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십일조

 

1981. 2. 1. 주일오전

 

본문:말라기 3장 7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너희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며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은 다 원만치 못한 것이 사람의 단점입니다. 이 면에 장점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면에 단점이 있고 또 단점 있는 그 사람도 또 다른 면에 장점이 있어서  이렇게 서로 서로 섞여 살기는 사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이 교파는 이런 장점이 있고 또 다른 교파는 다른  장점이 있고 또 다 같이 믿는 가정이지마는 이 가정은 이 단점을 보면 당장 망할  것이지마는 또 다른 면에 장점이 있어서 유지가 됩니다. 또 개인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그 장단점이 차이가 있지 있기는 다 있는데 그 장점만 보는 사람은  장점으로 그 사람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또 단점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을  과소평가해 가지고실수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는 제가 알기로는 하나님의 지식을 배워서 깨달아가는 데에는  다른 데 떨어지지 않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또 모든 신앙면에  있어서도 단점에 빠져 있는 그런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단점은 무엇인고 하니 물질면에 대해서는 우리 서부교회가 단점이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서부교회는 지게꾼 교회라 그말은 노무자의 교회라 하는 말입니다. 또  가난한 교회라 또 그렇게 말합니다. 또 무식한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이렇게들 저렇게들 말을 하지마는 그 하나로 그 요지인 근원을 들어 말하면 물질  단점입니다.

 무식하다는 것은 좋은 옷 입을래야 좋은 옷 입을 수 없고, 좋은 가옥에 거처하고  싶어도 좋은 가옥을 거처하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이름높은 그런 사업가가 되고  싶어도 사업가가 되지 못하니까 유물주의 세상에서는 물질 없으면 그만 못난  사람이요, 또 물질 없으면 무식한 사람이요, 물질 없으면 다 무지 무능의 사람으로  도매평을 하는 것이 이것이 인간의 타락 세계에 행사요 또 문화로도 후진 국가의  습성인 것입니다.

 제일 단점은 무엇인고 하니 경제에 대해서 가난하게 지내는 이것이 제일  단점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제일 초급으로 주는 축복이 물질 축복입니다. 이제 그다음 축복이  사람들에게 지능을 주는 축복입니다. 그다음 축복이 사람이 성공되는 사람 부요의  축복인 것입니다.

 서부교회는 죽자껏 노무자들이 벌어 가지고 영양실조 될 만치 자기가 궁핍하게  지내면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인도해 보겠다고 그렇게 심신을 기울여 어느  교회보다도 자기 역량대로는 다해서 사람을 구원해 보려는 이 반사직을 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 깨달음의 지혜는 높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 외에 천하를 다스려서 권세를 가졌다 할지라도 다 불탈 것이지마는  예수님의 이 공로로 인간을 구원하는 이 일은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무궁세계에서 잃지 않겠다고 하신 이 알찬 일 영원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 사람들은 깨달음의 지혜는 어떤 정치가보다, 어떤 사업가보다, 어떤 경제가,  과학자보다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에 비추어서 높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면에 대해서는 모두 다 곤고함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면으로 빈곤하게 지내는 그 원인은 여러분들에게 있지마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은 제이 원인이고 제일 원인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있은  이유는 경제면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그것을 제가  이제까지 별로이 가르친 일이 없었습니다. 일 년 내내 연보에 대한 설교는 한번  있을까 말까 했습니다. 또 건축이나 이런 일이 있어도 혹 한번 있거나 어떨  때에는 연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아니하고 지내가는 때가 많았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마다 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이 성구를 지켜  어떤 사람은, 꼭 그것은 그래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매새벽에, 어떤 또 집회에 갈 때에 언제나, 특별히 하나님 앞에 간다고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간다고 생각할 때는 빈손 가지고 가지 안하는 그런 일을 일생 동안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서는 그런 것을 제가 별로이 성경을 들어서 가르치지를 안했고  또 연보하는 것도, 연보 주머니를 돌린다, 또 연보 바구니를 돌린다, 또 연보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붙여 광고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외식이 아니겠느냐 해서  연보궤를 만들어 놓고 누가 넣는지 안 넣는지 그렇게 연보를 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할 때에 ‘참 그것이 좋다. 그게 옳다.

하나님 앞에서 광고를 하고 연보 주머니를 돌리고 그러는 것보다는 그게 참  신사적이고 그게 또 하나님 앞에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 은 ‘연보를 잊어버리고 갈 때도 있는데 그 서부교회는 낱낱이 연보 주머니  돌리면 없으면 그때 참 낯이 화닥거리는데 거게는 그런 것이 없이 연보 주머니를  돌리지 안하니까 좋더라. 연보 바구니를 돌리지 않기 때문에 좋더라. 연보한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광고해 선포하는 그 듣기 싫은 소리하지 안하니까  좋더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이것이 오랫동안 지내 나오는 가운데에 이  경제면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지를 못해서 경제에 이 축복이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 축복과 어깨겨룸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성장돼 가지 않는다 하는 것을  요즘에 와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우리 서부교회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싶다 할 때에 개척교회를 할 만한  사람이 있는데 물질이 없다 하는 그런 궁핍을 느껴본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물질은 있으나 사람이 없다 그것을 느껴왔고 또 우리 서부교회에 교인이 없어서  문제지 예배 볼 장소가 없어 문제 되지는 않는다 하는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교인은 많은데 예배 볼 장소가 없어서 이것이 문제다 하는 그런 궁핍감을  느껴보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면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강조하지도 안했고 또 거게 대해서는  연보궤를 해 놓고, 월정 연보도 다른 데는 있고 십일조 내면 십일조 내고 안 내는  사람들도 다 그것 있고 이름이 있는데, 교회에 교인의 교적부 그 명단과 같이  십일조 명단도 꼭 같이 되어 있고 이러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 유치한 일이  아니겠느냐 외식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해서 그 면을 별로이 여러분들에게 깨우쳐  드리는 그 일을 등한히 했던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경험한 대로, 저는 예수님 믿기 시작한 그때부터, 성경에 보니까  십일조 말했는데 그게야 하기 쉽지 않소? 십일조는 그 시부터 했습니다. 또  연보할 때에 누구를 보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물질의 축복은 예수 믿은 지 삼  년이니까 축복 받았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그때는, 지금은 모든 사업들 이 공업들이 많이 발전됐지만 그때는  일본 나라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그런 업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술도가 하는, 사람 망치는 그 업체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업체를 제가  해서 술도가 술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예수님 믿는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술도가 하면서 많은 돈이 있었습니다. 저 동리에 가서 누르팅팅하이  좀먹은 썩은 돈이 나오면 ‘술도가 백영희한테서 나온 돈이로구나’그렇게  일반이 알았습니다. 왜? 둘 곳이 없기 때문에 벽에도 창고를 내놓고 거기다 갖다  넣어놓으면 동록이 슬고 또 나중에 내 풀고 이랬는데 예수 믿은 후에 불의한  재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 푼도 없이 다 흩쳤습니다.

 이리 저리 다 흩쳐서, 그저 제 보기에 여기 쓰는 것은 가타 싶은 데는 다 해서  하다가 마지막에는 성서공회에, 줄 데가 없어서 거기 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지 후 삼 년 동안 곤고한 생활을 지냈습니다. 콩잎파리죽, 쌀이 없어서  콩잎파리도 온 걸로 이와같이 넣어 가지고서 쌀내끼 뜨문 뜨문 있는 것, 그래  먹으면서도 하나님의 계명대로는 지켰고 십일조는 꼭꼭 지켰습니다.

 삼 년이 되니까 어찌 되는지 제가 부자가 됐습니다. 저거 장모가 와서 말하기를  ‘야, 너거는 술도가 할 때와 같이 돈은 한 푼도 안 버는데 쓰는 것은 그때  요량하면 훨씬 많이 쓰고 재산은 점점 많이 늘어가고 하니 너거 한 사람  전도하는 데 대체 돈을 얼마나 받길래 그러나?’ 자기 딸한테 와서 묻더랍니다.

그들은 그렇게 계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에 내가 고제면에 있었는데 주상면에 내려가니까 면에 있는 우리 팔촌형이  있다가서 말하기를 쫓아오더니만 손을 잡으면서 ‘야, 내가 여게서 소문을  들으니까 자네는 소 - 소 코군더리 하나 요만합니다. 한 마리 코군더리가  요만하요. - 코군더리만 빼도 추럭으로 세 추럭 된다면서? 정말로 그렇츰 소가  많으나?’ ‘뭐 그렇지는 많지 안하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는 많습니다.’  그러고 지냈습니다.

 그때 왜정 말년에 제가 대구 오니까 제일 좋은 높은 여관에 가면 밥 주지  싶어서 가니까 겨로 만든 떡 세 개 외에는 식사가 없습디다. 그렇게 쌀  귀했습니다.

 모두 배급은, 전부 다 공출하고 배급을 가면 요만씩 하나 앞에 그저 솔방울  요만밖에 안 되는 걸 그냥 먹으면 다 굶어 죽으니까 나오면 이것을 구십 봉지를  만들어 가지고 천장에 달아놓고 한 끼에 한 봉지씩을 내 가지고서 그저 뭐 그걸  물에 풀든지 어쩌든지 해 가지고 먹는 사람은 부앙 안 나고 살았습니다. 그때  형무소에서는 영양실조로 죽어 나오는 그 죄수들이 거의 다 죽어 나오고 남은  죄수들이 없었습니다. 그만치 어려울 때입니다. 어려울 때도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 곳간 안에는 쌀이 곳간으로 꽉 재여 있었습니다. 그때에 뭐 소원하는 것이면  뭣이든지 쌀만 주면 다 됐습니다.

 제가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믿기를 바로 믿으면 물질적  축복이라 하는 그것은 삼 년이면 다 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제가 얼마 지나고 나서 유급의 전도사로 나오면서 또  이차적으로 다 없앴습니다. 할당으로서 자녀들에게 다 모가치 줬어. ‘너거  모가치는 어쩔래?’ `나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다 바치고  우리 가족 한 사람은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 남았었는데 그것은 나중에  다 불의의 재물로 다 쓰여지고 맙디다.

그러고 교역자로 나섰습니다 나섰으나 오늘까지 경제에 어려움 당한 일 없고,  교역자로 나오고 난 다음에도 호박죽 사흘 동안 남 모르게 먹은 일은 있습니다.

처음에 나왔을 때. 제가 위천교회 왔을 때 그런 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계약대로 경제에 어려운 꼴은 한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러기에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만 믿으면 경제라는 그까짓 거야  하나님이 제일 낮은 축복으로 얕은 축복으로, 자기 행위가 고쳐진다 거게  비해서야 경제 그거야 무슨 큰 것입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된다 하는  거게 비하면 행위나 경제 그런 것이 또 무슨 큰 것이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제가 예사롭게 생각해 왔습니다.

 첫 부임이 넷 교회를 맡았고, 그 다음에는 단교회를 맡아 가지고 위천교회를  갔었는데 가니까 교역자로부터 모조리 거지가 돼 가지고서 그저 그 끼를 잇지를  못해 가 지고서 언제든지 죽 굶는 것 그거요.

 거기 가서는 ‘왜 너희들이 이와 같이 곤궁하게 지내느냐? 빈곤하게 지내느냐?  이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회개하라.’ 하는  것으로서 그때 거게서는 제가 하나님 앞에 물질에 대한 이 면을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거게 일 년 반 있다 왔습니다. ‘이렇게 살면 너희들이 삼 년이면 경제  문제는 해결이 되리라’ 선언을 하고 일 년 반 있었는데 일 년 지낸 지 후에는  다 경제가 그냥 조반석죽이라도 끼는 굶지 아니하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난 지 일 년 반 만에, 삼 년이 못 돼서 일 년 반 만에, 제가 부산을 안  오려고 했는데 여게 한상동 목사님, 한명동 목사님, 반손혁 목사님, 송상석 목사님,  이인재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오종덕 목사님 이 일곱 목사님이 연명날인을 해  가지고서 송상석 목사님이 두 번 심부름 올라왔습니다. 오라고 해서, 고신에 제일  머리되는 분들 아닙니까? 안 가려고 대항하다가 하도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왔습니다.

 제가 올 때에 이사 오면은 다른 것은 그때 없으니까 떡을 해 가지고 오다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거게서는 그때는 부산까지 오려 하면은 하루 밤 하루 낮이 걸릴  만합니다. 하루 밤 낮에 잘 못 옵니다. 주야 이십사 시간 만에 못 옵니다. 한  삼십육 시간 돼야 옵니다. 지금은 뭐 참 이렇게 고속이지마는 그때는 차들이 그저  쫓아가는 것만밖에 안 됐습니다.

 오려고 떡을 했는데 밤에 떡을 해 가지고서 새벽에 나서려고 보니까 떡이 발개.

색깔이 발개. 먹어보니까 맛은 조금도 변하지 안했는데 색깔은 발개. 내가 그래서  그것을 껌쩍쳐서 ‘내가 이것 부산 가 가지고서 이렇게 이 껍데기가  변질되겠으니 내가 가지 않겠다’ 하고서 머물렀으나 약속을 해 놔서 어쩔 수  없어서 왔습니다.

 내가 여기 부산 와 가지고서 껍데기는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속은 깨끗합니다.

껍데기 행위가 좀 나빴거나 무슨 다른 사람에 이름이 나빠 그랬지 하나님과  나와에는 결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 결합된 그 진리는 그대로  계속했습니다.

 여기 와서는 보니까 내가 시골 있다 와 보니 생활이 다 모두 괜찮고 시골에다  비해서는 궁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대해서는 별로이 내가 강조하지를  안했고 연보도 궤 놓고 하고, 헛뻐서 연보에 대한 그것을 ‘연보 해라. 안 하면  너희들이 망한다.’ 하는 이런 말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현재에 다른 신앙면으로 다른 면보다는 경제면이 궁핍하다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은 느끼는지 몰라도 제가 기독교 방송국에 가니까 그  국장이 소개하기를 ‘이 서부교회는 지게꾼 교회로 이름이 난 교회인데 그 교회  목사님입니다.’ 하면서 그 직원들에게 소개를 합디다. 그때사 내가 조금  알았습니다. ‘우리 서부교회가 이렇게 궁핍한 교회고 노무자의 교회인갑다.’  그 뒤에는 연신 그런 말이 들어와도 내가 거게 대해서 그것을 별로이 관심 있게  듣지를 안했습니다. 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이니까 노무자  교회가 그뭐 영광되지 뭐 욕될 것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서 예수 믿는다  하는 것이 그것 뭐 욕될 것은 그리 없다.’  이렇게 생각도 했고, 또 개척교회 하는 데도 그렇게 물질에 필요성을 느끼지를  안했고, 또 본교회에서도 물질에 대해서 그렇게 궁핍성을 느끼지를 아니했습니다.

 아니했는데 요즘에는 거게 대해서 제가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인물 양성을 많이  해서 지금 가면 일등 목회자 될 사람들이 우리 서부교회에 가득 찼습니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 파송 못 보냅니다.

 이제는 선포를 그렇게 해 놨어. ‘교회를 세워놓고 목회자로 나가라 이렇게 할  돈이 없기 때문에 교회 세워놓고 목회자로 보내지는 못하겠다. 너거가 너거  힘으로 가 가지고서 개척교회를 해서 교회를 세우면 그제야 전도사라는 인허를  해 주겠고 그러고 난 다음에 목회를 잘 하면 성적 보아서 목사로 안수를 하겠다.

우리가 선교를 할 만한 그런 뒷받침의 경제가 따르지를 아니한다.’

이래서 작년에도 개척교회 다섯 교회를 보내면서 한 교회 이백만 원씩밖에는 못  보냈고 한 교회 가는 그 교역자에게 사례를 월 십만 원씩밖에는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이것도 옆에 모든 지교회들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우리 교회서는 매월 이백만 원밖에는 부담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또 하나님께서 이제 일꾼들이 딴데로 나가서 일을 하지 못하니까 이  안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일을 하니까 이 주일학생들이 가속도로 늡니다.

지낸 주일은 팔천육백 몇 명이니까 약 구천 명이 모였습니다. 구천 명이 모였는데  모인 장소는 다른 사람이 보면 ‘여기 우리 교회 같으면 이천 명도 모일까 말까  한데 여게서 무슨 칠팔천 명이 모여?’ 이랬는데 약 구천 명이 모였으니까  앉지를 못하고 다 섰었습니다.

 또 지난번에 장년반도 삼천 몇백 명이 모였다 하는데 이러니까 이제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저 아랫층에 거의 차서 여기 좀 있으면 딴데로 밀릴 데 없으면 여기  복도에 앉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제사 와서 ‘내가 이렇게 연보에 대해서 연보궤를 꾸며놓고 하는  이것이 공연히 이상주의로, 이상. 이상주의로, 커서 올라간 초월 방편이 아니고  이것은 끊어져서 가는 이 초절 방편이 됐구나. 초절 방편이 됐구나.’ 공연히  저만 생각하고 모든 교인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해 가지고서 여게 대해서  초절해서 이 면이 구비치 못한 하나의 흠점이요 기형적인 서부교회로구나.’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제 이 경제면도 구비하게 자라서, 지식만 자라고 행위만  자라고 사람만 자랄 게 아니라 경제면도 자라서 이 경제면도 같이 보조가 맞아  나가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겠다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벌써 중간반 반사가 스물일곱 사람이 등용이 됐습니다. 아마 금년 내에 중간반이  삼천 명은 더 될 것입니다.

주일학교가 벌써 구천이 가까왔는데 칠백오십 명의 반사가 금년에 등용이 되고  그만한 자격자가 있으니 금년에 주일학교 학생이 만오천이 아마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예배 볼 장소가 없습니다. 요 지역내는 암만 해야 안 됩니다. 딴 지역을  어데 가서 사서라도 사 가지고서 집을 지어서 여게서 선을 연결시켜 가지고서  부득이 이렇게 합동 예배를 보도록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장년반은 일부 이부  많으면 삼부라도 된다 할 수 있지마는 주일학생은 그것이 불가능 합니다.

 왜? 여덟시 반에 예배 본다 하면은 벌써 일곱시부터 오는 학생이 있습니다. 또  아홉시 반에 끝내면 열시까지 또 앉아 있는 학생들 있습니다. 이는 장년반과 같이  그렇게 시간을 규율적으로 지키지를 못하기 때문에 일부 이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가 요하는 것은 지금 있는 이 대지만하고 이만한 건물이 있어야  금년을 감당할 수가 있겠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 서부교인들은 다 가난합니다.

여러분들이 다 가난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낼 수가 없습니다. 가난합니다.

속에는 뭐 어떻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가난타 그거요.

 새로 이 반사 노릇을 하고 모두 진리가 눈이 뜨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아무것도 없던 그 거지가 제대해 가지고 나온 지 일 년, 혹은 일 년 반 되는데  벌써 삼사십만 원의 수입을 봐, 사오십만 원의 수입을 봐, 다 조그만씩이라도  회사라 하는, 사장이란 말 안 들어도 사장이라는 그런 위치를 가지고 있어 또  이런 사람들은 다 그것을 다 등용해 가지고 또 중간반 반사로 채용해 버립니다.

또 그것은 또 권찰 하라고 일꾼으로 채용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내고 싶어도 낼 돈이 없어 못 내고, 필요 있고, 이러니까  이러면 어찌 되느냐? 이는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무한의 소유를 가지고  계시는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주시면 얼마든지 됩니다.

 이래서 요전번에는 제가 며칠 전에 그런 말 했습니다. 나는 기형적인 목회를  했다. 너무 이상적으로 영감과 진리와 행위와 사람되는 여기서만 주력을 했지,  그러니까 세상이 보기에는 등신 같지마는 실은 사람들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초급이라는 일 학년, 제일 초급, 신앙 생활에 제일 쉬운 초급인  일계단이 되는 이 경제면을 밟지 아니하고 경제면을 뛰어넘어서 초절적으로  신앙을 기르고 교훈한 이것이 기형적이었다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느껴서, 얼마 전에 ‘보자, 우리 한국에 경제면이 다른 면보다 앞서 있는 그런  교파가 어떤 것이며 교회가 어떤 것이며 그런 교회를 간추려 보자.’ 제가 몇몇을  생각했습니다. ‘거게는 진리는 뒤떨어져 있고 영감에 대해서는 별로이 생각지도  아니하고 또 세상과 죄로 더불어 싸우는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종교면에  있어서는 생각지 안하고 기껏 해 봤자 도덕면 이 사회면 정치면 그런 면만  생각하지 하나님과의 관련적인 그런 신앙면이라 하는 것은 별로 생각지  못하는데도 경제면으로는 앞서 있는 그런 교회들이 있다.’  ‘또 경제면과 다른 종교면이 알쏭알쏭하게 서로 견제 여깨겨룸을 해 가면서  그렇게 자라 나가는 교회들도 있다.’  ‘그러면 그런 교회들에게 이제 시찰원을 파송해 가지고서 그 광경을 시찰하고  오도록 해야 되겠다.’ 해서 인물을 몇 사람은 선정을 해 놨습니다. 제 속으로  선정하기를 ‘배종일 조사님, 서영준 목사님, 박윤철 목사님, 거게서 그 세 분은  여비를 줘서 보낼 것이고 다른 사람은 자유로 가고 싶으면 자비로 가지고서 갈  수 있도록 가라. 가는 데는 어떤 교회를 시찰하며 그 교회 가 가지고서 어떤 면을  시찰하고 오라 하는 그것은 제가 알려 줄 터이니까 그대로 가서 어떤고 한번  시찰을 한번 하고 오라. 한번 가서 보고 와서 좋은 것을 본떠서 우리도 그렇게  하자.’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자리에서 또 말했습니다. ‘가 봐야 별것은 없을 것이다.

분명히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물질면에 대한 교훈을 하지 안했는데, 마구  이것을 묵살시키다시피 하지 안했는데 그 면에 교훈을 많이 했을 것이다. 가나 안  가나 그것은 그것일 것이다. 그러나 한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 말처럼  실지로 된 것을 보면은 우리에게 믿음이 또 새로와질 터이니까 너거들이 다 봐야  될 터이니까 가 보고 오라.’ 해서 오늘 주일 지내고 월요일날 갈까 화요일날  갈까,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나 양일 중에 하루라고 하루라고 생각을 하고 아직까지  한 날로 정해 주지는 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째로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하고 있는  이 경제면에 대해서 어떤 면이 범해져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가로막혀서  경제 부흥이 되지를 아니하고 있는가? 성경에 보면은 둘을 바랐는데 하나가 되고  그것이 일 년을 잘 저장되리라 했는데 며칠도 안 돼서 썩어빠진다 했습니다. 그  면에 대해서 오늘 일 부분을 증거를 하는 것이 오늘 봉독한 말씀입니다.

 이제 본문에 있는 대로 여러분들이 잘 보면서 합시다. 말라기 3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부터” 선조 때부터 말이요, 선조  때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너거들이 내 법칙을  지키지 안했다. 어떤 자는 이 법칙만 지키고 저 법칙 안 지키고, 어떤 자는 가운데  법칙은 지키면서 양쪽 법칙은 지키지 안하고, 어떤 자는 일계단의 법칙은  지키면서 위에까지 올라가지 안하고, 초절해 가지고 위에 법칙은 지키면서 밑에  법칙을 지키지 안하고, 이래서 “이리 저리 치우쳐서 다 곁길을 가서 다 무익한  자가 되었도다” 로마서 3장에 말씀하신 대로.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이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오늘 선포해 주신 줄 압니다. 다른 면으로는  우리가 주님에게 부르짖고 주님과 가까와졌지마는 이 면에 대해서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것을 주님이 가르칩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우리가 주님에게로  돌아가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제면에 대해서 이 면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범죄를 했습니다. 그 범죄  원인은 저입니다. 제가 거게 대해서 별로 교훈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다른 데는 다 사람이 물질주의로 이렇게 세상이 망하여 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과학 만능이라는 이게 물질주의인데 이걸로 망해가기 때문에 이 면에  대해서 참 설교를 매월 한번 이상은 하다시피 하는데 저는 ‘그것만큼이야  으례히 지켜 나갈 것이 아니겠느냐?’ 하고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면, 신앙면  이 면만을 제가 강조를 했었습니다.

 했는데,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겠습니까 하도다. 이는 이스라엘은 전적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앞에 망령을 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아오라는 그것을 때마침 일계단을 말했습니다.

이게 제일 일계단이오. 일계단 돌아오면 이계단 돌아오고 삼계단 돌아오고  돌아오는 것인데 우리는 일계단을 무시하고 이계단서부터 돌아간다고 이러니까  그 일이 잘 되지도 안할 뿐만 아니라 이 일계단, 돌담을 쌓는 사람이 맨 밑에  돌을 놓고 그 위에 돌 놓기는 쉬운데 밑엣 돌을 놓지 아니하고 위엣 돌을 놓으려  하니까 공중에 돌 놓는 것과 같이 이 일이 힘만 들었지 참 잘 되지를 안했는데  어째 여러분들 가운데도 애를 쓰는 가운데서 일계단이 조금씩 돼 가는 사람들도  있어서 유지가 된 줄 압니다.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인간의 것을  도적질해도 안 될 터인데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 가지고 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아니한 것이 도적질한 것이다. ‘십일조 드리라고 한  것인가보다.’ 여게는 요렇게만 기록해 놨는데 다른 성경을 보면, 이 십일조는  어데서부터 시작이 됐느냐 하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모든 동산 과실을 네가 네 마음대로 먹되, 네 마음대로 먹되  중앙에 있는 과실은 네가 먹지 말아라.’그게 선악과입니다.

왜? 모든 과실을 다 먹게 하면 으례히 먹는 것인 줄 알고, 으례히 먹는 것인 줄  알고, 제가 먹으니까 제것인 줄 알고 거게 대해서 으례히 저 먹을 것이요  제것이요 이렇게 아는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중앙에 있는 것을 먹지 말라  했습니다. ‘중앙에 있는 것은 먹지 말아라.’  거게서 ‘아이쿠,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 먹어야  되는구나.’ 거게서 하나님의 명령 일하에 먹지 내가 먹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또 ‘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말지. 먹지 말라는 것 먹으면 죽는다?  이게 뉘 것인데? 이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먹으라면 내가 먹을 수  있고 먹지 말라면 내가 안 먹어야 되고, 먹지 말라는 것 먹으면 당장 죽는다. 이게  하나님의 것이로구나.’ 그때부터 십일조가 생긴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왜 당신의 것을 도적질하느냐? 도적질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이것을 ‘이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라.’ 주인이 똑똑히 있는데 ‘자연히 있는  자존의 것이라. 스스로 있는 것이라.’ 어떤 자는 제 마음대로 거짓된 신을  만들어 가지고 이런 미신 저런 미신을 섬기면서 이것은 부처가 줬다. 이것은 뭐  산신령이 줬다. 이것은 물왕 그 용왕이 줬다.’ 저거 마음대로 ‘이것은  옥황상제가 줬다. 우리 조상이 줬다.’ 준 이는 따로 있는데 다른 것들 어떤  것들이 줬다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이것은 내 힘으로 만든 내것이다’ 저조차도 제 힘 지혜 총명 모든 전체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을 만들어 하나님의 것인데 제가 만들었다  요게 도적질입니다.

 내가 어떤, 어떤 무슨 조성이나 어떤 성사나 {저 나가요. 저 나가서 그 예배  보고.} 자기가 자기 힘으로 만든 것이든지 ‘이것 내것이라. 또 이것은 나라의  혜택이라. 문화 혜택이라. 과학 혜택이라. 어떤 미신적으로 어떤 신의 혜택이라.’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만들었고 하나님이 보존하셨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데 하나님의 것을 다른 것의 것이라고 주인을 바꿔 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전부 도적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가 준 것이라.’ 그게 도적질이오. ‘이것은 과학 혜택이라.'  그게 도적질이오. 과학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이 과학을 통해서 만드시고  인류를 통해서 만들었지.

 ‘이것은 나라의 것이라. 이것은 인류의 것이라. 내 선조의 것이라. 조상의  덕택이라. 부처의 덕택이라. 어떤 미신이나 마호메트 덕택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보존하신 것인데 이것을 다른 것의 것이라고  주인을 딴데 두니까 이게 도적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저주를 받고  필경은 망한다.

 이 세상이 왜 망할 것이냐? 앞으로 불로 심판을 해서 왜 망할 것이냐? 망하는  이유는 없는 가운데서 주님이 지으셨고, 다른 이종교의 교주는 내가 지었다 하는  말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모든 걸 지었다고 말씀해 놨어.

 제가 언제, 인도의 철학이라 하고 어떤 교수가 강의하는데 불교의 근원은 약간  말하면서 하나의 신화라고 말하고 나머지기는 기독교 걸 다 끌어다 원인으로  이래 붙입디다. 그래도 조물주라는 말을 쓰지를 못합니다.

 주님이 없는 가운데서 지으셨고, 보존하시고, 이것을 운영하시고 이 선악에  대해서 공변되게 통치하시고, 이러기 때문에 강한 게 약해지고 약한 게 강해지고  없는 것이 생겨지고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죄가 다  잊어버리고 난 지 역사를 통해서 오랜 후에 그것이 발견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다 발로인 것입니다.

이런데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이 내것을 다 도적질하고서 내가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것은 너희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다.

 여게는 보면 십일조라 헌물이라 이렇지만 다른 데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감사하는 표로 ‘하나님이여, 이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주셔서 받아 감사하다는  그 표로 헌물을 드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표로. 그 지식이 없이 거게  얼마드리는 그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것은 너희들이 드리는 예물은 가증한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또 말하기를 ‘하나 둘 이렇게 세다가 열이 될 때에는 이게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네가 깨닫고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라 는 그것을 네가 깨달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것인 것을 표시하는 표로  하나님에게 머리를 떼서 십분지 일을 드리라’ 요렇게 내 놨습니다.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도적질입니다.

 그런고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너희들에게 주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이며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유업으로 준 유업이라.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라. 이런고로 이 사실을 표시하는 그 표시로 당신이 정해  놓은 그 액수를 세금 정한 것과 같이,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정한 것과 같이,  계약할 때에 계약의 액으로 정한 것과 같이 이렇게 하나님이 요 십분지 일을  드려서 속해라 했습니다. 속해라.

 따라합시다.

속해라! 속해라! 십일조로! 너의 것이 속함을 받느니라!

 이 말씀은 그 십일조로 하나님의 것을 첫째로 도적질하는 그것을 벗어나게 되고,  제것이 아니라는 것이 표시되게 되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표시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표시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은혜로 사랑으로  유업으로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 하는 요것으로 표시해 가지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이러기 때문에 십일조에 대한 원인과 법칙과 제도를 맞추어서 첫째로 이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마귀의 것도 아니요, 이종교의 아니요, 인류의 것과 아니요,  과학의 것도 아니요, 문화의 것도 아니요, 국가의 것도 아니요, 사회의 것도  아니요,  부모의 아니요, 가정의 것도 아니요, 내것도 아니요 이것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은혜로 당신의 것을 주신 것이다.’아직 온전한  십일조 안 됩니다.

 ‘주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  것이요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렇게 주신 것인 것을 인식하고 인식했다는 표시로 우리에게 규정을 정한 것이  있으니 규정의 정액이 십의 일이다. 이는 으례히 드릴 것뿐만 아니라 이 드리는  이것으로써 이게 속하게 된다. 속량이 된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아버지의 선물을 아버지의 선물로 알아 아버지에게 이  은혜에 대해서 아는 백성, 이 은택을 아는 자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모든 은혜와 나와의 이 관계를 확실하게 하며 확인케 하며 새로와지는 것이다.

 기쁘고 즐거움으로, 요 십일조를 계산할 때에 요 사실을 깨닫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단마음으로 요렇게 드리면서 ‘보자,’ 저거는 농사지을  때 그랬습니다. ‘오늘밤은 기쁜 밤이다.’ 둘이 내외 앉아서 아들 옆에 앉혀  놓고 `기쁜 날 이다. 올해는 우리가 고추를 생고추로 따다 먹은 것은 넉넉잡아 얼마나 되겠지?  마지막으로 딴것은 얼마나 되지? 두름에 심은 콩 수입은 얼마지? 팥은 얼마지?  우리가 무우를 풋무우로 뜯어다 먹은 것은 그 가치가 얼마가 되지?’  거게서 조금 줄면 불안하고 ‘좀 넉넉하게 하는 것이야 좋지 않느냐?’  그러면서 많이 하면서도 `요것은 실상은 올 때 올 때마다 그때 그때마다 요것을  해야 될 터인데 그때 십일조를 드려도 어데 보낼 데가 없고 또 이것 가격 쳐도  이러니까’ 하면서,  농사를 지어서 몇 달 만에, 또 몇 달 지나고 나면 또 그뒤에 수입이 있으니까 몇  달 만에 이것을 계산하면서 그 십일조를 계산하는 그 시간은 기쁜 시간입니다.

 이렇게 낱낱이 계산해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를 주셨구나. 참 많이  주셨다. 풍성하게 주셨다.’ 이것으로 인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주셨는지, 그게 얼마나 되는지?  이것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선물이고 유업이라는 이것을 계산해서 십일조를  액수를 정하면서, 다른 상업에서 수입된 것은 그시 그시로 계산해 가지고, 십일조  계산할 때에 어떻게 기쁜지? 계산해 가지고서 ‘자, 이것을 하나님께 갖다가  바치십시오.’ 서로 바치려고 이 기뻐합니다.

 이렇게 단마음으로 종류에 빠짐이 없이, 내가 가진 이것이 근본적으로 그 사실을  가뤄놓은 그 보자기를 활딱 벗겨버리고 ‘이것은 인간 덕택이라, 문화 덕택이라,  과학 덕택이라, 사회 덕택이라, 부모 덕택이라, 내 덕택이라, 내 기술 덕택이라,  나라 덕택이라, 시대 덕택이라.’ 그런 썩은 소리를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써서,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그것들은 다만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그것들을 만들어 가지고 도구처럼 쓰셨지  근본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주신 데도 일반적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필요한 것을 유업으로 선물로 이렇게 주신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함을 가지고, 한 종류도 빠짐이 없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하나라도 빠질라?’ 이래 가지고 계산하다가 그 이튿날이라도 아이들이 있다가  ‘무엇은 그 십일조 들어갔습니까?’ ‘아이쿠야, 그것 안 들어갔다.' 어떻게  감사하고 기쁜지, 누구든지 그걸 발견을 시키면. 이렇게 십일조를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어 나왔습니다.

 지금은 십일조가 내게는 없습니다. 내게는 십일조가 없어. 왜? 내게 있는 것  전부 당신 것이라는 것을 다 인식했어.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언제든지 요구대로 어떤 장소에서나, 어떤  사건에서나, 어떤 때나 어떤 방편으로써라도 당신이 요구하시면 당신에게 쓸  것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십일조 그런 단계가 없어. 다 당신의 것인 줄 알고  당신이 쓰시는 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나는  내것이 없어.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이 십일조를 이제 오늘부터 시작해서 우리  서부교인들이 온전히 들여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이  서부교회 복음 역사가 일어나서 이렇게 구원 이, 구원이 흥왕돼 나가는 여기에  뒷받침되기에 경제에 부족함이 없게 하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그것으로 나를 시험해 보라. 드려서 이 경제면에  모자람이 없이 뒷받침이 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으로서 네가 시험해 봐라. 시험해  봐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나를 시험하라 말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말입니다.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자 그말이오. 보라고, 시험해  보라 말이오.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내가 축복의 문을 열고 “너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네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도록  네게 과분하도록 붓지 아니하는가 보라. “시험해 보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 말씀은 만군을  왜 붙였느냐? 이렇게 하면 어떤 방해자라도 만군의 세력 가지고 그걸 다  정복해서 이 일을 성취한다 그말이오. 이것을 무시하는 자에게는 만군의 능력  가지고 그로 더불어 시비하겠다 그말이오.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황충을 금해 주겠다. 네 하는 일에 방해물을 제거해 주겠다, 네 하는  일에 방해물을 제거해 주겠다. 농사 짓는 데는 황충이겠지, 정치하는 자에게는  대적들이겠지, 사업하는 데는 사업에 방해자들이겠지.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에게서 생산되는 것을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하겠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하는 것입니다.

 “멸하지 않게 하며 너의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 하는 것이 도중에 실패해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실패되지  않게 하겠다. 완성에 미달되지 않게 하겠다. 완성 미달이 없게 하겠다. 완성  미달이 없게 하겠다.

 12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네 모든 처소가 아름다와지므로, 네 모든  생애가 아름다와지므로, 네 위치가 아름다와지므로, 네가 하고 있는 그 모든  처세가 아름다와지므로, 하나님이 이래 하니까 해하는 것이 제거돼 버려, 모든  것이 멸해지지 않게 하며, 미완성의 것이 없게 하며, 모든 것이 다 결실을 맺도록  이래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네 모든  처세의 생활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너를 보고 듣는 사람들이 다 복되다 하리라.

“복되다 하리라” 너를 보고 듣는 사람들이 복되다 하리라. 욕을 암만 하지마는  ‘야, 암말도 말아라. 그는 복되다. 그는 하나님이 같이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하는 처사를 보라. 그의 하는 행정을 보라. 그이의 처리하는 그 모든 관서 일을  보라. 그의 업체를 보라. 그의 뭣을 봐라.

그의 가정을 보라. 자손을 보라. 그이의 목회를 보라. 그들의 교파를 보라.’  “너희 땅을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부터 우리가 이 일을 지킵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이 일에 대해서 그렇게  내 속에 가르쳐야 될 필요를 가졌다, 가르쳐야 되겠다 하는 이런 필요성을 느끼고  오늘같이 이렇게 가르쳐 본 적은 서부교회 온 이후로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믿을 때에 개명교회 있을 때서는 했습니다. 거게 사람들은 다 십일조  드립니다. 그 동리에 제일 거지들이 예수 믿었어. 전부 거지들만 예수 믿었어. 발  아래 밟히는 인간 찌끄러기만 예수 믿었어. 제가 있을 때보다 나 오고 난 다음에  그 동리에 높은 사람들은 다 이름도 없고 집도 없고 그 좋은 집들은 다 교인들  집 됐어. 그 지방에 제일 으뜸되는 다 사람들이 다 돼 버렸어.

 다 됐는데 제가 나온 지 후 벌써 삼십여 년이 지냈는데 그 후에 교역자들이  더러운 교역자들이 갔어. 가 가지고, 왜? 그 교회는 온전한 교회이기 때문에  교역자 만드는 교회로 보냈어. 쓰지 못할 것들을 다 그리 보냈어. 보내면 거게서  만들어지라고.

 이러니까 거게서 많이 만들어져 나온 교역자들은 많습니다, 교역자들은 많지마는  그 교회는 너무 오랫 동안 암흑으로 상처가 돼 가지고서, 이번에 신옥범 조사님이  갖다 와 가지고서, 그분이 거기 자랐기 때문에 잘 압니다. ‘개명교회 이런 줄  몰랐습니다.’  ‘어떻더노?’ 진상을 말해. 저거가 망쳐놓으니까 진상을 나한테 말해 주지  안했어. 아주 허무하게 다 모두 이사를 나가 버리고 가난해지고 이래. 교인을  망치는 자가 누구냐? 사회가 암만 망칠래도 못 망칩니다. 국가가 망칠래도 못  망칩니다. 이십세기의 문화가 들어 문화가 망칠래도 못 망칩니다. 교회를 망치는  것은 교역자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흥황시키는 것은 하나님과 교역자입니다.

바로 가르쳐서 바로 할 때에는 천하가 달라들어도 꼼짝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하리요?” “너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이 축복해서 흥왕케 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해서 망케  하겠다”했습니다.

 참된 교회를 훼방하는 것은 사회나 국가나 망합니다. 왜정 말년에 참된 교회를  훼방하고 망치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 나라는 그때 강한 나라, 세계 삼대 그 강국  중에 하나로 든 나라는 여지없이 망했던 것입니다. 왜 그러면 소련과 중공은 저래  있는가? 저것은 기독자들이 신앙 생활 할 때에 몽둥이로 들고 있는 것이오.

 이북은 든 몽둥입니다. 남한 교회가 바로 서면은 저 몽둥이는 하나님이 불에  짱글라서 태워버립니다. 김일성도 믿을런지 모릅니다.

 저것은 남한에 있는 믿는 자들이, 이북에 있는 믿는 자들이 잘못 믿어서 매를  때리니까 남한으로 밀려와 가지고 남한에서는 때리자니 아깝고, 아직까지  때리기는 아깝고 안 때리기도 안됐고 매를 들고 ‘때린다 때린다 회개해라  때린다 때린다’ 울렁거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고로 오늘 이 말씀을 삼가 듣고 온전한 십일조 이것을 드리는 자들이  됩시다. 온전한 십일조를 해라. 온전한 십일조는 어떤 것이 온전한 십일조인데?  내게 있는 필요한 모든 것은 주인이 아무도 없어. 주님이 주인이시라. ‘이것이  주인이다, 저것이 주인이다, 저 혜택이다, 저 은택이다, 저것으로 인함이다,’ 하는  그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아무것의 것도 아니라. ‘사회 것이다, 시대 것이다, 문화  것이다, 국가 것이다.’ 그것도 주님의 것이오. 주님이 그것을 통해서 했어.

 ‘주인이 아무도 아니라. 만유의 대주재이신 창조주 우리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것이라.’ 요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내것도 누구의 것도 무엇의 것도 아니고  이것은 우리 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둘째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조건부로 주신 은혜라. 조건부라니? 어떻게?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죄짓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줬는데  이것 받아 가지고 제대로 살았기 때문에 세상은 마지막에 끝날이 있습니다.

 조건부로 주신 것이라 요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셋째는 구속받은 우리에게는  일반적인 창조주로 주관자로 주권자로 주재자로 주신 것이 아니고 독생자로 피로  구속한 우리들에게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 유업으로 주셨다.

 그러면 선물과 유업으로 주실 때에 선물과 유업으로 주신 표시는 언제나  십일조와 법칙에 따른 예물을 드리는 선물 드리는 요것을 드림으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속량된다. 이것으로 십일조로 속해라 했어.

 하나님의 것인 것을 표시될 때에 표시하는 그것은, 그것을 당신이 가져갑니까?  아니오. 당신은 조물주이기에 가져가지 않습니다. 표시할 때에 이것은 인간을  위해서 구제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 인간을 위해서 구제하는 것이오.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것이오. 십의 구조는 저 위에 쓰고 십의 일조는 남을  위해서, 십일조 드리면 인간 구원에 다 쓰는 것이지 하나님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 조건부로, 다른 것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 조물주 되신 구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셋째로는 이것을 은혜로 주시되 조건부로 줬다. ‘이것 가지고 네가  인인 관계를  바로, 신인 관계를 바로, 사물 관계를 바로 해 살면은 네가 점점 흥왕될 것이고  이것 가지고 네가 잘못 살면 네가 망하리라.’ 조건부로.

 넷째 조건은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들에게는 아버지가 선물로 유업으로  은혜로 주신 것이니 아버지가 주셨다는 여게 대한 올바른 지식을 네가 갖추어 요  표시로 속량하는 법칙을 정한 십분지 일을, 때를 따라 헌물을 하면서,  네가 요 지식을 새롭게 하고, 요 지식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를  바로 가지고, 요 지식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모든  사물과 너와의 관계를 새롭게 해서 요것을 흐리게 하지말고 새롭고 또 똑똑하게  밝게 요렇게 해서 요것을 깨끗하게 속해라. 속하라 말은 깨끗하게 하라. 요것을  깨끗하게 속하라.

그러는데 어느 종류만 할 게 아니라 네 한 종류도 빼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든지, 요 지식을 가지고 안 드리면 계약을 어기는 게 되든지 요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그것이 하나님 것을 도둑한 것이 된다.

 이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이래 가지고 한번 시험해 봐라. 이걸 드려서 내  복음 운동 뒷받침에 부족함이 없도록 네가 이렇게 해 봐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쌓을 곳이 없을 만치 하늘문을 열고 복을 부어주나 안 부어주나 네가 보라. 내가  그리하면 너의 하는 일에 황충을 제해 주겠다. 네 소산을 멸해지지 않게 하겠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네 땅을 모든 사람이 복되다 해서 모든 사람이  너를 다 존대하게 되어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요 말씀을 확신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요 말씀을 확신하고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십일조, 십분지 일을 드리되 요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것을 드리는 것처럼 하는  그자는 물질만 없애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인격을  요구하시요. 우리의 사상을 요구하시요. 우리의 정신을 요구합니다.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제일 일계단 쉬운 것 물질적 관계로 제일계단의 관계를  바로 가지자는 것이오. 그다음에는 심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자는  것이오. 그다음에는 영육으로 사람된 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부터 우리는 십일조를, 이제 과거는 그것을 계산하기 어려울  것이나 지금부터 십일조, 십일조는 자기의 수입 중에 십분지 일을 떼서 드리는  것이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만일 자기가 농사지었으면 농비가 얼마가 들었든지 그것은 다 떼되 자기 수고는  떼지 않는 것이 성경입니다. 자기 수고한 값은 떼지 않소. 자기 수고한 값은 떼지  안하고 거게서 자본이 얼마 든 것, 이자가 얼마 든 것, 품이 얼마 든 것 모든 것  다, 본전 빼놓고 남는 그것, 자기 수고한 것은 떼면 안 돼. 그것 성경에 못 떼게  해 놨어.

 그 수입의 십분지 일을 떼서 바칠 때에 ‘십분의 일 요러니까 요것을 계산해  바치자.’ 그것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 온전이 거게 들지 못했어, 온전이 들지  못한 것. 온전은 거게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요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요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가 억지로 바치는 것인지  강제로 바치는 것인지 기쁨으로 바치는 것인지 요 지식에 따라서 그것이  결정됩니다.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 이것 주셨으니 앞으로  하나님께서 무한히 자기에게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아무의 것도  아니라는 것, 그분이 안 주면 안 된다는 것, 그분이 주면 다 방해해도 된다는 것,  그분이 내게 과거에 대해서 그 모든 황충을 제해 줬고, 멸해지는 것을 방비해  줬고, 기한 전에 절단나지 아니하도록 했고, 내 처소를 복되다 했고,  모든 사람에게 존대히 받도록 했고, 이렇게 해 준 요 사실을 깨달으면 십일조  계산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은혜에 대해서는  그것이 기쁨의 한 뭉텅이오. 그게 기쁨의 한 제일 기쁨의 행사라. 요걸 드리는 것.

그게 뭣이냐? 하나님에게 달라 소리 안 해도 달라 하는 것이오. 받을 수 있는 그  은혜의 댓가요.

 그런고로 오늘부터 우리가 십일조를 한 사람도 버리지 말고 십일조를 해서,  그러면 십일조를 잘 하고 안 하는 것은 이제 그 뒤가 보여질 것이오. 그 뒤가  보여질 것입니다.

 문제가 없어. 우리가 지금 아무것도 없어. 여러분들이 다 가난해요. 마구 근근히  살아서, 근근히 살아서 거게 조그만한 것도 떼내면 탈이 날 수 있는 이 지경인데  뭣이 있소? 지금부터 작정하고 ‘이제부터 십분지 일’ 그러고 나를 시험하라.

나를 시험해 봐라. 시험해 봐라.

 네 곳간에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나 안 부어주나 시험해 보라 했어. 요게  제일 초계명이오. 요것 믿지 못하는 자는 다른 걸 믿지 못해.

 자, 오늘 하나님 앞에서 요 십일조에 대한 진리를 이제 배워서 성경대로 요렇게  돼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손 들어봅시다. 깨달은 사람? 네, 깨달은 사람.

그러면 깨닫고 십일조 하고 마는 것은 여러분들의 자유로 하십시오.

 “시험해 보라” 믿읍시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배기 우리 교회지마는 이제 오늘을 통해서  우리 교회는 물질면에 부요한 교회가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하늘문을  열어놓고 거게서 얼마든지 내려옵니다. 이제까지는 교인의 숫자가 차고 나고  경제가 뒤따르지를 못했지마는 교인의 숫자가 앞서지 못하고 경제가 반드시 앞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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