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

 

1982. 4. 18. 주후

 

본문 :  벧후 3:1-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 개인에게 대해서나 모든 교회에 대해서나 전인류와 만물에 대해서 제일 큰  문제, 제일 두렵고 떨리는 큰 일이 있으니 이는 곧 예수님의 재림이십니다.

 어느 지역이나 어떤 나라가 불살라지는 것이 아니고 이 우주가 불덩어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은 의로운 것은 불이 타나 이 불로 인해서 구원이 되고  의롭지 아니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불타서 절단 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노아 때에 홍수로 온 천하에 생명 가진 것이 다 몰사를  하는 이런 큰 일도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하는 그  시간까지 저희들의 욕심을 채우다가 멸망한 거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 때는 이렇게 큰 변동과 땅 위에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없고 큰 일이 없지마는 사람들이 왜 이 일에 대해서 마음이  그렇게 눌려지지 않고 등한해지는가. 그 이유는 정욕으로 눈이 가리워져서  그렇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악령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을 없이 하려고 온갖  욕심을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인류의 박애의 욕심, 또 사회에 대해서 애착의  욕심, 애국의 욕심, 가정 욕심, 자기 생애 세상의 모든 행락과 이런 저런 그  부요와 영광의 그런 온갖 욕심을 인해서 예수님의 재림의 이 지극히 크고 무서운  일이 다 가리워 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이 자기의 마음에 희박하게 희미하게 또 별 관심이  없게 되는 그 까닭은 어떤 욕심이든지 그 욕심이 자기 마음의 눈을 가리워서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만물이 다 불살라지고 모든 일들이 다 변동 없이 그대로 고정이  되어 나타날 터인데 너희들은 이 지극히 크고 땅 위에 큰 변동 있을 무서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본문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준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렇게 준비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은 다 끝나 버립니다.

뭐 이것 저것 좋은 것 뭐 귀한 것 사람들이 다 온갖 제 욕심대로 제 주장대로  하지마는 그런 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서 완전히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 끝나는 재림이 그날과 그시를 아버지만 알지 아무도 모르게 했다 하는 이  모른다는 말씀은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니까 마음에 너무 조급히 생각지 말라  하는 그런 뜻의 말씀이 아니고 하루도 한 시간도 여유를 두지 말고 이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만일 하루라도 오늘 하루는 재림하시지 않을 터이니까 오늘 하루는 재림 안  하실 것으로 알고 무슨 행동이든지 그대로 하지 말아라, 이 시간에도 재림하실지  모르니, 이 시간에라도 재림을 하실지 모르니 이 시간에 재림하셔도 후회할 것이  없도록 준비를 해라 하는 이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계속 이 준비에만  주심하고 있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자유도 다 뺏기고  소유도 행락도 성공도 영광도 권세도 나라도 지위도 가정도 생명도 의가 아닌  것은 다 그 시간에 빼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준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것은  행위를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거룩한 행실은 이런가 저런가 구별하는 행동을  가리켜서 거룩한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구별하는 행실. 경건은 어떤 것을  말하는고 하니 경건은 구속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이것이  경건입니다. 이 경건은 이루어진 결과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인데, 주님이,  이렇게 재림이 급박하고 또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영원한 결정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이 준비를 하는 데에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해라.

 거룩한 행실은 구별하는 행동인데 그 구별은 무엇을 목표로 두고 구별하는  것인고 하니 경건을 목표로 두고 구별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행동할 때에는,  마음에 행동할 때나 언행심사에 행동할 때에 행동은 무슨 구별을 할 것인가. 돈을  표준으로 하고 구별할 것인가, 무슨 세상 권세를 표준해서 구별할 것인가,  가정이나 민족이나 사회나 세상 문화나 그 어떤 것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구별을  할 것인가. 이 구별하는 행동의 표준은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그분을 중심으로 하는 이것이 경건인데, 이러면 경건이 되나 안 되나,  이렇게 하면 경건에 나아가나 안 가나, 이렇게 하면 이것이 경건을 찾아가는 일이  되나 경건을 이루는 일이 되나 이것을 표준한 구별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자기에게 제일 위급하고 긴박하고 제일 큰 문제로 되어  있는 이 사실에 마음이 발끈 매여 가지고 살아야 할 이런 중대한 일인데,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서 별관심이 없게 되는 것은 인간의 사욕이 점점 심해지고  강해져서 이 사욕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 18장에 말씀하시기를, 온 세상이 다 멸망되겠으니 너는 그 멸망  가운데서 같이 멸망하지 말고 그 멸망에서 나오너라. 그러면 모든 세상이 멸망  받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 멸망 받는 이유는 자기를 영화롭게 자기를 사치스럽게  한다는 그 죄목으로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곧 사욕입니다. 사욕, 자율. 말세가 돼  갈수록 사람들의 사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자율은 강해지고 주관은 강해집니다.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선천 후천의 것이 부강해 질수록, 부강해  질수록 자기의 사욕과 주관은 강해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자는 어떤 자가 제일  큰 자냐. 사욕과 주관이 제일 큰 자가 세상에서는 큰 자입니다.

 그러면 사욕과 주관 자율이 큰 이것은 무슨 힘인가. 이것은 사망의 힘입니다.

자기를 영원히 망치는 힘입니다. 망치는 이 힘인 사욕과 자율 주관 자존심 이것이  여기에 한 말로 표현을 해서 정욕으로 눈이 가리워져서 주님의 재림을 무시하게  되고 부인하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증거 중에 하나,  징조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점점 희박해지고 마지막에는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이런 일이 점점 되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오전에도 말씀했지마는 한국 교회만이 아니고 세계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벌써 거의 없어졌다고 할 만치 이는 아주 희미해지고  희박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은 잡지, 기독교 교회 안에 잡지들을 볼 것이고 또 여기에  저기에서 많은 소식들을 들을 터인데, 거기에 말하는 그 모든 골자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예수님의 재림이나 심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사랑을 말한 그 사랑이 둘째 아담의 사랑이냐 첫째 아담의  사랑이냐 하면 첫째 아담의 사랑, 세상이 귀중히 여기는 사랑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마구 죽이는 운동을 지금 점점 해 가고 있는 것이 이 말세의  교회들입니다.

 이래서 악령은 저희들끼리 연극하는 그 연극을 아이들 말로 야바우 놀음하는 그  야바우 놀음을 교회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교회도 따라서 전혀 구별을 초월한,  구별을 초월한 사랑을 가지라 이렇게 해 가지고 종교통일, 종교뿐이 아니라 종교  아닌 무종교인 전부는 통일되도록 하라 하는 이것이 사랑의 주장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 말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우리 개인이나 교회나 전인류나 모든 우주에  있는 피조물에게 있어서는 제일 큰 사건이 예수님의 재림인데 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도무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마치 타락해서 그 심령이 어두워 성신의 감화가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살아  있는 것, 살 것만 준비하고, 사는 데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전력을 기울이지,  살고 살아 있는 그와 반대되는 죽음이 있다는 것과 또 사는 데 관한 것에  반대되는 죽음에 관해서는 생각을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사람들이  어두워져서 그런 것입니다.

 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그 노력은  다 헛되고, 살아 있으면서 인생이 죽으니 죽음을 상대해서 노력하는 것이  슬기로운 노릇이요, 또 안 죽으려고 사는 준비보다 어떻게 하면 잘 죽나 하는  죽는 준비에 대해서 노력하는 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왜. 사람은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일생을 다 도적 맞고 말기 때문에 이제 죽음의 문제에 해결을  지워야 제가 자유 할 수가 있고 저희의 생애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주님이 이렇게 재림하실 모든 것을 추수해서  마지막으로 심판하실 이 중대한 일,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하늘과 땅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했는데 이 불사르는  일이 언제 올 것인가. 오늘 올지 내일 올지 갑자기 사람들이 뜻하지 아니할 때에  오게 된다.

 오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의에 맞지 않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전부 다 빼앗기게 된다 이렇게 한목 빼앗기게 되고 또 전멸이  되어지는 이 큰 일이, 오늘 닥칠런지 내일 닥칠런지 모르는 이 큰 문제가  자기에게 있지마는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이 사실을 부인까지 하게 되어지는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인간의 그 사욕과 자율로 인해서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악령이  이렇게 만들어서, 재림을 생각하는 사람이 사는 데에 재림에 맞추어서 살 것이고  재림을 생각하며 살 것이고 재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사람이 깰 수 있고 정신  차릴 수 있고 그 생애에 주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악령이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없어지니까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편한 줄로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합니다.

 얼마든지 이 우주는 그대로 계속할 것이고 죽지 않고 살리라는 이 말만, 속이는  말만 하면 다 듣기 좋아하고, 죽는다, 죽어야 할 자를 죽는다 하면 듣기를  싫어합니다. 심판 받을 일을 미리 경고해서 심판 받을 터이니까 이 일을 다시  대비하라 하는 말을 다 듣기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관심을 가지지 아니합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부인하고 내세가 있기는  있다 하지마는 내세에 대해서도 별 관심없이 부인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내세와  예수님의 재림 이것이 희미해지니까, 이것이 희미해지니까 세상만 똑똑히  보여지고, 이 문제가 멸시가 강해지니까 세상 문제는 점점 중대하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심지어 기독교의 강단에서도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영원한 부활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무궁세계에 대해서, 이보다도 급박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이 말은 해도 교인들이 취미 있게 흥미 있게 듣지 않으니까  교인들의 흥미를 따라서 움직이는 목사는 자연히 이 말이 점점 희박해집니다.

서부교회 목사도 이런 목사라서 서부교회 강단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  설교가 많지를 못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잘 살 것인가, 잘 먹을 것인가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이 복음과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세상 소망을 말해야 귀가 종긋 종긋해 가지고 자던 잠이  깨어 가지고 들으니까, 세상 소망을 말해야 기분도 전환되고, 새로워지고, 기쁨도  생기고, 용기도 내고, 연보도 잘 내고, 목사 대접도 잘하고 이러니까 자연히  거기에 따라서 목사도 설교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실은 이것은 가짜입니다.

이것은 가짜입니다.

 강단에서는 사는 것을 말하면 죽은 것을 말하고 둘을 꼭 같이 말해야 됩니다.

현실을 말하면 주의 재림으로써 불탈 것도 같이 말해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언행심사에 행동을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낱낱이 조사 받을 것도 같이  말해야 됩니다. 이 세상을 말하면 오는 영원한 세계도 같이 함께 말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웠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하늘과 땅은 말씀하신 대로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하고 계신다. 뭐 하려고 불사르지 그러면 오랫동안 간수하고  계시는가. 경건한 자와 경건치 않는 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간수하고 있다 이래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경건만이,  경건만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불살라지는 그 불사름에서 불사름을 받지 않게  된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를 만든 노아의 여덟 식구만 그 홍수에 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여덟 식구는 이 방주로 인해서 구원이 됐지마는 다른 사람은 멸망 받은  것처럼 경건을 마련한 사람들은 이 경건이 불심판으로 구원이 되지마는 경건이  아닌 그 모든 것은 다 이 불에 타서 소멸하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이라, 거룩한 행실에는 이리 가야 되나 이리 가야 되나 어찌  해야 되나 벌벌 떨면서 이래야 되느냐, 어쩔까, 이럴까 이렇게 구별하기는 뭐  하려고. 경건에 이르느냐 경건을 떠나느냐 이렇게 하면 경건을 찾아가는 것이냐  저렇게 하면 경건을 찾아가는 것이냐. 이렇게 하면 이것이 경건에 속한 것이냐  경건을 이루는 것이냐, 저렇게 하면 경건에 속한 것이냐 경건을 이루는 것이냐  이것을 구별하는 행동을 해라. 네 행동은 경건을 이루는 언행심사의 행동을 해라.

왜. 이것이 다 불탈 것인데 이래 둬두고 하나님이 선포해서 말씀해 놓으신 것은  경건을 하나 안 하나 보자. 경건 하는 것은 이 불심판에서 노아의 여덟 식구와  같이 다 구출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고 경건 아닌 것은 다 전멸을 당한다.

 그러면 택한 자들의 그 영은 다 중생 된 경건의 것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다  얻어 가지마는 기본구원을 얻은 그 택한 자 중생 된 자라도 그의 자체에 심신의  기능과 행위는 경건이면 불심판을 면하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로 옮겨갈 것이고  경건이 아니면 불심판에 다 불타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너는 준비할 때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해라. 너의  언행심사의 행동은 이러면 돈이 더 오겠나 저러면 돈이 더 오겠나, 이러면 내  명예가 올라가겠느냐 저러면 내 명예가 올라가겠나, 이러면 권세가 좀 더 되겠나  권세가 내려가겠나, 이러면 내 욕심 달성이 되나 안 되나, 이렇게 하면 내 가정이  더 따뜻해지나 좋아지나, 이러면 내 교회 교인이 더 모이나 덜 모이나, 이래야  교인 하나도 더 뺏들어 오나. 다 허공을 치는 것보다도 더 흉한 자멸을 자취하는  행동입니다. 심판을 마련하는 행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몸은 어떻게 움직여도 움직여야 될 살아 있는 난 데, 내 움직임은  경건을 표준으로 해서 움직이라. 경건을 표준해서 이렇게 저렇게 놓고 메고  콩팥을 가리는 것처럼 이렇게 구별한 행동을 해라. 무슨 구별. 이러면 경건을  이루는 행동이냐 경건한 행동이냐, 경건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냐. 경건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아니면 하지 마라 경건을 이루는 일이 아니면 하지 마라.

경건에 속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 마라 이것은 하면 자신도 헛되고 재료도 헛되고  노력도 헛되고 거기에 가담되고 관련된 모든 것도 다 서로 속이고 헛되고 마니  너는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멸망 받을 이 무서운 사실을 생각하면서 너는  준비하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들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 모든 것이 결정이 되어진다. 네 비밀도 그날에는 딱 결정된다.

 마치 인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데 사진기로 딱 촬영하면 움직이는  그대로 입 벌린 자는 벌린 대로 눈 감은 자는 감은 대로 팔 편 자는 편 대로 그  현실대로 딱 고정돼서 촬영돼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대로 끝을 맺어서 고정된다 다시는 변동없는 고정이 된다. 고정이 되면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심판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네가 과거사나 미래사나 현재사에 대해서  네가 소원하는 그 좋은 소원이면 그 소원대로 하지 못하면 원함이라도 된다.

후회한 것을 고칠 기회 없어 고치지 못할지라도 후회만 해도 사함을 받아서 사해  달라고 고할 것이다 영원한 수치를 지금 면제할 수 있다. 영원히 사람에게 대해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을 지금 해결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부끄러울 일을, 내가  이 일을 그분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니 주여 이 일을 용서해 주옵소서, 내가  그분에게 보고 부끄럽고 미안할 이것을 주님이 담당해 주옵소서 하면 그때 가서  보니까 고정하기 전에 벌써 이것이 삭제되어 버렸어. 제가 사모하고 원하는 귀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할 만한 기회가 없어서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내가  중심으로 이를 원합니다.

 원하는 사람으로, 원하는 마음과 원하는 생각, 원하는 말, 원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대로 고정 딱 돼 버렸으면 하지 못했을지라도 이는 무궁세계에  부끄러움은 면합니다. 의로운 일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으며 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참 세상에 권세가 좋지마는 주님 오시면 끝납니다. 청춘이 좋지마는 주님 오시면  끝납니다. 예술이나 행락이 귀하지마는 주님 오시면 끝납니다. 일생을 꿈꾸는  신랑 신부의 결혼의 첫사랑이 좋지마는 주님 오시면 그것으로 그날로 끝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좋고 나쁘고 귀하고 천하고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한, 세계의 강대국의  수뇌들이 세계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을 자기네들의 장중에 매였다고, 입술에  매였다고, 최고 수뇌에 있는 사람들의 정상회담 정상회담 하지마는 그것만 보고  크게 여기지 마라. 정상회담에 가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끝난다.

 공산주의가 와서 다 덮이면 어찌 되느냐. 그것도 오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끝난다. 공산주의 속에 첩첩이 포위돼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때에 후회 없을 것을 지금 마련해야 한다.

 "모든 것이 이렇게 고정되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뇨" 할 일이  무엇이냐. 네가 움직이는 움직임은 거룩한 움직임을 해라. 거룩한 움직임이라니.

구별해서 흠이 없는 온전한 행위를 해라. 구별해서 진리대로의 행위를 해라.

진리대로의 행위. 그 진리대로는 뭐하는 것인데 그것이 막바로 경건을 만드는  것이다. 경건을 만들다니 조물주, 구속주, 주재주, 주권주, 영원히 그분 앞에 가서  그분의 것을 가지고 그분의 혜택으로 살터인데, 그분을 위주로, 그분을 중심으로,  그분을 기쁘게, 그분을 영화롭게, 그분이 좋아하시도록 그거 해라. 이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느니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네가 마련해라.

 이것을 마련하려고 하면 너는 경건을 목표로 하고, 경건을 이루려고 벌벌 떠는  거룩한 행동을 하는 너는 그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  바라보는 것, 간절한 것, 사모하는 것.

 네 눈은 다른 데 두지 말아라. 그날에 둬라. 네 생각도 그날에 두고 마음도  그날에 두고 네 소원도 그날에 두고 네 마음을 그날에다 둬라. 네 마음을 돈에  두면 너는 망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두면 망한다. 그날에, 그날 어찌 되노.

누구하고 말할 때도 말하면서 이 말은 그날에 어찌 되느냐. 장사를 해도 오늘 이  장사하는 이것이 그날에 어찌 되느냐. 그날을, 그날에 네 마음을 두어서, 그날에  네 마음을 두어 그날을 표준해서 네가 움직이라. 네 마음은 그날에 두라. 네가  비록 살기는 여기에 살지마는 너는 그날에 가서 있으라. 그날 것을 소망해라. 그  날을 바라봐라. 그날 것을 소망하라. 그날 것을 소망하고 땅에 있는 것을 소망치  말아라. 야, 지금 세계가 영광이라고 떠드는데. 세계가 영광이라고 떠들어도 이것  소망하지 말아라. 이것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 구름 타고 오시는 그날에 있을  것인지 불탈 것인지 그것 생각해라. 그날의 것을 소망해라. 이것은 천하 사람이  다 실패하는 십자가의 죽고 망하는 것인데. 야, 모든 사람이 죽고 망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날을 바라봐라. 그날에는 어찌 되느냐. 이 십자가가  그날에는 어찌 되느냐.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이 십자가가 주님의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영광이 된다면 그날을  소망해라. 그날 것을 네가 소망하고 살아야 되지 그날 것이 아닌 불탈 것을  소망하지 말아라. 그날 것을 소망해라. 그날을 바라봐라. 그날 것을 소망해라.

너는 모든 계산이나 계획이나 소원이나 그날 것을 해라. 오늘에 네가  소원하지마는 그날에 소원될 그 소원을 오늘 갖다 해라. 내가 이것이 소원인데 이  소원이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그날에 소원될 소원인가 좀 살펴 봐라 오늘에는  이것이 소원이지마는 그날에는 이것을 아무도 소원 안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소원 가지지 말아라.

 그날에 소원될 그 소원을 네가 오늘에 해라. 그날에 후회될 그 후회를 오늘에  해라. 그날에 욕심나는 그 욕심을 오늘에 가지라. 그날의 평가를, 그날의 평가를  오늘에 평가해라. 그날의 비판을 오늘에 비판해라. 그날에서 살아라. 그날에서  살아라. 어리석은 자는 현실에서 살고, 너는 그날에서 살아라.

 그날이 뭐인데.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그날, 그날에 모든  것이 다 멸망받고 그날에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그날에 남아 있을 존귀한 것,  그날에 가치있는 것, 그날에 가치있는 것을 네가 지금 가치로 삼아라.

 모든 사람은 그날은 다 가리워져서 모르고 그날은 다 까뭉케 버리고 잊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우주는 그날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그날이  아닌 오늘의 표준으로 소망하지도 계산하지도 비판하지도 평가하지도 말아라. 왜.

이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요, 이것은 그날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그날에 불탈 것인지 그날에 존영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날에  네가 계산해라. 그날의 것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사모는 내 마음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사모는 움직임. 내 마음의 움직임은  어떻게 움직였느냐 간절히 사모하라. 간절히 사모하라 말은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내 마음 다를 말해서 간절을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해서 그날을  사모해라. 네 마음이 거기에만 있어라 그날로 믿음으로 날아가서 네 마음과  경영과 소원과 비판과 평가는 그날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 그날에 모든 비판하고  평가하고 모든 경영하고 소원하는 것을 조성은 이 현실이라는 여기에 와서 해라.

이 현실은 그날을 준비하는 현실이지 이 현실을 표준해서 우리의 생애는 다  한다면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말씀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말씀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외칠 때가 이제 왔습니다. 시급합니다. 재림을 외쳐야 합니다.

세계 교회가 재림을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그 체질이 다 근본으로 돌아가고 땅 위에  인간들의 행위가 마지막으로 결정을 짓는데, 결정을 짓는데, 고정이 되는데, 결정  짓는데, 판정이 되는데, 다시는 변동 못하는데 틀렸거든 지금 고치라. 빨리 빨리  고치라. 빨리 고치라. 후회된 것도 고치라. 수치도 고치라. 없는 욕망도 고치라.

 없는 좋은 것을 네가 소원으로라도 마련을 해라. 네가 후회될 모든 잘못된 것을  실질로 못 가지면 네가 후회로 주님에게 간구함으로라도, 사함으로라도 모든 것을  해결지워라. 주홍과 같이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나로 더불어 이 구속으로  의논하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아 네 마음은 부스러기 하나도 남김없이 간절히 그날을  사모하라. 네 마음 전부는 그날에 가서 있거라. 그날에 뭐하려고. 모든 것이  그날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다 그날의 것을 만들고 있다. 이런데 그날의 것을  모르고 지금 만들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헛일하고 있다. 그날에 가서 그날의 것을  지금 만드는 사람이 지혜 있다.

 그날의 것만을 소망해라. 그날의 것이 아닌 불탈 것들을 소망하지 말고 그날의  것들을 소망해라. 그날에는 뭐인데. 그날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가치 있는 것  이것은 경건뿐이다.

 구속하신 주님의 소원대로 한 것, 주님의 명령대로 한 것, 주님의 요구대로 한  것, 주를 위해서 한 것, 주님을 사랑함으로 한 것 그것이 경건인데,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명령을 이루며 요구의 만족을 이루어 드리며 그분이 기뻐하고  영광스러울까.

 이는 우리의 첫 열매인 예수님은 공중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아버지의 아들로 영광을 받으시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옵소서 내가 이미 영광을 받았고 또 영광을  받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으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심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주님의 소원이,  주님의 명령이, 주님의 영광이, 주를 위하는 경건이 무엇인가를 판정 났습니다.

 주께서 세상을 마치실 때에 부탁한 말씀이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나도 너희들을 세상에 보낸다" 또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나도 저희들을 세상에 보내오니 아버지여  저희들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있게 하시옵소서"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첫번 제자들을 만났을 때에 요한 복음 1장에 보면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  보내노니 너희들이 가서 누구의 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정하면 정하여  지리라"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 가지고 제자들과  마지막에 예배 드리면서 모였을 때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아버지께서 다 내게 주셨으니 너희들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나는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부활하신 후 마지막 예배  때에 말씀을 하셨고,  또 사도행전 1장 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실 그 자리에서 "너희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 말씀을 마치시고 승천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주님이 이루셨고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이룰 차례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고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 같이 우리들이  주님의 소원을 이루면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혀 주시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이 도성인신하여 사람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그때에 "지극히 높은 데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라고 하늘의  천사들의 찬송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되어 탄생하실 때.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다른 사람들의 범죄를 대신 짊어지고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나의 기뻐하는 자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공중에서 기뻐서 큰 음성이 났습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이 같이 만나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의논하시고 선포했을 때에 또 아버지가 기뻐해서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버리는 것이니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누구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그  소원을 가지시고 예수님이 땅 위에 나타나셨는데,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소원은  예수님이 모든 부요를, 영광을 다 내어놓고 창조주가 사람되어 온 이것을  아버지가 기뻐했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모든 것을 다 대속 해서  투자하신 것을 아버지가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하셨을 때에 아버지께서는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은 당신의 본성대로의 아들이라 말이요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받은 아들이라 말이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그것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경건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서  하신 것을 보아 우리는 알 수 있고,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경건은 무엇인가.

우리의 경건도 예수님의 경건과 같은 경건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 가지고도 말씀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고 또  평소에 교훈 하실 때도 이 말씀이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조금 전에도 이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내 살이요 이는 내 피요 너희들을 위해서 다 흘리고 찢는 것인데 나는 이  일을 원하고 원해서 한다 너희들도 내가 올 때까지 이를 기념하라 내가 다  바치기를 원하고 원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내가 원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  너희들도 이 제물이 되어져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했습니다.

 부활하시고 첫 주일 모였을 때에 밤 어두울 때에 문을 닫고 모인 데에 나타나셔  가지고, "안심하라 너희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고 부탁하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서 내가 감당한 것처럼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  보내노니 너희들이 죽이고 살리는 것이 너희에게 매였다 뉘 죄를 정하면  정하여질 것이고 사하면 사하여진다 인간의 영원 성사가 너희들에게 매여 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서 내가 이 일을 감당한 것처럼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  보내노니 이 일을 감당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고, 3년 4개월 동안 늘 교훈이 이 말씀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임종시에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고, 부활하셔 가지고 첫 주일  만나서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이 말씀이고,  부활하신 후 마지막 주일을 지킬 때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 다  내게 주셨으니 이 권세 가지고 나는 너희들과 끝 시간까지 같이 하겠으니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 주고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이 말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인간 구원하라. 마지막 갈릴리에 가 가지고 승천하실 그 현장에서 또  말씀하시기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 이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는 다시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리니 종은 항상 같이 앉지  않되 친구는 같이 있나니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너희들에게 다 말하겠다"  이랬습니다.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이 큰 일을 앞에 두고, 그날에는 경건이  아니면 다 불타 버리고 마는데, 경건만이 가치있는데, 경건이라니 경건은 무슨  말인가.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주로 중심으로 하는 것이 경건인데, 그분을 기쁘시게,  그분을 영화롭게, 그분을 존귀케, 그분의 소원대로 요구에 만족하게 그분과 꼭  같은 자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꼭 같은 자 되어서 그분과 행동을 같이 하여 그분은 원형이라면 그분의  모형적 인격과 그분의 소원이 원형이라면 모형적 소원과 그분의 행위가  원형이라면 모형적 행위, 그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형상인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의 형상을 덧입게 하려 함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본 자도  아버지의 본성인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아버지가 어떤 행동하시는 분인지, 아버지는  무슨 사상을 가졌으며 무슨 소원을 가졌으며 무슨 일 하시는 분이신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신 것은 아버지의 성질 그대로입니다. 아버지의 소원  그대로입니다. 아버지의 행동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 아버지를 위하는 경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경건은 곧 예수님이 하신  그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기쁨이요, 요구요, 그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그 일 하셔 가지고 만점으로 합격되어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면 아버지에 대한 경건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경건인, 주님이 요구하시는 주님에 대한 경건은 어떤 것일까.

주님이 평소에, 임종시에, 부활 첫 주일에, 부활 마지막 주일에, 승천하실 그  자리에 유언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거와 같이 너희들도 사랑하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므로 아버지의 소원인 내게 주신 자는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아버지를 사랑하므로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내게  맡기신 자를 위해서 모든 것 다 들여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다 들였고 그들의  구원에 조그마치라도 미비점이 있을까 하여 내가 나를 스스로 거룩하게 한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당신이 하신  그대로 내가 이 구원을 받아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주님같이 하는 것이,  이거 외에 경건이 없습니다. 이것만이 경건입니다.

 이러기에 주님이 가장 최종적인 때, 가장 극단적인 때 이것을 말씀하셨고 또  이렇게 할 때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가지고 내가 너와 동행해서 네 배후가  되어서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제공해 주겠다.

 그러면 형제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할 것인가. 이거 위해서는 내 목숨까지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고 만족히 여기시고 당신에게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가 핑계할 수 없이 확고히 잡았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으로, 내가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  구원에 주님이 내게 대해서 하신 것 같이 이거 위해서 다 바치는 것이 이것이  유일의 주님의 소원이요 기쁨이요 요구요 만족이요 영광이요 당신의 명령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에 어떻게 될 것을 생각하고 오늘에 살아야 되겠는데,  그날에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한 것 이거 외에는 아무 것도 가치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내가 결단코 상을 잊지  않겠다.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 목마를 때에 마실 것, 벗었을 때에 입을 것, 나그네  되었을 때에 대접한 것, 옥에 갇혔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찾아 본 것.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큰 문제를 해결 짓는 길을 우리가 다 알았습니다. 그날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날에 가치 있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주님에게 대한 경건이  무엇이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경건은 무엇인가.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기울이는 이것만이 주님이 가치로 삼으신 것을  더듬을 것 없이 우리는 환하게 알았습니다. 이거 외에 없습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언행심사의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 외에 없습니다. 사랑 외에 없습니다. 사랑만  그날에 남아 있습니다.

 그날에 남아 있을 사랑은 뭐인가. 주님이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  구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거 외에 사랑이 없습니다. 자타의 구원을 이루는  이것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외에는 가치있는 일도 없고 큰 일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없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러기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면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 주겠다" 무슨  양식입니까. 자타의 구원을 기르는, 구원이 자라갈 수 있는 구원의 양식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라 하는 이 말씀이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방편이 무엇인가.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인간을 구원한 이 사랑이 여기에  있으니 이 외에는 사랑이 없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간을 구원하는 이  외에는 사랑이 없으니, 이것만이 사랑이니 여기에 매진하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하마.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지금은 아직까지 조금 시기가 일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말해도 큰 박해가  얼마동안은 없을 것입니다마는 지금 이때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재림과 불심판을  말해야 되지 이것이 몇 달이 갈런지 몇 해가 될런지 모릅니다. 좀 있으면  예수님의 재림의 불심판을 말하면 다 그냥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악령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누구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사모하라는 이것을 우리는 경고시켜  줘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만일 목회자들이 와서 참석한다면 이 말씀을 강단에서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증거 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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