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다섯 가지 구원

 

1986. 9. 23. 새벽(화)

 

본문:사도행전 3장 5절∼13절 상반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게서 우리에게 믿는 도리를 이 역사적인 한 형식을 통해 가지고 가르쳐 주신 역사의 한 토막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우리가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공부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다 부정모혈법으로 난 그 일반인은 전부 원죄와 본죄의 그 정죄 아래에서 다 있는 것입니다. 다 사람이 병들어서 정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서 사람들이 났기 때문에 이 앉은뱅이는 한번도 정상의 사람으로서 걷지 못하는 것처럼 이 부정모혈의 자연법으로 난 모든 사람들은 다 정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어서 사망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랬는데, 거게 사람은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하나는 나면서 앉은뱅이를 구걸하도록 메어다가 성전 미문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데 거기 메어다 놔서 구걸하면 서로 그 수입의 이익 배당할려고 그렇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었고, 또 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에게 쥐서 그에게 다섯 가지 참 귀중한 일을 해 줬습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메어다 놓느라고 수고를 했지마는 그 사람들은 이 앉은뱅이로 있는 사람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됐고, 빼앗기게 됐고, 이 앉은뱅이로 일어선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이 돼서 그만 끝까지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이 됐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신 그대로의 그는 사람을, 나면서 앉은뱅이로 난 그 병신을 온갖 공들인 사람들이 많았지마는 그 모든 수고는 다 헛되고 결국은 이 베드로의 사람이 됐다. 베드로는 사람 취하는 사람 부자가 된다 그런 것을 여게서 보였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는 그 사람은 이 병을 고쳐 주지 못하고, 그 사람을 병은 고쳐 주지 못하고 그 사람을 돕는 일, 또 그 사람을 위해서 온갖 수고하는 일, 또 그 사람에게 자기의 모든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그런 일 모두 다 해 주는 것은 그것은 구걸하는 곳에 메어다 놓는 것이라.

그러면 구걸하는 것은 뭐인가? 구걸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혜택을 입고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도움을 받고 정상적이 아닌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소유를 자기 것을 만드는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원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어서 악령과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있는 이 사람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중생시키지 못하면 이것은 결국은 다 사람을 해하는 사람이 되고, 또 인인 관계에 있어서 다 자기를 위주로 자기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 모든 사람을 자기를 위하는 사람으로, 자기에게 끌어붙이는 사람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서 뭐 자녀를 기르는 그것도 참 귀한 일이고, 공부시키는 것도 여러가지로 또 그 사람에게 온갖 생계의 실력을 길러 줘 가지고 그렇게 출세하게 하는 거와 성공하게 하는 그런 것이 다 좋은 것이지마는 그것은 가만히 따져보면 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구걸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메어다 놓은 거와 같이 그 사람을 어쨌든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이용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 본위로 자기 유익을 위해서 그 일을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만든 것 외에 딴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걸 깊이 가서 깨달으면 되는 건데 그것을 깨닫고 바로 굳게 잡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신앙의 힘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주 그 사람을 많이 애를 써 가지고 크게 유명한 그런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을 만들어서 유명한 자리를 지금 차지하고 있다고 하면은 그것은 메어다가 이제는 사람에게 구걸할 수 있는, 사람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익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만든 사람이지 거기 지나지 못한다.

또 자기가 어떤 종교 창설자로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를 따른다 할지라도 사람의 근본 원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저주와 사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악령과 악성의 마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돕는 그것은 모두가 다 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는 일이 되고, 또 사람이 이렇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악령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이렇게 옮겨지지를 못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을 해쳐서, 다른 사람을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끌어붙여서 자기의 이용물이 되도록 하려는 그 외에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되는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요게 꼭 이해가 돼야 됩니다.

요 기독교의 중요한 인생관인데, 기독교에서 사람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기독교의 중요한 그 인생관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것은 좀 심령이 밝아서 범위를 좀 넓게 잡고 깊이 분석을 해 보면 자, 어떤 정권자라 할지라도 그 정권자는 이 사람에게 베드로가 다섯 가지 해 준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름을 줘 가지고 다섯 가지 해 준 거와 마찬가지로 이 다섯 가지를 해 주지 못한 사람은 결국 구걸하게 한 사람이요 구걸하면은 자기가 이익 배당할라 하는 사람에 지나지 못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렇게 공부를 시켜 가지고 어떤 큰 직장을 갔다, 큰 지위를 점령했다 어데까지 갔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구걸할 수 있는 그 장소에 메어다 놓은 것이지 딴것이 아니라.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 뭐 갈급과 모든 천대만 받고 그는 참사람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이 베드로는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러면 나는 은과 금은 내게 없고 내게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을 주니까 이 이름을 네가 받아 가지고 이 이름으로 네가 걸으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앉은뱅이가 일어섰습니다.

일어서서 그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가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됐습니까? 녜, 이 다섯 가지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하나는 그 병신이 완전히 나음을 받았습니다. 죽은 인간이 그만 살아납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둘째로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구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난 것은 하나님과 연결인데 하나님과 완전 연결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해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행위는 전부 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이요 돕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구제하는 것을 이 구걸하던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병신이 성한 사람됐고, 구걸하던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됐고, 또 그 다음에는 거기서 평생 있어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하나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에는 병든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을 못 합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을 즉시 하나님의 성소에 출입을 시켰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만나게 했다 말이오.

지금도 하나님 만나게 한다 그 말이오. 출입하게 했습니다.

또 넷째로는 뭘했습니까? 넷째로는 그 사람은 항상 구걸하는 사람이니까 마음에 그거 또 자기를 행복스럽게 여길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불행스럽게 불만스럽게 이렇게 늘 인간의 쾌락이나 행복을 가지지 못한 사람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에게 거게 있는 모든 인간 가운데 제일 기쁘고 즐거운 사람 만들었습니다. 요 사실이 맞습니까? 즐거운 사람 만든 게 맞습니까? 제일 기쁘고 즐거운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기 전에는 인간이 참된 그 기쁨과 평강은 가지지 못합니다. 혹 생각할 때에 ‘저런 사람은 기쁘고 즐겁고 평안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실상은 없고 또 하나는 몰라서 철이 없어 지금 속아서 벌로 덤비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에 있는 도야지가 저 잡을라고 지금 흥정하고 있지마는 그걸 모르니까 좋다고 사료 주면 기뻐하고 먹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벌써 한 오십이 되기 전에는 말이요, 사람이 어북 속성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오십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이 철이 없습니다. 세상이 뭐인지도 모르고 어떤 데서 살고 있느냐 하면은 오십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각 자기의 포부가 있고 소원이 있어 가지고 ‘내가 요거 해 보겠다 조거 해 보겠다’ 해 가지고 자기의 지금 소원이 있으니까 그 소원을 위해서 뭐 죽자 살자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아직까지 모든 것을 소망 중에서, 소욕 중에서, 계획 중에서 지금 모두 다 자기딴에는 건설한다고 건설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지금 뭐 다 소망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십 이내 사람들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오십이 척 넘으면 그 모든 일을 다 성공을 했다고 하고 나서 보면은 그 모든 게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이 이 땅위에서 만족은 만족을 잡기 전에 잡을 때까지 ‘이것만 잡으면 만족하겠다’ 하는 그런 자기의 가상적인 만족, 가상적인 평강, 가상적인 행복을 가지고 있다가 그게 막상 이루어지고 보면 아니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거기서 딴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찾다 죽고 또 미래를 소망하다 죽고 이렇지마는 진실되이 명철한 사람은 자기가 해 놓은 그 결과를 볼라고 한 오십되면은 거의 다 일을 해 봤고 그 결과를 봤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 ‘이것도 헛일이다’ 그라고 나면 ‘이것도 헛일이지만 요거 했으면 좋겠다. 내가 소국의 왕으로 돼 가지고 있다가 이 소국의 왕이 될 때는 이 나라의 왕만 됐으면 만족하겠다 했지마는 소국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소국 왕으로 만족되지 않으니까 이제 이 어느 나라의 한 영토를 점령했으면 만족하겠다.’ 또 점령하고 보니까 또 만족이 없어. 자꾸 그렇게 해서 우둔한 사람은 자꾸 미래를 ‘요것만 있으면 만족되겠다, 되겠다.’ 해 가지고 속아서 일생을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고거 하나 해 보고 ‘그것도 해 봤자 그거고 그것도 해봤자 그거고 그거다. 인생은 이제 이 생활에서는 만족이 없다. 다 인생이 불쌍하다.’ 하는 그런 인생의 탄식을 가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명철한 사람은 인생의 탄식을 가지고 명철치 안한 사람은 인생의 탄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 철학자는 대개 좀 명철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은, 철학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행복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다 탄식이고 거게서 탄식이다가 이제 가정적으로 이제 스스로 만드는 그 위안제를 마시고 그렇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행복되게 만들어서 아주 기쁘고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거 뭐이냐?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인생이, 생각하면 모든 이 세상에 기쁨이라 하는 것은 생각하면 기쁨이 없어집니다. 또 평강도 생각하면 평강이 없어집니다. 자기가 우쭐해서 우쭐했는데 생각하면 우쭐한 게 없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평강이나 쾌락은 생각하니까 더 있고, 좀 생각하니까 더 있고, 더 생각하니까 더 있고, 자꾸 생각할수록이 더 있고 자꾸 비판할수록이 더 있는 이것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또 뭐입니까? 예? 다섯째로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서 천대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면서 앉은뱅이가 거게서 구걸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보다 신세가 천한 사람이 누가 있겠소? 모든 사람이 천하게 봤습니다.

천하게 봤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이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성전에 들어가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니까 모든 사람이 다 놀랬습니다. 여기 기록하지 안했습니까? “모든 사람이 놀랬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이 아마 거게 몇십{*천*} 명이 있는 가운데에 제일 인기가 높았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기는 그리 막 집중이 됐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이름이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 베드로는 몇 가지를 줬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를 줬습니까? 몇 가지, 저 뒤에? 저 뒤에 몇 가지? 이 다섯 가지 줬습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따지고 따지고 따지면 생각할수록이 크고, 또 생각하면 더 크고, 깊이 생각하면 더 크고, 오래 생각하면 더 크고 이는 뭐 끝이 없고 한없습니다. 이것을 예수 이름이 줄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은, 다른 사람은 그리 줬지만 자신은 어찌 됐습니까? 자신은 {사람을} 사람 부자가 됩니다. 그거 앉은뱅이 메어다 준 사람들이 이거 낫고 나니까 메어다 준 사람들이 그만 지금 밥통이 떨어졌어. 밥통이 떨어졌으니까 섭섭해 합니다. 이 뭐이냐?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것을 핍박하고 반대하는 것은 다 저거 밥통 떨어지기 때문에, 밥통이 떨어져서 그래 지금 반항하는 것입니다. 또 저거에게 이용물이, 이용물이 그만 없어졌기 때문에.

이용물, 그 어리석어 속혀서 이용당하는 그 이용물이 이제 깨닫고 보니까 ‘이용당한다’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지 안하고서 다시 거기서 튀어납니다. 이라니까 이용물을 뺏겼다고, 또 자기 밥통이 떨어졌다고, 자기 수입길이 없어졌다고 그래 가지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마 그랬을 것이오. ‘우리 그리 가자.’ 저거를 따라가자고 했을 것이야. 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오랫 동안 몇십 년이나 했는지 몰라도 메어다 놓고 자꾸 이래 같이 이래 있었으니까 ‘우리하고 같이 가자’ 했지마는 그 사람이 같이 가겠습니까? 같이 갈 리가 없어.

‘가자’ 하니까 `안 간다’ ‘우리가 너한테 몇십 년 이렇게 메어다 주고 공을 들였는데 가자' `너거가 나를 착취했고 나를 이용만 해 먹어 버렸지 내게 유익된 게 뭐이냐? 내가 병신 노릇만 하고 있었지 나를 병신에서 고쳐 준 나는 이분을 따르겠다.’ 하고서 그래 따를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을 가만히 눈뜨고 생각하면 전부가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세상에 인간살이는 둘뿐이라 그 말이오. 나면서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는 수고를 하는 사람, 또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 이름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은 자신도 사람 수입했지, 또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주목해서 뭐 야단입니다. 이라니까, 처음에는 그말이 없지마는 ‘왜 우리 개인의 경건으로 한 것같이 우리를 주목해 보느냐? 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곧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 영광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했기 때문에 이 영광은 예수님에게 돌려라.’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얼마나 영광을 돌렸기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을 이렇게 다 다섯 가지로 변화 시켰으면 그 사람을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요? 저도 요거 뭐 조그만한 뭐 하지마는 이라니까 다른 사람이 그만 목사를 천사로 알고, 백 목사를 천사로 알고 이렇게 존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거 천사로 알면 안 되고 이러기 때문에 나에게 자꾸 흠점을 줍니다. 나에게 병을 줘요. 또 나에게 그뭐 사람, 내 뭐 사람은 인품은 볼 때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다른 사람은 천사같이 여긴다 그거요.

또 사람 부자야. 이거 뭐, 여게 지금 양성원 학생들이 왔지만 저거가 아직 은혜를 못 받아 그렇지 은혜를 받아 참말로 나로 말미암아 이 다섯 가지가 해결됐다고 하면은 완전히 죽은 부분이 살아난 부분이 많고, 또 항상 남의 짐이 되었던 것이 이제 다른 사람을 봉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참으로 남을 위해서 있는 사람, 위한다고 뭐 밥 주고 돈 주고 위하는 게 아니라 참 위하는 그런 사람, 남을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됐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하는 사람이 됐고,} 만나는 사람이 돼 버렸고, 자기에게 한없는 그 평강과 쾌락을 준 백 목사가 됐고, 또 그 사람을 모든 사람에게 이 존귀하게 여겨지는 이런 사람을 만들어 줬으면 그 사람이 백 목사 따르겠소 안 따르겠소? 누구를 따르겠어? 백 목사 따라요. 암만 오지 말라 해도 따라요. 어데 가 있어도 따라요. 뭐 미국 가 있어도 어데 있어도 항상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은 백 목사가 그렇다면 백 목사일 것이오. 항상 뭐, 밤이나 낮이나 백 목사 생각할 것이고 밤이나 낮이나 또 백 목사 위해 기도할 것이고 백 목사만 생각하면 그 다섯 가지가 살아나고 은혜가 되고 이러니까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해 줬고 하기 때문에 제 사람을 만들었다 말이오. 사람 부자가 됐어. 이제 베드로 못 떨어져요,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존귀하게 됐어.

이런데, 이 다섯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해 줘서 이거는 참 귀한 일을 해 줬고 이걸 아무도 할 수 없는 이 다섯 가지를 해 줬고 또 자기도 두 가지나 됐고 하는 이것은 누가, 베드로가 그렇게 했습니까 뭐이 그래 했습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했습니까 뭐이 그렇게 했습니까? 여기 똑똑히 밝혔어.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여 보느냐?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그 종 예수의 이름이 이거 했다 그 말이오, 예수의 이름. 예수의 이름, 예수의 이름이라 말은 예수의 공로라 말이요, 예수의 행적이라 말이요, 예수님의 역사라 말입니다. 예수의 운동이라 말이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도 그 사람 이름이 점점 커진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운동이 크고, 공로가 크고, 역사가 크고, 크면 그 사람의 이름이 커지고, ‘그 사람이 요새 안 보이더라’ 한창 ○○○씨가 뭐 유명해지더니마는 그만 그 사람이 지금 어데 가 있는지 뭐, 미국 가 있는 모양인가 있는데 아무 말이 없어.

이름이 가뤄져 버렸다 그 말이오.

예수의 이름이라 말은 예수님의 공로라 말이오, 예수님의 공로. 예수님의 이력이라 말이오. 예수님의 운동이라 말이오. 예수님의 운동이 뭐입니까?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을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 또 그리스도의 운동이 뭐입니까? 이거는 성령과 진리 이 두 가지로서 예수의 피와 성렁과 진리 이 세 가지 가지고 일으키는 이것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몇 가지 운동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말합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다섯 가지. 다섯 가지 이 운동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오늘 우리는 말합니다.

여게는 간단하게 그저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지고 그 사람이 당장에 이 다섯 가지가 행복되게 됐고 또 자신도 이 두 가지 행복이 이루어졌습니다. 다 예수의 이름으로 됐어. 예수의 이 다섯 가지 이름.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되는 것도 이 다섯 가지로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다 말은 뭐이냐? 내가 이 현실에서 이 다섯 가지 운동, 이 다섯 가지로 돼요. 이 현실에서 다섯 가지로 되는 거 뭣이 다섯 가지로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이 사죄를 받았으니 이 사죄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사죄입니다. 이 끝이 없는 사죄요. 완전 사죄요. ‘나는 완전히 사죄받은 자다’ 이걸 믿어요.

‘예수님이 대신해서 완전히 죄를 없애 주셨다, 나는 완전히 죄 없는 자다.’ 완전히 죄 없는 자라는 요 사실을 믿고 자기가 다시 죄에 빠지지만 않으면 돼.

그러면 완전히 죄 없는, 죄가 완전히 없는 사람, 완전한 의인, 하나님의 율법을 다 이행한 완전한 의인, 완전히 하나님과 화친된 사람.

그러면, {사죄, 화친, 또}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를 그 사람이 입고 있는지, 이 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이 입고 있는지 벗고 있는지 이 세 가지 완전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 뭘 보고 압니까? 자, 그 사람이 이 세 가지 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뭘 보고 알고 이 세 가지 완전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뭘 봐 압니까? 뭘 보고 압니까?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 사람이 요 세 가지를 완전히 입고 완전히 가지고 있는 그것은, 완전히 입고 있는 것, 완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은 뭐이냐? 그 사람이 이거 아닌 행동하면은, 아닌 행동이 있으면은 이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 딴거 가진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이 이 세 가지 공로 밖에 나오면 이 세 가지 공로를 입고 있는 사람입니까 벗고 있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서, 예를 들면 {물속에 들어갔는데,} 물 속에 들어갔는데 밖에 안 나오면 물 속에 있는 사람입니까 물 밖에 있는 사람입니까? 물 속에 들어갔는데, 예를 들면 말이지요, 비유컨대. 들어갔으면, 물 속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이 물 밖에 안 나오면 물 속에 있는 사람입니까 물 밖에 있는 사람입니까? 물 속에 있는 사람이오.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 밖에 안 나오면 지금 어데 있는 사람입니까? 요게 이해가 됩니까? 요리 조리 자꾸 이 진리를 깨달아 가지고 확신을 가지라 그 말이오.

그러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공로를 입고 있는 사람은, {내가,} 이걸 잘 착각하기 쉬워. 입고 있으면 ‘내가 공로를 입었나 안 입었나, 내가 이 공로를 입고 있나 안 입고 있나?’ 이걸 자기가 아무리 입고 있는 것은 ‘내가 입고 있다, 나는 입었다, 입었다.’ 이리 쌓을 것이 아니라 입고 있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러면 입고 있는 걸 믿으면 되는데 입고 벗지 않는 증거는 뭐입니까? 나오지 안하면 돼. 사죄 밖의 행동이 없고, 칭의 밖의 행동이 없고, 화친 밖의 행동이 없고, 사죄, 칭의, 화친의 행동이 아닌 행동이 그에게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뭐 속에 있는 사람이요? 뭐 속에 있는 사람이라? 사죄, 칭의, 화친 속에 있는 사람 아닙니까? 이게 확실히 믿어져요? 이해가 됩니까? 이게 안 되면 안 돼.

사람들이 요게서 다 틀리요. 입고 있으며 입고 있는 걸 모른다 그거요. 또 입고 있나 없나 하는 그거 어디다가 뭘 주의하면 내가 입고 있는 것이고 뭘 주의하면 벗지 않는 것이냐? 거게서 나오지 안하면 벗지 않는 것이라. 알겠습니까? 벗지 않는 거.

또,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됐는데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지 안 사는지, 그 사람이 진리 영감으로, 진리 영감으로 사는 것은 새생명 아니요? 새사람이라 말이오.

새사람으로 제가, 내가 새사람인지 새사람 아닌지 뭘 알아요? 새사람인지 새사람 아닌지 뭘 보고 알겠어요? 영감과 진리를 어기지 안하면 지금 새사람입니다.

영감과 진리를 어기지 안하면 새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러면 새사람을, 새사람으로 사는 행동을, 새사람 생활을, 새사람 생활을 안 하는 것은 뭣이 안 하는 것이요? 영감을 어기고 진리를 어기면 그 사람이 새사람 생활을 안 하는 것이고 영감과 진리를 하루 종일 어기지 안합니다. 그라면 그 사람 하루 종일 무슨 생활했소? 새사람 생활했다 말이오.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벗지 안했으면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일 년을 벗지 안했다고 하면 일 년을 어데 있습니까? 사죄, 칭의, 화친 속에 있는 사람이라 그거요.

요걸 여러분들이 지금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애. 요거 지금,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요걸 바로 몰라서 사람들이 실패를 해요. 마귀란 놈은 자꾸 이거 복잡하게 만듭니다. ‘네가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를 거석할라면 네가 항상 밤낮 사죄 칭의 화친, 사죄 칭의 화친 자꾸 이걸 네가 밤낮 외워야 된다.’ 그러면 외우는 게 그 속에 사는 것이겠소 어떻게 하면 그 속에 사는 것이겠소? 그 속에 사는 것은 외우는 것이 그 속에 사는 것이요 어떻게 하면 그 속에 사는 것입니까? 자, 여기 말해 봐. 그 속에 사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 속에 사는 것이지요? 자꾸 외워야 그 속에 사는 것인가? 자꾸 생각해야 그 속에 사는가? 예? 그만, 물로 비유하지 안했어? 물 속에 있는 사람이 말이요, 물 속에 있는 사람이 물 속에 있는지 없는지? 안 나오면 물 속에 있지 어데 갔겠어? 안 나오면 물 속에 있지 어데 갔겠어? 안 나오면 물 속에 있다 그 말이오.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 공로 밖에 안 나오면 그 공로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새생명으로 사는지 안 사는지 영감과 진리를 범하지 안하면 지금 새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요걸, 예수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이 이렇게 이 비참한 사람을 다섯 가지로 참 행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요걸 가만히 생각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외에는 뭐 천하 걸 다 줘도 그거 안 돼요. 이 이종교 이 무슨 종교 무슨 종교 하지만 그런 종교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 그게 무슨 영원한 쾌락이 되겠습니까? 영원한 존귀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겠습니까? 그런고로, 나는 지금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고 있는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고 있는 사람인지 나는 뭣 주고 있는지, 뭐이, 뭐라 했어요? 내게 뭐이 없고? 요것도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 뒤에 말할란지 모르니까. 예수의 이름만 가지면 예수의 이름 하나만 가지지 그 둘을 못 가져요.

뭣이든지 가지면 예수의 이름은 못 가집니다. 알겠습니까? 둘은 못 가져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도 필요하다, 이것도 쥐어야 되겠다, 또 뭣도 가지겠다.’ 어리석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힌다” 네가 있는 것을 다 어짜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예?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 말씀이 성경에 있어요? 있어요? 어데 있어요? 어데 있어요? 누가복음 14장 몇 절? 33절, 그래. 딱 맞게 말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 예수 믿는 거는 자꾸 생각해야 돼요. 눈을 감고 자꾸 생각해야 거기서 능력이 나오고, 생각해야 부강이 나오고, 생각해야 모든 평강도 나오고, 만족이 나오지 생각 없으면, 자꾸 생각하면 나와요. 세상 복은 생각하면 속에 들통이 나옵니다. 세상 모든 좋은 것은 생각하면 그 속에 흉측한 것이 나오고, 다 멸망이 나오고, 그만 근심이 나와요. 예수 믿는 이것은 생각할수록이 그 속에서 진주와 보배가 자꾸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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