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하신 세 가지와 결과

 

1986. 6. 9. 월새벽

 

본문:사도행전 1장 6절∼8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설교를 듣든지 또 설교를 하든지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말을 듣든지 또 말뿐만 아니고 행동을 하든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든지 우리 자신이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그 모든 것을 할 때에도 꼭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해야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그 사람이 참 박식이다’ 그 사람이 뭐 오만 사람의 철학을 다 알고 또 세상에서 온갖 과학을 다 알고 모든 이종교들에 대해, 이종교, 이종교는 기독교 외에 거는 다 이종교라 그랍니다. 다를 이자 종교, 기독교 외에 것은 전부 이종교라 합니다. 또 종교 유사 단체라, 모두 종교와 같은 그런 종류들이라 또 그렇게도 말로 합니다. 기독교 외에는 참된 생명의 도는 없습니다.

자기가 언행 심사를 할 때도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낱낱이 말은 안 하지마는서도 성경에 이렇게 이 말씀이 있다 하는 말 안 해도 성경을 근거라 말은 성경을 자기 배경으로 삼는다 그말이오. 성경을 자기의 언행 심사의 밑받침으로 삼는다, 기초로 삼는다 그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말을 해야 되고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여게다가 기초해 가지고서 말도 행동도 봐야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언행 심사에 크고 작은 모든 하나하나가 다 이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말씀의 법전, 이 말씀의 법을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우리는 생각 한 번 한 것이나 말 한 번 한 것이나 자기가 한 번 뜻을 가졌던 것이나 행동한 것이나 그게 털끝만치라도 빠지지 않습니다. 말하고 난 다음에 나도 잊어 버리고 다른 사람도 다 잊어 버렸으면 그만인 줄 알지마는서도 사람은 잊어 버려도 하나님은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또, 요한계시 20장에 보면은 사람들의 모든 행한 것이 행동록에 다 기록되 어 있다 이랬습니다. 사람이 그때에 행동한 것이 사진에 박히면 사진 박혀 놓은 것이 사람들이 세월 지나가 잊어 버렸다고서 그게 어데 잊어 버려집니까? 그때에 행동한 게 고대로 필림에 박혀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지음 받아 가지고 그 모양으로 흉내를 낸 그런 것도 그런데 하나님이 제작하신 원필림이야 그것이 변해지겠습니까? 변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고대로, 마음 먹은 것도 행동록에 다 기록되어 있고 생각한 것도 기록되어 있고 뜻한 것도 기록되어 있고 욕심 품은 것도 기록되어 있고 계획한 것도 기록되어 있고 자기가 잠깐 자기 마음에나 뜻에나 생각에나 감정에나 또 자기의 욕심에나 자기의 계획에나 지나간 것이 고대로 딱 다 하나도 없이 기록돼 가지고서 있는 것을 가리켜서 행동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행동록 가지고 이다음에 심판합니다. 다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책에 기록된 대로 그대로 심판하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책들이 펴 있고,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움을 받더라’ 이러니까 그 행동이 다 빠짐없이 다 기록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꼭, 자기가 말할 때도 이 성경 말씀을 딱 근거해 가지고 말해야 됩니다. 설교할 때에 아무나따나 설교하는 것 아닙니다. 성경 절수는 다, 시간도 그렇고 또 그것을 낱낱이 말할 수 없어서 다 말하지 안해도, 몇 절인지도 몰라서 말하지 안하고 그러나 절수는 모를지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말하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에도 시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 시비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심판 시비가 중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시비가 중대하기 때문에 말을 할 때에는 만일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 ‘네가 이런 말을 했느냐’ 할 때에는 제가 `내가 뭐,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럴 거 같아 했습니다.’ 이거 가지고는 큰일 납니다.

그 영원한 심판 아닙니까? 그 심판은 영원한 심판이라 했지요? 영원한 심판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배웠습니다.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에 그때 판정되면 그대로 판결된 대로 그대로 자기는 뭐, 백 년 천 년 억만 년 가면 그게 변동이 아니라 심판받은 고대로 영원히 자기는 고대로, 판결받은 고대로의 사람으로 영원히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허투리 말하지 안하고, 말할 때도 ‘아, 성경에 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 무슨 일이 있으면은, 만일 성경을 외우지 못하면 ‘내가 성경을 모릅니다. 성경을 내가 지금 그 절수를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면 얼마든지 그거 연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내가 성경에 찾아보겠습니다.’ 성경에 찾아 가지고 딱 들이대면서 ‘성경에 이렇게 말씀해 놨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내가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 때에는 그 성경 가지고서 심판하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한 것은 하나님이 하게 하신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한 말은 전부이 예수님이 하라 해서 한 말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심판주가 하라 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하시지 안했습니까? 당신 명령 따라서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럴 때에 담대할 수 있고 그때에 위로받을 수 있고 칭찬받을 수 있고 정죄받지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할 때도 꼭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 말하도록 하십시오.

또, 그러고 무슨 자기가 말뿐 아니라 어떤 그 행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할 때도 ‘왜 이 행동하느냐?’ 행동하는 것이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서 ‘성경에 이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성경을 근거해서 이렇게 행동합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안한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미련을 부리고 또 그냥 파묻어 두지 말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해 가지고 파묻어 두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행동록에 기록 안 되는 것 아닙니다. 또 자기가 잊어 버렸다고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꼭 자기 언행 심사로 한번 행동한 것은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잊어 버리지 않고 성경으로 다 똑똑히 근거를 해서 성경 증거, ‘성경에 이렇게 했습니다’ 하는 걸 증거하고 난 다음에 잊어 버리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활을 정리해라’ `자기 언행 심사의 생활을 정리해라' 또‘그 언행 심사의 생활을 정돈해라’ ` 정리하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 가지고서 자기의 말한 것이나 모든 것이나 ‘이 성경에 있다. 요 성구를 근거해야 되겠다.’ 요 성구 가지고 딱딱 심판받을 때에 요 성경 가지고서 증거를 댈 수 있는 고런 것을 다 정리하는 것, 잘못된 것이나, 뭐 잘된 거는 뭐 별 문제가 없지마는 잘못된 거는 다 고렇게 성경 가지고 정리하는 것이 고것이 정리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지럽고 복잡하고 잘못된 것을 성경 대로 요렇게 착착 하나씩을 딱 정리해 ‘요거는 요래 됐으니까 해결 조래 됐으니까 해결’ 모두 다, 정리한다 말은 해결짓는다 말이오.

정리한다는 말은 모든 문제를 다 해결 짓는 것을 가리켜서 정리한다고. 성경 가지고 정리하라 그말이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어떤 흉측한 죄를 범하면 그 죄를 절대로 숨어 있거나 뭐, 자기가 모른다고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모르지 않습니다. 또 사람도 모르지 않소. 사람도 아나 그거는 말할 수 없고 또 알고 말해 봤자 유익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안하는 것 많고 또 말을 하고 싶어도 책임 없는 사람, 말하고 싶어도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말 못 하고 이래 그렇지 하나님 앞에서는 다 적혀 가지고 있습니다. 안 적혀 있지 안해요.

이러니까, 자기의 그 흉한 일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회개라 하는 것은 뒤로 미루지 못합니다. ‘내가 아직까지 뭐 결혼도 안하고 미혼 내가 뭐 미혼 처녀로 미혼자로 이라고 하니까 나중에 혼사하고 나서, 결혼하고 난 다음에 어짜지, 결혼하기 전에 이런 행동 저런 행동을 하지.’ 하지마는서도 그라다가 죽을 수 있다 말이오. 그라다가 그 회개 못 하고 죽을 수가 있다 그거야. 이러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은 뒤로 미루지를 못 하는 것입니다.

뒤로 미루는 것은 큰 낭파를 당합니다. ‘왜? 미루지 안하고 즉시 고하고 고거 고쳐 버리면 되는 건데 그거를 미루고 이래 가지고 딸칵 죽어 버리는 날이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는 입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꼭 같은 죄를 하나는ㅡ예를 들면ㅡ백 개를 입었고 하나는 한 개 입었는데 한 개 입은 자는 그것을 영원히 지고 그런 죄를 가지고 있지마는 백 개 입은 자도 다, 죽기 전에 숨 떨어지기 전에 다 정리를 해 버렸다 말이오. 숨 떨어지기 전에 다 정리를 해 버리니까 아무 문제가 없어.

이러니까, 정리한다는 말은 자기의 과거나 현재나 또 미래, 계획적인 데 관한 거.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람의 행한 대로 갚나니’ 하시고 난 다음에 ‘사람의 마음과 뜻을 나는 살피는 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행동이라 하면은 입술에 나와야 되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움직여야 행동으로 보지마는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안하고 벌써 행동의 시발인 마음의 뜻 그때부터 행동으로 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음행을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랬다 말이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뜻을 이와같이 살피는, 이렇게 살펴서 그게 벌써 행동록에 기록되어 있어. 행동록에 다 자기 전부 한 것이 뭐, 생각한 거, 말한 거, 마음 먹은 거, 뜻한 거, 욕심낸 거,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억울하게 생각한 거, 미워한 거 뭐 전부 싹 다 기록돼 가지고 요대로 행동에 촬영돼 있으니까, 사진 찍히듯이 행동에 촬영돼 있으니까 뭐라고 말을 할 것입니까? 그 심판대 앞에서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되다 이랬습니다. 아무리 거짓말 잘하는 자라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요새 사람들을 보면은 자기 입을 가지고서 그만 변명만해서 넘겨 버리면 다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이해만 시키면 되는 줄로 알지마는서도 어리석습니다. 이해 암만 시켜 봤자 그 행동록을 변개 못합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것은 주님의 피에 고해 가지고서 해결을 지워야 됩니다.

이래서, ‘네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된다’ 나와 의논하면, 나와 변론하면 나와 의논하면 말입니다. ‘나와 변론하면’ 예수님의, 그거 예수님이 다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이 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내가 다른 과일은 임의로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는 그분이 내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인성을 입기 전에 신성으로 그때 일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나와 변론하면’ 그말은 내가 네 변호사로, 내가 네 변호사로 네 중보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내 변호를 입으면 주홍 같고 진홍 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과 눈과 같이 희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변호를 입으면. 예수님의 변호는 예수님이 ‘내가 대신했기 때문에 이 죄는 내가 대형했습니다’ 하는 그 변호요.

이러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다시 그 행실을 하지 안하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 사람에게 의인으로 대우해서 의인이 받을 축복을 다 줍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또 범죄하고 또 범죄하고 이렇게 하면 그다음에는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고범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알고 범한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자기가 알고 범한 죄는 사함 받지 못하는데 알고 범한 죄는 어떻게 되는가? 고것은 꼭 고쳐야 사함 받지 고치기 전에는 사함 못 받습니다. 내가 죄 짓고 난 다음에 ‘이거는 죄다’ 죄인 줄 알고 범했다 말이오. 죄인 줄 알고 범했으면 그 죄는 ‘주여 내가 이 죄를 지었으니까 사해 주옵소서’ 안 됩니다. 사해 주옵소서 해도 사함을 받지 안하고 고대로 있습니다. 있으면은, 고쳤을 때에 사함 받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고범죄는, 알고 범한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성경에 똑똑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알고 범한 죄도 문제가 없다 말이오. 문제가 없는 것은, 이제 주님 앞에 고해 사함 받고 이제부터 안 지으면 돼. 이제부터 안 지으면 큰소리 할 수 있어.

안 지으면 주님이 다 변호해서 ‘이거 내가 담당했다’ 대속해 주시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그거요.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 생활을 정리해라. 어서 거리끼고 위험스러운 것은 낱낱이 다 해결지워라.

제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손해 보게 한 거, 그저 입에 나오는 대로 만나 가지고 씨부렁거려서 이 사람은 저 사람 저 사람은 이 사람 많은 논인 장단이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나 해 가지고서 이런 죄 짓는 거, 자기가 죽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이 빠지게 일하고 이래 죄 지으면 죄 지은 거 하나님 앞에 저주받을 것은 한 백 근쯤 되고 제까짓 게 마련한 것은 한 열근 쯤 되니까 열 근에 백 근 제해 버리니까 뭐 있습니까? 항상 그러니까 죽도록 일해 봤자 안 쌓여요.

왜 죽도록 일해도 뭣 때문에 모이지 안하고 죽도록 고생만 하지 소용이 없느냐? 죄를 지으면 그러니까, 죄 하나는 자기가 행동한 거 일생 행동을 죄 하나 가지고 다 전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정리해라. 정돈해라.

정돈하라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딱 정리해고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대로 건설하고 요대로 진행하고 요대로 추진하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미래를 행동하고 현재를 행동해 나가는 고것을 ‘이 행동은 주의 말씀에 근거됐다. 말씀대로다.

말씀대로다.’ 요렇게 된 고것을 가리켜서 정돈이라.

정리는 과거 현재에 잘못된 것을 정리하는 것이고, 좋은 거는 정리할 필요 없어.

좋은 거는 상급받을 건데. 잘못된 걸 정리하라 말은 ‘우리 자신을 잘 정리합시다.’ 정돈합시다 하는 것은 앞으로 현재와 미래의 건설해 나가는 데에 꼭 말씀대로 고대로 갖추어서 거게 근거해 가지고 고대로 행해 나가자 하는 것을 가리켜서 정돈하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를 줍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뭐 의인은 하나도 없다 했으니까 우리가 죄 지은 거 가지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죄 지은 것을 주님 앞에 고해서 내 변호사요 내 대변자요, 예수님은 우리의 대변자라 말했어. 그 대변자라 말이오. 대변자요 우리의 중보자요 우리의 대속주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 받고 다시는 짓지 안하면 됩니다.

만일 또 약해 가지고 만일 실수했으면 고하고 빨리 고치면 고칠 때 해결됩니다.

고칠 때에 해결됩니다. 고걸 딱 고치고 난 다음에 그라면 해결이 됐는데 고다음에 또 범했으면 고거 주님에게 고하고 고쳐도 고다음에는 고치는 도수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대번 고치면 한 번 고쳐도 됐다 이렇지마는 고다음에는 ‘두고 보자’ 이랬어. 하나님이 ‘두고 보자'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두고 보자. 네가 고쳤다 하는데 두고 보자’ 그러면 두고 보자 하는 그 한계를 두 번으로 보는지 열 번으로 보는지 모릅니다.

보니까, 그 죄를 범할 만한 고런 기회가, 고 실수할 만한 고런 기회가 한 번 닥쳤을 때에 실수를 하지 안하니까 ‘됐다’ 요렇게 해 주실란지! 고런 것도 있겠고, 요게 길게 여러번 했으면은 ‘안 된다’ 한 번 실수 안 했을 때에, 실수할 만한 때에 실수 하지 안했으니까 ‘됐다’ 가 아니고 `그래 가지고 안 된다' 두 번 범죄할 수 있을 때에 닥쳐도 범죄하지 안했다. 그러면 당신이 ‘됐다’ 할란지! 어떤 사람은 열 번 그런 기회가 있어도 ‘됐다’ 안 하십니다. `됐다' 안 하시요. 만일 수십 번 그런 기회가 있어서 이겨도 아직 ‘됐다’는 안 합니다.

`됐다' 안 하고 `두고 보자' 하나님이 ‘두고 보자’ 이랍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그게 쌓여서 지탱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오래 범죄할수록이 자기가 회개하는 것이 자꾸 기간이 많아져야 된다 말이오.

이래서, 정리하고 정돈하자 하는 것인데, 내 언행 심사도 하나님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하지 근거하지 안하고 무슨 담력으로 합니까? 오늘 죽으면 딱 심판에 걸릴 터인데 걸려 놓으면 어찌됩니까? 걸려 놓으면 영원히,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가 다 범죄했습니까? 선악과 먹지 말라는 거 하나 딱 먹음으로써. 죄는 하나만 지으면 모든 의가 소용 없습니다. 죄는 하나만 지으면 모든 의가 소용 없고 의는 하나 하면 그 전신이 다 의인이 됩니까 안 됩니까? 어떻습니까? 의는 하나 행했으면 전신이 의가 됩니까 안 됩니까? 예? ○○○.

죄는 하나 범하면 어찌돼요? 죄는 하나 범하면 그래.

그러니 죄와 의와 다르다 그말이오. 하나 지었으면 전신이 더러워지고 의는 하나 행했으면 고것만 의지 다른 거는 의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도 그러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든지 무슨 지도를 받든지 할 때에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야 됩니다. ‘이 사람이 아주 대철학자다. 대박식이다.’ 박식이면 뭣할 것입니까? 나에게 말을 할 때에 ‘이 사람의 하는 말이 성경에 근거가 있나 없나? 성경대로 나에게 말해 주나 안 해 주나? 성경대로 가르치나 안 하나?’ 이 사람의 행동이 모두 다 막 야단입니다. ‘하, 그 사람 위대하다 위대하다.’ 온 전국이 떠들고 그 사람의 행위가 위대하다고 야단을 지기고 막 세계가 노벨상을 주고 위대하다고 야단을 지깁니다. 야단을 지기는데 나는 들을 때에 그걸 달리 들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근거해서 그 행동을 했느냐? 그게 성경을 근거한 행동이냐?’ 성경을 근거한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 옳은 일을 말한, 성경에 ‘옳은 행동이라’ 노벨상 받는 것은 다 사람의 위생에 대해서나 또 이런 무슨 인간들의 과학에 필요한 것이나 일용 생활에 필요한 그런 것을 했을 때에 모든 사람에게 다 유익이 된다 할 때에 노벨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 행동을 모든 사람이 다 ‘이 사람에게, 이 사람이. 모두 다 이거, 손님 압니까, 손님이라 하는 병? 손님하면 막 툭툭 그래, 옛날에는 얽은 사람이 꽉 찼지 안했습니까? 손님해서 얽었다 그말이오. 그 고통은 얼마하요? 손님에서 죽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

이랬는데, 그걸 손님하는 그 우두 넣는 약을 발견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 혜택은 모든 사람이 다 본다 말이오. 모든 사람이 다 봐.

이러니까, 지금 우두를 넣어 가지고 모든 사람이 지금 안 앓고, 손님을 안하고 있지, 그러기에, 예방 주사만 맞으면 안 한다 그거야. 얼마나 공력입니까? 이러니까 세계가 다 노벨상을 줬지마는서도 나는 그것을 욕은못하지마는서도 ‘의롭다’ 그렇게 평가하지는 못한다 그말이오.

그건 왜? 그 사람이, 성경을 근거해야 되는데 성경 근거해야 된다 그말은 성경은 무엇을 중심했는가? 하나님 중심한 것을 성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의로운 일을 하기는 했는데 그것이 예수님을 중심해서 했느냐 안 했느냐 그게 문제요. 예수님을 중심해서 했느냐? 또 예수님을 중심해서 했으면 예수님을 중심해서 했다 할지라도 성경에 위반되면 소용 없어. 성경대로 해도 주님을 중심해야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설교를 들을 때든지 사람 행동할 때든지 그것을 비판하고 평가할 때는 꼭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서 우리는 평가해야 되고 비판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근거하라 말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근거하라 말이오. 그러기에 온 세계가 막 의롭다고 떠들고 쌓아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불교 중심이면 소용이 없어.

내가 어제인가 언제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군에 갔었는데 군에 갔으니까 그 군목이 있다가, 군종과에 그때 군인노릇을 하고 있는데, 군목이니까, 군목이면 계급은 높습니다. 군목이면 뭐꼬? 중위부터지.

군목이면 어북 제법 높은데 그 예배당 안에다가 막 사진을 붙이라 해. 불교 사진도 붙이고 뭐 기독교 사진도 뭐 전부 붙이라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안 붙였어. 안 붙이고 이래 가지고서 뭐 좀 단단히 맞고 욕을 봤어. 그래도 ‘나는 그거 붙일 수 없습니다’ `네가 군인은 명령에서 살고 명령에서 죽는 것인데 내가 바로 너 직속 상관인데 불교 사진 붙이라’ 한다 말이오. ‘불교 사진을 어떻게 예배당에 붙입니까? 나는 그런 거 못 합니다.’ 뚜드려 맞고 안 붙였어.

고게 살았다 그말이오. 고게 살았어. 고게 서부교인이야. 고게 살았어. 고게 군대에 달라요. 이 서부교회 교인과 다른 교인이 다른 것이 많이 있어. 군에 가 보면.

그게 무엇이든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성경에 위반된 것이라면은 안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설교를 들어도 요 중심으로 설교를 들으면 대번에 가 설교 들으면 ‘저 설교는 죽이는 설교다’ 발길로 탁 차 버리고 나올 수가 있다 그말이오. 또 ‘이 책은 사람을 죽이는 책이다’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요 근거를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못하고 하나님 중심에 근거하지 못하는 데에서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근거해야 됩니다.

내가 요 말을 왜 하는고 하니 여게 말하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증인되리라.

예수님의 증인되리라 했는데 예수님께서 몇 가지 했다고 어제 배웠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세 가지. 세 가지.

아무나따나 울면 위로받을 줄 압니까? 아니오. 자기 지은 죄를 발견해 가지고 원통히 여겨야 위로 받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제일 중요한 그것인데 이거 뭐 가르칠라 하면 이거, 하나라도 알면 괜찮은데.

이러니까, ‘너희 알바 아니요 이거 아버지의 권한에 뒀다’ 이거는 내 권한이다.

내 권한인데 너희들이 그란다고 피동이 되겠느냐? ‘너거 할일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받아 가지고서 내 증인되라’ 이랍니다.' ‘내 증인되라’ 성령의 권능이 오시면은 뭐합니까? 예수님의 증인될 수 있는 그것 만드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 가지고 예수님의 증인될 수 있는 자기가 되고 나면은 우리 할일은 뭐입니까? 우리 평생에 할일은 뭐이요? 우리 평생에 할일은 뭐입니까? 증인노릇이오.

증인노릇이라니? 증인노릇이 뭣이 증인노릇입니까? ‘예수님은 이렇다’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알려 주는 것이 증인노릇입니다.

그러면 뭐인데? 세 가지.ㅡ이제 시간 없으니까.ㅡ세 가지. 세 가지 요 행동. 세 가지 행동, 세가지의 사람 요거, 자신이라는 사람이 요 세 가지의 사람이 되고 행동이 요 세 가지의 행동이 되고 말이 세 가지의 요 말이 되면 된다 그말이오.

이렇는데 그러면 사람들이,ㅡ요거 하나만 하고 맙니다.ㅡ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의 증인 노릇만 하면 밥은 언제 먹고? 언제 먹고? 요걸 알고 해결해야 여러분들이 또 문제가 될 거라 말이오.

그 사람은 뭐 가정에 불 같은 일도 있고 뭐 사업에 불 같은 일도 있고 산 벼락이 떨어졌는데 그런 거는 냅두고 예수님의 증인노릇 셋만 하면 어짤라고? 셋 하면, 복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가지고 계시면서, ‘이 사람은 증인 노릇을 요만침 했다 요만침 했으니까ㅡ하나님께서ㅡ요만침 복 주자 이만침 했으니까 이만침 복 주자’ 이 사람은 증인노릇만 하는 사람이다 하는 사람을 이 복의 주인이 어떻게 해야 되겠소? 이 사람은 증인노릇만 하는 사람이다 하는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야 되겠소? 말라 죽도록 해야 되겠소? 모든 복을 다 줘서 ‘저 사람은 예수님의 증인노릇만 하는 사람이다. 증인 노릇만 하는 것이 이렇게 복 받는 길이구나’ 이렇게 보여 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겠소? 보여 주지 안하면 예수님의 증인노릇을 누가 하겠소? 예수님의 증인노릇하는 그것이 돈벌이요 그것이 사업의 성공이요 그것이 출세요 예수님의 증인노릇하는 자가 학교에서 공부 특등이요 일등이요 모든 사업의 성공이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노릇 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온갖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이 일 하셔 가지고 뭣 받았지요? 예수님은 이 일 해 가지고 뭣 받았습니까? 말해 봐. 뭣 받았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이랬어.

예수님이 이 일 해 가지고서, 예수님이 이 세 가지 해 가지고서 하늘과 땅의 것 다 받았어.

이러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증인노릇만 하면 예수님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요. 이걸 다 주시는데 땅 위에 없어질 이걸 주지 안해요? 모든 걸 너희에게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복받는 이치를 똑똑히 배우고 요대로 행해 나가요.

이제 앞으로 사도행전을 좀,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기 때문에 이것을 좀 뭘 공부를 할까 이래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이 사도행전을 많이 공부하십시오.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 공부할 때에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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