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12일 금야

 

본문 : 엡 1:3-1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밤에도 예배 후에 잠깐 기도하고 아래층에 내려가서 또 철야기도 할  것입니다. 남반은 신관에 여반은 구관에, 가운데 휘장이 가리워져 있고 또  의자로 가리워서 경계를 해 왔고 또 남반 있는 데로 통행하는 부엌 앞에 있는 그  측문을 잠궈 둡니다. 여반은 물을 사용할 때도 여반 변소 있는 데 입구에 거기에  물이 준비돼 있고 또 남반은 부엌의 물을 사용하면 됩니다.

 여반은 출입을 정문으로 하고 남반은 아직까지 많지를 않아서 정문으로 같이  하고 지난번에 여기 작은 철문을 열어 놓기로 한 그것은 인원이 적어서 그렇게  필요가 없어 열어 놓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필요하면 열겠습니다.

 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과 구역장님들은 각기 기도한 후에 82 년도 졸업  학생들의 중간반 배정표를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저 뒤에서 나누어 드릴  터이니까 저 뒤에서, 아랫층에도 있기 때문에 저 아래충에 일층 그 앞에  거기에서 나누어 드리고 있겠습니다. 한 분도 빠짐 없이 다 받아 가셔서 내일  심방하실 때에 학생들을 특별히 방문하고 졸업식 그 시간과 빠짐없이 다 참여를  해서 그때에 분반하는 그 분반에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그렇게 하도록 해 달라는  광고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는 데에는 인정과 순종이라는 이 믿음, 인정하고 또  순종하는, 인정과 순종이라는 이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우리에게 어떤  인간적 자격이 구비하다 해도 그것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서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과 순종하는 이 둘을 합해서 믿음이라  말합니다. 이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대접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온갖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받은 것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데도 인정하는 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원하시는 일을  자기가 이해를 못하게 됩니다. 또 이해 못할 그 일들을 순종해 보지 않으면  자기가 이해 못하던 것이 해결되어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이런 은혜를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정확무오하게 약속과 교훈과 모든 예언을  우리에게 해 주셨는데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려워 믿음 없는 사람들이 인간  법칙대로 주관대로 해석을 하다가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나타낸 하나님의 이 지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인정을 하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옳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 인정하고,  자기 계산에는 어떻게 되든지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6절에 보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구원을 주실 때에 거저 주신다 그말은 값없이  주신다 그말입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주시지 않고 공으로 주신다  그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을 노력을 해 가지고 노력한 대로 노력의 댓가대로  준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좁은 이치에 맞고 그러니까 받으려면 힘을 써야 되고  힘 안 쓰면 못 받겠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거저 주신다고 하니까 힘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기 쉽겠습니다.

 거저 주시는데 힘은 얼마나 들여야 되느냐? 죽을 힘 다 들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거저 주는데 죽을 힘 다 들일 필요가 뭐 있겠는가? 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거저 주시는 구원인데 이 구원을 받는 데는 있는 힘을 다  들여야 구원이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기 때문에 '거저 주면 힘쓸 게 뭐 있는가?'  자기 좁은 생각으로 단편적으로 판단할 때는 그렇게 판단이 되어지니까 이런  말씀도 이해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말씀이 참 말씀이요 이  말씀의 이치 외에는 되는 이치가 없는 길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있고 난 다음에 죄도 있고 또 선택도 있지 우리가  생기기도 전에 무슨 죄가 있으며 무슨 선택이 있겠느냐 하는, 자기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그 역사가 자기에게 대해서 이미 있는 기존적인 것의 것을 말씀할 때에  이것도 또 이해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은 같은 성경이지마는 다 자기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믿고 저렇게 생각해서 저렇게 믿는데  이래 믿든 저래 믿든 하나님께서 안타까와서 권면하고 깨우치고 잘못 가는 길을  막고 가루고 이렇게 하시기는 하시지마는 자유성이라는 그것은 강제로 막지는  아니하십니다.

 이렇게 살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죽고, 죽고 난 다음에는 부활하고, 부활하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기가 세상에서 어떻게 산 행위와, 또 자기가  만들어 놓은 소유와,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되어졌든지 된 그대로의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심판은 세상에서 산 모든 세상살이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감 도리의  이 계약 말씀이 법이 돼 가지고 그때에 심판을 해서 이 법에 정죄를 받지 않는  자도 있고 칭찬을 받는 자도 있고 정죄를 받는 자도 있고, 이러니까 상을 받는  자도 있고 벌을 받는 자도 있어 상도 층어리가 많고 벌도 층어리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 중요한 것이 자기와 모든 인간들의 그 지식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지식을 앞세우고 이 지식을 따라가는 데에, 이 지식을 영접해  써먹는 데에 세상에서 얻은 그 모든 것이 이용이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인간의 지식과 자기의 무엇을 이것을 인정하면 인정하는  것만치 하나님의 지식은 부인하게 됩니다. 부인한 것만치 자기 지식을 인정하고  행동한 것만치는 나중에 이 법칙이 심판할 때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의 지식을 떠나서 이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견고케 충만케 하고 이 세상 지식을 이 지식에게 다스림을 받고  지배를 받도록 이 지식으로 인간 지식을 심판해서 수정해 가면서 자라가면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에게 주격적인 위치를 권위를 가지고 자라가고 이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게 소유물이 되고 이용물이 되어져 자라가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주신 귀한 선물로 되어서 자기에게  좋은 효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수많이 깨닫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몇 가지를  말한다고 하면 우리 구원이 언제부터 시작됐느냐 하는 구원의 시발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창조되고, 타락되고, 또 하나님이 구속하시려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설정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 구원이 인생에게 왔으니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으라 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구원얻을 자를 정하셨다.'  그러면 우리 구원이 창조, 타락, 그리스도의 구속, 선포, 그 후에 우리의 구원이  시작됐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늦게 시작은 되지는 않았고 '창조된 후 타락하고,  타락한 후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고, 타락 후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어 예수님의  대속이 와 가지고 구원을 이루는 역사를 했다.' 이렇게 보는 또 교파들도  있습니다.

 어떤 또 교파에서는 '창조 타락 후에 구원이 시작됐다. 창조 타락 후에 구원이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그 순위가 각각 다릅니다. 감리교에서는 '제일 뒤에 우리  구원이 시작됐다 하나님이 만민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난 뒤에 그후부터 우리  구원이 시작됐다' 하는 것이 감리교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장로교에서는 '창조 후 타락 후에 우리 구원이 시작됐다. 타락 후에  하나님이 타락 중에 있는 것을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구원하지 않기로 그렇게  작정이 되고 구원이 시작되고 구원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대속의 이 공로를 베푸셨다.' 또 이렇게 근원을 말합니다.

 그분들이, '그러면 에베소 1장 4절에 창세 전에 택했다는 이 성구를 어떻게  하느냐?' '이 창조는 시공 창조이기 때문에 이 시공 창조 전은 다 전이지마는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예정 세계에서는 창조 후에 타락이 있었고 타락 후에  선택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에베소 1장 4절에 있는 창조는 이 시공 창조로만  보고 예정 창조로는 보지 않는 데에서 서로 깨달음이 달리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깨닫고 믿는가? 우리의 구원의 시작은 타락 전, 창조 전,  예정 전,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목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  거기에서부터 우리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 시발이 됐다 하는 것으로 우리가  믿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전 그리스도가 계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이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 둔 그 그리스도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정,  창조, 타락 전과 후에 오셔 가지고 구속 역사를 시작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구원의 근원 곧 하나님의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목적인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이신  제이위 하나님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아버지가 예정하셨고, 이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그후에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창조의  것들을 이용 해서 타락, 구속, 중생, 성화, 영화, 영원무궁으로 이렇게 이  순서로 우리의 구원을 역사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믿습니다.

 성경에 모든 창조물이 곧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창조하셨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계시록에 말씀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  그가 지으셨다고 했고, 그에게서 지음을 받아 그에게서 나왔고, 또 그로  인하여서 움직여 살고, 사는 종착은 하나님에게 가서 하나님의 몸과 지체같이  결합을 가지고 영생하게 된다 하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존재적으로는 우리의 구원보다 앞서 존재한 것은 어떤 것들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그의 속성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분 한 분이 우리의  구원보다 앞서 있어 그분이 영원 자존하신 분으로 첫째로 그분이 역사하신  제이의 존재 순위로 존재케 된 것이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자존하신 지혜와 능력, 이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속성이 첫째  역사로 역사하신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본체와 속성 다음으로  존재케 된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그때에 있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그때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시고 그 구원 안에서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첫 역사가 예정인데 예정 그때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나도록 예정된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의 순위로서는 하나님 당신이 존재하셨고 당신이 역사하시는  첫 역사가 당신의 목적, 곧 우리의 구원, 곧 선택인 것입니다. 택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우리가 있기 전에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라는 것을 디모데후서 1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은, 자존하신 하나님과 자존하신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는 이  자존이라는 것은 아무것으로도 그 원인이 없고 스스로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것입니다. 언제부터 계셨느냐? 계신 때도 없고 영원 전에 스스로 홀로 계신  분 이분 한 분이 계시고 이분 한 분으로 인해서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생겨지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생겨지게 됐으면 마치 어머니에게서 아들이 분산돼서 나오는 것처럼  자존하신 하나님의 뿌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모든 존재들이 됐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존하신 이분은 완전자시며 영원 불변자이시기 때문에 그는  쪼개질 수 없고 나눠질 수 없는 완전 영원 불변자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생겨졌으면 그분의 쪼갱이가 나와  가지고 부스러기가 돼서 모든 것이 되지도 아니했고, 그러면 어떻게 됐는가?  그분이 당신의 본체대로 속성대로 당신의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선서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는 그분의 창조로 인해서 있게  됐습니다.

 그러면 창조는 일차 창조하심이 있고 또 창조하신 것을 가지고 재창조하신 그  창조의 역사로 없는 것은 존재하도록 그런 순위로 하셨고 또 창조한 것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으로 영존하게 하셨고 또 창조된 것자 창조된 것을 둘을  종합하고 셋을 종합하고 열을 종합하고 여러 것들을 종합해 가지고 또 재창조  재존재케 하는 역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는 영계나 물질계나, 무신론자나 유물주의자나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식물들이나 무생물이나 하늘에 있는  영물들이나, 뭐 공중에 있는 것이나 자연이나 모든 것은 우리를 당신의 목적으로  삼으신,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신 그분의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들입니다.

 (빨리 앉아! 뭐 뒤에 와 가지고 얼정거리고 잘났다고 하고 있어, 빨리 앉지를  않고? 늦게 왔으면 부끄러워하고 지금 어데든지 끼여 앉을 일이지 쭈렁쭈렁  자꾸, 모든 사람이 주목이 그리 다 가도록)

 우리는 성경이 이것을 말씀하는 것을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영계나 물질계에  모든 존재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나 모르고 있던 것이  새로 발명되는 것이나 모든 존재는 우리의 구원을 당신의 유일의 목적으로  삼으신 그분이 창조하셔서 존재하게 됐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또 그분이 지으신 것은 지음을 받은 그것이 찰나도 순간도 지음 받은 것이 제  단독으로는 존재도 못하고, 성장도 못하고, 단독이 될 때에는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지고 그에게 좋은 것은 다 없어지고 존재한 것만치 좋은 것의 반대인  불행스러운 것 모든 해로운 것 그것만 자꾸 천 년 가면 더 쌓이고 만 년 가면 더  쌓이는 것을 표현해서 영원한 사망이라,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존재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됐고,  지금도 그 자체는 하나님을 찬양하든지 욕하든지 반대하든지 행동 전체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작정하신 그대로 하나님이 만들어서 요것은 하나님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없다고 주장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반대하는 것으로 요렇게 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만들어 인정하도록 하고 찬양하도록 하고 해서,  땅위에 만물들의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나아가는 것 그것이, 쇠해지든지  썩어지든지 살아지든지, 많아지든지 적어지든지, 서지든지 부숴지든지 하는 그  움직임의 전부, 자라가고 도태해지는 그 전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는 그 모든 것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존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서고  깨어지고, 나고 죽고 하는 이 모든 변동 이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양하고 반대하는 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조부랍게 반대하는 것 그 조그만한 반대하는 그 면만 볼 때는 '이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반대해서 믿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을 죽이니까 이거는 분명히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의 사람들을 해쳐서 멸하는 것 보니까 이 세력은 하나님의  세력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우주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발원돼서 발원된  것과 하나님에게 반대된 것으로서 발원된 것들이 있다. 이러니까 이 우주와  영계에는 원인이 하나가 아니고 원인이 둘이다' 하는 이것을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것은 악령이 그렇게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그래 한 것이요 성경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생겨졌 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기  때문에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지마는, 반대하는 데에서 반대를 받는 그 근원, 어떤  근원을 반대할 때에 반대하는 그것을 인하여 그 근원이 확실히 드러나고 근원이  확실히 드러나기 위해서 거기에서 반동하는 것이 나와 가지고 이 반동으로  말미암아 그 원동을 증거하는 역사가 되어 이것은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이렇게 범위 넓은 이 모든 단계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렇게 넓게  크게 깊게 높게 참 길게 이 광대한 구원을 역사하시니까,  우리가 조부라운 생각으로 요 면을 보면 요게 모순되고 조 면을 보면 조게  모순되어서 모순 투성이에서 사람들이 번민해서, 인간이 어떨 때는 요 모순에서  일생을 망치고 말고 조 모순에서 일생을 망치고 다 자기의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주관의 선구자, 자기 주관의 지도에 따라서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생각, 자기  마음, 자기 욕심, 자기 뜻 이것에게 인도를 받아서 그것대로 따라가 가지고  그대로의 달성을 하면 성공인 줄 알고 했는데 마지막 죽을 때 닥쳐보니까 모두가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수고가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결론적으로 보니까 자기에게 유익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의심없이 믿으면 우리가 개별적으로 된 그 개별적으로  된 것을 생각할 때에 그때에 우리는 조부랍게 좁은 범위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됩니다. 이해가 안되고 도무지 그것이, 삐뚤어진 것은 나에게 이해가 되고  곧은 것은 나에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그 곧은 것이 이해가 되고 삐뚤어진 것은 삐뚤어졌다고 그게 정죄가  되어지는 그 지혜가 어데서 나오느냐? 그 지혜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 존재하고, 모든 것이 보존되고, 모든 것이 그분 한  분의 경영으로 인해서 이렇게 저렇게 종류가 생겨지고 그분의 한 분의 능력으로  인해서 종류 대로 이렇게 움직여서 생겨진다' 하는 이것을 믿는 믿음 위에다가,  '자존하신 분이 이렇게 수많은 역사 인간이 측량 못 할 창조, 보존, 섭리,  운영, 재종합, 재창조, 이렇게 하시는 이 수많은 복잡한 역사가 하나님의 첫  역사인 당신의 목적인 우리의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셨다' 하는 것을 믿을  때에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됩니다.

 이 믿는 마음이 굳센 자에게는 어떤 것이든지 거기에 대해서 정평 정가하고  자기가 거기에 대해서 올바른 상대자가 되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양육하시는 그의 참 사랑의  하나님의 태 속이라,  어린아이가 어머니 태 속에 있으니 이것도 어머니 저것도 어머니 모든 데에서  전체에서 다리로도 영양이 들어오고, 뱃구멍으로도 들어오고, 귀때기로도  들어오고 그저 그 태에, 태에 붙으면 붙은 대로는 영양이 다 들어옵니다. 지금은  입으로만 먹고 지금 딴걸 먹지마는 지금은 전신에 이 피부 신경 세포 이것이 막  태에 걸 막 빨아먹고 자라는 것처럼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구원이요, 생명이요, 다 신령한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러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독침을 가지고 찌르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 나를  기르는 것, 정말로 기르는 것입니다. 고급으로 기릅니다. 그것은 일반 영양제가  아니고 아주 고급 영양제입니다. 고급으로 기 릅니다.

 우리가 생각이 조부라을 때 그러나 그걸 가지고 기르지 않으면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 것보다 사랑하는 그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 관계가 맺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그에게 맡길 만한 신빙성이 생겨지지  않습니다.

 또 그게 아니면 자기는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크게여 기고 낫게  여기는 하나님께 대한 이 소망이 신망이 생겨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모든 피조물들이 '이분은 죽어도 하나님의 뜻에는 변질 없다.

이분이면 바로 하나님 그분이다. 그분의 것을 그대로 직통으로 우리에게  전달하는 분이시니 이분은 과거에 보니까 죽어도 뭐 해도 어떤 일 있어도 요동  안 하고 그분의 뜻 그대로더라. 이러니까 이분에게 속해서 이분의 지도를 받으면  바로 하나님한테 막바로 지도받는 것과 꼭 같다.'  만물에게 인정받지,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하나님에게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바른 관계를 가지지, 만물에게 대해서 독침 그것도 나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것도 의를 이루는 보배니까 미워할 게 하나도 없어. 미워할  것이 없고, 원수가 없고, 필요없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피조물은 내가 넉넉히 사랑할 수 있고 그를 위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하나님은 어데서든지 당신을 믿고 의지해서 당신 한 분만으로써 내 전부를  삼아서 살 수 있고, 이럴 때에 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중보의 역할을 할 수가 있고 그 위치를 줄 때에 누릴 수 있고, 알고, 맛을 알고,  가치를 알고, 누리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거기에서 그 위치를 감당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큰 구원을 우리가 받는 데는  그분과 그분의 모든 것을 의심없이 인정하고, 인정하고 그분이 나를 인도하는  데에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이 둘을 합해서 믿음이라 이럽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에게도 우리가 쓸모가 없고,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도 나에게 필요가 없어집니다. 믿음이 아니면 만물도  내게 필요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나도 만물에게 필요없습니다. 순전히 섞인 것  없이 망하고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순서가 어찌 되느냐?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하신 그 모든  속성, 이는 하나님 자체요, 자존하신 본체요, 자존하신 속성이요, 단일성이기  때문에 이는 한 분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이신 자존하신 하나님, 삼위라고  말하는 것은 한 분이 역사하시는 그 위가 셋이지 한, 본체는 하나십니다. 속성도  하나십니다.

 이분이 제일 첫 역사로 당신과 꼭 같은 자를 한번 만들어 가지고, 당신과 같은  자를 하나 만들어, 당신과 꼭 같은 것. 꼭 같은 것을 만드시는데 일차적으로  만드신 것은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꼭 같이  만들어졌어.

 그래서 "이제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보여  줬다" 독생하신 하나님은 내나 예수님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만 나온 그분이 하나님을 보여진다.

 또 말씀하시기를, 빌립이 말하기를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이러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또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다" 이  맏아들이요 첫열매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뭣 하려고 불렀느냐?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과 꼭 같은 것을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 그러기에 베드로후서 1장에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세상에서 썩어져 갈 정욕대로 살 우리들을 그런 것을  벗어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그 신성,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한 이 역사를 이 세상에서 하시는  것이니까 너거 인간 욕심, 인간 정 욕심, 인간의 온갖 정 온갖 욕심 그것은 다  썩어져 갈 것이니까 그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되기를 힘쓰라. 하나님같이  되기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힘쓰라"  "그러기에 때문에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우애를,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라" 이렇게 여덟  가지를 말했습니다. 순서를 거기에 보면 여덟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이 힘쓰는 한  종류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이 당신과 같은 자를 만들려는 이것을  목적을 당신이 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이 목적 그것이 우리입니다.

목적이 우리요.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가 지음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목적이 뭐이냐? 우리 그리스도인 하나 하나를 하나님과  같은 자 되도록까지 당신의 온갖 사랑과 지혜와 능력과 수고와 열심이 이를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곧  우리 구원인데 우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것을  진행하는가? 우리 구원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어떻게 지금 하나 둘 순서대로  진행을 하고 계시는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추진을 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건설하고 계시는가?  건설하는데 첫째는 우리를 창조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창조합니다. 우리가 밸 때에 어데서 했느냐? 그리스도 안에  했습니다. 우리가 밴 모태는 그리스도십니다. 우리가 밴 모태는 그리스도시요  우리를 기르는 것은 사죄 칭의 화친의 젖을 먹여 가지고 우리를 기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태 안에 있었다 말은 태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모양 대로 우리가 지음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만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은 너희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한 것은  이제 것이 되면 된다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태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잉태돼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양대로 잉태돼 나왔소. 그러기에 우리가 자라가면 어떻게  자라가느냐?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갑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간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뒤에 신정국가에서  밝혔는데 그리스도의 모양대로 자라간다 말은 그리스도의 첫 형상이 누군고 하니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 했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요, 예수님은 대선지자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신 대왕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성분을  가지시고 이 세 가지 역사를 하는 그 직책을 가진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잉태돼 가지고 우리를 나서 예수님의 사죄 칭의  새생명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성령 진리 주님의 공로를 먹고 자라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자라면 그리스도인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그리스도인으로 자란다 말은 뭘로 자란다는 말인고 하니 제사장으로 자란다  그말입니다. 제사장으로 자란다. 선지자로 자란다. 또 왕으로 자란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말씀하신 것은 제사장, 통치의 왕을 가리켜서 거기에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둘을 말한 건 그 안에 하나는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필연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 형상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자란다 그말은 제사장으로  자란다 말인데 제사장으로 자란다는 것은 제사장은 뭐인고? 제사장은 자존하신  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 그 중간 사이에서 중보 노릇을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그것은 신정국가에서 형식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해서 하실 때에 직접 하시지 않고  제사장을 통해서 역사를 하셨고,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대할 때에 제사장을  통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제사장을 통해서 하고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에게 중보자가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받고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면에서, 하나님의 사랑면에서  성결면에서 하나님의 그 모든 따뜻한 그 행복면에서 중보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이요,  우리가 잘못한 것을 직접 하나님 앞에 암만 고해 봐도 안 됩니다. 우리 잘못한  걸 이것을 제사장이 가져가 가지고 아버지께 딱 고하면 그만 사함을 받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사장인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사죄를 받지는 못하는 것이고  칭의도 못 받는 것입니다. 화친도 못 받는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의 권위를, 중보의 실력을, 중보의 그 위치를 마련하는 것이  오늘입니다. 오늘 이것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제까지 이 피조물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에 대한 것을,  모든 소식에 대한 것을 이것을 피조물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  줍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 주고 또 백성들이 호소하는 것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호소가 됩니다.

 그러기에 구약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또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께 말씀할 때에 그 말이 서로 통해서  의논이 됐습니다. 선지자의 권위를, 선지자의 지위를 우리가 마련하고 있습니다.

 요 사람은 요 조그만한 위치에서 선지 노릇을 한다 이 사람은 좀 큰 위치에서  선지 노릇 한다. 이 사람은 전체면에서 선지 노릇 한다. 우리의 전체에 대한  선지의 제일 선지의 높은 위치에서는 누가 이 선지 노릇 하고 있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이 관리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직접 다스리지 않고 교회를 통해서 다스립니다.

 교회를 통해 다스리는데 다스리는 그자가 뭐이냐? 왕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왕이 되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신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왕 노릇 하는 예수님으로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예수님으로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천년 동안 그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잠깐 연성기인 멸망  세계에서 지상에서 이런 그 세계에서 훈련받아 가지고 왕 노릇 하다가 무궁세계  가면 우리의 직책은 영원한 제사장이요, 영원한 선지자요, 영원한 왕으로,  제사장이 되어 가지고 모든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해 주고, 모든  만물에게 충만케 해 주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혜와 진리에 속한  것을 만물들에게 주어서 만물들이 점점 자라 충만케 하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그  통치를 이것을 전달해서 모든 피조물을 통치해 가지고 "교회는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지고 충만케 해 주는 그 역사를 하는 것이 교회들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이것을 가리켜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배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배 가지고 탄생된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  자라가야 됩니다. 그러기에 제사장으로 자라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좋게  하고 피조물도 좋게 하고 이 둘이, 하나님도 나를 원하시고 피조물도 나를  원하시고, 나는 하나님도 좋게 하고 피조물도 좋게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것이기 때문에,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그 말은 이거는  하나님의 아들이 받는 기업이 내나 제사장 기업, 선지 기업, 왕의 기업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업은 측량할 수 없는 그 넓고  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종자로 우리가 출생된 것인데 우리의 이 구원 하나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존하신 지혜로 모든 것을 예정했습니다.

 그러면 예정은 얼마나 했느냐? 그때부터, 목적 정하신 그때부터 예정한 것이 이  세상 끝날까지의 것을 예정했느냐? 아니오. 끝날까지 것을 예정하지 않았고  무궁세계, 영원무궁, 영원무궁까지를 하나님께서 단번에 예정하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지금도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당신이 예정하신 그대로 하나 둘 돼  나갑니다. 당신이 예정하시지 아니한 그 일이 하나도 나타나는 게 없습니다. 큰  일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악인이 하나님을 없다고 반대를 하고 예수믿는 사람  핍박을 하고 성도를 죽이고 하는 그것은?'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이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하나님이 또 그렇게 하도록 그 사람을 내왔고, 살렸고, 먹였고,  힘을 줬고, 그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그와 같이 했습니다.

 그러면 좁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죄를 범하게 했다' 그렇게 생각 가질  것입니다. 주인이 쓰려면 불을 땔 때에 연탄을 찍어 넣으면 불집게는 항상 타고  굽히기밖에 못합니다. 이것 자, 다른 것은 농 안에 갖다 넣는데 왜 이 소지품은  불에다 넣어서 하필 태워서 바짝 바짝 태우고 마는가? 주인에게 필요하니까 만든  것입니다.

 주인에게 필요하니까 무신론자도 만든 건 주인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악한 자도 우리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가룻유다도  우리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타락도 우리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영원이 예정되었으니 크고 작은 것, 예정 안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정 안 된 것은 존재가 없습니다. 예정 안 된 것은 없습니다.

전체는 예정이오.

 전체는 예정인데,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 일 나타날 때에 첫째로 '이것도  예정이다.' 이것 믿어야 됩니다. '이것도 예정이다. 이것도 예정이다.' 예정이다  해 놓고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무식해 그렇고 내가 조부라와 그렇지 그게 사실이  아니라서 이해 안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좁은 것을 키우고, 무식한 것을 유식하게 만들고, 어리석은 걸  지혜있게 만들어 가지고 인정 안되는 그것을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정을, 이게  예정인 것을 인정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인정을 하려고 애를 써서 깨달아  가지고 자꾸 예정을 알고 나가면 이건 참 통달한 자요.

 모르면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이해 안 되면 자기를 부인해 버려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의 예정을, '예정이니 내게 이해 못 돼도 내가 무식하고  천박해서 어려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이 예정했기 때문에 이걸 내가 믿는다.'  예정으로 믿고, 믿고 나서 보면, 믿고 믿는 마음으로, 믿는 행동으로, 믿으면  기쁩니다. 믿으면 기쁘고, 믿으면 담대하고, 믿으면 소망이 생기고, 믿으면  용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행동으로 하고 보니까 어찌 됩니까? '그것 이해 못  하겠는데' 하는 건데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하고 보니까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하고 보니까 '아, 과연 그렇구나.' 여기에서 새로운 지식도  얻고, 새로운 능력도 얻고, 새로운 소망도 얻고 이래 얻고 이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고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접촉해 보지 못한 것을 다  환하게 다 보고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보지 못한 것을 환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을 때에 그것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존하신 하나님, 당신이 우리를 유일의 목적으로 정하시고 목적이신 하나님과  같은 자 만들려는 그 목적, 나를 하나님같이 만들어서 영광을 받으시고 복되게  하려는 그분이 내 구원을 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내 구원 위해  만들었고 저것도 내 구원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평가할 때는 이것은 우리가  '이것 어떠노?' '틀렸습니다.' '이건 어떠노?' '맞습니다.' '이건 어떠노?'  '굽었습니다.' '이건 어떠노?' '곧습니다.' 이래 말은 하지마는,  거기 대해서 하나님이 묻는 대로 이거는 굽었다 곧다, 틀렸다 옳다 할 때에  '틀렸다.' '틀린 이것은 그러면 틀린 이것은 뭣 때문에냐?' '틀린 그것 나  때문에 있습니다.' 이렇지요. '틀린 그것 나 때문에 있습니다. 굽은 것 나  때문에 있습니다.' '누가 굽은 걸 있게 했느냐?' '하나님이 있게 했습니다.'  '그것 뭐이냐?' '내 구원을 위해서 존재케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너는 어째야 되느냐?'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목적인 내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나는 이것을 잘 이용해서 여기에서 내  구원을 이루어야겠습니다.' 요것이 올바른 정답이요 자기의 정상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정을 믿읍시다. 창조를 믿읍시다. 그러면 예정 창조가 있는데  창조에는 그것을 하나 가지고 둘을 합해서 하나를 만들고 열을 합해서 하나를  만들고 하나를 가지고 열 쪼가리 스무 쪼가리로 쪼개고 자꾸 이렇게 이래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하나님의 섭리요 이것을 또 없는 가운데서 하나의  새로운 이름이 생겨지면 그것은 창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남녀 하나를 두고 아이를 열둘도 낳고 열도 낳고 하는 그것은 사람으로  통해서, 사람이 유전적으로 낳는 게 아니고 아니고 그걸 재료로 삼아 가지고  창조하는 것이라. 창조해서 돼요. 그러니까 인간은 창조입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많이 낳아도 어머니로 유전으로 나오는 게 아니고 그게 창조라 그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요것도 하나님의 작용 조것도  하나님의, 섭리라 말은 하나님이 일하셔 가지고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말이오. 섭리.

 그러면 개미 한 마리가 내게 와서 발을 꼭꼭 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그것도 하나님이 지은 것이요,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와 가지고 하필  내 발을 와서 팍팍 뭅니다. 그것도 예정이요 창조요 하나님의 섭리요,  '이게 왜 나를 무노?' 하는 그것도 내 구원을 위함입니다. 구원을 위함이라니?  거기에서 이게 무니 '이와 같이 너를 무는 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물리면  네가 상한다. 네가 개미에게 안 물리는 것처럼 마귀에게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거기서도, 우리는 이해 못하지마는 그런 저런 모든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 되고, 우리의 지식이 되고, 우리의 경험이 되고 체험이 되는데 이런  것들이 합해져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그러면 오늘 저녁에는 영원하신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당신의 소망으로 목적으로 하나 정하신 것, 이 목적으로  정하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된 목적인데,  그리스도 안에 된 목적인데 우리가 잉태한 우리 고향이오. 우리 본향이오.

우리의 모태요.

 그런데 우리를 기르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했습니다. 또 우리를  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기르기 위해서  창조된 것을 보존하시고 하나님이 섭리하셔 가지고 우리의 구원에 둘을 하나  만들어 필요할 때는 둘을 하나 만들고, 하나를 쪼개서 백을 만들어 필요할 때는  백을 만들고 이렇게, 있는 것을 없도록 없는 것을 있도록 해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이것이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목적하신  자존하신 그분 혼자의 역사로 되어지는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걸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면 이 믿음에서 그다음에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이 나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읍시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가 안 믿는가 자기가 현실을 당할 때에 믿는지 안 믿는지 표가 납니다.

자기 행동에서 표가 납니다. 그때에 '나는 말로 믿는 것이지 가짜 믿음이로구나.

쭉정이 믿음이로구나.' 그러면 믿으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우리는 알고 깨닫고 감사하고 또 회개하고 소원하고  노력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복되게 예정된 것을 걸어가는 방편이요 요것 반대가  멸망으로 예정된 그 예정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저 뒤에도 불 꺼주시고, 가방 다 안에 거머잡으이소. 가방을 저래 냅두면  도적맞습니다. 여기에 어제도 공산주의가 왔어요.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저 붉은  걸로 커다랗게 쓰기를 '물러나라, 백 목사,' 그 벌건 싸인펜을 가지고 문에다  커다랗게 쓰고 여기에도 쓰고 여섯 군데나 써 놨어.

 여섯 군데나 써 왔는데 바짝 정신차려 가지고 기도를 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되지 그리 안 하면 그저 목이 흔들 흔들 합니다.

정신차려야 되지.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 이북이고  소련이고 전부 우리 손에 다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시요. 기도를 많이 하고 어쩌든지 회개하고 독실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참 추수 때가 왔습니다. 좋은 추수 때가 왔어. 큰 수입의 때가 왔어. 모두 다  믿음이 없는 이 세대인데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보라고 크게 들어서 자랑을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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