓고 계약한 대로 법도대로 요것 하나님의  것이라는 걸 구별해서 내가 인식하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돼지지.’ 계산할  때에 그때 이 모든 게 새로와집니다.

 이러니까 십일조 제도 내 주신 것을 인해서 감사하고 기뻐해서 ‘야, 그러면  드리는 데에는 이것 모든 게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에게 드려서,  내가 먹는 것이야 아무래도 좋지마는 다른 이웃을 위해서 십일조 드리는  것이니까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일조 드리는 것이니까 이것을 하는 데는  여게 제일 그래도 좋은 것 해야 되지 잘못하면 나쁜 것 하기가 쉽지 않겠느냐?’  그 밑에 말라기 처음부터 읽어보면 그게 나옵니다. 십일조 드릴 때 이제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억지로 드리니까 십일조 드릴 때에 그 짐승의 십일조를 드릴  때는 눈먼 짐승을 십일조로 드렸어. 다리 저는 걸 드렸어. 병신을 드렸어.

폭망당했습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하지 안했느냐? 망할 수밖에 더 있느냐?”  그다음에 일어서지를 못했어.

 이러니까 ‘야, 이것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은 아니지마는 이것 가지고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데에  인간 구원에 쓰는 것이니까 내가 십분지 일을 드리되 제일 우두머리를 드려야,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는 것이니까 우두머리를 드려야지, 제일 좋은 걸 드려야지,  제일 수지를 드려야 되지.’ 이래서 뭐 거석하면, 아주 가난배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분이 밭에다가 울콩을 심었습니다. 심었는데 그 가난해 놓으니까 밭귀때기가  조그만한데 울콩을 똑 한 옴큼 따 가지고 왔어. 와 가지고, ‘이것 저’ 그때 나는  집사요. 내가 그 교회를  보고 있으니까 ‘집사님, 이것 해 드리이소.’ 내가 알면서 이게 뭣인데 이걸  가져옵니까? 이게 뭣입니까, 대체?’ 이러니까 ‘예. 예.’ ‘뭣입니까? 말하이소.'  ‘우리 밭에 땅나무에다 울콩을 심었더니마는 울콩이 익어서 요것 제일 처음  추수입니다. 요것 제일 처음 거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와.

 요새도 서부교회도 보면은 뭐 얄궂은 걸 가져오요. ‘그것 뭣입니까?’  웃으면서, 자기딴에는 뭐 계산이 있는 거라. ‘요것 제일 처음에 딴 것입니다.

요것 제일 첫 월급입니다. 요것 제일 처음에 생산된 겁니다.’ 그게 구약 성경을  보고 아는 사람이라. 제일 수지를. 요라면서, 지성으로 똑똑히 알고 보니까  십일조를 드릴 때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드려, 감사함으로. 그 감사가 속에  있어서 진정 감사, 단마음 원하는 마음 참 감사, 감사 그것이 이미 과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미래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한다  그말이오.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요, 그다음에 셋째는 그 종류적으로 모든  것이 구비해야 십일조입니다, 구비해야.

 그런고로 요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  주십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그것 그렇게 해 가지고 “나를 시험하여” “나를 시험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보면 알 것 아닙니까? 시험해 보면 알 것  아닙니까?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농사  짓는 데 황충 금하니까 장사하는 데는 장사 방해 금하는 것 아닙니까? 사업 하는  데는 사업을 안 되게 하는 그런 마를 금해 주는 것 아닙니까? 정치를 하는 데는  정치가 안 되도록 방해물을 금해 주는 것 아닙니까? 내나 농사 짓는 데  황충이라면 다 장사하는 데는, 정치 하는 데는, 사업을 하는 데는 그것일 것이고  모든 것 다 한가지 아닙니까?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자기의 생산을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해. 생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미완성이 없어. 될듯 하다가 말고 될듯 하다가 말고,  사람 죽을 일이라. 그런 일이 없게 해. 될듯 하다가 마는 그런 일이 없게 해.

미완성이 없게 하겠다 그말이오.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이러니까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점점  아름다와지고, 다른 사람들이 ‘야, 저 사람 저것 해 가지고 잘 되니까 나도 그것  해 보자.’ 하면 됩니까? 하나님이 축복하면 안 되는 일이 없고 하나님이  저주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다른 사람이 ‘아,  저 사람 참 복이 있는 사람이라. 참 복된 사람이라. 저 사람 참 재수 있어.’ 저거  말대로. 어쨌든지 잘되니까.

 이것이 우리인데 우리가 이런 일을 안 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아이고 그것  오그라져 들어가는 것, 그것 망해 들어가는 것, 비참해져 들어가는 것,’  어떤 사람이 심방하러 가다가 양말 앞이 여기 구멍이 뚫어졌더랍니다. 뚫어지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아이고,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지 말지 말고 그것 좀 발가락이나 안 나오도록 집어  가지고 다니라’고. 그것도 좋은 말이지마는 하나 참 코를 깎는 소리지요.

 인제 그것도, 그래도 그 사람이 재산이 넉넉해서 막 그래도 좀 모든 게 윤택인데  그리 되면 그 사람이 그 소리 안 할 거라. ‘아, 저 사람은 그렇게 부요한데 양말  갈아 신을 시간도 없구나. 양말 갈아 신을 시간이 없구나. 양말 살 시간이  없구나.’ 또 좋게 해석할 거라. ‘야, 저 사람은 저렇지마는 그 사람이 구제를  얼마나 하나? 교회 연보를 얼마나 하나? 저 사람 저 먹을 것도 모르고 저 죽을  것도 몰라.’ 그 앞에 머리가 숙어지지. 자꾸 숙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모든 사람이 너 복되다 하리라. 너 사는 모든 형편이 다 복되다고 모른  사람이 존대하리라. 너 하는 일이 한번 ‘저 사람이 하는 일이면 틀림없어. 저  사람이 시작하는 일이면 그만 그것은 그만 됐어.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안 되는  일이 없어. 아이구, 그 사람이 시작하면 된다.’  그래 내가 부산 와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 안 된 일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못했어. 죄를 지었어. 잘못했어. 잘못 시작한 것이라. 내가 시작하는 것은 한번도  안 된 일 없는데, 된다 했는데 아니 안 돼. 내가 코가 납작해졌어.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합니다. 안 돼. 그것은 내 맘대로 시작했다 그말이오.

잘못됐어. 그것 여러분들이 지금도 아는 사람은 알 겁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때 이 솜공장에 대해서 말한 그것 내가 잘못됐어. 내가 내 생각으로 해. 잘못  시작했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그뒤에는 다 그것 될 수 있는 문서 해 놓은 걸 싹  불에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내가 그것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처리할 일이지 그것 우리가 할 일이 아닌데 했다 그거요. 미완성이  없으며, 하는 모든 생산을 멸하지 못하게 하며, 황충이를 금하여 이렇게 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어찌 돼 가지고 있는지? 하늘문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리 부어 주는지? 복 부어 주시는 것이 안 보이는지? 안 보이면 온전한  십일조 안 드린 연고지. 우리 하는 일에 재가 툭톡 나서 이 재가 나오는 이것  막아 놓으면 저 재 나오고, 저 재 막아 놓으면 저 재 나오고 자꾸 뭐 감당할 수가  없이 황충이떼가 와 가지고 자꾸 절단을 내는 그런 일이 있으면 온전한 십일조를  안 드려 그렇지. 해 놓으면 툭 깨지고 해 놓으면 툭 깨지고 생산이 자꾸  멸해집니다. 될듯 하다가 맙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제 우리  서부교회에 앞으로 경제적으로 부자가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을 달래는  소리도 아니오. 꾀우는 소리도 아니오. 하나님 말씀 가지고 내가 말합니다.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왜? 이제부터 내가 십일조를 작정하고 십일조를 드리겠다, 작으나 크나 십일조를  드리겠다, 드리되 온전한 십일조 그것만 드릴 게 아니라 온전한 십일조, 이 도리를  깨닫고 지성적인 십일조, 지성적인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세상 어떤 것에게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버리고 거기 미혹받지 안해요. 지성적인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그 사람을 하나님 외에는 이렇게 저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인다  해도 그 사람을 어떻게 못 하요, 지성적인 십일조를 깨닫고 드리는 사람은.

 모든 게 하나님에게 주권돼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인다고  겁을 내요, 그 사람이 훼방한다고 겁을 내요,  막 주위 환경을 둘러 가지고 들이 엎는다고 겁을 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여기에서 모든 게 돼 나갑니다. 온전한 십일조.

 지성적인 십일조, 깨닫고 보니까 진정 소망을 가지고서 드리는 감사의 십일조,  성심 성의로 머리를 떼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대주재이신 하나님인데,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신데  이분에게 대접이 되도록, 이분을 섬기는 일이 되도록, 이분을 모욕 주는 그런 일에  그분이 받습니까, 엿새 동안에 다 지은 것인데? 그게 귀해서 그분이 우리들에게  구걸 받듯이 받습니까? 아니오. 우리의 성심 성의를 받습니다.

 지성을 가지고 깨닫는 가운데서 아는 가운데서, 진정 감사함으로 감격해서  머리를 떼서, 셋째로는 구비의 십일조. 종류도 이 종류만 드릴 게 아니라 모든  종류에 십일조를 드리되 저만 드릴 게 아니라, 안 되면 저 혼자라도 드리고,  그다음에는 이제 안 되면 식구 몇만 단합해 드리고, 마지막에는 온 식구 전체가  다 뭉쳐 앉아 가지고 ‘야, 오늘은 우리가 십일조 계산하는 날이다.’ ‘아무 날은  십일조 계산하니까 너거들이 단단히 알고 있다가 그때 빠짐 없이 계산하도록  다  말해라.’ 쭉 며칠 전에 광고하고 난 다음에 와 가지고 자, 오늘은 십일조  계산하는 날이다 우리 다 모이자.’ 이러니까 조그만한 꼬마부터 ‘아버지 뭐, 뭐  그것 십일조 드려야 안 됩니까?’ `그래 그래. 맞다.' 그 계산해서 ‘그 계산에  얼마다. 또? 또? 또? 여게 여게, 누구 뭣 뭣 뭣 뭣’ 이래 가지고서 ‘자, 이제  빠진 게 없느냐?’ 모르면 ‘야, 뭣은 그것 어찌 됐지?' `아, 그게 빠졌습니다.

아버지, 그것 빠졌습니다. 그것도 십일조 드려야 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이것 계산을 해서 십일조를 온 가족이 단합해 가지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요것이 구비의 십일조, 종류, 가족의 단합을 하는 구비의 십일조,  감사의 십일조, 지성의 십일조 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봅시다.

 “네가 이것으로 시험해 봐라.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곳간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주나 시험해 봐라” 하나님께서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이 말씀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것을 이 자리에서도 확신하는 자는 확신할 것이고 ‘아따, 연보하라고  꾀운다’ 그렇게 아는 사람은 알 사람은 알 것이고, 그런 사람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제 꾀에 제가 속았습니다. 어리석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이제까지 십일조를 드리던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가 되지 안한 그것을  회개합시다. 이래서 십일조 드리던 사람들은 온전한 십일조가 되어지도록 갖춰야  될 것이고, 지성적 십일조, 감사의 십일조가 돼야 될 것이고, 구비 십일조가 돼야  될 것이고, 지금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아예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대로 지금부터 시작해서 딱 그것 단정을 해서 시작을 해요.

 자, 오늘부터 십일조를 하고 싶은 마음 있는 사람, 할 사람 말 안 하요. 하고  싶은 마음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봅시다. 하고 싶은 마음 있는 사람 한번 손  들어봅시다. 네, 해야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여러분들이  할런지 안 할런지 그것은 해 보십시오.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우리가 십일조를  합시다.

 이번에 보낼 것은 내가 교회 하나만 말합니다. 몇 교회 보낼 것인데 하나는  말합니다. 저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교회에 보내려 하는 중에 한 교회는  순복음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사람이 늘어 나가는 것과 물질이 뒷받침되는 것이  같이 병행해 커 나가.

 병행해 커 나가서, 내가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벌써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선교하려고, 물질로는 부족함이 없어. 선교하려고 그뭐 대지니 뭣이니  지금도 사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선교에 물질적 기반은 각국에 전부  다 뿌려 놨어. 전부 다 튼튼히 기반이 다 돼 가지고 있어. 가서 일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 못 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물은 있는데 지금 물질 뒷받침이 없어서 못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국내에도 여게 저게, 사람이 없어 그렇지 개척교회 할 만한 그런 중요한  요지에 물질은 뭐 터를 사백 평 오백 평씩 다 이렇게 한 군데씩 사 놓은 데가  얼마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거기 지금 내가 시찰을 보내려고 하는데 거게서  뭐인가? 내가 교인들 어떤 사람에게 풍문에 들었지 아직까지 거기 있는 교인,  먼저 하나 왔는데 내가 뭐 물어볼란다 하고 그만 바빠서 물어보지 못하고 그만  가 버렸어, 시간이 돼서. 이랬는데, 보나 안 보나 이걸 것입니다. 보나 안 보나  이겁니다. 그 교회가 온 교인이 경제 부흥이 돼서 그 교인들이 다 경제가  넉넉해지게 됐는데 다른 것 없을 것이오. 요 오늘 말씀 요것일 것이오. 아마 그  교인이 전부 십일조 할 것입니다. 딴것 없을 것입니다. 가 보면 그게 맞아  떨어졌을 것이오. 인제 우리도 이것이 지금부터 늦게나마 시작돼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을 지웁시다. 지나치게도 하지 말고 꼭 정확한, 첫째는 지성적이어야 됩니다.

지성의 십일조, 감사의 십일조, 구비의 십일조,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요것을  실행합시다. 금년 내에 우리는 경제 부흥됩니다. 어려움 없이 뒷받침 될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경제적 축복은 없습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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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6 온전한 사람 온전한 실력/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70112월새 선지자 2015.12.12
3525 온전한 믿음 /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860715화새 선지자 2015.12.12
3524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 말라기 3장 7절-12절/ 841021주전 선지자 2015.12.12
3523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 야고보서 1장 2절-4절/ 870121수새 선지자 2015.12.12
3522 온전을 향하여 믿음으로 달음질하기/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708금야 선지자 2015.12.12
352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사도행전 20장 20절-32절/ 88040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2
3520 옥토에 뿌린 씨-말씀만 사모/ 마태복음 13장 1절-9절/ 830923금새 선지자 2015.12.12
3519 옥토밭과 백 배/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80406수야 선지자 2015.12.12
3518 옥토,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30330수새 선지자 2015.12.12
3517 옥토,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 830501주후 선지자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