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2 00:46
옛사람과 새사람
1980. 8. 20. 수새
본문 : 골로새서 3 : 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이 말은 영광을 자기만 좋아가지고는 영광이 안되고 자신의 좋은 것을 인해서 그 좋은 것을 힘입어 자기의 좋은 것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많이 좋아졌을 때에 좋아진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고로 영광이라는 것은 봉사에서 이루워지고 희생에서 이루워지고 주는데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에서 생겨집니다. 소금. 믿는 사람을 소금이라 하는 말씀은 자체에 비뚫어지게 희생하는 것은 다른 것도 다 삐뚫어지게 맨들기 때문에 이런 것은 허사다. 아 소금은 짜운간만 있는 것처럼 기독자들이 진리와 영감으로만 된 하나님으로만 된 온전한 고 행위 자기가 희생하므로서 자기에게 이루워진 온전한 고곳이 다른 사람에게 가 가지고 온전히 이루워지기를 마치 소금이 녹으면서 짠간이 다른 것에게 배둘어가는 거와 같이 어에 그렇게 되는 것을 가리쳐서 너희들은 소금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게 소금노릇을 잘 했으면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가지고 영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소금은 자기가 먼저 온전해지고 온전해진 그것이 희생하므로써 온전한 다른 사람에게 가가지고 이제는 이루워 질때에 그것은 아 나는 아무거시 때문에 고치게 됐다. 온전하게 됐다. 잘되게 됐다. 잘 되게 된다아 할 때에 이것이 영광입니다. 그럼 소금을 말하는 것은 희생으로 영광이 되는 것을 가르쳐서 말하고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하는 이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서르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두로 바른두로 깨끗한두로 밝은두로 이렇게 돌아올 수 있도록 모범이 되어지는 그것을 가르쳐서 빛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자기로 인해서 깨끗해진 사람들이 자기로 인해서 좋아진 사람들이 자기로 인해서 깨닫게 된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모도 자기에게 대해서 말은 없어도 속으로 감사함을 가질 수 있고 존경함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로 인하여 유익을 받도록 할라고 애를 쓸것이고 이럴 것인데 그것이 영광입니다.
그러기에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하늘나라는 영광이 되는 요소, 영광이 된 요소, 영광이 된 행위만 가져갑니다. 또 영광되게 한 요소만 가져갑니다. 이래서 영원무궁토록 영광될 고 생활만 하늘나라에서는 가는 것입니다. 영광될 고 생활만. 이레서 예수님도 이것을 원하시고 하신 것이니 영광과 덕으로 나타낸다 고렇게 말했습니다. 영광과 덕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낸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면 하나님도 이 모든 존재들에게 원망 불평된 그것이 그 면으로 나타나는 그런 역사를 하지 않하고 영광된 그런 역사만 나타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그것이 하늘나라 가서 칭찬받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에게 감사 받는 그것이 하늘나라 가서 감사 받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감사받는 그 일도 칭찬받는 그 일도 다 영광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는 아닙니다. 왜 그런고하니 사람들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삐뚤어진 그 자에게 삐뚤어지도록 자꾸 그렇게 못씨게 만들어도 그럴수록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깡패는 깡패가 되져야 좋아하고 깡패하는 그 일을 더 하도록 이렇게 하면 선생님인줄 알고 좋아합니다. 아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으로 살지 않하고 모도 다 자기로 살기 때문에 자기 그것은 해부를 해서 분석을 하면 자기, 부폐한 성질, 마음, 욕심, 뜻, 또 소망 모도 다 자기 그 더러운거. 그것을 찬동해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면 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니 하늘나라 영광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은 그 사람 하늘나라가면 다 벗어뿌리고 아무것도 없소. 옛사람, 옛사람 그것은 죽이야 될 것인데 사람들은 옛사람은 이걸 자꾸 치키 올리면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옛사람을 죽이는 일하면 고만 제 원수같이 생각하고 옛사람을 그것을 위해주고 도와주고 칭찬해주고 또 알아주고 하면은 뻥긋거리고 좋아합니다. 그면 저는 옛사람을 돕는 것이니까 옛사람으로 있을 때는 감사하고 기뻐하고 친근히하고 그렇지마는 그 옛사람은 이 자 버리고 갈 사람들이니까 왜 모든거 다 자기에게 있었다는 것이요 또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그때는 그에게 대해서는 영광은 하나도 안가집니다.
왜 그 사람으로 인해서 자기가 속고 더러워졌고 어리석어 졌고 미련해졌고 삐뚤어졌고 못써져고 이러니까 아 적대 속아 속임을 받았다 그말이요 그런고로 성경이 말하기를 세상은 서로 속이고 속임을 받는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데모데전서 3장에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에 그러고 참 속사람에게 유익되고 겉사람에게 해가 되는 이런 것을 겉사람을 죽이고 절단내는 이런 일을 하면 속사람은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써도 겉사람은 싫어하고 대적이 됩니다. 겉사람은 싫어하고 대적이 되어서 그렇게 이 일을 열심히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고 하면 미움을 받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느냐 죽임을 받습니다. 우리의 선지자들이 미움받지 안한 선지자들이 하나도 없고 직임을 당하지 아니한 그런 선지자가 그렇게 선지가 쳐 놓고는 없습니다. 전부다 죽임을 받았지. 아 그것은 선지자를 죽인 것은 누가 죽이는가? 옛사람이 죽이지.
옛사람이 죽이고도 그 사람도 옛사람으로 사지만은 택한 자는 언젠가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제기에 닥치는 제 옛사람 때문에 선지자를 미워하지만은 자기 선조들이 죽 있는 선지자는 자기 선조들이 옛사람이 죽 있기 때문에 그 남의 옛사람이니까 모든 다 그말이요. 자기 옛사람은 자기 잘못된 것 모르고 옹호합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를 죽이놓고 난 다음에 자손들은 다 선조들을 원망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선지자를 죽였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제게 닥친 선지자는 죽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 13장에 말씀해놔습니다. 아 그런고로 우리가 이번에 가서 두 사람 두 자기룰 구분했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 사람이요. 자기도 두 가지 자기라. 사람도 두 가지 사람이요 자기도 두 가지 자기라. 요곳을 구별해 가지고 요곳을 참사람 내다. 요곳은 참사람 나를 과거에 직있다가 살아나기는 살아났지 만은 참사람 나를 자꾸 덮고 가루고 이 마음과 고기 덩거리 이것은 어리석기 때문에 마음과 고기 덩어리 이걸 갔다가서 꼬와 가지고 자기 것을 맨드라 가지고 참 나는 보이지 않게 하고 파묻어 삐리고 어느 여게 고만 내 마음과 내 고기덩어리는 나를 죽였던 나 아닌 나. 원수인 나. 옛사람 나. 악령으로 된 나. 내 중심으로 살고 죽고 나를 위주로 살고 죽고, 나만 자위해한 것. 내 중심 나 위주로 한 그 고악성. 또 과거에 성령으로 살지 안 하던 죄 짖던 그 습성이, 죄 짖던 그 습관이, 죄 짖던 버릇이, 죄 짖던 취미가, 죄 짖던 그 재미가, 죄 짖던 그 능숙이 이것이 들어서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원수 이놈에게 다시 또 몸이 또 종이 되고 다시 종이 되가지고 이렇게 살기 되는 이것은 그때는 그 놈이 강해 가지고 그랬지만 뒤에 지내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것은 옛사람으로 산 것을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대단히 보뱁니다.
그러나 그 보배는 현실을 통과해야 그게 보배가 되지지. 보배될 수 있는 재료만 된다는 것은 그게 보배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근데 여게에 영광, 그와 함께 예수님도오 하나님도 기뻐하고 하는데 있는 만물이 다 감탄하고 기뻐하고 지하에 있는 것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원망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은 그들로 하여금 옳은 길을 얼마든지 갈칠대로 안 갈친기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다 지옥가 가서 있는 것도 예수님이 내가 잘못 속였다 됐다. 말 안해줘 그렇다. 예수님에게 책임을 들럴수 없기 때문에 주라 시인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옥을 가 가져 있는 그런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그는 지옥에 있고 자기는 하늘나라 있을때에 그 사람이 이 네가 내게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그 걸 깨닫지 못하였으니 지옥을 왔다든지 그렇게 원망할 수 있는 그런 일은 없도록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됩니다.
아 잘못된 것은 고쳐서 하나님 앞에 사람을 받아야 되겠고 또 지옥 갈 사람. 그 사람에게나 하늘나라 갈 사람에게나 우리가 언제든지 생명의 도를 보여 줘야되고, 생명의 도를 줘야되고 옳고 바른 것을 보여줘야 되고, 가리쳐 줘야되고, 또 그 사람에게 옳은 길을 걷도록 돕는 그런 일을 했으면 그 사람이 지옥 갈지라도 자기가 그 사람을 서로 먼거리에서 볼때에 그 사람에게 미안치 안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원망시러워 안하고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대할 때에 안면이 있는 날것입니다.
에 만일 그 사람이 나 때민에 어떻게 된 그 있으면 누가 말하지 안하고 책임추궁을 안해도 스스로 미안하고 부끄럽고오. 마음에 그 죄송한 그 송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아 그런고로 네가 하나님 앞에 재단을 쌀라고 하다가 어떤 사람이든지 너를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두고 먼저 가서 그 문제부터 해결을 짖고 와서 예물을 드려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우리가 가는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미안할 것이 없는 감사함으로 되어지는 고곳이 그 나라에 보존되고 그 나라의 실력이요. 그 나라의 존영입니다. 그면 우리가 그렇게 못한 것은 그것을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사유을 받도록 후일에라도 깨끗하게 회개를 했으면 비록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일을 원통이 회개한 그것이 보여지니까 그때에에 그것이 인간의 연약성으로 돌아가 삐리고 마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면 돌아가고 마치 원망이나 그렇게 시비될 조건이 되있지는 않습니다. 아 그거는 벌써 지내갔습니다. 조건이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다 걸립니다. 그면 걸린 것은 걸린 것으로서 어떤 댓가를 받느냐 하는 그게 관련된 그것은 다 심판 받아서 멸망받습니다. 그러니까 비유컨덴 그 사람이 다 자기 이력이라든지 자기 인격이나 그런 것이 집체 무디기만치 큽니다. 크다 큰 사람이 가서 심판을 꾀 받았는데 그 심판에서 어떤 이력을 이 이력은 어떤 자가 송사를 가지고 이기는 나에게 이렇게 이렇게 했습니다. 이거 갔다가서 이걸 판단해 주십시오. 요거는 잘못된다 이랬는데 그렇게 송사를 할 때에 그 때에 삐껴 나가지 않는 것은 잘못이 있지만은 그것을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잘못 된 것을 다 해서 그것을 하나님에게 다 곤침을 받았다.
사유함을 받았다. 그면 그것은 삐껴나가지 않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사람의 만약 이면으로 말해서 그면 잘못된 것을 깍아삐리고 또 저면 잘못된 것을 깍아삐리고 손해를 끼쳤으니까 그 손해를 또 배상하고 무러야지. 이래 가지고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자꾸 잡아때고 잡아때고 난재가서는 빼빼마른 빼빼마른 자기, 아주 아무것도 없는 자기 이러니까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만은 다 베끼버리고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다 베끼서 벗어버리고 다 벗어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래서 그때 하나님 심판할 때 가가지고 께끼지고 다 삐끼지고 이래져가지고 다 이제 정죄하니까 정죄받을꺼는 다 제거되서 제기 되 삐리고 이것이 이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불로 시험을 하니까 다 타 삐리고 없다. 아 타 삐리지 남은 것이 없어.
그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가르쳐서 불이라 이람니다. 심판에 정죄 받는 것을 가르쳐서 불에 타서 소멸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나라가 남아 있을 것은 영광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영광된 그 실력만이 영광되게 할 그 실력만 그 나라에 쓰여집니다.
그러니까 일단 하늘나라가 건설되고 시작되는 때는 감사하는 그 일 밖에는 역사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 그 나라의 영원한 건설은 감사하는 그것이요 또 그 나라에서 입고 다니는 그 모든 영광은 이 세상에서 감사할 수 있는 그 세상살이 한 그것이 그 나라에 가서 의복같이 입고 다닙니다.
그래서 세마포 옷이라 이렇게 말했소. 세마포 옷이라는 것은 삼베를 짜자면 날을 나라놓고 북니 왔다갔다하는 그게 한 개 두 개의 되 짜는 것 아닙니까? 자기의 일생이라는 날, 일생의 날을 가져다가 하루하루의 생활, 현실 현실 생활로 생활을 북을 가지고 이렇게 한 옳은 것 한 옳은 기 짠단 말이요.
그런데 이제에 고만 몇 일 안 짜 삐리면 그게는 갖다 북만 왔다 갔다 하니까 그 얼이 져 삐릿고, 또 그날 갔다가서 몇 개는 옳엇고 몇 개는 틀릿고 이라며는 반동가리 그 씨만 들어같고 다른 씨는 갖다가 들어져 가지 안했기 때문에 얼이지고 그러니까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얼이 많이져서 구녕이 뻐꿈뻐꿈 갖다가 그런거 있고 쫀쫀한 째인 것 있을 것이고, 그 다 상징으로 말한 것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자기가 어떻게 생활한 그것이 그 나라에 가서 다입고 있는 것이니라.
이러니까 세상에서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이렇게 평이 됩니다. 그게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부폐했기 때문에 비유라도 부폐된기 많죠? 이렇지만은 그것이 다소 참고가 된다. 해서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이러니까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 들을 그런 일은 안해야 됩니다. 또 다른사람에게 칭량하게 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끼치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원망 들을 일을 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유익보고 다른 사람은 해끼치는 그런 일을 하며는 하늘나라가서는 그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늘나라는 영광의 실력, 영광의 행위, 영광된 행위, 영광을 만들 수 있는 실력, 그것만 가지고 가는 것이니까 그런 줄 알고 세상에 살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에서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제일 세상에서는 실력이 있고 잘 사느냐? 그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주관 강해서 모든 객관을 정복하고 이용하고 또 유혹시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잘 삶니다. 그면 세상에서는 악령으로 하나된 사람, 악성으로 하나 된 사람, 악습의 사람 그 사람이 실력이 있습니다. 그 실력은 악의 실력입니다.
아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아 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받는 사람이 복이 있읍니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복이 있지요? 세상에서는 주는 사람이 복이 있소? 받는 사람이 복이 있소?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받되 짝기 받은 것은 많이 크게 받은 것에게 정복을 당합니다.
이러니까 세상에는 선 같지만은 이 어리석게에 마치 잉어에게 낙시에다가 밥띠끼 하나 달아가지고 던지니까 밥띠끼를 주니까 잉어이놈은 좋다고 감사해서 덜컹 먹었습니다. 먹었는데 낙시에 벌떡 걸려서 살살 끌어 댕기니까 밥띠끼 준 그 사람의 고기가 되 버릿지. 그게 매수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고기가 됐습니다. 되가지고 그 사람의 것이 되삐릿지.
이러니까 뭐 종교 창설자, 도덕가, 정치가, 철학가 아무리 떠둘어대도 그것은 전부 갖다가 밥띠끼로 잉어 낙는 것이라. 다 사람을 제 것 맨들라고 하는 그런 방법으로 가지고 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가 받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없어.
그러나 하늘나라가서는 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어.
게에 하늘나라에서는 주는 자가 복이 있지만은 세상에서는 주는 자가 복이 될 수 없어. 그 밑천이 없기 때문에 밑천을 주삐리만 아무것도 없어 삐리니까 고뭐 복이 될 수 있소. 한푼 덜이면 두푼 끌어 댕기올 일을 해야 되지. 예그러니까 세상은 잉어 낙는 것과 같고 장사하는 거와 같애요. 다 주고 받는 여수거랜데 라는 것은 쪼꿈 주고 많이 받아가는 그것이 세상 정치입니다. 안 그런기 하나도 없어요 하늘나라는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만 오짤라꼬 주만 없어 질라꼬.
창조주가 뿌럭지가 되가 있고, 무한 자가 뿌럭지가 되가 있고, 시은자가 뿌럭지가 되가지고 있기 때문에 줄수록 무한의 그분에게서 자꾸 얻어지니까 그분과는 연결이 더 많애지고, 한분 얻어니까 연결 하나 됐고 두분 얻어니까 연결 둘되고 만분 얻어니까 연결이 만분됐고, 하나님과 연결은 더 됐고 무한이니까 암만해서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백년 주만 밑천이 떨어집니까? 만년 주만 밑천이 떨어집니까? 억년주만 밑천이 떨어집니까? 아니요. 영원히 줘도 남아있기를 무한히 남아 있어. 영원히 줘도 무한히 남아있는 자본준비가 잡았다 이기요.
또 얼마든지 모든 면을 창조시킬 수 있는 창조주를 우리가 이미 잡았습니다.
삼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속한 영은 줄 수도 있는 실력이 있고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나 세상에서는 주는 자는 거지 됩니다. 아 하나주고 둘 받는 그런 장사 계산을 해가지고 해야 됩니다. 아주 줬비리면 저는 망해삐리고 말지. 그러니 세상에는 받는 자가 복이 있고 하늘나라에서는 주는 자가 복이 있고.
그면 세상에 있는 복은 무슨 복인데, 그게 지옥 갈 복입니다. 불탈 복. 이러니까 이것을 깨닫고 복도 두가지 복이 있지요. 영광도 두 가지 영광이 있지요. 아 그것은 옛사람이 영광 돌리는 거. 옛사람이 감사 돌리는 거.
자 선지자들은 죽인 것이 감사해 죽였습니까? 원망해 죽있 죽있습니까? ○○○씨 어째서 죽있지? 저 허군. 어째 죽있지? 그 자면서 들으면 성령의 능력을 안 가져 실행이 없어. 원망 답은 맞았어. 원망시러워지 그렇지. 원망시러워서 주여 그면 원망스러워서 하늘나라 가만 영광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겠소? 없겠소? 오째되 배원행? 어? 영광이 기크. 그래 옛사람 그놈이 원망해 죽었으니까 새사람은 새사람들은 다 감사할 것이며 영광을 받을 끼라 이기요 갖다가서.
이러니까 이번에 두 가지 있는 것을 공부를 했는데 모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늘나라는 참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그때가서는 다 깨달에 되니까 우리가 그때 몰라서 그를 원망하며 죽이지만은 그가 한 것은 전부 우리에게 다 옳은 걸 했는데 우리가 몰라서 오해를 해가지고 죽였다. 와 오해 했노? 마귀 고놈이 들어서 그래했다. 그런데 지옥에 가서는 마귀 대장을 막 반대합니다.
이러니까 지옥의 왕은 마귄데 그때 갔다가서 마귀는 어떤 보응을 받는고 하니 지옥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전부 원망 받습니다. 불평을 받고 전체가 대항이 됩니다. 자기에게 순종한 것 만침 자기에게 대항하는 그 보응이 이루워지는 것이니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런고로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하는 것을 똑똑히 깨닫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때에 조심있게 살아야 됩니다. 어쩌든지 자기 주관은 객관을 위해 있다는 기, 자기 아닌 것을 위해 있다는 것. 오늘의 행위가 다 불원간에 옳고 그른 것이 이거 갖다가 평가되고 판단된다는 요골 알아야 됩니다. 심판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자기에게 있어서 잘못된 것을 말해주는 그것을 참 고맙고 왜 고칠 수 있는 시기에 그걸 갖다가 고칠 수 있게 하니까 고맙고 뭐 잘못된 걸 말할때에 원망적으로 말하든지 불평으로 말하든지 오래된 것을 많이 썩어 가지고 말하든지 어쩌든지 잘못된 걸 말해주면 그곳은 유익입니다. 그곳은 스승으로 모셔야 되고 또 잘못된 것을 칭찬할때에 그 사람이 그렇게 알므로 그 사람 구원이 잘된 것을 나의 잘된 것을 그 사람이 잘된 것으로 알고 감사한 그 그렇게 깨달음으로 그 사람에게 구원이 유익된 그 면을 볼 때는 기뻐하지만은 자기의 잘된 것을 세상에서 치켜올리는 것은 자기를 미끄러지게 하는 마치 마루장에 갖다가 초 칠하는 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대단히 위험한 사람이요.
나에게 위험을 주기 때문에 그럴 때는 조심을 해야 됩니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상한다이기라 아.
나를 칭찬하는 것은 넘어지게 하는 그 일로 뿐이지 아무 도움될 것 없습니다. 그 말했으니까 새사람의 힘을 다 떨어떠리고 약화시키는 것 뿐이지 백해 무익이라.
백해 무익이라. 좋은 기 있다면 아 그 사람이 그때 그점은 좋게 봐서 다문 얼마라도 그로 인해서 좋아졌으면 그면이 좀 기뻐고 좋지. 칭찬하는데 대해서는 자기에게는 백 가지고 천 가지고 자기가 몰라 그렇지 아는 있는데로는 전부 손해뿐이지 유익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옛사람 그 놈은 자꾸 그걸 좋다고 자꾸 그걸 취하게 해서러 아 옛사람이 강한 사람은 옛사람 추겨 올려주는 그 자리만 갑니다. 그런 소희만 찾아갑니다.
그런 강단 밑만 찾아갑니다. 그런 친구들만 찾아갑니다.
이러니까 두 놈이 앉아 가지고 이놈은 이놈을 칭찬하고 치켜올리고 이놈은 이렇게 서로 지금 갖다가 올려주고 서로 지금 올려주고 있습니다. 기기 뭐이냐 그게 어떤 거지요. 그게 뭐 하는 거냐 서로 뭐 하는 것이냐 ○○○씨? 서로 죽이는 것이요. 이놈은 이놈을 죽이고 이놈은 이놈을 죽이고 서로 죽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지요? 누가 기쁘고 즐겁지요? 옛사람 그게 기쁘고 즐거우니까 그게 울 사람이 있소? 어? 울 사람이 있어. 울 사람이 있어. 속사람은 울어.
제기에 대해서 아니라고 하면은 원수를 삼고 딱딱 반항하고 저를 죽이는 일은 마구 못 견뎌서 밤이라도 낮이라도 막 싸돌아다니면서 걸어 다니면서 죽이는 일, 병들고 가서 하는 그런 일은 죄짓게 하는 그것을 고쳐야 합니다.
옛사람 새사람을 분간하지 못하면 다 헛일입니다. 암만 그 사람이 신앙생활 해봤자. 저는 이용물 같이 도구나 되지 아무 소용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