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13일 토새

 

본문 : 엡 1:7-1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있고 우리 행위가 있는 그 행위를 따라서 되는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있기 전 그 뜻대로 당신이 창조하시는 그대로, 그 뜻대로  창조하시는 그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고 또 우리에게 대한 그의  하나 하나의 예정,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시간과 공간과 종류 이 하나 하나가 당신이 경영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대로  우리의 존재가 되어졌고 또 존재된 우리의 행동이 하나 하나 나타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가 생겨졌고 또 그분이 기쁘신 뜻대로  작정하신 그대로 우리가 한 순서 한 순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체가 있는 것이나 또 우리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또 행동  다음에 행동으로 인하여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실수해서 죄 지을 때도 있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의를 행할 때도 있어 죄의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 자체가 존재한 것도 절대자이신 그분의 뜻대로 그분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셨고, 또 존재한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행동이 되어지는 이것도 그분이  정하신 뜻대로 행동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고, 또 이 행동을 통해서 이런 구원  저런 구원이 이루어진 그것도 그분이 뜻대로 또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의  행동이 되었고 행동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이 정하셨으니  우리가 정해졌고, 또 그분이 창조하시니 우리가 창조됐고, 그분이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영원을 예정 하셨으니 그대로 우리가 예정이 되었고, 또 그분이 행하게  예정하신 대로 능력으로 행하게 이렇게 하셨으니 우리 행동이 이런 행동 저런  행동이 되어졌고, 또 행동케 하신 분이 그 행동을 통하여 우리 구원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천태만상의 그 모든 종류 모양대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면 우리가 있어지는 것, 만들어지는 것, 또 우리가 어떤  종류대로 어떤 힘대로, 모든 존재에 가 보면 이것은 이 면 이 힘이 있고 이것은  저 면이 힘이 있고 그러합니다. 매미는 보면 그것은 아주 작아서 거미줄에  걸려도 그만 뚫고 나가지 못하고 착 걸려 가지고 죽습니다. 작지마는 그것은 또  그게 소리를 내는 데에는 어떻게 힘이 있는지, 저 산만당에서 쪼그만한 게  소리를 내도 그 골짝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그건 또 소리 내는 힘은 또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만드시되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또  특성을 가지되 이렇게 저렇게 특성을 가지도록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만드셔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로 말미암아 시발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주권적으로  되는 일도 없고 또 좁은 범위에서는 되는 것 같지마는 궁극적 면에서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되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 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정하셨고,  정하신 그대로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서 우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루어지는 데는 크게 말해서 죄의 종류도 우리의 행동에 나타났고 의의  종류도 우리의 행동에 나타나서 이 두 가지가 나타나서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만들어 나가십니다.

 죄를 범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를 만드시고 의를 행하는 일을 통해서 만드시고  이러는데 그것이 죄나 의나 갑자기 우리의 행동 여하로 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 환경에 접촉되는 그것이 갑자기 접촉이 그것들의 뜻대로 무엇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이 절대자이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이  뜻대로 예정을 입어 예정 그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존재를 보든지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대로 당신이  존재케 해서 존재한 것이라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되고, 그러면 이렇게 당신  뜻대로 존재케 해서 존재했으면 존재한 이것의, 있게 된 이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목적은 하나님의 첫째 목적인 곧 우리의 구원 이것을 위해서 그것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의 목적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존재된  것입니다.

 그러면 존재된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참 천도 만도 넘은 종류로 이런  종류의 움직임 저런 종류의 움직임이 움직여지는데 그러면 그 움직여지는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움직여지는 것인데 움직여지는 그것이 정한 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그 정하심에 따라서 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정하신  대로 그분이 움직이게 하시기 때문에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의 힘으로, 그분의 뜻으로, 그분의 지능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움직여지면 움직이는  이것이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그 움직이는 그 목적은 곧 하나님의 유일하신  목적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움직이고 존재도  그러한데, 그러면 우리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당신이 혼자 이렇게 만드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고 또 곧 하나님의 형상의 본성인 자유를  우리에게 주셔서 좁은 범위에는 우리가 자유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가 있고, 또  좁은 범위에는 우리가 선과 악을 자유로 선택하고 우리의 그 능동의 힘으로 하는  것같이 보여지지 마는,  그 범위 내에서는 내가 하려면 하고 안 하려면 안 하고, 내가 해서 그 일이  되고 안 하니까 안 되고 하는 것같이 보여지지마는 그 범위선을 넘어서 보니까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조화를 역사해서 하나님이 조화하셔서 그분이 역사함에  따라서 내가 능동이 되어졌고, 내가 원하는 마음이 되어졌고, 또 그 일을 내  힘으로 하도록 내 힘이, 그분이 역사하니까 내 힘이 생겨졌고 내 힘이 생겨져서  내 힘으로 하니까 그 일이 이루어졌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존재를 보든지 또 어떤 움직임을 대하든지 여기에 대한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하신 이대로의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그다음에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을 지금 오늘 아침에 '믿으라' 이러는 것은 이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믿으라'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니고 '믿으라' 이렇게 내가 하는 것이  당신이 영원 전 예정하신 그 예정대로 '믿으라' 하는 그대로 내 입술을 통해서  '믿으라' 증거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예정에는 '믿으라' 이것을 증거하는 데도 있고 또  '믿지 말아라' 하는 것을 증거하는 데도 있고, 또 동시에 죽는 것도 예정해서  죽는 일이 이루어지고 또 출생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별별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데,

 그러면 여기에서는 이게 이루어지고 저게서는 저게 이루어지고, 이 사람에게는  이것 저 사람에게는 저것 모든 것이 각각 이루어지는데 그 이루어지는 것을 크게  말하면 어떤 종류들이 이루어지느냐? 두 가지 종류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는 멸망을 이루기 위해서 '멸망은 어떻게 하면 멸망이 된다' 하는 멸망을  당신이 예정하신 그대로 멸망이 하나씩 둘씩 그 순서로 이루어져서, 세포적으로  말하면,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말하면 '이 개인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알고 또 깨닫고, 아는 것도 잘못 알았고, 깨닫는 것도 잘못 깨닫고, 또  원하는 것도 잘못 원했고, 노력도 잘못 노력했고, 이래 가지고 결과가 잘못 맺어  가지고 저 사람은 멸망이 이루어지되 요것은 세모잡이 멸망으로 이루어졌다,  요것은 열모잡이로 이루어졌다, 요것은 기단한 멸망으로 이루어졌다, 요것은  납작한 멸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이 그 종류대로의 그 멸망이  이루어져 나가는 그 역사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은 요렇게 요렇게 해 가지고 이런  구원이 이루어졌다' 또 요 개인으로가 아니고 '서부교회라는 교회는 요렇게  요렇게 해 가지고 서부교회라는 이 교회는 구원을 이렇게 이루어졌다.' 또 '한국  교회는 이렇게 이렇게 이 뭉텅이, 한국 교회라는 요 분자는 요 덩어리는 이렇게  이렇게 움직여 가지고 한국 교회의 구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 어느 시대는  '이 시대는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것이 이렇게 이렇게 그  시대의 교회는 움직여 가지고 이런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래서 마지막에 종말로는 '역사에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이런 한 멸망의  뭉텅이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곧 지옥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있는  이것들이다.' 또 하나는 '이렇게 그 세포가 여러가지 세포가 있어 우리 한  몸에는 수많은 세포가 있고, 세포 위에는 수많은 지체가 있고, 지체 위에는  하나의 몸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이 세포된 것들이 이렇게 이렇게 움직여 가지고  천국의 하나님의 목적인 이 한 구원이 이루어졌다' 하는 이것으로서 이것을  목표로 하고 이루어 나가고 있는 모든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크게 말해서 수많은 종류대로의 종류가 있는 것이 있고, 수많은  움직임의 종류의 것들이 있고, 그럼으로 수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졌는데  그 모든 것을 종말로 만들어져 가지고 완성된 것을 보니까 하나는 유황불  구렁텅이의 영원한 사망의 지옥의 것이 이루어져 가지고 있고 하나는 영생인  천국의 것들이 이루어져 가지고 있다, 이렇게 그 결과는 될 것을 주님이 말씀을,  우리가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큰 것, 하나님이 제일 크시고 그분이 스스로 혼자 계셨고,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게 아니고 그분은 스스로 있었습니다.

 그분 외에는 스스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 외에는 '이 사람은 이  사람으로 인해서 생겨졌다. 이 사람은 갑이라는 사람으로 인해서 생겨졌다.

갑이라는 사람은 또 그 위에 김이라는 사람을 인해서 생겨졌다. 그 김이라는  사람은 또 이이를 인해서 생겨졌다. 무엇으로 인해서 생겨졌다. 이 사건은  무엇으로 인해서 그것 이 생겨졌다.' 모든 것이 원인이 있지마는 하나님만은  원인이 없습니다. 그분이 스스로 영원 전 홀로 계셨습니다. 아무것으로 인하여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그분은 계셨습니다.

 그분이 계신 것은 스스로 계셨고 또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계 것이나  물질계 것이나 있어진 존재한 것도 그분 한 분의 지음으로 인해서 그분에게  지음받아 가지고 있게 됐다.

 또 영계나 이 물질계, 뭐 공중에 무슨 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나 비바람 또  지금 20세기에는 원자 발명이 돼 가지고 달나라에 갔다고 손뼉을 치고 떠들어  쌓는 그런 것이나 그게 다 움직임인데 그 움직임 그 전부가 다 그분 한 분의  경영하신, 설계하신, 그분 한 분이 소원하셔 가지고 설계하신, 곧 그분이  예정하신 그대로 그분 혼자 이 모든 것을 성취해서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존재는 그분 한 분으로 인해서 존재하고 움직임은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데 보니까 한 군데 보니까 존재한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이 어리석은 자들,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 하나님 믿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약해지고 우리 나라는 약해진다. 공연히 하나님이 있다고 이래 가지고 뭐 선이니  뭐 사랑이니 용서니 참음이니 이래 가지고 우리 나라가 강하게 하는 이 주장대로  악도 쓰지 않고, 독도 쓰지 않고, 잔인도 쓰지 않고, 꾀도 쓰지 않고 이래  놓으니까 이 나라가 약해진다. 어리석게 하나님 어데 있노? 공연히 어리석게  죄임 받아 가지고 저 사람이 칼로 가지고 찌르려 해도 아이쿠 그러면 안 된다  손만 내밀어서 막기만 하지 마주 찌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상 가지고 우리  나라가 망한다. 약해서 민족 위해서 아무짝도 못쓰겠다.'  이러면서 '너거가 말하니 어리석게 하나님 어데 있노? 너거 마음이 너거가  공연히 이러고 생각하고 너거가 공연히 유혹받아 가지고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된다, 의롭게 살아야 된다, 사랑으로 살아야 된다, 이렇게 너희들이 말하는  것이지 어데 하나님이라 하는 존재가 참말로 있는 줄 아느냐? 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봐라, 우리 대포가 얼마나 지금 멀리 가고 올라가느냐? 이제는  어리석은 너거들이 생각하고 있는, 없는 것을 공연히 사상적으로 한 이 하나님을  대포로 쏴볼 터이니까 죽지 않는가 봐라.'  대포를 쏴 가지고, 쏴 놓고 '이제는 죽었다. 이제는 없어졌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전혀 없다.' 한쪽 귀퉁이 한쪽 구석에 가 보니까 막 그래 쌓아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하나님 없다고 야단을 지겨 쌓습니다.

 지겨 쌓는데 그걸 보니까,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하나는 그렇게 떠들어 쌓고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렇게 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래 자꾸 떠들어 쌓고, 또 한 군데는 가니까 한 군데는 보니, 내나 그분이  만들어 놓은, 모두 만들어 왔는데 만든 건데 여기에 보니까 이것 히틀러가  이렇게 하고 있고, 스탈린이 또 이래 하고 있고, 김일성이가 이래 하고 있고, 한  군데는 '우리가 죽어도 죄는 지어서는 안 된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된다. 천국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에 자존하시다.' 이렇게 해 쌓고,  만드신 것이, 그 만드신 것이 하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현재의  상태대로의 이 세상이 되어져 있는 이것이 이 한 분이 만드셨는데 이 만든 것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어서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그 범위에서, 또 어떤 것은 거기에서 보고 '히틀러가 제일 크다.

스탈린이 제일 크다. 김일성이가 제일 크다. 또 뭐 누가 제일 크다.' 이렇게  하면서 그 범위 내의 지식만 알고, 그 범위 내의 지식만 알고 그 범위 내에만  보고 하는데 그 지식은 그 범위 울타리 밖을 내다보니까 그 밖에서 보니 이분이  지어 놓은 것인데 그게 그래 지었기 때문에 그래 지은 것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만들어졌고 반대하는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을 그 범위 내를  그들은 모릅니다.

 모두 말하는 것이 그 범위 내의 것만 알지 그 밖의 것을 모르는 데, 또 한  군데는 가니까 다 같은 조그만한 존재가 보니까 그 범위가 넓은 범위를 알고,  역사의 범위를 뛰어넘고 역사 범위 밖의 것을 알고, 또 이 우주 밖의 것을 알고,  영계 밖의 것을 알고, 또 이 모든 존재의 근원을 알고, 모든 존재의 근원자이신  그를 알고 그와 또 연결을 가졌고 그로 인해서 움직이는 자도 있고, 이러니까  존재 가운데는 천태 만상입니다.

 굉장히 종류들이 많은데 그것을 한 말로 말하면 영원 자존하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 원하시는 뜻, 사랑의 본성들이, 자존하신 그 분과 자존하신  그분의 속성이 -속성에 능력도 들었는데-속성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목적은 뭐이 무슨 목적이냐? 당신같이 거룩하고 온전하고 깨끗해서 당신의 몸,  당신의 몸같이 되는, 당신의 몸같이 되는, 하나님 당신은 머리요 이 목적은 그  머리에 속한 몸,  우리도 이 두뇌에, 두뇌에 모든 조성이 되어 있는 이대로 이 몸뚱이는 따라서  움직여, 보니까, 뭐 말 들어 보니 이 두뇌에 조그만한 신경 하나로 인해서  뻐등개 다리도 되고, 공사도 되고, 반신불수도 되고, 또 그 몸뚱이가 완전히,  병신만 아니라 정신도 이상자가 되어지고, 그러면 이 머리 생겨진 대로 작용하는  대로 몸뚱이가 따라서 작용하는 것처럼 자존하신 이분이 역사하심을 따라서  그분의 몸과 같이 그분을 따라서 움직여 작용하는 그 작용이 있으니 그게  뭐이냐? 당신이 목적으로 정하신 그 목적이라.

 이 목적은 당신의 몸과 같이 되어지는 이런 것을 만드셔 가지고 당신이 없는  가운데 지으신 모든 것을 당신이 직접 관리하심같이 당신이 만드신 이것들이  관리를 할 수 있어 당신은, 당신이 만드신 것 곧 뭐이냐? 목적, 목적 뭐이냐? 곧  하나님의 교회인데,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만 하나님 노릇 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하도록,  그러면 그들은 교회를 하나님으로 보고 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은 교회에게 무엇을 주시고 교회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무엇을 줘 가지고  하나님의 충만이 그 모든 것들에게 가 가지고 충만하게 되어지도록 이렇게  역사하시려고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존하신 그분의, 자존하신  속성들이 목적을 정하셨고, 이 자존하신 그분의 속성들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심으로써  합했다가 나뒀다가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거기에서 무신론자도 만들어 놓고,  유일신자도 만들어 놓고, 또 하나님을 있나 없나 부정 긍정의 머뭇거리고 있는  자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계신다고 확정하는 확신자도 만들어 놓고, 또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는 자도, 하나님을 반 믿고 반은 안 믿고, 조금  믿다가 낙심하고, 낙심하다가 또 믿고, 이 천태만상의 모든 것들을 다  만들었는데,  자기가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하나님 없다고 무신론을 주장하고 반대를  하고 하나님의 도를 훼방을 하고 하지마는 그것이 아주 무신론, 또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인데 그것이 마지막에 한 순간, 한 한  시간, 혹은 십 분, 흑은 이 십 분, 거기에서 그걸 홱 벗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믿도록 만들어 놓은 것,  뭐 하나님이 요렇게 만들고 조렇게 만들어서 우리의 구원도 천, 만, 억억만도  넘는 이런 종류로 만들어 가지고 만들었는데 요것만 보니까 요거는 빼족하고  조것만 보니까 동글동글하고 하지마는 이 모든 것을 종합을 해 보니까  하늘나라라는 이 하늘나라가 이루어졌다. 또 이것은 지옥이라는 것이 지옥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한 말로 말하면 뭐이냐?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이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님이라 또 저러한 하나님이라' 하나님을 나타내서  나타내는 역사요, 하나님의 속성이 이것을 지어서 하나님의 모든 면을 나타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것을 받는  것이요,  그리하여 마지막에 종말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으로 인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를 섬기고, 그를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고, 그를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자존하신 당신과 당신의 속성대로의, 그 분의 속성은 나쁜 것이 없고 그분의  속성은 다 좋고 옳은 것인데 이 좋고 옳고 이 충만한 이것을 피조물들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아낌없이 마구 다 주어서 전체가 당신 되는, 전체가 당신같이  되어지는, 교회가 당신같이 되어지고 또 모든 만물이 당신같이 되어져서 당신의  형상대로 되어서 저 말단에 있는 것도 보니까 꼭 당신 같고, 중간에 있는 것도  당신 같고, 전부가 당신과 꼭 같은 당신 형상만 있고 당신의 움직임만 있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당신으로 인한 것이 당신과  사상도 소원도 뜻도 욕심도 성품도 꼭 같고, 행동도 꼭 같고, 모든 결과도 꼭  같이 만들어지는데 거기에는 보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이질의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다른 것이 없고 하나님이 움직이시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전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고 그 전체는 하나님과 똘똘 뭉쳐서  하나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고 이래서 하나님과 그것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머리로서 천국은  하나님의 몸으로서,  머리와 몸이 우리가 이것이 여러 세포로 된 것이지마는 그 한 뭉텅이로 모든  신경과 근육과 혈관과 모든 그 희로애락이 꼭 하나되는 것, 그러면 자기가 기쁠  때에, 기쁠 때에 얼굴도 같이 기뻐하고, 기쁠 때에는 손도 누글누글하고, 기쁠  때에는 발바닥에 피가 벌거이 활동해 통하고, 또 고통될 때에는 마음도 고통,  얼굴도 고통, 심지어 발가락까지 딱 오그라져 가지고 꼼짝을 못하고 이래  고통되는 이 전체가 한덩어리인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되어지는, 이 이질의 것이나 자존의 것이나 독립의 것이나 능동의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한 분으로 되어지는 이것을 이루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된다" 그말은 전부  그것이 다 제사장적이요 선지자적이요, 요 물건은 요 물건에게 제사장 노릇  하고, 요 물건은 조 물건에게 제사장 노릇 하고, 요 물건은 조 물건에게 선지자  노릇 하고, 조 물건은 조 물건에게 왕노릇 해 가지고, 요것은 그것을 통치하고  그것은 조것의 통치를 받아 또 하고 해서 이 전체가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한 것이  하나님 한 분의 속성대로 이루어져 하나님 한 분의 형상대로 되어져 영생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요한계시 21장에 해 왔는데 요한계시 21장을 잘못 알고 해석을  하면 천태만상의 이단들이 나옵니다. 잘못 깨달음의 이단들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하늘나라는 전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화된, 동화된, 그 형상대로  거룩하게 변화된 것들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이질의 것이 하나도 없고 다른  모양의 것이, 종류는 그대로 있지마는, 종류는 다 그대로 있지마는 거기에 있는  모든 만물도 다 속성이나 모든 것이 그대로 돼지고,  이래서 로마인서 1장에 보면 요 풀 한포기나 이 만물 이것이 가지가  삐쭉삐쭉하고 나오고, 뿌리에서 양분을 보내 주고, 또 잎사귀가 나오고, 열매가  맺고 하는 그것이, 그것이 다 뭐이냐? 하나님의 속성대로 그것이 만들어졌다,  속성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면 이 나무 한 개에 대한 이  본질 본성을 보고 알면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볼 수 없는 것은 그의 속성이신데 그의 성품이신데 그것은 만물을  보아서 알지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와 정반대로, 그와 정반대로 하나님과 정반대의 것이 만들어져 가지고 있고  하늘나라 만들어진 것같이 하나의 세포도 하나님과 맞은 것 없고 전체가  하나님과 이질적의 것으로 만들어져서 그것이 하늘나라에 생명과 행복이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사망과 고통이 있도록, 사망의 뭉텅이 고통의 뭉텅이로  이렇게 만들어지도록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지옥이라.

 그러면 지옥은 뭘 하는 곳이냐? 지옥은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서 그분에게  요렇게 반대하니까 요래 돼졌고, 요렇게 부정하니까 요렇게 돼졌고, 요렇게  거역하니까 요렇게 돼졌고 해서,  하나님을 요렇게 조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에게 반대가  되어지니까 요런 것이 조성됐다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하니까 요런 종류, 요것은 요래 반대했기 때문에 요런 종류의  비참이 생겨겼고, 요것은 조렇게 거역했기 때문에 그대로의 조런 종류의 비참과  사망과 가련이 생겨졌다 해서,  그것은 지옥은 하나님을 거슬림으로써의 '거슬린 것은 이렇게 되어진다.'  그것은 거슬림으로써 '하나님을 거슬릴 때에는 이렇게 된다' 하는 것으로,  그분은 당신에게 거슬려지는 것은 다 이렇게 돼진다. 당신에게 화합되어지는  것은 이렇게 되어진다.

 이래서 하나는 하나님의 멸망면을 증거하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 면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조성의 지옥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간 지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을 우리가 알게 됐습니다.

 알게 된 것이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서, 밝혀서  옳고 바른 것을 우리가 하나씩 듣고 보고 해서 지식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참에 옳음에 이렇게 속해서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또 지식을 받아 가지고 우리 속에서 작용을 해 가지고 깨달아지는 그것은 내  안에 와 가지고 내가 주체가 돼 가지고 깨달아진 건데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은  넓은 범위 안에서는 당신이 역사하셔 가지고 내라는 주체가 생겨지고 주체  생겨진 이것이 듣고 보고 하는 데에서 아는 그 지식에서 깨달음이라는 이  깨달음으로 하나 또 새 움이 나왔습니다.

 깨달음에서 거기에서 뭐이 나오느냐? 깨달음 거기에서 또 감사가 나옵니다.

깨달음 거기에서 '아, 이렇게 됐구나. 이래 됐구나' 하는 것을 감사가 나옵니다.

 또 감사만 나오는 게 아니라 또 보니까 배우고 알고 지식하고 깨달음으로  인해서 감사가 나온 다음에는 또 회개가 나옵니다. '아, 이것 잘못 됐습니다.

고치겠습니다.' 또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회개 나오는 것이 제가 회개하는 게  아니라 이분이 한 분이 능동적으로 이렇게 영원 전 작정하신 그대로 당신의  능력으로 섭리 성취해 가지고 아는 지식이 나오고, 또 깨달음이 나오고,  거기에서 감사를, 알게 돼서 감사 '아, 이것 하나님으로 이렇게 됐구나.'  감사하는 감사가 나오고, '아이구 이리 해야 될 터인데 이게 잘못됐다.' 회개가  나오고, 또 거기에서 소원이 나오고, 또 거기에서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이  나오고, 또 그 노력을 통해서 어떤 구원이 하나 조성되어지고, 이렇게  외부적으로 보면 이렇게 나오나 저 속에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되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데, 그러면 예정된 구원이 우리에게 성취될 때는 이 방편으로 됩니다.

지난밤에 마지막 끝에 간단하게 말한 그대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에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알게, 우리의 주관이라는 이 주관이 당신이 만들어서  주관이라는 이 주관이 생겨졌는데 이 주관에 나타나면 벌써 저 먼데서부터  수많은 경로를 통과해 가지고 내라는 주관이 생겨졌습니다. 주관이 생겨져 이  주관에게 벌써 와 가지고 나타나는 이 구원 이것이 우리가 알게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우리 구원이 성취돼 나가는 것인데 우리 아는 범위 내에서 성취돼  나가는 그 종류가 순위가 어찌 되느냐?  그것이 첫째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가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자 하나 그들의 귀를  가리웠고 눈을 가리워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만져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너거 귀는 복이 있고 너거 눈은 복이 있다. 너거는 듣고 또  들어서 알고 보고 또 보아서 안다" 하는 그것이 이제 멸망할 자와 당신이  움직이는 그 움직임에 하나는 움직임으로써 들어도 듣지 못하고 미련으로 자꾸  나오고 반대를 하고 하나는 들어서 바로 알고 깨달음으로 나가는 그 분기점을  가리켜서 나타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고, 그다음에는 아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또 만들어 가지고 주관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 아는 데서 또 나옵니다. 많은 지식 가운데서 '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여기에서 이래 해야 되겠다는 그 깨달음이 나오는 것은 지식에서  새 움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새 움이 나왔습니다.

 지식에 깨달음에서 거기에서 또 새 움이 하나 또 터져 나옵니다. 새 움이 터져  나오는데 그것이 뭐이냐? 감사가 나옵니다. 자기가 깨달아졌으니까 '아이구,  이것 참 감사합니다.' 그 감사하도록 만들어서 그것을 깨달아 감사합니다.

 또 감사함에서 또 거기에 한 움싹이 나왔으니 또 회개가 나옵니다. '아이구,  이것 잘못됐구나. 주여, 잘못됐습니다. 자복합니다. 이거서 용서해 주옵소서.'  이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또 그다음에 무엇이 나오느냐? '나는 이래야 되겠다. 나는 이래야  되겠다.' 소원이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예정대로 되어지는  것인데 참 복되게 예정이 됐으면 좋겠다.' 이 소원이 나옵니다. '나는 복되게  예정이 됐으면 좋겠다.' 하나는 또 있다가 '예정은 무슨 놈의 예정?' 또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주여, 나를 어쩌든지 복된 자 되게 해주옵소서' 또 이  소원이 나옵니다.

 하나는 이런 소원이 나오고 하나는 저런 소원이 나오고, 하나는 조금 소원이  조금 나오다가 그만둬 버리고, 하나는 소원이 중간까지 갔고, 하나는 끝까지  소원이 가고, 하나는 하나 소원하고 하나는 둘 소원하고 이 소원에도 수많은  종류들이 생겨서, 하나님이 이렇게 아는 지식도 다르고, 하나는 소원하는데 땅의  것을 소원하는 자, 하늘의 것을 소원하는 자, 전체 면으로는 하늘의 것을  소원하지마는 개별체로 현재 현재는 땅의 것을 소원하는 자, 또 이 사람은 한  시간도 땅의 것은 소원하지 않고 위엣 것만 소원 해 가지고 돼지는 자, 이  소원도 천태만상이라 그말이오.

 이 소원이 거기에서 나오고, 소원이 나오니까 자기가 소원을 나왔는데 소원은  같은 소원인데 같은 소원에서 하나는 '이 소원이 됐으니까 내가 힘대로 내가  한번 해서 이루어야 되겠다' 하고 자기가 하면 되는 줄 알고 하는 그것이 예를  들면 펠라기우스주의 같은 그런 주의는 하면 된다는 그렇게 알았는데,  또 '이것 안 줬다. -깨달아 가지고-그것은 하는 것은 반은 하나님 반은 또  우리가 사람이 해야 된다.' 요한 웨슬레주의 같은 그런 게 나옵니다.

 그것 또 '아니다. 소원도 당신이 주었고 또 소원대로 이루시는 이도 당신이  이루신다. 이러니까 주여 이루어 주시옵소서.' 또 간구하고 소망하면서 그로  인해서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노력하는 자도 있고, 깨달은 데까지는 바로 깨달은  데 왔는데 깨달은 데까지는 바로 온 바른 깨달음에서도 천 종류 만 종류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져 가지고, 그 일이 또 이루어지고 나니까 어떤 것은, 이루어지고 나니까  '내가 하니까 됐다. 내가 하니까 됐다.' 이러는데 다른 사람이 와 가지고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수염을  쓰다듬는 것같이 '참 예, 뭐 그렇게 뭐 크게 위대할 게 뭐 있습니까?' 제가 한  척하고 또 이렇게 이래 인사를 떡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래 해 놓고 '위대합니다.' 이래 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그렇게  했지 그뭐 내가 어데 뭐 힘이 있어 그래 했습니까?' 그러면서 슬그머니 영광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있다가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뭐 내가 저  무신론자나 다를 게 뭐 있습니까? 당신이 이렇게 만드셨으니까 내가 이  만들어졌지. 그건 털끝만치도 내가 스스로 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됐습니다. 영광은 하나님에게 돌리십시오.' 또 이런 자도 있고, 다  같이 만들어진 거기에 또 그다음도 천태만상의 종류로 이와같이 되어진다  그거요.

 이래서,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은 저렇게 되어졌는데 나는 과거를 보니까  이렇게 되어졌으니 저 사람은 영광되게 되었고 나는 영광이 적게 만들어졌다'  이러는데, 하나는 '영광이 적게 만들어졌다' 이러는데, 꼭 같이 만들어진 그  중에서 또 하나는 있다가 '이것이 모든 것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전지전능의 뜻이 우리를 목적하신, 이렇게 귀하게 목적하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영광이 되게 우리의 구원이 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좋다. 이것도 하나님의 전능의 지혜로 했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눈이 됐든지, 코가 됐든지, 이가 됐든지, 하필 모든 것을  짊어지고 돌아다녀야 되는 발바닥이 됐든지 어쩌든지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됐기 때문에 감사하다.' 또 그게 또 그 종류가 또 그렇게 말하는 종류도 또 있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 구원이 우리 구원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인데 우리 구원이  이루어져 나가는 요 과정을 말하면 아는 것, 그다음에는 깨닫는 것, 그다음에는  감사하는 것, 또 그다음에는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 그다음에는 소원하는 것,  그다음에는 또 노력하는 것, 그 다음에는 감사하는 것, "면류관을 벗어서 주께  이와 같이 던지더라" 감히 가지도 못하고, '모든 이루어진 것은 모든 승리는  주님이 혼자 하셨구만' 하여 그 영광을 주께 돌리는 그것이 마지막에 또  결말이라 하는 것을 두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것이 순서가 앞서고 뒤서고, 요 둘이 합하고 서이 합하고, 이제  이 모든 것이 다 똘똘 뭉쳐 합해지고 이래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움직임에서 이 원줄기에 여기에와 연결을 끊은 믿음 없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야 됩니다. 어떤 존재를 대할 때에 우리는 믿음 없는, 이  믿음을 떠나서 우리가 생각하지 않아야 됩니다. 자기가 만들어진 그 자기에게  대해서 평가하는 여기에 대해서 이 믿음을 떠나 가지고 자기 단독대로의  평가하고 비판해서 자기가 희로애락을 가지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제일 근본인 자존하신 그분,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 자존하신 모든 속성 지능이 제일차로 목적을 정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존하신 분의 역사로 예정, 창조, 보존, 섭라, 예수님의 대속, 또  대속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서 중생, 성화, 영화 이렇게 나아가는 것인데,

 우리를 만드실 때에 뭐하려고 만들었느냐?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분이 정하신 그대로 우리가  입고 있어. '예정을 입었다' 예정대로 된다 그말이오.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게 하였으니" "기업이 되게 하였으니"  기업이라 말은 우리 기업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셨으니' 그말은 하나님은 우리만 당신의 기업으로, 우리만 당신의  사업으로, 기업이라는 것은 어떤 걸 기업이라 하느냐 하면 사람이 이 사람은 이  기업을 가지고 산다 저 기업을 가지고 산다, 그 기업이 자기의 생활에 모든  전체에 소유입니다.

 '그 사람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그 사람은 큰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사람은 논을 몇 마지기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사람의 그뭐 기업은 아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지.' 그것 가지고 먹고 산다 그말이오.

 그러면 기업이라면 자기라는 존재에 심신의 기울어지는 노력의 장소요, 노력의  대상이요, 그것만 보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보고 노력을 하고 '그  사람은 기업이 뭐이지?' '그 사람은 아무 데서 상점을 하나 차리고 있지. 그것이  그 사람의 기업이지.' 그러면 그 기업이라 말은 그 사람의 심신은 그 상점에 다  투자하고 또 그 상점의 수입 가지고 자기는 먹고 살고 한다는 그말입니다. 그걸  기업이라 하는 것인데.

 우리를 당신의 기업이라 그말은 자존하신 이분은 우리 위해서 전부 기울이고  우리로 인하여 당신은 산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이것이 큰  말입니다.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은 무슨 말이냐?  우리를 제사장 성질로, 선지자 성질로, 왕 성질로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이것으로 존재하고, 이것으로 활동하고, 이것으로 열매 맺도록 이렇게 한다  말이오. 보니까 우리는 제사장으로 삽니다. 선지자로 삽니다. 왕으로 삽니다.

 이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삶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우리를 또 소망하게 하고 소망한 걸 또 이루어지게 한다 말이오.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광은, 영광은 잘했을 때에 '아이구, 영광이다.' 잘못했을  때 욕입니다. 욕의 반대가 영광입니다. 욕의 반대가 영광이오.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우리가 그 영광을 찬미하도록, 그  영광을 우리가 찬미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체가 그의 영광을 찬미하는  찬미가 되게 한다.

 그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이렇게 이렇게 만드는데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만들어서 만든 것은 만든 이것을 볼 때에 '그분은 참  깨끗한 분이다. 그분은 참 거룩한 분이다. 그분은 사랑의 분이다. 그분은 완전의  분이다.'  우리 만들어 놓은, 우리 만들어 놓은 우리를 보고 그분의 솜씨가 능한 것과,  그분이 사랑의 분인 것과, 자비의 분인 것과, 인자의 분인 것과, 모든 존재가 볼  때에 우리로 말미암아 그분이 얼마나 완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다는, 우리 보아  그분에게 칭찬이 돌아가고, 영광이 돌아가고, 찬송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시기 위함이라.

 그러면 우리 자체가 어떠한 자체가 되어지겠느냐? 우리 자체가 그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이 만드셨다. 그러면 잘 만듭니까 못 만듭니까,  저분? 어떻소? 잘 만들었소 못 만들었소? 어떻게 우리를 만듭니까? 우리의  완성품은 조성품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떤 것이겠소? 자, 그것이 미숙한  것이겠소 아주 능한 것이겠소? 악한 것이겠소 사랑한 것이겠소? 추한 것이겠소  깨끗한 것이겠소?  하나님의, 하나님의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그 속성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그 원형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그 본체가,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그  원형이, 우리가 만들어진 것은 그와 꼭 그의 모형이요 그의 본체의 모형체로  그분과 꼭 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를 보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돌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다.

 그러니까 우리를 그 목적대로 당신의 완전같이 우리를 완전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셔 가지고 친히 당신이 와서 십자가에  못박히셔 가지고,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당신이 대속해 가지고 대속한  것을 요렇게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죄 없는 것으로 만들고, 요거는 완전한 의로 만들고, 하나님과 완전히 결합이  돼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요 결합을 당신이 대속으로 이루시고 이루신 요것을  실상으로 이루시는 지금 단계가 지금 단계 요 대속하실 때에 이 일을 대속하실  때에 완성한 그 능력자이신 성령의 지극히 큰 능력이 이 대속함을 받은 자를  실상으로 완전케 만드는 이 역사를 하시는 것이, 처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그 능력이 지금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해 가지고 이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근본을 잡고 저 목적을 잡아야 됩니다. 근본을 잡고 목적을  잡고 이 둘을 뽈끈 잡아야 됩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자존, 하나님의 자존의  사랑, 사랑이 와서 이랬는데 자존이 뭐 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를  만들려고 이 자존자가, 자존의 사랑이, 자존의 기쁨이, 자존의 뜻이, 자존의  모든 속성의 지능이 목적을 정하시고,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이것들을  보존하시고, 개별 섭리 이렇게 저렇게 모든 것을 하는데 뭐이냐? 목적을 정한 이  목적 달성하는 것이니 이 목적이 달성이 됐을 때에는 이것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영광의 찬미 뭉텅이라.

 이렇게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근본은 이 근본이  우리의 구원의 근본이요 우리는 그 중간에는 이해 못할 것도 있고 비참한 것도  있고, 저주 같은 것도 있고, 잘못 알면 원망스러울 것도 있지마는 뿌럭지는 이런  뿌럭지를 가지고 마지막에 완성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니 이것을 바라보고  이것이니까 이 뿌럭지의 힘을 얻어 가지고 이 목적인 이것을 향하여서 달려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중간에 낙심이 없어.

 이 둘을 잡으면 중간에 낙심은 없는 것이고 이것 감사할 것뿐이고 소망뿐이고  이제 기뻐서 노력할 것뿐이고,  이러기 때문에 아는 것, 깨닫는 것, 감사하는 것, 회개하는 것, 소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또 그것이 또 되풀이 하고 되풀이 해서, 이 뿌럭지를 잃으면 안  되고 이 뿌리에, 하나님의 이 크심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이 목표를 향하여서  가는 것이니까 그 중간 과정은 이런 것 저런 것 있지마는 조부랍게 그렇게  생각하지를 말라 그말이오.

 조부랍게 '이거는 뭐, 이거는 저주다 멸망이다.'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죄에  빠졌을 때에도 이 뿌럭지에 그 동기와, 동기가 그러하고 목적이 이것이기 때문에  동기에서 당신이 친히 섭리해 간지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 '나에게는 이  실수에 떨어지게 됐는데 이것 뭣 때문에 이런지 모르겠다. 이것도 예정이다. 뭣  때문에 이런지 모르겠다. 그러면 여기에서 내가 이 어떻게 하면 죄에 빠진다는  이것 이 죄에 빠지면 그 결과가 어떻게 비참하다는 것 이것을 나에게 또 하나  개별적으로 알게 해 가지고 이것을 온전을 이루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니 잘된  데서도 잘된 그것으로 다라고 생각지 말고 못된 데서도 못된 그것을 다라고  생각지 말고, 못된 이것도 영원한 원대한 목표를 두고 향하는 중간 지점에  없어서는 안될 한 순서이니까 이것 뭣 때문에 있는가?'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어떤 자는 그걸 깨달아서 거기에서 '아이고, 내가 이것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렇겠습니다.' 하는 그자도 있고, 또 어떤 자는 거기에서 깨달아서 '이것을  뭣 때문에 이와같이 줬느냐? 이것은 과거에 이렇고 이렇고 이리 돼서 이리  되니까 이게 탈선이 돼 가지고 이렇게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까 그  범위가 넓어서 이렇게 주의를 해야 되겠다.'  또 어떤 자는 볼 때에 그게 아니고 '영원 자존에서부터 목표까지 달성하니까  이것이 거기에 가서 양쪽을 늘여뜨려서 비추어 보면 이게 어떤 것이 되겠다.'  이래 생각할 때에 그것도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거기에도 겸손하고,  거기에서도 소망이 넘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왜 이 말씀을 하는고 하니 오늘 믿는 사람들이 너무 조부랍고  동가리라, 동가리. 이 큰 것을 알지 못하고 토막 토막 동가리에서, 그  동가리에서 어떤 자는 제가 좀 잘하는 척하고 뭣 잘났다고 떠들어 쌓고 어떤  자는 그만 또 낙망하고,  낙망하는 자는 그자는 떠들을 자요 제가 잘난 척하고 떠드는 그 자는 반드시  그다음에 낙망할 자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것 떠들었으면 그다음에는 낙망한  것이 있어야 이것이 조화가 맞아 가지고 이래 나가기 때문에 섰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지고 크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작은 자가 되어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하나님의 이 절대성인 이 완전하심과 하나님의 목표를 우리가 알고  어떤 존재를 대하든지 그 존재 대할 때에 내라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참 입으로는 '이것도 내 구원을 위해서 사랑의 주님이 만드신 것이다.'  말로는 이래 하지마는 그게 정말로 사랑의 주님이 만드신 것으로 인정이 어느  정도 되는지? 사랑하신 주님이 만든 것이라면 나에게는 선물이니까 얼마나  반갑겠소?  사랑하는 참 정말로 사랑하는 남편이 겉어머리 똥이 묻은 것을 한 뭉텅이  줍니다. 그래도 그분이 줄 때에는 '이것은 반드시 이분이 나를 사랑-첫째는  가치가-사랑함으로 나를 좋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이고 나를 좋아서 준는 것이니까  겉어머리 똥이 묻은 이것도 기이한 뜻이 들었을 것이다' 하고 반가이 받을  것이고, 반가히 받아 가지고 그것을 헐어 볼 것이고, 헐어 보니까 이상한 게  있어도,  보니까 선물인 줄 알았더니만 그것 소똥이 한 덩어리 싸였습니다. 싸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소똥이 싸여 있네.' 성낼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견디지 못하는 내 남편이 이걸 주는 것 보니까 나한테 무슨 연애를 하려고, 무슨  지금 장난을 하려고, 무슨 재미를 하려고 뭣 때문에 지금 나한테 이렇게 하는지'  그 소똥 볼 때 당신이 그것을 싼 그것이 재미가 있고 기쁘고 지금,  인제 '그러니까 나도 이 남편에게 그러면 나는 말똥을 싸서 하나 드릴까?'  이러면서 그게 재미가 있고 기쁘고 그렇지 거기 대해서 그 단편적으로  놀라지거나 원망되어지거나 '에, 나를 사람 같잖이 여기네.' 그렇게  경거망동으로 이렇게 될 수 없다 말이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당신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든든히 믿고 이  모든 것을 다 그분을 믿음으로 인해서 다 소화가 되어지고 해결되어져서, 그분이  10년 동안 암흑 가운데 집어던져 둬도 요동치 않고 그분의 사랑을 믿고 바라보고  하는 이것을 원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부랍지 말아야 됩니다.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복이 '좋게 예정됐다.' '예정된 걸 뭘 봅니까?'  다른 사람은 그 옳은 것을 듣지 못하는데 듣는 그것이 벌써 좋게 예정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옳은 걸 들을 때에 깨달음이 없는데  깨달아지는 그것이 벌써 좋게 예정된 것이 나타났소. 또 깨달았는데 깨달음만  하고 마는데 깨달음으로 감사가 나오니까 그것도 더 좋게 예정된 것입니다.

감사만 나오면 넘어지겠는데 또 잘못된 것 이것을 회개가 나오니까 더 좋습니다.

그러면 회개에서 머물고 감사에서 머물고 말 터인데 거기에서 또 깨달아 가지고  또 소원이 나오니 이것 더 좋소. 소원이 나오고 난 다음에, 소원이 나오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예정이니까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는 자도 있는데 소원이  나오니 '이것 하나님께 어쩌든 간에 내가 이 있는 힘을 다해서 해야 당신이 도와  주실 것이다.' 하고 또 열심을 내서 또 하는 자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천태  만상입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복있는 자는 아는 데서 더 알고, 더 깨닫고 더 깨닫고, 더  감사하고 더 감사하고 자꾸 감사가 나온다 말이오. 더 감사하고 더 감사하고, 더  회개하고 더 회개하고, 또 더 소원하고 더 소원하고, 더 노력하고 더 노력하고,  이것이 보이지, 알지 못하는 예정이 지금 나타는 것이요 미래에 어떻게 예정이  되어 있는지 모르나 그것이 복된 예정이 되어 있는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현재  이것이 복된 예정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그것의 정반대가 그이에게 과거 예정된  것이 복되지 않는 예정으로 나타났고 그 앞에 복되지 않는 예정으로 되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면 멸망도 구원도 현재에 그 사람의 그 상태에서 봅니다. 복 되게  예정됐느냐 나쁘게 예정되었느냐? 같이 듣고도 이는 어떤 사람은 '나에게는  복되게 예정이 됐으면 좋겠다.' 이러는데, 어떤 사람은 '복되게 예정된 그까짓  게 무슨 소용 있노?' 하는 사람,  또 '복되게 예정이 됐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그것뿐이고, '나를 하나님이여,  복되게 해주옵소서.' 또 기도 한 마디 나오고, 기도가 한 마디 나온 그거는 더  또 좋게 예정이 됐다 말이오.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 복된 게 이루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이렇게 알려 됐고 들려 줬고 했으니까 같이 들었지마는  이 가운데는 천태만상으로 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깨 거기에 천태만상으로 되는 그것이 뭐이냐? 어떤 사람은 복되게  예정됐고, 어떤 사람은 이래도 비웃도록 예정됐고, 어떤 사람은 '뭐 그런 논리로  그래 하는가보다. 그런 말이 있는갑다. 그렇단다' 하는 것으로 되는,  천태만상으로 되어지는 그것이 그 사람의 예정이 앞으로 되어 있는 그 예정이  지금 보여지고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의 움직임이나 모든 된 것이 피조물 그 자체로 말미암아 움직여진  것이라고 하면 그것의 권위가 그 자체만치 있지마는 보이는 움직임이나 되어진  것이 전부 절대자로 말미암아 되어졌기 때문에 이게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그  큼이 같고, 가치가 같고, 두려움이 같고, 무게가 같고, 능력이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 큰 것 그것이 우리의 조부라운 생각에서 크다  작다 이랬지 근본 절대자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그것이기 때문에 작은  그것이 얼마든지 커질 수도 있고 큰 것이 작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실을 보고  우리는 그렇게 속단하고 조부라운 것으로 판단해서 우리 희로애락이, 우리의  희로애락이 좁은 한 꿀밤딱쟁이 같은 요런 그 범위 내에서 우리의 희로애락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 자존하신 그분과 하나님 영광의 찬미가 된 이 큰 그릇  속에 우리의 희로애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을 암만 기쁨을 갖다 줘도 그 사람을 요동치 못하고, 슬픔을  갖다 줘도 요동치 못하고, 두려움을 갖다 줘도 요동치 못하고 이 하나님에게  뿌리박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된 이 두 가지를 거머쥐고 두 가지 속에 있기  때문에 마귀가 와 가지고 날뛰어 봤자 그 한쪽 구석에 와 가지고 토닥거려서  날뛰는 것이지 그게 와 가지고 이 소망을 가진 자에게는 움직이지 못하고  흔들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런 증거는 자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래 들었으니까  자꾸 연구해서 하나님의, 위에 자존하신 것, 절대자이신 것, 그분의 자존의  사랑, 자존의 기쁨, 자존의 뜻, 모든 자존의 지혜, 자존의 능력, 그분의 속성의  모든 것으로 이 구원이 시작된 이것을 믿지 않으면 그 신앙이라는 것은 바람  앞에 등불 같고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돼집니다.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믿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우리 소망에 대해서  믿고, 이것을 중간 지점에서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대속이 있었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령과 진리와, "성령과 물과  피" 피는 대속을 말하는 것이니 이 셋이 보증을 했고 보증하는 데에 보증을  성취하는 데에 이용하시기 위해서 모든 창조하신 존재들이 지금 대기해 있고  모든 움직임이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예정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다 하는  우리의 믿음의 터를 굳게 잡아야 됩니다. 믿음의 터를 굳게 잡고 그 위에서 이런  것 저런 것을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시간이 많이 돼서 권찰회 모이는 데는, 벌써 여섯시 오분 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권찰회를 모이겠으니까 바쁜 이는 가고 참여할 이는 참여해서,  10분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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