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과 새사람 구별

 

1984. 10. 18. 목새벽

 

본문 : 로마서 6장 1절 7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것은 지금 입으려 함이 아니고 완전히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 또 하나님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 전지하신 지혜 앞에 눈앞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은  자들입니다. 뭐 입다가 만 자가 아니고 완전히 입은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짓던 자는 완전히 죽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의롭게 사는 자로 완전히 살아난  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사는 생활은 죄짓지 아니하려는, 죄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가질라고. 또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을라고 그런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인정이 된 자인데. 인정이 된  자인데 인정이 된 자가 새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새로 죄를 짓는 것이고 또  새로 옛사람으로 다시 유혹받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써 새로운 건설이 아니고 이미 주님이 건설해 놓은 이 건설을  우리가 벗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사람은 죽어 장사지낸,  옛사람은 죽어서 장사지낸, 장사지낸 그 표시가 세례받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죽여 장사한 장사의 기념식이 세례입니다. 기념식이 세례요, 또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으로 출발해서 사는 새사람으로 사는 기성식을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미 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는 해결이  됐고 또 옛사람은 죽였는데. 이것이 새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침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옛사람이 죽었으면 그 사람이 다시 우리에게 살아난다는 것은  아니고. 옛사람은 죽었는데 그 옛사람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침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침노한다고 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옛사람 되는 것은  아닌데. 옛사람이 침노해서 다시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대속하신 그 대속 받은 자로 살아야 될 터이데 대속 받은 자로 살지 아니하고,  대속 받은 자로 살지 안하니까 다시 우리를 죽였던 그 옛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꼬우고 우리의 몸을 꼬와 가지고서 그래 우리 마음이 거기에 유혹을 받아  가지고 다시 옛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옛사람으로 사는 이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대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옛사람으로 심신이 한 시간을 살든지  하루를 살든지 십 년을 살든지 살면. 그 심신은 옛사람으로 다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은 죽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궁로를 입혀 가지고 살았지마는 다시 그  심신이 새로 옛사람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옛사람으로 옛사람의 마음과 몸으로  이렇게 살게 되니까 이거는 예수님이 담당 한 그 죄가 아니고 새 죄입니다.

그러기에 이 죄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시 희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럴 때에 고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그럴 때에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대형하시고 대행하시고 대화친 하셔서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자기가 다시 생각하고 깨닫고 이 대속을 입는  것입니다. 대속을 자기가, 대속 받은 자인데 대속 받은 자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대속 받은 자인 것을 알고 대속 받은 자로 지금 살려고 자기가 다시  깨닫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을 받은 자로 살면 대속 받은 자로 산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속 받은 자로 산다고해서  그동안 다시 예수님의 대속한 그 외에 새로운 유혹을받고 새로운 범죄를 한 그  요소가 살아나느냐? 절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거는 영원히 죽어서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자기가 새로 어떻게 만들어 입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는 이미 입고 있습니다.

입고 있는데, 다만 이것을 벗느냐 입고 그대로 사느냐 하는 그 문제지 다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는 것은 아닙니다. 벗느냐 입은 그대로 사느냐, 입은  그대로 살았으면 산 것은 영생이 되고 벗었으면 영원한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죄를 짓고 그것을 잘못했다고 주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으면 그 죄지은 그것이 회복되는 게 아니고 다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었다가 예수님의 대속 하신 그 공로를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다 해 놓은 것을  우리가 보존만 하면 되고 벗지만 안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짓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대형하고 대행했는데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형을 다해서 예수님이 대속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다 의롭다 하심을 입고 완전히 구속을 입어서 심판을 완전히  벗어낫습니다. 우리가 심판 벗어난 것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영원한 것까지를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심판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벗어나는데, 대속을 하셨는데 우리가 다시 더러워지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 밖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에 보면은 '사람이 한 번 대속함을 입고 난 다음에 다시  죄를 범하면 그 죄는 속량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속량할 수가 없다.

다시 그거는 예수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박아야 그게 대속이 되기 때문에 그거는  속랑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현저히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가 된다' 말씀을 했습니다. 허브리서 6장, 6장 5절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 지어서 다시 속량함을 입은 자가 속량함을 입은  그대로 살면 그것이 성공이지, 다시 무슨 우리가 속량함을 만들어 입는 것  아니고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속량을 벗지만 안하면 됩니다. 벗지 안하고 그대로  살면 되는데, 그 속량을 자기가 현실에서 벗고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다시  유혹받아서 범죄하면 그 유혹은 속량함을 받은 자가 유혹 다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속량하는 제사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 옛사람이라 새사람이라 말했는데, '만일' 5절에,  로마서 6장 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  요것도 다 과거사입니다. '연합한 작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생활하는 걸 말합니다. 우리가  생할하는 것을, 이미 연합이 되었으니까 또 연합이 외부의 생활로 나타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그러면, 죽은 자가 다시 죄 지을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옛사람은 완전히 죽어진 자인데 다시 그 옛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를 미혹시킵니다. 그러면, 옛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가 어떻게 또  살아나겠느냐? 옛사람이 죽은 것은 내게서 죽었지, 그 옛사람이 내게서 죽었지  그 사람이 아주 내 밖에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난 새사람이기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 될라고 살아날라고 애쓰는 것 아니고, 살아날라고 애쓰는 것이 아니고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살아날라고 애를  쓰는게 아니고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 일입니다.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 것.

그러기에, 이미 살아나기는 났기 때문에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데,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데 암만 안 죽을라고 애를 쓰지마는 약자는 강자에게 죽임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죽임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우리가 거듭난 것이 약자인가? 거듭난 것이 어떤 세력에게 거기에다가  패할 수 있는, 어떤 세력에게 꺾여질 수 있는 그런 약한 존재이가?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꺾어지지를 아니하고 강합니다.

강한데, 다만, 아주 새사람은 강합니다. 새사람은 전지자요 전능자요 또  완전자입니다. 이 새사람은. 완전자인데 이 새사람을 우리가 우리에게만 자유 못  합니다. 우리가 그 새사람을 벗을라며 벗을 수 있습니다. 새사람을, 우리는  새사람을 버릴라면 버릴 수 있고 또 새사람으로 우리만 살라고 하면 아무도 그  새사람으로 사는 세력을 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라고, 그 새사람의 요소를 모두 다 구비시켜 가지고서  새사람이 되어 살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게 아니고 이미 새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새사람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아난 자기가  아직까지도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자유성이 있는, 이 유한한 자유성 있는 또  이리 저리 변동 있는 자유성 있는 그런 자유성을 가졌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아난 것을 자기가 배척해 버려 버리면 새사람을 벗을 수 있습니다. 고러나,  새사람을 자기만 벗지 안하려고 애를 쓰면 벗길 세력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옛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진 자이기 때문에 옛사람이 그것 이  내게서 죽어도 죽지 안하고 또 뒤에 달라들 수 있는, 내게 달라들 수 있는 그런  자인가? 네, 옛사람이 우리에게 발포되기는 옛사람이 단일체 같이 이렇게 표시가  됐는데. 옛사람이라는 그 옛사람은 그 자체와 행동을 다 종합해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사람은 뭣 뭣으로 된 것이냐? 옛사람은 악령으로 된 것 이  옛사람입니다. 악령으로 됐다 말은 타락한 천사를 말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영으로서는 우리에게 접할 영이 하나님이신 영과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말하고 또 이 타락한 천사의 영, 두 영이 우리에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천사는 어떤 영인고 하니 그 영이 하늘에서 자기 위주  자기중심으로 할라 하다가 쫓겨난 영입니다. 그러면. 쫓겨난 영인데 그 쫓겨난  영이. 그 영이 죽었다고 할 수도 있고, 쫓겨났다고 할 수 있고, 타락했다고 할  수도 있고, 또 갇혔다고도 할 수가 있고 그렇게 타락한 영을 여러 가지로  발표했습니다. 죽은 영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그 말이오. 죽은  영이라 말은 하나님의 연결이 끊어졌다, 또 타락 했다 말은 그 죽은 영이 세력을  가지고 있지마는 과거에 가졌던 그 세력에서 아주 많이 거기에서 좌천이 됐다,  아주 떨어져 내려왔다, 또 갇혔다 하는 그 말은. 흑암에 갇혔다 그 말은 타락한  천사가 활동 범위의 그 범위가 좁아지고 그 권한이 줄어지게 됐다. 그러면,  권한과 모든 활동 범위가 좁아지게 됐다 그러니까 넓었던 것이 좁아지니까  그만치 갇혔다 그렇게 또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악령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지으실 때에 악령이 우주에 있었느냐?  우주에 없었습니다. 우주 밖에 영계에서 쫓겨나 가지고 자기 위치에서 쫓겨나서  타락해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우주에 들어와 가지고 살펴보고 아담 해와에게  가 가지고 유혹을 시켜서 아담 해와를 악령 이 자기의 제자를 삼았습니다.

 악령은 왜 악령이라고 하는고 하니 천사가 자기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천사가 악한 천사라 그 말입니다. 악한 천사라, 자기중심으로 행동한 천사라.

이래서, 하나님에게 쫓겨난 그 원인이 뭐이냐 하면은 이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군으로 하나님께 속해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해야  되는데, 그것이 그렇지 아니하고 제 중심으로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제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제 중심 제 소원대로 하는 요것이 됐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이 악령이 와 가지고 아담 해와를 꾀웠습니다. 꾀어서, 아담 해와를 꾀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어떤 자를 만들었느냐 하면은 자기 새끼를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지음 받았고 존재하던  그것이 자기중심으로 하다가 쫓겨난 그 악령인데 쫓겨났으니까, '내가 나쁘게 해  가지고 쫓겨났으니까 이 사람도 나쁘게 하면 쫓겨나니까 안 쫓겨나도록 하자'  그라면 그게 참, 악령이 회개하는 악령이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터인데, '내가  내 중심으로 해 가지고서 쫓겨난 내 부하를 만들기 위해서 이 사람도. 너도 네  중심으로 살아 가지고서 우리와 하나 되자' 이래 가지고서 자기중심으로 살도록  하려는 것이 에덴동산의 유혹입니다. 에덴동산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아담  해와는 악성이 됐습니다. 악성. 악성.

 영은, 영은 벌써 육이 잘못 행동한 육의 주인인 그 주인의 입장 책임을 지고서  정죄를 받아 가지고서 단번에 죽어 버렸습니다. 영은, 우리의 영은 악령 된 것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악령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천사 같은 그런  영 같으면, 천사의 영과 같은 그런 영 같으면 우리 영이 악령이 될 수 있는데  천사와 같은 그런 영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형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꼭  같은 하나님의 모형된 영이기 때문에 이것은 타락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형된  영이기 때문에 타락도 못 하고 범죄도 못 하고 또 삐뚤어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형으로서 원형같이만 움직일 수 있지 원형 외에 다른  모양은 나타내지를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원형인 하나님에게 연결이 되어  있으면 원형인 하나님과 같은 꼭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타락할 때에 영이 타락했느냐 여개 대해서 섀 계의  신학자들의 논단이 여러 종류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타락할 때는 영과 육이 다  타락해서 영도 마치 천사의 타락과 같은 그건 타락으로 그렇게 보고서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그래도 선이 있고, 또 무슨  양심이 있고 이렇게 있는, 사람얘개 선한 요소가 있는 그것이 무었이냐? 선한  요소가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병상이 다 죽지 안하고 하나님의 형상이 조그매  남아서, 기진맥진하나마 하나님의 형상이 조금 살아 있어 꼬물꼬물 이래 하고  있는 꼬물꼬물한 그것이 사람에게 선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에게 선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서 그렇게 좀 남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선하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그렇게 사람들이 해석을 해서 나온 그런 신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그 영이 죽은 것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고 좀 반 쯤 죽은 게  아니고 완전히 죽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은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람의 영은 변질될 수도 없고, 또 행동도 변행될 수도 없고. 또  변양도 될 수 없습니다. 양이나 질이나 모든 움직임이나 그것이 하나도 변동 못  합니다. 다만 하나님에게 연결 되면 천군 천사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천군 천사들도 하나님을 나타내고 만물들도 하나님을 나타내지마는  하나님을 꼭 정학하게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의 영입니다. 사람들의 영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나타 낼 수 있는 하나님의 모형인데,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모형이 하나님과 끊어져 가지고 다시 재연결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모병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 요소는 구비 돼 가지고 있지마는 하나님과  재연결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과 관계된 그런 일은 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재연결된 그 연결로써 이제 사람의 영은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영이 살아나기 전에 살아날 수 있는 밑받침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것, 자기가 주장대로 산 것. 하나님을 대항하고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서, 중심이 돼 가지고서 한 것 이 세 가지 죄가 제일 문제인데,  그 죄가, 이 세 가지 죄 문제를 예수님이 형벌을 대신 받아 가지고서 이것을  해결을 지웠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행한 행동의 온전한 자라야 돼지지  행동의 온전한 자가 되지 안하면 살아날 수 없는데, 행동의 온전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행해서 이제 우리에게 칭의를 입혀 주었습니다.

불의는 뭐이 불의냐 하면은 불의라는 것은, 그러면,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돼 야 될 터인데 자기중심으로 움직인 그걸 가리켜서 불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행한 것은 세 가지 죄, 말하자면 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된 거 이 세 가지 죄를 대형하고 사죄를 주고. 또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다 이행했기 때문에 어떤 율법도 그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 것은 그 율법을 완전히 다 준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이것이 이제 대행으로써 우리에게 청의를 준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와서 주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대립이 돼서 하나님과 벌어져 있는  벌어져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화목의 제물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됐고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고 하나님과 완전 이렇게 연결이  되어지는 이 일을 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완전 영생하는 영생할 수 있는 그 근거  밑천, 영생할 수 있는 그 근거. 밑천을 예수님이 대행으로,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밑천을 마련해 놓고.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이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공로를 설정했다 이랍니다. 공로를 다 베풀어 놨다. 완저 근거를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우리를 살린 것인데,  우리를 살릴 때에는 무엇으로 살렸는냐, 무슨 힘으로 살렸느냐? 우리를 살릴  때에 그 살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이 공로의 힘과 또 이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육십 육 권 도리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법칙이 다 들어 있는데,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살렸고, 또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살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된 자는  진리로 살아났고. 성령으로 살아났고, 또 예수님의 이 완전하신 대속,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도 하나도 거리낌이 없는 이 완전으로, 완전 대속으로써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자는 강한 자입니다. 아주 살아난 자는 강한 자이기  때무에 이 강한 자를 아무도 죽일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이렇게 완전자로 살아났기 때문에 중생 된 영에  대해서 성경에 발표하기를 '악한 자들이 만지지 못한다. 악한자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중생된 영은 다시 는 범죄 하지 못한다.

범죄할 수가 없다. 왜 범죄 할 수가 없느냐? 그가 중생하기를, 중생하기를  완전으로. 완전의 셋으로 중생됐다. 완전의 셋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범죄케  하지를 못한다. 완전한 셋이 중생 시켰는데 완전한 셋이 그를 지킨다. 완전한  셋이 그를 지키기 때문에, 완전한 셋이 그를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난자가  그를 지키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난자라 그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역사라, 나타난 역사가 그를 지키기 때문에,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그 능력이요 그 지혜요, 그 역사요, 막바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살아났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그 하나님의 움직임이 그를 살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움직임이 살렸기 때문에. 가정 (假定)으로. 가령 말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 움직임 보다도 더 큰게 있으면 침노하지마는 하나님 움직임보다 더  큰 게없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지키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만지지도  못하고 다시는 그런 범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자는 이런 자입니다. 중생된 자는 이런 자인데, 그러기에. 이 자는 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될 때에 우리 사람의 주격만 중생을 시켰지 소유의 것들은  중생시키지를 안했습니다. 주격만 중생을 시켜서 이제 주격에게 이 소유격을  이것을 중생 시키라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지공법입니다. 그런고 그 이  영은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렸고, 이제는 영이 이 심신을 살려 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복수하는 정의의 복수성입니다. 왜? 사람이 주격이 돼 가지고서  주격된 영이 주격 책임을 하지 안해 가지고서 이 육체가 범죄함으로 제가 주격된  책임을 짊어지고서 정죄받아 가지고 죽었기 때문에. 네가 이제는, 주격된 네  영이 네 소유인 그 심신을 네가 살리고 네가 관할하고, 네가 살리고 네가  관할해서. 그래야 네게 필요한 영원한 지체가 되어지고 네 도구가 되어지고 네  모든 기구가 되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이래서, 고것도 하나님이 아주  공변된 정의의 복수성으로 그와 같이 한 것입니다. 네가 주장 주인 노릇을 못 해  가지고, 주인 노릇을 못 해 가지고 이제 그 실수로 말미암아 네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너를 살렸으니네가 들어서 그것을 이제는 주장해 가지고. 네가 주장해  가지고 그걸 정복하고 그 걸 시켜서 주장을 해 가지고 너한테 꼼짝 못 하게  너한테 복종하도록 그래 해서.네가 동하면 그가 동하고 네가 정하면 정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라. 만든 것 만 네 소유격이 되지 만들지 안한 것은 영원히  소용없다. 만든 것은 영원무궁토록 네가 가지고 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심신은 진리와 영으으로 중생될 때에 중생되지 안하고 고거는 고대로 있습니다.

 고대로, 제 자리에 고대로 있고 영만 살렸는데, 살아난 영이 자기의 죽은  심신을 이것을 살릴라고 애를 씁니다. 살릴라고 애를 쓰니까, 그 중생 된 영은  무한한 힘이 자기 배경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배경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중생 시킨 그 피의 능력이 있고, 성령의 능력이 있고. 진리의 능력이  자기 배경이 되고 자기의 생명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힘을 가지고 자기의  심신을 살리도록 이래 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알도록 표시하기 위해서  말하기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육체에게 증거해 주고 있다.' 우리  육체를 '너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되지, 영생이 있는데 왜 네가 영멸로 갈라고 애를 쓰고 있느냐' 하는  것을 자꾸 타이르고 달래고 가르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그 말은 하나만 해도 다 되니까,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가 돼 가지고 심신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옛사람은 그것이 악령, 자기중심의 천사로 인해서 그  행동으로 타락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그 악령이 제 새끼를 낳았던 것입니다.

악령이 저와 같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저와 같은 새끼를 낳아서 자기중심으로  움직이는 저와 꼭 같은 자를 낳기 위해서 아담 해와에게 와 가지고 꼬와  가지고서 아담 해와를 그렇게 자기 닮은 자를 만들어서 자기중심의 아담 해와를  만들었습니다.

 자기중심의 아담 해와를 만들었으면, 사람은 영육이 합해서 사람인데  자기중심의 사람을 만들었으니까. 그때 인제 마귀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범죄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하니까 심신의 범죄로 인해서 영이 정죄받아 가지고서  영이 죽었습니다. 죽었으면. 영이 죽었으니까, 악령의, 자기중심의 천사가  새끼를 만들었으면 영육을 다 자기 새끼를 만들었던가? 영육이 다 자기 새끼가  됐던가? 영육이 다 자기중심의 영과 육이 됐던가? 그러면. 어찌 됐습니까? 영과  육이 어찌 됐습니까? 영과 육이 다 이 악령의 새끼가 됐습니까. 영만 됐습니까,  육만 됐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예? 영만 됐습니까 육만 됐습니까? 네, 영은  된 것 아닙니다. 육만 됐습니다. 육만. 육만 됐지 영은 하지를 못합니다. 영은  자기중심의 것으로서 그렇게 변성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이, 악령이 와 가지고서 우리 사람을 악성을 만들었다.

자기중심의 본성을 만들어 버렸다. 자기중심의 본성을 만들었으며 그 영의  본성을 변질했습니까, 악성을 만든 그 악성은 영이 악성이 됐습니까 심신만이  악성이 됐습니까? 심신만이 악성이 됐습니다. 심신만이 악성이 됐는데, 중생되고  난 다음에도 이 악성 되어 있는 이 심신이 돌아다니면, 심신이 돌아다니면 속에  중생된 영은 그 심신을 벗어나서, 심신을 벗어나서 다니지를 못합니다. 심신  안에서 역사해야 되지. 이러니까, 중생된 후의 그 중생된 영은 악성이 행동하면  어떻게 되느냐? 악성이 이 행동하니까 중생된 영은 거기에 끌려가기가 싫고,  끌려가기가 싫지마는 그것이 자꾸 이리 저리 돌아다니니까, 내가 지금 서울  가기는 싫지마는 나를 뽈끈 잡아 묶어 가지고서 이제 차에다 태워 가지고서 그만  차가 서울로 도망을 치니까 내가 할 수 없어 지금 가기 싫지마는 서울로 가야  된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기에. 우리가 범죄하는 것은 범죄할 때에 그때에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 심신은 범죄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속에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범죄 하지 않는데도 그놈이 범죄하니까 원치 않는데 끌려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로마서 7 장에 말씀하시기를 '속사람으로는 원치 아니하는 것들에게  끌려서, 끌려서 이리 저리 끌려 돌아다닌다.'그러니까, 중생된 영은 이 심신  이놈이. 심신에게 지금 속에 타고 있으니까 심신 이놈이 도망을 치니까, 말을  타고 있는데 그 말이 말탄 사람의 말을 잘 들어서 가자 하면 가고 오자 하면  오고 이리 저리 가자 하면 이리 저리 가면 하지마는 그 주인은 동으로 가자  하는데 말 이놈이 그만 서쪽으로 도망을 치니까 그 주인이 속에서 탄식하면서  이놈이 동쪽으로 가야 되는데 서쪽으로 간다고서 이라면서, 서쪽으로 가고 싶고  동쪽으로 가기 싫지마는 말이 그리 달아나니까 거기 탔으니 어쩔 수 없이 그리  가면서 그래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이 육체가 들어서 자꾸 이걸 끌고  돌아다니니까 내가 지금 끌려 다니면서 욕을 본다.'  그래서, 영은 같이 범죄하는 거 아니고 육만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는 하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일을 하는 것은 내게 있는 죄  그놈이 들어서 하고 있는데. 내 속사람은 하나님 법을 즐거워하는데 원치  아니하는 것들에게 내가 끌려서 이리 저리 끌려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가  범죄할 때에는 그때 범죄에 우리 영이 참가를 합니다. 참가해도 영은 범죄하지  안해. 범죄하지 안하면서 지금 거기에서. 그놈 마음대로 하니까 끌려 다니면서  고통을 하고 애를 먹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에 그런 말씀을 해 놨습니다. 7장 22절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지체라 말은 내나 심신을 말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원치 안하는데 이놈이 끌고 가니까 어쩔 수 없어 끌려가며 지금 '이놈, 와 이리  가노 이리 가노' 하면서 자꾸 서로 신강을 하면서 가고 있다 그거요.

 그래서, 옛사람은 악령이 와 가지고서 제 새끼를 만들어 놨으니. 악령이 와  가지고 제 새끼를 만들어 놨는데. 악령 새끼를, 악령이, 악령이 와 가지고 제  새끼를 만들어 놨는데, 우리에게는 영과 육이 있습니다. 영과 육이 있는데,'  악령이 와 가지고 제 새끼를 만들었는데 영을 제 새끼를 만들어서 우리 영을  악령으로 만든 것입니까 우리의 이 심신을, 심신의 이 요소. 우리의 심신의 그  본질과 본성. 이 심신의 본질과 본성을 악성을 만들었습니까? 심신의 본질과  본성을 악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악령과 악성으로 된 옛사람인데, 이 악성이라는 것은 심신의  본질과 본성을 말하는 것이지, 영의 본질과 본성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거는 변할 수 없는 것이요 그거는 악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악령이 와 가지고 제 새끼를 만들었는데 우리의  영을 새끼를 만들었습니까, 우리의 육을 새끼를 만들었습니까? 우리의 육을 새끼  만들었습니다. 육을 새끼를 만들었는데 육을 새끼를 만들었으니까 영은 악령의  새끼가 안됐지마는 이 영이 육체 안에 있기 때문에 끌려가야 된다 말이오. 끌려  다녀. 따라다녀. 따라다녀도 죄는 안 짓습니다. 따라다녀도 반대하면서 '이놈 와  이리 가노 이리 가노' 하고 자꾸 이렇지, 죄를 환영하고 죄를 탐하거나 그거는  영의 능동 행위는 아니라. 영의. 영의 자기의 행위는 아니라. 자기는 반대하면서  세력이 모자라니까 자꾸 지금 끌려다니나 반대하고 지금 이래 가지고 있고 육신  심신 그놈이 들어서 범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성을 만들었고. 악령이 들어서 악한 심신을 만들었고 그 말입니다.

악령이 들어 악한 심신을 만들었고, 또 악령과 악한 심신이 들어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악령과 악한 심신이 들어서 그 악령과 악한 심신의 주장대로 원  대로 행동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악한 행위인데 그 행위를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두 번 했으니 연습이 됐고 세 번 하니까 더 연습이 됐고 네 번 하니까  더 연습이 돼서, 그래서, 모든 자기중심으로 행동한 모든 연습들이라. 모든  버릇들이라, 습관들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옛사람은 벌써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법적으로는 죽었습니다. 법적으로 만일 이것이 죽지 안하고, 법적으로 죽지  안하고 이것이 지금 남아 있다고 하면은 우리의 영이 살리지 못 합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서 정죄해서 죽었기 때문에 이것은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공로를 힘입으면. 성령과 진리 가지고는 이것을 능가 할 수 없지마는 예수님의  피공로와 세 가지 능력만 하면 이것은 다 이미 이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옛사람을 이것을 다시 내게 와 가지고서 나를 침노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이것이 우리가 하는 노력이고, 새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이것이 우리의 노력인 것입디다. 그러면, 노력하는 것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새사람을, 새사람으로 자기가 살라고, 새사람을 입을라고 애를 쓰는 거냐?  새사람으로 사는 이 생활이 자기 생활이 돼 가지고 있는데 새사람으로 산 이것을  벗지 안하려고, 변하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거 변하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고, 또 옛사람 이것은 죽었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살아나지 못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요, 또 이것은 죽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새사람은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옛 사람은 살아나지 못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라. 그러면, 옛사람은  우리가 죽일라고 애를 쓰는 것과 새사람으로 지금 살려고 애를 쓰는 거와 다르다  그 말이오. 새사람으로는 살려고 애를 쓰는게 아니라 새사람이 안 죽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고, 옛사람은 죽일라고 애를 쓰는게 아니라 그놈은 죽었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라.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과 새사람을 잘 구별해야 됩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면 다 헛일이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보면은 모두, 일곱  교회에 보면은 옛사람 행위와 새사람 행위를 환하게 밝혀서 놨습니다.

 거기 보면은 뭐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주 나는 부요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거는 옛사람이 그렇게 부강해졌습니다. 옛 사람이  부강해졌기 때문에 새사람은 가난하게 됐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처음  교회 에베소 교회는 그렇게 행위가 아홉 가지가 완전한데, 하나만. 해도 성자라  할 건데 하나만 해도 성자라 할 건데 아홉 가지가 그렇게 훌륭하지마는 그것이  다 옛사람 행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보면은  말세의 교회를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에 보면은 그저  뚜렷이 옛사람 새사람을 나타낸 것이 제일 뚜렷합니다.

 그러면. 옛사람은 어떻다 그러면 사람들은 껍데기 행위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데. 뭐이냐?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힘으로 한 것이 아니면  다 헛일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불로 연단하던 것과 같은 그런  믿음의 연단의 환난을 준다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정말로 피와 성령과  진리의 힘으로 된 것은. 이것은 제일 최고의 능력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이 거기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건드리지 안하고,  우리가 모든 환난 오는 것은 무슨 환난이냐? 환난은 뭐 하려고 오느냐? 환난  오는 것은 성령과 진리와 피로 된 그를 섬기기 위해서 옵니다. 모든 환난이 그를  섬겨서 이렇게 높이기 위해서 오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말미암아 생겨지지  안하고 뭐 타락한 마귀란 놈이 요렇게 만들고 저렇게 만들어 가지고서 이렇게.

천사, 천사와 또 천사가 이제까지 계몽을 일으켜서 모두 다 사람들에게 온갖  기이하고 미묘한 지식을 많이 만들어 놨는데 그 지식이 전부 다 배암의 지식이요  마귀의 지식입니다. 천사의. 타락한 천사의 지식이라 그 말이오. 천사의  지식인데, 이 지식을 가지고서 해 놓으니까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해서 그만 다음  다 의롭다 쭉쭉 따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을 보고서 요한계시록에 옛사람 있고 재사람 있다  하는 요것을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옛사람 행위 있고 새사람 행위있다 하는  요것을 딱 자기가 깨닫고, 그러면, 요 행위는 옛사람 행위다 요거는 새사람  행위다 요렇게 구별하는 요 눈을. 안약을 사서 발라서 보게 하라는 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요 지식 가지고서 모두 보라 그 말이오. 신구약 성경  지식 가지고 보라 하는 것인데, 일곱 교회를 보고서 옛사람 행위 새사람 행위를  딱 갈라 보면, 갈라 보면 거기서 아주 감쪽같이 싸서 누가 이거 뭐 잡금인 줄을  모릅니다. 잡금인 줄을 몰라.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서 이거 다 정리해 가지고서 금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시계방하고 금방하고 이래 할라 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 시계방도 하는 것도 좋고 금방 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실력이 있어야 되는데, 시계는 시계방을 할라 하면은 시계를 잘 고칠  수 있어야 됩니다. 시계를 고쳐서 시계는 어떤 시계가 와도 이거는 십 원짜리다  백 원짜리다 천 원짜리다. 시계에 대한 그 물가를, 물품을. 품질을 확실히  알아서 시계에 대한 확실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가져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주 잡것이 많아 속기 쉽습니다. 금은 더 그렇습니다. 금은  옛날에는 중량을 달아 보고서 사람들이 그래 하지마는 요새는 금과 같은 중량이  있기 때문에 금 아닌 중량을 거기 다 넣어 가지고서 이렇게 하기 때문에  중량으로 달아 봐도 별로 이 잘 모를 수 있고, 또 뭣을 겉으머리로 태워 보고  이래도 잘 모릅니다. 속에 있기 때문에. 이 금은 얼마나 지금 가짜가 많기  때문에 금 장사는 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또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보석  장사입니다. 보석 장사야 가방 안에 딱 넣어 가지고, 가방 안에 하나 넣고 달랑  달랑 들고 다녀도 몇십억이 돼 가지고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보석도 한 가방  들었는데 몇천만 원짜리도 있고 몇억 만원짜리도 있고 또 몇백만 원짜리도 있고  이러니까 보석 장사는 더 어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져야 되지 지식을 안 가지고 그 장사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업을 전업하는 업을 바꾸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십 년 가면은 겨우 입학하고, 한 이삼십 년 가면은 겨우  알게 되는데 업을 척척 중간에 바꾸는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업을 한 번도 잡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해서 보냈는데 시작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에는 참 가짜가 많습니다. 가짜가 무슨 가짜냐  하면은 인본의 가짜 신본의 진짜, 신본의 진짜 인본의 가짜로 그렇게 말 할 수  있고.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으로 된 진짜, 이거 외에 배암의 지식,  배암의 능력, 이러니까, 세상 사람이 막 좋다고 다 찬성 합니다. 찬성하지마는  고 진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환난을 넣어 주면은, 환난을  넣어 주면은 이 세 가지로 된 거는 뭐 더 빛 납니다. 그렇지 안해요? 이 정금은  자꾸 구울수록이 자꾸 빛이 나고 소산수로 이래 거석하면 더 빛이 반짝 반짝 더  광채가 나지마는 은이나 뭐 잡금은 다 타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환난이라는 것은 속에 진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동안에 어쩌든지 알 수 있도록 최고의 환난을 줘 가지고서 내게  있는 가짜를 전부 다 불살라 버리고 진짜만 남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성도들입니아.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오지  않도록 시험을 안 당하도록 해라 하지 안했고 시험에 지지 안하도록 기도해라  이랬습니다. 시험에 지지 안하도록 기도. 시험에 지지 안하도록 기도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 새사람을 우리가 자꾸 구별해야 됩니다. 옛사람  새사람을 구별해서 알려고 하면 요한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의 그 내용을  보면은 옛사람 새사람의 행위가 다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고것마 보면  옛사람 새사람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막 운동을 해서, 언제 내가 서울 가니까 큰 운동이 있다 해서 그때는  오십만이 모았다 하는데 그때 오십만이면 뭐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요새는  오백만도 문제없이 모아요. 모두 다 와 그러냐 하면 그때는 여기에서 일본만  갈라 해도 굉장하고, 갈라 해도 뭐 그때 배가 연락선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하관(시모노세끼)까지 가는데도 꼭 열 두 시간 걸립니다. 열 두 시간 걸리고,  우리는 배를 타고 갔었는데, 요새는 여기서 미국 가는 것 또, 미국 가는데 뭐,  만일 하와이까지 갈라 하면은 얼마 한 열 시간 걸립니까? ○ 목사님, 어찌 돼요?  여덟 시간? 여기에서 미국까지 갈라면 여덟 시간 걸려. 여덟 시간이면 가.

이러니까. 이렇게 모든 것이 좁아진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도 모든 것이 다  이제 말세가 점점 되어 갈수록이 좁아 집니다. 인간의 지식은 넓어지니까  그것들이 다 좁아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기가 어려운데,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면은 여기에서 우리의 눈물 흘릴 것이 많고, 우리가 고통할 것이 많고  우리가 자복할 것이 많지마는 그 사람이 눈이 멀어 놓으면은 옛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 앝에 지금 앞으로 징계받아서 비참하게 참 절단나는 그게  눈에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지금 뭐 담대하게, 이렇게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릴지어다.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 하는 이걸 보내면 씩씩씩 웃고 있다 그 말이오, 웃고 있어.

 이러나, 이재 이걸 보고서 근심 걱정하고 눈물 흘린 사람의 값이 있을 것이오.

근심 걱정하고 눈물 흘린 사람은. 우리는 몰라도 근심 걱정하고 눈물 흘리고  자기가 안심하지 못하고 항상 근심 걱정 마음에 눌리고 또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에게 속한 사람에게 멸망에 대해서 염려하고 하는  사람은 주님은 주님이 무슨 칠 한다 했습니까? 예? 이마에 무슨 칠 한다 했오?  먹칠. 이마에 먹칠을 해라. 누가 먹칠합니까? 어떤 사람이 먹칠합니까? 서기관이  와서. 서기관, 서기관이 서기관 사용 하는 먹을 가지고서 이마에 먹칠을 해라,  입기는 그 사람이 뭘 입었습니까? 뭣 입었오? 마포, 베옷. 베옷을 입었오.

베옷을 입고서 와 가지고서 이렇게 먹칠합니다. 그 베옷 입은 사람은 회개를  일으키는 회개를 담당한 천사요. 또 그는 인간들에게 성경을 알리는 그 일을  담당한 천사라 말이오. 그때 그 천사가 몇 명이지요? 여섯 사람. 여섯 부대라.

그러기 때문에 이 천사들이 다 관리하고서 이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가는 걸음에는 이 우리 천군 천사의 부대가 우리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얍복강을 갈 때에 '암만 에서가 강하지마는 내가  천군 천사를 보내니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래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무래도 요번에 날 살려 주셔야 됩니다.' '염려하지 말고 가거라' 가거라  하는데 안 갈라 하니까 '내가 너와 같이 하는 걸 보이리라. 내가 너한테  보이리라.' 보니까 천군 천사가 야곱하고 같이 가는 것을 봤지만 그래도  의심하고 안 믿어. 그라다가 나중에 한 대 맞고 난 다음에사 회개를 한 것이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은 모르지마는 하는 대로 '요거는 이마에다가' 그건 내나  내가 예를 들어 하는 말이오. 이마에다가 요거는 온 이마에 새까맣게 칠해야  되는 건데 반만 칠하고 만 사람도 있고 또 다 칠한 것도 있고, 칠하려고 요래  점을 찍다가 만 것도 있고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이 재앙을 가지고서 이래  가는데. 재앙을 내려 가지고 치는데 보니까 '이거는 점이 꼭 찍혔으니 이거는  칠해야 되나 안 칠해야 되나?' '그거 모르나? 몇분지 일이 그러냐?' '백분지  일쯤 점이 찍혀 있습니다.' '백분지 일이면 사사오입으로 사오가 될 때에는 많은  수 오 자로 따라 올라가는 것인데 그거는 의례히 칠해야 되지 않느냐' 그럴 거라  말이지. '반이 칠해져 가지고 있습니다.' '반이 칠해 가지고 있으면 칠해진게  많나 안 칠해진게 많나 좀 구별해라' 이러면, '칠해진게 적습니다.' '그러면  쳐라.' '칠해진게 조금 많습니다.' '그러면 가까이 하지 말아라.' 이래  가지고서. 이제 이 재앙을 내리되 이마에 먹칠한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아라  근방에 가지도 말아라 이 역사를 지금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기도하고 회개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부리는 그 천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안하지마는 벌써 칠을 하고 있다 말이오. 이마에 칠을 하고  있어. 이마에 칠하고 있다 말은 그 이마의 칠이 뭐이냐 하면 서기관 칠이라.

서기관 칠. 그게 회개에 인정받는 칠이라. 그러니까, 이 칠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벌써 다 같은 입장과 처지의 악의 세력을 만날 때도 그 담력이  달라지고 평안이 달라지고 모든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인내가 달라진다  말이오. 달라. 점점 달라지는데. 먹칠 되는 것은 이제 그것 이 우리 머리만  완전히 확고하게 돼지면 꼼짝 못 합니다. 상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세밀하게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이 얼마나 다급한 때고 위급한 때인지 모르는데, 지금 뭐. 아무래도 굶어  죽지 안할 건데 지금 돈만 보고 뮈 명예 지위 보고서'서두는 사람은 늦게  서둘렀습니다. 말세에 대해서 너무 늦게, 그런 것이 지금 필요 없는 때이고  그거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대로, 내게 돈이 필요하면 돈 줄 것이고 은이  필요하면은 줄 거고,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라고 말했다 말이오. 성전  건축하는데 말하기를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니까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염려하지 마라 모든 군왕들도 내가 잡아 부릴 수 있기 때문에 네가 성전  건축만 하려고 애만 쓰면 모든 거 다 전체가 다 협조 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학개서는 참 묘한 예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마귀야 참 오는 것은 민첩합니다. 행동 하나 하는 데서 마귀 와 가지고서  자기를 주관합니다. 어디로 올란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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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4 옛사람 버리고 주님 사모 /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40727금새 선지자 2015.12.11
3483 옛사람/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70203화새 선지자 2015.12.11
3482 예정론/ 로마서 12장 1절/ 870526화새 선지자 2015.12.11
3481 예정/ 에베소서 1장 3절-23절/ 82,0212금새 선지자 2015.12.11
3480 예정/ 로마서 12장 1절-2절/ 800514수야 선지자 2015.12.11
3479 예정/ 에베소서 1장 3절-14절 / 820212금야 선지자 2015.12.11
3478 예정/ 에베소서 1장 7절-12절/ 820213토새 선지자 2015.12.11
3477 예언의 말씀/ 베드로후서 1장 16절-21절/ 820401목새 선지자 201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