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자

 

1988. 12. 25. 주일오후

 

본문: 누가복음 9장 25절∼20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 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오전에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사람되어 오신 주님의 그 지극한 소원, 주님의 그  소원 곧 포부를 우리들이 다 받아서 자기의 은혜로 삼는 이것이 참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사람들도 자기가 힘들여 해 놓은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깨뜨려 없애면 매우  섭섭하게 생각 하는 것이요 또 자기가 힘들여 해 놓은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효력  있게 이용을 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베푸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우리에게 오셔서 베푸신 일은 사죄해 주신 일과 또  칭의해 주신 일과 화친케 해 주신 일과 이제는 하나님을 향한 영생하는 이 일을  우리에게 설정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큰 사랑 큰  은혜를 베푸신 여게 대해서는 우리가 네 가지를 힘쓰는 것이 주님을 바로  대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의 그 사랑을 기념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죄를 없이 하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죄를 낱낱이 없이 하는 것과 또 다른 이에게  있는 죄를 없이 해서 우리는 죄로 더불어 싸우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뭐 사람들은 보기에  시시하게 여깁니다. 제법 세계 선진 그 강대국에 모든 제일 머리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무슨 세계에 무슨 대전을 계획하고 어쩌고 하면 큰 건 줄  알아그런 것은 다 하나 뿌스러기 중에 뿌스러기입니다.

 땅위에서와 영계서와 모든 존재 속에서 큰 전쟁은 예수님이 하신 전쟁이요  우리에게 인계시킨 전쟁인데 이 전쟁을 하는 것이 참 큰 전쟁이요 이 전쟁을  이기는 것이 큰 용사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왕권을 가지는 용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더불어 싸우는 군병들입니다. 우리는 죄로 더불어 싸 웁니다.

세상에는 그까짓 것 암만 크다고 해 쌓아도 죄의 종이 돼 가기고 죄 속에서  소꿉장난하고 있는 것들이요 그저는 뭐 조그만그런 소 범위 내에서 하고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의 싸움은 매우 큰 전쟁입니다. 죄로 더불어 싸우는 전쟁이요,  의를 건설하는 이 건설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대주재로 더불어  동거동행하는 일들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와 성신의 감동으로 영원히  사는 영생으로 한 자욱 한 자욱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요 우리의  생애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마귀에게 꾀임을 받아 가지고 자꾸 착각을 하고 또  오산을 하는 거게서 대낭패를 당합니다. 인류 시조 에덴동산에서 우리 시조 아담  해와가 패전해 가지고 그 사망의 모든 해독이 보통 생육법으로 난 우리들에게 다  미쳐왔습니다. 부정 모혈로 난 사람 쳐 놓고는 이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뭣 때문에 그렇게 큰 멸망을 우리 시조가 자취했던가? 그 것은 역연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서 다 일어난 멸망입니다. 뭐 딴거 하나도 아닙니다.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난 멸망입니다.

 그래서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시조가 그렇게 자기를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 멸망한 것은 원통한 일이다 하고 섭섭하게 생각하고 분 개하게도  생각하고 낙망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핑계할 수 없는  그 사는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는 그랬다 할지라도 그런 것도 우리에게 한 거울이 되고 한  정감이 돼서, 남을 보아 깨달으라고. 우리 선조들의 그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날뛰어 사는 그걸로써 실패한 그것이 우리에게는 크게 참고가 되고 거울이 되고  참 많은 그 깨달음의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인류 시조가 패전한 그 패전으로 말미암아 전인류가 패전했는데  패전한 거기에서 영원히 패전으로 멸망으로 계속할 그런 사람들도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택한 사람들은 그 아담 해와의 멸망에서 거게서  변동 없는 멸망으로 계속할 그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거게서 구출할 수 있는  길을 받은 우리들이요 또 영은 완전한 구원까지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아담 해와가 그 자신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 멸망받은 그와  같이 오늘 우리들도 잘못하면 자신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 실패하기 쉽다 하는  그 점이 중요해서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하늦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인류 시조의 범죄한 그 원죄로 말미암아 다 사망 아래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전부 죽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전부 죽었소.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남녀 노소 할 것 없고 동서양  세계에 어느 민족 어느 지역에 있는 사람이라도 전부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죽은 이것이,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배 밖에  나온 지 뭐 며칠 만에, 일 년 만에, 몇 해 만에, 몇십 년 만에, 혹 요새는 많이  가는 사람은 백 한 이삼십 년도 갑니다.

 그러면 백이삼십 년을 살아도 그게 사는 게 아니고 점점, 죽은 것이 죽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세상을 떠날 새는 완전히, 이 세상이 라는 위치에서 사는  생명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러고 이제 무궁세계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가지고  계속해서 영원히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고 원죄와 본죄로 죽은  사람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죽은 사람으로서 점점 날마다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죽은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사람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날마다 죽어가는 게  아니고 날마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섯으로서 새로와져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과 우리와의 생활은 다릅니나. 우리는 죽은- 자기도 있고  산 자기도 있습니다. 다시 산아나서 영생하는 자시도 있고 죽은 자기도 있고 두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이래서 죽은 자기로 살면 하루 살았으변 하루죽었고 십년 살았으면 십 년  죽었고 백년 살았으면 백년 죽어 이제 세상 사는 것이 끝나는 그 시간은 살아  있는 것은 나 끝나 버리고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주장해 가지고 죽은 사람으로 사는 장소 있고 영생하는 사람이 사는 길도  있고 두 길이 있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 하루 사나니까 사니까 영생하는 사람이 강건 해지고 또  죽어가는 사람을 점점 영생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서 이렇게 변화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살 때에 죽어가는 자기로 죽어사는 생애를 할 수도 있고 또  살아서 자라가는 자기로, 살아 자라가는 자기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자기와 자기를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면 영생하는 사람이 자꾸 실력.이  갖추어지고 모든 구비 해지고 또 강건해 집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으로 살면  그 심신의 정력은 점점 죽어가고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나기는 살아났지마는  자라지는 못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느냐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으로 땅위에서 시간읏 보내고 있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죽어가는 사람을 자리켜서 성정에 죽이라고 하는  옛사람이라고 반했고 또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난 이 사람으로 살 아가는 이  사람을 자리켜서 새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옛사람이라 새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다 되었는데 거게서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아나서 새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사람 옛사람  두 사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옛사람뿐이지 새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옛사람과 새사람이 자기에게 있는데 우리의 심신은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하나요 몸뚱이도 하나뿐입니다. 심신 이것을 합해서 육이라고 말하는데  육은 하나뿐입니다.

 육은 하나뿐인데 그 육을 관할하고 육을 지배하고 있는 육의 주인이 불이라는  것입니다. 육의 주인이 둘입니다. 이래서 육의 주인 둘이 언제든지 현실마다 이  두 주인은 서로 우리 이 심신으로 된 육을 사 이에다 두고 시비를 하고 항상  괴롭히고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5장에 말씀하시를 우리가 이 두 사이에 끼여서 곤고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이에 끼였다 말은 이 두 사이에 요거 폭  끼였다 말이요, 요거. 폭 두 사이에 꼭 끼였다 그말이오. 끼였는데 하나는  옛사람이요 하나는 새사람인 이 두 사람 속에 꼭 끼여 가지고 자유하지 못해서  이 구원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옛사람과 새사람을 잘 알고 확실히 알고 언제든지 익숙하게  알아서 밤이나 낮이나, 바쁠 때나 수월할 때나, 복잡할 때나 한가할 때나 언제든지  '옛사람은 이러하다 새사람은 이러하다. 이것은 옛사람이다 이건 새사람이다.'  이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의 생활은 그만 옛사람 생활로서 멸망 걸음을  걷게 됩니다.

 그러니까 옛사람과 새사람을 요것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번  물어봅시다. 옛사람과 새사람, 그것은 중생된 영을 가리킨 건 아닙니다. 이 육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옛사람과 새사람,  그러면 옛사람의 이 심신이 있고 새사람의 심신이 있고 이 심신이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둘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옛사람으로  살고 새사람으로 사는데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은 하나라고 아는 분들은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여러분들이 세계의 대 신학자보다 낫습니다. 대신학자에게 물어도 답이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알고 있으니까 이것을 예사 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배로, 보배로 모르는 인간은 빼앗기게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보배로운, 물질  보배든지, 지식 보배든지, 지혜의 보배 든지, 법칙의 보배든지 보배를 보배로  모르면 그 보배는 원수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으로 사는 육이나 새사람으로 사는 육이나 육은 하나입니다. 육은  하나인데 그러면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며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옛사람 새사람 야 사람이 주인이 둘이 있습니다. 옛사람이라는 이 주인이  있고 새사.람이라는 주인이 있는데 이 심신을 제것으로 삼아 가지고 통치할 수  있는, 이 심신을 잡아 다스릴 수 있는 그 주격이 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사람의 주격이 우리 심신을 거머쥐면 옛사람의 모든 행위를 하게  되고 새사람이 이 심신을 거머쥐고 살면 새사람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 새사람은 우리 심신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 심신 자체가  아니고 우리 심신을 가지고 통치하는 심신의 주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 육이, 심신이 옛사람을 벗을 수 있고 또 이  심신이 새사람도 벗을 수 있고 또 새사람 옛사람을 입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이 옛사람을 자기 주격으로 삼아서 살 수도 있고 또  새사람을 자기 주격으로 삼아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을 자기 심신의 주격으로 삼아 이 심신이 새사람의 심신이 돼  가지고 새사람을 따라서 움직여 살면 그것은 다 영생이, 되어지고 옛사람을 자기  주격으로 삼아서 옛사람을 따라서 움직이면 그 모든 것은 다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옛사람과 새사람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그래서 여게 오늘 오후에 말씀을 증거하려 하는 것은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라,  자기와 자기를 구별하라. 그러면 자기가 둘이, 바쁠 때나 틈날 때나 뭐 혼자  있거나 여럿이 있거나 언제든지 이 둘은 몇 버릴 수가 없습니다.

 떼 버릴 수 없게 우리와 항상 합께 있는데 이것이 택자는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비로소 옛사람은 떼어 버리고 이제 새사람과 자기는 하 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떼어 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누가복음 9장 25  절에 있는 말씀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그러면 천하를 자기가 수입했다  그말입니다. 천하를 자기 것 삼았다 말이오. 천하의 것을, 천하를 자기 것으로  수입했을지라도 '자기를 잊어버리면 자기는 헛일했다 또 자기를 뻐앗겼으면 헛일  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를 잊어버린다 말은 참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느  것이 자기인지, 어느 것이 자기인지 자기를 알지 못하고 참 자기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자기는 잊어버리고 자기 아닌 자기를 자기로 이렇게 알고 하면 그 사람의  생애는 전체가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그것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참  자기를 죽인 원수입니다. 참 자기를 죽인 것이 누가 죽였는가? 옛사람 그것이  들어서, 참 자기는 영이 자기인데 참 자기인 영을 죽인 것이 누가 죽였느냐?  옛사람이 죽였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자기 아닌  것이 자기인 척 가장을 해 가지고 자기를 멸망시키려고 나타난 자기,  자기의심신을 멸망을 시키려고 나타난 자기,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서 알지 못하면  내 심신을 망치려고 한 그놈을 주인인 줄 알았으니까 그놈이 이 심신 망치기  위해서 왔는데 주인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 심신 망치기가 얼마나 줘겠습니까?  그러니까 뽀스래기도 남기지 않고 완천히 망쳐서 죽여 버리고 맙니다.

 또 참 자기는, 참 자기는 죽은 영이 살아난 그것이 참 자기인데 참 자기는  하나님께서 뭘로 살렸는고 하니 예수심의 피공로로 살렸습니다. 피공로로 살렸다  말은 간단하게 말하니까 이리 말하나 피공로로 살렸다 말은 사죄로 살렸다  말이요. 죄를 없이 살렸다 말이오. 죄가 있으면 못 살아 납니다. 사죄로 살렸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하는 칭의로 의로 살렸고 또 하나님과 화친된 화친으로  살렸고,  그러면 이 세 가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이것이 죽음에서 살아나을 수 있는  모든 담보물이 되고, 모든 담보가 되고 근거가 될니다. 터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죄가 아니면 죄를 벗지 못하는데 어떻게 살며 또 예수님의 대행의 칭의가  없으면 하나님의 공심판에 인정을 못 받는데 어떻게 살아나며 예수님의 화친이  없으면 대주재와 더불어 원수가 되어 있는데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이래서 오전에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을 주기  때문에 이것을 자기가 가지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이것으로 사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동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죽은 영을 살린 것은 예수님의 피 말하면 피에는 세 가지를 한목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대속의 공로와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신 성령의  감동과 진리로 이제 우리 영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은 살아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아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새사람인가? 이 새사람은 어떤 사람이  새사람인가? 이 새 사람은 네 가지, 예수님의 피, 성령, 진리, 하나는 피조물을  소망하고 향하지 않고 창조주 대주재를 소망하고 그분을 향하여서 나아가는 이  영생 이거와 네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넷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은 넷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 새사람의 성질도 넷 뿐이요  새사람의 주장도 넷뿐이요 새사람의 소원도 넷뿐이요 새사람의 지혜도 넷뿐이요  새사람의 힘도 넷뿐이요 새사람의 형상도 넷뿐입니다. 이 넷이 다시 말하면  새사람 자기입니다. 새사람 자기입니다. 새사람은 이 넷이 새사람 자기요 새사람  자기가 아닌,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원수언, 자기를 죽여서 멸하기 위해서 찾아온  자기 아닌 거짓 부리 자기 그놈은 뭐인가?  그놈의 이름을 똑똑히 아십시오.그놈은 뭐입니까? 그놈은 곧 악령, 공중의 악령,  악령이라는 것은 그 영은 많습니다. 영이 많지마는 다 하나님을 중심하는 영들도  있고 자기 위주 중심하는 영들도 있으니까 자기 위주 중심하는 그 영이  악령입니다. 그것을 마귀라고도 하고 사 탄이라고도 하고 귀신이라고도 하고  배암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이름 하는 그것이 다 악령입니다. 악령과,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악령, 악령에게 꾀임받아 가지고 악성이 됩니다.

악령에게 꾀임받으면 악성이 된다 말은 자기 중심의 인간성이 돼 버린다  그말이오. 자기 중심의 인간성, 자기 중심의 인성이 됩니다. 인간성. 자기 중심의  인간성, 악성.

 악습이라 말은 악령과 악성 둘로 인해서 자기 중심의 행위를 한 번 했으면  그것이 악행이 됩니다. 또 두 번 했으면 그것이 악습이 됩니다. 악한 행위를 한  번 하고 두 번 했습니다. 또 세 번 네 번 하면 점점 악습이 자라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자기의 습관이라 자기의 버릇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라' '구습을 버려 버리라' 구습이란 말이 곧  말하자면 옛사람의 행위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래서, 자기 아닌 자기는 어떤 놈인지? 자기 아닌 자기, 자기의 영육을, 영은 못  망치지마는 자기의심신을 망치기 위해서, 자기 심신을 망치기 위해서 찾아온 그  원수 그놈이 있으니까 원수 그놈이 어느 놈인가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 가지고  그놈의 안면도 알아야 되겠고. 그놈의 이름도 알아야 되겠고, 그놈의 낯짜구도  알아야 됩니다. 그놈의 행동도 알아야 됩니다. 그놈의 입술도 알아야 됩니다.

그놈의 눈초리도 알아야 됩니다. 그놈의 그 모든 행동도 지혜도 다 알아야  됩니다. '하, 요놈은 나의 원수, 요놈은 나의 원수, 나를 죽이려고 와 가지고 지금  나한테 와서 주인인 척 하는구나.' 해서 고걸 발견해야 자기가 '이 원수야  물러가라' 할 뿐만 아니라 그 원수를 죽이려고 달라드는데,  뮐로 죽입니까? 환도로 죽입니까 권총으로 죽입니까? 뭘로 죽일 수 있소? 뭘로  죽일 수가 있습니까? 환도니 권총이니 원자탄이니 그까짓 거 가지고는 죽지  않습니다.

 그런 거야 그까짓 거 뭐 그런 거 꽉 쌓인 그 속에서도 자유하고 돌아다닙니다.

못 죽입니다. 다만 이놈을 죽일 것은 뭐이냐? 이놈을 죽일 실력으로 우리가 살  아나야 되지 실력으로 살아나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놈을 능히 죽일 수  있는 실력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살아나기를 뭘로 살아났습니까?  진리로 살아났어요. 진리의 칼로 찌르면 그놈은 죽습니다. 진리로만 죽일 수  있습니다. 성신의 감동으로만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죄로만 죽일 수 있고  칭의 로만 죽일 수 있고 화친으로만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놈이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 내 주인인 척 하고, 나인 척 하고, 그걸  내로 압니다. 내로 알아요. 이제 내로 알아서 무슨 일을 하든지 물건을 만나든지  사람을 만날 때에 자기 위주의 말 자기 위주의 일, 자기 위주의 행동. 자기 위주의  자기 중심의 주장 이런 것을 자기 속에 나옵니다.

 이놈이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속에서 내 위주로 내 중심으로 내 본위로  나를 위해서, 나는 마땅히 대속하신 하나님을 위해야 될 터인데 저를 위하는 이  생각 마음 꾀 발동 욕심 나옵니다. 이러면 이놈이 내가 아닌 나를 망칠 원수  옛사람 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요놈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면 실력 있는  사람이요 우주를 차지할 사람입니다. 이 놈으로 더불어 싸워서 자기와 적인 줄  알고 이걸 싸워서 물리치고 대항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새사람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뭘로 살아야 악령 악성 악습 악령은 자기 중심 위주의 영이,  영물, 마귀 사탄 귀신이 악령이요 악성은 자기 인간성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려 하는 그것이 자기 속에 왔다 말이오. 악성이 자기 속에 들어왔습니다.

 악성이 그러면 악성이 우리 마음입니까 우리 고깃덩어리입니까? 악성이 우리  마음입니까 고깃덩어리입니까? 악성이 우리 마음이요 고깃덩어리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그러면 악령과 악성, 악성이 우리 고기 덩어리는 아닌데  우리 고깃덩어리를 그놈이 사로잡고 제것으로 이용하고 있는 게 악성이라고 믿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것이오.

 이거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돼요. 바깥에 나가면 신학교에 잘 없어요, 이게.

이러기 때문에 가면 그만 혼돈돼 가지고 뺏겨. 이러니까 이 설교록을 저 미국  끄트머리도 듣고 거기서 일부러 사람이 와 가지고 이 책을 사고 야단인데 여게  옆에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 말이오. 이거는 이십세기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새로운 깨닫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자꾸 술을 먹어가니까 술 먹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노름하니까 노름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이거는 그저 돈 버는 일을  자구 하니까 돈 버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또 이거는 행락을 취하는 습관, 또  유흥하는 습관.

 뭐 무엇이든지 성령의 감화로 진리대로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대로 살지 않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모든 생활,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 모든 생활이나  습성이나 하는 이것은 다 옛사람의 행위인데 이것이 자기 몸안에 와 가지고  날뜁니다.

 이러니까. 자기 마음이 그러합니다. 이놈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사로잡으니까  내 마음이 그만 내 중심의 마음이 돼 버렸고 내 생각이나 뜻이나 모든 이성  비판이나 그 모든 것이 자기중심의 비판이 돼서,  옆에 다른 사람이 와가지고 내 중심으로, 내 중심으로 살도록, 내 중심으로  살도록 이렇게 치켜 올리면서 내 중심으로 살도록 이렇게 치켜 올리고 높여  주기도 하고 위해 주기도 하면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이게 뭐이냐? 원수가 내 심신을 내 심신을, 고 현실에 해당된 심신을 완전히  멸망을 시키려고 온 원수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대할때에 사람의 입에서.

 벌써 그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이 악령의 감화를 받았느냐 악성이 들어서 지금  그와 같이 하고 있느냐 악습이 들어서 하고 있느냐 그것을 구별해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하면 아무리 아버지고 어머니고 남편이고 아내고 자녀고 친구고 자기  신앙의 선배 무슨 교역자고 어떤 지도자라 할지라도 항상 눈을 떠서 우리는 이  성경이라는 맞보기 안경을 써야 됩니다. 성경이라는 맞보기 안경.

 색경을 쓰면 새파란 색경 쓰면. 만물이 다 새싸랗게 보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성경이라는 맞보기 안경을 쓰고 모든 것을 보변 성경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바로 보입니다.

 이래서 높고 낮고 가깝고 멀고 할 것 없이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내게 관련을 하는 것이나 뭐 모든 것이. 살펴볼 때에 '이 사람이 나를  상대하고 있는 이 사람이 새사람이냐 이게 옛사람 이냐?'  우리가 옛사람이라고 그 사람들을 원수로 다 삼아 버리면 우리는 세상에 나가야  됩니다. 옛사람이면 짐작하고 옛사람은 틀림없이 나를 죽이려고 왔고 나를  손해보이려고 왔기 때문에 나는 또 그 사람을 구원해서 삼켜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니까 거게서 원수시하지 않고 속으로 기도합니다.

 얘기를 하고 예예 이렇게 얘기해도 속으로 '주여, 이 사람을 악령 악성 악습이  지금 사로잡아 가지고 있어 자기를 잊어버리고 참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아닌  원수 그놈을 자기로 알고 지금 이 사람이 와 가지고서 나한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거게서 구출해 주옵소서.' 이런데 옛사람이 하는 그 일에 내가  응종하면 나도 .거기 피동되면 나도 죽는 것이거 때문에,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오른빰을 치거든 왼빰을 돌려 향하라. 억 지로 오리를  가자 하거든 십리를 동행해라'. 아무리 그 사람이 어떤 일 할지라도, 그  옛사람으로 하든지 뭐 새사람으로 하든지, 새사람으로 그 사람이 하면 그와 나와  동행을 하지마는 옛사람으로 하면 어떤 것이 손해갈지라도 나는 거게 피동되지  않아야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5장 1절에 보면은 '너희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종이라 말은 다시 삐뚤은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상대방이 나에게 대할 때에 '이 상대방이 옛사람이 나한테  상대하고 있느냐 새사람이 나에게 상대하고 있느냐?' 이것을 자기가 진찰해서  옛사람과 새사람을 벌써 구별해 가지고, 말은 아해도 옛사람을 향해서 자기가  벌써 좌우에 날선 검이신, 말은 안 해도 속으로 이 진리를 생각하고 기도를 하면  그 사람 속에 옛사람이 죽어집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 못 견딜것 같으면 그만 옛사람 그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그  사람을 모가지를 들고 그만 달아나 버립니다. 암만 '좀 놀다 가이소 놀다 가이소'  '아이고 바빠서 안 되겠습니다.'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도망을 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거게서 그럴 때에 그놈이 그 사람을 끌고 갈 수 없으면 그 사람을 둬  두고 저만 도망칩니다. 악령과 악성 악습은 진리 앞에는 아주 그만 멸망입니다.

악령과 악성 악습은 진리 앞에는 멸망이기 때문에 진리만 무장하면 그놈은 그만  도망을 쳐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데리고 도망치든지 데리고 가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이놈 데리고 가려다 내가 죽겠다.' 그만 내비 둬.버리고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그래 가지고 인간들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진찰해서 '이것은  새사람이 와서 나한테 이렇기 때문에 이 사람으로 더불어서는 하나가 돼서  의논도 할 수 있겠고 서로 또 문의해서 서로 협조도 할 수가 있겠고 이렇게 이  사람은 사귀어서 손해보지 않겠다' 하는 것을 구별해 가지고 그 사람으로  더불어서 협동하면 이 사람은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도신경에 보면 '성신을 믿사오며' 또 뭐입니까? '거룩한 공회와' 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죄 사하는 게 크지마는  성도의 교통보다 밑에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이 바로 돼야 죄 사함이 있는 것이지  그 자기 새사람을 찾지 못하고 옛 사람을 찾지 못하고는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어떤 게 옛사람이냐? 그만 옛사람은 밤이나 낮 이나, 내 속에  내라도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악령의 감화입니다. 우리는, 영의 감화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을 단단히 기억해 놔야 됩니다. 이것도 이 신학 교리  신조에 똑똑히 안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은 독립할 수 없다. 악령의 감화에  붙들렸든지 성령의 감화에 붙들렸든지 둘 중에 하나 어데든지 소속해 있지 제가  '나는 내야 뭐 악령이고 성 령이고 싫다. 나는 내가 독립한다.' 야 이놈아 네가  하는 네가 지금 악령에게 붙들린 걸 네가 몰라 그렇다. 인간은 독립할 수가  없도록 하나님이 지어 놓기를 그래 지어놨어요.

 이러니까 악령과 악성 악습에게 붙들렸느냐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에게 지금, 붙들린 게 아니라. 새사람이 지금 자기기 때문에 이 심신이  새사람에게 소속하고 새사람에게 붙들려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구별해 가지고 사람도 접해야 되고 자기 언행심사도 움직여야 되지 이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판판히 옛 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랴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 그 화평함과 거룩을 얼마나  좇아야 되고 얼마나 귀중히 여겨야 되겠습니까? 마는, 자기가 새사람으로 살면  화평을 하려고, 그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하려고 암만 돈을 좋도 안 되고  봉사해도 안 되고 나를 꺾어서 굽혀서 그 사람을 모든 면으로 존대해도 안  됩니다. 존대해도 안 돼요. 피와 성령과 진리의 새사람으로 살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사람은 자기에게는 유일한 벼락이기 때문에, 유일한 벼락이요  유일한 멸망의 세력이기 때문에 그 앞에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정 말년 때인데, 여기 그 가족들이 지금 손녀들이 와 있습니다.

둔터에 OOO집사님이라고 아주 참 믿음도 좋고 아주 봉사성이 많고 동리에서  인심을 얻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에게 내가 큰 재를 넘어서 봉산쿄회 가려 하면  재를 넘어서 그 동리를 통과하기 때문에 가면 반드시 그 집에 가 가지고 때가  되면 식사도 하고 오며 가면서 늘 친근히 그렇게 지내는 하나의 신앙 동지입니다.

동지인데 내가 그분에게 늘 말하기를 '집사님 이상합니다. 집사님은 이 동리  사람들하고 참 아주 친근하게 친해서 잘 지내는데 나는 도무지 그걸 할래야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동리 사람을 친하려고 물질로 손해도 봐봤고 또 봉사도 해  봤고 그들의 하는 일을 협조도 해 봤고 아무리 이래도 꼭 물과 기름이 따로 도는  것같이 어쩐지 이거 도무지 화합이 안 됩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친화가 됩니까?' 내가 그래도 내가 좋게 보지를 안합니다. 그분은 나를  아주 심히 존경을 했습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그는 분명히 집사님이 새사람으로 살지 않고 그들의 한  동무인 옛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지 새사람으로 살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친근히 해도 그 합해지지 안할 터이니까 그럴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웃으면서, 그분 사람이 좋습니다.

 이랬는데 그 뒤에 신사참배 때문에 문제가 나서 그 주재소서 전부 고제면에  있는 사람들은 교인들 개인 개인을 전부 잡아 갔습니다. 전부 교적부를 들고  호출을 해 가지고 주재소로 잡아 갔습니다.' 잡아 가 가지고 전부 각서를 다 써.

'네가 이제는 예수를 믿되 일본 교단적 예수를 믿으라' 하는 그것으로 다 그렇게  도장을 받고 일본 나라 시키는 대로 예수를 믿으라 그러고, 그래 나중에 그분은  잘 믿는다고 유명을 하니까 요 못된 그 순사들이 '너는 예수를 안 믿겠다고  계약을 써라' 이러니까 안 믿겠다고 계약을 쓰고 올라왔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 내가 소문을 듣고 잿만당 이쪽에서, 큰 재입니다. 여기 구덕산 지금  저 상봉 저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저보다 횔씬 높은 재입니다. 그런 재를  넘어서 있는데 그 재를 넘어서 내가 갔습니다. 가니까 집에 가 찾으니까 없어요.

'어데 갔느냐' 이래 물으니까 '논에 갔다 이래. '논이 어데나니까 '뒷골에 거기  있다' 해서 논 있는 데를 찾아갔어. 찾아가니까 논 가에 그만 꺼꾸러졌어요.

꺼꾸러져 가지고 그만 지금 뭐 울고 있는 판이라. '내가 이렇게 내가 주님을 안  믿겠다고 이런 망령을 이런 죄를 지었다 하면서 그만 죽은 사람이라. 죽은  사람같이 쭉 뻐드러져 가지고 울고 그만 탄식하고 있다 말이오. 그래 내가 다시  위로를 하고 이사야 1장 18절의 그 변론으로 '다시 일어나라, 지금부터 일어나서,  이제 관계 없으니까 가서 나는 예수를 믿겠다 하는 걸 다시 찾아가서 그 말해라.

가서 예수를 믿겠다 하는 걸 찾아가 다시 가 말하면 된다.' 이랬는데 다시 가서 그  말을 하지를 못 했어. 그때는 말로 하기는 그래도 무서웠습니다. 무섭고 위  험스럽고 아주 즘 그때는 좀 두려웠어요.

 그래서 내가 그래 느끼기를 '그거 참,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을 모셔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속에 능력이 속에 없으면 과연 안 되겠다.' 그때 많은 신자들이  다 신사참배 다 했습니다. 전부 잡아다 놓고 하니까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제가 믿는 개명교회 교인들은 주일학생 하나도 신사참배 안 했습니다. 나하고만  매일 싸웠어요. 매일 싸워서 그가 매일 올라오면 곤니찌와 하고 난 다음에는  나하고 들어붙습니다. '그래 나는 그거는 할 수가 없다' 이래 가지고 끝까지 그 참  신사참배 안 하고, 나하고 싸우니까 내 밑에 있는 교인들은 뭐 언제 잡아 닥칠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주일학생 하나도 신사참배를 안 했어요. 여기 지금  교인들이 더러 많이 와 있습니다. O O O집사 있나? 그때 어려서 모르지요?  신사참배 했나요? 어려도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새사람 옛사람을 구별해 가지고 새사람으로 사려고 하면 아무리  이렇게 해도 그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하고는 합해지지를 않습니다. 불하고  물하고인데 합해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그런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한테 얼마든지  희생하고 양보하고 했지마는 절대로 그 화친이 되지를 않습니다. 불하고 물하고  화친될 리가 없습니다. 마귀하고 하나님의 성 령님하고 같이 친구가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새사람으로 내가 사느냐 옛사람으로 사느냐?'사람을  상대할 때 '이 사람이 나한테 지금 찾아와서 말하는 사람은 새사람이냐  옛사람이냐?' 요것을 찾아서 구별하지 않으면 요걸 찾아 가지고 구별하지 않으면  생명은 없습니다.

 구별할 때에 비로소 속에 영이 육으로부터 연결이 됩니다. 영은 언제든지 살아  있지마는 영에는 살아 있어 새사람이 들어 있지마는 이 육이 살아나는 데는 영에  있는 생명이 건너와야 되니 영에 있는 생명이 건너오는 것이 뭐이냐? 내가  새사람이냐 옛사람이냐 이것을 깨닫고 제가 진리로 움직이고 영감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움직이면 새사람이 움직이고,   그거 없이 거게 그릇되는 거, 만일 사죄에게 거슬리는 죄가 되든지 의에게  거슬리는 불의가 되든지 하나님과 화친에 거슬려 하나님과 끊어지는 일이  된다든지 자기 중심의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된다든지 이러면 그뭐 더듬어 봐도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사람은 옛사람이 나와서 나를  미혹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람과 자기와 적이 되어서, 적이  되어서 그것을 완전히 끊지 않으면 암만 예수 믿어도 뭐 장로 목사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걸 끊는 데서 사는 것입니다. 거게서 사는 것이오.

 이래서 '자기를 잃으면 온 천하를 얻고도 소용 없다' 그말은 사람 들이 무엇  때문에 새사람 자기를 잊어버리게 되느냐? 세상 것 탐하다가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걸 자기, 예수 믿어 중생된 지 오래 된 사람이 중생된 이 새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신앙 팔고 이래 가지고 살아서 뭐 빌딩 몇 채를 마련했다, 자기는  어떤 정계에 출세를 했다, 어리석습니다. 천하를 얻어도.새사람 너를 잊어버리고  옛사람으로 살면 너는 멸망하고 너는 실패했다 그 말이오. 자기를 빼앗기는 것은  뭐입니까? 자기를 빼앗긴다 말은 자기의 영원한 지체 영원한 심신이 될, 영원한  심신이 될 자기 심신을 현실에서 영원한 자기의 지체를 만들건데 영원한 자기  지체 될 것을 그만 현실에서 죄지어 가지고 불의의 병기가 돼 버리니까 그거는  자가 몸에 붙어 있지만 멸망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의 정력을 기울여서 없어지지 아니할 그  기능을 마련하려고 애를 쓰고 또 없어지지 아니할 기능을 마련하려고 애를 쓰는  자에게 천하는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이렇게 애쓰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필요한 물질이 없어서 못 써 볼 때가  없습니다. 필요한 물질이 없어서 못 써 볼 때가 없어요. 필요한 인간이 없어서 못  써 보는 일이 없습니다. 필요한 능력이 없어서 그 권세 없어서 못 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천하가 다 당신의 것인데?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는 그분이 신실하신 분이요 약속의  불변의 여호와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서 새사람 자기로 살고 옛사람 그것은  자기가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얘기를 합니다. 얘기를 하는데 '요러면 내게  손해가 가나 안 가나, 요라면 내게 손해가 가나 안 가나?' 그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제딴에는 그걸 밝혀 가지고 사건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위나 인격이나  그 영광이나 이런 데 대해서 계산을 잘 따져 가지고 자기에게 손해 안 가게  이와같이 하는 게 지혜 같지마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가 어찌 되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찌 되나?' 하나님이 좋게 됨으로 나 좋게  되고, 하나님이 욕을 당함으로 나도 욕 당하고 당신과 나와 하나되는 거, 당신을  기쁘게 하는 거, '떠나든지 거하든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 하노라' 하는  요것으로 살 때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그만 이거 잊어버리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아서 아주 철통같이 모든 것을 하나도 흠점 없이 구비하게 잘해 놓는다  할지라도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으로 산 것은 옛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은 잘  살았을 지라도 세상을 딱 떠날 때에 그는 썩어진 것을 추수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생토록 있을 거 추수한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새사람과 옛사람, 자기와 자기를 잘 구별해서 살면 대단히 모든 일이  정리되고 조용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옛사람 새사람을 구 별해 살면 그 사람  하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마땅히 살아야 될 사람이 새사람과  옛사람을 구별하지 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옛사람으로 사는 그 행동하면  사람 하나 사는데 수백 명 수천 명도 살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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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7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06주새 선지자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