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13일 주일오후 

 

본문 :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을 얻는 데에는 가감이나 변동을 할 수 없는  정확한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 얻는 방편을 에누리를 해서 이래도  저래도 되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 그거는 우리 주관이요 실상은 호리도  가감을 못 합니다.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방편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법칙이 있어 가지고 그 법칙대로만 되지 달리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 법칙을 지키면 세상에서도 참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을  수 있는 지극히 존귀한 것이 되고 그 법칙을 지키지 안하면 아주 천해져서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버린다 거름에도 쓸 데가 없고 밭에도 쓸 데 없다, 거름에도 못 쓰고 또 밭에도  못 쓴다,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밖에 버리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이  법칙대로 하면 심히 존귀해지고. 또 이 법칙을 어기면 심히 천해집니다.

 밭에도 쓸 데 없다 거름에도 쓸 데 없다 이 말은, 밭에도 쓸 데 없다는 말은  비유인데 이 세상에도 쓸 데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도 쓸 데 없다. 세상은  우리를 위해서 있는 밭입니다. 기독자가 잘못되면 세상에도 쓸 데가 없고, 또  거름에도 쓸 데 없다 그말은 밭에 그 곡식을 위해서 있는 거름인데 그  거름으로서 밭에 곡식이 잘되게 되는데 그거는 거름에도 쓸데가 없으니까 곡식  잘되게 하는 데도 쓸 데 없고, 또 밭에도 쓸 데 없다. 세상에게도 아무 쓸 데  없는 사람, 세상에게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되고 거름에도 쓸 데 없다. 믿는  사람에게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된다. 거름에 쓸 데 없다는 말은 믿는 사람들에게  쓸 데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자가 잘못되면 세상에도 무용지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악해도  세상에 쓸모가 있습니다. 또 아무리 악해도 기독자에게 다 필요한 거름입니다.

악한 자는 악한 대로 거름이 되고 선한 자는 선한 대로 거름이 되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거름이 되고 독하고 잔인한 사람은 독하고 잔인한 대로  거름되고 또 부랑자는 부랑자대로 거름되고 어쨌든지 요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서  거름이라 그걸 비유합니다. 불택자들은 택자를 위한 거름인데 그 불택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그 사람이 됐다 할지라도 된 대로 하나님의 교회 건설에  이용을 당합니다. 거름에 쓸 데 없다 말은 불택자들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이 되지만 택자들은 못되고 못 쓰면 그거는 거름에도 못 쓴다. 택자는 잘못  되면 택자의 구원 이루는 데에도 쓰지 않기로 작정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도 소용이 없다 하는 말이요, 불신자에게 대해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독자는 어디 가나 천대를 받기 마련입니다. 기독자가 잘못 되면  비참하게 천해 집니다. 불신자편에 가도 거기에도 어울리지 안하고 쓸데가 없고  또 기독자의 구원에 이용물로 거름 모양으로 이용되는 데에도 아야 그거는  기독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될 거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질이 다르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나무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흙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풀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짐승도 썩으면 거름이 됩니다. 되지만 이 비니루 이거는  암만 해 봐야 아무짝도 못 씁니다. 비니루는 비니루 못 쓰면 그만 그거는 그저  태우기나 할까 그거는 아무 데도 못 쓰는 것처럼 기독자들은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에 거기에도 필요 없고. 또  불신자들에게도 필요 없고, 그 불택자라야 모든 불택자들에게 필요가 있는데  택자는 잘못 되면 교회에도 쓸 데 없고 세상에도 쓸 데 없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아무짝도 쓸 데 없는 사람인고로 다 밖에 버려서 발에 밟힘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들을 했습니다.

 그러면, 요것은 그저 기억만 합시다. 믿는 사람이,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  짜게 못한다 이 말은 기독자들이 그 땀 한 방울이라도 참 조그만한 사소한  재물이라도 그것이 바로 희생을 하면 굉장한 가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참 너무 믿음이 허무합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그 아이가 내놔 가지고 희생을  했습니다. 손해를 봤습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기가 내  놨습니다. 내놔서 주님에게 바쳐 주님의 손에 갔을 때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면 그것이 꼭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랍니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인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인데 그 도시락에  하나님이 축사하시니까 한 사람 먹을 도시락 이 오천 명이 먹고도, 오천 명도 뭐  사나이 수만 오천 명이니까 그 여자는 안 따라 다니겠습니까?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또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이것은 뭣을 보이는고  하니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구속을 받은 사람들의 그 이용 가치가  얼마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속받은 자의 이용 가치가 큰 것을  보이는 하나 표적입니다.

 구속을 받은 사람이 바로 돼 가지고 바로 돼서 참 그게 소금처럼 바로 희생을  할 때에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바로 희생을 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이요  사람이요 분자지만 그것이 큰, 세상 구원에 효력을 나타낸다. 여기에 소금  비유는 그것을 말합니다.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희생을 하면 기독자의 희생이  어떻게 귀한 결과와 참 상상도 못할 아주 좋은 기회 좋은 그 결과를 맺게 된다.

기독자의 희생은 기독자의 희생은 이거 일반인의 희생이나 일반 모든 그  만물들의 희생하는 것이나 투자하는 것이나 그런 게 아니고 그런 투자와 같지  안하고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희생하면 그 희생의 그 결과는 측량하지  못한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사람이 수고를 했는데 그 사람 한 시간 수고하면  돈이 만 원이 벌게 된다. 또 그 사람은 한 시간 수고 하면 백만 원 벌게 된다.

이 사람은 한 시간 자기가 희생을 하고 수고를 하면 일억만 원을 벌게 된다.

그라면 한 시간 수고 해 가지고 만 원 버는 사람, 천 원 버는 사람, 백만 원  버는 사람, 일억만 원 버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한 시간 수고에 한 시간  희생해서 일억만 원의 그 수입을 보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한 시간  수고에 천 원 수입을 보는 사람 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예?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지요? 예. 한 시간 수고해서 한 시간  수고 해서 한 시간 자기의 정력을, 투자하니까 일억만 원을 벌었어, 또한 사람은  한 시간 수고하니까 천 원 벌었습니다. 한 시간 수고해서 만 원 벌 고, 그라면  어느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예? 천 원 번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요?  예? 일억만 원 번 사람이 가치 있지. 그렇지 안해요? 일억만 원 벌은 사람,  일억만 원 벌은 사람이 가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한 시간만 자기의 정력을  희생을 하면 일억만 원을 번다. 그런데 한 시간 희생하면 일 억만 원 벌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잘못되면 일생을 희생해 봤자 한 닢 푼치 가치도 천 원도 벌지  못하고 아무 가치 없어서 이거는 아무 데도 쓰지 못해서 천해서 집어 던져  가지고 지끈지끈 밟히게 된다.

 그게 기독자입니다. 바로 되면 기독자의 그 사소한 희생에 지극히 큰 댓가를  이루는 것이 기독자요, 또 기독자가 잘못돼 놓으면 뭐 자기 일생을 아니라 여러  수천 명이 희생돼 봤자 그까짓 거 이 세상에도 소용없고 거름에도 쓸데없는  그거는 잘못된 그거는 죽자껏 희생해 봤자 하나도 교회에 대해서도 유익을  하나도 주지 못하고 이 세상에도 유익을 하나도 주지 못하는 그렇게 천하게  됩니다. 기독자가 잘되면 굉장히 고귀하고 존귀한 자가 되고 잘못되면 굉장히  천한 자가 되는 것이 기독자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니까, 소금이 좋거니와 고 맛을 잃으면 어찌 써 다시 짜게 하리요. 다시  소금 못 만든다 말이요. 요것은 간으로 희생하는 걸 말합니다. 간으로, 희생하는  것. '밭에도 쓸 데 없고 거름에도 쓸 데 없고 오직 버릴지니 귀 있어 들을 자는  들을지어다' 소금이. 그것이 간을 가지고 희생하는 거와같이 기독자가 잘 돼서  바로 돼서 기독자가 잘 돼고 바로 돼서 그게 바로 진리로 희생을 한다고 하면  진리로 녹아진다고 하면 바로 옳게 생애를 해서 그것이 희생된다고 하면 굉장한  가치가 있다.

 아,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는 점심 먹을 도시락 한 사람 먹을  도시락 밖에 안 됐는데 그것을 바로 바로 희생을 해서 바로 도시락 한 개를  희생했더니만 도시락 한 개가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됐고,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은, 어떤 아이가  하나 그 도시락 하나를 희생해서 제공했다 이랬는데 그 아이의 도시락 한 개  희생으로써 오천 명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나 됐고 그것이 벌써  근 이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기독자들에 주는 그 혜택과 영향이라 하는 것은  굉장히 크다. 그것이 소금이 변질돼지 안하고 그대로 녹아지면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다.

 소금이 변질되지 안하고 바로 녹아지는 것처럼 기독자가 바로 돼서 진리와  영감대로 바로 돼 가지고 희생을 하면 그 희생의 가치는 굉장히 크다.

오병이어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같이 그렇게 가치가 크다. 그러나 기독자가  자기가 진리대로 희생하지 안하고 자기를 아끼든지 해 가지고 진리대로 희생하지  안하면 그게 좋을 줄 알아도 그것은 밭에도 쓸 데 없고 거름에도 쓸 데 아무  데도 쓸 데 없다. 귀가 있거든 들으라 그말이오. 귀가 있거든 귀가 있거든  들으라 요 무슨 말씀인지 그걸 잘 모르면 안 되는데.

 그 전에 말씀하시기를 오전에 보다를 말했습니다. 보다, 이 보다는 두 가지  보다를 말했는데 세상이 암만 좋아도 주님과 진리를 인해서 내가 희생을 해라.

주님과 진리보다 세상을 좋아하면 그것이 소금이 맛 잃은 것이 요 변질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거는 밭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다. 세상에 아, 무리 좋은  것이라도 주님과 진리가 그것보다 더 좋아서 주님과 진리 때문에 네가 그것을 그  좋은 것을 내어놔서 희생을 하면 소금이 변질되지 안 하고 희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고 남는 거 와 같다. 예수님께서 올바른  희생으로 하시니까 모든 천상천하의 피조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됐다. 또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됐다. 성도들은 썩은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바로 옳게, 바로 옳게 바로 옳게 희생만 해라. 겁내지  말고 희생만 해라. 그러면 상상도 못 할 거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면 그, 아이의 한끼 도시락밖에 안 되지만 그것이 오천 명이 먹고  남았으니까 도시락 오천 개 된 거 아닙니까? 또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가  됐지, 또 그 사실이 기록돼 가지고 이 천추만대에 있을 것이지, 기록이 돼서  그것이 사람 구원에 얼마나 큰 공헌이 됐으며 얼마나 좋은 효과를 나타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올바른 소금으로  녹았습니다. 예수님이 맛있는 소금으로 됐습니다. 가치 있는 소금으로 됐어요.

예수님이 가치 있는 소금으로 녹았다 말이오. 예수님께서 모든 높음과 모든  영광과 부요와 모든 것을 내어놓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으니  그는 참 희생인데 그 희생이 세상에서 보면 뭐 희생이라 하는 것이 그게 무슨  가치 있습니까? 안 들으면 몰라요. 요 소리 잘 안 들으면 속에 귀에 안  들어갑니다. 그게 쉬운 말이 아니라. 이거 뭐 그것을 자꾸 따짐 따짐 따지면 안  되기 때문에 거틈거틈 해 가지고 이렇게 그저 이 극단 극단만 말해 놨기 때문에  그 사이는 거리가 한 천리쯤 되니까 그 사이에 다리는 당신들이 내야 될 거라  말이오. 여러분들이 놔야 돼. 그 양 거기에 것만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  졸며 들으면 들려지는가? 안 들려져.

 예수님께서 택하신 것은 뭘 택하셨느냐 하면 보다를 택했습니다. 온 천하의  영광을 다 주마 해도 그것보다 아버지의 말씀 순종과 아버지가 나았습니다. 땅  위에 어떤 좋은 것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령 순종이 좋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을 선택해 가지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  삼 일만에 또 사람으로,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으로 또 부활하셨으니 예수님은  큰 희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희생했지만 세상에 민족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국가를  위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사상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뭐 죽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희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도 많고 민족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도 많고, 사상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도 많고. 문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도 많습니다. 희생한  사람이 그렇츰 많지만 그 희생은 아무짝도 쓰지 못한다 말이오. 무가치한  희생이라. 인생끼리 저희들이 좋다고 이렇게 뭐 노벨상도 주고 어쩌고 했지만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할 때는 아무 가치 없어.

 예수님은 그라면 어떤 희생 하셨는가? 땅 위에 있는 어떤 것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령을 더 가치 있게 여겨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사람으로  타고난 그 모든 것을 다 녹아 버렸습니다. 다 희생했소. 다시 다른 말로 말하면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령 위해서 예수님은 다 녹아 버렸습니다. 다 희생해  버렸소. 그 희생은 오병이어의 희생보다 더 합니다. 오병이어의 희생보다 더  해요. 그 희생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 받으셨지, 모든 피조물이  주라 시인하지 '아버지 우편에' 자존자이신 한 분 다음 위치를 차지했으니까  예수님의 신성은 신성이야 의례히 하나님이시지만 신성과 하나 된 인성,  예수님의 인성 그 인성이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났습니다. 그 인성이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다 차지했습니다. 피조물이 모든 피조물을 다 차지한 것이 올바른  희생에서 희생의 댓가로 나왔다. 올바른 희생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른다.

 올바른 희생이 뭐인데? 보내신 자와 보내신 자의 뜻. 보내신 자와 보내신 이의  뜻을 모든 거보다 낫게 여겨서 모든 것을 다 줄라고 해도, 온 천하를 다 줄라고  했습니다. 천하 영광을 다 주마 이래도 그것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보내신 뜻이  더 가치 있게 여겨서 더 이 천하 영광보다 아버지의 뜻이 더 가치 있게 여겨서  천하 영광 다 희생해 버리고 당신의 몸과 생명 다 희생하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만을 잡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 의 뜻을 잡을라고 하니까 모든 거 다 깨져  버리고 희생됐다 그말이오. 이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은데, 당체 전달 안 되는 것  같은대요. 여러분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애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이대로의 당신이 투자되지 안했더라면 이대로의  희생되지 안했더라면 이대로의 녹아지지 안했더라면 맛 잃은 소금이 돼 가지고  세상에도 마귀에게도 기독자에게 또 아무 소용없는 천물 중에 천물 가장 천물이  됐을 터인데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고 고 바른 희생 고 바른 희생을 변질하지  안하고 바른 희생을 뺏기지 안하고 바른 희생을 했으므로 말미암아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가지시게 됐고 모든 것을 다 구원하여서 모든 것들이 주라  시인하는 이런 고귀한 걸음을 걷게 됐다. 만일 그것을 예수님께서 변질돼  버렸다면 헛일이다. 뭐 앝 아 들어야지. 이거 퍼뜩 설교하고 말겠소. 못 알아  들으니까 퍼뜩 설교하고 말겠소. 뒤에 언제 또 할 기회 있으면 하지요.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 그 모든 것보다 나를 사랑치 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네가 나를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네가 놓지 안하고  나를 취하기 위해서 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보다 나와 내 명령을 더  귀하게 여겨서 나와 내 명령을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걸 네가 희생을 해야 내  제자 된다. 희생을 해야 제자된다. 나도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온 천하 모든  것보다 더 귀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내가 소유하기 위해서 그 뜻을 내가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거 다 희생했다. 이랬기 때문에 주님은 아주 올바로  진리로 바로 희생했기 때문에 한 분의 희생으로서 수많은 피조물들이 다 구원  얻게 됐고 또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됐다 우리와 꼭 같은 피가 있는 참  사람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인데 죄만 안 짓고 꼭 같은 사람인데 예수님의 인성이  이렇게 바로 희생하심으로서 모든 피조물 위에 있었다. 모든 피조물 차지했다.

너희들도 요렇게 바로 희생하면 이렇게 아버지의 보좌에 내가 앉으니까 너희들도  보좌에 앉는다 이말이오.

 그러나 이것을 하지 안하고 놓치면 네가 땅 위의 가족이나 땅 위의 인연이나  인간이나 지위나 권세나 직장이나 재물이나 무엇이든지 주님과 진리 빼 놓은 그  외에 모든 거 그 모든 거 다 그것을 너에게 준다 하고 네게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거 다 그게 네거 됐다 할지라도 그것을 네가 놓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서 나와 내 도를 버린 자는 그는 맛 잃은 소금이기 때문에 그는 천해진다.

아무 데도 쓰지 못하게 된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자꾸 새김질을 해서 얼마든지 가지면 요 진리를 알지만  그리 않으면 모른다 그거야. 들어 봐야 몰라요. 또 주석에 가서 찾는다고 가  찾아보라고 뭐, 칼빈 주석이 꽉 찼지 안해요? 주석에 가 찾아봐. 이러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되지 그리 아니면 이해를 못 합니다.

 맛 잃은 소금은 어떤 게 맛 잃은 소금이냐? 맛 잃은 소금은 우리 현실에서 이  세상 거기에다가 부모 형제 자매 처자를 이렇게 말했지만, 세상에 무엇이든지  세상에 무엇이든지 그것이냐 주님과 주의 말씀이냐 둘을 비중을 다는 그것이  현실인데 이제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현실을 가지고 이것 저것 할 게 있지만  어떨 때는 이거냐 저거냐 보다 어느 것이냐? 이것 취할래 이것 취할래 둘 중에  어느 것 취할래? 이걸 취하려고 하면 세상을 내놔야 되고 세상을 취할라 하면  주님과 진리를 내놔야 되고 이럴 때에 세상에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치  안하면 내가 싶어서 걸어간 이 걸음을 네가 걸을 수가 없고, 내가 승리한 이  승리를 할 수가 없고, 내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취득한 이 취득을 너도 할 수  없다, 내가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같이 너도 아버지의 보좌에 내 보좌에 앉지를  못한다 그럴 때에 맛 잃은 소금은 어떤 게 맛 잃은 소금인고 하니 주님과 주의  뜻 보다 세상이 귀하다 하여 그것을 더 사랑하는 자는 맛 잃은 소금이 되나니  너는 인간에게도 쓸 데 없고 마귀에게도 쓸 데 없고 세상에도 쓸 데 없고 아무  데서 영원히 쓸 데 없는 비참한 자가 된다.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요. 기본 구원  있으니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하늘나라 가도 불 가운데 구원얻은 거와  같으니까 뭐 좋을 게 있겠소? 이렇게 천해진다.

 그러나 나와같이 나와같이 성공하고 모든 존재에게 다 감사를 받게 되고 모든  존재가 다 주라 시인해서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이 내 제자 내 승리의 걸음을 네가  따라 올라고 하면 바른 희생해야 한다. 바른 희생해야 한다. 네 현실에서 네가  좋은 거, 뭐 높은 권세든지 지위든지 큰 회사든지 아주 어떤 재벌이든지 어떤  정권이든지 또 가족이든지 애인이든지 뭐 세상에 명예나 영광이나 취미 쾌락  어떤 것이든지 그거보다 나와 내 뜻을 더 귀하게 여겨서 그걸 희생하고 나와 내  뜻을 잡으면 너는 맛있는 소금이 될 것이고 내 제자가 되어서 내가 승리한  것같이 승리가 될 것이고, 네가 그렇지 안하고 그게 아깝고 나보다 좋아서 나와  내 뜻을 버렸으면 버렸지 그거는 버릴 수가 없다, 그것 네 것인데 그것 버릴  수가 없다고 하는 자는 맛 잃은 소금이 된다. 기독자가 희생할 올바른 그 희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무짝도 쓰지 못할 자가 된다. 올바른 희생으로서  기독자가 존영해지는 것이고 기독자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고 구원얻게 된다  그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해석하기를 사람이 그 탑을 쌓을라고 할 때에 앉아서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만일 계산을 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아야 시작도 안 하는 게  낫지 시작해 가지고 그 일을 준공하지 못하면 손해만 가고 수치만 당하고 절단  나 버리지 않느냐! 그런 것도 그런데 하물며 네가 지금 이 기독자로서의 승리할  건설 이것을 앉아서 계산해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앉아 계산해라. 이 비용은  학문이 많아야 되고. 재벌이 많아야 되고, 명철과 총명이 많아야 되고 뭐 그런  거 상관 없다. 다 들이면 된다. 다 들이면 된다. '누구든지 있는 바를 다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 지 못하리라' 있는 것 다 희생하면 됩니다. 있는  것 다 희생해서 내 소유도 몸도 생명도 명예도 지위도 쾌락도 모든 것 다  희생해도 주님같이 나도 맛있는 소금이 되겠다. 가치 있는 참 승리하는 희생을  하겠다. 주님이 모든 것보다 아버지와 보내신 뜻을 중하게 여겨서 당신의 모든  것 다, 마귀가 있다가 말하기를 '나한테 머리만 한 번 꾸뻑해라. 머리만 한 번  숙이면 천하 영광 다 주마.' 줄 수 있습니다. 천하는 임금이 사탄이 임금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래도 주님은 '사탄아 불러가라 그에게만 경배해라  하였느니라' 아, 그라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안했소.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반드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는 것이니 자기가 이렇게 올바른 희생. 주님과  진리 때문에 희생되는 것은,'여러 배 백 배나 얻고, 요번에 그걸 많이  공부했습니다. '백 배나 얻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이 건설은 기독자의 건설은 무슨 건설이냐? 자본이 얼마나  드느냐? 있는 것을 다 투자해야 된다 이거요. 다 투자해야 되니까 아야 다  투자해야 되는 것인데, 다 투자하지, 못하려면 너는 부끄러운 구원 가지고 그만  그대로 하늘나라 불 가운데 구원얻는 거와같이 그런 자 되고 마는 것이지.

기독자의 승리 생활이 어떤 승리 생활인 줄 알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하는 영광스러운 이 생활이 어떤 것인 줄 알고. 말이 아니라 하나도 그게  가감이 없습니다. 하나도 과장함이 없습니다.

 망대를 지을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그걸 예산 안 하고 하면 실패한다, 믿는  사람이 믿음의 성공과 승리를 하려고 달라드는 사람이 그게 어디까지 자본이  들어야 되는가 하는 그것을 계산 안 하면 헛일이다. 그 계산은 계산하지  않겠느냐? 이 신앙에 승리하는 계산은 그 계산이 있는 것 다 해야 된다. 그만  그게 간단해요. 있는 것 다해야 된다. 있는 것 다해서 희생하면 맛있는 소금되고  무엇을 인해서 희생을 안하면 맛 잃은 소금된다. 맛 잃은 소금되면 천해진다.

기독자가 본질대로 희생하면 그 희생은 뭐 백 배라니 백 배가 뭐입니까?  억억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백 배가 뭐이요 억 억억억만 배도 더 되요. 너무  사람들이 알아듣기 위해서 백 배를 말한 것이지.

 이러니까, 우리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오후에 이 말씀을 못  알아들으니까 간단하게 하려고 했는데, 간단하게 이제 다 됐습니다. 그만 더 안  하겠습니다. 나도 힘도 없고, 내가 5층에 올라가니까 비가 어찌 많이 왔던지  그래 마당에 이리 물이 거석하여 뭐 전부 보일러실이고 전부가 그만 불이  흥건하게 들어와서 그놈 들어내느라고 한시 반까지 전부 그 취수했오. 취수.

그랬는데 그래 인제 오후에 아예 이 말씀하기로 딱 해 놨기 때문에 그저 그거  하면서 기도하면서 이랬는데 그저 오후에 간단한 진리는 꼭 진리 증거 했습니다.

아주 보배로운 진리를 증거 했습니다.

 소금이 맛 잃지 않는 거, 기독자가 기독자의 본질대로 올바른 희생하는 거.

진리로 희생하는 거 기독자의 올바른 희생은 그 결과가 굉장하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인 그것도 하나의 계시로 그 성질적인 것을 보여줬지.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인데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다 상속했고 그것을 다 구원하는  구주가 됐고 그의 중보자가 된, 이렇게 그 뭐 희생에다 비해서 예수님의  인성으로 말하면 그 인성이 뭣이 큽니까? 예수님의 인성 내나 사람 한 사람인데  한 사람인데 신성을 따라서 올바로 희생하니까 그 희생으로서 모든 피조물이 다  구원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으로 구속 받은 우리들이, 우리들이 이제는 이 구속을 인해서  주님의 진리대로 이렇게 자기를 올바로, 기독자가 올바른 희생하면 올바른  희생하면 기독자가 올바른 희생하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수입이 뭐인가?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아, 이만하면 됐지 그 이상 뭐 있습니까? 요 조그매라도 뭐 조금  만이라도 에누리를 해서 한 말인 줄 압니까? 에누리 없오. 털끝만치도 에누리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에서 모든 것보다 주님과 주의 뜻을 낫게 여기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말이오. 왜 주저하느냐 그말이오. 주저하기를. 왜  주저해요. 이렇게 지금 가치 있게 되는데 이렇게 가치 있게 되는데. 이걸 하지  안하고, 그러면 주님과 주의 진리를 희생을 시키고 그보다 더 사랑한 것이  뭐인가? 그보다 더 사랑한 것 세상에 뭘 사랑했냐 그말이오. 온 천하를 다 줘도  저는 실패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가 굳게 잡고 믿어야 됩니다. 믿고 자기대로 행해야 됩니다.

참되게 믿는 사람은 다 이래 삽니다. 다 이래 사요. 주님과 진리대로 희생 못한  게 없습니다. 소유도 몸도 생명도 아낀 거, 희생 못 한 게 없어. 아무리  어려워도 탁탁 희생하고 뭐 주저하지를 안해요. 올바로 믿는 사람은 다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 순교했고 순생했지. 뭐 그렇게 그런 사람들은 그거  안하고 그리 된 사람들은 다 그게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좋을 때에 아무리 좋아도 그것보다 주님이 낫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것보다 주님이 낫습니다. 주님 때문에 그거 희생했으면 맛있는  소금이라. 주님같이 승리하고 아버지의 보좌에 주님이 앉은 거와같이 주님의  보좌에 우리가 앉게 됩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것 때문에 주님과 주의 뜻을 희생해서 주님과 주의 뜻을  내어놓고 그걸 취했으면 주님과 주의 뜻을 희생하고 그걸 취했으면 천하를 다  얻어도 저는 맛 잃은 소금이기 때문에 금생도 내세도 아무 데도 쓸 데 없어.

영원히 쓸 데 없어.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만 아무 쓸모가 있어야지.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만 아무 쓸모없소. 죽지는 안하고 있지만 아무 쓸모가 없소.

그러니까 항상 밀려다닐 거라. 여기에도 아 좀 비켜주십시오. 아무 데도 쓸 데  없으니까. 이 세상에서 실직이 돼. 가지고 실직에 깊이 느껴서 야, 실직해서  직책 없는 게 참 불쌍하다. 실직에 만일 오십 살까지 실직을 해 가지고 고생  고생 고통해도 실직이 비참하다 하는 이것을 느껴서 인간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지면 비참하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오십 년  밥을 굶고 배를 고파도 복 있는 사람이요 큰 지혜를 얻었습니다. 큰 지혜를  얻었소.

 우리가 땅 위에 아무리 고통스럽고 더럽고 고통스러워도 우리가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 죄를 짓습니다. 그것 당하는 것보다는 진리의 길을 버리는 것이 낫다,  그것보다는 진리의 길을 버리는 것이 낫다, 세상에 한없는 고생 당하고 있는 그  고생 이거는 참 못 당하겠다, 이것보다는 주님과 진리를 버리는 게 낫다 해  가지고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들이 주님과 진리를 버리고 이제 그 고생을  면합니다. 그 고생을 고생을 그것이 너무 견디기 어려우니까 어려우니까  그것보다는 주님과 진리를 버리고라도 그 고생을 내가 안 했으면 좋겠다  이렇지만, 땅 위에 어떻게 나쁜 거 하찮은 것이 어떻게 나쁘고 나쁘고 자기에게  해독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과 진리 버리는데 비유하면 비교도 안 됩니다. 한  말씀 버린 그 값이 인류의 사망 당하는 것이 한 말씀을 버린 그 대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 위에 어떻게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주님의 진리 버리는 데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과 진리를 배반하는 거기에 비해서는 이까짓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너 주님과 진리를 버려라. 이 고통 이거 내가 다 제해  줄께.' '야 이 고통 이거 백 배를 받아도 주님과 진리 버리는 것보다 나는  이거는 고통이 아니다. 주님과 진리를 버리면 이것의 몇 배나 되는 그런 고통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고통당하지 고통을 바꾸지 않겠다.' 좋은 것도 땅에 좋은  것을 주님보다 낫다 해서 바꾸지 맙시다. 땅에서 고통 면하는 그것이 주님의  진리 범하는 것보다 비교 못할 그런 아주 사소한 고통이니까 우리는 그럴 때도  고통 그거보다 주님 어긴 그 결과는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 보다를 기억하고, 놓지 맙시다. 인제 가지고 가만히 가서 좀  생각해 봐요. 맛있는 소금은 성공한 거, 맛 잃은 소금은 비참한 기독자 맛을  잃은 게 뭐인가? 현실에서 주님보다 세상이 낫다고 해서 한 그것이 희생할  기회를 놓쳤오. 녹아지지 안했어. 녹아지지 안했기 때문에 그는 변질된 소금이  됐어. 현재에 모든 것보다 주님을 낫게 여겨서 희생한 그것은 주님이 딱  들어맞게 희생과 같은 희생이기 때문에 그게 주님의 회생에 따라가는 것이니까  그것은 주님같이 승리하고 보좌에 함께 앉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잡아요. 알기 어려워도 잡아야 돼. 자꾸 밥을 굶고라도 명상을 해서라도 잡아야  됩니다. 잡아 가지고 현실에 딱, 현실에 현실마다 보다가 있습니다. 좋은 데도  보다가 있고 나쁜 데도 보다가 있고, 아무리 나빠도 그 나쁜 거 그것 때문에 죄  짓지 마십시오. 아무리 나빠도 나쁜 그것이 죄 지은 그 결과보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벼운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것을 닥쳤어도 나쁜 거 그것 면키  위해서 죄짓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아도 좋은 거 그거 안 뺏기기 위해서 주님  배반하지 마십시오. 현실에서 보다를 생각해서 딱딱 해서 나가는 데에 거기서  등어리 콩이 튀고 그게 죽을 지경이고 그때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되고 그  때에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 거기에 나타납니다. 거기에 나타나요. 거기서  성도들이 다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거기서 세상을 이겨 그래 되면 내게 당한  일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만유의 주재에게 맡긴 것은 그분이 처리해요, 그분이  주님이 일하게 하셔야 일을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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