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15:11
오병이어
1979. 11. 2. 금 저녁
본문: 요한복음 6장 1절 - 15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가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도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도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서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여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 하는 이 표적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표적입니다.
여게 번역하기를 그전 번역에는 이적이라 이랬는데 지금 번역은 표적이라 이렇게 번역됐습니다. 이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이 사실이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초인간적인 초자연적인 역사로 됐다 하는 것을 나타내서 이적이라 그렇게 번역을 했고, 또 표적이라 이렇게 번역한 것은 이적으로 되기는 된 일인데 이 이적을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이적을 행하셨는가, 이적을 행하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하는 그 점을 나타내서 그 뜻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적으로 번역된 것보다 표적으로 번역된 것이 더 우리에게 구비한 뜻을 가르쳐 줌이 됩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거 비슷하게 나타낸 것을 가르쳐서 표적이라. 볼 수 없는 것은 실상이요 볼 수 없는 실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낸 그것을 가리켜서 표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이 사실을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는가? 우리에게 무슨 믿는 이치를 가르쳐 주시려고 이렇게 하셨는가? 하는 이것이 이제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병이어로 그렇게 많은 떡이 되게 한 그거는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많은 떡을 만들었다 이것만을 여게서 깨닫는다면 그 참 좀 허무한 깨달음이요 유익을 여게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때에 고 형편에 된 것을 간단하게 여게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각 처에서 도를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러니까 차차차차 예수님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 기도하러 가시는 그 빈 들판에 예수님이 가신 것을 알고 많은 무리들이 또 그리 따라왔습니다. 거게 아이에게 겨우 조그마한 식물이 있는 것 보면 아마 여러날 따라 다녔다고서 그렇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들이 모두 시장하니까 음식을 먹여서 보내야 될 터인데 너희들이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도록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빌립 이라는 사람이 대답을 하기를 '우리가 이백 데나리온어치 떡을 산다 할지라도 사람이 이렇츰 많은데 이백 데나리온은 참 많은 돈이요 또 이 돈 가지고 떡을 사면 많이 사지만 원첨 사람이 많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뭐 잘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사람 수가 많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어치 떡을 사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제 빌립은 대답을 했습니다.
요걸 잘 기억 하십시요.
그러니까, 그 옆에 안드레라는 그 제자가 말하기를 '여게 어린아이가 가진 떡이 한 끼 먹을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게 있어서 이것을 내놨습니다.' 하면서 이제 주님에게 갖다 드립니다.
드리면서 그 안드레는 말하기를 '이것 가지고 얼마씩이나 뭐 돌아갈 게 있겠습니까? 나눈다 해봤자 한 사람에게 얼마씩 돌아가겠습니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이 잔디밭에 앉혀라' 앉혀라 하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이 가지시고 아버지에게 축사를 하시고 기도를 하고 이제는 나눠줬습니다. 떡도 나눠주고 고기도 나눠주고 모두 제자들을 시켜 이래 나눠주는데 '그저 먹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먹도록 해라.' 모두 고기도 배껀 먹었고 떡도 배껀 이래 먹었는데 모두 배가 불러서 이제는 모두 더 먹을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제 모두 배불리 먹었으면 떨어진 조각 그것을 밟아 없애지 말고 그것을 낱낱이 주워라.' 무리들이 그것을 깨끗이 그것을 주워 모으니까 열 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이걸 보고 그때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소문만 듣고 따라다니면서 이 어떤 분인가 하고 그저 구경만 하러오는 사람들, 뭐 사람 따라서 그저 온 사람들 이래 많이 왔는데 이 표적을 보고서 '아, 이 분은 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선지자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이제는 그들이 예수님을 '야, 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았으면 우리나라는 뭐 모든 면에 문제가 없겠다.' 해서 예수님을 억지로 왕을 삼을려고 무리들이 모두 단합을 해 가지고서 서둡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다시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혼자 갔었습니다. 요것이 본문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이것은 여기 본문에 보면 '이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고 보자, 이 제자들이 과연 깨달음이 있나 없나? 이것이 바로 깨닫고 따라다니나 깨닫지도 못하고 공연히 줄줄 따라다니고 있나?' 그것을 한번 알아보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셨다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시험하려고 그렇게 하셨다, 시험을 해 봤단 말입니다.
시험을 했는데, 빌립은 시험에 답을 어떻게 썼는고 하니, 물론 자기가 아는 대로 답을 할 것이고, 자기가 아는 대로 답을 하겠지요. 빌립은 답을 이렇게 했습니다.
'자, 이 무리들을 대충 헤아려 봐도 한 오천여명 근 만명 되는데 오천여명 근 만명을 먹여야 될 터인데, 이렇게 많은 무리들을 먹어야 되겠는데, 이 무리들이 이렇츰 수가 많은데!' 수의 많은 것을 봤습니다.
○○○, 졸면 헛일인데, 이 부자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모두 돈 좋아하는 사람들 잘 들으십시오.
빌립은 아주 그 사람이 참 예민한 사람이고 아주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에게 음식을 주어 먹여 보내라' 이러니까 그만 척 가서 보는데 대충 볼 때 아이쿠! 남자 수만 해도 오천명 넘어, 여자 아이 말하면 이 숫자가 굉장히 많다 하는 것을 딱 파악을 했소. 파악을 딱 하고, 그다음에는 '자, 이 많은 무리들에게 먹일려고 하면 떡을 얼마나 가져야 하겠느냐?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산다 할찌라도 이거 뭐 다 돌아가지를 못할 건데!' 이렇게 이제 주님 앞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주님 명령을 자기가 지킬려고 할 때에 주님이 이렇게 명령하시니 일거리에 이 일거리, 일거리의 이 양이 얼마나 되는고 보자 그걸 계산을 대충해서 맞췄습니다. 그 일거리, 자기가 해야 될 그 작업량, 주님이 명령하시니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이 일이 어느 정도 어려운 일이며 어느 정도 힘드는 일이며 어느 정도의 양이 많은 일이라. 그 일거리의 양을 먼저 딱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을 하고, 참 명철하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만한 일의 양을 하는 데에는 얼마를 가져야 되겠다, 얼마를 가져야 되겠다, 당장 계산 탁탁탁탁 해 가지고서 이백 데니리온어치, 이백 데니리온어치 떡을 산다, 그러면 쓸 곳이 이러니까 쓸 물건이 이만해야 되겠다, 쓸 곳과 쓸 것, 쓸 곳과 쓸 수 있는 쓸 것, 쓸 곳과 쓸 것 이 두 가지를 딱 계산을 했습니다. 해서 '아, 이래도 써야 할 이 양과 쓸 수 있는 이 양을 비교해 보니까 쓸 수 있는 양이 모자라는데!' 그걸 주님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명령을 지켜 사는데 있어서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려고 하면 이행할 그 일거리가 얼마나 양이 되느냐?' 그걸 계산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 일을 하러 왔으니 이 일을 하려고 하면 내가 가진 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하면 해야 되겠는데, 이것 가지고도 모자랄 터인데!' 해서 이 계산을 계산했습니다.
그러면, 빌립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되 자기네들의 가진 것, 자기네들의 가진 것, 다시 말하면 쓰여질 것, 또 주님이 명령하시는 그 일거리의 작업량, 일거리의 그 양 요 두 가지만 가지고 주의 명령을 순종하는 빌립입니다. 자기들에게 있는 것, 또 주님이 명령하시는 일에 들 것 요 두 가지만 가지고 주를 따랐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가 돼야 되겠는데!' 자기네들 가진 것 그것 가지고, 자기네들의 가진 그 분량과 또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그 일을 하는 데에 그 비용이 얼마나 된다는 것 그 계산과 요 두 계산을 대 가지고 자기네들의 가진 것보다 주님이 시키시는 일거리의 양이 적으면 고거는 참 가볍게 해치울 수 있고, 요 두 가지의 비중이 같으면 아껴서 바당바당하게 요 일을 해 나갈 수가 있고, 만일 자기네들의 가진 양이 좀 적고 일거리가 많으면 아예 이거는 그만치 부족하니까 못할 것이고, 요렇게 해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빌립입니다. 요거 잘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명령을 지킬 때에 주님이 명령하신 그 일거리, 주님이 명령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할 때에, 행하려고 하면 그 일거리가 양이 얼마나 많다, 얼마나 어렵다, 얼마나 크다, 얼마나 든다, 명령을 완수 하려고 하면 그 완수하여야 할 그 작업량, 자기네들이 해야 될 그 행함의 분량 요것을 단단히 계산을 대고, 자기네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요거 둘을 가지고 계산을 댈 때에 가진 것이 많으면 그 일은 하기 쉽고 가진 것과 일거리가 같으면 바당바당하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가진 것이 적고 일거리 많으면 이것은 부족해서 완수를 못하겠고 하는 요 신앙으로 주님을 따른 빌립의 신앙입니다.
인간 자기네들의 것, 인간 자기의 것, 자기네들의 것, 자기 것 그것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일거리 그것을 해나가는 요 신앙을 가진 것이 빌립의 신앙입니다. 요 두 가지 가지고, 제것 가지고 제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고 요 제것 가지고 주의 명령대로 행하는 요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이 빌립의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안드레가 옆에 앉았다가 좀 답답합니다. '아, 저 사람은 주님의 권능은 하나도 안 믿네. 꼭 우리 것 가지고 우리가 그 일 하고, 그만 우리 것 가지고 주님 맡기신 일하고, 그러면 우리 것만 가지고 주님 맡기신 그 일을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하나님의 권능이나 은혜나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전부 이 제것 가지고 다하고, 제것 가지고 모자라면 모자라고, 넉넉하면 넉넉하고, 제것 가지고 주님 맡기신 일 하는 사람이요, 주님의 그 도우심이나 능력은 하나도 안 믿으니까 답답하다.' 해서 안드레가 옆에서 툭 튀어 나왔습니다.
'주님, 이 사람 뭐 돈도 없는데 이백 데니리온어치나 있어야 될 터인데 이거 어찌 일이 되겠느냐? 이런 말 할 것 없이 여기 아이 하나가 있어 가지고서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지금 이 무리들을 위해서 주님에게 갖다 드리라고 내놨습니다.' 이러면서 오병이어를 주님에게 떡 갖다 드리면서 하는 말이 아, 오병이어 그거로 말하면 한 사람 먹을 것 밖에 안 되는데, 갖다가 뚱딴지같은 말합니다.
이 도시락 하나를 떡 갖다 드리면서 '아, 이것 가지고 근 만 명되는 이 사람들에게 나눠 먹기는 나눠 먹지만 뭐 얼마씩이나 돌아가겠습니까? 아, 그것 가지고서 가루를 내 가지고 이제 나눠 뿌려도 안될 터인데 그거 가지고서 근 만 명되는 사람이 먹기야 먹지만 그렇게 뭐 풍족하기야 하겠습니까?' 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안드레는 주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 무엇 가지고 순종하느냐? 그는 '사람의 가진 것이 얼마 안 되나 주님에게 바치면 주님이 거기에 권능으로 축사를 보태면, 축사를 보태면,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를 거기다가 부가를 시키면 한 사람 먹을 것 가지고 이것이 많이 불어서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사람이 주님에게 바치기만 바치면 거기는 하나님의 축복이 가하기 때문에 많이 붓는다, 많이 붓는다. 많이 붓기는 붓지만 이 사람이 근 만 명되니 이 많은 사람들에게야 이거 뭐 풍족하기야 하겠나? 거저 허기나 면하고 약간씩 맛이나 보지 풍족하기야 하겠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안드레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는 인간의 것을 바치면, 인간의 것을 바치면 하나님이 거기에 축복을 하셔서 더 많게 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드리면 하나님이 거기다가 축복을 하시면 그게 더 풍성해진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바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해진다.
그러니까 인간의 것을 바치는 그것과 하나님의 축복과 이 둘을 합하면 그것이 분량이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이 거기 보태진다 할지라도 한정이 있지 그거 무한정이야 되겠나? 사람이 하나님에게 바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많아지기야 많아지지만 많아져도 분수가 있지 많아져도 분수가 있지, 많아진다 할지라도 오병이어가 만 여명 되는 이런 사람들이, 근 만 명되는 이런 사람들이 그 배불리 먹도록 그렇게야 늘어나겠느냐? 또 요것도 요래 믿었습니다.
그러면, 빌립의 신앙과 안드레의 신앙이 아주 차이가 있습니다. 빌립의 신앙은 주의 명령 순종하되 순전히 인간의 것만 가지고 주님이 명령하신 그 일을 하려고 하는 빌립의 신앙이요, 안드레의 신앙은 '주님의 명령을 이루실 때에 인간의 것을 바치면 하나님의 권능의 도우심이 와서 많게 크게 형통케 하시기는 하신다, 그러나 그것이 무한정은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의 그 양을 보고 하나님의 축사가 있지만 원첨 그 일거리의 양이 많으면 그게 완성되지는 못한다. 충족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야 있지만 무한정으로 하나님 맡기신 그 일을 크든지 작든지 뭐 다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지는 안한다. 될 만한 일은 되지만 원첨 큰 일은 안 된다.' 또 요렇게 믿었다 그거요.
그랬는데, 그 사실은 어떻게 됐느냐? 빌립도 뒤에 보니까 낙제해 떨어졌고, 안드레도 떨어졌고 낙제했습니다. 그 뒤의 사실은 나타나기를 어떻게 나타났느냐? 예수님께서 그것을 가지시고 무리들을 앉히시고 축사를 하고 떼어 줬습니다.
축사를 하고 떼어 주시니까 사람 있는 대로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배만 부를 게 아니라 배부르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
이러니까, 빌립은 저거가 가진 떡이 이만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이 돼야 준다고 한 그것도 헛일, 작은 데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해서 많이 불어지기는 불어지지만 이렇츰 사람이 많으니까 얼마씩 돌아가겠느냐 하는 그것도 헛일, 왜? 바친 그 오병이어에 주님이 축사하시고 나눠주시니까 거기 있는 무리들이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먹을 사람 더 먹으라 하니까 이제 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원대로 주는데 원하는 사람이 더 없어. '아이구 이제 필요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거기 있는 사람이 다 만족히 먹고 남는 게 있고, 그러면 도시락을 바친 그 아이는 쫄쫄 곯았을까? 그 아이도 배껀 먹었습니다. 요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기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자기가 먹을려면 먹고 말라면 말고 다 먹을려면 다 먹고 덜 먹을려면 덜 먹고, 이제 그것을 제 마음대로 사용하고 제가 관리하고 제가 가졌지만, 요것을 적지만 이제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 마음대로 하시도록 이러니까 이제 그 떡은 이 아이는 손 안 댔어. 손 안 대고 이제는 주님이 축사도 주님이 축사하시고 떼어 주기도 주님이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고 이제 주님 마음대로 했어. 요 오병이어는 주님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 아이는 완전히 관리권이나 보관권이나 사용권이나 뭐 거기에 대해서 완전히 전권을 주님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맡겨서 주님 마음대로 이 도시락은 지금 활용하셨어. 이용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그럴 때에 그 도시락 가지고 축사해서 먹어야 할 그 식구가 근 만 명인데 먹고 충족히 남았습니다. 아이도 먹고 그 도시락 가지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는 기록하기를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쯤 됐다 했는데 오천이니까 그 외에 뭐 수효가 여자들이 언제든지 많이 따라다니니까 여자, 아이들 치면 또 숫자가 꽤 많을 것입니다. 많으면 어쨌을까? 우리가 여게 뜻을 보면 많으면 많아도 풍족하고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백만 명이 되었으면 모자랄까요? 백만 명이 돼도 먹고 남은 것이 더 많았을 것이오. 왜? 칠병이어로 일곱 덩어리와 두 마리 가지고 사천명 먹고는 일곱 바구니 남았는데 여기는 오병이어로 열 두 바구니 남은 것 보니까 일억만 명이 먹었으면 일억만 명이 있으면 일억만 명이 먹고 남은 것은 더 많이 남았을 것이오. 그게 이 진리 아닙니까? 이것이 무엇을 가르치느냐? 주를 따르는 주의 백성으로서는 자기 가진 것이 많든지 적든지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상관없고 다만 자기의 가진 자기의 것을 주님에게 바쳐 주님 뜻대로 주장하신 이 오병이어로 하나 표시해 표증 해 보인 것처럼 자기의 가진 것 많든지 적든지 요것을 주님이 고것을 주장하시도록, 주님이 주장하시도록 주의 뜻대로만 복종하는 것이 되면 못난 자기라도 그것을 순전히 제가 사용하지 안하고 주님이 못난 자기라도 자기를 완전히 주님이 홀로 주장하시도록, 자기의 소유나 자기나 이것을 주님이 주장하시도록, 다시 말하면 주의 뜻대로 이것이 이용되어지도록, 주님이 이것을 주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뜻대로 이용되는 것이요, 다시 말하면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되면 한 말입니다.
아무리 유 무식이라도 자기를 주께 드려, 주께 드려 주님이 당신 마음대로 쓰시도록, 내 마음대로 쓰지 안하고, 내 언행심사를 내 마음대로 쓰지 안하고 내 소유를 내 마음대로 쓰지 안하고, 내 소유든지 내 자신이든지 내 지능이든지 이것을 주께 바쳐 주님이 이것을 전적 주관하시도록 하시기만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분담된 것이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억만 명이든지 몇 십억이든지 자기에게 해당되고 분담되고 관련된 것은 그 수가 많든지 적든지 이것으로 인해서, 이것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줘야 할 것,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분깃이 될 것,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구원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양이 많고 적은 것이 상관없다, 무한이다, 얼마든지 거기에 해당된 것은 다 충족하고 남음이 있다 하는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오병이어를 주님에게 바쳤으니까 무슨 돈을 교회 연보 하라는 말 아니요, 몸뚱이를 바쳐서 이제 목회자나 교역자나 목사 되란 말 아니오. 주님이 예를 들면 돈을 쓰지 말라고 하면 안 쓰고, 주지 말라면 안 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자체나 기능이나 요것을 순전히 주님에게 맡겨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되면 이것의 효력은 그것으로 인하여서 효력을 끼쳐야 될 그 양은 많고 적고 상관이 없다, 무한이다, 있는 대로 다 충족하다 하는 것을 여기에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체든지 우리의 소유든지 우리의 시간이든지 우리의 공간이든지 하나하나의 한 행동이라도 그것을 많은 사람의 구원에 관련이 있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관련이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기의 위치와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것을 주께 맡겨 주의 뜻대로 이것이 움직일 때는 이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주의 능력으로 인해서 그것은 그것이 해야 될 그 분량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을 충족히 감당하고 남음이 있다.
이러기에, 인간이 땅에 있는 양을 보고 땅에 있는 일거리 양을 땅의 것 가지고 땅의 것을 할려는 두 가지 비중을 달아 가지고 하는 이것도 다 거짓부리 신앙, '하나님에게 바쳐 당신 뜻대로 당신이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바치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지만 그래도 제한이 있을 것 아닌가? 아무리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지만 너무 인간의 바친 양이 적으니 거기에 제재를 받지 않겠느냐? 내가 무식해서 제재를 받지 않겠느냐? 무능하니 제재를 받지 않겠느냐?'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이 불신의 신앙 안드레의 신앙으로 실패하는 것이요.
다만, 우리가 가진 주 안에서 주의 구속받아 우리의 가진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그것의 양의 많고 적고 크고 작은 그것 상관없이, 상관없이 요것을 많은 숫자를 보면서 떡을 내놓은 것처럼 요것을 부족하지만 요것 하나가 주의 복음역사에 거리끼지 않도록, 요것 하나가 주의 복음역사에 거리끼지 않도록, 필요하신 대로 작든지 많든지 필요하신 대로 당신이 쓰시도록, 이 복음운동을 위하여, 자타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운동을 위하여, 자타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가진 무엇이든지 적든지 많든지 그것을 요 자타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요것을 요 욕망에서, 요 의무와 책임감에서 요것을 내가 요거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빚진다. 의무와 책임을 감당 못한다. 요거 하나가 들어서 요거 하나가 비면 수많은 지장을 준다, 적지만 요것이 어딘가 없어서는 안 될 양이 필요한 그 요긴하게 쓰여질 곳이 있다, 나도 주의 구속운동, 복음운동,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며 내 모든 소유도 그런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이것을 주께 바쳐 주님이 홀로 쓰셔서 축사하시고 드신 거와 같이 주께 바쳐 주의 뜻대로 요것을 사용하겠다, 주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많은 구원에 해독을 끼칠 것이고 요것을 주의 뜻대로 사용하면 요것이 주님이 당신이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쓰여질 데가 있을 것이다 하는 요 면을 생각하고 지극히 작으나마 자기의 것을 주님의 뜻대로 요것이 쓰여지는 그것이 주께 바친 오병이어 입니다.
자기의 무식한 입술 하나라도 주께 바쳐 주의 뜻대로 요 입술을 삼가 이 복음의 중대한 책임이 있는 걸 깨닫고 그 입술을 주의 뜻대로 하면 그 입술을 주님에게 오병이어로 바친 것이요, 자기의 행동 하나를, 자기 몸이나 마음이나 재물이나 요것을 이제 주의 것인 것을 깨닫고 주의 복음을 위해서 피차의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요 중대한 책임성을 깨닫고 요것을 주님의 뜻대로 요것이 사용되면, 주님의 뜻대로 사용이 되면,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면 요것은 요것이 주님의 손에 들린 막바로 축사하신 오병이어 떼어 주는 것입니다. 요것이 주님의 손에 주님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는 오병이어요.
요 복음에 합당한 마음을 가지고 적으나마 요것을 주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주님에게 바쳤을 때 이거는 주의 것이니까 주의 뜻대로 당신의 이 복음역사를 위해서 당신이야 어찌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가난해지든지 부해지든지 이것이 많아지든지 줄어지든지 요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의 뜻대로 요것은 당신이 쓰실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당신의 뜻대로만 쓰시지 달리는 쓰지 못한다 요것을 자기가 깨닫고 주님에게 바쳐 놨으면 요것이 주님의 손에 들린 축사한 오병이어 떡과 꼭 같은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럴 때에 주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고것이 바로 축사한 오병이어를 떼어 주는 것이요, 그게 떼어 주는 것입니다. 적은 것 가지고 떼어 줬는데 그것이 받는 자에게는 굉장한 것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요것을 잘 깨달읍시다.
빌립의 신앙이 헛일이요. 빌립의 신앙이 아주 신사적인 신앙, 과학적인 신앙, 대단히 분명한 신앙 같지만 그 신앙은 기독자의 신앙은 아닙니다. 헛일이오.
안드레의 신앙도 믿기는 믿고 바래기는 바래지만 그 신앙도 파고 들어가면 신앙의 뿌럭지는 자기입니다. 뿌럭지는 자기 자율이요. 빌립은 순전히 인본 세본이요, 안드레의 신앙은 그거는 순전히 자율적이요 근원이 자기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당신에게 바쳐서 작은 것이지만 당신이 축사하시고 당신이 떼어주니까 그것은 쓸데로는 다 쓰여졌어. 써야 할 데는 다 썼어. 모자라지 안했어. 오 천 명이면 오 천 명에 족했고, 만 명이면 만 명에 족하고, 수 억 억 만 명이라도 억 억 만 명에 족합니다. 요것을 요게 나타내고 있소. 한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빌립의 신앙도 버리고 안드레의 신앙도 버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그 사실대로의 그대로의 신앙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가질 신앙인데,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신앙은 뭐인가? 많고 적은 인간의 가진 양이 상관이 없어. 인간의 가진 양의 많고 적은 것이 크고 작은 것이 상관없다. 다만, 자기의 가진 것을 주께 다 바친다는 것, 바치고 난 다음에는 간섭도 관리도 손을 대지 안 하는 것, 순전히 주님 혼자 당신 뜻대로 하시도록 당신에게 맡겨둔 것, 그러니까 주님 손에 든 오병이어는 당신이 한 손에 들고 축사 하요. 축사할 때에 그 떡이 산더미같이 뭐 집채같이 많아졌소. 아니요?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하셨어. 축사하고도 그대로 있어. 떼어 주니까 많아지는 거라. 떼어 주니까 암만 떼어 줘도 있고, 받은 거 가지고 떼어 주니까 또 전달하니까 또 남고 또 남고 먹고 남았어.
우리 기독자는 자기의 가진 것이 많고 적은 것이 상관없다. 인간의 소유의 많고 적은 것이 상관없다. 빌립아! 너는 인간의 소유 가지고 일 하려고 하지만 기독자에게는 많고 적은 것이 상관없다. 다만, 가진 것을 주께 다 맡길 때에 거기에 주의 축사가 보태졌고, 그 다음에는 나눠 줄 때에 그 떡 가지고 해결해야 될 그 식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충족히 해결이 되고 남음이 있었다 요것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많고 적고 인간의 가진 것을 주께 다 맡기는 이것 하나가 필요하고, 주께 맡기는 요것 하나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하신 일은 뭐이냐? 당신이 하실 축사 당신이 하셨고 이거는 당신이 하신 일이라, 축사는 당신이 하실 일이라. 그 다음에 셋째로는 주님이 나눠 주라 하시는 대로 나눠주면 돼. 요 세 가지뿐입니다. 요 세 가지.
그러므로 우리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중대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아주 사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쓰일런지 모릅니다. 사소한 위치에 있는 그게 얼마나 큰 데에 쓰여지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나눠주신 것 요거 세 가지만 필요해요.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뭐인가? 우리 할 일은 하나 뿐인데 두 가지. 하나 뭐? 내게 있는 것 많든지 적든지 주님에게 바치는 것 요거 하나 해요. 그 다음에는 주님이 나눠주시는데 그 나눠주시는 것이 인간을 통하여 나눠주셨어. 그러기 때문에 주님에게 바쳐놓은 그것을 활용하기는 주님이 나를 통해서 활용합니다.
이러기에 내게 있는 것 주께 바쳐 놓고 그것을 조금도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하지 말고 주님의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쓰여질 것, 주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내가 심부름해서 쓸 것이요, 주님이 쓰고자 하시는 대로 내가 심부름 할 것이요, 주님이 네가 이 말 하라 하면 그 말하고, 말하는 것은 이것은 내가 쓰는 게 아니고 당신이 쓰시는 것이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내 놓으라 하면 내 놓고 보관하라면 보관하고, 요것의 움직이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하지 안하고 당신 혼자 마음대로 하시도록, 나도 다 바쳤으니까 당신이 내 수족을 쓰셔 가지고 내 몸을 사용해 가지고 당신의 원대로 이렇게 하시도록 하는 여기에 복음역사에는 자타에게 충족하고 남음이 있는 고것이 오병이어에게, 오병이어에게 시장을 면할 수 있도록 거기에 담당해 있는 식구, 담당해 있는 그 식구는 한 사람도 모자람이 없이 다 충족함을 받았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사람 보기에는 사소한 사람 같지만 그 사람에게 세계의 사람이 거기에 관련 해당이 되어 있는지, 역사의 사람이 관련 해당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가 되어 있든지간에 자기 것 다 주께 바쳐 그후로는 주님의 뜻대로만 움직인다면 움직이는 이것은 그의 의무와 책임을 다 감당하는 것이 되고 남음이 있다. 그러면 그 역사는 인간이 상상도 못할 만치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대로의 것은 다 완료된다 이것을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