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버리고 주님 사모

 

1984. 7. 28. 토새벽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1절∼ 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선지자선교회  오늘은 각처에서 교역자들이 더러 오셨는데 혹 제가 잊어버릴까 싶어서 말  합니다. 먼저 총공회 때에 이 찬송가 문제 때문에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떻게 결정을 지우지 못하고 그만 그저 시지부지하고 뒤로 미뤘습니다.

미뤘는데. 뭐 우리가 그런 걸 한다고 해 가지고 그거 가지고, 그것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성경 번역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좀 전에 번역된 그런 성경을 사는 게 좋고, 또 가졌으면 소중이  쓰도록 하고. 만일 요새 새로 나오는 무슨 이런 성경 중에도 좀 가려서 성경을  사 가지고 읽어야 되겠고, 또 성경을 요새 것 샀으면 혹 그거는 성경을 고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전의 번역과 잘못된 거 그런 거 있으면 그런 것은 좀 그어서  고쳐서 그래라도 쓸 수밖에 없고, 그거는 뭐 달리는 할 수 없고, 이 찬송가는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의 교리에 속하고 신조에 속하고, 각자의  깨달음으로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발표한 것이고. 또 거기에는  그러기 때문에, 사람 깨달음이요 사람 발표기 때문에 악령적인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데 점점 찬송가는 가속도로 변질돼 가기 때문에 그것도 할 수 있으면 좀  우리가 끌려가지 안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있어서, 신편 찬송 또  새찬송 합동 찬송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저는 이름도 모르는 찬송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새찬송이 그래도 좀 낫다 이라면서도 또 신편을  잘못 고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주 더 참 허무하게 가속도로 지금  자꾸 변질돼 나가고 타락해 나갑니다.

 이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징조인데, 이래서, 사람들이 하나님, 한 분을  중심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계시 법칙을 준해서 이렇게 뭘 해  나가야 할 터인데 중심이 아주 그만 바꿔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으로 아주 바꾸어졌습니다.

 뭐 지금 현재에 우리 서부교회에서 주일 학교를 인도하는 것과 일반 교회에서  인도하는 것과는 다른 나라는 내가 잘 모르지만 많이 다릅니다. 서부교회에  시찰하러 오는 그런 교회들이 오면 저는 말을 하기를 세 가지를 말을 해 줍니다.

세 가지 말하는데, 같이 참석하는 우리 서부교회의 반사 선생님들 중에서도  '이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안한데 뭐 말하는가?' 거기서 다른 걸 뭘 말해서 '이거  자랑할 만하고 참 모든 사람이 본받을 만하다' 해서 말하는 그런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세 가지만 말하는 것은 하나는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칩니다.' 그것을 말합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칩니다. 어리든지  장성하든지 그저 하나님 말씀은 무한한 말씀인데 인간이 알 릴 수 없는 것이고.

말씀 자체가 무한한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말씀 자체가 알려 주시고, 또  말씀을 보증하는 성신의 감화가 말씀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말씀 자체와 성령의  역사가 알려 주지 뭐 인간의 구변이나 그런 게 알려 주지 못하고, 또 그거 알려  주는 데에는 어린 아이라도 다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만 가르친다.'  하는 이것을 말합니다.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네들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러면  아이들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묻는 것은. '그거는 도무지 타당 하지  않는데, 이치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에도 일학년 뭐 대학생 이래 모두  있지, 같은 교안을 가지고 어떻게 될건가' 하는 그런 것으로써 반문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거기에도 저게도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말하지 안해.

조금 그래도 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반문을 하는 걸 봤습니다.

 그럴 때에 저는 이제 말한 말을 되풀이 하면서 '장년반을 말하면 국민학교도 안  다닌 그런 교인과 또 아주 최고의 지식을 가진 그런 교인을 한자리 놓고 같은  설교하지 지식에 따라서 그렇게 다른 설교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뒤에 깨닫고  열매 맺는 걸 보면 오히려 무식한 사람에게 좋은 열매가 많이 맺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지식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깨닫지도 열매도 못 맺는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학벌 좋은 사람이 많지를 못하다' 그렇게 했다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다시 두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동화를 꾸며 가지고 아주  이리 저리 해서 그라는 건데 여기는 말씀만 가르친다 그걸 말하고 또 하나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아동들의 심리를 연구해가지고 그 심리에 맞추도록  애쓰는 그 일을 우리는 전연히 못 한다. 하지를 않는다.

 또 우리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제 그렇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할만한  그렇게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아동들의 심리는 연구하지 안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의 그 비위가 어떠한가, 주님의 마음과 뜻이 어떤가 그걸 생각해서 주님의  뜻을 깨달을라고,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원하심을 깨달아서 주님의 비위를  맞출라고 그렇게 애를 써서 하고 있다. 그러면. 아동들의 심리와 비위를 맞추지  안하고 그저 주님만 기뻐하시면 주님이 다 처리 하실 것 아닌가 해서 주님의  비위를 맞출라고 애를 쓴다 그걸 말하고,  또 셋째로 말하는 것은 과거에는 약간 그런 일 해 봤는데 복음을 저하는 반사  선생님이든지 보조 반사 선생님이라든지 부장 선생님이라든지 그분들에게 대우가  전연히 없다. 대우를 아니 하는 것은 과거에 대우를 해 보니까 패단들이 많이  있더라. 대우를 안 하는 것은. 이는 지극히 보배롭고 참 가치 있는 고귀한  일인데 이 일을 뭐 일 년에 타올을 몇 십장을 주고 또 가다가 무슨 음식 대접을  한번 하고, 뭣을 기념품들을 주고 한다는 것은 이것은 너무 모욕스러운 일이요,  지극히 거룩하고 생명에 속한 영광된 일을 이런 것 가지고, 암만 그저 표로 하는  것이야 하는 것이겠지만 서도 그랄 때에 그에게 은혜가 없더라, 그 사람이.

반사가 혹은 시험에 들었을 때 가서 말을 해 보면 '내가 무슨 대접 받고  그러는가? 사람보고 하는가? 뭐 하는가?' 그래 가지고 삐꿔 돌아가서 공연히  제대로 누가 말하지 안해도 삐꿔 가지고 그거 암만 치료하려 해도 안 되더라.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순전히 대속하신 주님 앞에 큰 사랑을 받아서 주님이 큰  희생 해 가지고 큰 희생으로 받은 큰 구원이 있으니 이 구원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너도 이 큰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을 주신 그분이 너에게 내가 너를 사랑  한 것같이 너도 형제를 위해서 이렇게 하라' 하는 이것으로 '이 일을 하라고  깨우쳐 주고, 또 그 본인들도 이것을 위해서 일을 하는 그런 일 할 때에 속에서  힘이 나오고 가끔 가다 시험에 들어서 병들었을 때에도 가 가지고 뭐 치료하는  데 힘이 들지 않는다. '너 뉘 보고 했나? 이제까지 일한 거 너 뉘 보고 했나?  사람보고 했나, 목사 보고 했나, 너 알아주는 거 보고 했나, 무슨 대접 보고  했나 네가 뉘 보고 했나? 주님 보고 하지 않았느냐? 주님 보고 했으면 주님이 너  한데 변하더냐? 네가 뭐 때문에 변했느냐? 주님이 네게 대해서 행하실 때에  거기에는 이런 저런 수많은 그런 모든 방해와 지장들이 많이 있었지만 주님은  그런 것에 하나도 제재받지 안하시고 구속하셨다. 너는 뭐 때문에 이렇게  했느냐?'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이 눈물 흘리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내가 참 외식 하는 자라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구속을 인해서 하지 안했고 헛된  생각을 가져서 내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내가 잘못됐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해  보겠습니다.' 말 몇 마디 안 해서 그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그러기 때문에, 요 세 가지가 일반 주일 학교와 다른 것이고 또 거기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넷째로 말을 한다고 하면 자기가  전도한 학생은 자기에게 소속을 시켰다. 세상 국민학교를 표준해 가지고 거기에  준해서 국민학교 일학년이니까 뭐 일학년 취급으로 이학년이니까 이학년  취급으로 그래 하지 안하고 거기에는 남녀 공학을 할 수 있는 어린 때이기  때문에 전도해서 오면 여반사 선생님이 남 학생을 전도했을지라도 자기에게,  남반사가 여학생을 전도했어도 자기에게, 전도한 학생은 전도한 그 선생님에게  붙여서 이렇게 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전에 보니까 학교를 준하니까 이  노라리하고 말쟁이, 말은 잘하고 지식은 있고 이라니까, 말도 잘하고 지식도  있고 이러니까 공과 가르치는 것도 잘하고 또 언변도 있고 서로 사람으로 논쟁도  잘하고 이런 사람들이 머리가 돼 가지고 인간적 머리지 외나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삼가 조심하는 사람은 천물이 되고 그런 사람이 왕이 돼 가지고  이라니까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아, 저 사람이 지금 주일학교 했으면 잘  하겠다.' 해서 세워 놓으니까 이거는 심방도 한 번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고  관심도 없는 것이 자기에게 있는 지식이나 언변 가지고 다 때우려고, 앉았으면  그저 통발만 벌려 놓고 앉았으면 일학년은 전부 자기에게로 다 온다 뉘가  전도했든지 일학년은 다 온다 이학년은 다 온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해도 학생은 먼저 온 사람은 나가고 뒤에 온 사람 들어오고 신입 고출로 이렇게  학생이 자꾸 바꾸어져도 그 앞에 학생은 늘 많이 모여 있다. 모든 사람이  전도하고 그리 보내니까, 이러면, 들어오면 죽여서 보내 버리고 또 들어오면  죽여서 보내도 자꾸 비지 않으니까 저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 있다.

 이래서, 이런 제도를 세웠더니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변 좋고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반대하더라. 반대했는데.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네가 이놈아,  네가 옛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네가 들어서 이제까지 학생을 얼마나 죽였으며 또  학생 하나 전도하는데 어떻게 힘든 다는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그렇게 네가  놀아 가지고 외식으로 마귀 역사만 하지 않았느냐' 요것을 내 속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말 할수록 거기에 침노 받지 안하고 강하게 역사를 해 가지고  이거는 변동할 수 없다 해서 그렇게 했다. 했더니만 그런 반사들은 나중에,  처음에는 학생이 많았는데 차차 차차 제가 전도하고 기도하지 안하고 심방도 안  하고 이라고 오는 것만 받았으니까. 와 가지고 죽이는 일만 했으니까 얼마 가니  차차 차차 학생이 줄더라. 주는데, 나중에 마지막에 보니까 둘도 앉았고 하나도  앉았고 그러니까 나중에 부끄러워서 그만 그 반사는 그만 사면하고 도망쳐  버리더라. 도망치니까 도망치는 거 좋고, 사면하니까 좋고 그런 거 좋고,  이러니까, 외나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돼서 일을 하더라. 요것은 인간에게 속하기  때문에 요것은 넷째로 가는데 약간 참고로 하되 요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첫째  둘째 셋째 이것은 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다른 교회의  주일학교 인도와 다른 점이 있다. 이 세 가지는 다른 주일학교와 다르다. 고  넷째 것도 아마 약간 좀 다르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자꾸 나는 말합니다. 이 세 가지를 말하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거 말고, 그게 중요한 줄을 모르기 때문에, 뭐 그 사람들은  지금 무슨 조직이 있는가 무슨 방편이 있는가? 무슨 회의를, 뭐 반사회 무슨  회가 있는가, 또 한 번씩 간친회가 있어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저거  있는 그런 걸 자꾸 말하니까 여기서도 약간 뭐 그런 거 있다는 그런 것을 말을  하는 반사들이 있습니다.

 언제 한번은 약간 딴것이 좀 말이 나오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 우리  서부교회의 주일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서부교회 교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래 그만 딱 그 묻는 목사에게, 그 묻는 목사가 묻기를 '이 목사한테  물으면 목사가 보니까 능해 가지고 캄프라치해서 이리도 말하고 저리도 말하니까  이거 진상을 파악 못 하겠다. 이러니까. 목사님은 필요 없고 이 반사들에게  물어야 요 내용을 다 알겠다' 싶어서 그렇게 나는 자꾸 피하고 없어지기를  좋아하고 반사들을 모아 가지고 이래 하기를 원하고 이라기 때문에 내가 한번 좀  좋은 말로, 나무래는 거같이 안 해도 나무랬습니다. '여기에는. 서부교회는  그렇지 않다. 반사도 내가 깨닫고 내가 말하면 거기에 또 배워서 깨닫고 거기에  피동돼서 그라지 제 주장대로 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이라면서 내가 그  목사에게 그만 좀 부끄러움을 줘 버렸습니다.

 그래도 여기 와 가지고 제가 말하면 제 말하는 소리를 듣고 딱 듣고 간직하는  그런 목사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살짝 반사들이나 또 총무나 부장들이  거기서 내가 말하지 않은 거 살짝 말하는 고 말을 들어서 '요게 진짜인데, 요게  진상인데 요거 파악했다' 저 죽는 일을 하고 갑니다. 뭐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거 주면 먹으면 죽는 건데 죽는 줄 모르고 그걸 떡 주면 저거는 '아, 요거'  자기네들이 잘 깨달아지는 것, 저거와 같으니까 잘 깨달아진다 말이오.

 그것을 내가 그전에 말하기를 마치 바벨론에 있는 대사들이 오니까 히스기야  왕이 있다가서 '십팔만 오천 명 죽은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뭐 급도 은도 그런 것도 뭐 있어 봤자 그까짓 거 우리가 가치로 치지  안한다. 너거 나라에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다.' 요렇게 말했으면 그만 하나님이 좋아서 그때 높이 들 것인데 그거는  하지 안 하고 엉뚱하게 뭐 우리도. 우리도 돈도 있다 금도 있다, 무기도 있다.

뭐도 있다 돌아가며 자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미웠든지 다 뺏기도록 해  버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 방법은 암만 해도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또  있어 봤자 소용도 없다. 뭐 그런 방편을 말하느냐? 이거 우리는 단지 이것  말하는 것은 세 가지, 너무 오늘 교회들이.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교회들이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있기 때문에. 버리고 있는 이것을 우리가 그래도, 부족하지만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중하게 여기고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까, 이 세 가지가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쓰는 것이 이것이 옳다 너거 뭐 잘해 그렇고  뭐 좋아 그런 게 아니라' 그래도 이 세 가지를 중하게 여기는 그 값으로 당신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생각도 안 했는데 또 광고 선전을 하시지 이래 가지고  세계에 제일 큰 어린이 교회라. 어린이 교회라 이렇게 신문도 나고 자기네들이  말하기까지 하고, 전국에서 큰 교회는 안 온 교회 가 별로 없습니다. ○○교파  측 큰 교회는 안 와도 다른 진영의 큰 교회는 다 두 번 세 번 다 왔었습니다.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고 세 가지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제일 첫째는  뭐입니까? 말씀만 가르치는 거. 그러니까, 장년반 설교에 간추려서 하니까  장년반 설교보다도 어려울 만치 그래 간추려서 하는데 반사들이 그 공과를  보고도 잘 모릅니다. 그 공과는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자꾸 이래 가지고  간추려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 기도하고 새기면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옵니다. 이제 그 다음에 잔주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러니까. '이런 말씀하면 알아듣습니까?' 그래도 듣고 실행하는 점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제일 낫습니다. 그래서 이북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이 주일학교  학생들 이거 깨닫고 행하는 걸 보십시오.' 그거는 하나님 앞에 말할 그런 안면이  있어도. '이 장년반, 모두 다 장년반들 모두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 유식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이분들이 깨닫고 행함이 있지 않습니까? 이걸 보고  참으십시오.' 그런 소리는 도무지 입에 나오지 안한다 말이오. '이걸 봐서는  멸망시켜야 마땅합니다만' 이렇게 기도가 나옵니다.

 '잘 깨닫습니다.' 이라면. 그라면 고개가 끄떡끄떡 하면서 좀 이상하다고, 그래  가지고, 아주 그렇게 고친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씨는 그래 눈은  감고 있으면서 졸면서 이래 끄떡, 알아듣는 체로 그렇게 외식이 되는 거라.

우리가 외식, '알아듣습니다. 나는, 예, 알아듣습니다. 아, 그래 옳습니다.'  이라며 머리 끄떡끄떡 하면 속으로는 잔다 그 말이오. 우리가 다 그 사람이라.

이러니까. 이상하게 마귀 그놈이 들어오면 우리를 변질시켜 버립니다.)  그러고, 또 지금 모두 다 인간 비위를 맞춰서 야단인데 인간 비위를 맞춰서  야단인데, 요새는 지금 또, 공과에 이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단합돼서  세계는 두 쪽으로 갈라진다, 뭐 공산주의든지 뭐 이든지,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둘인 줄 알아도 공산주의도 인본주의요 민주주의도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아서 하는 신본주의는 참된  교회뿐인데. 이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하는 이것도 작은 말이 아닙니다. 이거  굉장한 말이고 이거 굉장히, 참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지 인간이 스스로  깨닫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깨달음이라 말이오.

 얼마 전에 내가 더러 책들을 이래 혹 쪼매씩 선두만 뒤벼 보니까 세계는 앞으로  천주교가 다 점령을 해서 천주교가 큰 세력을 가진다, 또 공산주의가 큰 세력을  가진다 유대인들이 큰 세력을 가진다, 이래서, 유대인들을 중심해서 이제 세계는  뭉친다, 천주교를 중심해서 뭉친다, 또 공산주의로 중심해서 뭉친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둘로 또 나누어진다 이렇게들 우리들도 말했고 그렇게들 생각해서.

세계는 앞으로 어떤 뭉치로 뭉쳐지느냐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이  분분했는데, 이제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로 갈라진다 이제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셋이 합한 요것은 인본주의인데 이것과 어린 양에 속한 자와 갈라진다  이거는 하나님이 가리켜 주셨기 때문에 이거는 이제 확신이 있습니다. 이는  변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뒤에 가서 서로 싸움이 일어나 가지고 인본주위는 신본주의를  뺏들어서 저거 편 삼을라 하고 신본주의는 인본주의를 뺏들어 저거 편 삼으려고  하는데 신본주의는 전도와 설교와 또 타이르는 것과 봉사와 이런 걸 가지고  진리와 영감 가지고 인본주의를 끌어 올라고 애를 쓰고 인본주의는. 그거는  진리도 없고 영감도 없기 때문에 무력을 가지고 무력과 궤휼 궤휼과 무력 이 두  가지 가지고 저희 것을 삼으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거기에 끌려가지 안하려면  세 가지 진실을 가져야 된다 하는 것을 다음 주일에도 그거지요? 공과 그거  아닙니까? 예.

 그런데 다음 주일에는 '진실을 만들자' 이랬는데 진실은 어디서 만드는가?  현실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진실은 현실에서만 만들 수 있고 또 진실은 또  현실에서만 뺏길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만 딱 팔 수 있어. 현실을 진실 만드는  것으로 쓰고 현실을 진실 뺏기지 안하는 것만으로, 과거에 그런 거 상관없어.

과거는 어쨌든지 현실에서만 뺏기지 안하면 되고 현실에서만 그것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다음 주일날 공과로 지금 가르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주일학교도 하나님의 비위와 인간 비위, 고 비위,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요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것이 참 중요하고 힘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는 목사마다 다 묻습니다. 목사님은 보니까 '이 반사들이 뭐  대접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러니까 그 반사들이 얼마나 됐습니까?' '대개는  여기서 모두 주일학교 학생이 자라 가지고 반사 된 사람들입니다. 대개는  그러합니다.' 이라니까 어떤 사람 말하기를 '아, 교훈에서 다 굳게 섰으니까  그거는 뭐 요동치 않지. 그럼 목사님 설교를 어찌 합니까?' 목사들은 오면 설교  어찌 하는가 그것을, 설교 준비를 묻습니다.

 설교 준비를 물을 때에 나는 고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대답하는 것은 내 딴에는  지금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대답을 하는데. 대답하는  목적은 있지만 그 목적을 잘 아는지.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저는 설교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를 않습니다. 주보를 내지 못하는 것은 설교하는 그 시간까지  설교할 준비를 못 했기 때문에 주보를 못 내는데 설교 준비는 내일 주일  오전에는 주님이 무슨 말씀을 우리들에게 해 주시는가,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그 말씀을, 지금 어느 말씀인가 그것을 내가 똑똑히 찾으려는  그것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 말씀이지만 내가 선택하면 인간의 말  되지 않습니까? 마귀 말이 되지 않습니까? 거기에 무슨 능력이 역사하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이라야 되고 주님이 선택해 줘야 되고 또 주님이 거기서 역사해야  되지 뭐 인간의 웅변이나 지식이나 그런 뭐 세상 꺼부주기 긁어모아 가지고야  뭐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이래야 되고, 주님이 하고자 하는 고  말씀이래야 되고. 또 주님이 말씀할 때 역사해야 되니까 뭐 주님이 역사해 달라  하는 거는, 그건 늘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또 주님이 말씀해야 된다는 그것도  우리가 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만 할 일은 주님이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라 할  건가 그것이 문제기 때문에 그걸. 주님이 이 말씀하라 하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해 가지고 깨달아졌는데, 강단에 올라갈 때에 어떨 때는 확실히 고 말씀  증거하려 했는데 한 삼 분 전에 이 말씀 말고 이 말씀 증거해라 그렇게 그만  제목을 바꿔버릴 때에는 대개 본문은 한 번도 못 읽어보고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왜? 그 제목을 했는데, 일어 봤는데 갑자기  변해지니까 인제 본문 읽을 여가가 없다 말이오. 없고 그 성구가 어디 있는지  그거 찾느라고 지금 분주하지. 그라고 난 다음에 그것만 작정하면 그만 그  다음에는 그저 그대로만. 그것만 증거하고 하니까 고거 증거하기 위해서 이  각도로 증거하고 저 각도로 증거를 하니까 여러 가지 말이 나오게 되고,  이러니까, 항상 설교할 때 뭘 딱 준비해 가지고 대통에 물 쏟듯이 쏵 하는 그런  것이 없고 항상 처음 하는 말이오. 암만 그 말이라도 처음에 주님이 또 하라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처음 하는 말이니 그 말하는 것이 서투릅니다. 그 말이  서투르고 그저 이미 돼 있는 그 말을 쫙,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을 새로 내가  받아서 들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말 하는 게 항상 서툴러서 깡깡깡깡  이라니까 다른 사람이 애가 터지겠다 말이오. 애가 안 터지구로 나도 하고  싶지만 그 말이 대번에 쫠좔 나오지를 안해. 내가 익혀 가지고 외우는 말이  아니고 그날 그 시간에 또 생각해 가지고 들어 가지고 이래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비위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을 나는 찾는 데에 힘이  듭니다. 거기에 만 힘이 듭니다. 그러기에. 어디든지 오늘은 이 말씀을 증거해라  하는 것을 당신이 가르쳐 주시면 그만 그거면 뭐 거기에 대해서. 그 말씀에 대해  잘 증거 하든지 못 하든지 내 아는 대로 그렇게 증거를 하고 그칩니다.

그러니까. 항상 주보를 내지를 못합니다.

 제 사실을 간증했습니다. 간증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그것도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일찍부터 뭣을 정해 놓고 물론 주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설교 제목을 정해 놓고 연구를 하는 그거는 더 좋지요.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안하고 하나님이 전하려 하는 그 말씀을  전하려고 하지 안하고 자기에게 있는 거 가지고 이걸 전하겠다 저걸 전하겠다 그  선택을 자기가 자의대로 하는 일이 너무 많고. 그게 뭐 거의 전체라고 할 만치  이래 되기 때문에 '설교 준비를 어째 합니까?' 하는 그 말 할 때는 자꾸 그 말을  합니다. 고 말만 내가 합니다. 내가 또 사실이 그렇고. 그 말만 하면 취미 있게  느끼고 가는 사람 혹 봅니다. 혹 보고. 별로 거기에 대해서는 느끼질 안하고  가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고, 느끼고 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보면, 물어 보면  교회가 좀 질적이고, 질적이고 뭐인가 좀 뾰족하게 그렇게 나가는 그런 교회들인  것을 제가 물어서 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찬송가를, 이거라도 해야 되겠으니까, 신편 찬송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이 왔는데, 여기에 저게, 자기네들은 무소속이라 이래요. 무소속 교회인데  아직까지 소속할 데를 찾지 못했다고 이라면서 서부교회 말을 신앙계라는  잡지에서 봤다고 찾아왔어요. ○○교파에 뭐 하는 데 왔다 가서, 모두 다 모여  가지고 무슨 회의가 있다 해서 왔다가 그래 여기 왔다 하면서 '아무래도 이  서부교회는, 신편 찬송을 딴 데서는 찾을 수가 없는데 서부 교회서는 신편  찬송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이래서, 서부교회에 신편 찬송 있는가 싶어서 그래  왔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나는 신편 찬송 그리 많이 사용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했더만 신편 찬송이 별로 없어요. 모두 신편 찬송을 사용하지  안하고, 신편 찬송은 다 내 버려 버리고, 신편 찬송을 간수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뭐 좀 뜻이 있는 그런 사람들만 보니까 신편 찬송을 몇 사람이  간수해 가지고 있어서 간수하는 사람 가운데에 가져오라 했더니만 가져 온  사람도 있고 가지고 안 온 사람도 있고 그래서 몇 권 들어왔습니다.

 이런데. 신편 찬송과 또 새찬송 합동 찬송 이런 것을 자기가 보면서 '이 찬송은  뽑아서는 안 되겠다. 이 찬송은 넣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찬송 장수를  신편이면 '신'하고 그 페이지는 몇 장이 되든지 신편에 있는 몇 장 몇 장,  장호이기 때문에 그걸 고 장인 줄 알고 그렇게 하겠고 새 찬송은 '새찬송' 해  놓고 또 합동이면 '합동' 해 놓고 그렇게 자기가 은혜되는 찬송, '이 찬송은  뽑으면 안 되겠다. 다른 거는 다 찬송 뽑아도 이 찬송은 뽑으면 안 되겠다'  하는, 그렇게 여겨지는 그런 찬송가만 기록을 해서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그걸 한 번 했다가 그걸 그만 성공을 못 하고 말았는데 지금은 또  하는데 혹 그게 법적 문제가 어떻게 될까 몰라서, 법조에, 법에 걸리지 않는  위법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렇게 해 보려고 하고, 또 위법이 된다고 해서 좀  책을 어떻게 달리 만든다든지 거기서 뭘 어떻게 하면 또 할 수가 있다든지 하면  하겠고, 또 그것을 문공부에서 허가를 맡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하겠는데 문공부 허가는 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왜? 세상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다 '이거 찬송을 전부 다 통일하자' 해 가지고 큰 세상 힘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밀려서 정식 허가를 내 가지고 되지는 않지  않느냐 그렇게 제 생각에 듭니다. 그러나 그래 가지고 해서 찬송가를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쓰고 그런 모든 고쳐 놓은 거 그런 것은 쓰지  않도록, 고친 거는 고치기 전에 좋은 거 그대로 해서 하고 그렇게 한번 해 볼까  하니까, 얼마 전에도 제가 광고를 했는데, 각 교회 교역자님들도 혹 거기에 뜻을  가지고 그렇게 한 번, 선택을 해서 다 그래 주 모아 가지고 한번 연구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목사님이 신편 찬송 말하는 것을 그때 알아보니까 없어. ○○○목사님에게  있는데 ○○○목사님을 전화를 하니까 없어. 그래서 구해 주지를 못했는데 그  뒤에 전화가 왔던가, 왔습디까? ○○○ 목사님, 전화 왔습디까? 뭐라 하노? 안  왔어? 그러면, 그 사람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와 가지고 그때 예배 보러  왔어요. '신편 찬송' 하니까 거기에 착안이 돼서 말했던지 또 그만 구해 달라  하는데 내가 그때 그거 없어서 구해 주지를 못해서 그만 그리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봉독한 말씀 시간 많이 지나갔는데 어제 아침인가 아래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했는데. 여기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버리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이거  버리고. 또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구원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자라야 자란 것만치 얻는 것이지 뭐 자라지  안했는데 하나님이 주실 수가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육신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이 경제가 어렵다 해서 좀 경제에  어려움을 면하도록. 경제 좀 풍부를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왜?  기도하면 뉘를 봐도 '그 사람은 돈 좀 있어야 되겠는데' 하는데 '돈을 좀 있게  해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못 하겠습니다. 왜 못 하느냐? '그 사람에게 막상  돈이 있으면 그 사람이 망쳐지지 안하느냐?' 왜? 돈 가지고 망치지 안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또 뭐 세상 무엇이든지 세상 거 많이 있어 가지고, 많이  있으므로 유익 보는 거보다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거는, 세상 것 많이 가진 그것을, 가졌는데 그것을 의지하지 안하고  바라보지 안하고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께 게을리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하고.

있든지 말든지 없는 거와 같이 여기고 하나님께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약대 가 바늘구멍으로 나가기보다도 더 어렵기 때문에 그런 일이 어렵다 그  말이오.

 그러므로. 다 자격이 있으면 주님이 주십니다. 돈을 억대를 가지고 그 사람이  자타에게 손해 보이지 안할 수 있는 돈이라면 주님이 당장에 주십니다. 그  사람이 뭘 백억이라도. 그 사람이 대통령이라도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자타에게 손해 보이지 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주십니다. 주시지만 다  주면 자기 망치기 때문에. 사랑하는 주님이 망치기 위해서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자신이  자라야 구원이 돼지는 것이지 자라기 전에는 구원이 안 됩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 하라" 이 말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봤다 말이오. 맛봤다 말은 먹어 봤다 그 말이오. 아무리 음식이 뭐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놔도 자기가 눈으로 보고 조금 거기서 맛을 느끼는 거 있기는  있지만 실상은 아니라 그 말이오. 보기에는 허무해도 맛있는 게 있고 보기는  좋아도 맛없는 것이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음식을 먹어 봐야 맛을 아는 것처럼  '네가 참 요대로 실행을 해 봤으면' 말입니다. '맛봤으면' '주의 인자를  맛보았으면' 요대로 실행해 봤으면 주님의 은혜가 실지로 네기에 와 가지고  체험과 경험이 됐을 것이다. 뭐? 고위에 버리고 사모하는 거, 버리고 가지는 거  둘 말했습니다.

 버리는 것은. '악독이나 궤휼이나 외식' 이 외식 이게 좀 어려운데. 외식은  어떤 게 외식인고 하니 주님으로 인하지 않고 자기로 인한 것은 뭐 성자 성녀  노릇을 해도 그거 다 외식입니다. 주님이 우리 속에 생명인데 생명 없는 것이  움직이는 거는 썩는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안한 거  그거는 다 죽은 것이지 산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게 다 외식입니다.

 '외식과 시기와' 모든 다른 사람 삣고 깎는 허는 거 이런 걸 버리라. 이 버리라  그 말은, 이것은 누가 가지고 있는 고 하니, 이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기하는, 마음에 내가 시기하는 마음이 나오고 시기하는  행동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또 북돋우기 싫고 그 사람을 좀 삣고 깎고 싶은  그게 또 나옵니다. 나오면 그때에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고 나는 어떤 나인가?  훼방하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훼방을 하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 아닌  내요 나를 죽인 원수인 내입니다.

 훼방이라는 그 악령 훼방이라는 악령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 마음을 훼방의  마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훼방의 마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훼방하니까 내가 훼방한 줄 알고 내 입술이 훼방하니까 내가 훼방한 줄  알고 이래 알지만, 물론 마음과 입술이 이용은 당하기는 당했습니다. 그러나  훼방이라는 마귀 고놈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마치 말하면  베 쪼가리가 하얀 베쪽이 있는데 붉은 물을 들이니까 그만 빨간 베 쪼가리가  됐습니다. 빨간 베 쪼가리를 이것을 빨간 물을 딱 탈색해 버리면 어찌 됩니까?  탈색하면 하얀 베가 됩니다. 그거 모양으로 요 악령이 와 가지고, 훼방의 악령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붙들어서 훼방의 마음을. 그놈이 붙들어 가지고 그놈  시키는 대로, 그놈이 훼방의 마귀가 와 가지고 내 마음을 이용 할 때에 내  마음이 이용을 당했고 내 몸이 이용을 당해 가지고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버리라' 그것은 딱 탈색을 시켜서 버려 버리면 내 마음은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깨끗합니다. 우리 마음은 깨끗하고 우리 몸은 깨끗합니다. 우리  마음과 몸, 육체라 하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그래 육체를 죄악시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을 잘못 알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나 몸은 깨끗합니다.

깨끗한데 이 악령이 와 가지고 자꾸 사로잡아서 이와 같이 해 가지고 옛사람이  됐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붙들고, 악령이 와 가지고  내 마음을 악령이 이용할 때는 내 마음이 악령의 이용물이 되니까 내 마음이  악령된 거 같지만 악령에게 이용을 당하지 악령만 쫓겨 나가 버리면 내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벗어 버리라.' 여기에 벗어 버리라 하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말인데, 간단하게 말하니까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말하지만 그  옛사람을 버리라는 그게 어찌 옛사람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많이 새겨 놔  보면 알 거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공과를 해 놓은 것이 대개 다 그렇게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또 연구, 또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하면 비로소 거기서 마지막에 종착에 만나는 그 종착을  여러분들에게 말해 놨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그 문자적으로 그렇게만 알아  자지고는 모른다 그거요. 여기에는 옛사람을 버리라 그 말이오. 옛사람을  버리고,  또 사모하라 하는 것은 가지라 말입니다. 뭣을 가지라? 그 순전하고 신령한 젖.

순전하다 말은 진리를 말합니다. 순전하다 말은 아주 온전하다 말이오. 영원히  가도 불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진리. 진리를 말하고 '순전하고 신령한'  이거는, 신령이라는 것은 영감이 돼야 신령입니다. 영감이 돼야 신령이지 영감이  안 된 거는 신령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 진리를  성령이 '오! 네가 그 진리 말하는 것이 옳다.' 찬성해서, 내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내가 실행을 한다 할지라도 성령이 보고 '이놈아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기는 하지만 동기가 나쁘다. 목적이 나쁘다. 네가 어디 피동이 나쁘다.

가짜다.' 이리 하면 성령이 동참해 주지 않는다 말이오. 그것이 바로 됐을 때는  성령이 와 가지고 협조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를 말하고  영감을 말하는 것이오.

 '젖을 사모하라? 그러면, 이거는 진리와 영감과, 진리와 영감 둘인데 둘만  동행합니까? 거기 하나 더 와 있습니까? 진리 영감, 피, 네, 진리와 영감과 피,  '성령과 물과' 하는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피는 주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떨어지지를 안합니다. 성령도 성령도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고 진리도  예수님의 피를 증거합니다. 그러면, 얼마 전에 그런 말 한 일이 있었는데  성령님과 진리는 예수님의 피를 위해서 수종드는 수종군으로. 예수님의 피공로가  얼마나 큰가? 예수님의 피 공로의 수종자가 누군고?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수종자요 진리가 수종자입니다. 진리와 성령은 주님의 피를 증거하고 피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나타내서 알게 하려고 역사하는 것이 성령이요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셋은 하나입니다.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은 하나인데 말하자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모해라. 예수님을 버리지 말고 사모해라. 네가 이렇게 옛사람  버리는 일을, 옛사람 버리는 일을, 계속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일을 계속해라.

주님을 사모하는, 주님을 사모하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주님에게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고, 또 주님으로 피동되고 이 세 가지,  주님을 사모하라는 데 세 가지,  하나는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돼요. 주님을 생각해야 돼요.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지, 아래 아침에 그 말 많이 했는데, 무슨 일 하든지 일은 껍데기로 하고  일하는 거기서, 그 일을 통해서, 그 일을 통해서 주님을 사모 하고, 그 일을  통해서 내가 기도할 게 생겨지고, 그 일을 통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통해서  주님을 사모하고, 그 일을 통해서 주님에게 피동되고, 주님에게 피동되고 요  일을,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통하지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서는 해 봐야 가만히  있으면서 하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서 하는 그 주님 사모만 되지 딴거 안 됩니다.

가만히 있으며 하다가 요 일 하면서 사모하는 것도, 요 일 하면서 주님 사모하고  저 일 하면서 주님 사모하고 모든 데서 주님을 사모하는 데에서 거기서 주님이  각각 우리에게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제 아침에 말했든가? 자기는 그걸 작정해요. 오늘도 이거  작정하고 '오늘은 내가 옛사람 버리는 일을 계속하겠다. '아, 여기 옛사람이  들어왔다. 이놈 버리자.' 옛사람 버리는 일을 계속하고, 주님 사모 하는 일을  계속하고, 주님을 사모하면 거기서 필연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기도한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기도한 다음에는 감사가 나오게 되고 또 자기 잘못된 자복이 나오게  되고 또 거기서 사정이 그렇다는 걸 사정을 고하게 되고 또 거기서 간구가 되고  이리 되면, 주님 사모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그라고 나면  주님으로 인해서 움직여지는, 당신에게 피동되는 이 일이 될 수 있다.

 이러니까, 버리고 잡고, 버리고 잡는 이 일을 하루 계속해 봐라. 한 시간을  계속해 봐라. 하루를 계속해 봐라. 하루를 계속해 보면 반드시 주의 인자하심을  네가 먹어 볼 거다. 주의 인자하심을 네가 체험해 볼 것이고 경험해 보고 할  터이니까, 이러기에, 맛보면, 벌이 꿀을 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죽는 것도  모르고 자꾸 달려드는 것처럼, 이렇게 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마다 세상에는  그렇게 맛있는 것이 없고 그렇게 개운하고 좋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거기서 순교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이 차차 적은 것은 모아서 큰 것이 되어지니까 한 시간을  한번 요 두 가지를 계속해 보자. 계속해서 삐끌어졌으면 또 시작해라.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삐끌어져도 또 시작해라. 해서, 요것을 시작하고 하루를 계속해  봐라. 그러면, 계속했으면 반드시 너에게는 주의 인자하심이 온 증거가 있을  것이다. 또 한 달을 계속해 봐라. 일 년을 계속 해 봐라. 만일 일 년을  계속했다면 그 사람은 굉장한 사람이 됐습니다. 일 년 동안에 뭐 굉장한  지혜로운 사람이 됐고 굉장한 인격자가 됐고 굉장한 능력자가 됐고 굉장한 큰  것을 포부하고 욕망하고 있는 사랑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위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하는 고 말씀을 한 그걸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모든 육체적으로는 세상을  다 점령해도, 엊저녁에 ○목사님이 설교했는데 보니까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어떤 걸 다 점령해 봤자 그건 다 헛일이라.' 엊저녁에 설교를 아주 잘했습니다.

엊저녁에 설교를 차근차근하게 좀 조심 있게 잘 했고, 저 먼저 할 때는 막  떠들어서 나팔을 부는 그거는 가증스러운 설교요. 가증스러운 설교. 또 언제  ○○○목사님이 설교했는데 그것도 틀린 소리고. 이런데, 엊저녁에는 설교를  잘했습니다. 자기가 느끼고 조심을 했고 그래도 요새는 조금 신앙으로 살라고  조금 정신을 차린 자의 설교였습니다.

 이랬는데,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여기 외식 요런 것도 정의를 잡기가 어렵다 말이오. 외식이 뭐 겉으머리  옷차림 하는 게 외식인가? 옷차림 하면 어떻습니까? 뭐 파마를 하면 어떻습니까?  그런 게 아니오. 외식은 뭐이 외식이냐? 자기 속에 주님이 주인이 되지 않은  그거는 전부 다 외식입니다. 거기에 가 가지고 촛점을 두고 거기서부터 시발해야  되지 뭐 딴거 껍데기로 맞출라 하면 천 가지도 만 가지도 넘기 때문에 암만 맞춰  봤자 결국은 헛일입니다.

 이래서. '이런 것을 버리고' 이거 말을 하면 옛사람을 버리라 그 말이오.

옛사람 고게 와 가지고 될 때에는 내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그놈이 붙들어  가지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을 그놈 마음을 만들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그 마음이 됐지 그놈만 나가 버리면 내 마음은 정상의 마음이 되고 만다 그거요.

 버리고, 주님을 사모해라. 하루 종일 주님을 사모하게 돼. 주님 사모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면 이 네 가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하게 되고, 그라면 내가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하여서 움직여지고. 내가 뭐  원인이 된다면. 내가 원인이 되면 그거는 망한다는 걸 환하이 알기 때문에, 내가  원인이 되면, 내가 자존자입니까? 내가 완전자입니까? 내가 창조주입니까? 내가  주재자입니까? 내가 주권자입니까? 이러니까, 주권자를 따로 두고 그 외에 딴  걸로 움직이는 건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 아닙니까? 필연한 일이라 말이오.

 주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되면, 이라면 이거 하는 것은 내 구원이 이루어지는.

다시 말하면 내가 차차 자라가게 되는, '이로써 자라간다.'이것으로써 우리가  자라가는데 무슨 자라가는 걸 자기가 자라갈라고, 철학을 해야 자라간다, 무슨  학교를 해야 자라간다 이래 가지고 자기 자라가는 이 역사를 학교 하는 것도  학교 하면서 자라가는 건 속에 따로 있어" 또 노동일 하는 데도 자라가고 무슨  일이든지 거기서 자라갈 수 있어요. 자라 가는데 껍데기 그것으로 자라가.

명예로 자라가고 지위로 자라가고 사람들에게 위신으로 자라가고 간판으로  자라가고, 아무 소용없어. 그거는 껍데기 장소요 공장이요 그 속에서 자라가는  것은 알맹이는 따로 있다 말이오 이래서 '자라가게 하려 함이라.'  '네가 이 일을 했으면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볼 것이라.' 주님이 네게 와 가지고  베푸시는 역사를 네가 맛봤을 터이니까 맛을 봤으면 네가 떨어지지 안할 것이다,  맛을 본 자는 이와 같이 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이번 거창 집회에 많이 참석을 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고 각 교회도  운동해야 될 것입니다. 거기서 암만 자기 교회서는 애를 써도, 또 아침에 새벽  설교 하면 낮에 다 까먹어 버리고, 또 오전 설교 해 놓으면 오후에 다 까먹어  버리고, 오후 설교한 거는 또 그날 저녁에 다 까먹어 버리고 뭐 하루도 안  넘어갑니다. 하루 안 넘어가니까 언제든지 말씀 들었다 버리고, 버리고 요것만  자꾸 습성이 되고 늘어나게 되는데 그래도 거기에는 한 삼사 일 동안을 계속해서  말씀을 자꾸 이렇게 가르치다 보니까 요 계속 하는 곳에서 사람이 좀 변화가 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 양떼를 사랑하면 어쩌든지 그렇게 모아 놓고 계속적으로  가르치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런데다가 힘을 써서 참석을 시키면 됩니다.

또 그러고, 그 목자가 말이요 목자가 양을 사랑해서 꼴을 대 주는데, 꼴이  없으면 사다가도 주고. 꼴이 없으면 사다가도 주고 얻어다가도 주고, 사다가도  주고 얻어다가도 주고. 이러니까, 자기가 없으니까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데  데리고 가 가지고 이렇게 얻어 먹여서라도 자라도록 그래 하는 그 목자는 살만  찌워 놓으면 주님이 와서 칭찬은 합니다. 빼짝 말라 놓으면 책망 받습니다.

 이러니까 또 어떤 사람은 '아, 집회에 데리고 다니는 게 좋다' 이래 가지고  영화관에 가 가지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이는 것도 은혜되는 줄 알고 집회  잘못 참석하면 아주 그만 전멸이 돼 버립니다. 집회 잘 못 참석하면 전멸  됩니다. 이래 가지고 사람만 벙벙하이 이래 가지고 바람을 집어넣어 놓으면 그  사람 그거 절대 못 뺍니다. 빼기가 얼마나 힘 드는 줄 압니까? 이래 가지고, 또  사이다 설교를 먹은 사람은 그 깽깽깽 하는 그런 걸 들으려고 합니까? 듣기가  싫어. 겨우 귀를 뚫어 놨는데 귀를 꽈 막아 가지고 와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못 알아들어.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집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백 팔십 몇 가지의 병이 나았는데? 이제 나았지만 지금  '나았다 하다가. 나았다 하다가 이제 다시 도지면 어찌 되겠느냐?' 말 못 하고  떡 말하기를 '낫는 중에 있습니다.' 고거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가증하냐  말이오. 나았는데 '다 낫는 중에 있다 해야 더 낫을 수 있지' 고게 얼마나  욕심쟁이고 얼마나 안갈퀴 요런 자입니까? 그런 자는 그걸 회개를 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 뒤에서 이제 '나는 이리 됐습니다. 나았습니다. 어쨌습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같이 한다는 증거요, 여기서 증거하는 말씀이 사람 이  증거하나 주님이 증거하는 것이니까 이 말씀을 듣고 요대로 실행하면 산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표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라 말이오. 이번에 도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단지 기도하는 것은,  그래요. 병 낫는 데 대해서 나는 두 가지 위해서 기도해요. 한 가지는 뭐이냐?  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지만, 깨달았지만 깨닫자마자 모두 병신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라 해도 병신 되어 있으니까 살들 못한다 고말이오.

이제 깨달았지만 과거에 이 모두 잘못된 일이 있어 가지고 병신이 돼 가지고  살들 못하니 죗병으로 병은 얻는 것이고. 죄병을 고칠라고 주님이 주시는 병밖에  없는 것이니까 우리가 그거 고치면 하나님께서 대깍 대깍 다 고칠 건데 이거  고쳐 가지고 주의 일을 하도록, 또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이 진영에  하나님이 역사하시 나 안 하시나, 이 말씀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가 아니가  이걸 모르는 자에게 내가 말했다 하는 것을 당신이 증거로써 이 표적을 보여  가지고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 있게 해 주옵소서.' 그 두 가지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 사람병 또 고깃덩어리병 그렇게 치료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많이  참석을 해서 이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다 받아서 이루어 가지도록 그렇게  노력하십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496 옛사람-새사람/ 로마서 6장 5절-9절/ 870713월새 선지자 2015.12.12
3495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자/ 누가복음 9장 25절-20절/ 881225주후 선지자 2015.12.12
3494 옛사람과 새사람 구별/ 로마서 6장 1절-7절/ 841018목새 선지자 2015.12.12
3493 옛사람과 새사람/ 고린도전서 1장 18절/ 870306금야 선지자 2015.12.12
3492 옛사람과 새사람/ 고린도전서 1장 18절-31절/ 870307토새 선지자 2015.12.12
3491 옛사람과 새사람/ 골로새서 3장 1절-4절/ 800820수새 선지자 2015.12.12
3490 옛사람과 새사람/ 에베소서 4장 15절-16절/ 85060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2
3489 옛사람 새사람/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13주전 선지자 2015.12.12
3488 옛사람 새사람/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06주전 선지자 2015.12.12
3487 옛사람 새사람/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06주후 선지자 2015.12.12
3486 옛사람 새사람/ 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860206목새 선지자 2015.12.12
» 옛사람 버리고 주님 사모/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40728토새 선지자 2015.12.11
3484 옛사람 버리고 주님 사모 /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40727금새 선지자 2015.12.11
3483 옛사람/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70203화새 선지자 2015.12.11
3482 예정론/ 로마서 12장 1절/ 870526화새 선지자 2015.12.11
3481 예정/ 에베소서 1장 3절-23절/ 82,0212금새 선지자 2015.12.11
3480 예정/ 로마서 12장 1절-2절/ 800514수야 선지자 2015.12.11
3479 예정/ 에베소서 1장 3절-14절 / 820212금야 선지자 2015.12.11
3478 예정/ 에베소서 1장 7절-12절/ 820213토새 선지자 2015.12.11
3477 예언의 말씀/ 베드로후서 1장 16절-21절/ 820401목새 선지자 201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