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명

 

1987. 3. 25. 밤 <수>

 

본문:에베소서 6장 1절∼4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본문에서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 또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관계, 또 부모가 자녀에게 대한 양육 관계 이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들의 지식이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과 지식이 서로 다르고 또 지식과 지식이 서로 대립되고 이렇게 돼서 세상은 복잡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수많은 지식의 종류가 있는 것만치 부모들도 수많은 종류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을 가진 부모는 이렇게 자녀를 교육하고 또 저 지식을 가진 부모는 그 지식대로 교육하고 교도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식은 수만 종의 지식을 가진 것만치 부모들의 교육과 교도라는 것은 수많은 종류의 교육도 있고 또 가르쳐서 인도하는 교도도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서 이렇기 때문에 그저 부모에게는 순종하기는 순종을 해야 되는데 순종하는 데는 잘 구별해서 순종해야 된다 하는 것을 나타내서 “주 안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이 가정에서는 제일 중요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있고, 또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있고, 또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하는 것도 있고 이래 있는데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이 일이 시작이요 시발이요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말씀합니다.

가정은 부모로부터 시발되는 것보다도 가정 건설이 자녀로부터 시발이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이 타락해서 위에는 다 타락해서 속화되었고 모두가 다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돼 있는 부모를 고치는 것보다 배우는 입장에 있는 자녀들을 바로 가르침 받도록 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여게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네들이 잘 배워 가지고 난 다음에는 자녀들을 “주의 교양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자녀된 자가 먼저 주 안에서 부모의 그 가르침을 받는 그 일부터 바로 해서, 위에는 틀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에는 벌써 틀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잘 구별해서 받아 가지고 자신이 그대로 행동하고 자기 후손으로 난 그 자녀들을 구별해서 잘 배운 그대로 교양하고 또 훈계하고 교육하여야만 가정이 바로 돼 갈 수 있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부모들아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라” 이 말을 제일 초두에 쓰지 안하고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이 말을 먼저 기록한 이 광대한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벌써 사람이 타락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락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데서부터 제일 고쳐 들어가야 되느냐? 타락한 부모에게서 고치는 것보다도 새싹이 되어있는 자녀들에게서부터 고치는 것이 이것이 바로 되기가 쉬운 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되는 데에는 제일 가정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자녀가 바로 돼야 그 가정이 바로 된다. 부모는 벌써 삐뚤어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가 바로 돼야 가정이 바로 된다. 바로 된 그 자녀가 좀 있으면 또 부모 되는데 좀 있으면 부모 되니 부모가 되었을 때에는 자녀를 가르치기를 “주의 교양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부모에게 ‘자녀를 바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을 먼저 말하지 안하고 부모는 냅두고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 말씀부터 먼저 했는가 하는 요것을 잘 구별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은 다 순종하라 하나 안 하라 하나 순종합니다. 순종이라 말한 것은, 순종이라 말은 부모를 따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따라 하는 것, 부모를 따라 한다는 것, 부모를 배워간다는 것, 부모를 본받아 간다는 것, 또 부모를 닮아간다는 것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순종이라, 따라간다, 좇아간다 이렇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다 이렇게, 배워가고 따라가고 본받아 가고 닮아가는 이것은 필연성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순종되는데 이 순종하는 데에는 순종하는 사람이 주 안에서 순종하도록 순종하는 사람이 구별해서 순종해야 되지 순종하는 사람이 구별해서 순종하지 안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구별해서 가르치라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위에 이것은 옳게 배우지도 못하고 다 삐뚤어진 지식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가르치라, 부모에게 ‘바로 가르치라’ 자녀에게 그 다음에는 또 `바로 배워라' 이렇게 하는 것이 순서인데 부모에게는 말하지 안하고 자녀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것을 먼저 말씀하신 그 이유가 거게 있습니다.

자녀라는 것은 부모의 그 말하는 데에서 배우고, 또 부모의 행동하는 데에서 배우고, 또 부모가 어떻게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 하는 사람됨을 이렇게 배워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주 교육 중에는 이것이, 가정 교육이라 하는 것이 으뜸되는 교육입니다. 이거는 필연적으로 다 그렇게 배우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습니다.

‘옳으니라’ 말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 말씀은 순종하는 것이 삐뚤어진 것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이거는 뭐 필연적인데, 이거는 필연적이고, 순종은 필연적인데 순종이 잘못되기 쉽다.

자녀가 부모를 닮고 부모를 배우고 부모와 꼭 같은 자 되어지는 것인데, 부모에게 말도 부모의 말 배우고, 행동도 부모의 행동 배우고, 또 사람도 부모라는 그 사람을 배워서 그저 뭐 부모 닮습니다. 이거는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이 순종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순종인데 순종 여게서 가정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 된다, 필연적으로 배우기는 배우는데, 자녀가 부모 닮아가고 부모 본받아 가고 부모에게 배워가는 것은 이거는 필연성인데, 이거는 뭐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고 면할래야 면할 수도 없이 그저 이 부모의 이 모든 교양 속에 파묻혀 가지고 있는 것이 자녀들인데, 필연적으로 배우기는 배우는데 이 배우는 여게서는 옳고 삐뚤어진 게 있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 하는 말입니다. 옳고 삐뚤어진 것을 알아야 된다. ‘이것이 옳으니라’ 하는 말은 `이것이 삐뚤어졌느니라'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순종은 이거 필연성이라. 순종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그거는. 소도 소새끼는 에미소 애비소 닮고, 또 새도 그 새새끼는 그 에미 애비의 그 새를 닮고, 모든 버러지도 그렇고 다 이렇게 닮아가는 거 이것은 자연성이요 필연성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중에 다른 것들은 다 변질이 안 되고 그대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도 새 닮으면 되고, 또 짐승도 짐승 닮으면 되고, 곤충도 곤충 닮으면 되고 이래 닮으면 되지마는 사람을 그래 막 닮아 가지고는 잘못 된다. 삐뚤어지게 닮기가 쉽다. 네가 부모를 닮아가고 배워가는 그것이 삐뚤어지기 쉽다.

삐뚤어지면 망한다. 삐뚤어지기 쉽다. 부모에게 배운 것이 망하기 쉽다.

부모가 잘되라고 가르치지마는 망하게 가르치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네가 부모에게 가르침 받는 데에는 옳고 그른 것이 있는 것을 알고 옳은 가르침을 받아야 되지 삐뚤어진 가르침 받으면 안 된다. 옳은 지도를 받아야 되지 삐뚤어진 지도를 받으면 안 된다. 네가 옳은 것을 본받아가고 닮아가야 되지 삐뚤어진 것을 본받아가고 닮아가면 안 된다 그것을 여게다가 강하게 말씀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라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주 안이라 말은 이는 대속주를 말합니다. 대속주 구속주, 대속주 구속주 안에서, 구주 안에서 순종하라.

구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이 말은 제일 큰 뜻이 무슨 뜻인고 하니 너는 남의 자녀가 돼 가지고 있으나, 부모의 자녀가 돼 가지고 있으나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자다. 대속을 입은 자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네가 부모의 것이라는, 부모에게 속한 자녀라는 그 생각으로 네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말고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것이 됐다. 예수님의 피에 대속함을 입어서 너는 주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이 됐다. 주님의 것이 됐으니 주님의 것이 된 것을 깨닫고, 그게 주 안에입니다. 주님의 것이 된 것을 깨닫고 주님을 중심하고 위주로 해서 하는 그게 주 안에입니다. 해서 주님이 너에게 주신 그 법칙 그 법규 범위 내에서 순종해라 하는 그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제일 큰 것이 너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네가 부모에게서 났고 부모에게 속한 것인 줄로 네가 알았지마는 이제는 너는 주님의 이 사활의 대속으로 영원 멸망의 것이 되어 있는 거게서 네가 구출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됐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됐다 그게 제일 중요하고,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위해서,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법칙에 순종,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그 법칙에 따라서 법칙대로 네가 순종하라 요 세 가지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속 법칙이 있는고로 그 법칙대로 순종해라 하는 요것을 여게 말해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이래야 네가 부모가 너를 교육하는 것이 잘못 교육해도 네게서 바로 수정해서 받아들여 가지고 너도 복되고, 또 부모도 너를 잘못 지도해 가지고 망치게 하는 그런 잘못 지도의 그런 책임이 없고 부모도 복되고 너도 복된다. 이것이 옳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건 순종은 필연성이기 때문에 이 순종을 하지 마라는 안 돼요. 순종을 하지 말아라는 안 되고, 순종을 하지 말아라는 안 되고, 순종을 아무리 하지 말라 해도 그게 뭐 낳아 가지고 젖먹을 때부터 그때부터 이 시공 교훈이 있고 또 뱃속 안에서도 교훈이 있고 이런데 네가 그 교육을 받을 때에 주 안에서 순종해라.

왜? 부모의 지식은 천 가지 만 가지에 옳은 지식도 있고 삐뚤어진 지식도 있기 때문에, 옳은 지도도 있고 교훈도 있고 삐뚤어진 교훈도 있고 지도도 있고 이렇게 마구 섞여 있기 때문에 네가 부모의 지도를 받을 때에 꼭 주 안에서 순종하는 요것이 네 부모의 가르침 받는 여기에서 주 안에서 순종하는 요것이 생명이다. 주 안에서 순종하는 요것을 하지 안하면은 그 순종으로 다 죽고 만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요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주 안에 순종하라는 요것을 주님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의 생의 법칙으로 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의 규범 안에서 순종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요것만을 말하지마는, 물론 말씀대로 하면 그 안에 든 것이지마는 제일 중요한 것이 “주 안에서” 주 안에서라는 요것을 강조했습니다.

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되는 게 아니고 이래야, 이래야 잘 됩니다. “네가 잘 되고” 그러면 자녀도 잘 되고 부모도 잘 되고, 주 안에서 순종해야 순종한 자녀도 복을 받고 또 그 부모도 복을 받는다, 네가 잘못 순종하면 너도 망하고 부모도 망한다, 왜? 네가 순종하는 데는 잘 순종하는 옳은 순종도 있고 삐뚤어진 순종도 있다. 삐뚤어진 순종하면 삐뚤어진 순종한 너도 망하고 삐뚤어진 순종으로 지도한 그 부모도 망하고 다 망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순종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고 필연성으로 새끼가 에미 순종이, 부모 순종이라 하는 것이 첫 순종이고 그게 전부인데, 이것이 종자적인 순종인데 이 순종은 안 할 수 없는 거고 이 순종은 필연적으로 하는데 네가 순종하되 구별해서, 주 밖에서 순종하지 말고 주 안에서 순종해라.

주 밖에 순종은 뭐이 주 밖에 순종인가? 주 없이 순종하는 거, 주님으로 대속함을 받아서 구속함을 받았는데 구속함을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구속을 벗고, 또 주의 것이 되지 안하고 부모의 것이 됐든지 제것이 됐든지 해 가지고, 또 부모의 지식대로 따라서 순종하는 이것이 주 밖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 밖에 순종하는 것이 세 가지,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세 가지 요것을 꼭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제일 배우는 데부터 바로 구별해 가지고 바로 배우지 안 하면은 안 됩니다, 위에는 다 틀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순종은 옳은 것 삐뚤어진 게 있으니까 옳은 순종 하면 너도 복받고 부모도 복받고 다 잘 된다. 거기 보면은 “네가 잘 되고” 3절에 “이는 네가 잘 되고” 잘 된다 말은 뭐 모든 면이 다 잘 되니까 몇 가지가 잘 된다고 형언할 수 없을 만치 전면이 다 잘 되고, 그러기에, 자녀들아 너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배우고, 부모를 닮고, 부모를 따라가고, 부모를 본받아 가는 것은 네가 필연적으로 본받지 안할라 해야 그 부모에게는 본받을 게 부모밖에 없고, 따라갈 게 부모밖에 없고, 배울 것이 부모밖에 없고, 들을 것이 부모밖에 없고, 지도받을 것이 부모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모의 인도와 지도와 교양이라 하는 것은 이거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여게서는 네가 사는 길은 뭐이냐? 네가 옳은 지도 옳은 순종이 있고 삐뚤어진 순종이 있기 때문에 옳은 순종 하도록 네가 이걸 구별해서 조심해서 하면, 옳은 순종이 되면 너도 복받고 부모도 복받고 네가 삐뚤어진 순종 하면 너도 망하고 삐뚤어진 순종으로 지도한 부모도 망하고 만다.

아무리 부모가 삐뚤어진 교양을 했다 할지라도 그 자녀가 삐뚤어진 교양을 받지 안해 가지고 망하지 안했으면 부모는 그 교양한 것이 헛일이지 나쁜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벌은 없다 말이오, 헛일만 했지. 그렇지마는 네가 잘못되면 다 절단나게 된다. 이래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이라는 요것이 중요해.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은 세 가지 말해 놨습니다, 세 가지. 세 가지 이 범위 내에서 순종하라. 네가 세 가지 안에서 순종하라. 그러면 주님의 구속을 네가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너는 주님의 것인 그 범위 내에서, 너는 주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 순종해라 그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9장 57절 이하에 보면은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그러나 내가 지금 아버지가 세상을 떴기 때문에 아버지 장사를 지내고 내가 주를 따라가겠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허락지 안했습니다. ‘ 이제 너는 ㅡ 대속의 공로를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하시지 안했지마는 벌써 대속의 공로를 입을 자가 돼 가지고 있어서 ㅡ 너는 산 자라, 너는 생명에 속한 산 자라, 그러기 때문에 너는,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허락을 안 했습니다. 이제 죽은 자라 말은, 이것은 벌써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산 자에 대해서 말해. 예수님의 대속 입은 너는, 대속 입은 너는 대속을 입힌 그 대속주의 것이 됐기 때문에 너는 부모가 죽어서 마지막 장례지내는 거게 대해서 너는 자유가 없다 요것을 딱 잘라서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주 안에서라는 이 말을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 예수님의 것이 됐다 하는 이 말 하면 너무 지나치게 가혹한 해석이다 이렇게 하지마는 성경에 보면은 구속 받은 자는 항상 그 말입니다. “너는 너의 것이 아니고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 됐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뭐라 했습니까? “다시는” “다시는 구속받지 안한 제것으로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시는 자신 위해서 살 수 없는 것이 이 구속받은 자의 법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구속받은 자는 네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네가 기억하고 “주 안에서” 주님의 것인 걸 제가, 주님의 것으로서 네가 부모에게 순종해야지 네가 부모의 자녀니까 순종 안 된다.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것으로 순종해야 되고 주님을 위해서 순종해야 된다.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을 위해서 순종해야 된다, 그러면 그 부모 위해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 순종하는 목적이 주를 위해서 순종해야 된다. 또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라서 순종해야 된다. 요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오계명이 세상 이종교마다 다 오계명과 같은 그런 계명이 다 있습니다. 사상마다 다 있고 주의마다 다 있습니다. 어떤 주의라도 다 부모에게 효성하라 하는 그 도리는 없는, 그런 조문이 없는 도가 없고, 단체가 없고, 주의가 없고, 사상이 없고, 종교가 없고, 철학이 없습니다. 다 부모에게 효성하라는 그거는 있지마는 성경에서 제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씀은 온 세계에 성경에만 있지 다른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요거 알겠습니까? 요걸 구별하지 안하는통에 다 혼잡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다 사은으로, 부모의 은혜를 갚는 그 사은으로 순종하는 것이지마는 우리는 사은으로 순종 못 합니다. 우리는 벌써 사은할 자는 죽었습니다. 사은할 자는 죽었고 지금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에 팔린 것이기 때문에 주의 것 됐지 우리는 부모의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요것을 성경대로 요리 하면은 모두 딱딱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안 하는통에 기독교가 다 혼잡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가족들을 지금 작별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너는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주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그의 것이 돼 가지고 그에게 속해서 움직이지 그거 네가 무슨 의무와 책임이, 세상에 무거운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해 가지고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네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제 너를 대속해서 살려냈기 때문에 그분에게 따라서만 움직이고 그분의 것으로만 움직이고 그분을 위해서 움직이고 그래야 된다 요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분의 것으로, 그분을 위해서, 그분에게 순종으로, 그분의 법도대로 순종으로 요 세 가지로 세 가지 범위 내에서 순종해야지 이 세 가지를 벗어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면 안 된다. 그라면 삐뚤어졌다. “이것이 옳으니라” 이렇게 해야, 주 안에서 순종해야 이것이 옳지 주 안에서 순종 안 하면 이거는 삐뚤어진 것이다.

뭐 이런 말을 하면은 너무 가혹하다 해 가지고 굉장할 것입니다. 뭐 한국에서도 이 에베소 6장 1절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하면은 어떤 사람은 반대는 못 하지마는 ‘그것은 너무 지나치고 가혹하다’ 가혹한 게 아니라 요게 요 외에는, 어누리가 없습니다. 요리도 가고 그리 가는 게 아니라 요것 외에는 다 틀렸습니다. 요게 옳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부모가 어떠니, 내가 순종하는 순종의 원인이, 순종의 원인이 부모가 원인이 되지 안하고 순종의 원인이 주님이 원인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인이 돼야 된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이 순종은 부모가, 부모가 뭐 좋고 나쁘고 해서 순종 하고 안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순종하는 원인이 주님 때문에 하고 주님 중심으로 순종하기 때문에 이 순종을 어기면 하나님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범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바릅니다.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인 관계의 계명으로서는 제일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제일 첫 계명입니다. 이것이 인인 계명 중에는 제일 첫 계명으로서 인인 관계에는 부모와 자녀, 부모와 자녀의 그 관계가 제일 중요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바로 되지 못하면 인인 성사는 다 병들었고 흠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잘 된다 그 말은 영도 육도 다 잘 된다 말이요, 또 자신의 몸도 잘 되고, 사업도 잘 되고, 소유도 잘 되고, 뭐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전부 다 잘 된다 말입니다.

잘 되고, 또 “땅에서 장수하리라” 장수 한다 말은 네 족속이 장수하고 또 너 개인도 장수한다, 족속이 장수한다 말은 그 족속이 그 땅에서 망하지 안하고 그 족속이 대대로 거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그 대가 망하지 안하고 그 족속이 잘 되고 개인도 잘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육신의 수명도 길고, 열 살 먹는 것보다 열다섯 살 먹으면 좀 수명이 긴 것 아닙니까? 그 수명도 길고, 그러니까 족속의 수명도 길고 가정의 수명도 길고 또 가족의 사람도 수명도 길고 다 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경하는 것은 어떤 것이 공경하는 것인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떤 것이 공경하는 것인데? 공경하는 것은 두 가지를 두고서 말합니다. 하나는 부모에게서 너에게, 네 영이 잘 되도록, 부모가 네 영이 잘 되도록 해 주는 그것을 받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또 네 마음이 잘 되도록 부모가 해 주는 그것을 네가 받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또 네 몸이 잘 되도록 부모가 해 주는 그것을 네가 잘 받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또 네 모든 생활이 잘 되도록, 네 모든 행위와 생활이 잘 되도록 해 주는 그것을 네가 잘 받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힘이 약하고, 부모는 힘이 있고 너는 힘이 약할 때에 부모의 그 힘을 네가 힘입어 가지고 살아야 될 네가 약할 때는, 부모보다 네가 약할 때에는 부모가 네 가지 주는 것을 네가 잘 받는 것이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또 이제는 그러면 차차 네가 자라 가지고 네가 커진다. 이제는 너와 부모와 그 실력이 서로 비중이 가까와져 비중이 같을 때에는, 같을 때에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고 자연히 그때는 다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는 오고 가는 것이 없지마는 네 이제 실력이 조금 나으면 네가 부모의 그 영이 잘 되도록 그렇게, 잘 되도록 도와 주는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또 부모의 마음이 잘 되도록, 마음이 잘 되도록, 그 마음이 잘 되는 것은 마음이 기뻐야 잘 될 것이요, 평안해야 잘 될 것이고, 또 마음이 든든해야 잘 될 것이고, 위로와 기쁨이 돼야 잘 될 것이고, 부모의 마음이 잘 되도록 네가 도와 줘라.

또 부모의 몸이 튼튼해지도록 네가 도와 줘라. 그게 공경하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 뭐 남았습니까? 부모의 모든 생활을 네가 도와 줘라. 네 힘이 나으니까, 네 힘이 지금 나으니까 도와 줘라.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공경하는 것. 요 두 가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것을 받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내가 도울 수 있는 형제를 사랑, “주를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해 주는 그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인인 관계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다. 인인 관계에서는 제일 중요한 일이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러면 이렇게 하면은 이렇게 하는 그 행위가, 그 행위가 네가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네가 장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잘 되도록 축복을 해 주신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공경하라’ 이라니까 공경한다는 것이, 요게다 기준을 딱 삼아서 요대로 하지 안하면은 공경한다는 것이 부모를 해치는 것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저 그 중심이 말이요, 자기가 벌써 장성해졌으면 장성해지고 부모가 벌써 노쇠해 가지고 약해지고, 약해지면, 부모가 자기보다 강하면 그 나은 면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자꾸 받아서 부모가 네 영을 잘 되도록 이라는, 잘 되도록 하는 걸 내가 잘 받고, 내 마음이 잘 되도록 이렇게, 잘 되도록 내 마음을 고쳐서 내 마음이 온전케 하도록, 자꾸 내 몸을 북돋아 줄 때 잘 북돋아 줌을 받고, 도와 줄 때 도와 줌을 받고, 내 마음을 치료해 줄 때 치료함을 받고, 자꾸 부모가 내 마음에 은혜를 베푸는 그 은혜를 내가 받고, 내 몸에 은혜 베푸는 것을 받고, 내 모든 행동에 은혜 베푸는 것을 받고, 받고 난 다음에 내가 힘 있을 때에는 내가 부모를 이제 이렇게 주는 것 합니다.

부모에게 받는 것이 공경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 있는 대로 가지고 부모를 돕는 것이 공경하는 것이라. 그러면 뭐 그 방편은 무엇을 물질로 하든지 어찌 됐든지 중심이 부모의 그 영이 잘 되도록 하는 그게 아니면 그거 부모를 공경하는 게 안 된다. 공경하는 게 아니다.

그 영이 잘 되도록 또 그 혼, 마음이 잘 되도록 또 그 몸이 잘 되도록, 몸이 좋도록 몸에 도움 유익하도록 또 그 모든 행동에 유익이 되도록 이 중심을 가지고 뭐 그 여러가지 물질로 가지고 이렇게 하든지 어짜든지 네가 물질을 가지고 부모를 봉양해도 네가 그리 함으로써 부모의 그 믿음이 좋아져서 영이 잘 되고 또 부모의 마음이 편코 그러면 자기가 행동을 바로 해 가지고 행동을 바로 해서 부모 마음이 내 행동하는 것을 소문을 듣는다든지 내 행동하는 것을 구경을 한다든지 내 모든 나로 말미암아 부모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안심이 돼지도록 하는 그것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다.

또 내 모든 행동으로 보고서, 내 행동을 보고 그 부모의 영이 좋아져서, 영이 좋아져서 믿음이 좋아지고 아주 나로 인해서 부모의 믿음이 좋아져서 자꾸 구원 잘 되게 하면은 그것이 봉양이다. 그게 공경이요 봉양이다.

그러면 그저 이런 방편은 물질로 가지고 하든지 뭐 수고를 하든지 또 어떻게 말로 하든지 어쨌든지 뭐 방편은 수많은 방편들이 있겠는데 그 중심은 이 네 가지다. 네 가지로 부모를 도와라. 또 부모에게서 이 네 가지를 잘 받아라.

아마 여게 지금 우리 저 ○○○장로님이 저기 앉았는데 ○○○장로님이 지금 아마 자녀가 부모의 봉양하는 것은 뭐 혹 이제 사위가 벌써 의사도 되고 이랬으니까 물론 뭐 생선도 더러 사 올 것이고 뭐 과자도 사탕도 더러 사 드리지마는 아마 그것보다도 장로님의 그 영이 좋아지도록, 그라면 믿음이 좋아지도록, 그 자녀를 봐서 그 장로님 믿음이 새로와지고 믿음에 힘을 얻고 영이 힘을 얻고 또 마음이 치료를 받고, 그 자식들을 봐서 내 마음이 고쳐지고 내 마음이 좋아지고 또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뻐지고 또 그리 됨으로써, 그리 되면 마음이 좋아지면 몸도 좋아집니다. 몸도 그래 뭐 물질로 돕는 것도 하지마는 그보다도, 하루 저녁 근심하고 나면은 눈이 빠꼼하게 들어갑니다. 또 금방 기쁜 소식을 얻고 나면 그만 밥맛이 있고 말이요, 반찬 없어도 밥맛이 있고 좋아집니다.

이래서 그런 게 다 몸을 돕는 거라 말이오, 그런 게 다 몸을 돕는 거.

몸을 돕는 거는 뭐이냐 하면 고기를 사다 주지 안해도 말이지요, 남자들보다 여자들은 더 그래요. 보니까 금방 그 무슨 자기 걱정되던 그 일이 해결이 됐다는 그 소식을 듣고 난 다음에 당장에 얼굴이 확 피어나고 그만 얼굴이 확 피어나는데 또 무슨 좀 어떤 좀 나쁜 소식을 듣고 나니까 그만 사람이 얼굴이 새까매져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몸 마음 영 이것은 세 개는 세 개지마는 나눌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또 행동도 그래요. 일이 행동이 잘못되면 그만 이 마음도 그만 큰 고통이고 몸도 고통이고 또 영도 불안해요.

이러니까 요 중심으로 해서 자녀로 인해서 ○장로님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야, 이제 저것들 되는 것 보니까 나도 믿음을 좀 가져야 되겠네.’ 이라면서 믿음을 가질라고 애를 쓰고, 이거 ‘저것들 저라니 나도 새벽기도 꼭 나가야 될세.

이거 참 저것들이 저렇게 저라는 것 보니까 내가 부끄럽다.’ 이래 가지고 자기 어쨌든지 자기 믿음이 좋도록, 영이 좋도록 마음이 좋도록 몸이 좋도록 그 모든 생활이 좋도록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그거 지금 근심 걱정하도록 이렇게 하면서 뭐 돈푼이나 갖다 주고 뭐 어짜고 해 봤자 그거 가지고 봉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릴 때에는 부모에게 받는 걸 좋아합니다. 부모가 ‘야, ㅡ 다른 것 보다도 ㅡ 너 지금 좀 성경 좀 봐라.’ 이랄 때에 성경상을 타 와 가지고 ‘아버지 지금 내가 금년에는 성경상을 탔습니다.’ 할 때 그거 아마 대구 몇 마리 사다 주는 것보다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가, 부모의 다른 것 말고 “주 안에서 순종하라” 했어. 부모가 영에 좋게, 마음에 좋게, 몸에 좋게, 모든 생활에 좋게 이렇게 좋도록 이렇게 북돋아 주고 옳게 지도해 주는 그것을 자녀가 잘 받으면 그것이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게 됩니다. 잘 공경하는 게 됩니다.

이라다가 그거 잘 배워 가지고 장성해지고 난 다음에는 내가 부모를 이 네 가지 면으로 이와 같이 봉양하는 데는 뭐 고기를 사다 드리면서 그 마음을 좋게 할 수도 있고, 또 내가 무슨 기쁜 소식을 전해 가지고 좋게 할 수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효자는 어데 갔다 오면은 집에 와 가지고 ‘오늘은 내가 이런 일 당했고 저런 일 당했고 이렇고 이렇고’ 집에 자기 본 일을 말이지요, 그 부모가 출입을 잘 못 하고 있으면 그 부모에게 이 세상, 요새는 테레비가 있지마는 옛날은 테레비가 없을 때라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세상에 보고 들은 모든 느낀 것을 전부 부모에가 다 말해 주면 부모가 ‘야, 시원하다. 네가 하니까 내가 발이 성하지 못해서 출입을 못 하지마는 네 소리를 들으니까 이 세상이 어떤 걸 내가 환하게 본 것 같다.’ 그런 게 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마음을 좋게 몸을 좋게 행동을 좋게 그 영이 좋게 이렇게 돕는 것이 이것이 효성이요 또 부모가 이렇게 해 줄 때는 그걸 잘 받는 것이 효성이라.

그라면 그것 가지고 “잘 되고” 그라면 그만 뭐 사업도 잘 되고 모든 공부하는 자는 공부하는 것도 잘 되고 뭐 출세도 잘 되고 몸도 잘 되고 구원도 잘 되고 전부가 다 잘 됩니다. 요 중심으로 가지고 우리가 하도록 그렇게 노력합시다.

“또 아비들아” ‘아비들아’ 이거는 `어미들아' 소리 안 해도 `아비들아' 하는 데에는, 짝 없는 말은 없다고 성경에 말했어. ‘아비들아’ 하는 말은 `어미들아' 그 말이오. ‘어미들과 아비들아’ 그 말이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게 하지 마라,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지금 당장에 자녀에게 대해서,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껍데기는 미워하지 말아라. 자녀를 미워하지 말아라. 자녀와 대립되지 말아라. 미워하지 말라. 그 속에 들어가면 대립되지 말아라, 이게 통합니까? 대립되지 말아라, 그 속에 알맹이에는 뒤에 가서 볼 때에 ‘어찌 그럴까?’ 그 자녀에게 의문이 돼서 네가 자녀에게 불신임받도록 하지 말아라 그 말이오.

인제 그게 현재로는, 현재로는 미워하지 말아라, 대립되지 말고, 대립되지 말고 네가 어짜든지 옳고 바른 그것을 주의 교양과 양육으로 해 놓으면 그 자녀들이 현재는 이해를 못 해서 이렇다고 해도 세월이 지나가면, 현재가 좀 있으면 그것이 과거가 돼 버리고 또 미래가 헌재가 되고 자꾸 지나가고 마는 것이니까, 지나가고 마니 현재에는 네가 말할 때에 이해하지 못해도 조금 지나가고 나니까, ‘아버지가 나한테 무리하게 한다.’ 이렇게 말을 해도 그 현재가 과거로 지나가고 난 다음에 그때는 자녀들이 ‘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안해 이렇다.

부모의 지도가 옳았다. 듣지 안해서 이렇다. 부모가 이렇게 지도한 그 지도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됐다.’ 어쨌든지 자녀들이 뒤에 생각할 때에 네게 대해서 원망할 만하고 ‘이거 거짓부리다. 어데 이럴 수가 있나?’ 해서 자녀들이 뒤에 경험하고 체험할 때에 과연 손뼉을 칠 만치 ‘옳다. 내가 그때 이해 못 해 그랬지 부모의 교훈은 그거는 바로 됐다.’ 이래서, 너와 지금은 현재에 대립하지 말고, 대립하지 말고 어짜든지 현재 대립을 안 되도록 하고, 현재에 요래 할 때 대립이 안 되도록 하고 그것을 잘 이해해서 납득하도록 하고 또 현재에 대립 안 되구로 할 게 아니라 뒤에 장차 그것이 모든 일을 회고해 볼 때에, 모든 것을 회고해 볼 때에 과연 그 부모의 지도가 ‘이거 어짠지 좀 의심이 나고 잘못됐는데’ 그렇게 할 게 아니고 ‘과연, 우리 부모의 지도가 옳다 발랐다.' 그렇게 감탄을 받을 수 있도록, 어짜든지 지금은, 지금은 네가 옳은 교훈을 가지고 자녀를 교훈할라 하니까 자녀들이 이해하지 못하니 너와 대립이 되는데 자녀가 삐뚤어져서 너와 대립이 될 때에 네가 대립하지 말고 그것을 잘 교양하도록 애를 써라. 또 그것이 뒤에 세월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그 실상의 옳고 그른 것이 환하게 드러나게 될 때에 그때 네 교훈한 것이 ‘틀렸다’ 이렇게 흠점이 있도록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라.

그래 할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님이 너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주님에게 배운 대로 가르쳐라. “주님의 교양으로” 주님에게 배운 대로, 주님이 너한테 말로는, 말은 뭐라고 가르쳤으며 말은 어떻게 가르쳤으며, 행동은 어떻게 가르쳤으며, 욕심은 또 어떻게 가르쳤으며, 이런 욕심은 가져라 이런 욕심은 버려라, 이런 또 행위는 버려라 이런 행위는 가져라, 주님이 너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 주님에게 배운 말 그대로, 주님이 너를 가르치는 그대로 네가 말로 가르쳐라. 주님이 행동으로 너한테 가르친 그대로 너도 주님에게 배운 그 행동 가지고 이제 자녀를 가르쳐라.

또 주님이 어떻게 보였느냐? ‘나를 본받으라’ 주님이 그 자체의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인 것으로 너한테 보였느냐? 그러면 네가 주님을 보고 배운 그대로 너도 너를 자녀에게 보여라. 이것이 주의 교양, 가르치고 기르는 것, 교양이라 하는 건 또 내나 세 가지를 말합니다.

“교양으로 양육하라” 그래 가지고 양육을 해라. 그러면 뒤에 가서라도, 현재에는 네가 노하지 말고, 노하지 말고, 이해 못 하니까, 이해 못 하니까 마찰되지 말고, 마찰되지 말고 그들을 이해해서 가르치도록 하고, 지금은 네가 그 자녀에게 대해서 마찰하지 말고 이다음에 장래에는 네 교훈한 것이 다 실상으로 드러나고 결실이 있을 터이니까 장래에는 그 자녀가 네게 마찰되지 안하도록 해라.

‘공연히 부모네들이 이리 시켜 가지고 그거 틀렸지. 이렇게 말하지 안했어?’ 부모의 너에게 인도한 것이 삐뚤어진 길을 인도했다 그렇게 이제 너의 인도에 대해서 마찰이 되지 안하도록 조심해라.

그러니까 현재는 자녀가 네게 마찰돼도 그 마찰을 마찰하지 말고 그것을 잘 포섭해서 얼마든지 그저 옳은 건 옳다 하고서 안 들으면 말아도 네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말하고 이렇게 해서 어짜든지 마찰 없이 네가 양육을 해라.

양육하는 그것이 요다음에는 평가적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서 평가해 볼 때에 ‘우리 부모의 모든 교양이 틀렸다’ 이렇게 정죄받지 안하도록 해라 그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자녀가 모르고 너는 옳으니까 자녀가 마찰이 돼도 마찰하지 말고 요것을 잘 양육해라. 마찰하지 말고 양육해라. 요다음에는 이제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자녀가 자녀의 그 실행에 네 교훈이 마찰되지 안하도록 해라. 하지만 ‘이러면 틀렸는데 부모가 이렇게 해서 이래 됐다.’ 네 부모의 교훈이 정죄받고, 정죄받고 그들에게 멸시를 받고 그들에게 원망 불평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지 말고 네가 마찰되지 않는 그런 교훈을 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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