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23:39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원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 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벌써 여러 시간을 계속했습니다. 계속했으나 제 마음에도 여러분들에게 증거할 바를 충분히 증거했. 다 이렇게 마음에 안심이 되지를 아니하고, 또 여러분들도 여러 번 들었지만 지금 이 진리를 굳게 잡지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고 있다 하는 그것이 저에게 느껴져서 이 말씀을 자꾸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본문으로 간단하게 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말은 예수님의 계시라 말이요, 계시 주인이 예수님이라 말이요, 또 이 계시 속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요, 또 더 깊이 들어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이 계시 안에 다 들어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그에게 줬다 말은 예수님에게 줬다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닌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하는 이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하고. 그에게 줬다 말은 성자, 도성 인신 해서 신인양성일위로 계시는 예수님에게 주사 하는 말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 이 속히 된다 말은 신속히 된다 말인데. 단번으로 다 끝나 버립니다. 모든 우리의 영적 구원도 단번으로 끝나고 육의 구원도 부분적으로는 다 단번에 끝납니다. 육체는, 마음이나 고기덩어리는 종합체요 그것이 단일체도 아니요 단일성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 단일 단일이 단일 단일이 구원을 이루는 것은 단번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종합체이기 때문에. 숫자가 많기 때문에 단번이라는 그 단번을 백 번 천 번 만 번 이렇게 수많은 그 단번을 거쳐 가지고 그 모든 심신의 구원은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이라 말은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서 주님의 것이 되는 자, 주님의 것이 되어서 주님의 것이 된 것을 깨닫고 주님에게 순종하는 자를 가리켜서 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대속의 공로로 주님의 것이 되어 주님의 것 된 것을 알고 주님에게 '예 예'로 순종하는 자를 가리켜서 종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종에게 보이시려고' 다른 사람들은 이 계시를 받아 가지지 못합니다. 제것을 삼지 못하는데. 다만 종들만 이 계시를 하나님이 주실려고 하고 또 받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요한은 사도 요한인데 여기에는 종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그것을 고조하고 그것을 주도의 뜻이 되는 그 뜻으로,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시 것이라' 그러면. 천사를 보내가지고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또 보여 주고 안내하고 이랬습니다.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 요한은 요한은 인제 지시를 받아 가지고,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이 계시의 속에는 뭐이 들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었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는 어떤 분이며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며 예수의 은혜는 어떤 것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증거, 그 증거가 이 안에 들었는데 곧 뭐이냐 하면 자기의 본 것, 이 사도 요한이가 밧모섬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셔서 본것이 낱낱이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감추어 두라고 해서 기록되지 안한 것도 있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본 것을 다 증거했는데 그 본 것을 뭣 봤느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봤다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해야 될 그 증거를 사도 요한이가 보았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이 계시록에는 사도 요한이가 본 것을 다 기록했는데 본 것은 뭘 봤느냐? 예수님에게 대해서 봤고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봤고 예수님에게 대한 것과 그리스도에게 대한 것을 사도 요한이가 보고 이 계시록에다가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이 예언의 말씀이라 말은 요한계시록을 가리켜서 말했는데 요한계시록은 이 책은 마지막 결론책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육십육 권 중에 제일 마지막 성경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면, 성경 육십오 권에 있는 모든 것을 간추려서, 간추려서 요한계시록 한 권에다가 다 내포해 가지고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하신 일을 다 기록하려고 하면 이 세상에 두기에도 다 둘 수 없는 그런 많은 양을 성령님께서 간추려서. 육십육 권 이 신구약 성경에다가 다 간추려서 기록한 거와같이 이제는 육십오 권에 있는 것을 다 간추려서 마지막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왜 이런? 이거는 때가 가깝기 때문에, 때가 가깝다 그 말은 남은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구원 이룰 수 있는 그런, 남은 때가 뭐 얼마든지 많이 있는 줄 알고 사람들은 낙관시 하고 게을리 하고 하지만 구원 이룰 만한 그런 남은 시기가. 구원 이룰 시기가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안했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이 예언의 말씀이라 말은 하나님만이 알 그 있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이 모든 비밀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때에 예언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은 신구 약 육십오 권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다시 간추려서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씀했는데 왜 이걸 예언의 말씀이라 하는가? 그것은 육십오 권에 기록 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안하고 알지 안하고, 이 사실이 얼마나 큰 사실이지만 땅의 썩어질 지식만 알라고 애를 쓰고 죽는 거 망하는 것만 알뜰히 알아 가지고 망하는 일 죽는 일만 열심히 하고 독실히하고 얼마든지 진실되게 하지. 사는, 영생이 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암만 들어도 둥한히 듣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르는데 구원 이룰 시기는 얼마 남지 안했기 때문에 똑똑히 알려야 되겠다 해 가지고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이라 말은 요한계시록이라 는 말씀이요 요한계시록이라는 말씀은 다시말하면 육십오 권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말씀이라는 말씀이요, 그라면 육십오 권에 기록된 말씀은 이 세상에 다, 기록한 책을 세상에다 둘라면 온 세상에도 다 둘 만한 곳이 없다고 하는 그 오든 많은 양이 다 이 예언의 말씀 속에 다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는자' 읽는 자는 성경 보고 자기가 읽는 사람을 말하고 '듣는 자들과' 듣는 자는 다른 사람이 설교해서 가르칠 때에 듣는 사람을 가리켜서 '듣는 자들과' 그러면, 읽는 자 숫자보다 듣는 자 숫자가 많은 것을 말합니다.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복이 있다.
그러면, 읽는 자가 복이 있고 듣는 자가 복이 있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러면, 읽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은 읽는 대로 자기가 다 믿어야 되고 그래야 복이 되고, 또 듣는 대로 다 믿어야 복이 되고 그러면, 읽는 대로 듣는 대로 다 믿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행하면 다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다 복이 있다. 그러면 읽는 자는 믿는 복을 받았고 듣는 자도 믿는 복을 받아야 되고 읽고 들은 것을 다 믿으니까 그 다음에는 행함의 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믿고 행하는 복을 받으면, 받아서 믿고 행하게 되면 무슨 복을 받는 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완전히 자기 것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이거는 때가, 구원 이루는 때가 그렇게 많지를 못하 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좀 그 안에 내용의 해석을 간단하게 또, 또 다시 증거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는 말은 예수님의 은혜가 이 계시 가운데에 들어 있다, 예수님의 은혜가 이 계시 가운데에 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계시 가운데에 들어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은혜는 뭐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뭐인가? 예수님의 은혜는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와 이렇게 원수되어 있는 것을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친을 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원수된 것은 무엇 때문에 원수가 됐던가? 원수된 것은 삐뚤어진 거 때문에 원수가 됐습니다. 삐뚤어진 것은 뭐인가? 그것은 죄입니다. 죄를 가리켜서 삐뚤어진것이라 삐뚤어진 거를 가리켜서 이름을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에 삐뚤어진 거, 그 삐뚤어진 거 그것을 다 바로 잡는 하나님과 우리와 삐뚤어진 것은 직접 하나님과 우리와의 삐뚤어진 것도 뚤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되조물과 우리와의 삐뚤어진 것도 그것도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입니다. 모든 퍼조물, 모든 존재는 다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하나님의 것과 내가 삐뚤어졌으니까 결국은 주님과 삐뚤어진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어떤 주인의, 주인의 물건과 나와 삐뚤어졌습니다. 그 주인의 부하와 나와 삐뚤어졌습니다. 그 주인의 자녀와 나와 삐뚤어졌습니다. 주인의 사건과 나와 삐뚤어졌습니다. 그 '삐뚤어진 것은 사건과 삐뚤어졌고 거기에 속한.
사람들과 삐뚤어졌고 그 소유의 물질과 삐뚤어졌지만 그 삐뚤어진 거는 결국은 주인과 삐뚤어진 것이 되고야 마는것입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이런 거야 이해되지 안해요. 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삐뚤어져 가지고 있는 그거 때문에 우리가 다 감옥에 갇혔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그래서 죄로 감옥에 갇혔다 그 말은, 다 사람들이 그냥 사니까 감옥에 갇히지 않은 걸로 생각하지만 죄로 인해서 사람들은 영원한 감옥에 갇혀 가지고 영원한 지옥을 가서 영원히 멸망을 받는 것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형벌을 대신하셔 가지고 사죄하신 것은 우리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삐뚤어진 데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이 얼마나 삐뚤어졌는가? 삐뚤어진 것을 알 자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아는 자 없욱니다. 하나님만이 아시지 하나님 외에, 우리는 삐뚤어져서 삐뚤어진 값으로 멸망을, 이 삐뚤어진 거로 이 멸망을 받고 저 삐뚤어진 것으로 저 멸망을 받고 이렇게 우리가 삐뚤어진 것이 천도 만도 넘습니다. 우리 삐뚤어진 게 얼마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삐뚤어진 거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거와 삐뚤어진 거, 삐뚤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우리가, 삐뚤어진 그것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다 삐뚤어져 버렸는데 삐뚤어진 그것을 얼마나 삐뚤어졌느냐? 우리가, 인류 시조가 선악과 먹음으로써 악성이 돼 가지고 원죄로 삐뚤어진 거 있고 원죄로 말미암아 또 자기가 범하는 그 본죄로 삐뚤어진 게 뭐 삐뚤어 진 게 천도 만도 넘습니다. 억도 넘습니다. 그 삐뚤어진 게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모릅니다.
이런 삐뚤어진 것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시고 그 삐뚤어진 데서 해방을 시켜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이 그 해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천층 만층도 더 됩니다. 다 같이 예수 믿는 거 같지만 '아, 주님이 삐뚤어진 데서도 나를 해방시켰구나' 이래서, 그 삐뚤어진 데에서 해방한 것을 아는 사람이 층어리가 많고. 어떤 사람은 천을 알고 어떤 사람은 만을 알고 어떤 사람은 십만을 알고 백만을 알고 이래 가지고 삐뚤어진 것을 많이 아는 사람 있고 삐뚤어진 것을 찍해야 자기 지식대로 몇 가지만 삐뚤어진 것만 알지 그 이상은 모르는 사람이 있고, 이러기 때문에. 알든지 모르든지 기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그 삐뚤어진 것을 다 대형해 가지고 그 삐뚤어진 데서 해방을 시켜 주셨습니다.
해방시켜 주셨는데, 기본적으로는 다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다 됐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거는 말이오, 우리가 중생된 것은 첫째 문제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삐뚤어진 거,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삐뚤어진 거 이 삐뚤어진 것이 다 해결되고 난 다음에 완전 생명을 얻는 것이지 삐뚤어진 것을.
어떤 쪼그만한 무슨 피조물 어떤 물질 하나 가지고도 삐뚤어겼으면 삐뚤어진 거기에 항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못 합니다. 영생하면 송사를 받습니다. 영생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 는 자유의 세계요 완전한 세계요 원만한 세계요 어두움이 털끝만치도 없는 세계입니다.
이렇게, 삐뚤어진 것을 주님이 대신했기 때문에 기본구원적으로는 삐뚤어진 걸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습니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꼭 같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어찌 되느냐? 건설 구원은 자기가 행동으로써 실질적으로 자기가 그 구원을 누리는 것이며 그 구원을 이루어 가지는 것인데 그것은 뭐이냐? 실제로 우리가 삐뚤어진 것을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서 삐뚤어진 걸 알고, 먼저 예수님의 이 은혜를 입어서 삐뚤어진 걸 알고. 그 다음에는 삐뚤어진 것을 우리가 고치고 이래 가지고 우리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을 그 사람이 건설구원 이루는데에, 성화구원 이루는 데에 삐뚤어진 것을 하나 아는 사람, 백 아는 사람, 천 아는 사람, 만 아는 사람. 삐뚤어진 것을 해결한 것이 하나 해결한 사람 둘 해결한 사람 열 해결한 사람, 천 해결한 사람 그 해결한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의 건설구원은 다른 것입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5 장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그 자리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대해서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가서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해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네가 그 갇힌 데서 나오지 못한다' 하는 그 말은 뭐이냐?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자기가 이 삐뚤어진 것을, 저 사람과 나와 삐뚤어진 것을 내가 해결지웠어야 그 사람에게 내가 자유가 았고. 저 물건과 나와의 삐뚤어진 것을 내가 해결지웠어야 그 물건에 자유가 있고, 그 사건과 나와의 삐뚤어진걸 해 결지웠어 야 그 면에 대해서 자유가 있는 것이지, 삐뚤어진 그것이 해결 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기본적으로 삐뚤어진 것을 해결한 그것은 예수님이 대속으로 해결했고 건설구원은 우리가 실상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삐뚤어진 것을 다 우리가 친히 청산을 하고 삐뚤어진 것을 고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예수님이 해방 못 한다 했어.
너희들이 호 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그 갇힌 데서, 감옥에 갇힌 데서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서로 사물 관계, 모든 영물 관계, 마귀 관계, 하나님 관계 모두, 마귀 관계도 내가 잘못된 게 있으면 잘못된 그게 해결이 돼야 되지 잘못된 게 해결이 안 되면 거기에는 그만치 감옥에 갇혔지 해결되기 전에는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대속하신 해방한 그 해방시켜 주신 이 해 방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냐 그것을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님 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 해방은 범위가 한이 없다. 그러니까. 광대한 해방이다. 주님이 대형해 가지고 광대한 끝이 없는 해방을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일고는 누구도 이 해방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끝 없는 해방, 그 해방 받으니까 자유도, 자율도, 끝없는 자유입니다. 한없는 자유입니다. 광대한 자유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우리에게 해방 주신 것이 얼마나 넓으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 얼마나 넓으며. 우리에게 은혜주신 그 은혜의 종류가 얼마나 그 수가 많으며,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그 소망이 얼마나 큰가. 이래서, 그 소망을 '지극히 큰 소망을 주셨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달리는 표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연결이 되어 가지고 그분의 충만한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연결되어서 우리의 것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다' 그 말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말한 게 아니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신성은 근본부터그 모든 것을 가지신 주인이지만 양성 일위가 된, 양성 일위가 된 일위로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시, 주셔서 다 내게 주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주신 거 받은 것은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 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였느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이니라' 말했는데,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무릎을 끓게 하고 그들이 모두 다 주라 시인하도록 이렇게 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대속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영원 무궁토록 하늘나라에 억억만 년을 가 살아도, 억억만 년을 가 살아도 '인제는 끝이 났다' 가 아닙니다. 억억만 년을 가 살아도 또 새 것이 있고 또 새로 받을 것이 있고 또 바라볼 것이 있고, 이러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끝없는 해방 우리가 얼마나 죄를 저질러서 얼마나 얽혀 가지고, 얽혀 가지고 여기에 얽혀서 갇혔고 저게 얽혀 갇혔고, 우리가 뭐 갇혔고, 우리가 뭐 갇혀 가지고 있는, 자유하지 못하는 갇혀 가지고 있는 그 갇힘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감옥 몇억억만 개의, 억억만 개의 감옥 속에 갇혔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주님이 해방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자유를 줬는데.
그러면 자유를 받았지만 우리는 어떤 것에게 자유를 받았는지, 내가 자유하는 것이 몇이나 되는지, 내가 자유하고 서로 통하고. 자유하고 통하는 것이 천인지 만인지 우리는 그건 모릅니다. 그 숫자가 많아서 모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몇 가지나 되는가? 그 은혜의 종류 의 수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 수가 무한입니다. 그 종류의 수는 무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 주신 것은, 우리가 영생을 가졌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고 하늘나라 가고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돼서 하나님같이 되어지고 이런 걸 몇 가지를 간추려 말했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 주신, 우리가 소망은.
소망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소망은 미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망은 우리가 이루어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소망을 이루어가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무한이다' 이것을 차차 알아가는 사람 들은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고는 아무라도 하늘나라는 갈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고는 이제 하나님의 공심판을. 공심판을 통과할 자는 하나도 없다.' 모든 이 세상에 이종교가 있지만 그 이종교 그런 것은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이종교를 정죄할 것이 사람이 정죄해도 천도 더 정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종교에 대해서 정죄할라 하면 뭐 천도 넘겠습니다. 이렇게 정죄할 것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구원이,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 얻는 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은 광대하신 대속이오 이런데 이 구원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셨는데, 이래서 하나님 셋과 땅의 것을 다 우리를 대표해 가지고 이루셨다 말이오. 대표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감옥을 다 책임지시고 우리 대신 거기서 감옥에서 다 해방 역사를, 대형받음으로 해방 역사를 해 가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다 해방했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사람이라 그 말이오. 예수님이 그러면 우리 감옥을 당신이 대신해서 그 감옥에서 형을 다 치르고 해방을 받았고, 또 우리 대신 이 모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존재들에게 올바른 관계를 가진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칭의입니다. 칭의라 하면 대행했다 하는 것은 그저 이 율법에 나타난 거 몇 가지를 대행했으니까 대행한 것으로 이래 보지만 이 신구약 육십육 권에 명문되어 있는 이것만이 아니고, 이 명문 안에는 은밀 영감 계시가 있습니다.
영감 계시가 있으니까 그 수도 끝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그 섭리 계시로도 나타나니 그것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이 막혀 있는 것을 다 이것을 해결해서 올바른 관계를 가져서. 올바른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거와 하나님의 소유와도 막혀 있는 걸 다 해결했고,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이 관계를 다 준비해 가지고 마지막에 최종으로 하나님 앞에 이제 해결을 짓도록 화평을 청할 때에 그 화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죄의 공로를 베푼 것은 하나님과 화친에 절단된 그 절단을 해결지은 것이요, 칭의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과 화친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갖춘 것이요, 그 다음에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신 것인 것입니다.
그랬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한 해방, 그래서 우리 죄에서 해방했다 하는데 우리 삐뚤어진 데서 해방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해방이 그것이 숫자가 얼마인지 우리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또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자유를 준 것도 그 자유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큰지 우리는 모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그 종류 수도 뭐 열 가지 백 가지 아니라 뭐 천 가지 만 가지 억억만 가지도 넘은 그 모든 은혜의 숫자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소망도 지극히 큰 소망을 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부를 우리가 한 말로 말해서 기업으로 우리가 다 받습니다. 이러니까 무한하신 분에게 무한하심의 충만한 것을 우리가 다 기업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래 되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하실 때에 어떻게 하셔서 이렇게 이루셨는가? 하나님의 종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 이 일을 이루실 때에 무슨 방법 가지고 이루셨는고 하니,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위치를 취했고 피조물같이 되어져서 죽기까지 복종한 이 복종. 이 순종 하나 가지고 이루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므로' 있는 것 다해서 복종 했기 때문에 있는 거 다해서 복종하셨기 때문에 모든 거 다 복종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복종을 위해서 있는 거 다 없앴기 때문에 모든 게 다 복종이 된다 말이오.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해결을 다 줬습니다. 모든 막혀 있는 모든 감옥에서 해방을 다 주셨고, 또 모든 올바른 관계를 다 맺어 줘 가지고 칭의를 주셔 가지고 만물들이 예수님을 주라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이런데 이 구원이 말이요, 이 구원을 우리가 한 가지 한 가지 이룰라고 하면 그 구원의 종류를 우리가 배우는 데도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할지라도 그 종류의 억억만의 일도 머리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구원이요 많은 자유요 많은 해방이요 많은 은혜요 이런데, 그것을 우리가 한 가지 한 가지 이룰라고 하면 우리는 그 숫자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열매이신 예수님에게 하시기를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몇 가지를 명령해서, 지키기 어려운 그런 것도 있고 뭐 복잡한 것도 있고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을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다 이와같이 말씀을 했을 때에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지키는데, 이제 지키는데 천이 만이 넘다 할지라도 거기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간추려서 절정 되는 그 절정되는 강령되는 것을 이래 말씀했을 때에 주님이 다 지켰으니까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게 되고 말았다.
이래서 하나님의 율법에 만족을 이루었다 이랬어.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다. '우리는 율법의 요구에 왜? 만족을 이루는데,' 그 율법이라 그 말하면 신구약 성경 율법같이만 생각하지만 신구약 성경이 성경 속에는 영감법이 있기 때문에, 영감은 무한하신 분이요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아는 법, 율법이라 하는 것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제 예수님께서 복종 하나 가지고 만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지시고 사람같이 되었으니' 사람의 형상을 입었어.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으라' 이거 가지고 다 됐습니다. 이거 가지고 성공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은 공심판을 상대로 해 가지고 지금 이 문제를 해결지웠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심판에 해결을 다 지워 놓으셔서 아무것도 행함없는 것이 모든 갇힌 감옥에서 다 자유됐다, 다 해방되고 자유됐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 영은 어디까지나 무한한 해방을 받았고. 무한한 자유를 가고. 무한한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제 몸만 이것이 얻으면 되어지는데, 되어지는데, 우리 건설구원도, 건설구원도 예수님이 이루신 거와같은 그런 방편을 취하면 너희들도 완성을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말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말은 너희들도 이렇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 승리 한 거와같이 너희들도 완전 승리를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이루는 것은 이거는 어떻게 이룰란가 그걸 모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성막을 지으라고 할 때에 성막을 단번에, 지으라고 이래 주욱 진술해 놓으시고 설계서를 떡 내놓으시고 실지로 시공할 때에는 주님께서, 그 시공할 때는 한 목 말하지 안하고 하나, '요거는 끊어라. 요거는 끊어라. 요거는 네모배기를 만들어라.
요거는 둘을 붙여라. 요거는 색칠을 뭐 해라' 한 가지 한 가지 시킬 때에 또박또박, 시키는 거 그거 하고 나니까 마지막에 출애굽기 39장에 보면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성막을 다 그대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둘러 보시고 하나님 명령하신 대로 됐는고로 거기에다가 축복하셨다 하신 말씀을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이렇게 큰 구원을 간추려서 신구약 성경속에다 포함해 놓고, 신구약 성경 속에다 포함해 놓고 일차 신구약 성경을 다 의심없이 믿고, 의심 없이 믿고, 또 이차적으로 이 성경 안에 영감 계 시가 있는 것도 우리가 믿고, 먼저 믿고, 고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간추려서 우리에게 현실 현실을 주실 때에 이 성구를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주시고 조 성구를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주셔서, 간추려서 그 현실에 성구를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을 주실 때에 주님이 주시는 계시대로 또박또박 그대로 순종하는 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하느냐? 순종 하는 일을 하면 신구약 육십육 권에 기록돼 있는 내용을 다 순종할 수가 있느냐? 아닙니다. 순종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간추려서 우리가 찍해야 현실에서 순종한다고 해 봤자 성경에 기록한 거 십분지 일이 될란지 백분의 일이 될란지 모릅니다. 그 만큼만 우리에게 현실을 줘 가지고 해서 당신 이 현실을 주시는 대로 다 또박또박 순종했을 때에 이게, 이것이 이거 다 순종이 돼 버리고 만다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 그게 비유가 잘 되지는 안하지만 시험을 칠 때에 이 사람이 대학에 입학이라면 대학에 가서 공부할 만한 뭐 자격이 되느냐 이런 면 저런 면 모든 면을 다, 자격이 돼야 되지 입학시켜 가지고 공부 못 하면 소용 없는데 입학 시험을 치를 때에 그러면 그 자격이 백 면에. 백 종류의 자격이 있어야 된다면 백 종류의 시험을 다 치는 것이 아 나고 그 시험은 불과 몇 문제만 내가지고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에 나머지기 됐으면 합격이라 하고 입학을 시키는 것입니다. 왜? 그것보면 벌써 그거 보니까 나머지기 시험 보나 안 보나 다 그만한 입학할 만한 실력이 있다 해서 입학을 시키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현실에서 순종한다고 해서 순종 하는 그거 하나만이 아니라 이 하나 순종을 통해서. 이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거 하나 순종했으니 당신이 인정을 백 가지를 하는지 천 가지를 하는지 만 가지를 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 현실에서 한 순종 한 의를 만드는 그것이 그 의가 백 가지에 쓰는지 만 가 지에 쓰는지 뭐 천 가지 만 가지가 통과됐는지 십만 가지가 통과됐는지 그 하나에서 몇만 가지가 통과됐는지 모른다 말이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그와같이 간추려 가지고 그와같이 해서 통과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수많은 해방, 수많은 자유, 수많은 종류의 은혜 수많은 지극히 큰 소망, 하나님의 충만이니까 그 가지 수를 뭐로 말 하겠습니까? 무한하신 분이신데. 모든 게 충만한데, 그 충만을 이제 신구 약 육십육 권에 기록해 냈다, 신구약 육십육 권에 이 구원이 다 들어있다 그러면, 신구약 육십육 권에 들어 있는데 신구약 육십육 권에는 그 무서로 있는데 문서 안에는 영감이 있는데 영감이 있으면 그러면 그게 다냐? 곧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이 다 들어 있다. 세상만 들어 있느냐? 영계도 다 들어 있다.
그러면 이 계시 속에는, 이 계시 속에는 육십육 권의 내용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육십육 권 내용 속에 영감 계시의 그 무한함이 다 이 속에 문서와 온리의 실상은 뭐이냐? 그것은 이 세상이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육십육 권에는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다 들어 있다. 또 영계의 하나님의 되조물이 다 들어 있다. 영계 것과 이 물질계의 것이 다 들어 있다.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은 그걸 말합니나. 나 들어 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이거 때문에 내가 여러 번 말합니다. 이걸 깨달아서 알아야 믿음이 생겨지고 담력이 생겨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그런 확신이 생겨지는 건데 이걸 모르면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알아야 되는데 이 계시록에 보면.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만물을 지은 것도 여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만물을 지은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영원 무궁 세계가 다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록돼 있고, 영계가 기록돼 있고, 이 물질계 우주가 기록돼 있고, 만물이 기록돼 있고 거기다. 다 기록돼 있다 말이오. 이래 뜨문뜨문 기록돼 있는 것이 이거 뭐이냐 하면 이 계시는, 이 계시는. 이 계시 속에는 뭐이 들어 있느냐? 이 계시속에는 육십육 권의 도리와 영감이 들어 있다.
육십육 권 도리와 영감은 그거는 곧 뭐이 냐? 그것은 온 세상과 영계와 모듣 피조물과 하나님이 이 계시 속에 다 들어 있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 속에 다 들어 있다 하면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아. 작은 그릇에는 큰 그릇이 들어갈 수 없고 큰 그릇이라야 작은 게 들어갈 수 있으니까 이 계시 속에 들었다니까 이 계시는 그러면 하나님 보다 크다 말 인가?' 이 계시 속에 들어 있다 말은 이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내 그 있다 그말입니다.
나타내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요번에 장생골에서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그 본체가 계시고, 하나님의 본체의 역사가 있으니 그 역사가 곧 영감이요. 영감이 이제, 영감이 모든 이 실물들에게 접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진리가 또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문서 계시라, 성경이라, 그러면. 성경은 우리가 볼 수 있다 말이오. 이래서, 그것을 자꾸 이렇게 나타난 과정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계시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이 신구약 성경 이 성경이 하나님은 작고 이 성경은 크기 때문에 성경 이 안에 들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 성경을 통해서, 무한하신 분이 이 성경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성경에서 나타난, 이 성경을 보면은. 마치 비유컨대는 이래 이렇게 됐다 할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이래 놔서 그트머리, 빼쪽한 끄트머리인데, 빼쪽한 그트머리, 절정, 빼쪽한 끄트머리인데 그안에 들어 가니까 그 안에 들어가니까 영감이 들어 있고, 또 들어가니까 그 안에 하나님 있고, 무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셨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타나셨는데 나타난 이 성경을 내가 믿고 순종하면 이거는 간추려서 절정만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인데 이를 믿으면 또 순종하면 그 안의 것을 다, 다 믿고 다 순종한 것이 된다.
이래서 마치 아까 시험 치는 거 가지고 말했지만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난 것을 이것을 믿으면 우리가 알지 못한 것까지 다 믿는 게 되고 이것을 행하면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 다 행한 것이 되고, 이제 예를 들어서 시험 치면, 만일 영어라면 영어 시험을 친다면 영어 몇 문제 그것을 딱 시험을 쳐 가지고 합격이 됐다 말이오. 그러면, 그만 그 정도의 영어라 하는 것은 다 줘. 그 정도의 영어라 하는 거는 이거는 다 안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처럼, 과학에 대해서 했으면 몇 가지 문제 했으면 그 문제를 알 때 이거는 거기에 나타내지 안한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거는 다 안다는 것으로 인정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간추려서 간략하고 편리하고 이렇게 쉽도록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 명령대로 순종을 해 가지고 한 의를 이루는 그것은 우리는 볼 때에 쪼만한 일에 한 의를 이루었다고 보지마 는서도 그 의는 하나님께서 몇 억억만 문제에 한 문제로 우리에게 시금으로 내줘 가지고 그 한 문제를 우리가 순종 달성함으로써 거기에 속한 것이 몇 억억만 문제가 다 합격으로 인정이 되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행한 한 의는 그 의의 가치가 우주보다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 기를 네가 한 현실에서 네 이 몸의 기능의 구속 구원을 이루는 그것이, 한 토막인 현실에서 네 구속 구원 이루는 그것이 온 천하 얻는 것보다 낫다, 이것을 잊어 버리고 손해 본 거. 한 가지 한 번 말씀 딱 어겨 버린 게 그게 뭐 커서? 한 번 말씀 어겨서 행하지 안한 그것이 네가 뭐 때문에 그걸 어겼느냐? 어긴 그것은 네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취하기 위해서 그걸 등한히 해서 어겼지? 그러나 온 천하보다 이거는 가치가 크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평가를 해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는 사람이 구원 이루는 것은 뭐 측량 못 합니다. 이제 하늘나라 가면, 지금 이 세상뿐 아니라 하늘나라 가면 그 층어리가 뭐 얼마나 층어리가 있는지 그 층어리는 한정을 못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구원이 이 계시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이것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확실히 믿어서, 생명이 끊어지는. 생명이 끊어지는 지경에서도 생명이 끊겨지면'끊겼지 이 깨달음은 변동이 안 돼야 되지 자기가 쉬울 때는 이대로 인정을 하지만 어려움 닥치면 이 인정하지 안하고 변해지면 그런 것은 다 생명적 교리가 되어 있지 안 하고 생명적 신조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다 죽은 교리 죽은 신조가 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아침에도 말했습니다. 정확히. 단일 교리와 신조를 가지라, 모든 복수적인 다수적인 그런 걸 가진 거는 창기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라 말이오. 교리가 창기적인 교리 창기적인 신조가 되면 그 사람의 행위는 물론 창기적인 행위가 되고 말고 그 인품이라는 그 인격도 창기적인 그런 인품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여기에 이 계시가 들어 있는데 그거 여러분들이 인정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은 이 계시 주인이 예수님이라 예수의 계시라, 누구? 누구의 계시가 아니고 예수님의 계시라 말이오. 이 계시는 주인이 예수님이라 그 말이오. 그 속에 한 걸음 더 들어 가서는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이 모든 구원의 은혜가 다 이 계시 속에 나타나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를 자기 것을 삼는 데는 이 계시를 자기 것 삼으면 그 은혜가 자기 것 된다 그러면 이 계시는 문서뿐이냐? 겉으머리는 문서요 속은 뭐이냐 하면 문서 문서인 동시에 문서와 짝이 되어 있으니까 문서에 나타난 대로, 나타난 대로 이 세상이 되어 있다, 문서에 나타난 대로 모든 피조물이 다 되어 있다. 창조주까지 다 되어 있다. 안에 내포돼 가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계시를 자기가 소유하면, 계시룰 자기가 소유하면 세상을 다 소유했고 계시를 소유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다 소유했고, 예수 그 리스도의 구원을 소유했으면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을 다 소유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다 소유했으면 피조물과 창조주를 다 자기의 것을 다 삼았다 자기 것을 다 삼았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말을 인간의 말로 표시할라 하니까 이런데 이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명상하고 명상해 가지고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아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뭣이 그리스도의 구원인가? 그리스도의 구원은 제사장 선지 왕의 구원 인데 제사장 선지 왕의 구원이라는 것은.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조화를 일오켜서 화평을 취하게 하는 것이 제사장 직책이요. 선지 직책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인간들에게 갖다가 전달해 주는 것이 선지 직책이요 왕의 직책은 하나님의 이 단일 통치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전달 해 가지고 모든 피조물 전체가 다 통일 통치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왕의 직책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직책의 실력을, 실력을 우리가 갖출라고 세상에 사는데 실력 갖추는 것이 뭐이냐? 실력 갖추는 거, 예수의 구원의 실력 갖추는 거 그리스도의 구원의 실력 갖추는 거, 예수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원 이 구원을 이 문서에 기록했는데, 내가 이 세상 살이 할 때에 현실 줄때마다 이 문서대로 내가 복종해서 살게 되면 무슨 작용이 일어나느냐? 내가 이대로 살게 되면 나는 예수의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기억만 하고 자꾸 가서 기도하면서 양심을 써서 새김질을 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모른다 말이오.
내가 이 계시 말씀대로 이대로 내가 실행을 하게 되면 나는 예수 그리스 도의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내가 이 세상에서 이 말씀 대로 실행을 하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근원이 되고, 나의 원인자가 되고, 나의 머리가 되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거기에 소속하고, 내가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행할 그때에 위로는 이런 관계가 맺어지고 아래로는 온 피조물이 다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것이 되어집니다.
내가 현실에서 이 계시 말씀대로 삶으로, 삶으로 나는 계시의 것이 되고 진리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 말이오.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것이 되고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과 그리스도는 내것이 됩니다. 내것이 된다는 말은 사람 말로 표현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내 것이 된다 하는 말인데. 나는 그의 것이 되고 그분은 나의 배경이 되고 내 근원이 되고 내 생명이 되고 내 능력 이 되고 나의 근원이 되고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피조물에 행했는데 이거는 어찌 되느냐? 피조물에 행한 그것은 내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피조물을 자기가 자기것이 됐다고 이 재판소에다가 등기를 해서 은행에다 둥기해 놓으면 그게 제것인 줄 알지만 그거는 이 한국이라는 이 정권 하에서, 정권 하에서 정권적인 소유가 됐다 그것이지 이 정권을 초월 하는 하나님에게는 소유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암만 이 세상 정권적으로는 자기 것이 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모든 피조물을 내것을 만드는 데에는 내가 현실에 하나님희 말씀대로, 그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할 때에 그것은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내가 이겼고 내가 다스렸고 내가 점령했기 때문에 영원히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하나님의 말씀이 이 현실이요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계시에 기록된 것이 이 기록 된 내용이 이 세상이요 모든 피조물어요 창조주요 또 이 피조물 이것은 곧 계시요 이것이 서로 하나라 그 말이오. 하나 하나인데, 이래서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대로 실행하는 이 실행으로만. 실행으로만 진리 는 내것 되고 영감은 내것 되고 주님은 내것 되고 그리스도는 내것 되고, 내것 된다 말은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됐고 진리의 것이 됐고 주님의 것이 됐다는 말입니다. 됐고 그러면. 이 현실이라는 요거는 묘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실에 하나님 말씀하고 현실하고 요래 있는데, 내가 이 말씀을 버리고 현 실만 가질 수 있고 말씀하고 현실하고 둘을 다 못 가져서 이 말씀대로 현실을 가져 버립니다.
말씀대로 현실을 취급하고 현실을 가집니다. 요러면 나는 말씀도 잡아서 취했고 현실도 취한 것이 됩니다. 고래 되면 여기에서 무슨 결과가 맺어지느냐 하면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 도의 몸이 되고.
나는 주의 것 되고, 그리스도와 주님과 진리는 내것 되었으니, 내것 됐다 그거는 내가 소유적으로 가지는 것으로 내것 된 것이 아니고, 내가 그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분은 내 배경이요, 내 생명이요, 내 머리요, 내 근원이요, 내 자본이요, 나의 근본이 되는 것이요, 그러면 내가 이 진리대로 현실을 접촉했는데 이 현실이라는 이거, 현실, 물질계라는 이 물질, 모든 피조물이라는 것은 어찌 되느냐? 이 피조물은 거기서만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감과 진리.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대해서 오묘를 말하는데, 근본 하나님이 자존하신 그분은 한 분이 계셨습니다. 자존하신 한 분이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부의 본체가 있고 성자의 본체가 있고 또 성령의 본체가 있다. 본체가 서이라'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은 자기가 깨닫지 못해서 그럴 것입니다. 깨닫지 못해, 잘 깨달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 이제 그 근본인 거기에는 한 뿐 하나님이신데 거기서 본체로 될 때는 벌써 삼 본체 삼 위가 된 것입니다. 삼 위가 됐는데, 그것은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지만 내나 동시에 된 것이고 이렇기 때문에 벌써 거기서 뻗어져 나와 가지고 그 다음에 그런 것이지 삼위일체라 근본은 하나님 한 분이오. 한 분인데 인제 세 격위을 가졌다, 삼 위라 하는 건 세 격위를 가졌다 말이오. 격위를 가지신. 격위를 가지고 이제 성부의 격위를 가졌고 성자의 격위를 가졌고 성령 의 격위를 가졌고 격위를 가졌는데, 거기에는 다 성부의 본체가 있고 성자의 본체가 있고 성령의 본체가 있다 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삼 위의 한 본 체가 되어 있는 그 한 본체가 그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은 여기서 내가,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장하시고 나는 그분이 나를 책임지고 주관해서 나는 그분의 보호를 입고 나는 그분의 전 혜택으로 내가 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지체라 말은.
하나님의 지체라 말은 나는 지능이 없지만서도 하나님의 지능이 나를 붙들고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대로 다 이룰 때에 그걸 가리켜서 우리 말로 표현해서 하나님의 지체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하나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 생명으로 계시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써서 당신의 하실 일을 다 하신다. 그러니까. 네가 하나 실상 하나님이 하시고 나는 그분에게 피동돼 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나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이나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을 떠나면 못 한다, 이 세상에서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에 내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행함으로써 나는 위로서는 이런 관계를 맺게 되고, 위로 이런 관계를 맺게 되고, 아래로는 모든 피조물을, 피조물을 내것 삼아 가지고 통치해서 영원히 이것을 살릴 수 있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그들에게 충만시킬 수 있는 이런 위치를 마련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위로 맺어지는 지극히 큰 역사가 있고. 아래로 맺어지는 지극히 큰 역사가 있으니까 이 속에서 우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종도 되고. 하나님의 성전도 되고, 하나님의 지체도 되고 하나님의 몸도 되고, 하나님의 신부도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되고 하나님의 백성도 되고, 하나님의 제사장도 되고, 하나님의 선지자도 되고 하나님의 왕도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도 되고. 하나님외 형상도 되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위로 이렇게 지극히 큰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요.
우리 현실에서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 지극히 큰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이라 하는 거는 굉장한 오묘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우리 현실을 삼킬라고 온갖 이 세상, 우리 속에 온갖 악령 악성의 부패성이 있으니까 이 부패성을 충동시키고, 회개하려고 해도 우리가 과거의 습성이 있어, 과거에 악령 악성에 따라서 죄 짓던 습관 그 버릇이 있어.
죄 짓는 취미가 있어. 죄 짓는 흥미가 있어, 또 정이 붙었어.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숙달됐어. 숙달됐기 때문에 이런 것을 작용해 가지고 이 굉장한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우리를 삼킬라고 애를 쓰고, 안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들어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애를 쓰고 이 두 틈바구니 양 사이 속에 들어 있는 우리인데, 이 양 사이 속에 들어 있는데, 내가 있는 것은 현실이라는 그 속에 이 양쪽을 가지고 내가 현실 속에 있으니까 이 현실에서 내가 종이 되면, 내가 주님에게 피동되어서 그에게 피동되면 이 피동되는 이 한 사건으로써 뭐이 맺느냐? 위로는 우리에게는 다 맺어집니다. 위로는 다 맺어져.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예수님이 다른 방법 쓰지 안했어.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이거 하나 가지고 다 됐어. 복종 이거. '이러므로' 이거 하나 가지고 모든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점령하되 그것을 영원히 구출하는 구주로 점령을 했고, 이거 하나 가지고 위에 계시는 모든 것을 다 완성을 이룬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복종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아라 나의 하나님 너희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게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 하는 것은 이제 벌써 지성소 휘장을 뚫고 들어가서 휘장 안에 들어가 가지고 벌써 법궤 위에 또 그룹 사 이에 속죄소 위에 거기에 예수님이 가셔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이 계시는, 그룹 사이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거기에 가 가지고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올라갔다 내려오시고 난 다음에 그때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 구원을, 오늘 저녁에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의 지극히 측량 못 할 큰 구원이 간추리고 간추려서, 간추려 가지고 가장 간략하게 아주 축소 축소 축소시켜 가지고 이 짧은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에다가 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한 현실에서 이루는 구원은 위로도 그 이룸이 무한 하고 또 밑으로서도 이루는 것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무한하다, 영계나 물질계나. 그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의 것과 생명의 것이 다 너희 것이 된다 너희 것이 되는 거는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됨으로써 다 된다 이렇게 우리가 축소해 가지고 이래 했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알고 우리는 현실을 뺏기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의 구원도 그리스도의 구원도 이 계시 속에 들어 있다. 계시 속에 들어 있는데, 그러면, 이 계시를 누가 차지할자 가 있느냐? 그 여러 종, '여러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여러 종들에게 줄라 그 하나님이 준비해 놨다. 여러 종들만 받을 수 있다, 종이 아니면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순종 외에는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두 순종밖에 없는데, 순종 하나는 마음의 순종이요 하나는 몸의 순종인 것입니다. 마음의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 육십육 권 도리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고 또 그 속에 영감 계시 무한한 계시가 있는데 영감 계시 이것을 내가 인정하는 것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인정하는 것. 문서 제시를 인정하고. 또 안에 있는 영감 계시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섭리 계시를 내가 인정을 하고 이래 인정하고. 인정하는 거, 또 몸으로 순종하는 거는 뭐이냐 하면 인정하는 그대로 내가 몸으로 또박또박 행하는 것이 몸의 순종이니까 이 두 순종으로써만 이 지 극히 큰 구원이 이루어지지 달리는 이루어지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을 하면 우리 자체가 변화가 됩니다. 실행을 하면.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말에 거하면' 그 말은 내 말씀대로 행하면 그말입니다. 믿고 행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네가 그리스도의 형상화된다. 네가 성화가 된다. 그라고 나면 '진리를 알지니' 내나 네가 알고 행한 진리를 행하고 나면 새로 알게 된다. 새로 알면은 '그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네가, 처음에는 네가 진리를 네가 지키지만, 네가 지키지만 네가 지킴으로써 그 진리로 인해서 네가 성화가 되어지면 그 다음에는 진리가 너를 붙들고 어디든지 자유해서 너는 그 진리의 것이 돼 버리고, 진리, 전능의 진리가 너를 붙들고 이제 움직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말씀한 그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요게 있기 때문에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런데. 이거는 종들만 받는다, 종들만 받는데, 단번에 된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아주 단번 단번 구원으로 이루어 진다, 이 현실에 이 구원 딱 이루었고, 그거는 또 이차 없어요. 그거는 그만 영원, 영원 멸망이면 멸망 영생이면 영생 딱 돼 버리고 그 다음에 또 이루고 또 이루고 이룬다. 이러기 때문에,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이래서. 이 가운데는 네가 현실에서, 현실에서, 한 현실을 만나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지키는 그것을 너는 단순히 그렇게 보지만 너 현실 만 나는 그 현실은 그것이 모든 세상. 마귀에게 점령돼 가지고, 이 세상은 마귀에게 점령되어서 타락한 피조물 영계는 타락되지 안한 피조물, 타락된 피조물 타락되지 안한 피조물, 타락된 피조물을 점령하면 타락되지 안한 피조물도 네가 점령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네가 현실을 만난 거 조그만한 눈꼽재기만한 현실을 만났지만 그 현실은 모든 피조물과 연관성이 다 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피조물 이걸 하나 네가 점령하면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을 네가 다 점령한 것이 되어진다. 요라면 이걸 통해서 요게는 또 하나님의 그 무 한하심 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요라면 진리, 영감, 하나님 본체까지 다 연관돼 있기 때문에 그분과 완전 연결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이 계시는, 이 계시가 바로 육십육 권 도리요 또 영감 전부요 이것이 이 모든 세상 전부요 피조물 전부라.
그러면,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화를 만난 사람이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삼과 같다, 그러면, 그 밭은 뭐로 비유하는가? 그 밭은 세상입니다. 밭은 세상이오. 밭은 세상인데 또 뭐입니까? 세상하고 뭐 하고 하나라 했습니까? 세상하고 뭐하고 하나라 했소? 예? 세상과 계 시와 하나입니다. 그러면, 다 팔아서 밭을 샀다 하니까 밭을 살라면 뭘 사야 됩니까? 밭 샀다 말이 뭐 샀다 말이오? 세상 샀다 말이오. 세상 샀다 말이오. 피조물 샀다 말이오. 창조주 샀다 말이오. 진리 샀다 말이오. 영감 샀다 말이오. 내게 있는 거 다 팔아야 하나님도 내 하나님 되고 피조물도 내것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구원이요 이거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에 가리워져 가지고, 자기라는, 그 사욕과 주관이라는 데에 가리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구원을 보지 못하고 자꾸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서 가까운 것만 보고 또 더 얕은 것만 보고 하니까 얕은 것 가까운 것은 전부 가치가 적은 거 없는 거 죽은 거 사망되는 거 그뿐이라 그 말이오.
이래 자꾸 들으면 여러분들이 차차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듣고 버리지 말고 자꾸 생각해요. 머리가 빠지도록 생각해요. 머리가 빠지도록. 머리가 빠지도록 자꾸 생각해.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마음이 자꾸 밝아질 것입니다. 생각하고 또 내가 실행하고 생각하고 실행하면 자꾸 마음이 밝아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몸도 밝아지고 모든 게 밝아질 것이라 말이오 이러면 점점 우리들이 보는 세계가 달라져서, 세계가 달라지고 또 우리의 모든 평가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하고 가치 없는 것하고 둘이 있으면 가치 없는 것 취하려고 하고 가치있는 거 버릴 자가 누가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평가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평가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버리지 못한다 말이오. 세상 그게 제일 좋은 줄 아는 데 버릴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주를 위해 버립니까? 안 버리요. 평가적으로 제가 '이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낫다. 주님의 말씀을 어긴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생명을 바치고 주님의 말씀 지키는 것이, 이거는 유익이 천 배 만 배 낫다' 하는 이거 평가를 가진 사람이라야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