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도리

 

1980. 8. 27. 수야

 

본문: 요한복음 6장 1절 - 15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 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이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뉘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선지자선교회 (기도)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원수된 사망 아래 있던 저희들이 영광스러운  주의 자녀로 주의 후계자로 속량함을 받게 된 것을 진실로 감사하옵고 찬송을  드립니다.

이제는 우리를 속이고 사망케 하셨고 영원히 하실 주님을 향하여 살게 됨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실려고 맡기라고 하시고  우리의 모든 부족을 보충하시려고 인도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감사하옵고 찬송을 드립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주의 사랑 안에 있으면서도 망령될 때 많사오나 길이 참으신  주님의 사랑을 더욱 찬양합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천하에 있는 성도들을 사망의 세력으로 인하여 죽을 줄도 알지  못하고 망령된 것이지 알고 망령함이 아니오니 끝까지 주님의 긍휼로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만을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이 바래봅니다.

긍휼을 베푸사 주의 긍휼로 인하여 이루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 말씀은 사 복음에 다 기록돼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5절로 20절 마가복음  6장 34절로 44절 누가복음 9장 12절로 14절 요한복음 6장 1절로 14절 이렇게 사  복음에 다 기록돼 있는데 그 기록이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에 기록된 것은 저기에 빠진 것이 있고 저기에 기록된 것은 여기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억이 기자들이 모지라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록하실 필요가 있어서 영감 받은 대로 다 기록된 것입니다. 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은 남자의 수만 한 오천쯤 된다고 그렇게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여게 든 그저 오천이라 했으나 다른 데는 또 남자의  수가 오천쯤 됐다고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적은 분량의 떡과 고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에 찼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여게 번역하기를 이적이라 하지 아니하고  표적이라 이렇게 번역됐는데 이는 계시의 기록한 목적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어떤 그 실상이 있는 것을 그 실상 아닌  것을 가지고 실상을 나타내 알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표적이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뒤에 여반에 안 들린다는데요. 안들리면 다 손을 흔드이소. 안  들립니까 여반 남쪽 구석에 저 안들린답니다. 지금도 안들립니까? 안들리면  손들어 흔들어 보이소. 들리거든 손 드이소.)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 신앙 생활에 닥치는 일은 실상이요.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고 남은 것이 있는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그 실상을 하나의 떡먹는 이 형식을  가지고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표적이라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그때의 그 형편은 곧 우리의 구원에  걸음을 걷는 형편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적은 식물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먹게 된 그 초자연의 능력 역사라 그렇게만 생각하면 그것은 이  도리가 가르쳐 주시는 복음은 받지 못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여게서 구원 이루는  이치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첫째로 선두에 기록하기를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왔다 하는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사 복음에 보면 유월절이 가까왔을 때에 혹은 또 유월절 한  가운데에 그때에 주님이 교훈하신 것 또 행사하신 것 그런 것은 우리는 그  유월절을 무엇 때문에 거기 기록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살펴서 깨달아야  합니다. 유월절이라는 그 절기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그  환란을 통하여 승리와 자유와 크게 유익을 본 그 환란이요. 또 믿음을 가지지  아니한 자에게는 크게 패전과 고통과 실패를 당한 그 환란이 유월절 환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월절이라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이렇게 됐다. 유월절을 그뭐  기록할 필요가 없는데 유월절을 절기가 가까운 때라 또 유월절 한가운데 날이라.

유월절 지킬 때라 그렇게 하신 것은 반드시 거기 기록한 그 사실이 이 유월절과  같은 그런 시기가 당할수록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여게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된 이 사실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 지키면 크게 성공이 되고 믿음을 떠나면 크게 실패가 되어지는  승패와 흥망과 존비 생사 이것이 한 환란에서 이렇게 산 사람은 이렇게 성공되고  저렇게 산 사람은 실패가 되는 그 양면을 가진 그런 환란 때에는 더욱이 여기에  기록한 여러 도리를 똑똑히 깨닫고 지켜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강조해서 그 시기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이 먹고 남은 이 이것으로 표시해 보이는 이  표적에서 깨달은 진리는 성도들의 양면을 결과 맺는 이 환란 시기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더욱 필요하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하니까 차차 소문이 퍼져서 예수님에게  무엇을 구할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이 차차 모이게 됐습니다. 거기는 별별 생각을  가지고 모였지만 어쨌든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모이는 우리들이 많았습니다.

바닷가 그 해변 빈들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  무리들이 목자 잃은 양과 같고 참 비참한 것을 저희들은 비참한 줄도 모르고  그저 의식주에만 어려운 것을 느끼고 있는 그 무리들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의 도(道), 인간이 사는 생명 길을 그들에게 장시간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벌써 날이 저물어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벌써 날은 저물어져 가고 또 이 곳은 빈들판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는 빈들판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모르고 계시는 줄 알고  그들이 그렇게 깨우쳤습니다. 이러니까 일찌거니 흩어 보내서 각각 너희들이  어떻게 자기 식사를 처리하든지 그렇게 해산을 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 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가르치고 배웠으니까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고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빌립이라는 제자가 말하기를 이 백 데나리온어치  사도 조금씩 밖에 안 돌아갈 터인데 돈도 없지 빈들판이지 날은 저물지 뭐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이 무리들에게 줄 만한 가진 것이 없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 중에 안드레라는 제자가 말하기를 그러면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고 한번 가서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양사방 다녀도 아무 것도 먹을 것은  없고 어린 아이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진 것 그것만  남았습니다. 벌써 예수님을 따라 다닌지 오래 됐으니까 준비를 해도 다 먹어  버리고 없다 이기요. 그걸 가져 와 가지고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 안드레는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까 이 양이 적은 이 식물이지마는  주님이 능력을 베푸시면 좀 많아지기는 많아지지마는 많아진다 할지라도 남자의  수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니 이 많은 무리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나누어지겠습니까? 이렇게 안드레가 또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그 떡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  예수님이 받으시고 이제 이 무리들을 앉혀라. 오십 명씩도 앉히고 또 다른 데는  그만 백 명씩도 앉히고 이렇게 그곳에 잔디가 좋아서 모든 무리들을 앉혔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축사를 하고 나서 그 떡과 고기를  제자들에게 떼어 주면서 너희들이 무리들에게 나눠줘라. 제자들이 그 떡과  고기를 나눠줬습니다. 암만 나눠줘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이래서 그 무리들이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배부르고 또 그 떡을 내놓은 그 아이도 먹고  배불렀습니다. 이제는 더 먹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남은 부스러기를 버리지 말고 이것을 다 주어라. 무리들이  그것을 주워 가지고 모으니까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니까 떡 먹고 난 다음에 그 모든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을 했고 또  어떤 무리들은 아 우리가 로마의 식민지로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이분을 세워서  왕을 삼으면 능히 우리를 독립도 시킬 것이고 또 모든 경제 생활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겠다 해서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그들이 도모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때 그것을 피해서 홀로 산으로 가셔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요것이 요 한 성경에는 다 고대로 기록돼 있지 않지마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 복음에 기록한 것을 다 종합하면 지금 제가 말한 대로  요 내용의 순서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저물어져 가는 이 세상에서 점점 죄악은 관영해서 하늘나라까지 관영해 가는 이  세상에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이 택자들이요. 참 의지하고 바라볼 것이 없는 이  하나님의 택자들이요. 모두 다 헐벗고 굶주린 어려운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이 말세를 백성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이 말세를 당한 말세는 신약 시대 교회는 다  말세입니다.

당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 있는 것을 여게 모형해서  가르쳤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쓸쓸한 빈들판 바닷가에 있는 빈들판 바다는 죄악이 관영한 죄악 속에 살면  이리저리 헤엄치고 살지마는 이 죄악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려고 하는 자의 그의  처지는 다 이 빈들판과 같은 풀만 우우 하이 있고 아무 것도 없는 이 광야와  같은 이런 세상에서 생활해 가고 있는 이 기독자들인데 이런 처지에서 처세해야  되는 이 기독자들인데 이 기독자들에게 대해서 날이 저물어 가니 먹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아무 것도 없고 곤란하니까 이 무리들을 어서 분산시켜서 해산시켜서  자기네들이야 가다가 시장하든지 무슨 곤욕을 당하든지 어쨌든지 책임성을 벗기  위해서 해산시키십시오 하는 이 주장을 그때 제자들이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맞지 안했고 또 예수님은 그 반대의 마음을 가지셨고 섭섭해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에 기독자들이 신앙 생활을 할려고 할 때에 그 처세에 어려운  입장들을 다 가지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그 어려운 입장을 아무리 그 어려운  입장을 가진 그 사람들의 어려움과 또 (그 아이들 단속하시요. 아이들을  예배당에 데리고 와서 어릴 때부터 뛰노는 그런 걸 가르쳐 놓으면 좋지 못한  습성이 있어서 안 됩니다.) 그러고 교회에 암만 와도 진리가 그 속에 머물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예수님  팝니다. 너희들이 나를 배반하고 죽이려 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너희 안에 없기 때문에 라고 말했습니다. 암만 왔다 갔다 해도  소용이 없어. 믿는 도리를 깨달아 자기 마음에 담아야 됩니다. 그것이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그릇에 담는 것입니다. 영감 도리를 자기 마음에 담고 하나님의 그  권능을 자기 마음에 담아 영감의 진리가 자기 마음에 담길 때는 하나님의 권능도  하나님도 같이 자기 안에 와서 내주하시게 됩니다. 그래야 등을 가지고 불을  나타내는 것처럼 자기의 몸의 모든 활동은 세상 빛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 가운데 담겨 있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흥분을 아무리 일으켜도 소용이 없어. 하나님과 진리의 힘으로만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 밤중은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 신적 요소 그것만이 유지되지 딴 것으로서는 그  어두움에 삼켜지지 아니할 수 없는 그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말한 것입니다.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믿음 연단한다 말은 신적 요소로 된 것만 남아 있고  인적 요소로는 의지가 강하고 또 선천 후천의 수양이 구비하고 어떤 면이  탁월하다 할지라도 인간 요소만으로서는 그 밤중에 빛을 들지 못하고 금을  연단하는 것같은 그 어려움을 신앙으로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의 관영한 세상에서 신앙 걸음을 걸어 갈려고 할  때에 이런 저런 모든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것을 책임지고 해결해 줄려고 하지  아니하고 어쩌든지 이것을 책임을 벗을려고 이렇게 해서 죄악이 이렇게 관영해  가니 환란이 심해가니 이 우리에 대한 그 어려움은 해결해 줄래야 해결해 줄  것이 우리에게 없고 그들의 배고픈 것을 면해 줄만한 이 배고픈 이것은 하나의  어려움을 대표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 배고픈 그 어려움을 저희들이 해결해  줄려고 해도 해결해 줄만한 실력이 저희들에게 없습니다. 또 저희들에게 그만한  해결해 줄만한 무슨 조건이 있다 할지라도 환경이 허락지를 않습니다.

빈들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무리들의 어려움을 이 제자들 자기들에게 있는 자기 가지고  해결해 줄래도 해결해 줄 수가 없고 또 자기들에게 해결해 줄 마음이 있고  해결해 줄 만한 무슨 그것이 자원이 있다 할지라도 환경이 또 용납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어려운 환경을 또 해결해 줄만한 그 자원을 가져야 되는데  이것이 없으니까 그들은 해산시켜 달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당연한 말입니다.

저들로서는 당연한 말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그들에게 모자라는  것을 다 채워줘라 어려움을 다 면해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당신이 아시고 당신이 해야 될 일인 줄  알고 이 제자들이 믿음이 있나 없나 해서 시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무리들의 그 어려움 그 어려움 더 어려운 사람을 어려운  사람들과 어려운 사건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어려운 사건, 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제자들, 이들은 그것을 해결해 줄만한 아무런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또  그때에 형편과 사정과 그 배경들이 이것을 해결해 줄만한 그런 그 배경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 어려움을 당한 무리들과 어려운 사건과 예수님의 이  제자들과 예수님의 가진 것과 예수 아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가진 것과 이 둘이  맞붙어 가지고는 절대 해결 안 됩니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이것을 여게  우리에게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세를 당한 이 말세에 죄악으로 점점 관영해 가는 이 세상에서 이 어두움의  죄악을 능히 이기고 이것을 무난히 이 밤을 통과할 수 있는 이 어려움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이 어려움을 무난히 면케 해 줄 수 있는 환경도 반대 소유도  반대 인간과 인간끼리 사건과 사건끼리 제자들 가진 것 그들의 가진 것 이것  인간의 형편과 인간과 인간끼리 만나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이 말세 교회의  성도들의 이 신앙 걸음을 이것을 제자들은 안 된다고 해산을 말했습니다.

무책임으로 책임 안질려고 책임 회피를 하고 해산을 말했습니다. 각각 제 부담  제하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것을 해결하려면 이런 이런 그 원인이 있어야 되겠는데 그것도 없으니  안된다고 이렇게 말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무리들에게 첫째로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너희들에게 가진 것이 얼마냐 이것을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조사해  가지고 가진 것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그 중에 어린 아이  하나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놨는데 자기는 생각지 아니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을 따라 자기의 가진 소유를 그 많은 무리들을 위해서 많든지 적든지 다  내놨는데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드리니까 드리면서 말하기를 이것 가지고  아무리 주님의 권능이 어떻게 역사한다 할지라도 이것 가지고 이 많은  무리들에게 얼마 되겠습니까 얼마 돌아가겠습니까 허기나 면하겠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면 한 사람이 한끼 먹는 것입니다. 하나 먹으면 되는데  열이 먹어도 요기가 안되고 허기도 못 면할 터인데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들의 수도 많은데 이것이 어떻게 얼마  돌아가겠느냐? 그렇게 말한 것은 그 안드레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소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신 능력이 있으니 예수님의 능력을 가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얼마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게서 이 신약 교회의 말세에 성도의 신앙 걸음에 어려움에 대해서 이 빌립이  빌립과 제자들이 말한 것도 주님은 섭섭했소 반대요. 이 무리들을 해산해  보냅시다 하는 말도 섭섭합니다. 여게는 빈들판이니 불가능합니다 하는 것도  섭섭했습니다. 200데나리온 어치를 사도 안될 터인데 돈 없습니다 그것도  안됐습니다. 살 집도 없는데 그것도 섭섭했습니다.

무리들에게 가서 구해 가지고 오병이어를 가지고 와서 오병이어가 있지마는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주님의 능력은 가하지마는 얼마 돌아가겠습니까 하는 그것도  주님에게는 섭섭합니다. 이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오늘에 하나님 앞에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향하여 주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여기에 이렇게 저렇게 계산을 한 이것은 다  주님이 섭섭해하시는 주님을 부인하는 불신의 행위라는 것을 주님께서 여게서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가져 오셨을 때에 그들이 가져 왔을 때에 예수님이 받으시고  거기 하나님께 축사하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를,  하나님의 능력을 부가하셔 가지고 축사하시고,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거기에  연결시켜 가지고, 부가하셔 가지고 제자들에게 이제는 나눠줘라, 나눠주니까,  나눠줘도 있고있고 있어서 그 많은 무리들이 먹고 남은 것이 오히려  오병이어보다 남은 떡과 고기를 거두니까 열 두 바구니니까 많이 먹고 처음에  오병이어보다 얼마나 많았습니까? 많았습니다. 그것을 낸 그 아이도 오병이어 저  혼자 먹는 것보다 못지 않게 배부르게 만족히 먹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영적면 물적면 영적면 물적면 모든  면의 그 어려움을 그것을 자기 형편없다고 벗는 것도 하나님이 섭섭해하시는 것  그들에게 책임 지우고 내 몰라라 하는 것도 섭섭해하시는 것 내 형편과 사정이  이러니 하는 것도 섭섭해하시는 것 나는 불가능하다 하는 것도 주님이  섭섭해하시는 것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지마는 여게 대해서 제한을 해 가지고  그렇지마는 하나님의 은총이 같이 한다 할지라도 이 일이 얼마 정도나 해결이  되겠느냐 하는 제한적 신앙도 주님이 섭섭해하시는 것,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이 이 모든 무리들을  시장하니 이대로 가면 어려움 당할 거요. 낭패 당할 터이니까 이 무리의 어려움  이 어려움을 주님은 무책임하게 그만 책임 벗고 그대로 해산시키고져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시고 그 무리들에 대한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은 책임지시고  그들에게 만족히 그 모든 것을 영육의 해결을 지워 주실려고 원하시는 그 주의  소원에 심정에 소원하시는 그 소원에 자기도 소원하는 그 소원을 가지고 자기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을 따라 모든  무리를 위해서 심히 적은 양이지마는 오병이어를 주님에게 바쳤을 때에 바쳤을  때에 그것은 극히 작은 분량이지마는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긍휼과 주님의  은혜와 능력이 요렇게 요 정신, 요 마음, 요 소원 가지고 주를 위해서 자기 위한  것을 그를 위해서 남김없이 다 바쳤을 때에 바쳤을 때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온갖  은혜가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신, 이 마음, 이 소원, 이 행동, 이 바침,  내 지극히 작은 소량이지마는 여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온갖 충만이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요렇게  한 요기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부족함이 없다. 먹고도 남음이 충만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친 그 아이는 굶었느냐? 그 아이도 배불리 먹었다 남은  부스러기가 그러면 적었느냐? 오병이어가 열 두 바구니에 됐다. 일곱 덩어리는  일곱 바구니 됐는데 열 두 바구니 됐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 소원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사랑의 소원 자비의 소원 은혜의 소원 구원의 소원 그 소원의  심정을 받아 그 심정에 피동돼 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 주님의  소원을 듣기 위해서 자기의 지극히 적고 작은 것이지마는 주님에게 먼저 주님을  기쁘시게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무리를 사랑해서  주님에게 피동된 그 사랑, 은혜 피동된 동정, 피동된 책임, 피동된 그 무리의  사랑, 요것 가지고 자기에게 빈약했지마는 요 근본, 요 정신, 요 마음, 요 사람,  요것 가지고 바쳤을 때에 지극히 작은 것이나마 거기 해당된 하나님의 무리에게  풍성하고 충만하고 완전히 해결을 짓고도 남음이 있다 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 이  표적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모형의 그 사람되고 주님의 모형의 사람되고 주님의  모형의 그 사랑이 되어 자기에게 해당된 것을 자기 돌아보지 않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바치는 그 무식한 무식도 그 병신된 그 불구자도 그의 가난도 그의  못남도 그의 연약도 그의 늙어서 얼마남지 않는 고것도 요 사람되어 요 정신으로  요 본질 본성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그것은 이것은 그 속에  무한의 능력으로 무한의 자원으로서 거기 해당된 그때의 그 현실 그 사건에  해당된 것은 하나도 만족히 해결 지우고도 남음이 있지 모자람이 없다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린 아이와 같은 이 사람되는 것이 문제고 이 어린  아이가 그 무리를 자기 보다 낫게 사랑하는 그 아이가 된 그것이 문제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원하는 마음 가지고 다 내 놓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보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이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기독교요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는 능한 사람들 가운데에 문벌 좋고 학벌 좋고  세상에서 능한 것을 구비한 것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아주 세상에서  못났고 무식하고 천하고 연약한 아무 것도 아닌 세상에서야 짓밟힌 찌끼 같은  그런 인물이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자들이 많습니다. 능한 자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큰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큰 자들은 그 숫자가 심히 드물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만사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나와 주님과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 주님의 소원과 내 소원이 같이 되어지는 것 주님이 나 위해 바친  것처럼 내게 있는 것 바치는 여기에서 만사에 거기 대해서 해결을 짓고 남음이  풍성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요것입니다. 요게 생명이 있습니다.

요게 권능 있습니다. 저 생각하고 남은 찌끼 가지고 남은 찌낑이 그것 가지고  주님을 향할 때 주님은 그에게 할 수 없는 완전자십니다. 주님이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은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원하는  그 자유성에서 대속이 된 것이지 강제 대속이 아닙니다. 원하지 아니하는 그  자에게 강제로 하나님께서 이 구속 역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렇게 한 이 어린 아이의 하나의 참 변화와 그의 행위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 이는 참으로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다 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하게 했습니다. 아랍 나라에서 하나의 계집종은 그의 이 어린  아이와 같은 이 생애는 멸시 받은 포로되어 간 계집종이지마는 그 나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했습니다. 파사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  그들의 꼭 요와 같은 그 성질에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케 했습니다.

이럴 때에 고 다음에 마지막으로 끝에 붙이기를 이러니까 예수님을 이분만 하면  만사해결 되겠다고 해 가지고 억지로 임금 삼을려고 모든 무리들이 단합해  가지고 억지로 끌어다가 임금 시킬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미리 피해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요것이 결론입니다.

이렇게 헌신한 요렇게 예수님의 예수님의 화된 자기로서 예수님의 화된 이  무리를 사랑하는 사랑으로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치는 이 삼 합 예수님화 되는  사람 예수님이 무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 화된 요 사랑 자기 것을 바친 요 바침  요 세 가지 삼합된 고 역사 끝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증거 받게  되고 또 거기에 원인자에게 대해서는 모든 무리들이 이렇게 존대해 가지고 이를  임금으로 세상 임금으로 삼을려고 하는 이런 순서가 반드시 옵니다.

이런 은혜 생활하고 난 다음에는 왜 기독자들이 왜 천대를 받습니까? 천대받는  이유는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천대받습니다. 이렇게 살면 가는 곳마다 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존대합니다. 존대해서 세상이 존대하고 세상이 권위있게  여기기 때문에 이 사람을 세상이 쓸라고 합니다. 요 성질대로 살면 그 회사에  말단 직원이 반드시 지금 자꾸 높이 들려 올라갑니다. 반드시 그 지방에서 유지  유력돼 가지고 세상에 동경의 한 대상이 되는 그런 인물이 되어집니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런 줄 알고 피해서 산으로 가셔 가지고 다시  아버지와 연결하는 그 걸음을 걷지 아니하는 이렇게 올라갔을 때에 세상에 올려  주니까 우쭐해 가지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처럼 이러고 나면  세상이 올리니까 명예 영광에 들려 가지고 세상이 주는 영광 명예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세상 사업주의로 세상 허영 허욕주의로 이렇게 나가 가지고 하늘의  별들이 배암의 이 유혹으로 뚝뚝 떨어집니다. 이렇게 은혜 생활 한 사람들이 이  은혜 생활로 인해서 반드시 세상은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존귀히 여길 때에 그 존귀를 받지 아니하고 자기는 다시 무익한 종으로 돌아가서  이 걸음을 걸으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은혜 생활 조금 하면 세상은 그를 높이니까 그 높임 주는 그  높임에 들리 올라 가 가지고 마지막에 실패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예수님은 홀로 피신해서 산으로 가셨다 요것을 마지막에  결론으로 지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근심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과 나와 내 소유 요 셋이면  만능입니다. 전능입니다. 못할 것 없습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요 자를 찾을 수가 없다는 걸 말합니다. 주님은 요 자를  지금 찾고 계십니다.

(기도) 제자들과 같이 냉정하였고 망령되었던 과거를 주님 앞에 자복합니다.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하시므로 견딜 수 없어 모든 부요도  영광도 몸도 생명도 다 기울여 우리를 살려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의 형상을  아직도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심정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봉사의 뜨거움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사유해 주시고 남은 때에 주님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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