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

 

1983. 3. 30. 수새.

 

본문 : 눅 17:5-6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것은 설교 아닙니다. 양성원 공부에 학급이 점점 올라가면 신앙이 커져야 되지  양성원 제도에 급수만 올라가고 신앙은 뒤떨어지면 뭐 합니까? 그 사람은 양성원이  막바로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야 어찌됐든지 양성원에 급수만 따 가지고  목사나 되면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 가지면 그것 아주 자기 망하는 길입니다. 그런  것은 안 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목사직을 안 가져도 가져도 실은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이 모두 부패했기 때문에 그런 제도에 한 순서도 밟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데에 차이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가지는 것이지 그것이  실지로 구원이나 자기에게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겨자씨 믿음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데도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신 데가  더러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인데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믿음이 무슨  겨자씨 종자 같은 종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의 비유요.

 겨자씨 믿음이라는 말씀은 생명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 산  믿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생명이 있는 믿음이냐  생명이 없는 믿음이냐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 안 하면  전부 불에 갖다 다 태워 죽인다' 할 때에 다른 이스라엘들은 다 떨면서 그 소리를  듣고 모두 기절해서 우상에게 절했는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시험당할 때에 그랬습니다. 그런 것이 다 네가 산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마음의 믿음이 있고 몸의 믿음이 있다 했는데, 몸의 믿음은 그속에 요소가  몇 가지 들어있다고 했지요? 남반에 누가 알거든, 양성원 학생중에 누가 알거든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양성원 학생 중에 몸의 믿음은 몇 가지 요소가 들어 있고  마음의 믿음은 몇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했지요?  '도통' 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도는 들어가는 구멍도 많고 나오는 구멍도  많지마는 실은 속에는 하나입니다. 도가 통해 놓으면 모든 것을 하나 알면 열 가지  알고 백 가지 알고 다 알아지는 것입니다. 도인이 안 되고 거짓부리이기 때문에  세상 지식을 배우는 것과 같이 그렇게 복잡합니다.

 마음의 믿음은 네 가지 요소가 들어 있고 몸의 믿음은 세 가지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을 오랫동안 가르쳤습니다. 몸으로 순종하는 몸과 믿음은 시험, 연단, 연성 세  가지가 들어 있다. 몸으로 믿는 믿음은 시험해 봐야 시험에 뚝 떨어져 가지고 시험  닥치니까 거짓부리라. 또 이것이 진짜냐 가짜냐 금을 연단하듯이 연단 앞에, 이제 다  타 버리고 없어. 또 그 현실로 인하여 자라라고 보냈는데 그 현실 닥치니까 오히려  자라지지 아니하고 없어져 버려 그 껍데기 믿음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다  간추려서, 무엇 때문에 외식하는가? 세상 때문에 외식하고, 자기 때문에 외식했기  때문에 상당한 보응으로 세상으로 인해서 고통을, 자기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해 주시기 위해서 모든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크게 강하게 산 믿음을 가졌느냐 죽은 믿음을 가졌느냐 그 말은, 죽은  믿음이라 말은 외식이라는 말이오, 외식. 네가 참 외식으로 사람이나 속이고, 목사  노릇을 해도 사람이나 속여서 설교나 해 가지고 교인들이 듣고 좋다고 연보나 하면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고 사니까 그만하면 됐다 이렇게 하기 쉽습니다. 산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 그런 것을 지금 앞으로 크게 시험하는 때가 이제 닥쳐왔습니다.

 내가 어제 저기 가서 있는-양산동이라는 하는 그 이름은 내가 지은 이름이오. 좀  다른 사람들이 그 동리 이름을 모르도록 해 가지고 좀 찾아오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랬는데 어데서 전화 가 왔어. '신문을 봤습니까?' '무슨 신문 말입니까? 뭐  l6일 때는 이북이 부산서부터 침범해 들어온다는 그런 신문이 났다는데 '신문이 뭐  그것은 나나 안 나나 그런 말 많이 듣고 그렇다고 얼마나 설교하고 했는데, 그 오고  안 오고 우리는 믿음 준비할 일이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이 말을하고  그쳤습니다.

아마 그것은 신문을 잘못 봤을 것이오. 호메이니옹이 죽으면 소련이 이란을 침범한  지 16일 만이면 김일성이는 남침한다 하는 그런 것이 신문에 약간 났었는데 그런  것을 본 것 아닌가 싶은데, 어쨌든 다급합니다. 세계는 아주 다급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하루 동안에 온 세계가 불살라진다고 했는데 요새는 하루가 아니고 일분도  안 걸리고 한 몇초 동안에 다 소멸될 수가 있다는 것을 과학자 자기네들 입으로  말합니다. 무신론자 자기네들 입으로 말하고 있소.

 이렇게 하나님께서 독촉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 준비하라고 독촉하는데 이  믿음 준비는 회개로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뭐이 회개냐? 회개에 제일 껍데기  회개가 무슨 회개라 했지요? 여반에, 여반들은 좀 물으면 아는데 남반들은 전혀  몰라. 그러니까 환난 닥치면 외나 잘 믿는 사람들은 남반에 있지마는 대개 남반은  다 쭉정이입니다. 그 참 비참한 일이오. 과거 왜정 말년에도 남반 중에 신사참배  안한 사람이 옥중에 간 그 사람들 몇 사람이 안 했고, 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은 옥중에도 안 가고 신사 참배 안하고 신사 참배 반대하고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면서 그냥 지내온 사람들 있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 밑에 있는 교인들은 교인도 신사 참배 하나도 안 한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소리 텅텅한 그런 사람들 중에는 다 우상에게 절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 많습니다.

 이러니까 다급합니다. 이제는 겨자씨 믿음이 필요합니다. 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산 믿음. 산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  있는 믿음이라 그 말이오. 생명은 어떤 게 생명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생명입니다. 뭐 사람들은 짐승도 생명 있고, 모든 것 육체의 사망 아래에 있는 자연  생명 그런 생명들을 생명으로 말하고 있지마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그것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생명도 하나님과의 연결이 된 그 생명입니다. 생명이라 하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라, 죽었다 하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그  말이오.

 겨자씨 믿음, 생명 있는 믿음,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하는 말인데, 그러면 내  믿음은, 믿음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순종하는 것인데, 신 구약 성경에 말씀하신 그  모든 말씀을 믿는 것, 인정하는 것, 또 자기가 몸으로 그대로 사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마음의 믿음은 마음으로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하나님의 지식을 그대로 참되다 인정하는 것이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요, 몸의  믿음은 마음으로 인정하는 그대로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몸의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전부가 생명을 주기 위해서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은 구구절절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있는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오. 그러면 맺는 것은 언제 맺느냐? 현실에서 맺는데, 현실을 주시는  것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정하고 행하면 그 현실 실행하는 그 말씀을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연결이 더 튼튼해지고 연결 안 된 것은 새로  연결을 가지게 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종자인데 이것으로 비유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오. 그러면 종자가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뭘 보고 압니까?  요사이 고추를 뭐 삶아서 말린 것이 있다는데, '아 그 고추 많으니까 그 고추가  종자 좋으면 그만 그 씨 받아 가지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요. 삶아서 말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심어도 안 납니다.' 그래 '그러면 삶았는지 안 삶았는지 그걸  어떻게 아는고?' 이러니까 '그것은 심어 보면 압니다.' 이래. 땅에 심어 보면 알아요.

 생명 있는 종자와 생명 없는 종자는 땅에 심어 보면 생명이 없는 종자는 보기는 꼭  같지마는 그만 땅 속에 들어가면 수분이 들어와서 종자가 물에 붓지, 또 뜨뜻한  온기가 오지, 또 거게 아주 질소분, 온갖 썩은 것 썩히는 것 그런 비료의 기운이  오지,  이러니까 생명이 없는 씨는 수분으로 인해서 썩고, 온도로 인해서 썩고, 질소분으로  인해서 썩고, 그만 그 환경에 닥쳐지는 그것으로 인해서 썩어집니다. 그것이  생명없는 증거요.

 생명이 있는 것은 어떤 종자는 참 귀한 종자라고 천장에 대롱대롱 봉투 안에 넣어  달아 놓으면 일년 내내 가도 고대로 있소. 그의 그 생명이 크지를 않아. 땅 속에  들어가면 비로소 수분이 오니까 수분을 빨아 먹고 생명이 튼튼해지고, 온도  빨아먹고 튼튼해지고, 질소분 빨아먹고 튼튼해지고 이래 가지고 생명이 움이 터  가지고 자라서,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이지마는 나중에 나무 같이 커다랗게 그  생명이 자라서 크게 되는 것입니다.

 종자를 땅에 심으면 생명이 있는 씨인지 없는 씨인지 구별이 나는 것처럼 그  믿음이 현실을 닥쳐 보면 안다 그거요. 현실을 닥쳐 보면 현실에 수분 같은 그런,  비유컨데 세상에 재미있고 좋고 하는 그런 것을, 세상에 좋은 것이 닥치니까 좋은  것으로 인해서 생명 없는 것은 좋은 것의 것이 돼 버립니다. 좋은 것으로 인해서,  그만 수분으로 인해서 다 물 돼 버리고 마요. 비료 기운으로 인해서 비료 돼 버리고  마요. 온도로 인해서 그만 흙 되고 맙니다. 생명 없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을, 오니까 좋다고 빨아 먹고, 수분 오니까 수분 빨아 먹고,  온도 오니까 온도 빨아 먹고, 거름 기운 오니까 거름 기운 빨아 먹고, 그러니까  무엇이 자랍니까? 여기 남반에 양성원 학생들 한번 대답해 봐요. 무엇이 자라지요?  생명이 자랍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씨 안에 든 것이 생명이 자라서 그  씨를 떡 벌리고 움이 툭 튀어 나와. 눈이 튀나오더니마는, 나오더니마는 차차 자라  가지고 이게 땅을 뚫고 올라옵니다. 좀있으면 이만큼 커져 생명이 자랍니다. 그것이  환경에서 오니까 환경 그것을 식물로 삼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이게 뭘 먹고  자랐느냐? 땅에 한 말로 말 하면 지기를 먹고 자랐습니다. 땅에 온갖 기운을 먹고  자랐어. 뭐이 자라? 생명이 자랐지. 현실을 닥치니까 현실을 먹고 점점 크게  자랐습니다.

 겨자씨가 자랐는데, 우리에게 현실을 먹고 믿음이 산 믿음인데 그 믿음이  자라가니까 겨자씨 모양으로 현실을 인해서 생명이 점점 자라갑니다. 현실로 인해서  생명이 자라가요. 현실로 인해서 생명이 자라가니까, 생명이 자라간다는 것은 뭐이  자라간다 말이오. 남반에? 생명이 자라간다,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간다 그 말이오,  연결이 자라간다. 종자, 죽은 종자 산 종자를 땅에 심어 보면, 산 종자는 지기를  빨아먹고 생명이 자라고, 죽은 종자는 지기를 빨아 먹지 못하고 지기에게, 땅기운  지기에게 삼키워져서 썩어버리고 맙니다. 그 믿음이 없어지고 만다 그 말이오.

 생명이 있는 믿음은 땅에 심은 것과 같이 현실을 닥치면 그 현실을 잡아먹고,  현실을 이용해서 그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더 튼튼해지고 밀접해진 생명이  자라지마는, 생명 없는 믿음은 그 현실을 닥치니까, 좋은 현실 닥치니 좋은 것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약해지고 끊어지고, 또 고통스러운 현실 닥치니까 그  고통을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약해지고 끊어지고, 또 복잡한 현실 닥치니까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약해지고 그것이 믿음이 이제 죽어지고 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자는 심어 봐야 생명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안다. 생명이 있고  없는 것이 표가 어떻게 나느냐? 생명이 있는 것은 지기를 빨아먹고 그 생명이 점점  크게 자란다. 생명 없는 종자는 그 지 기를 빨아먹지 못하고 지기에게 삼키워져서  생명이 없기 때문에 썩어져 버리고 만다. 간단합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은 현실을 닥침으로 인해서 그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밀접해지고 튼튼해지고, 생명 없는 믿음은 그 현실로 인해서 현실화돼 버리고 그  현실로 인하여 하나님과 밀접해지는 그런 관계가 맺어지는 것 아닙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뭐 행복의 현실이나 질병의 현실이나 환난의 현실이나 무슨 경제  현실이나 어떤 현실이 와도 생명이 있는 믿음은 그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밀접해지고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 믿음이오.

 이러니까 내 믿음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게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 시험해서  알아야 될 때인데, 시험하지 아니하고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 믿음이 생명이 있는 산  믿음이냐 죽은 믿음이냐 이것이 저희의 영원한 성공인데 이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어쩌든지 꾀를 써 가지고 예수 믿는 안에서도 요렇게 해야 내게 유익할까 저렇게  해야 유익할까, 유익돼 봤자 늘 썩은 것, 땅에 있는 그 유익, 취해 봤자 소용없는 그  유익 그것만 욕망 가지고 그 표준으로 사니까 벌써 생명이 없는 죽은 것이라 그  말이오.

 하나 예를 들면, 자기가 하나님께 관한 그런 부분의 믿음에 대해서, 현실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했으니까,  택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신다 그걸 믿는 게 믿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그것을 '내가 하나님이 날 보호하는 걸 믿습니다.

하나님이 날 보호 하는 걸 믿습니다.' 떠들어 대는데 시험해 봐야 돼. 전능자가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입술로 내가 믿는다고 설교도 잘하고 뭐 믿어야 된다고  강대상도 뚜드리고 이 야단을 지기는데, 정말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고 안보하고 계시는 걸 내가 믿나 안 믿나 시험해 봐야 되는데. 시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시험하지요? 종자를 시험하려면 어떻게 해요? 땅에 심어 보면 알지.

그러면 우리 믿음은 시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시험해요? 현실을 닥쳐 보면 안다  그거요. 현실을 닥쳐 보면 알아.

 내가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날 보호한다는 것을 이 사실을 내가 믿나 안 믿나?  그러면 그 현실에 전능한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면 애굽 병정들이 암만 돌아다니고  이래 야단을 지기고 쿵탕거려도 기쁘고 즐거워서 '오늘 또 하나님께서 이거 애굽에  대해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나타내는 구경하자' 모세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죽겠다고 지금 호소하고 야단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그런 현실 닥치니까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이스라엘들이 놀라고 떠는 것은 믿는 증거요 안 믿는 증거요? O선생? 뭐이지? 안  믿는 증거. 안 믿는 증거. 모세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가만 있거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구경하자' 그 사람은 믿었소 안 믿었소? 믿는 것 아닙니까? 간단합니다.

지금은 앞으로 인민군이 와 가지고, 공산주의들이 와 가지고 지금 예수 믿는 사람  저를 피해 가고 어째하고 이래, '그때는 안 믿는다 하면 되지. 자수하고 돌아오면  되지.' 과거에 여수 반란 때나 6·25 때에 자수해 가지고 안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자수한 사람 다 죽었소. 자수 안하고 신앙으로 나아가던 사람들은 다 살고  승리했습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아 공산주의 오면 나는 안 믿습니다. 그러지. 또 여게서는 아니까 모르는 데로 막  이사를 가 가지고 거기서 안 믿는 행동하고 살지' 하나님이 묘하게도 그놈을  잡아다가 꼭 예수 믿는다는 증거를 딱 대 가지고 꼼짝도 못 하게 하나님이 할  귄리가 있어. 솜씨가 있어.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 가지고, 안 믿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할 수 없어 안 믿는 값으로써 망하게 되고 죽게 되고, 믿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으로써 역사해 가지고 구원 얻게 되고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빠질 틈이  없습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 어리석어! 하나님이 그렇츰 어리석은 하나님인 줄  압니까? 물샐 틈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지혜나 하나님의 계약이나 하늘나라  소망이나 또 하나님의 뜻으로 뜻대로 믿음을 지키다가 이 세상을 끝내는 것이  성경에 영광이라 했고, 잠시 후면 부활해 가지고 영광이 있는데 그것을 약속된  소망을 믿는지 안 믿는지, 거짓부리로 믿는지 현실을 닥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에 대해서, 또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하라  했는데 간부 같은 세상하고 제가 정말로 상관을 안하고 있는지, 지금도 세상으로  더불어 음행을 하고 있는지 조그만한 현실에서 하나씩 둘씩 겪어 보고 나는 이건  자라 저런 자라 해서 회개를 하면 되지마는,  회개를 안 하고 그저 어리석게 만물보다 거짓된 거짓말쟁이 마귀가 속에 가득 차  가지고 나로 하여금 거짓말하게 하는 그런 속이는 부패성도 있고 마귀도 었고 이래  있으면서 '나는 믿는다, 믿는다, 믿는다. 믿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 보니까, 닥쳐  보니까, 현실을 닥쳐 보니 현실로 인해서 죽어지고 썩어지고 하나님과 완전히  떨어지고 자기는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혜택이 올 수 없어. 망해  버리고 말아.

 그런고로, 우리가 현실에서 모든 면을 연습하라고 요런 현실도 주시고 조런 현실도  주시는데,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로 인하여 생명이 자라야 산 믿음입니까 생명이  없어져야 산 믿음입니까? 현실로 인해서 생명이 자라야 산 믿음입니까 그 생명이  없어져야 산 믿음입니까? 저 동문교회서 온? 자라야 산 믿음이라. 자라야 산  믿음이지.

 생명이 자라야 산 믿음이라니? 그 현실에 그러면 생명이 자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 생명이 자라는 것인가? 또 대답해 봐. 생명이 자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  생명이 자라는 것이지? 생명이 자라는 것은, 많이 말하지마. 생명이 자라는 것은  과거보다 하나님과 관계가 더 튼튼해진다 그 말이오. 그렇지 않소? 간단한  대답이라야 백점을 맞지. 하나님 관계가 튼튼해지지. 없던 관계가 새로 맺어지지.

 그러기에 모든 현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 맺도록, 맺은 관계를 튼튼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시고, 현실에서 맺는 그런 방편은 하나님이 영감 도리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대로 하면 맺어지고 튼튼해지고 그것 버리면 망합니다.

전부 꾀쟁이들, 말 잘하고 지식있고 배짱 있고 배암의 복술이 어떻게 있는지. 꾀있고  민첩해서 이 일이 오기 전에는 예수 잘 믿고 떠들고 하지마는 이 말씀은 귀너머  듣고 하는 그런 사람은 앞으로 다 쭉정이로 날아가고 맙니다.

 양성원 학생들도 진실돼야 됩니다. 어리석게 사람이 아는, 인정하는 그런 신앙이  좋지마는 그것은 껍데기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앙이 사람까지 인정하도록  겉으머리로 빛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이지, 하나님 두고 사람에게만 인정 받으려고  야단 지겨서 천하 인간이 인정 다 하면 그까짓 거 뭐 하겠소? 아무 소용없어.

어리석지를 말아야 됩니다.

 내가 양성원 오늘 한 시간 공부함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생명이 자랐느냐? 생명이  자랐느냐? 생명이 끊어졌느냐? 자랐느냐 끊어졌느냐? 이 생명도 끊어질 수 있는  생명인가? 생명이 파묻힌다 그 말이오. 있는 것만큼은 고대로 있지마는 그게 파묻혀  버려. 또 제가 이 시간에 자랐다가 이 시간에 또 그 마귀에게 속해서 다 깨지고  끊어질 수가 있어.

 가르치는 사람도 내 시간 이 시간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분들의 생명이 잘 자라도록  북돋음이 됐느냐, 내가 이 시간 가르침으로써 이들의 생명이 빈약해지고 생명이  시들게 됐느냐? 약하게 됐느냐? 그것을 알고 강의를 해야 되지, 하나님이 들여다  보고 이렇게 딱 칼을 들고 섰는데 그것도 보지 아니하고 임시 그 학생들에게 인기나  끌고 학생들에게 '뭐 무슨 귀한 말 해 가지고 학생들에게 인기나 끌고 이래 할까?'  어리석기가 짝이 없어. 그것 끌면 뭐 할 건데? 하나님에게 매맞으면 그만인데  학생들도 그래야 돼? 말 몇 마디 이런 것 저런 것 사탄의 깊은 것. 별별 말, 철학도  죽는 날까지 연구해도 인간들이, 인간들이 말해 놓은 것, 다 인간들 두뇌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 천 명 만 명이 하는 걸 어떻게 그거 다 배울 것이며 어떻게 다 알  것이오? 옳은 것 하나 알면 옳은 것은 하나 뿐이오. 삐뚤어진 것은 천개 만개  넘어도 옳은 것 하나 알면 삐뚤어진 그까짓 거야 저절로 다 아는 것이지.

 옳은 것 내가 하나 알았으면 나머지기 삐뚤어진 것을 알 수 있소 없소? OO씨.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아? 옳은 것 하나 알아 가지고 삐뚤어진 걸 천이고 만이고  어째 알아? 그래 옳은 것 하나 알았으면 이거 아니면 다 틀렸다 그 말이오. 그러면  다 돼. 옳은 것 하나 알았으면 옳은 것이거 아닌 것은 다 틀렸다, 천이든지 만이든지  이거하고 보자. 이거하고 틀렸다. 아 틀렸다. 억만 개를 가지고 와도 이거하고  틀리면 '아 틀렸다.'  옳은 것 하나 앎으로써 모든 틀린 걸 다 아는 요것이 첩경으로 질러 가는 건데  이것 말해야 귀너머 들어. 그래 가지고 뭐 어느 박사가 뭐라고 어느 학자가 말하는  그런 걸 주 넣어서, 조그만한 대가리에다가 그거 집어 넣다 보니까 하나님도 넣을  수도 없고 진리도 들어갈 수가 없고 그래 가지고 다 망하는 것입니다. 너무 그릇이  작기 때문에 그만 그 안에 쌓여 버리고, 그 모든 걸 다 전체를 한 주먹에 놓고  천하에 학자들이 학박사들이 다 말해 놓은 것을 계란 한 개 모양으로 한 주먹에  도글도글 구불리면서 보면 그거 다 총괄해 한마디로 해 가지고 다 알아 버리고 뭐  할 게 뭐 있어야지? 그게 하나님의 영감의 능력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올런지 모르요. 공산주의 앞에서 어떤 것이든지 여게서 믿으면  병 낫고 안 믿으면 병 안 낫지요. 그렇지 않아요? 같은 한 자리에서 하나는 믿으니  되고 하나는 안 믿으니 안 되거든. 하나님이 보입니까? 안 보이는데, 같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믿으니까 폭탄이 옆에 떨어지고, 보호를 믿는  자에게는 바람에 훅 날려 가지고 저게 들어다가 살리고 나머지는 죽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볼 수 없는 분이, 볼 수 없는 분이 그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볼 수 없는 그분이 역사해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을 주장해서 믿음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표시해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믿으면 될 터인데 그때 믿어져야지?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암만 믿사옵나이다 해도 제가 보는 대로 그 속에는 믿지 않는 것이  들어 있는 걸 제 눈에 보여지는데 어쩔 것이오? 속속들이 믿어지는 그것이 자기가  믿어져도, 믿어야 되는데,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는다 했는데, 믿으면 되는데,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내가 믿으면 되니까 내가 믿어야 되지.' 믿으려 하니까 또 의심이 납니다. 그  모든 환경의 대적들이니까 '아이구,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참 날 보호하면 문제는  없지마는 하실런지 안 하실런지' 사탄아 물러가라. 믿습니다.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안 되니까 믿었사옵나이다. 믿어 두었사옵나이다, 믿어서  지내갔사옵나이다 오만 일을 다해 가지고 요동 않는 믿는 일을 가지려고 하지마는  자기가 바로 그러면 그 속에서는 믿어지지를 않는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않아.

 지금은 이렇게 믿음을 준비할 때입니다. 껍데기 노릇하지 말고, 그것을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 산 믿음 죽은 믿음 있다. 그것을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겨자씨로  비유했다. 그러면 겨자씨, 산 겨자씨와 죽은 겨자씨를 뭘로 아느냐? 땅에 심어 보면  안다. 산 겨자씨는 땅에 지기를 빨아먹고 그 생명이 커진다. 죽은 겨자씨는 땅의  지기를 빨아먹지 못하고 지기에게 삼켜져서 완전히 썩어 버리고 만다. 산 믿음은  현실을 인해서, 현실을 먹고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와지고 튼튼해지고,  생명 없는 믿음은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이번에 사회학 공부하는 것을 내가 봤는데, 내가 이래 보니까 다는 몰라도  학생들이 거의 칠팔 프로가 '아, 이 성경의 말씀도 그만 모든 신화 모양으로 다 이리  이리 돼 가지고 온 것이로구나.' 믿음이 팍 죽어서 시들어져서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없어져. 내가 들으니까 내 영감이 '이 믿음들이 다 썩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래 생명이 있는 믿음은 무신론주의의 무신론 강론 밑에서 무신론  강론할수록 '하나님은 계신다' 하는 것이 강하게 여겨지는 것이라. 그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계신다. 네가 아무리 무신론 말해도 무신론 말하는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예정으로 네가 이용되고마는 것이지, 너는 하나님의 구원 예정에 예정되고 이용되고  마는 것이지 너는 멸망으로써 다른 사람은 구원이 되어진다' 강하게 역사하게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산 믿음은 쉬워. 땅 속에 심은 것처럼 산 믿음은 현실이, 현실이 좋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현실이 나쁨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현실이 고통스러움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현실이 기쁨으로 가까와지고 현실이 두려움으로 가까와지고,  현실이 평안함으로 가까와지고, 현실에 무신론 사상들이, 다 무신론 사상의 이 모든  이단들이 가뜩 참으로써 더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또 진리가 자기  환경에 부딪쳐 진리를 들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지고 이래도 저래도 현실이라는 그  이 지기, 이 세상을 먹고 생명이 자라는 것이 그게 산 믿음입니다. 자기를 시험해  봐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앞으로 이제 참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회개를 해서 저 무신론  소련까지 말이지, 이북까지 뜯어다가 그게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것으로 버썩 깨서  버썩 깨질건지, 그렇지 않으면 믿는 자들이 바싹 깨져서 큰소리 하는 것이 다 그만  다 죽어 버리고 그만 전멸이 돼 버리고 말건지.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 가지니까 그 사람 때문에 공산주의를 깨트리면 믿음 없는  것은 또 강퍅해서 '공연히 남침 남침 그래 쌓지마는 위협만 협박만 했지 보니까 그  사람들 다 패전해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데.' 회개하라는 그 말로 회개 함으로써  되어진 걸 모르고 제가 회개 안 했으니까 '회개할 필요가 없는데 백지 사람에게  위협을 주고 협박을 하고 그랬다. 내야 그 소리 해 봤자 하거나 말거나 뭐 듣지도  아니다.' 그자는 강퍅해서 그 다음에 또 이제 멸망이 또 옵니다.

 어쩌든지 급박합니다. 자기 양심에 이게 틀렸다 싶으면 내버려쳐. 빨리 회개해요.

자기 양심에 무엇이든지 이게 틀렸다 싶어 양심에 틀렸다고 싶은 것은 조그만치라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회개를 해요, '아 이거 회개하면 큰 파문 인다.' 파문 그까짓 것  염려하지 말아. 파문은 하나님이 책임졌어.

 회개하고 돌아가는 그 양떼는 어깨에 메고 가지 않았소?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를. 대항하는 것은 모조리 하나님이 깨트려  버려. 크고 작고 뭐 없애 버려. 그런 것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회개해요. '회개하면  뭐 낭패되겠다' 그래 가지고 마귀가 자꾸 위협을 주니까 '이거 회개하다가는 큰일  나겠다.' 염려하지 말고 회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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