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23:10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라
1987. 8. 11. 새벽(화)
본문:베드로후서 3장 3절∼14절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먼저 이것을 알라” ‘먼저 이것을 알라’ 하고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할 건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제 욕심대로 사는 사람 또 하나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으니 재림 위하여 사는 사람 이 두 가지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자기 정욕을 좇아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조롱하고 기롱하고 또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은 땅위에 제 욕심대로 사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가련하게 여겨서 측은하게 여깁니다. 이래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면서 사는 사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하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아니하고 거짓부리라 이렇게 기롱하고 조롱하면서 사는 사람, 인간 생활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거게 대한 해석이 사람이 자꾸 자기 욕심을 따라서 살면 예수님의 재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부인이 돼집니다. 자기 욕심 그게 뭐인가? 자기 욕심 그것이 악령의 욕심이요 악성의 욕심이요 악습의 욕심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적 하나님의 이 신실하신 계약의 말씀과 예언의 말씀과 경고하시는 말씀을 부인하게 됩니다.
왜? 그것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영의 감동을 받았고 또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인간의 원죄, 인간의 원죄에 감염을 받았고 또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못된 버릇, 자기 중심으로 사는 못된 버릇, 그 버릇은 뭐 하나 둘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못된 버릇, 습성 그것에 유혹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운동은, 악령 악성 악습의 운동은 전적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포하신 이 경고의 말씀을 부인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제 욕심대로 한 번 하면 그만치 예수님의 재림은 흐미해지고 하루를 그래 살고 나면 예수님의 재림은 천리 만리 멉니다. 이 생활을 계속하면 하나님 말씀은 전부 사람을 꾀우는 말이요 거짓말로 이렇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이것 때문에 일차 홍수 심판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들이 다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안 믿는 사람 믿는 사람 할 것 없이 창세기 6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전부 사람이 육체가 됐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백이십 년을 한정하고 홍수 심판으로 멸망시켰습니다.
육체가 됐다 말은 전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람들이 살고 없는 가운데에 저를 만드시고 저를 기르시고 저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것이 없으면 이삼 분도 못 삽니다. 숨을 안 쉬면 이삼 분도 못 사는 거 다 숨쉬는 그런 공기 호흡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또 하나님께서 그 모든 몸과 그 관절 세포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산소가 들어서 그것을 소생시켜 그렇지 소생시키는 것이 중단되면 일 분도 있기 전에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폭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 자기 욕심 자기 중심으로 악으로 살게 되면은, 악이라는 것은 뭣이 악이냐?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악이라 하면은 인간을 해치는 것이 악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악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 위주가 아닌 것은 전부 악입니다. 민족 중심도 악이요 국가 중심도 악이요 전인류 중심도 다 악입니다. 창조주 주재자이신 하나님 중심이 아닌 것은 모조리 하나님께서 다 악으로 정죄합니다.
사람이 악으로 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자꾸 흐미해져서 마지막에는 전적 부인하게 되고, 예수님의 이 재림을 사람들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점점 의로워지고 거룩해지고 경건해집니다.
이래서 옛날도 이것 때문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하는도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됐는데 창조된 것을 부러 잊으려 하는도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포한 말씀을 믿지 않는 이로 말미암아 “그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그때는 물의 넘침으로 다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남겨 두고 나머지기는 모조리 전멸을 시켰습니다.
이제는 이 만물이 어떻게 있는가? “이제 하늘과 땅은” 이 우주와, 이 우주와 땅. 그러면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 말합니다. 이 우주는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하나님이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말씀으로 불사른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소멸하는 불입니다.
진리를 말하기를 단쇠 같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도록 표시했습니다. 단쇠는 아주 물렁물렁하게 발가이 보기 좋지마는 탈 것은 다 타 버립니다. 어떤 거라도 대이면 타 버립니다. 하나님과 진리는 소멸하는 불입니다.
이런데 지금은 우리가 이 진리 이거 성경을 말하는 것이 진리가 나타난, 진리가 꺼풀을 입고 나타난 것이 말씀이요 말씀이 꺼풀을 입고 나타난 것이 성경이요 이 안에 진리는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를 입지 안하면 이 진리가 접해 주지 않습니다.
진리를 접하면 소멸돼 버립니다.
그런데 이 진리로 모든 것을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해 두시는 것인데 뭣할 때까지 간수해 두느냐?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그러면 지금은 사람들은 몰라도 경건 하나 가지고 구별합니다. 이거는 경건한 것이냐 경건한 것이 아니냐? 한 사람에게도 경건한 것이 비유컨대 구십구가 경건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경건 아닌 것이 구십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건 아닌 것이 구십구가 되면은 구십구는 다 불타버리고 경건된 것이 구십구라면 구십구는 다 남습니다.
경건된 것만 남고 경건되지 않은 것은 다 불로 소멸해 버립니다.
경건은 뭐이 경건인가? 영원 자존하신 창조주를 위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위하는 거 외에는 다 불태워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없는 데서 지으셔 가지고서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삼라만상의 모든 걸 만드신 것이 하나님을 위하지 안하면 죽는다는 것을 그것을 가르치는 하나의 계시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만물을 보고 ‘저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그면을 살피지 못하는 자는 만물을 보아도 모르는 자입니다. 전부 짐승 한 마리도 모든 것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이 식물 이런 것도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살지 안하면 이거 죽는다. 또 이것도 사람 보기에는 하나 같지마는 이것이 이 세포로 말하면 여러 수천억도 더 된다.
인간이 안다는 것이 그렇게 허무하다. 하나님이 하신 것은 깊고 넓고 세밀하고 심히 복잡해서 인간이 알지 못한다. 모든 데에서.
과일 나무를 심었습니다.나무를 심었는데 주인의 목적은 과실을 바라서 심었는데 과실을 열지 안하면 땅만 허비할 수 있느냐? 이것은 베어버리라. 베어버리고 또 혹 참는 것은 행여나 열까 해서 한 해 두 해 참다가서 마지막에 가서는 베어버린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것 먹고 살면서도 잠깐 너거에게 필요를 위해서 해 놓은 것이 네게 필요치 아니하면 다 베어버리고 없애버린다.
네게 필요 없는 것을 두는 게 어데 있느냐? 네게 필요 없는 것을 두지 않는다.
네게 필요 없는 거 너 위하지 안한 것은 다 너거 집에 두지 안하고 다 없애버리지 않느냐? 만일 어떤 그 골동품이 있어도 지금은 위함이 없지마는 ‘이게 혹 나를 위하는 돈이 될 것이냐 보배가 될 것이냐?’ 뭐이든지 너거 생각해 봐라. 너거에게 너거 위하지 아니할 거 너거에게 해되는 거 너거에게 반대되는 것을 너거가 두는 것이 뭐 있느냐? 너희들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필요 없는 거 당신에게 해되는 거 당신을 위하지 않는 것은 모조리 태워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깨닫는 자는 땅위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에게 위함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나님에게 대립이 되느냐 안 되느냐 여게다가 전부를 기울이고 살지 뭐 국가도 크고 민족도 크고 인류도 크지마는 그거는 다 새발의 피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참 부스러기입니다. 가루 같고 먼지 같은 것입니다. 천하 인간이 다 위해도 하나님이 안 위하면 멸하고 천하 인간과 만물이 다 멸할라고 해도 하나님이 높이 들면 높이 들려지고 해해지지 안하고 멸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는데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다. 경건치 안한 거. ‘보자,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 위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하나님 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 하나님 위할 것인데 위하지 안해도 하나님 위할 희망이 있다. 하나님 위할 희망까지 다 끝나버리는 그날이 어느 날이냐? 불로 심판하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도적같이 온다. 예수님의 재림은 뜻밖에 옵니다. 지금 이 세상에 문화국을, 우리 자녀들은 미국 가 많이 있습니다. 그 나는 거기 대해서 불쌍히 여깁니다. 엊저녁에도 거게 대한 교회 세운 것을 참 그거 고맙기는 고맙습니다. 미국 나라에는 교회가 많지마는 전부, 미국 사람들 교회를 세를 내 가지고 예배 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봅니다. 새벽도 못 보고 주일 오전도 그 사람들 보기 때문에 못 보고 주일 오후에 한 번 예배 보고 다 삽니다.
제가 한 이십 년, 이십 년 전에 ○○○집사님 그 큰아들이, 아들이 하나뿐인데 그 아들이 미국 가서 의사노릇 하는데 장로가 됐습디다. 여기 왔는데 그분이 말하기를 미국 그 전국에서 재미 교포들이 자기 예배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교회 하나뿐이라 하는 것을 말합디다. 전국에 하나뿐이라. 이제 자기네들은 신축을 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있는데 하나뿐이라.
그 뒤에는 모두 세를 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 그것을 사기도 하고, 미국 나라는 판다 하면 교회 판다 합니다. 교회를 그렇게 팔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서 교회를 시세로 한 일억짜리 되면은 많이 받아 봤자 찍해야 천만 원, 한 십분지 일 그래 팝니다. 왜? 그래 안 팔고 안 되는 것은 아예 법적으로 교회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을 용도 변경이나 형질 변경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교회는 교회이기 때문에 팔라 해야 살 사람들이 없어 못 팝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다른 일반 집 요량하면 가격이 십분지 일도 안 됩니다.
거게는 판다 하면 교회 파는 것이고, 말이 나오기를 우리 남한에는 섰다 하면 교회 섰다 하고서 교회는 자꾸 서는데 이게 뭐 옳은 건지 거짓부리인지 모르기는 모릅니다마는 어쨌든지 지금 미개의 부흥이라도 부흥은 부흥입니다.
이래서, 그 나라에는 유물주의의 나라입니다. 전부가 물질 위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네들은 속아서 과학이 인간을 영생시킬 줄로 알고 과학을 제일 위주로 삼아 가지고서 그 나라는 청교도들은 그렇지 않지만 청교도들이 지금 하늘에서 울고 있을 것입니다. 전부 다 유물주의로 ‘너 집에, 너거 집에 편리한 거 하나 있으면 우리 집에는 편리한 거 둘이다. 너거 집에는 둘이가? 우리 집에는 셋이다.’ 이 경쟁이요 시합입니다.
세계에 모든 경쟁이 뭐이냐? 너희들은 과학 하나 발견했다 둘 발견했다 이것이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그까짓 거 과학이 뭐입니까? 소련도 확 불에 타서 다 녹아질 것이고 미국도 불에 타서 녹아질 것이고 일본도 타 녹아질 것이고 한국도 타서 녹아질 것이고 전인류와 모든 우주가 다 녹아질 것입니다.
태양도 타서 녹아질 것이고 모든 항성들이 다 타서 녹아질 것이고 모든 지구에나 뭐 화성 뭐 토성 금성 이 떠들어 쌓지마는 참, 참 마음에 불쌍합니다. 왜? 과학이 떠들어서 이 지구라는 데에서 달에게 갔다고, 우주를 말하면, 우주를 말하면 헤아릴 수도 없는 딱 붙은 건데, 이 넓은 우주는 딱 붙은 건데 고거 찍해야 가 가지고서 그것으로써 큰소리하는 거, 그거 억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이 넓은 우주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성경을 부인하고 영감을 받지 않는 사람은 다 소경입니다. 인생은 인생이지마는 짐승입니다. 성경이 말해 놨어. “사람이 비록 존귀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마는” 만물 중에 인간이기 때문에 영장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할 짐승이라” 이래 말했어.
이렇게 모든 물질 이것이 살 줄 알고 전부 거게는 두 내외 일하지 안하면 아이 둘을 기르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공통입디다. 왜 그런가? 여게는 뭐 혼자만 벌어 가지고도 아이 열이라도 기를 수 있는데, 그놈의 마귀 지식 그거 얻느라고 돈이 많이 들지 먹고 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많이 안 들어.
그런데 거게는 왜 그런가? 둘밖에 못 기르는가? 전부 월부 주면 없어. 어짜든지 너희들에게 월부로는 뭐이든지 월부로 하면 뭐이든지 준다. 차도 월부, 집도 월부, 또 냉장고도 월부, 이라다가 월부 갚으면 이제는 다 써서 못 쓸 때 돼 버립니다.
그래 놓으니까 어짜든지 사람들을 편리하게만 유혹하고 편리한 데에 거기 유혹받아 가지고 편리할라 하는 데에 제가 돈을 모아 사 가지고 편리한다 하면은 돈 모을 동안이나 좀 정신 차리지마는 이것은 당장 일자리만 있으면 그 일자리에서 월급 받아 어떻게 한다 하면 얼마든지 편리를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자기가 모든 월부한 것이 많이 있어 놓으니까 일을 놓으면 월부를 못 내기 때문에 당장 이거 곤란이 됩니다. 여게는 뭐 우리는 옛날에는 냉장고 하나도 없어도 살았습니다. 냉장고 없어도 살았는데 요새 여기서는 냉장고 없으면 못 삽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없어도 될 것들을 맛을 보여 놓으니까 없으면 못 살아.
이러니까 날마다 경쟁하는 것이 죽을 고기덩어리, 썩어 없어질 고기덩어리, 떠나면 그만되는 거 이거 가지고 경쟁하지 죽음 너머 영원한 세계가 있으니까 하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다 불사를 터이니까 불타지 안할 것을 준비하자 하는 이 생각은 평생 가야 한 번도 못 하고 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만 많이 있는 게 아니라 미국 같은 나라는 더 많이 있습니다. 왜? 분주해서 생각할 수가 없어.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미국에 가 놓으면 그런 소리 못 들어요. 분주해서 날마다 뭐 하루, 어떤 사람은 여덟 시간씩 일하고 그라면 두 차례 하면은 열여섯 시간 아닙니까? 열여섯 시간 일해도 못 먹고 살아서 두 시간 세 시간씩 더 한답니다.
열여덟 시간. 열여덟 시간 하면은 얼마 돼요? 여섯 시간 남습니까? 여섯 시간에 밥 먹고 또 자고 이랍니다. 불쌍하기가 가련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미국 사람은 돈밖에는 모릅니다. 물질밖에는 모르요. 참 가련합니다.
이래서 뭐 거게서 선교자들이 돈 가지고 이래 선교는 했지마는 선교 그까짓 거 가지고 또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그거는 거기서 참 믿음 있는 사람들이, 뭐 오나미까라 했나? 뭐 오나미까? 어? 와나메이커인가 뭐 와나미카인가? 그 사람은 십분지 구까지 바치다가 나중에 말들어 보니까 뭐 백분지 구십구를 바쳤다던가 뭐 이래 바치고 전부 나머지기는 거석하고 그 사람은 땅에 있는 거 가지고서 선교를 위해서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지 그렇게 이 세상에 모두 다 이렇게 다 멸망 가운데로 몰려서 가고 있으니까 자기가, 죽기는 꼭 죽는데. 죽기는 죽는데 죽을 준비와 죽고 난 다음에 준비를 오늘 할 수 있는데 이 죽기 전에 생활은 하루밤 나그네와 같이 잠깐 지나가고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영원히 가는 세상이 있는데.
영원한 것은 생각지 안하고 하루밤 나그네를 위해서 사는 여기에 전력 기울여서 사람들이 모두 안 죽을 것만 생각하고 안 죽고 사는 그것만 이래 준비하지, 죽기는 죽는데 죽을 준비는 하나도 안 합니다.
누가 젊은 청년 건강한 사람이 ‘나는 오늘은 안 죽겠다’ 누가 하겠소? 모릅니다. 오늘 죽을란지 모릅니다. 죽는 문제가 크건마는 죽는 데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 없고 안 죽고 사는 데서만 생각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죽으면 다 헛일이라. 전부 살아 있는 것만 위해서 준비하고 살 것 위해서만 준비했기 때문에 죽으면 그만 그것 다 헛일이오.
사람이 죽고 영원 무궁이 있기 때문에 죽을 준비 죽고 난 영원 무궁 세계의 준비만 하고 산 사람은 우선 고난당하고 어려움 당하지마는 딱 죽으면 고난 그거 끝나버려. 곤란 다 끝나버려.
그러기 때문에 참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도적같이 온다 그말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거 다 도둑 맞습니다. 자기 목숨도 도적 맞습니다.
대가리 댕기고 공부한 것도 도적 맞습니다. 모든 거 다 도적 맞습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아주 유망한 사람이고 유력한 사람인데 그래 내가 그 사람 만나 가지고서 말하면서 ‘네가 썩어질 것과 없어질 것,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끝나는 그거 위해서 사는 그런 짓 하지 말고 좀 깨어서 살아라.’ 하니까 그 사람이 듣기가 좀 어색하게 듣기는 것 같습디다.
그래 내가 그말 해 주는 것이 제게 옳은 줄 알아서, 아주 지금 유망하게 크게 공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내가 누군지 그거 지금 그거는 기억에 없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도적같이 온다 말은 너희들이 네것이라고 생각한 거 다 뺏기는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 너희들이 생각지 못할 때에 갑자기 온다 그말입니다. 도적같이 오는데 너에게는 뜻밖에 갑자기 온다. 오늘이 그날인지 내일이 그날인지 모릅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이거 내 몸뚱이인데’ 네 몸뚱이도 다 뺏겨. 네 몸뚱이가 없어. ‘이거는 내 생명인데’ 네 생명도 없어. ‘이거는 내인데’ 너도 없어.
`이거는 내 소유인데' 네 소유도 없어. ‘이거는 내 기능인데’ 네 기능도 없어.
네것이라 하는 것은 다 뺏겨. 다 뺏기고 어데로 갈 건가? 유황불 구렁텅이의 모가치가 돼. 다 그리 다 몰아넣어 버려.
이러기 때문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이 우주가 전부 큰 소리로 다 변질됩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체질, 지구 땅덩어리도 풀어지고, 바다도 풀어지고, 산도, 들도, 뭐 바위도, 별도, 달도, 태양도 전부 다 그 형체를 가진 체질은 뜨거운 불에 녹아 다 풀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그때 어찌 되겠습니까?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땅과 그중에 있는” 이 땅에와 우주에 있는 모든 일이 다 진상으로 드러나. 비밀이 하나도 없어. 다 드러나.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요.
다 드러나니까 자기가 아무리 비밀히 할지라도, 비밀이라도 비밀이 없어, 그때는.
다 드러나. 죄 지은 것도 다 드러나고, 은밀히 지은 것도 다 드러나고, 속인 것도 속은 것도, 뭐 인간 모든 것이 다 사건만 드러납니다. 사건만 드러나면 사건이 탑니까? 사건은 안 탑니다. 사건만 드러나 있어. 모든 거 사건만 다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풀어진다 그말은 이거는 사람이라, 개라, 산이라, 들이라, 이거는 미국이라, 영국이라, 이 모든 형체와 색깔과 이름을 가지고 있지마는 그런 것들이 다 풀어져 버립니다. 그 아무 이제는 없이 전부 원소가 돼 버리고 말아요.
원소가 되고 말고 다만 남아 있는 게 뭐 남아 있습니까? 원소 남아 있고 또 뭐 남아 있습니까? 원소 남아 있고 뭐 남아 있소? 원소 남고 인간들의 각종의 행동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행동은 불에 안 탑니다. 알겠습니까? 행동은 불에 타지 안해요. 행동은 타는 요소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살인했다면 살인한 그 행동은 그 살인한 자는 타고 칼도 타고 뭐 권총도 다 타지마는 그 행동은 타지 안하고 있어요. 그거는 타지는 게 아니야.
그것만 남아 있어. 그러니까 심판이 되지요.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그 모든 형체와 색깔은 다 풀어져. 행동만 남아 있어.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그러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과 경건이 필요하다. 너희들이 모든 행동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때에 너희들이 수치스럽고 모두 정죄받을 것은 오늘이라 하는 날이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됩니다. 오늘이라는 날이 지나가기 전에 주님의 피에 고해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날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늘에 모든 것을 갖추어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거룩한 행실은 뭘 말해서 거룩한 행실이라 하는가? 거룩한 행실은 진리냐 진리 아니냐, 영감이냐 영감 아니냐,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것이냐 받지 않은 것이냐? 예수님의 대속을 받고 안 받은 것을 구별하는 것이 그것이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나 안 받았나 구별해 가지고 대속받지 못한 것은 대속을 받으면 거룩이 됩니다. 영감과 이질이냐 동질이냐 영감과 이질된 것은 영감과 동질을 만들면 거룩이 됩니다. 진리와 일치되냐, 진리와 동질 동성이냐 진리와 이질적이냐 그런 것을 진리화시키면 거룩이 됩니다.
“거룩과 경건함으로” 경건이라는 건 인제, 둘뿐이라. 거룩 경건뿐이라. 피, 영감, 진리와 하나된 것이 거룩이요 경건은 이렇게 됐는데도 그것이 무슨 목적으로 그와같이 했느냐? 자기를 위해서 했느냐, 인류를 위해서 했느냐, 자기 가족을 위해서 했느냐, 가정을 위해서 했느냐, 영광을 위해 했느냐, 지위를 위해 했느냐? 그런 거는 다 불타 버립니다. 다 태워. 경건. 조물주 그분 한 분만 위한 것만 남겨 둡니다. 그분 한 분만 위한 것만 남겨 둬. 왜? 그것으로써 하늘나라에 영생을 줍니다.
그분은 뭐인데? 그분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완전을 위한 것이 아니면 태워야 돼.
완전치 안한 가정을, 완전치 안한 인류를, 완전치 안한 나라를, 완전치 안한 민족을 그거 다 완전치 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거 위하는 것은 다 악이야. 하나님 위하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왜? 하나님 위하는 가정, 하나님 위하는 개인, 하나님 위한 행동, 하나님 위한 설계, 하나님 위한 계획, 하나님 위한 영광, 하나님 위한 모든 노력, 하나님 위한 복, 하나님 위한 것은 하나도 타지 않고 하나님 위하지 않는 것만 다 소멸해 버립니다.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에 진리와 일치된 거, 영감과 일치된 거, 예수님의 피의 구속 안에 있는 거, 이것도, 이것도 자존자 유일하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야지 하나님 위하지 안한 건 다 태워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깨끗하기 때문에 영생입니다.
거게 간 자는 다 영생이오.
우리 영은 다 영생합니다. 우리 영은 요와 같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영은 영생하지마는 영이 영생해도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지 못하면 마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거는 생명은 있어. 목숨은 붙어 있지마는, 비유입니다. 이거는 하늘나라 가서, 내나 그와 같애. 육체에 생명은 있어서, 생명은 있어. 생명은 있어서 생명만 붙어 있어. 붙어 있는데 기능이 없어.
소화 기능이 없으니까 먹을 수가 없어. 먹어야 소화가 안 돼. 소화 기능도 없고, 팔도 돌리지 못하고, 다리도 놀리지 못하고, 이 모든 언어의 기능이 없어. 말을 못 해. 눈만 꺼무럭꺼무럭해 가지고 숨만 쉬고 죽지만 안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어서 하늘나라 가서 영은 있지마는 그 모든 기능들이 없으니까 그런 존재로 구원 얻어 있기 때문에 죽지는 안해요. 죽지는 안하고 영생합니다.
그러나, 그게 그런 존재로 있기 때문에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자기의 모든 신앙 생활 한 행위가 다 하나님 말씀으로 불타버리면 “저는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 모든 자기 건축한 거, 행위 건축한 거, 또 자기의 기능 건축한 거 건축한 것이 그것이 불타지 안하면 상을 받고 영광을 누리고 그것이 불타버리면 다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오늘 이루어질란지 내일 이루어질란지 모릅니다. 모든 걸 봐서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왔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없어도 이 세상은 불타버리고 맙니다. 왜? 이 모든 악이 최고로 최고도로 이래 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지금 가로막아서 타지 못하도록 막아 가지고 있어 그렇지 저거대로 하면 하루 동안이면 다 태워버립니다. 이놈은 저놈 태우고 저놈은 이놈 태우고 다 태워버리고 맙니다. 마는데 하나님이 지금 막기 때문에 이것이 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모든 것이 다 불탄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거룩과 경건만 남구지 거룩과 경건 아닌 것은 다 불탄다 요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뭘 해도, 뭘 해도 이것을 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한 자리에서 둘이 누워자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두 여인이 매를 같이 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또 두 사람이 밭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했어! 그것은 뭐인가? 껍데기는 꼭 같이 하지마는, 꼭 같이 하지마는 그 우리가 진리대로 하는 것을 가만히 굴 안에서 진리대로 합니까? 아니오. 자기가 일을 하면서 그 행동을 진리대로 하고 안 하는 것이오. 진리화되는 것은 일하는 데서 있습니다. 진리화되는 데는 활동하는 데 있습니다.
진리화되는 것이 죽으면 뭐 안 됩니다. 살아 있어야 되고 자기 모든 활동에서 진리화하고, 활동에서 영감화하고, 활동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입고 사느냐 벗고 사느냐 자기 전생활에서 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정치하고 사업하고 모든 일 하는 그것이 껍데기는 꼭 같이 하는 거 같지마는, 껍데기는 꼭 같이 사는 거 같지마는 하나는 무엇을 위해서? 땅의 것을 위하고 하나는 대속하신 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다른 것을 위하는 그것도 둘로 구별됩니다.
또, 같이 꼭 같이 사는데 이 사람은 돈의 수지를 맞춰서 돈에 수입이 되나 안 되나 그거 맞추지마는 이 사람은 ‘내가 요래 하면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행동하나 진리에 이탈된 행위를 하나? 내가 요래 하면은 내 마음이 지금 진리와 일치된 마음이 됐느냐 진리와 이질된 마음이 됐느냐? 네가 지금 생각은 요 영감 생각이냐 영감 생각 아니고 내나 악령 악성 악습의 생각이냐? 내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는데 내가 죄가 없는 자로 살고 있느냐? 의로운 자로 살고 있느냐? 또, 마귀에게 자유하는 자로 살고 있느냐? 사망에게 자유하는 자로 살고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이긴 자로 살고 있느냐? 하나님과 화친자로 살고 있느냐?’ 그거는 자기 믿음입니다, 자기 믿음.
이것을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땅위에 모든 일을 못 할 일 하나도 없습니다. 못 할 일 하나도 없지마는 거룩과 경건으로 하면은 다 구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약해서 거룩과 경건을, 자기 욕심을 행하면 자꾸 그리 끝 없이 타락해 나가 버리요.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나는 죽는다. 오늘 죽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으니 재림 되면 나는 그때에 내 모든 생애가 어찌 되느냐?’ 하는 이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점점 깨끗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