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새사람

 

1986. 2. 6. 목새벽

 

본문: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좀 알아 듣기가 아주 어려운 말일지라도 기억만 하십시오. 진리는 둘이 아니고 진리는 하나입니다. 한 진리가 퍼쳐나올 때에는 수억만으로도 퍼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한 진리가 수억만으로도 퍼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태양은 한 개인데 한 개의 태양이 그것이 태양계에 속한 데에는 그 햇빛이 다 발사되어 가지고서 그 햇빛이 다 비취어 갑니다. 그러나, 여게도 햇빛이 왔고 저게도 햇빛이 왔으니까 햇빛이 여러 개인가 보다 하지마는 그것을 찾아 들어가면 한 개의 태양이라는 그 항성에서 모든 빛과 열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거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저 그와 비슷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지 진리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진리가 이런 것을 대할 때는 이렇게 나타나고 저런 걸 대할 때는 저렇게 나타납니다.

우리 사람은 진리보다 그 계급이 아주 낮은 것입니다. 진리에다 비해서 이 사람이라는 것은 이것은 아주 둔하고 탁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한 사람인데 한 사람이 여게 대해서는 웃고, 여게 대해서는 성내고, 여게 대해서는 감사하고, 여게 대해서는 또 계획하고, 여게 대해서는 뺏들고, 여게 대해서는 주고, 한 사람이지마는 그 상대방을 대할 때에 이렇게 저렇게 모두 다 대하는 것이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 한 분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은 여러 수억억만이라 할 게 아니라 무한한 각도로 나타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어떤 면으로 볼 때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또 저 각도로 보니까 또 딴 하나님입니다. 또 저 각도로 보니까 또 딴 하나님입니다. 왜? 한 하나님이 백 가지를 대할 때에 백 가지로 나타나시고 만 가지를 대할 때에 만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아무리 잘난 묘하게 만들어 놓은 그릇이라 할지라도, 도자기라 할지라도 그 도자기,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도 그 도자기 그거는 도적이 봐도 도자기요 양인이 봐도 도자기요 무식한 사람이 봐도 그릇이요 다 물론 속에 있는 가치는 다르지마는, 가치의 평가는 다르지마는 다 그렇게 그릇으로 밖에는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더욱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라는 것은 한 진리지마는 그 진리가 이렇게도 나타나고 저렇게도 나타나고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타나고 저런 것에 대해서는 저렇게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한 진리를 거머쥐고 찾아 들어가면 그 진리의 근원을 만나게 됩니다. 그 진리의 근원을 만나면 수많은 진리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혹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되면 실행해 보면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은 말하면 알아 듣지마는 저 사람은 말하면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한 진리를 항상 묵상하고 또 그 진리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 사람은 평생 그 한 진리를 자꾸 잊어 버리지 안하고 그 진리를 생각하고 그 진리대로 살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그 한 진리대로 살라고 애를 쓰다가 보면은 모든 진리를 다 지키는 사람이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의 모친은 무식한 모친입니다. 무식한 한글도 모르는 분입니다. 모르는 분인데 그분의 별명이 뭐인고 하니 감사하는 늙은이라, 감사 노인이라 이렇게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어데서든지 감사를 찾아 가지고 감사로 살겠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는 이것이 그이가 알고 있는 한 요절입니다. 그이의 표어요. 무슨 일이 닥쳐도 거게서 원망 불평 낙망할 수 있고 거게서 감사 기쁨 소망을 가질 수가 있어. 왜? 자기가 어떻게 가다가 다리가 뿔라졌어도 거게 감사가 없는 게 아닙니다. 거게 감사가 있고 거게 소망이 있고 거게 기쁨이 있고 거게 슬픔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꼭 같은 때에 꼭 같은 형편과 사정을 만나도 한 사람은 거게서 감사함을 찾습니다. 감사함을 찾는 것은 ‘내가 여게서, 이보다 더 불행스러운 일이 있는데 이 불행에다 비해서 이거는 참 다행이다’ 그럴 때에 감사가 찾아집니다. 그럴 때에 이 불행에 빠지지 안하고 이 불행이 돼었기 때문에 자기는 기쁩니다. 이 불행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인데 이 불행이 빠지지 안하고 요만한 정도의 불행에 빠졌기 때문에 자기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게 대해서 희망이 있다. 누군가가 도와 주는 이가 있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꼭 같은 입장에서 감사함을 찾는 사람은 자기가 그보다도 더 화를 당해야될 사람인 것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여게서 아주 절단이 나야 될 사람인데 이만큼 되고 말았으니까 이거 참 다행이요 기쁘다. 이러니까 이 사람에게 비해서 내가 이만치밖에 안 됐으니까 나는 희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냐?’ 희망을 찾습니다.

자기를 평가하는 것이 크게 평가하고 적게 평가하는 데 따라서 자기의 당한 그 일이 감사도 될 수 있고 불평도 될 수 있습니다. 이거는 말짱히 참 아주 말할 수 없는 고문과 고형을 해야 되고 얼마나 그 사람에게는 징계가 와서 멸망할 징계가 와야 될 사람인데, 징계가 와야 될 사람인데 사람이 옆에 사람이 볼 때는 ‘참 저 사람은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다. 그 사람은 꼭 죽을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래도 그만치 되고 생명을 건졌다, 다른 사람은 그래 보는데 그 본인은 ‘내가 왜? 건강하게 뛰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렇게 이 고장을 만났나, 이 환난을 만났나? 자기 평가를 크게 볼 때에 모든 것을 원망입니다. 자기 가치를 적게 볼 때에 모든 것은 이제 감사요, 다행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자에게 있어서 머리털 하나 세는 것까지 하나님이 다 간섭한다고 했습니다. ‘네가 머리털 하나가 희고 검는 것도 네 마음대로 못 한다 그거 내가 전부 주권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했는데, 이분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신다 마태복음 10장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이분이 우리를 이렇게 세밀히 간섭하고 계시지, 또 이분이 우리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낮아지셨지, 또 이분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부요와 영광을 다 희생해서 내어 놓으셨지, 또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지, 또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우리가 어떤 철망을 쓰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피조물 쓰는 것은 더 하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것이 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만일 고난이 당할 것이라면 주먹덩이 고난만한 고난을 당할 사람이라면 문지 같은 고난을 줬을 것이고 우리에게 복을 받기를 콩내끼만한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주먹덩이, 태산 같은 복을 줘서 우리에게 대해서 대우하는 것은 과분하고 과분하고 그 정상에 지나치고 지나치고 지나치게 우리에게 해 줬지마는 고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원망 불평 낙망으로 그 사람은 제 지옥을 제가 만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감사 할머니인데 감사를 ‘저 분이 되나 안 되나 그저 감사를 입에 익어서 감사를 하고 있는가, 아무나따나, 감사하는 것이 감사하라 했으니까 그 성구를 지키는 것으로 감사하는가?’ 그래 내가 물어 봤소. 내가 물어 보기를 어떨 때 그런 경우 있을 때 여기는 뭘 감사합니까? 그 사람은 뛰어 올라가 있습니다. ‘여게서 감사를 찾자’ 하는 그게 연습돼 가지고 그런 거라. 물으니까 ‘예, 내가 이렇게도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됐으니까 이런 다행이 어데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벌써 높은 고차원에서 자기를 바로 평가해 가지고 ‘나는 이럴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됐기 때문에 나는 참 이거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 이러니까 조그만한 요만한 주먹덩이만한 징계가 왔을 때에 그 사람은 이 집채 같은 회개를 한다 그말이오. 집채 같은 회개.

그래 자기가 자꾸 그라니까 감사하고 기쁘고 소망이 넘쳐. 그러니까 그분이, 감사 할머니라는 고 감사 하나 가지고서 온 교인들이 그이에게 대해서 불평이 없습니다. 암만 앉아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논평을 할라 해도 그 사람에게 흠점이 없습니다. 어데서든지 어데서든지 그 사람이 당하면은 그 사람은 그에게 감사하고 기뻐하고 소망을 가지고 건설적으로 나갈 사람이지 거기서 낙망이나 실망이나 그렇게 파괴적으로 나가는 그런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뿐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심한 고통 가운데 들어 있는 사람이 그 사람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생기가 나서 소망이 넘쳐.

얼굴이 그만 화기가 나고 생기가 돌아. 어째 그런가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이 자기를 바로 깨달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았고 이러니까 소망을 굳게 잡았기 때문에 이제는 죽은 사람이 살았어. 살았다 말이오. ‘나는 희망 없는 사람이다’ 아주 낙망할 사람이 소망을 가졌어. ‘이제는 뭐 되는 대로 해 버려라’ 파괴할 사람이 조심해 가지고 건설하는 사람이 됐다 그말이오.

내가 이 말 하는 거는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어느 진리를 거머쥐고라도 놓지 안하고 고것을 꼭 거머쥐고 고 하나를 실행할라고 하다가 보면은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 하는 것을 지금 말하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 진리를 기억하고 고대로 실행할라고 하는 이것은 차차 그 사람이 모든 진리를 알게 되고 모든 진리를 다 실행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갈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서 버려 버리고, 들어서 버려 버리고, 버리기 때문에 이 지식이 어데만 쓰이느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데만 쓰이느냐? 자기가 고쳐서 회개해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는 쓰지 안하고, 인간은 남의 흠점은 잘 보는 인간이기 때문에,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야, 네 눈에 티 있다. 그거 빼라’ 성경에 말하기를, ‘남의 눈에 티가 발견되거든 돌려서 너를 봐라. 돌리면, 네 눈에는 들보가 들어 있다. 들보가 들어 있으니까, 들보가 들어 있으니 들보 그걸 빼면은 다른 사람의 눈에 티되는 것이 정상적으로 바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성경은 말씀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말씀을 듣고 실행할라고 하지 안하는 사람은 이 말씀은 어데 쓰이게 됩니까? 자기가 진리는 알기는 알았는데 실행은 하지 안하고 이 진리를 지식적으로 기억만 하고 있으면 이 지식은 어데 쓰여지게 됩니까 어데 쓰여지게 됩니까?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어데 쓰이게 됩니까? 예? 크게 말해 봐요. 예? 학교 선생까지 한 사람이 그걸 몰라요. 크게 말해 봐. 어데 쓰이겠어? 자기 고치는 데에 쓰이지 안하면 남의 단점으로 정죄하는 데에 쓰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내가 받아 가지고 내가 지켜서 고칠라고 애를 쓸 때에는 그 복음이 내게 쓰여지기 때문에 나는 자꾸 죄인되고 실수하는 사람이고 잘못된 사람이요 못난 사람이요 자기에게 모든 단점과 흠점을 찾는 그 말씀이 되지마는 이 말씀을 자기가 실행하지 안하고 이 말씀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흠점과 단점을 찾는 그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 됩니까, 교만한 사람 됩니까? 무슨 사람돼요? 교만한 사람 됩니다. 교만한 사람돼.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다른 사람이 잘났다는 사람 됩니까 제가 스스로 제 잘난 재미로 사는 사람이 됩니까? 제 잘난 재미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게 뭐 하나 둘뿐 아니라 전체가 멸망을 받는 그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면 놓지 마십시오. 사데 교회가, 살았다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네가 죽은 자로다. 왜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이 구속을 받았고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실은, 그것만 하면 사는데, 산 걸 가지고 있는데 실상은 네가 죽어 있다. 죽어 있다니? 네 행위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온전한 행위가 없으니 행위가 죽었다 그말이오. 왜 그래 됐느냐? 네가 일깨워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들은 것을 지키고 네가 지키지 못하면 회개하고, 받은 은혜는 네가 생각하고, ‘나는 이럴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디마는서도 내게 암병을 고쳐 주셨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믿음이 있으니 암병을 고쳐 주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암병 고쳐 주셨으니까 그분이 와 가지고서 네게 돈벌이 그까짓 거야 문제 없이 할 것 아니겠소? 하나님께서 암병 고치는 것이 그것이 쉽겠소 그 사람에게 부자 만드는 것이 쉽겠소? 뭐이 쉽겠소, 뭐이 쉽습니까? 예? 이것도 모르는 거라. 영 깜깜해 가지고서 심령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바로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 돼요. 암병은 그 사람이 그걸 못 고치면 뭣 됩니까? 생명이 죽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암병 고치는 게 큰 겁니까 그 사람 돈벌이 시켜 주는 게 큰 겁니까? 그래도 몰라요? 암병 고쳐 주는 것이 그게 더 큰일 아닙니까? 하나님이 큰 거 해 주셨으니까 그분이 내게 그보다 사소한 거 네게 필요한 거 돈이니 물질이니 모든 사건들이 형통해지는 것이든지 그까짓 거야 문제가 뭐 있겠소? 이러니까, 그걸 생각하라 말이오.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이 날 이렇게 긍휼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이다. 나와 같이 하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이렇게 믿음을 가질 때는 그분이 나에게 이렇게 역사해 주셨다.’ 이걸 잊어버리지 말고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그러니까, 그때의 마음보다도 더 마음을 가지고 그때보다 진실을 가지고 그때보다도 하나님을 더 믿고 더 의지하고 더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거슬리지 안할라고 더 조심하고 죄 짓지 안할라고 더 조심하고 내가 주의해서 내가 어쨌든지 깨끗함을 가질라고 자꾸 더 애쓰고 더 애쓰고 이와같이 하니까 점점 더 큰 것이 올 수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 사데 교회에 말씀 하시기를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해야 될 터인데 네가 받은 것을 다 잊어 버렸다 말이오.

대구집회만 해도 육백여 명이 그렇게 받아서 가졌으니까, 받아 가진 거는 육백 명만이 아니고 얼마나 되는 숫자가 가졌는지, 이것을 그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해서 ‘요럴 때에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시더라, 내 마음을 요래 가졌을 때에 은혜 주시더라, 요 성질을 요래 가졌을 때에 은혜 주시더라, 내가 요렇게 믿음을 가질 때에 주시더라. 요렇게 소망을 가질 때에 주시더라, 요렇게 조심할 때에 이래 주시더라. 내 마음이 쓸데 없는 죄악에 흩어져 가지고 퍼져 있지 안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 한 분을 향하여서 집중될 때에 요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더라’ 요걸 깨달아서 자꾸 그렇게 나갔으면 벌써 성자가 됐을 거고 성녀가 됐을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막 쏟아져서 굉장할 거라 말이오.

이거 다 잊어 버렸다 말이오.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받은 데 대해서 무슨 돈을 내라 하요 값을 내라 하요? 받은 것을 어떻게 받았는지 ‘내가 어떤 마음의 자세가 될 때에 그렇더라, 내가 병이 들었을 때에 그때 병이 왜 들었느냐?’ 제 마음대로, 몸이 건강이라는 거는 제것 인 줄 알고 뭐 제 입술로 오만 거 다 못 할 말 없었고 생각 못 할 생각 없었고 못 가질 마음 없었고 사람들에게 대할 때에 제 자유대로 행동하고 이랬었는데 내가 고병이 고쳐질 때에는 말도 ‘아,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이런 말 하면 주님이 섭섭해 하겠다’ 나쁜 마음이 들 때 ‘아, 내가 이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다’ 마음을 조심해서 못쓸 마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 옳은 마음이 자기가 되도록 해, 생각도 그래, 입술도 말이 하고 싶어 쑥쑥 나오지마는 ‘이 말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고 이 말하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해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삣고 깎고 허는 것이다. 이 말 안 하겠다.’ 이래서 말을 자기가 제재하고 마음을 제재하고 또 생각을 제재하고 행동을 제재하고 그이의 소원도 ‘아, 이런 소원 가지면 안 되겠다. 이런 욕심을 가지면 안 되겠다’ 사람이 못쓸 욕심 하나만 빼 버려도 그 사람이 당장에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고 사람이 오만 면이 건강하고 오만 면이 건전하고 오만 면이 명철하고 하지마는 안 될 욕심 하나 넣어 가지고서 그 사람 일생 동안 망하는 사람 꽉 찼어. 여게도 꽉 찼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아, 나는 요놈의 욕심' 그 욕심이 늙어 죽을 때에는 그 욕심 가진 게 후회가 되고 ‘그놈의 욕심 내가 가진 거 뭐 할라고 내가 그 더러운 놈의 욕심을 가졌던고?’ 이럴 건데 이제 안 된 욕심, 안 된 버르지기, 안된 버릇, 안된 성질, 안된 말버릇, 안된 행동, 안된 취미, 저거 가정을 망쳐 놓고도.

그때에 우리 교회에, 그 사람이 일류 극장에서 앰프를 취급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앰프를 맡겨 놓고서 약간의 돈을 좀 주고서 앰프 기사로 썼었습니다.

썼는데 그 사람이 아주 명철하고 똑똑하고, 아주 똑똑하고 인물도 아주, 남자인데 잘났습니다. 뭐 크게 잘난 게 아니라 생기기가 야물게 생겼고 아주 민첩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것도 없어서 빌어 먹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빌어먹게 돼 가지고 있어.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제가 염소 새끼를 두 마리를 줘 가지고 요걸 길러 가지고서 너희들이 젖을 짜면은 살 것이다 이래 가지고 그렇게도 해 봤었습니다.

해 봤는데, 그 사람이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 고친 것을 고쳤습니디. 고치고 난 다음에 여게 있다가 집이 철거를 당해서 저게 구서동인가 뭐 무슨 동인고 내가 그 동리를 한번 가 보기는 가 봤는데, 그리 가 가지고 거기서 지금 그 교회 집사로 있다고 언제 찾아왔습니다. 집사로 있으면서 그 교회 수집사라 아주 거기 가서는 잘 살아요. 잘 사는데, 망한 원인이 어데 있느냐 하면은 하나 있었어.

그분은 민첩하고 이런데 고기 낚는 낚시질에 취미 붙여 가지고 이놈은 낚시에 반했다 말이오. 낚시에 반해 가지고서 그만 젊은 청춘 다 가지고 늙을 때까지 항상 낚시로 가지고서. 한번은 보니까, 가지고 왔는데 고기를 큰 그릇에다가 이만치 담아 가지고 왔어요. 뭐 흑돔 무슨 돔 무슨 돔 뭐 또 흑돔 백돔 뭐 굉장한 고기를 그때 가지고 왔어. 그래 내가 ‘이 고기가 어짠 고기냐? 이라니까 ‘제가 낚았습니다’ 내가 그때사 발견했어. 그래 내가 그전에는 거기 가도 그놈을 몰랐다 말이오. 그래 내가 있다가서 ‘이 고기를 낚으러 가느냐?’ ‘예, 갑니다.' `네가 이것 가지고 망했구나. 고기 낚는 이 취미를 끊을 수 없느냐?’ ‘제가 그래 안 해도 교회 나오고 난 다음에 이걸 끊을라고 애를 써서, 애를 써도 끊치지 안해서 지금은 그래 며칠 만에 한 번씩만 갑니다.’ ‘네가 이것 끊어라.’ 낚시질하는 그것 하나 가지고.

요새는 낚시도 이제 기계로 이래 가지고 앉혀 놓고 이래 가만히 앉았으면 고기가 이래 가지고서 하나 낚여 올라오는 그 재미입니다. 그 재미 그까짓 거는 재미도 아니오. 낚시 재미는 이거 낚시대를 거머쥐고 이래 딱 거석하면 저기서 뭐이 물 때에 이 낚시대가 눙청거릴 때에 손목이 녹끈하는 이 취미가 굉장한 취미가 있어 가지고서 이 취미에 빠져 가지고 일생을 망쳤어. 가정이 그렇츰 다 거지돼 가지고, 저 보니까 뭐 얄궂게 천막을 웅쳐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살아요. 그거 하나, 취미 하나 그거 버리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구서동인가 어데인가 뭐 팔동인가? 저 동래로 가면은 오른쪽으로 가면 그 동네, 동네 이름을 잊어 버렸어. 그때 개간해서 이주민들을 다 그리 보내버렸습니다. 철거민들을. 그래 가지고 지금은 잘 살아.

사람마다 ‘조 사람은 조놈의 취미’ 어떤. 낚시대가 녹끈하는 그 취미, 어떤 자는 신경에, 말초 신경이나 하나 삭끈삭끈하는 그 취미 이런 거 가지고서 일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라, 받은 것을 생각하고 내가 고거 받을 때에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어떤 성질을 가졌으며 어떤 뜻을 가졌느냐? 요거 하나만 생각하면 당장에 다 되는 것인데 건강도 되고 미인도 되고 미남도 되고 용감도 되고 다 건설자도 되고 다 그 사람 실력자가 될 건데 고거 하나 때문에 일생을 망치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들은 것은 하나씩 지키게 되면은 ‘흰옷 입고 나와 같이 다니리라’ 그말은 온전한 사람이 되리라. ‘회개하는 자는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 그렇게 사데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한 진리라도 듣고 그 진리를 놓지 안하고 고 한 진리만 실행할라고 하고 실행할라고 하면은, 굶어 죽을라고? 아니오. 그 한 진리만 실행할라고 하면은 그 중간 다리 수 다 냅두고 고 한 가지, 고 한 진리만 실행할라고 애를 쓰면 마지막에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면 왜 그 사람이 돈이 없겠습니까? 막 돈이 제게 모두 그 사람에게 다 맡길라 하지만 그 사람이 요 점은 장점이 있지마는 요 점이 단점이 있다. 요 사람은 요 모는 참 쓸모 있어서 백점짜리인데 요 모가 들어서 백점짜리를 헐고 깎고 깎고 보니까 마이너스로, 한점짜리도 안 된다. 영점짜리다. 하나도 안 된다. 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못 쓰는 사람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라고 하면은 점점 온전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지면 하나님이 축복 주시지 사람마다 다 존경하지 어데든지 쓸모 있는 사람 되어지지, 왜 그 사람이 왜 생활의 곤고함을 당하겠습니까? 생활의 곤고함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없다고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자기라는 것을 생각해서 자기를 고치고 고쳐 가지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수 있는 사람되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망할 사람 되는 거는 그거는 말해도 안 들으면 나중에 코가 깨지든지 낯빤대기가 깨지든지 대가리가 깨지든지 뭐이든지 그래 가지고 절단나고 난 다음에야 알지 그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말은 안 해 줘. 뭣 때문에 말해 주겠소, 말해 주기를? 이래서, 성경에 네가 한번 고요히 아무도 없을 때에 한번 말하고 안 듣거든 옆에 사람 듣는 데에 말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서 네가 말하고, 교회서 말하는 거는 설교하는 거라. 말하고 그래도 안 듣거든 안 믿는 사람같이 상종하지 말아라. 둬 둬라. 둬 두면 세월이 가서 그놈을 가르칠 것이고 나중에 스스로 주위 환경과 사회가 가르칩니다. 사회가 가르쳐요. 다른 사람이 말 안 했지마는 사회가 다 못쓸 사람으로 버려 가지고서 다 이거 모든 것이 다, 비가 안 오니까 자연히 물이 없으니까 다 땅이 말라 거석하니까 시비할 게 뭐 있소? 이래서, 한 말씀이라도 듣고 잊어 버리지 말고 지킬라고 하면은 한 말씀 지킬라고 하는데 모든 말씀을 지키게 된다. 그말이오. 모든 말씀을 지키게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여게 말씀에, 새사람으로 살면 첫째 무슨 수입이 있다 했소? 말해 보이소. 새사람으로 살면 무슨 수입? 그러면 새사람으로 살면 수입이 몇 가지 수입이 있다고 여게서 말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제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수입이 있다 했소? 어? 요래? 예. 또 여게는 또 여게는 너이 이래 들었는데, 너이가 맞소 서이가 맞소? 너이가 맞소 셋이 맞소? 셋이.

맞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너이가 맞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한번 헤아려 볼까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심신의 기능이 영생과 멸망을 받게 된다, 새사람으로 살 때에, 하나, 또 둘째로는 네 소유가 새사람으로 살면 영원한 네것이 되어지고 옛사람으로 살면 네 모든 소유는 다 도적 맞게 된다.

하나도 네것 안 된다. 네가 일생 동안 만물을 거쳐 살았는데 그것이 하늘나라에 쌓여서 다 영원한 네것도 되어지지마는, 내가 연보 안 하는 것도 말이오. 안 한 것도 예를 들면 입술의 기능이, 입술의 기능 그거 다 소유 아닙니까? 자기 소유 아니오? 자기 실력 가진 거 아니겠소? 그 입술의 기능이 다 영원한 자기의 소유될 수 있고 입술의 기능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도적 맞는다 도적 맞지 않는다 했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때를 따라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 준다고, 네가 새사람으로 살면 모든 사람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된다, 모든 사람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많이 끼쳐 주는 사람이요 모든 사람을 봉사한 사람이 된다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주게 된다. 새사람으로 살면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주게 된다 하지 안했소? 그러면 몇입니까? 이러면, 주인이 와 가지고서 있는 소유를 다 그에게 다 맡기리라 했으니까 그러면 몇입니까? 그러면 몇 가지인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한번 가리켜 봐요. 요래하지 말고 이래 가리켜 봐. ○○○집사 이래 한번 들어. 손을 들어 봐.

신경통 있어? ○집사. 신경통 있어. 쭉 한번 뻗쳐 봐요 이래. 이래 한번 뻗쳐 보라고, 이래 한번. 뭣 때문에 이래 쭉 못 들어? 이래 한번 쭉 뻗어 봐요? 왜 그런데 왜 전부 셋이라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꺼꾸로 듣기 때문에 헛일이라 말이오.

여게 대해서 자꾸 말하는 것은 이것이 나가면은 온 교계에, 모든 교계에 있는 사람들이 집사 장로 목사 할 것 없이 이래 말하면 그거 틀렸다 그 해석이 틀렸다 다 할 건데 여러분들이 다 그때 다 무너지고 만다 말이오.‘안 틀렸다 이것이 옳다’ 바로 증거를 대서 그 사람이 이제, 내가 옳은 데에서도 그 사람이 그거 틀렸다고 하는 데에 끌려 가 가지고 틀렸다 했으면 나는 죽지 않습니까? 내가, 옳은 것을 그 사람에게 옳다고 증거해 가지고 그 사람에게 옳은 것으로 인식을 시키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여게 기본구원, 영 구원이겠습니까, 육의 구원이지. 네가 이렇게 행하면 이렇고 저렇게 행하면 저러니까 행위 구원이지 어떻게 이게 행위에 상관없는,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구원 얻는 영 구원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심령이 어두워서, 온 세계가 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네가 준비하면 되고 준비 안 하면은 너는 버림당한다 이랬으니까 준비가 인간의 행위입니까 뭐입니까? 준비가 뭐이요? 인간의 행위 아니겠소? 행위로 말미암아 결과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위 구원이라 그말이오. 요렇게 쉬운 것도 모른다 그거요.

이래서, 어떤 목사가 자기가 고민 있어도 뭐 신학교도 다 하고 다 이라니까 고민이 있다가서 이제 이 설교록을 보고 난 다음에, 보니까 마태복음 25장에 이분은 어떻게 해석했는고 보자. 마태복음 25장에 대한 해석을 하기를 그거 다 택한 사람으로서 다섯은 건설구원을 잘 이루었고 다섯은 건설구원을 실패한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이 그것 보고서 여기에 생명길이 있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와 가지고 여기 편집실 ○○○조사님 왔어요? 손들어 봐. 저게 있구나.

그래 와 가지고서 그 설교록을 다 사 가지고 갔다고.

내가 그 사람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한국에 이름으로서는, 실력은 몰라도 이름으로서는 제일 가는 신학교 이사장이요 교장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어데 집회 할 때에 이런 분이 있다. 이분이 우리 한국에 있다는 게 우리 한국이 행복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백파 이단이다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단은 성경을 잘못 가르쳐야 이단이지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데 이단이 됩니까? 이단이라 교회마다. 교인이 그 설교 듣고서 그만 그리 갈라 하니까 다른 것으로써는 방지할 수 없고 ‘거기 이단이다 이단이다 가지 말아라’ 이 말밖에 못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사람이 목사가 아니오. 어떻게 목사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소? 옳은 것을 그렇게 거짓말을 해 가지고서, 교인 안 뺏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 그럴 수가 있겠소? 거짓말하는 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서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데려감을 당한 자 그거는 택자들이다. 버려둠을 당한 자는 불택자다.’ 우리는 택자이니까 우리는 다 됐어. 우리 구원은 다 된 사람 아니요? 우리는 이 성구에서 우리 구원은 다 됐다 했는데 내가 해석하고 깨닫는 데 대해서는 우리 택자들이 다 헛일이오. 택자 중에서 구원 얻을 사람이 적소. 왜? 자기가 다 같은 한 자리에서 총리대신을 했지마는 다니엘 총리대신 한 것과 다른 총리대신 한 것이 다르다 그말이오. 껍데기는 다 같고, 같았지마는 나중에 언제 달랐느냐? ‘다른 데에는 기도하지 말고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라’ 이런 명령이 내렸을 때에 다니엘 한 사람만 ‘안 된다.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 하겠다’ 하나만 그들과 이색됐다 말이오. 그들과 반대된 사람은 하나 밖에 더 있었습니까?

이러니까, 처음에는 그 행위가 꼭 같이 보였지마는 나중에 실지로 하나님과 관련되는 고 일이 탁 나오고 보니까 그 한 사람밖에는 없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그들과 꼭 같이 기도하지 안하고 이랬기 때문에 사자굴에 안 들어갔지마는 다니엘 한 사람은 사자구덩이에 잡혀 들어갔다 말이오. 잡혀 들어갔으나 진리와 믿음을 요동치 안하고 믿고 간 거니까 사자구덩이에서 그 이튿날 아침에 살아나와 가지고서 그 나라가 다 점령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게 신앙이라 그말이오.

암만 한 자리에서 일하지마는 속 사람으로 그 일 할 수 있다. 속 사람으로 라니? 속 사람으로는 그 일 할 수 없습니까? 옛사람은 그 일 할 수 없습니까? 옛사람은 뭐입니까, 뭐하고 합작입니까? 마음하고 몸하고 뭐하고 합작이요? 마음하고 몸하고 뭐하고 합작입니까? 옛사람은 뭐하고? 자기의 마음하고 몸하고, 몸의 기능 마음의 기능하고 뭐하고 합작한 것이 옛사람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 악습은 뭐이 악습이냐 하면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해 놓은 버릇 그 습관 말이오.

악습 이놈이 우리를 제일 많이 꾀웁니다. 악령이 꾀우는 것보다도 악습 이놈이 제일 많이 꾀웁니다. 악성보다도, 악습 이놈은 길이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 그대로입니다.

그 사람이 밥 먹고 나면 이웃 사람한테 가 가지고서 한번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깎아야 이제 취미가 있기 때문에 밥 먹고 나니까 이제 테레비를 한번 봐야 되겠고 기도도 냅두고 테레비도 한 번 볼참으로 테레비를 보고 싶어서 못 견뎌서 테레비를 보는 그게, 그것이 악령이 하는 일이요 악성이 하는 일이요 악습이 하는 일이요? 악습이 하는 일입니다. 악습이 하는 일인데 악습이 하는 일은 하는 일인데 그 속에는 악성이 들어 있소 안 들어 있소? 자기 중심의 악성이 들어 있지. 그 속에는 또 악령은 들어 있소 안 들어 있소? 악령이 들어 있지. 껍데기는 악습 이놈이 제일 많이 이렇게 우리를 범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옛사람으로 살면은, 옛사람으로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산다고서 직장 생활을 못 하겠소, 글을 못 쓰겠소, 노래를 못 부르겠소, 밥을 못 하겠소?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할 수 있고 또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그 마음하고 몸하고, 몸의 기능 마음의 기능하고 뭐하고 합작입니까? 예?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하고 합작됐습니다. 그 합작된 사람은 밥 못 합니까? 합작 된 사람은 직장 생활 못 합니까? 껍데기는 다 할 수 있지마는 속에 사람은 다르다 그말이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서 그 심신이 하나돼 가지고서 하는 사람 있고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돼 가지고 하는 사람 있으니 이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구원 이루어지지 옛사람으로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천국 데려다가 뭐하구로? 옛사람으로 사는 그 기능을 천국 데리고 가면은 천국까지 다 깨트려 버릴려고? 데리고 갈 리가 있습니까? 그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태워야 되는 것이지.

이러니까, 옛사람 새사람 요것을 생각하고 새사람으로 살면 우리의 여게 유익보는 것이 몇 가지 유익 본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이제는 이 넷을 다 드십시오. 넷입니다. 이것을 잊어 버리지 말아요 잊어 버리지 말아요.

잊어 버리지 말고 기도하러 와서, 새벽 뭐 여기 저 수원지나 기도하러 가면서도 이 네 가지를 생각하고, 새사람으로 살면 네 가지 수입이 있다. 네 가지 수입이 천하 얻는 것만 못합니까? 천하 얻는 것보다 더 커.

자, 네 가지 수입이 온 천하를 얻어서 온 천하의, 미국 대통령 소련 대통령 이 세계 대통령보다 새사람으로 살아 가지고서 얻는 그 수입이 큽니까 작습니까? 뭘 보고 큽니까 뭘 보고 크요? 예? 창조주? 이분이 다 창조했기 때문에? 왜 큽니까? ○○○집사님? 큽니까 작습니까, 왜 큽니까? 주님의 능력으로? 엉뚱한 소리 떼다 붙이지 말고 성경으로 가지고 말해요. 성경 본문으로, 왜 큽니까? 예?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하나님의 모든 소유니까 우주와 영계가 들었소 안 들었소? 이러니까 세계 대통령보다 크지 몇 배나 크겠습니까? 억억억억만 배도 더 크지!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생명 내놓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도 안 내놓을라 합니다. 잘 믿는 사람은. 왜 희생합니까? 피 한 방울도 희생 안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데 대해서는 생명을 못 내놔서 애를 쓰고서 순교할 그런 기회를 닥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잊어 버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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