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표적

 

1981. 9. 30. 수야

 

본문: 요한복음: 6장 1절~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 말씀은 사 복음에 다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5절 이하에도 있고 마가복음  6장 25절 이하에도 있고 누가복음 9장 12절 이하에도 있고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6장 1절 이하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언제나 성경에 기록된 일들은 우리  일반적으로 당한 일과는 다릅니다. 벌써 영원 전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려고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그대로 순서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고 또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일이 있었다. 그런 역사의 한 토막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그때에 많은 무리가 모여든 것도 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말한 것도 이 역사를 일으킨 것도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그때에 그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셨고 또  이런 순서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주신, 구원의 이치로  주신 것이지, 이 세상에 그와 같은 일들이 많이 있는 그런 일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원도리 특별계시로 주신 것이지 어떤 역사의 이런 한  토막이 있었던 그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천지는 없어져도 이 사실은 획 하나도 가감을 할 수 없는 이런 절대성을 가진  우리의 구원의 이치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게 되는 이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는 것인가? 이 이치를 여기서  깨닫고 이치대로 자기가 행하여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길은 대로가 있지만  자기가 걸어야 자기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지 길이 아무리 있다고 해도 자기가  걷지 안하면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꼬박 꼬박 걸어야 목적지는  가까워지고 또 마지막에는 거기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을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치요. 길로  정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저 뒤에 어떤 교인이 아마 누가 인도해서 저렇게 온  모양인데 그 지금 한번 돌아보십시오. 저 뒤에 혹 친구인가 그러면 안내하도록  어디든지 그 앉아서 예배를 드리세요. 그러면 또 나갈 때에 만날 수 있지요. 네 그  자리가 없으면 이제 삼층으로 인도하도록 하십시오. 삼층에 안내원들 삼층으로  안내하십시오.)

길 걸어가는 거와 같이 이 도리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도리대로  하나 둘 행해 나가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아무리 알고 있어도 행하지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신 것을 증거  하겠습니다.

이 이적이 나타난 곳이 빈 들판이었습니다. 거기는 인가가 없는 빈 들판입니다. 빈  들판에서 이렇게 많은 무리들을 먹이려고 하니까 자기네들이 가진 음식이 없으면  이들에게 먹일 수 없는 장소입니다. 제자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빈 들판인데 어떻게 해서 이 무리들을 먹일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아무래도 여기서는 먹일 수 없다 하는 그런 말들을 했습니다. 또 시기가 언제인고  하니 낮이면 아직까지 해가 많이 남았으면. 어디 먼 곳에 가 가지고 사 가지고  온다 해도 되지만 벌써 날이 저물었다 했습니다. 아주 시기가 또 좋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모든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벌써 삼사일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배웠기  때문에 약간 음식을 준비해 왔지만 이미 다 먹었고 다 떨어졌고, 또 그들에게는  가진 돈도 그렇게 있지를 못하고 또 무리는 아이와 여인들을 빼고 장정 그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쯤 된다 했으니까 요새는 아주 편리해서 사람들 모이는 것이 수가  참 크니까 오천 하는 그런 것은 별 큰 모임이라 않겠지만 그때는 옛날 미개한 때기  때문에 아주 벅찬 그런 많은 우리였습니다. 이러니까 이 제자들은 도저히 이  사람들을 먹여 낼 수가 없다. 먹일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생각하도록 모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기에 참석한 많은 무리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오히려 열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 열두 바구니나 남았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인고 하니  기독교는 시기라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 전능자의 도이기 때문에  시기가 상관이 없습니다. 뭐, 시기가 좋고 나쁘고 안됐고 틀렸고 시기라는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가을이고 봄이고 뭐 어려울 때고 전쟁시기고 흉년시기고 뭐 하는  그런 시기를 초월한 것이 기독교라 하는 것을 가르치고 또 그곳은 빈  들판이었습니다. 빈 들판이든지, 산이든지, 바다 가운데든지 그 현실이라는 현실이  상관이 없는, 현실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현실은 도저히 안될 현실이다.

이 형편과 입장과 처지가 안되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또  시기가 안됐는데 아, 그것도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가진 떡은 다 거두어  봐야 어린아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 물고기 두 마리 뿐이고 사람은 오천이나 되고  또 돈도 가진 것도 별로이 없고 이래서 제자들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돈도 없지만 그만한 돈을 가지고 떡을 사도 이 많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돌아가 것이며, 또 보리떡 다섯 덩어리 물고기 두 마리 이것 가지고야 뭣이  되겠는가?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먹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가 많든지 적든지, 일이 크든지 작든지, 어렵든지  쉽든지, 방해물이 많든지 적든지, 문제가 어렵든지 쉽든지 상관이 없다. 대 소  크고 작고, 작고 많은 대 소와 다 소 양에 대해서 상관이 없다. 그런 것을 가릴  필요가 없다. 수와 양과 그 정도를 초월한 것이 기독교다. 뭐, 정도가 어떠니 수가  어떠니 양이 어떠니 그런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기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 기독교의 능력이요.

구원이요. 현실을 초월하여 있는 것이 기독교의 능력이요. 구원이요. 양과 수의  것들을 다 초월한 능력을 가진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라 하는 것을 여기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이것을 확정 지워야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신앙생활 해나가는 데에 장소도 시간도 그 양도 상관할 것이 없다. 뭐,  이것이야 인간이 못해낼 이 참 천하가 달라 들어도 안될 만한 이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불가능이지만 주님 앞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여기서 우리가 확정 지워야 합니다. 확정을 짓고 우리가  신앙으로 걸어갈 때에 이 세 가지 문제는 따지지 말아야 됩니다. 이까짓 거 뭐  상관 없습니다. 크든지 적든지 어렵든지 말든지 뭐 시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없어. 이걸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요. 이것을 주권하신 분이 주님이시오. 있는  걸 없애기도 하고 없는 것을 있게도 하시고 하시는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기독교에는 이런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피조물만이 움직이는 데에  이것이 관계 있지, 창조주 되신 우리 주님이 하시는 우리 구원 역사에는 이런 것이  상관이 없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니까 간단하게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믿으면 태산 같은 것이든지 세계같은 것이든지 상관없는 이것을 초월한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을 하고 견고히 잡아야 하고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현실을 닥쳤을 때에 이와 같이 실행하는 사람이면 참 하나님을 대접하는  사람이요.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오셔서 일할 수 있도록 그 은총을 입기에  합당한 자격이 갖추어진 사람입니다.

다음으로는 여기 보니 아이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는데  그것은 그 아이로서 한끼 먹으면 되는 자기 먹을 그 식량에 합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하나 먹으면 알맞은 그런 도시락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로서는 자기  하나에 알맞은 도시락이지만 사람이 벌써 그렇게 많으니까 그것 가지고 뭐 턱이나  되겠습니까?.

이렇지만 주님이 그 많은 무리들에게 먹여 보내지 안하고 그대로 보내면 중간에서  어려움을 당하겠다고 하시면서 어쨌든지 먹여 보내야 된다.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에 자기는 동참했습니다. 동의를 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모든  무리들이 무리들을 먹이시는 것을 원하시니 이것이 뭐 한 아이 밖에는 못 먹지만  주님이 이렇게 모든 무리를 먹이시는 것을 원하시니까, 자기 먹어 알맞은 것을  자기 먹지 안하고 이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그 무리를 먹이는 거기다가 참 오천  분지 일이라도 보탬이될 것을 생각하고 이 도시락을 주님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완전히 이 아이는 자기 쓰기에 알맞은 그것을 자기는 생각지 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적지만 이것을 주님에게 내놨습니다.

그 내놓고 난 다음에 주님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계실 때에 이 아이가 내가  드리기는 드렸지만 아무래도 나도 먹어야 되겠으니까, 반만 주십시오. 그렇게도  하지 안했고 또 바치고 난 다음에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제가 도시락  내서 주님에게 바치고 난 다음에는 그 뒷말이 없었고 아무런 간섭이 없고 주님이  거기에 축사하실 수 있도록 주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도록 완전히 맡겼습니다.

주님이야 축사를 하시든지 그걸 어떻게 하시든지 당신이 자시든지 뭐 내 주든지  바치고 난 다음에 자기의 그 주관 행위라는 것은 하나도 거기 상관하지 안하고  온전히 주님에게 바쳣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그것을 받아 가지시고 당신 뜻대로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거기 축사를 하셨습니다.

축사 당신 뜻대로 거기 축사 하셨는데 그 축사하신 그 축사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많은 무리들을 먹고 남을 수 있는 그 떡으로  변해졌습니다. 그 떡으로 변해졌습니다. 그만 변해진데 따라 변해진데 있어서는  그때에 떡 무더기가 오천 명이 먹을라 하면 상당히 참 조그만한 집채 무더기만치  뭐 집동 무더기 만치나 되야 될터인데 그렇게 커졌든가 그대로 있는데 나눠주니까  됐든가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안했기 때문에 어쨌든지 주님이 그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기 전 떡과 축사하신 후의 떡과 떡은 달라졌습니다.

축사하시기 전에 떡은 그 아이 한 아이 먹을 만한 알맞은 양이었지만 주님이  축사하시고 난 다음에는 오천 명이 먹어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주님이 그 떡을 당신이 이렇게 모든 무리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오십 명씩 백 명씩  잔듸밭에 앉았는데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나눠줘라 . 떡도 주면서 나눠  주라 하고 고기도 주며 나눠주라고 주님의 뜻대로 그것을 그 모든 무리들을 위해서  이렇게 쓰시도록 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뭐 이래 나눠줘라 저래 나눠줘라 나 좀  달라. 그런 소리도 하지 안하고 그만 그대로 주님의 뜻대로 쓰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에 그 떡은 이 아이 외에 오천이 먹고 또 이 아이도 배불리  먹고 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보리떡 일곱 개로 사천 명 먹고  남은 때에는 일곱 바구니인데 여기는 떡 수는 적은데 사람 수는 많아도 남은 것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적든지 많든지, 그 사업이 크든지 작든지, 자기의 기능이  자기의 실력이 적든지 많든지, 자기 몸이 참 큰 건강을 가졌든지 자기 몸이  빈약하든지 상관없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그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을 위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의 그 심정에 자기가 동참하는 그 동참화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에게 맡겨서 자기 쓸것으로 자기는 내 놨으니까 자기 먹을게 없습니다.

자기를 생각지 안하고 자기 하나에게 알맞은 그것을 자기를 생각지 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구원하는 그 일에 동참해서 그것을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의 뜻대로 축사 하시도록 그것을 주님의 뜻이 주장을 하시도록 주님의  뜻대로의 것을 것이 되도록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도록 주님에게 바쳐도  아무리 내가 바치기는 바쳤지만 이거는 주님의 뜻대로의 것도 섞이고 내뜻도  섞이고 주님의 뜻과 내 뜻, 또 우리 이웃의 어떤 뭐 가족이든지 뭐이든지 이 뜻을  조합해서 이것은 이 여럿에 종합 뜻대로 해야 된다는 그런 것을 하지 안하고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떡으로 바쳤습니다.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떡이 됐습니다.

누가 축사하라는 것도 아니고 당신 마음대로 당신 뜻대로 축사하신 그 떡이  됐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것이든지 첫째는, 자기에게 알맞는 것이요 그것은  자기에게 그저 겨우 알맞지. 남은 여분은 없습니다. 남은 여분은 없고 자기에게  알맞는 것이요. 자기 쓸것이요. 자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이런데 자기에게 알맞는  것을 자기를 생각지 아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이웃을 위하는 그 주님의 원하심에  자기가 동참하는 이 동참으로 자기 쓰기에 알맞은 자기 쓸 것을 그것을 주님의  원하시는 그 주님의 소원 주님의 소원들의 이웃을 위하는 요거 위해서 주님의  소원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 쓸것을 요것을 바쳐서 주님의 원하시는 그 소원을  위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이웃을 위하는 이걸 위해서, 이 둘을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이제는 자기 위해서 쓸 것인데 주님과 이웃을 위하는 것으로 주님에게  바쳐 주의 뜻대로의 것을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도록 자기가 간섭하지 안하고  주의 뜻대로의 것이 되도록 주님의 뜻대로 하시도록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도록  바칩니다. 바쳐 가지고 이제 그것을 사용할 때에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합니다. 요 세 가지를 잘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를 비어 주님과 주님의 원하시는 이웃, 자기를 비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이웃을 위해서 자기의 것을 주님에게 바쳐 바쳤다가 도로 되찾았다가 바쳤지만  내가 주인이니까 이것은 주님 독단으로 하지 못하고 나하고 의논해서 해야 되고  주님이 이것에 대한 권리를 거의 다 가지고 하시는 하시지만 그래도 내 의사도 내  의사도 조금 넣어줘야 되고 참고해 줘야 되고, 이렇게 해달라고 하지 안하고 그  자기를 비어 자기를 생각 자기에게 해당된 것을 자기 생각지 안하고 주님의  소원하시는 대로의 이웃을 위해서 주님에게 바쳐, 요것 기억해야 되고 바친 그것을  내 뜻대로의 것 나와 주님의 뜻대로의 것으로 나와 주님의 뜻대로의 것으로 되게  하지말고 내 뜻을 거기 가담하지 말고 나와 주님의 뜻대로의 것으로 둘이 합작한  그 뜻, 합의한 뜻에 합작된 둘의 뜻에 것을 되게 하지말고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것을 되게 해라.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것이 되도록 너는 관하지 말아라. 상관하지  말아라.

이거 자기가 자기몸에 있는 무엇이든지, 자기 소유든지, 자기 활동이든지, 자기  사업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주님에게 바칠 때에 요 성질과 요 정신으로 바칠 것.

요 성질로 요 이치로 요 정성으로 바치는 요것이 첫째 바치고 난 다음에는 자기는  거기 하나도 가담하지 안하고 바친 그것이 주님의 뜻대로 것 성경 진리대로의 것  주님의 뜻 어겨 주님의 뜻을 이겨 내 뜻대로 내가 바친 몸이지만 내 뜻이 그것을  주관하고 자 바친 무엇이지만 내 뜻이 주관하는 그런 그 홈이 그런 불의가  섞이도록 하지말고 그것을 주님의 뜻대로 그것이 보존되고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도록 자기가 사업을 하나 사업을 경영하다가 그 사업을 경영할 때에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할 수 있고 또 그것은 그 전부를 다해서 자기를 위해도 남는  것이 없이 전부 다 해서 자기를 위해야 되지, 남을 것을 없는 것이 인간들의  건강이요 인간들의 기능이요. 인간들의 소유요. 전부 그것을 자기 위해서 쓰기에  알맞는 것이지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력한 지식 어떤 권세는 만유 권세 큰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그 권세는 전부  자기 위해서 다 쓰도록 마련되어 가지고 있고 다 쓰도록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다 쓰지 그 권세를 다른 사람 주지 않습니다.

이런 것인데 이것을 이제는 자기가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깨닫고 난 다음에 이제는  자기 위해서 가졌던 것을 자기 위해서 가지지 안하고 주님의 소원대로의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주님과 이웃을 위한 것이 되도록 딱 획선을 그어서 요걸 확정을 딱  지울 것. 지우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주님의 뜻대로의 운영 경영 주님의 뜻대로만  그것이 이제는 뜻대로의 것이 되지 주님의 뜻대로 뭐 그걸 건설하든지 운영을  하든지 보관을 하든지 주님의 한 분의 그 뜻대로의 것이 되버리고 이제 그 뜻으로  어기지 못하고 그 뜻의 것이 되버렸어.

그 뜻의 것이 되고 당신 뜻의 것 그러면 그것이 성경 진리에 위반된 것이나 자기의  어떤 것의 인물의 어떤 것이나 하지말고 그걸 주님의 뜻대로의 것으로 맡겨 놓고  자기가 그것을 자기 것이나 자기가 되찾거나 가담하지 말고 순전히 그것이 영감과  진리대로의 업체를 만들고 영감과 진리대로의 자기를 바쳤으면 자기는 영감과  진리대로의 자기가 되도록 요렇게 하고 또. 자기가 무엇이든지 자기의 언변을  바쳤든지 자기의 기능을 바쳤든지 자기의 지식을 바쳤든지 바칠 때에 바친 동기가  요렇게 되야 되고 바치고 난 다음에 바친 그것이 주의 뜻대로의 것이 되야 되지.

바친 그것이 주의 뜻이 아닌 어떤 다른 어떤 것의 뜻대로의 것이 거기  조그만치라도 섞여 있으면 안됩니다.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게 주의 뜻대로의 것, 이제는 자기가 회사를 경영할 때에  그 동기와 목적이 이대로의 것이 되어 가지고 이제 나는 내가 사장이지만 이  회사로서는 여기 (내게 나는 모기와 어떻게 와서 다리를 무는지 도무지) 그것을  과거에는 나 위해서 그걸 가졌고 몸도 나 위해 가졌고 모든 것 저 위해 가졌고 또  저 위해 다 써 봤자 죽는 날까지 다 써도 남는 것 없습니다. 항상 모자라지.

이런데 이것을 이제는 주님과 및 이웃을 구원하는 이 복음에 바치든지 주님 이웃을  주님의 소원대로 이웃을 위해서 이것은 나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주님과  이웃을 위한 것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어도 내 놨습니다. 주님에게 바쳤습니다.

내놓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것이 이제는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것 주의 뜻을  어기는 그것을 용납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그것이 되어질때에 주님의  뜻대로 경영하고, 뜻대로 운영하고, 뜻대로 무엇을 할 때에 그것은 오병이어의  주님의 축사가 임한 거와 같은 축사가 임하는 것으로서 축사하기 전에는 한 아이의  그 도시락이지만 그거는 수많은 사람 그때 오천인데 오 만이면 남는 게 더 많이  남을 것이고 오 억이면 남는기 더 많을 것이고 오십 억이면 남는 게 더 많을 수  있는 그것이 여기 성경의 이치입니다.

사천이 먹어 그러니까 그렇게 될 때에 그것은 그의 효력은 무한의 것이 되어진다.

왜? 하나님의 뜻대로의 것이어서 하나님의 그 능력이 같이 했기 때문에 그것은  비록 바친 것은 적은 것이요. 적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축사가 거기 함께 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서든지 거기에 해당되고 거기에 해당된 그 이익이나 무엇이나  거기에 대해서는 양이 상관없다. 그거는 거기 해당된 양에는 양이 많든지 적든지  아주 많든지 거기에 족하고 남음이 있다.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그것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요 동기로서 자기의 어떤 작은 것이라도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작은 것이라도 주님에게 요 동기와 요 성질과 요 이치와 요 정성으로  주님에게 바쳐 놓았을 때에, 바쳐 놨을 때에 주여, 나는 이제 참 무식한 몸이지만  이 몸을 이제는 주님의 소원하시는 대로의 이웃을 위하는 주의 구원 역사에 나는  바칩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이거 초라한 이 사업이지만 이 사업을 과거에는 나  위해 했지마는 이제는 주님이 원하는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주님이  소원하는대로의 이웃을 구원하는 이웃을 위한, 이것을 위해서 나는 바칩니다.

자기가 사장으로 있어도 말이요. 사장으로 있어도 바칩니다. 바쳐 놓고 난 다음에  이제 둘째 문제는 뭐이냐 거기에 자기의 의사를 가담하지 말고 주님의 단독의  뜻대로의 그 회사가 되게 합니다. 그 회사가 주님의 단독의 뜻대로 회사가 됩니다.

이 말은 이제는 그 회사를 주님에게 바쳤기 때문에 회사가 경영주 사장은 주님이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그 회사를 경영하고 계획하고 하지. 주님의 뜻을  어기면 자기 뜻을 하나도 가담하지 안하고 자기 몸을 자기가 바쳤으면 자기는 이제  자기를 자기 뜻대로의 무엇을 하지 안하고 완전히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도록 요렇게 하는 요것이 둘째로 우리가 할 어려운 일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그것을 사용할 때에 이제는 요거 처음의 뜻대로의 것을 하는 요것은 만드는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명 먹고 남을 수 있고 떡을  만드는 것이 그게 축사요. 우리가 주님에게 바치고 난 다음에 바친 그것을 어떻게  경영하든지 건설하시나 조성이나 자기 몸을 보관 보존하는 것이나 그것을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는 요것이 첫째입니다.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면 이것은 오병이어가 오천 명이 먹고 남음이 있는데  주님의 뜻대로의 것이 되도록 하려 할 때는 마귀라는 그 죄악이 하나님이 시험해서  별별것이 옵니다 와 가지고 그러면 안된다 안된다. 누구의 뜻을 좀 가담해야 된다.

무슨 방편을 가담해야 한다. 할 때에 그것을 가담될 때에 오병이어가 오천 명 먹고  남을 수 있는 축사 받은 덕으로 되지를 못하고 다시 그 떡은 한 아이가 먹으면  하나에게 알맞는 그런 떡으로 되고 말고 축사가 거기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 아이가 와 가지고 아, 선생님 내가 바쳤지만 그 떡 한 개만 내가 먹고  바쳐야 되겠습니다. 이랬더라면 아니라 말이요. 그 아이는 거기 가담하지 안했어.

순전히 바치고 난 다음에 주님의 뜻대로 그 떡을 키웠습니다. 네 주님의 뜻대로 그  떡을 키웠어. 주님의 축사로 그 떡이 커졌습니다. 축사로 그 떡이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떡이 됐습니다. 요렇게 뜻대로의 것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걸 나눠 줄  때에 누구가 시키는대로 하지 안해. 아무도 가담 안해, 주님이 당신의 뜻대로  나눠줘라. 이렇게 분산했습니다. 이렇게 분산할 때에 그 떡은 수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 작고 많고 못  나고 무식하고 어리석고 등신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저런 무지한 것이 뭣  되겠느냐? 내가 며칠 전에 그런 말 들었습니다. 그 부인은 병신이고 그 남편은  바보고 온가족이 바보인데 그 아주 부인이 참 주님에게 바쳐서 신앙으로 살고  신앙의 어긋난 일을 조금도 하지 안해. 그 부인이 바보인데 바보 부인도 바보고  남편도 바보인데 그래 어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자기 것을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 뜻대로 사는데 그 아이가 났는데 어떻게 아이가 잘  났는지 그 모든 이웃 사람이 말하기를 저거 순 바보 같은 것들이 아이는 잘  만들었다 저런 아이가 어디서 나왔노 아, 모릅니다. 그것이 들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그말이요. 그게 들어서 참 오병이어 모양으로 무슨 일할지  몰라요.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체든지 자기의 어떤 그 부분의 기능에든지 또  자기의 소유든지 이것을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바칠 때에 자기 쓰고 남는 것  바치는 거는 안된다 그 말이요. 바치면 여기는 성* 해당치 않습니다.

자기 먹을 도시락 그대로 내 놨소 자기 먹을 것인데 자기 생각지 아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의 주와 이웃을 위해서 내 놨다는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요 성질로 우리가 바쳐야 됩니다. 몸을 바쳐도 이렇게 바쳐야 되고 또  소유를 바쳐도 이렇게 바쳐야 됩니다. 요 바치는 것, 요것이 요대로 되야 된다는  것.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해도 요 성질대로의 하지 안하고 자기 쓰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바치고 언제든지 자기 먼저 생각하고 그 자기 먹고 남는 것 바치는 것  아닙니다. 요거는 그 있는 것 다 바쳤어. 그게 밖에 없다고 성경에 말해 놨어요.

저 먹을 거라. 먹고 남는게 아니라 요것을 간단한 요 형식을 가지고 우리 구원  이치를 가르친 것입니다.

요렇게 바칠 대에 바치는 것이 요 성질대로 바쳐져야 되고 일단 바쳐 놓은 것은  간섭하지 말고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도록 하는 것 주님 단독의 뜻대로  하여 그것을 보관도 하고 키우기도 하고 이제는 바쳐 놓은 다음에는 자기의 의사를  가담하지 못하고 주님의 단독을 뜻대로의 것이 되어지는 그것이 뭐이냐?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큰 것으로 큰 것으로 이와 같이 변화되고 큰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 가담해 가지고 역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만 남았어.

그러고 난 다음에 이것을 지출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이것을 주님 단독의  뜻대로의 사용해야 되요. 주님의 뜻대로 그걸 사용할 때에 그 도시락 가지고  먹어봤자 찍해봤자 제 배 대로만 먹지 그 이상 어떻게 먹겠소. 저 배 실컷 먹었고  그 수많은 사람들 실컷 먹었고 배 대로 먹었고, 남는 것 열두 바구니나 됐고, 주님  기뻐하셨고, 천주 만대로 영광있고 존귀있고, 자기 하나 가지고 수많은 사람 먹게  됐으니까 기쁘고 즐겁고, 하는 요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인 것입니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해야 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요것이 기독자라면 자기가 걸어갈  자기 길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자기를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가담되는 그 방편 또  보잘 것 없는 것이 주님 앞에서 수많은 효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 지극히 작은  것이 무한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 지극히 자기의 가진 작은 것이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무한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이 기독자인데, 자기의 가진 빈약한 것 이걸  가지고 그 자타에게 무한한 효력을 나타내는 것이 요것이 기독자의 것인데 그것은,  기독자가 요 세 가지 요 이치를 그기에 적응 시켜서 요 세 가지 이치대로의 것이  되어지면 아주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큰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 기독자의  모든 것입니다.

기독자의 이것 저것 모든 것이요, 그런 데에는 장소도 시간도 양도 상관이 없다.

시기도 상관없고 현실도 상관없고 그의 대한 양도 상관없다, 여기 제재받지  말아라. 여기 제한 받지 말아라, 여기 빌립아. 여기 얼마 돌아가겠느냐. 뭐 일  할때는 그런 타산이고 계산이고 하지말라. 기독교는 이 세 가지를 초월한 것이다.

시기를 초월하고 야, 암만 그래도 살아날 기회가 있고 운동할 기회가 있어야 되지,  당장 지금 오늘 기도하겠다 하면은 사자 구덩이 집어넣는데 거기는 다시 용수를  부릴래야 부릴 수 없는 것인데 이제는 사자 구덩이 들어갔는데 뭘 살아 나올게  있느냐? 야 시간을 초월했다. 시간을 초월했다. 시간에 제한 받지 안한다.

아, 사자 구엉이 들어가서 푹 떨어졌는데 뭐 지금 살아날 그런 틈이 있는가? 아  기독교는 그 시간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이다. 그 시기를 초월한 것이 기독교다.

요렇게 요렇게 다 몰려서 사자입에 딱 들어가다 싶이 딱 구덩이 떨어졌는데 야!  현실과 장소를 초월한 것이 기독교다. 그런 소리하지 말라. 야, 이제 뭐 사형선고  받았는데 그 김 뭣이지? 그때 비서실장 한사람이 김 뭐 재구 말고 김계원  김계원씨를 내가 그분이 뭐 장노라는 말 듣고서 내가 그때 그 말했어. 권찰들  있는데 이게 이렇지만 다니엘 사자 구덩이처럼 회개만 하면 이거는 안 죽을런지  모른다. 내 그 권찰님과 밥 먹으면서 그래 말했어. 이랬는데 안 죽었데요. 참 안  죽었습니까 ? 여러분들 기독교는 시간에 재한받지 않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요. 현실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요. 양을 초월한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여기서 세가지를 보여주고 이러니 기독자 네가 어떤 것이나 비록  어떻게 작다 할지라도 너 생각지 안하고 주와 이웃을 생각하여 그것을 내 놓고 너  생각지 안하고 주와 이웃을 위하는 것으로 만들고 내 몸이든지 사업이든지 큰  회사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이 회사는 과거는 나를  위해서 있었지마는 이제는 주와 주의 소원대로 이웃을 위해서 나는 주님 앞에  바칩니다. 내놓습니다.

하고 그것이 그때부터 이후에 주의 뜻대로의 것이 되고 주의 뜻을 어긴 것의 것이  되지 안하고 주의 뜻대로의 것이 될 때에, 내 눈에는 커지든지 작아지든지  안보이든지 어쨌든지 그것은 오병이어와 같이 그것이 수많은 효력을 낼 수 잇는  거기 창조주의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이것이 되어진다. 이것이 뭐이냐 그것이  주의 뜻대로의 것이 되어질 때에 그게 되어지는 것인데 요렇게 가치있게 될려고  하면 마귀라는 놈은 마귀의 저거 병력가지고 현저히 이러면 망하는 것인데 안되는  것인데 이렇게 미련케 그 회사를 운영하려고 하느냐.

이 오병이어의 주의 축사로서 그것이 무한한 효과를 낸거와 같은 나는 그걸 바래  그런 소리 치워. 주의 뜻대로의 것을 주의 뜻대로의 회사를 만드는 것을 원해 주의  뜻대로의 몸이 되는 것을 원해. 그러고 모든 부산한 분산도 이것도 주의 뜻대로  지출해 주의 뜻대로 써 그럴 때에 이렇게 지극히 큰 효력을 나타내고 자기 좋고,  주님 좋고 남좋고, 무궁세계 영광스러워지고 하는 이것이 우리 기독자들이 어떤  것을 가졌든지 가진 그 전부는 다 요 성질대로의 권세를 가졌고 또 이렇게 될 수  있는 이런 소속을 가지고 있는 것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단단히  기억합시다.

여러분들 이 세 가지 초월했다는 것 이것 굳게 잡읍시다. 초월한 것이 이 세가지로  바쳐지고 주의 것이 되고 쓰여질 때에는 이것이 큰 효력을 나타냅니다. 이러기에  세계에 보면 큰 복음의 역사하는 사람은 다 못난 사람들이요. 잘난 사람들은 아주  역사한 것 같지마는 가보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고 모래 위에 지은집 들이 많다  그말이요. 다 인간들이 근본되고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지 안한 그런 일이 많아요.

그런고로 작다 못 낫다 생각지 말고 요것만 된 그것만을 가지고 전능의 주님은  쓰십니다. 나는 병들어 이제 꼴깍 것는 그거라도 좋아요 그거라도 어떤 것이든  양에 상관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삼십분 기도하는 것은 예배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렇게 시간이. 그 불을  끄시고 또 여기도 끄고 먼데있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마는 기도하고 그렇게 가도록  하십시다. 기도할 때에 가방은 무릎 위에 얹어놓고 해요. 저 걸어 놓은 방 모두  무릎에 얹으시오. 그래 가지고 십 만원도 빼이고 십오 만원 이십 만원 빼이고 다른  사람 죄짓게 말고 그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얹어 놓고 기도해요. 모두 삼십분  기도하고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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