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5:26
오병이어의 도리
1980년 8월 28일 목새
본문: 요한복음 6:1-15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여기에 산에 오르시니 하는 이 말은 높은 산에 와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게는 평지인데 조금 언덕이 되니까 어제밤에 증거한 것과 같이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째가 사랑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없는 사람, 제자들이 그 많은 무리들이 벌써 예수님을 따라 다닌지 여러시간이고 또 이러니까 다 시장해서, 가다가는 위협을 당할만한 그런 어려운 형편이지만 저희들에게는 아무 줄 것도 없고 그러니까 날이 저물어가니 이 무리들을 헤쳐서 다 자기네들이야 어떻게 하든지 다 보내록 하십시오 이렇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광야요, 또 날은 어둡고 아무런 대접할 것도 없으니까 그만 해산시켜서 보내도록 하십시오. 하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상은 택한 백성이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모든 사람으로 이렇게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택한 사람인지 택하지 않은 사람인지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택한 백성으로 알고 상대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그 어려움, 영육이 다 송두리째 영적으로도 가난해 있고 육적으로도 가난해 있고, 영적으로도 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육적으로도 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이 죄악이 관영해가는 이 세상에 그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상대해서 사는 우리들 한테 제일 첫째 가질 것이 무엇이냐, 주의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말했습니다. 그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붕괴되어 사망이요. 다 허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고야 그것에는 모든 것이 있게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게 됩니다. 지혜도 있게되고, 능력도 있게되고, 소유도 있게되고, 모든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그 모든 것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오묘합니다.
어머니가 무지해도 사랑하는 아이에게 대해서는 그 어머니가 제일 지혜롭습니다.
아이에 대한 것을 제일 바르게 옳게 잘합니다. 장성하면 틀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사랑의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진 그 사람에게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은혜를 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정해 놓기를, 마치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할 때는 인간이 가지지못한 그 도덕을, 예의를, 진실을, 희생을, 봉사를 아무리 맹수도 맹수가 그 새끼를 사랑했을 때에 그 어떤 도덕가만 못지 않는, 그런 초맹수적인 그런 참 흠없는 생애를 기를 수 있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본능인 것입니다.
도야지도 그렇습니다. 모든 짐승도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주십니다. 제도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어떠한 희생이라도, 어떠한 수고라도, 어떠한 봉사라도, 그 상대방의 모든 구비한 유익을 위해서, 자기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그 창조, 번식과 창조에 역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연구를 안해 그렇지 곤충들도 다 그러하고 식물들도 다 그러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합니다. 고동이라는 그 고동은 그 자기 새끼를 사랑하므로 그를 기르기 위해서 사랑 그것 때문에 자기 자체가 온전히 그 새끼에게 먹혀집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새끼 위해 다 주고 새끼가 다 먹고, 어미를 다 먹고, 어미의 살을 먹고 자랍니다. 그래서 아들 말에 고동이가 그 어미 다 파먹고 나면 껍데기가 둥둥 떠내려 가니까 어미 시집간다 그렇게 말한다고서 그런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생육하시고 번식하시는 그 제도요, 권위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개라도 새끼를 사랑하므로 기룰라고 할 때에 그 재가 보면 참 자기 피골이 바짝 마르기까지 자기의 진액을 그 새끼를 위하여 빨리는 것은 꺼리지 않습니다. 꺼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은 제도요, 그것이 방향입니다.
이와 마찬가지고 오늘 기독자들이 자기가 상대방을 짐승이 새끼 사랑하는 것처럼, 육으로 새끼 사랑하는 것처럼 이렇게 참 사랑하는 사랑을 가졌을 때에 자기는 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양육하는 그 모체같이 되어지고, 모성같이 되어져서 자기를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고, 희생할 때에 그 뒷받침이 하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말씀하신데로 하나님이 뒷받침이 되시기 때문에 모든 것에 충족하고 충족해서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첫째 사랑없는 것을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사랑 없단 말은 그들에게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아무런 동정이 없는 사랑이 없는 그것을 여기에 각양으로 나타났습니다. 각양으로 나타냈을 때에 주님은 이것을 다 거부했습니다. 주님이 다 섭섭해 여겼습니다.
그런고로 여게서 첫째는 사랑 없는 우리 인간성, 이것을 제거해야 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십니다.
둘째로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을 경계해 주셨습니다. 믿음,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작해서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인도자가 되고 나는 따르는 자가 되고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가 되고,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에 합작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왜 그들이 믿음이 없었던가? 이렇게 먹고 남음이 있는 주님이 옆에 계셨는데 그들은 밤이 되니 빈들판이니 이렇게 많은 돈 가지고 사도 안된다 하는 그것이 믿음이 없는 다 말들입니다. 왜 믿음이 없게 됐느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사람이 있었으면 억지로 믿을라고 믿을라고 믿고 억지로라도 됐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일 그들을 주님이 사랑하심 같이, 짐승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자기가 해결지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책임지지 않고는 견딜수 없고 책임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일이 있었으면 안되도 주님 앞에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가다가는 안됩니다. 아무래도 주님을 의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믿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말씀하시면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가 확신했으므로 하나님이 이삭을 길러서 그게 자손이 날 것을 말했습니다. 이삭이 자녀를 놓을 것도 확실히 믿었고, 또 이삭을 잡아서 불에 태워 죽이라고 했으니까, 번제로 드렸으니까, 번제로 드려야 했으니까, 번제로 드려야 할 것도 확실히 믿었고, 이러니까 그 두 믿음을 무엇을 만들어 냈느냐 아 그러면 재덩이를 살려가지고 놓겠다 하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이라는 그 지식이 그에게 필연적으로 생겨지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그 믿음의 능력으로 인하여 그런 지식이 생기지게 됐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사랑이 있고 거기에 자기로서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에는 나무에라도, 돌에라도, 어데라도 지금이 구할 수밖에 없고 발동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들이 주님을 옆으로 이렇게 부르짖지를 못하고 발동이 없었던가? 사랑없는 연고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여게 교훈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믿음이 없는 이런 자가 되지 않기를 여기에서 교훈을 하십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는 뭐인고하면 이렇게 믿음을 지키면 다 영광스러워지고 존귀해지니까 마구 사람들이 떠올립니다.
해방직후에 제가 웅양교회라는 교회에 주남선목사님이 거기와서 집회를 하는데 제가 갔습니다. 가니까 집회중인데 그 사택에 와가지고 얘기를 하고 모두 앉았는데 거창읍에서 청년들이 한 팔치 올라왔습니다. 올라와 가지고 말하기를 아무래도 이 건국을 하나님의 친한 주남선목사님이 거창에서는 앞장서야 되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거창건국 위원장이 되야 되겠고, 또 국회의원을 지금 선출할려는데 거창서는 국회의원이 주남선목사님이 되야 되겠고 모든 천망들이 이런데 아무래도 이 번에 주 목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행하기 위해서도, 아 모두다 그 사람들이 예수믿으면 천물인줄 아는데 이렇게 믿음지켜서 건국위원장도 되고, 또 국회의원도 되고 이렇게 되어야 짓밟힌 하나님의 도가 영광스러워질 터이니까 이 번에는 주목사님이 꼭 하셔야 되기 때문에 그 허락을 받으려 왔습니다.
모든 출마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남선목사님 외에는 할 이가 없는데 그 분이 안된다 하면 우리가 손 떼겠다 그 분 아니라면 네가 내나 같기 때문에 그 분이 안한다면 나도 출마하지 않겠다. 주목사님이 하려고 하면 모든 다 손 뗄려고 합디다. 이러니까 이번에는 주목사님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거기에 있는 교역자들 모든 남녀 청년들이 다 동감입니다. 아무래도 이 번에는 해야 되겠습니다. 다 그랬습니다. 저는 그 때 이 성경을 알기 때문에 성경을 대면서 이런데 주님은 이런데 목사님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칠랍니까? 하늘나라 건국위원이 되가지고 이제는 세상 육화의 건국위원이 될랍니까? 나는 주목사님이 하는 것 찬동아닙니다. 나혼자 반대하니까 그 청년들하고 나하고 대립이 되서 백집사님 꼭 저러기 때문에 우리와 의견충돌이 됩니다.
반대했습니다. 반대하니까 주목사님도 따라서 반대했습니다.
내 나라는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내가 하늘나라 건국자지. 세상나라 건설하는 사람들은 아니야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말하는 길을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딱 단절을 합디다.
그 때에 해방직 후에 아주 교회에 권위성이 있어서 김구씨는 말하기를 경찰서 몇 세우는 것보다 교회하나 세우는 것이 낫다해서 그 때 모두 이 간첩들도 성경만 들면 밤에 통행금지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이 사랑가지고 믿음가지고 행한 그 결과로서 영광스럽게 되었으나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것과 같은 이런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배은혜 목사님도 그 분이 은혜 끼치는 분인데 그 분이 그 때 들어 올려서 고등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 고시 위원장 했습니다. 그것 다 억지로 왕을 잡아 세울 때에 왕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게서 다 실패했습니다. 교역자들도 조금 은혜생활해서 교회가 좀 되어지고 은혜가 있어져서 교인들이 철없이 자꾸 이렇게 존경하고 디리 솟가 올라가면 그만 그게 솟가 올리져 가지고 세상적으로 권위를 갖고, 세상적으로 영광을 누리고, 세상적으로 활동하는 여기에서 다 끝이 실패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여기에서 삼가라고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사랑없는 자가 된 것을 경계하고, 믿음없는 자가 된 것을 경계하고,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성공하자면 이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하려고, 세상영광을 줄라고 할 때에 세상영광을 넙죽 받는 자 되지말고, 주님과 같이 세상영광을 피해 이것을 물리쳐라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가르치는 고 하니,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피동되서, 주님이 그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에 피동되서 자기도 주님이 자기를 사랑한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그러면 주님이 나를 사랑해서 어떻게 하신 그대로, 나도 주님을 사랑하므로 나와 내 모든 것을 어떻게 하는, 주님의 사랑에 피동되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주님이 그 모든 무리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피동되서 이 아이처럼 우리들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피동되서 이 아이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 이웃을 사랑하므로 자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기에게 필요한 그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 그것을 자기가 쓰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이 사랑하는 이웃을 사랑하여 그것을 주께 바쳤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큰 결과를 맺었습니다. 그것에는 무한의 풍성이 있습니다. 만일 그 때에 오천만 명이 아니라 오억만 명이 있었을지라도 오억만명을 다 먹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게는 무한의 충만으로써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을 여기에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조심해서 물리칠 것, 세 가지를 가질 것, 여기에서는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라고 난 다음에 이제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는 그것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은혜있는 교역자들이 다 여기서 떨어집니다. 처음에 가서는 죽자 사자 자기는 생각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금 보내신 사명을 감당할까, 교회를 대해서 내가 사명을 다할까. 주님과 교회만 생각할 때는 목회가 되는데 그 때는 참 감탄이 되고 좋은 교역자가 되는데 조금 되고나면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이 저를 들어 올릴때에 그만 그 때는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교회도 잊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나를 영화롭게 존귀케 기쁘게 하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되어서 대우받을 것이나 요리조리 계산하고 이렇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높임받는 이것이나 생각해서 그것이 버릇이 되서, 교육자된 자에게는 옳은 말 한마디만 해주면 빠뜩 삐꾸.
나도 위대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이 나를 존대하는데 이래가지고 억지로 우리 임금삼는 비행기 타가지고 거기에서 다 떨어져서 다 추락해서 죽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 가지 삼가할 것, 세 가지는 아무래도 가져야 할 것, 주님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에 피동되서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 한 가지 가져야 되고, 주님이 원하시고 원하셔서 이웃 사랑하니 나도 주님에게 피동되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므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이것 가져야 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 가질 것은 자기에게 이것은 필요하요, 없으면 안 될 것이요. 자기 위해서 쓸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께 바칠 때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무제한의 축사가 임할 수 있고, 성과를 이룰 수 있고, 그리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본인은 어짜고. 본인도 축사없는 식물로 배 채울 것인데 하나님의 축사와 영광이 있는 그 식물로 배 채웠습니다. 손해 안 봤어.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