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에 연합
선지자선교회  

1981. 7. 23. 목새벽

 

본문: 로마서 6:5-1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아브라함이 짐승을 끌어다 놓고 잡지 안했으면 제물이 안됩니다. 짐승을 잡아서 짐승이 죽어 재단 위에 올려놓았을 때에 하나님이 그 재물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다시는 부족 없는 온전한 믿음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다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에 대해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내가 무엇을 보고 내가 확신하겠습니까이런 말도 없었고 또 그런 행동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번제로 드리라 하는 그 말씀에 그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도 절대 순종해야 될 줄을 알았고 또 몸에서 날 자손으로 그렇게 계대될 것을 말씀했기 때문에 그것도 믿었습니다. 이 둘 다 믿으니 결과는 이삭은 불에 타서 태워서 제물이 되어 죽고 또 죽은 불탄 재는 다시 살아나야 되고 하는 요 부활이라는 요 역사에 없는 그 지식을 아브라함이 가지게 됐습니다.

 

믿음으로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지식이 자꾸 인간에게 이루어져 나가고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을 얻는 그 방편을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 이럴 때에 제사를 드릴 때에 이 믿음이 더하여지는 실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짐승을 잡은 것은 예수님을 모형해서 예표해서 이렇게 한 것이요. 상징으로 이렇게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 짐승을 잡은 것은 곧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잡는 것 예수님을 죽이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우리 불의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이 들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멸망에 당신이 죽을 이유가 뭐이냐? 그것은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멸망 가운데 둘 수가 없어 마치 그는 좀 비유가 잘은 안되지만은 그 제가 거창서 집회 할 때에 따라다니면서 은혜 받은 그 정집사라는 여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함천 초개교회에 집사로 있었는데 그 사람이 참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에 그 이웃이 불이 나 가지고 불이 타는데 자기 어린아이가 방 안에 들어 있고 벌써 불은 다 돌았고 이래서 그 어머니가 쫓아 들어가 가지고 그 보자기로 싸 가지고 어린아이들 데리고 나올 여가가 없으니까 집어 던지버리니까 밖에 나와서 아이는 살았고 어머니는 거서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 자기는 거게서 들어가 가지고 그 살아나올 수는 없다는 걸 알고 그래도 그 사랑하는 어린아이가 있으니까 살고 자기가 죽어도 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의 충격으로 들어가서 타 죽고 아이는 살린 것처럼, 그것도 약간 좀 비유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서 멸망 받으니 주님이 대신 죽어서도 구출하지 안할 수 없어 우리 죽는 우리가 죽으면 영원히 죽어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죄지은 그 벌을 당신이 대신 받고 우리가 불의를 행한 것을 대신 또 벌 받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그 벌을 대신 받고 대신 우리가 대신 순종을 해서 그저 살아 있으며 순종하는기 아니고 죽어라 할 때에 죽는 것까지 순종을 해서 우리에게 칭의를 입혔고 또 십자가 못 박혀 죽는 그런 일을 당해도 껍데기는 몸은 그런 고생을 당하면서도 속으로는 하나님과 불목하지 안할라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할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십자가에서 그 몸은 죽고 속에 그 심령은 하나님을 향하여 화목할라고 끝까지 화목의 노력을 하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이 예수님의 그 고난 받은 걸로 우리의 고난은 다 대신이 됐고 예수님이 그렇게 죽는 그 세포가 다 죽는 그 죽음에서도 마음에나 세포 하나도 그 죽음에 고통을 느껴 죽음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는 죽으면서도 화목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을 하다가 화목을 원하는 화목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안 들으면 소용 없어. 제 상식 가지고 예수 암만 믿어도 소용 없어.) 화목을 위해서 노력을 하다가 세상을 마쳤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화목에 노력이 지성과 지공에 만족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화목을 버릴 수 없습니다. 버릴 권리가 없습니다. 이래서 화목의 제물 의의 제물 또 사죄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밤에 우리가 믿음을 더 얻는 그 방편은 다른 방편이 없고 다만 예수님의 대속하신 이 대속을 우리가 사모하고 연구 하고 또 거기에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은 여기에 합당한 거기에 합당한 우리가 되어지도록 노력하는 이것이 믿음 없는 믿음이 더해지는 노력이요 더해지게 하는 노력이요. 또 합당한 생애가 이루어진 것만치 이것이 우리에게는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난밤에 말씀했는데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은 그것을 해석해놓은 것을 여게 읽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양이 잡아서 양을 죽여야 양이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양은 죽어야 제물이 되어지고 또 하나님이 그 잡아 놓은 양을 제물로 받아야 비로소 제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죄와 불의 하나님과 원수된 이 일을 했는데 이것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받아야 영원한 사망을 받아야 되는 이런 일입니다. 이런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죽을 대신 예수님이 죽으셨으므로 내가 죽을 터인데 우리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나는 죽지 안했지만은 내 죄로 인해서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 나는 안 죽었지만은 예수님이 대신 죽었으니까 내가 죽은 것이라. 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죄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내기에 죄를 짓는 옛사람은 죽은 것인 것을 이것을 우리가 믿고 요대로 인정을 해서 내가 죽지 안했지만 주님이 죽어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라는 요것을 깨달아 우리가 살아 있으면서 죄짓는 자를 죽이는 이 노력을 하는 것이 그것이 짐승을 잡는 노릇이요.

 

죽이는 노릇을 힘을 써도 아직까지 짐승을 잡지 못했으면 제물되지 않는 거와 같이 범죄하는 나를 죽이지 못하면 못한 것만치 아직까지 제물이 안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완전히 죽일 때에 제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아브라함이 제사 드릴라고 노력하는 그 노력과 같은 노력은 어떤 노력이 그 노력이냐? 죄짓던 나를 그 죽이는 노력 그것이 잡는 노력입니다. 죽이는 노력 그것이 잡는 노력이요. 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부활을 하셨으니 이제 예수님 부활과 함께 또 내가 새사람으로 살아나서 옛날은 악령과 죄를 향했지만은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서 사는 이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이고 살리는 이 노력을 해서 죽인 양이 얼마가 되는지 죽인 양이 된 그것은 예수님의 대신 죽으신 이 제사를 그만침 드린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이 살아나신 나 위해서 부활하신 이 부활을 내가 다시 죄짓지 않는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그 양이 살아난 양이 얼마가 되든지 그 양이 되는 것만치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다는 말은 인정한다는 것인데 자기가 죽이는 것으로서 죽인 양이 얼마가 되든지 되면 그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기가 믿는 양이요. 자기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죽으심에 옛사람이 같이 죽은 것 범죄하던 그자가 같이 죽은 이 실상이 자기에게 이루어지지 안했으면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다고 해도 건설구원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범죄하는 자기를 죽인 양이 하나도 없으면 예수님의 그 죽으심을 기본구원으로서는 하나님께서 그걸 사용하셨고 있지만은 이 건설구원 다시 말하면 생활구원 행위구원 행위를 하는 데에는 자기가 죄짓던 자기를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나 대신 죽으시니까 내가 죽은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죄짓던 자를 대신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그 죽으심을 나를 대신해 죽으셨으니 나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긴가? 죄짓던 자가 살아 있는데 이자를 죽이는 그것이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요. 자기가 그것을 참 믿는 것이요. 또 대신 죽으신 그 은혜를 내가 받는 것이라 이기요.

 

그러기 때문에 죄짓던 자를 죽이는 것 그것이 곧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요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기가 참으로 인정하고 효력있게 자기가 느끼고 참 대신 죽었으니 내가 죽은 것이라는 이것을 참 믿는 자요 인정하는 자요. 거게 대해서 감각이 있는 자요 책임을 지는 자요 그것이 없으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 아무리 말해도 죄짓던 그자가 내가 내가 죽을 대신 주님을 죽이 놨으니 이제는 내가 다시 이 죄를 지을 수가 있느냐 하여 자기가 죄짓는 그 자기를 죽이는 그것이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요, 믿는 것이요, 그 은혜를 자기가 깨달아서 참 자기 대신 죽으심에 대해서 감사할뿐만 아니라 마음에 그 기가차는 이런 사실을 실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죄짓던 자를 죽이는 노력 이것이 아브라함이 짐승을 잡는 노력이요, 노릇이요.

 

아브라함이 짐승을 완전히 잡아 제물 삼았으니 우리는 어떤 것이 그 그런 것이냐? 죄짓던 자를 완전히 죽여서 멸해버리는 죽여 버리는 이것이 이제 아브라함이 제사를 온전히 잡아 드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산제사로 드리라 그 말은 양면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죄짓던 자를 죽이는 것과 또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돼 가지고 사는 그것을 그 실행하는 그것이 산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 연합한 자가 되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죄짓던 자가 같이 연합해서 참 안 죽었지만 죽은 자인 것을 깨달아 연합하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5절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가 참 깨닫고 안 죽었지만 나는 그 죽음에 내가 연합해야 되겠다, 내가 죽으심이니 다시 내가 또 죄짓는 자를 죄짓는 자로 살아 있을 수 없다, 주님이 대신 죽기 때문에 나는 죄짓는 자를 그 연합해서 죄짓는 자를 죽여서 다시는 죄짓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 일을 해야 주님 앞에 안면이 있지 이 주님에게 큰 은혜를 받고도 내가 또 예수님 죽이는 그 일을 내가 또 다시 이래 할 수가 없다 하는 요것을 깨달아 죽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자기 죄짓는 자가 연합해서 죽는 그것만침 그 먼저 죽어야 죽는 것 만침 죽으면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해서 영생하는 자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죽은 양만침 살아나게 되고 죽음이 없이는 살아나는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는 이 일을 일생 동안 노력을 해서 죽는 이 일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요. 김차숙씨 손 들어봐요. 이 사람 언제든지 새벽기도 안 나오데 왜 그저 서원균씨 왜 이 안 데리고 나오노? 응 그기 마귀 되 놓으면 뒤에 가서 목회 못한다 응 뭐 아이 베었으면 다른 사람은 안 베나 요새 보니까 새벽기도는 늘 안 나오네 보니까 안 돼. 그거 휘잡지 못하면 목회 못 해.

 

목회자가 목회자가 계집에게 끌려서 가지고 이래 하면 목회 못 해. 안되면 어데까지라도 거석해서 제가 바로 가야 되고 제가 삐뚤어가며 또 복종하는 그거는 마귀 마귀 자식이라. 그건 더 안 돼. 제가 바로 가고 바로 가는데는 복종을 시키야 되지. 이렇게 죽음에 연합해서 죽음의 양이 된것만치 부활에 연합해서 신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양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다음에 삶의 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로 이것을 주님이 내대신 죽으셨으니 나를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피조물로 또 살으셨으니 이 사실을 자기가 느껴 자기 양심에 느껴 이제는 내가 다시 죄짓는 자로 살 수가 있겠느냐 하는 요 느낌을 가지고 요 노력을 해서 죄짓는 자가 죽는 것만치 죄짓는 자가 죽는 것만치 예수님의 공로를 자기가 참 믿는 것이요. 실효있게 실지로 자기에게 응해지는 것이요. 또 부활하신 것만치 자기는 연합해서 산자가 되어질 때에 이것이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죽고 사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양만침 자기에게 건설구원은 분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자기를 대신했기 때문에 자기는 살아 있지만은 다시 죄짓는데서 살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자기는 연합해서 죽은 자로서 죄짓는 자는 죽여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이것을 자기가 깨달아 느껴서 이 노력을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을라고 노력을 하는 것이고 노력해서 된것만치 믿는 것이요, 된것만치 자기에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죽음과 연합해서 부활과 연합을 해서 하나님과 연합이 되 가지고 이제 예수님이 모든 권능 다 행한 것처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음의 노력을 예수님과 연합해 죽는 노름 연합해서 죽었기 때문에 죽은 셈이라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과 연합해서 실지로 죽은 자가 되고 예수님이 예수님과 연합해서 실지로 산 자가 되는 이 두 가지를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노력이요. 순서는 죽는 노력이 먼저 되고 죽는 노력이 된 것만치 산 노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노력을 해서 실제로 어느 정도 죽였느냐? 실지로 어느 정도 예수님과 부활과 연합해서 새사람으로 살아났느냐? 그러면 옛사람 죽이는 노력과 새사람 살리는 노력을 이것을 우리가 하는데 노력을 해서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죽었으며 어느 정도 살았느냐 하는 그것이 곧 자기에게 구원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실질적으로 자기가 받아가진 것이요 효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안 나온 사람들이 많아 많은데 자기는 나오고 다 자기 아내는 나오지 아니하고 아마 아내를 대기 애끼는 모양인데 애끼는 그기 죽이는 것입니다. 응 새벽기도를 어떻게 하든지 나오고 안 되면 엎고 나오도 나오고 자꾸 끌고 나오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해야 되지 나중에 끝까지 안 돼. 목회가 되면 목회되면 처음에 교인 몇 있을 때는 그래 되지만은 벌써 교인이 많게 되면 언제 거게 손돌아 볼 여가가 없어. 돌아갈 여가가 없어. 응 나도 그랬어.

 

내가 집사로 있을 때 제 아내가 안 나오면 마구 일으켜 가지고 참 오만 종 노릇 다하고 일으켜 가지고 그래 가지고 꼭 새벽기도 같이 다녔지 나 혼자 나간 일이 없어. 그래도 내가 목회에 턱 나서서 시골에 조그만한 교회에 나갈 때에 그래했지만은 그 부산으로 옮기기고 난 다음에는 내가 언제 그런 것을 할 여가가 없어. 왜 그거하면 다른 걸 못해.

 

이러기 때문에 그 다 그런 순서가 있어야 되지 자기가 평신도로 있으면 제일 가까운 것이 아내인데 아내를 복종시키지 못하고 하나 되지 못한다면 무슨 목회 하겠소. 아주 저도 부산오기 전에는 거창서 아내든지 자녀든지 제일 특등이지 이등 안갔소. 제일 일등이지 모든 사람 다 압니다. 가 물어 보십시오.

 

그때 어찌 됐는가 이랬지만은 이제 서부교회 와 가지고 그 내 가정을 완전히 내가 포기가 되버렸어. ? 어러분들 때문에 내가 그래. 여러분들에게 책임있어. 심판 가면은 내 가정이 믿음없는 것은 여러분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서. 예 그것도 모르고 빈질 빈질 믿음없으니까 조롱이나 하고 그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심판을 더 받아.

 

응 내가 전적 교회 목회에만 마구 전부 다 기울이고 내 가정은 실은 그때 해났기 때문에 이제 저거 발로 걸어가야 되고 또 교인 하나 중에 하나만 교인 중에 하나인 만침 또 내가 그 손이 못간다 그기요. 그 백장로 집에도 저 벌써 그 이사 온지 뭐 몇해가 됐지만은 내가 한 번 딱 가보고 못 가봤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할 책임이 있어. 이러니까 성경에 교역자가 될 때에는 나올 때에는 가족을 보고서 가족 신앙이 흠이 없어야 교역자로 나옵니다. 흠이 있으면 못 나옵니다. 성경은 그렇소 응 교역자 되고 난 다음에는 그 가족이 흠이 암만 있어도 교역에게는 상관이 없어. 교역자가 책임을 지지 안했어. 교인들이 책임진다 말이요.

 

사무엘의 아들이 불출을 사무엘에게 책임지지 않고 이스라엘의 그 강팍하고 의무하지 않는데 대해서 책임있어. 이스라엘이 화를 받았고 벌을 받았고 망했습니다. 이 말하는 것은 보니까 내가 말을 다 안하는데 아마 저거 마누라를 애껴서 그런 모양이라. 그만 이러니까 자꾸 그러니 몸도 그러니 좀 자거라 하고서 그러는지 안 깨워 나옵니다.

 

이놈이 자면 저놈이 나오면 이놈이 자고 이놈이 나오면 저놈이 자고 만날 그래 가지고 그 걸음을 걷고 있어. 옳은 일에 대해서는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야 돼. 꼭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에는 불화가 일어나도 해야 됩니다. 아 죽어도 해야 되지 않소. 우리가 공산주의 오면 우리가 다 죽을것 아니겠소. 죽어도 공산주의 나 예수님 믿는다 하고 죽을 것 아니요. 그기나 지금이나 마찬 가지라 그말이오. 지금도 못한다면 그때 가서 뭘하겠소.

 

비위 다 맞춰서 그래 하다가 자꾸 비위 맞춰서 언제든지 슬슬 비위 맞춰 이래 하면서 서서히 하자 이러다가 딱 죽어버리면 저는 평상 못한 거 그만 실패자로 가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삐뚤어진 것을 주장해 가지고 복종시킬라 하는 것은 그거는 사탄이라 그건 사탄, 삐뚤어진 거는 안 돼. 삐뚤어진 거는 제가 머리 숙여야지 아이 한테도 머리 숙여야지 아내 한테도 제가 삐뚤어졌으면 머리 숙이야지 삐뚤어진 것을 주장해서 세력을 부리면 안 돼. 옳은 것은 꼭 이래 해서 가정교회가 바로 되어 나가도록 이렇게 해야 그다음에 다른 교회들이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련된 일에는 꼭 짐승을 잡았어야 잡아 가지고 제물을 놓고 무슨 해결을 짓지 제물없이는 해결을 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논도 안됐고, 간구도 안됐고, 용서도 안됐고, 회개도 안됐고, 제물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련이 관련을 맺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래 짐승 잡아 놓고 화목도 그래 무슨 사건도 그렇고 감사할 때에도 그냥 감사 하는 것 안 돼요. 감사할 때에도 반드시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해야 그 감사를 받았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오늘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심을 자기가 깨달아서 자기도 연합해서 죄짓던 자가 죽을라고 그 노력을 하고 또 부활해줘서 또 새사람으로 살라고 노력하는 이 노력이 있어야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가져주지 이 노력이 없는 데는 맺어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자꾸 저 떠들기만 하고 흥분만 기분만 일으켜 놓으면 뭐이 됩니까.

 

저 금정산에 가서 보니까 뭐 있다가 이 가 이래 가지고 하늘까지 쑥 올라 갔다가 푹 내려왔다가 저거 시설 가지고 싶을 때 시설 지기고 신명 부릴 때에 신명 부리고 그만 그것을 배워 가지고 들어 가지고 그러니까 그 여러분들 한번 해봐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기도가 되는가? 하나님과 뭐이 교제가 되는가? 안 돼. 우리 교회 청년들도 잘하는 사람 있습니다. 여게 어데 갔노. 저 대티에 있는 그 청년 잘 압니다. 그 뭐이지? 나집사님 구역에. 그 지금 안해 그렇지 하면 잘합니다.

 

아주 어쩌든지 요새는 인자 시설도 지기는 것 보면 문화인들이 더 잘 지기. 미국 사람이 시설을 보면 제일 잘 지기. 시설지기는 것 그것이 요새는 인기요. 인자 교회도 시설지기는 것이 인기입니다. 시설을 지기면 기분이 좋거든 춤추는데 갈기 뭐 있고 세상에 갈기 있는가 교회 안에도 그 이상 시설이 있고 재미가 있고 흥분이 있고 유흥이 있고 있는데, 그런 것이 있으면 주님이 죽으심을 향하여 그 죽는 노력의 찬송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연합해서 죄짓지 안 한 참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의로운 사람으로 사는 이것을 찬양하는 것이니까 기독교의 노름은 다 이것이요. 생활은 다 이것이요. 응 거게 무슨 지금 시설이 뭐 있겠소. 응 예수님을 죽음을 시설로 받아요. 예수님이 부활한 것 아 죽었다가 살아났으니까 호강이요 영광인 줄 압니까. 하나님이 피조물을 입은 그것이 예수님이 사람돼 가지고 죽으신 그 죽음에 참 대속의 그 어려움과 나 위해서 고통당한 것이나 또 예수님이 영원히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신 부활의 노력에 고통당하신 것이나 꼭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반동가리 예수님이 죽으심이 반동가리 그 둘이 합해서 나를 완전히 대속하신 것입니다. 살아난 거는 뭐 그러니까 부활주일은 아주 기쁜 주일인 줄만 알고 우리에게는 기쁘다 수 있지만은 그 기쁨이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은 영원히 죽는 거와 같은 피조물을 입었는데 우리가 송장 썩는 송장 꺼풀을 입고 송장 썩는 그 송장 구덩이 속에 우리가 들어가는 거와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거와 들어오는 거와 비교하면 비교가 안 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끗하신 분이 그렇게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 피조물의 형상으로 형상을 입고 활동을 해야 되는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사랑의 감사 예수님의 살으심에 사랑의 감사 여기에 감격된 이것이 동기가 되 가지고 이 힘으로 무얼 해야 되지는 것이지 이 힘없이 그냥 제가 생명을 다 바쳤다 해도 아무것도 소용 없어. 아무것도 소용 없어. 주님께서 아주 더럽게 보는 것입니다. 가치없게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아 때 그렇츰 많이 죽고 한 전쟁이 일어나면 보통 뭐 몇십만 명 몇백만 명 죽는 것이니까 그 구더기 죽는 천한 죽음인데 그까짓 거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고 살으심에 연합한 그것으로서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니라면 무슨 가치 있소. 아무 가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교 순교 하지만 가보면 순교했던 것이 다 아닌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요. 그래서 순교자 유가족에 전국 순교 유가족에 대해서 활동했던 분이 나인숙 집사님이 그 활동하지 안했습니까. 그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분이 말았습니다. 왜 말았느냐? 순교 유가족이라 하지만은 이 참 죄짓다 죽은 자들을 지금 이거 뭐 기념하고 축하하고 하는 이런 죄짓는 일이 될까 해서 그만 깨닫고 난 다음에 손을 떼버린 것이요. 그것이 베 들어가서 안용준 목사님도 그거 하다가 그만 손 떼버리고 미국으로 가버렸어.

 

, 내가 아는 데에도 순교자라 하는 것이 그거 다 죄짓다가 제 죄값으로 죽었지 뭐 주를 위해 죽은 것, 주를 위해 죽은 것을 죄짓지 아니할라고 죄짓는 자를 죽인 죄짓는 자를 죽인 그 생활과 하나님을 따라 의롭게 사는 그 사람으로 살라고 하는 요 두 가지 때문에 죽어. 요 두 가지를 세상이 못하게 한다 그말이오. 세상이 못하게 하는데 요 두 가지를 할라하고 세상은 못하게 하고 요게 마찰되서 죽은 것이 순교입니다.

 

.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십 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내가 요렇게 참 진정 저거를 사랑해서 하나님 앞에 가도 가면 나중에 게을부려서 진정 사랑으로 이렇게 해놓으면 아 요걸 뭐 등신 바보 같은 것들을 사랑으로 말하니까 그걸 확닥 디비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금 우리를 미워해서 그런다. 이러면 그게 딱 실복을 당해 가지고 딱 그래 되버리요.

 

내가 요 어떤 사람 하나 있는데 그 저거 하도 그래서 저거 남편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네가 아내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해서 이래야 되지 그리 안하면 안 된다. 요걸 똑요렇게 해라 이랬디만은 그래 가 가지고 불쑥 가 가지고 그렇게 하니까 조기 딱 안다 말이요. 아 요것이 목사님이 딱 요래 들어서 시켜서 요랬구나 그때는 암말도 않고 듣고 있다고 그다음에 어떤 기회에 딱 내가 지고서 목사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요렇게 요렇다 하니까 그 자식이 그만 그 따라가 가지고 그만 그 설복당해 가지고 그래 되버렸어요. 인자 디지기는 디졌지만은 그런 것은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창자가 없어.

 

어쩌든지 그러니까 할 수 없어서 요새는 그 뭐 남자 그거는 다 죽었기 때문에 여자를 거머지고 이래야 되지 암만 옳은 말이라도 여자를 붙들고 해야 일이 되지 남자 붙들고 이래 했다가는 그 나중에 여자가 딱 속에 품어 가지고 뒤에 살금 살금 화닥 디비티 요래 버리면 그만 뚝 따라가 가지고 저 살릴라 하다가 원수가 된다 말이요. 그러니까 개에게 진주 던지는 것 한가지라.

 

남자들이 죽었다 그말이오. 남자들이 죽었어. 남자들이 다 죽었어. 죽었다 하니까 허 내가 죽었어. 불의를 가지고 악한 것을 가지고 주물면 주물면 그거는 더 디졌어. 그거는 사탄이라. 그거는 이러니까 옳은 일을 아내보다 옳은 것을 먼저 선택해야 되고 또 옳은 일에 대해서 어쩌든지 힘이 더 있어야 되고 옳은 것으로 끌어야 되고 이래야 되는데 그기 없어.

 

낳자마자 몇해 전에 그분 여 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 한번 들었어. 많이 모아 있는데 , 아내 말 듣는 사람은 다 이리 나서고 안 듣는 사람은 거 있거라하니까 다 나오고 하나가 있더래요.‘너 너는 아내말 안 듣나?’이러니까우리 아내가, 우리 아내가 여럿이 있는대로 가지 말라 해서 나는 여 있다.’그놈은 더 듣는 기라.

 

내가 그말 듣고 아 참 이거는 철언은 철언이다. 이 명철한 말이다. 이 참 실상을 또 그 바로 파악을 하고 이렇게 한 말이다. 예화를 들었지만은 그 예화는 참 실력 있는 예화다.

 

여러분들 데리고 나와요. 안 나오면 엎고 나오라 말이요. 지금 고치는 기 낫지 나중에 목회 나가 가지고 그러면 어쩔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래도 내가 가서 말한다고 거석하지마 그 소리 하면 가 가지고 딱 여놨다가 나중에 목사님이 어떻게 하면 두말할 것 없어. 그말 따라서 나하고 이래 되버렸지요. 이래 되버리면 목회가 헛일되고 만다 말이요. 나하고 이래 되 가지고 목회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전부 실패지. ? 내가 하나님하고 이래 되 가지고 있으면 나하고 이래 되면 하나님하고 들어 붙지만은 내가 하나님하고 이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하고 이래 이래 되버리면 하나님하고 그래 된 것이고 말기 때문에 목회가 안된다 그말이오.

 

보십시오. 목회 못하는 사람 나하고 이래 다 벌어져 가지고 안 있는가? 암만 애써야 안 돼. 제가 회개하고 돌아와야 되지는 것이지. 그러기에 하나님하고 하나 된 사람하고 하나되야 됩니다. 대립된 사람 대립이 되야 되고 그렇지 안하면 목회가 안되요. 자기 사생활도 그래요. 축복이 없어요.

 

네 통성으로 가도하다가 자유로 기도하고 늦어서 한 십 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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