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23:34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1986. 10. 12 주일오전
본문:사도행전 3장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우리가 여러 각도로 공부를 했습니다. 별스러운 어떤 해석이나 그런 것을 생각지 않고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서 이 보배로운 믿음이 생겨지기를 원해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시간에 여게 대한 도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이 보배로운 믿음을 받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세밀히 알아 보았자 믿음 없으면 생명 없는 곡식 종자와 같습니다. 그것은 썩어지는 것이지 자라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장사의 몸이라도 영혼이 떠나면 그는 죽은 시체인 것과 같이 아무리 훌륭한 이 성경 말씀의 지식을 구비하게 가졌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했습니다. 기독교는 간단하고 또 절대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류들도 있고 주장들도 있고 말들도 있어서 세상은 말로 가득 찬 세상이요, 각종의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요, 또 길과 행복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러나 생명길은 하나뿐이요 또 행복도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은 두 길로만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유황불 구렁텅이인 지옥을 향하여 가는 길과 영생하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과 이 두 길뿐인 세상입니다.
지옥 가는 길은 두고 영생하는 하늘나라에 가는, 인간의 완전 성공 영원 불변의 성공 이 성공은, 그 이름이라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말입니다. 그 이름은 누구 이름을 말한 것인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리켜서 그 이름이라 이랬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옛날도 오늘도 인생 문제는 그 이름으로만 해결되고 완성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세상 모든 것은 그 이름으로만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성공됩니다. 또 영원 무궁의 내세,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 나라의 모든 형편도 그 이름으로만 해결되고 성공되는 것입니다. 뭐 간단합니다. 예수 믿기도 간단하요.
성경에 육십 육 권을 말한 것은 오히려 복잡합니다. 다른 이종교에다 비해서는 그 성경이 아주 간단하게 돼 가지고 있어서 책 페이지 수를 가지고서 자랑하는 사람들은 ‘이 불교는 팔만 대장경이나 되는데 기독교는 조그만한 신구약 성경 한 권뿐이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책의 페이지 수 많은 것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것도 많습니다.
많은 것은, 그 이름을 믿으면 다인데, 그 이름을 믿는 데에 세상에 수많은 방해들이 있기 때문에 그 방해들을 이렇게 저렇게 알리기 위해서 수가 많아졌고 또 그 모든 방해들을 어떻게 피해서 이겨야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수가 많았지 그 속에 알맹이로 말하면 그 이름만 믿으면 다 됩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제일 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 하는 것이 전 성경의 요절입니다.
그러기에, 인생 문제, 자기라는 자기 문제나 자기와 관련되는 모든 사람 문제나 인간은 그 이름으로만 문제 해결되고 모든 성공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또 인생에게는 금생과 내세가 있는데 금생은 이 우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금생이요 내세는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때가 내세입니다.
금생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개인으로서는 그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고 내세는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도 죽는 것은 아닙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거기 일단 옮겨가고 난 다음에는 죽지 않고 그 존재가 멸해지지 않고 그 존재가 영원히 고통되는 것이 그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그 유황불 구렁텅이는 조물주를 배반한 그 배신과 배은의 보응을 받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방어해 주시는 방어를 하지 안하시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창조하셨는데 그런 것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물 한 방울도 하나님의 창조는 그 자리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반대하고 배척하기를 수천 번 수만 번 수억만 번 했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살아보라’ 하고서 하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없는 깜깜한 흑암 세계에 인간들이 만든 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게는 ‘불이라’ 했는데 분쟁의 불이요, 원망의 불이요, 시비의 불이요, 서로 살해의 불이요, 서로 미움의 불이요 그런 것들만 있기 때문에 거게는 구더기도 죽지는 않습니다.
사람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자기라는 사람 문제가 제일 크고, 그 다음에 둘째 문제는 우선 급하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 있는 세상 문제가 둘째로 큽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죽어, 신불신자간에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받아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고 하늘나라로 가는 영원 무궁한 내세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문제가 사람들에게 봉착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외에 식물이나 동물이나 그런 것은 이 문제가 봉착되지 않습니다.
범죄했으면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다시 물질로 돌아가서 그것이 물질로 재창조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약간 좀 추상 추론해 가지고서 그것을 모든 윤회주의라, 사람이 소도 되고 소가 사람도 된다 하는 그 물질만의 윤회를 보고서 그 석가모니는 말을 했으나 그것은 성경에 보면은 근본도 결말도 모르는 무지하고 무식한 소리입니다.
사람은 세 가지 문제, 자기라는 사람 문제, 금생 문제, 내세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들인데 이 세 가지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은 그 이름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세 가지를 영원히 행복되게, 영원히 살게, 영윈히 평강과 존귀케 하는 것도 그 이름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다 배워서 알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대해서는 오후 시간에 다시 한번 더 세밀히 증거하겠습니다.
그런데 오전에는 그 이름을 믿을 때에 그 이름이 인간에 속한 것을 해결지웠습니다. 그 이름이 인간에 속한 것을 해결지워서 첫째는 죽음에서 살렸고, 둘째는 조물주와 결합을 가졌고, 셋째로는 모든 존재를 해치는 자가 모든 존재를 봉사하는 자가 되어졌고, 또 자신이 말할 수 없는 고통 문제가 해결됐고, 또 가치 문제가 해결됐고, 모든 사람을 잃어버리지 안하고 사람을 얻는 그 일이 성공이 됐고, 영광의 주목 대상의 성공이 된 것이 그것이 사도행전 3장 1절 이하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 문제 해결된 것이.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는 인생 문제도 금생 문제도 영원 내세 문제도 모든 얽혀 있는 것을 다 완전히 해결해서 정리 정비하고 금생과 내세에 인생의 행복과 성공을 가져오게 되는 그 이름, 그 이름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해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기를 원하고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우리가 믿을 때에 역사하고 그 소원을 달성합니다.
우리도 믿을 때에 그 은혜를 받아서 우리 소원의 달성이 됩니다.
그 이름은, 그 이름은 이 세 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서 이 세 가지가 영영히 행복되게 하려는 것이 그 이름의 소원이요 그 이름의 소원은 우리 기독자들에게 이 세 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지워서 완전히 행복되게 하려는 것이 그 이름의 소원이요 그 이름의 소원. 또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가 가져야 할 소원은 그 이름의 은혜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그 이름의 은혜 이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사람이 몰라서 돈 소원, 뭐 소원, 지위 명예 소원 이러고 있지마는 그것은 다 정상의 사람이 아니고 완전히 변질돼서 생명성은 없는 죽은 자의 소원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높은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모르는 자는 잡혀 죽을 멸망할 짐승과 같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과 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의 소원은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완전히 행복되게 완성해 주고저 하시는 것이 그 이름의 소원이요 또 우리 인생이 가질 참 소원은 그 이름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그 은총을, 그 구원을 완전히 받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우리 소원이요 하나님 소원인데 이 양소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완전히 은혜를 베풀어서 주고자 하시는 소원이요, 주고자 하시는 소원이요 또 우리는 정상적이라면 받고자 하는 소원입니다.
주님은 주고자 하시는 소원이요 우리는 받고자 하는 소원이니까 이 소원이야 뭐 어려울 것이 뭐 있습니까! 주님은 주시고자 하시는 소원이요 우리는 받고자 하는 소원인데 이 소원이 어데서 가로막혀 가지고서 이루지 못하고 있느냐? 가로막힌 것은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여게서 가로막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 소원, 그 이름의 소원과 우리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믿을 때 이루어지고 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믿지 않을 때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온 세계하고 싸울 때라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내 소원을 방해하는 것은 박살이 납니다. 믿을 때에, 천하가 반대해도 믿을 때에 그 모든 대적은 다 결국 결과적으로 이용을 하고야 말지 그 대적들에게 모든 존재들에게 털끝만한 손해도 손해를 당하지 안합니다.
이것은 물에 넣어도 붇지 안할 만할 이 순전한 거짓말로 모든 사람들이 다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거짓말이 아니라 하는 것을 어떤 그 웅변가가 증거를 할라 해도 다 소용 없습니다. 천하에 학술을 가지고 증거할라 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 이름을 믿을 때에 이 세 가지 문제가 완전 해결되는 이 사실을,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되는 이 사실을 뭘로 가르칠 것인가? 이것은 가르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가르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천하에 있는 학문을 다 끌어다 붙이면 되는가? 안 됩니다.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증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증거하는 그 많은 증거를 끌어다 대면은 이 믿음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모릅니다. 안 됩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다만 이 믿으면 된다는 것은 아무것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로만 알 수 있습니다. 믿으니 그 이름이 이렇게 완전히 낫게 한다, 인생 문제를 완전케 한다, 금생 문제를 완전케 한다, 내세 문제를 완전케 한다, 믿을 때에 그 이름이 완전케 한다.
믿으면 완전케 한다는 이것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고 해도 믿으면 완전케 된다는 이 사실을 아는 길은 없습니다. 아는 길은 없습니다. 천인 만인이 ‘그거는 맞다’ 증거한다고 해도, 증거를 해서 그 사람에게 증거를 보여 줘도 그 속에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해서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키고 아무리 자복을 시킨다 할지라도 그 속에 이 사실을 아는, 이 사실을 자기가 확실히 알아지는 그 지식은 생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믿으면 된다, 그 이름을 믿으면 그 이름이 이렇게 완전케 낫게 한다 하는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딴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는 것은 믿어봐야 됩니다. 믿으면 압니다.
콩내끼만치 믿으면 콩내끼만치 알아지게 되고, 태산같이 믿으면 태산같이 알아지게 되고, 하나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도 모르고, 제가 평생 목사노릇을 하고 설교를 해도 믿어보지 안했으면, 믿어보지 안했으면 그 사람은 앵무새 모양으로 생명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저는 모릅니다. 아무리 무식해도 성경을 몰라도 한 마디 듣고 그대로 행해 보면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제일 좋은 믿음이 어떤 믿음인고 하니 앎으로 믿고 행하고, 행함으로 알고, 앎으로 안 대로 행하고 행함으로 자기가 다시 알았고 또 앎으로 또 행하고, 앎으로 행하고 행함으로 알고 앎으로 행하고 요 둘로만 가는 요 외에는 아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하지는 안하고 자기가 이해가 되고 긍정이 되고 거게 ‘긍정되고 이해가 돼야 욕망이 생겨지고 욕망이 생겨져야 행하지’ 하는 사람은 긍정과 욕망이 생겨지지 전에는 행하지 않습니다. 행하지 안한 자는 평생 모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데 막혀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되는가? 자기의 주관 때문에 막혀서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배는 그 이름이 보배이고 이 세 가지를 해결받는 보배를 내것 삼는 데에는 믿음 외에 딴것은 없습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러면 믿음이 뭐인데?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러면 이 믿음은 무슨 믿음인고 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대구에서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인데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무슨 믿음인가?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배워서 기억하고 이것을 계속 새김질하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기 때문에 자꾸 믿음이 자라갑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무엇인가를 자기가 바로 배워 가지고 기억하고 이것을 자꾸 새김질 하면은 믿음이 커집니다.
예수로 난 믿음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것인데 이 믿음은 종자가 어데서부터 그 종자가 시작됐는가? 종자는 하나님만이 홀로 영원 자존하셨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과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드셔서 당신의 하신 모든 일을 다 맡아 가지고 유업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같이 온전한 자를 만들려 하는 하나님의 목정을 정했습니다. 이 목적을 정했는데 이 목적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선택이라 이렇게 합니다.
그 목적이 선택이라 말은 내가 알기로는 우리만 말하고 있지 모든 세계 조직신학에서 선택이 그 목적이라 하는 그런 말은 이제까지는 없습니다. 없으나 앞으로는 선택은 하나님의 목적이라 하는 것이 세계에 가득 찰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움튼 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이 믿음이 움이 텄습니다. 싹이 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믿음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연장됐습니다. 연장, 연장이라 말은 내가 나 혼자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든 단어이니까 아마 일반 공통어에 모순이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로 아십시오.
제가 연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목적 안에서 움튼 그 움이 예정 안에 연해 가지고서 예정 안에서 자랐다, 자랄 장자입니다. 연할 련자 자랄 장자, 목적 안에서 움튼 것이 예정 안에 연장됐습니다. 예정 안에 연해 가지고서 자랐습니다.
이것이 예수로 난 믿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연장되어 있는 그 믿음이 하나님의 창조 안에 연장됐습니다. 창조 안에 연결돼 와 가지고서 거게 와서 지금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 연장된 그 믿음이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 안에 연장됐습니다. 대속 안으로 건너와 가지고 대속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대속 안에서 자란 그 믿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사람 안에 와서 연장되고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 안에 들어와 가지고서 연해서 지금 자라고 있습니다. 이 연장된 이 믿음이 중생된 그 사람의 심신 속에 와서 연장돼 있습니다. 그 중생된 사람의 그 마음과 몸, 영과 육, 중생된 사람의 영육 속에 이 믿음이 연장하고 있습니다. 거게 와 건너와 가지고 있습니다. 여게서부터 인간 요소의 역사가 거기에 가담됩니다.
일곱 가지인데, 다섯 가지는 인간 요소의 역사는 하나도 상관치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 역사였고 여섯째가 중생된 영육 속에 와 가지고 이 연장된 믿음이 내주하고 있습니다. 내주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인적 요소의 작동이 시작됩니다.
거게서부터는 하나님의 객관 역사로서만 하지를 안하고, 객관 역사는 하지 못하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지공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중생된 영은 벌써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그는 엄연히 그 심신의 주격이 되어 있는 것이 영입니다.
주격이 있기 때문에 주격이 생겨진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주격을 침략해서 월권적으로 그 심신에게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의논해 가지고서 영을 통해서 그 심신에게 건너오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로마 8장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는 것은 중생된 영입니다.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심신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이 우리에게까지 온 데는 일곱 가지 순서를 거치는데 다섯 가지 순서는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 역사요, 인간은 상관도 없는 객관 역사요. 객관 역사이기 때문에 이거는 꼭 같습니다. 잘 믿는 사람이나 못 믿는 사람이나 사도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이 다섯은 꼭 같은데 그 다음에 여섯째부터 인간 행동이 거게 같이 개재합니다.
거게 같이 역사하게 됩니다. 인간 행동이 역사하는 거게서 이 다섯 가지 계통을 통해서 온 이 연장된 그 믿음을 이 영육이라는 그 사람이 이 믿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영에게는 와서 있지마는 육이 지금 이 믿음을 받아들이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돼서 육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은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객관 역사의 능력으로 이 영에게 이 믿음을 강제로 넣었습니다. 강제로 넣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는 믿음의 씨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씨는 저 상고 하나님의 목적에서 움텄지마는 일반 신학자들이 다 말하는 것은, 믿음의 씨라고 말하는 것은 중생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씨를 넣어 줬다 해서 믿음의 씨의 시작이 중생된 그 영이 그 이름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진 것을 믿음의 씨라고 말하는데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믿음의 씨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에서 움튼 것이 벌써 예정에서 연장됐고, 예정에 연장된 것이 창조에 연장됐고, 창조에 연장된 것이 대속에 연장됐고, 대속에 연장된 것이 중생에 연장됐고, 중생 안에 있는 것이 그 다음에 여섯째로 영육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주하게 되는 것이 영 속에는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기 때문에 내주하지마는 심신은 벌써 영이 주격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강제가 없고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설화하고 타이르고 권면하고 이렇지, 영을 통해서 타이르고 권면하고 모든 증거를 알리지 강제는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섯째로 그 영육에 이 믿음이 내주하게 되는데 영에게는 항상 내주해 있지마는, 영은 내주해 있는데 영은 상관없고 영은 구원을 이루었고 이 심신 구원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심신에 이 믿음이 내주해야 되는고로 이 믿음을 심신 속에다가 넣어 줄라고 피와 성령과진리가 역사를 합니다. 역사를 해서 이 심신이 그 이름을 믿을 때에, 그 심신이 그 이름을 믿을 때에 그 믿음은 심신 속에 건너와서 심신 속에 내주해 있습니다.
심신 속에 내주해 있는 그 믿음이 그 심신의 행동으로 폭발합니다. 그 심신의 행동으로 폭발을 해서 그 이름을 믿는, 세 가지, 폭발은 세 가지인데 그 이름을 아는 이 지식에 폭발이 되고 그 다음에는 확실히 믿는 확신에 폭발이 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에 폭발이 됩니다.
그러면 그 심신이 이 믿음의 행동을 할 때에 그 이름은 와 가지고 우리에게 인생의 대한 모든 거, 인생 문제, 인생 문제가, 인생에게는 금생과 내세가 저희 거주지요 처소이기 때문에 인생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으니 금생 내세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이름이 해결해 주는데 그 이름이 해결해 줄 수 있도록 믿는 믿음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야 하는데 그 믿음은 우리 마음과 우리 몸에 이 믿음을 영접해 들이면 우리 마음 안에 그 믿음이 있고 우리 몸 안에 그 믿음이 있다가서 우리 마음과 몸의 행동으로 그 믿음이 폭발합니다. 그 믿음이 폭발하면 그 이름을 믿는 게 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하는 그 믿음이 됐어. “그 이름을 믿으므로” 이제 그 이름을 믿습니다. 그 폭발이 그 이름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이렇게 발휘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발효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발휘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발산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폭발됩니다. 그럴 때에 그 능력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완전히 낫게 하는 그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로 난 믿음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믿음은, 믿음은 세상에 여러 뭐 백도 천도 종류가 많습니다. 믿는다고 믿으면 되는 거 아닙니다.
믿는다고 믿으면 되는 거 아니고 예수로 난 믿음이라야 됩니다. 믿으면 되는 게 아니라. 예수로 난 믿음이어야 됩니다.
저 산에 굴 속에서 그 귀신 들린 사람들, 굴 속에서 귀신 들린 사람들, 우리 교회에 ○○○씨 같은 그 귀신 들린 사람 그런 사람들 또 여기 뭐 삼각산에는 가면은 그런 귀신 들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예수로 난 믿음을 가지지 안하고 있습니다. 예수로 난 믿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예수로 난 믿음을 요 다섯 자기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서 인생에게 여섯째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통과하지 안한 믿음은 잡종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인데?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믿음이 시작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믿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예정을 믿고, 하나님의 목적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한 그 예정을 믿어서 창조가 되고, 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예정과 창조가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을 통과한 것이 이제 중생이 되고, 중생을 통과한 그것이 비로소 우리의 영육이라는 인생 속에 들어와서 이 믿음이 생겨져서 내주해 있고, 믿음이 그 안에 들어와 가지고 거처하고 내주해 있고, 내주해 있는 이 믿음이 그 사람의 영육을 통해서, 심신을 통해서 발효됩니다. 발효됩니다. ‘아, 그 이름을 믿는다. 의심 없이 믿는다. 그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믿는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세 가지입니다. 그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 이름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능력은 폭발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믿음은 목적이 없는 믿음, 예정이 없는 믿음, 창조가 없는 믿음, 예수님의 대속도 없는 믿음, 믿사옵나이다 하는 거게서부터 시작한 그거는 잡탱이 믿음입니다. 잡탱이 믿음. 또 자기가 암만 믿는다 해도 중생을 부인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중생되지 안한 사람이 제가 암만 해도, 울어도 힘써도 아무리 깨끗하고 착해도 안 된다는 것은 다시 나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된다, 다시 나지 안했기 때문에 안 된다. 중생되지 안한 자는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정에 그 구원이 들지 안한 사람은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창조에 들지 안한 사람은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또 창조에 들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했으면 헛일입니다. 또 대속을 입어도 중생되지 안했으면 이 믿음은 못 가집니다. 구원은 얻는다 할지라도 이 믿음은 가지지 못합니다.
구원은 얻는다 해도? 녜. 하나님의 목적인 선택에 들었으면 구원은 얻습니다.
택한 자는 배어 가지고서 밴 지 뭐 한 달 만에 낙태해도 좋고 그 잉태된 지 하루 만에 낙태돼도 택한 자면 다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택한 자에게 있고 없고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데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세 가지 문제를 완성하는 것은 그 이름의 역사라야 완성이 됩니다.
그 이름의 역사. 그 이름의 역사라니? 그 이름의 역사는 믿으면 됩니다. 그 이름의 역사가 뭐인가? 간단하게 하나 말한다면은 맨끄트머리 껍데기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하고 싸울 때에 다니엘이 사자의 입을 막은 것은 히브리 11장 29절 이하에,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탐정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 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이렇게 다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음으로. 이게 다 예수로 난 믿음입니다.
이런데 지금도, 하나 예를 들면은, 다니엘이 마지막에 껍데기 진리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에 기도하는 일을 쉬지 말아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데 다리오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안하면 너는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할 때에 다리오왕은 권세 잡은 정권자요 다니엘은 그 밑에 뭐 총리니까 거게 속한 자입니다. 이랬는데 다니엘은 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기도한다는 실행을 양보 안 했습니다.
‘행한다는 것을 양보해라’ `양보할 수 없습니다.’ ‘양보 안 하면 사자구덩이 넣는다.' 이래도 그 행하는 것을 양보하지 안하니까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지마는 사자구덩이가 깨어지고 사자 입이 막혔으면 막혔지 다니엘은 죽지 안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구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요 믿음을 배반치 안하고 요 믿음을 믿으므로, 믿음을 믿는다 말은 그 믿음을 행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그 믿음은 몇 가지입니까? 그 이름이 몇 가지입니까? 그 이름이 몇 가지입니까, 이름이? 그 이름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그 이름이 몇 가지입니까? 다섯 가지. 그 이름이 다섯 가지요. 다섯 가지인데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을 양보하지 않을 때에 사자도 불도 세계도 우주도 어떤 영물도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일본 나라를 물리치기를 요 믿음 가지고 물리쳤소. 공산주의 물리치기를 이 믿음 가지고 물리쳤어. 요 믿음을 믿는 거,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 믿으면 그 이름이 그를 성하게 한다는 요것을 업신여깁니다. 인간 앞에서 요 믿음을 믿을라 할 때에, 진리를 지킬라 할 때, 영감을 소멸하지 안할라 할 때에,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배반치 안할라 할 때에 목을 끊는다 하니까 목 끊길까 겁이 나서 요 믿음을 뺏긴 자마다 하나님의 그 이름의 능력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런데, 이렇게 닥쳐 놓으면, 직장만 떨어진다 해도 꼼짝도 못하는 게, 돈만 뺏긴다 해도 꼼짝도 못하는 게, 애정만 뺏긴다 해도 꼼짝도 못하는 것이, 생명만 뺏긴다 해도 꼼짝도 못하는 것이 그 이름을 믿는다는 말을 할 때에는 아주 업수이 여깁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 그 이름을 믿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 이름 믿으면 다 성공이라! 완성이라! 그 이름 믿으면은 피조물은 다 정복할 수 있어! 다 발 아래 밟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 그 이름을 믿는 자의 것이 우주와 영계입니다! 우주와 영계는 그 이름을 믿는 자의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통치를 받아야 돼! 믿는 자의 혜택이 아니면 살지를 못해! 알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말고 잡것을 끌어들어오지 말아요. 우리 교회 저 별관이 무너질라고 중심에서 4인치가 넘어갔습니다. 4인치가 넘어갔으니까 무거운 것이 중심이 4인치가 벌써 틀렸으니까 넘어가는 건 정한 이치요.
저것이 뭘 보이고 있느냐? 우리 교회서 아무리 해도 이거 원수가 와 가지고서 이거 잡탱이, 이단 잡탱이 그런 것 들어오면 그걸 영접하면 제가 아무리 잘 믿어도 그거 믿으면 일조일석에 바싹바싹 깨집니다. 그걸 보이고 있어.
나는 그렇게 기도했어. ‘주님이여, 이제 그걸 우리가 알았습니다. 알았으니까 저게 파괴되면은, 그까짓 거 파괴돼 봤자 그까짓 거 몇닢푼치 되지도 않는 것이지마는 파괴되면 어리석은 믿음의 어린 믿음들은 마귀들이 유혹할 터이니까, 그 유혹에 빠져서 구원 손해보게 되니까 저거 건져 주옵소서. 그 집이 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거 보고 마귀란 놈이 이용해 가지고서 인간들을 미혹시켜서 오해해 가지고 그렇게 할 터이니까 그거 붙들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내 생각에는 우리 벌써, 우리 교회 안에 잡탱이 마귀 역사들이 들어왔으니까 요놈을 낱낱이 해서 바싹 깨서 없애 버리면 저 집은 꿋꿋하게 섭니다. 왜? 홍해 바다에 물도 벽같이 그렇게 여기 뭐 오십척이 아니라 수십 길도 쌓아 올린 하나님이 딱 거게서 딱 중단하면 그만으로 섰지 넘어가도 서지 뭐 별수가 뭐 있소?
<기도> 주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자체와 역사와 지으신 모든 하나님의 소유를 저희 택자들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 믿음이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그 방편이 믿음임을 압니다.
이런고로 악령은 저희들의 믿음을 어떻게 하든지 없앨라고, 믿음을 일관되지 못하게 할라고, 믿음을 이렇게 쪼개고 저렇게 쪼개서 믿음의 힘을 없이 할라고 날뛰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주만 보고 한 줄로 갈 때에는 물 위로 걸어갔으나 주님 외에 딴것을 보아 그 마음이 갈라질 때에 그 믿음은 갈라져서 빠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이 능력의 비밀을 저들이 날마다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게 하사 믿음은 갈라지는 게 아니고 믿음은 하나뿐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는 이것을 연습하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모든 성공하는 이 사실을 저들이 확실히 알아서 굳게 잡고 날마다 믿음을 만들며 믿음을 쓰며 믿음을 뺏기지 안하고 보수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가 저들과 함께 하셔서 남은 때에 어지럽고 아무리 복잡하고 불경기한 세상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믿는 이 믿음 하나 가지고 모든 데서 평강과 승리와 날마다 새로와지고 날마다 좋은 날이 미래로 점점 다가오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에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 구속의 사랑이 그 속에 불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