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활

 

1984. 4. 28. 토새

 

본문: 로마서 6장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 그러면, 주님의 그 죽으심으로  대속의 역사를 이루셨는데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에 관련된 일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에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에는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거기에는 손도 닿지 못하고, 다만 주님이 우리를 대속해  놓으신 그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효력 있게 입는 방편이 연합해 죽는 것입니다.

연합해 죽는 그 방편을 통해서만 주님의 대속의 그 공로를 우리가 입어서  우리에게 실상으로 효력이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성 지공법에는 주님이 다 해결을 지었지마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효력 있는 그 효과를 입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심판에 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화 구원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대속한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놓으셨지마는 우리가 연합하여  죽는 자가 되지 안하면 대속하신 그 공로를 우리가 입지 못합니다. 실상으로  입지 못한다 말입니다. 공심판적으로는 아예 입어 있고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손을 못 댑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증거하기를, 주님의 사죄. 칭의와 화친에 대해서 증거하려고  했는데 이게 좀 못 깨달을까 싶어서 한 번 더 증거합니다. 생수를 값을 내고  사라, 또 모두 횐 옷을 사라, 안약을 사라, 연단한 금을 사라 이래 하는 것이,  그것이 말하자면 자기를 다 그 댓가로 내놓으라 그말입니다. 자기를 그 댓가로  다 내놓아라. 죽음을 말하는 것은 죽음 아래는 무슨 소유도 지위도 권세도  고난도 안일도 명예도 모든 자기의 온갖 기능도 다 있겠지마는 최종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그 밑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다 총합해서  최종으로 남은 것 하나도 없이 전부 다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을 죽음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라 말씀은 네 전부를 다 이  값으로, 값은 안 되지마는 이 값으로 다 내놔야 이것이 네 것이 된다. 뭣이?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것이 된다 그저 말로만 가지고는 안 되고 그 죽음이라는  것도 생명이 마지막 죽는 그런 종말의 큰 쭉음도 있는 것이고, 자기와 조그만한  뽀스래기 죽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늙어 죽는 사람도 보면 그게 모든  세포가 차차 차차 죽어서 죽어서 죽음이 나중에 심해지면 마지막으로 생명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쨌건 죽음에 속한 그 양이 많이 연합되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효력을 제가 많이 입을 수 있고, 적게 죽으면 적게 죽을  수 있으니 다 죽으면 다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두 가지 죽으심인데, 하나는 죽이는 일을 죽기까지  하십니다. 하나는 죽이는 일을 죽기까지 하신 일이 예수님의 죽으심이요 또  하나는 살리는 일을 죽기까지 하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죽음의 일을  죽기까지 하시다니? 그것은 그죄, 예수님이 대형으로서 이 죄를 다 도말했고, 이  죄를 권세를 삼아 가지고서 날뛰는 사망도 도말했고, 이 죄를 자기의 소유로  가지고 권리를 부리던 악령의 역사도 다 멸해졌습니다. 죄와 사망과 악령의  역사를 다 멸한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우리 자신에게서 멸하기 위해서, 마귀는 죽여서  없애는 일은 없지마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면 마귀는 다 도망쳐 버리고 용납을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심판적으로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가 절단났고, 우리는  이 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자주장으로 악자기중심 위주로 사는 것,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 가지 죄인데 이 세 가지 죄를 내게서 멸하기 위해서  죽는 죽음이 주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입니다.

 내게 뿐 아니라 손이 닿는 대로 모든 형제에게 성경이 가르친 대로 방편 말씀을  전함으로서의 방편도 되고, 내가 또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심방하고 전도하고,  또 타이르고 죽이는 일을 본을 보이고, 주님이 내 본 된 것처럼 나는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고 이런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내게 있는 이 세 가지를 죽이는  일과 내 몸 밖에 이웃에게 있는 이 세 가지를 죽이는 일을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입니다.

 그러면 희생되다가 어데까지 희생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있는 전부를 다  버리지 안하면 그 말은 주님이 다 희생하는 기회를 주셔서 주시면 희생이 되는데  희생 기회를 주시지 안하시니까, 나는 내어놓았는데 또 하나님이 거두지  안하시니까 생명이 남아 있고, 나는 내놨는데 생명이 남아 있고. 그러기 때문에,  죽는 일이 우리의 세상살이입니다.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나는 죽었으나 당신이  끝나지 안하게 하시니까 또 남아서 또 계속 죽어야 할 일이 있는 것이 우리의  하나 죽음이요,  또 하나의 죽음은 살리기 위해서 죄를 범하지 안하고 사죄를 입은 자로 죄 없는  자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자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로 이 사람으로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것 다 내놓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으로 살리기  위해서 이 세 가지로 살리기 위해서 이 세 가지 사람으로 살리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자기가 가지고 사는 사람, 자기 몸에서 이 세 가지를 살리는 이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는 것인데, 세 가지를 살 리는 이 일을 위해서 자기는 있는 것 다  기울여서 끝마겼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것은 이 두 가지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이 두 가지로 연합돼야 되지 연합이 안 되면 안 됩니다. 두 가지로  연합해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은 어떤 일이라도 이 세 가지를 멸하는 일,  이 세 가지를 멸하는 일, 이 세 가지를 대속하신 주님의 대속을 보존하는 일  보존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이세 가지 범하는 자를 죽기  위해서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죽으심에 본받아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다고 해서 우리가 새사람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어데까지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관련된 생활이요 관련된 행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죽는 행위요 사는 행위는 아닙니다. 우리가 요것을 경계를 못 잡고  혼돈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생명까지 아끼지 안하고  화친된 자로 산다 할지라도 죽을 자는 죽습니다. 그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죽은 자, 벗고 죽은 자.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계대해서 예수님이 멸하기 위해서 그 죽으신 그 죽음에 연합하고  또 살기 위해서 죽으신 죽기까지 순종한, 살기 위해서 죽으신 그 죽음에  연합했으면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한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자로 죽은 자이지,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서 죽습니다.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서 죽으면 이 죽음 속에 이 두 가지 죽음 속에 거기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은 그 안에 자리 잡고 이 첫째 죽이는 일 위해서  죽는 이 꺼풀 순서, 또 살고 살리는 일을 위해서 죽은 이 속 꺼풀 둘째 순서 이  둘째 순서가 끝난 후에 그 뒤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은 그 너머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완료되고 일차가 완료되고 그 다음에 이차가  완료되고, 이차가 완료되고 난 다음에 삼차가 완료 되고 하는 것은 아니로되  일차가 이루어지는 고만침 고 순서 후라야 이차 죽음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이차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만치 삼차적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은 자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할 수 있습니다. 중생도 그 순서로  중생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자는 다시 자기의 육체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왜? 책임을 안 지느냐? 중생되기 전에 다 책임겼기 때문에 한 번  책임지는 것이지 푸 번 책임지는 그런 법이 없다. 이러지 때문에. 한 번  책임졌기 때문에 중생 후에는 네 몸이 범죄한 것을 책임져야 되지 않느냐? 아,  나는 질 것 없다. 네가 주격인데 왜 안 지느냐? 나는 중생하기 전에 다 내가 그  정죄 받아 가지고서 다 사죄 받고 난 다음에 이 두 가지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 결합 되는 이 새생명을 받았다. 그 두 가지  순서가 되기 전에는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똑똑히 듣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자꾸 오해를 하고서 그렇게 말을합니다. 중생된 사람인지 영인지  영혼인지, 영혼도 죽을 수 있고 영혼도 범죄할 수 있고 사람도 범죄할 수 있고  하지마는 중생된 영만은 범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두 가지 순서에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그 너머에 새 생명으로 난  자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통과되지 안하면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그것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는 것입니다.

실상으로 입는 것. 실상으로 입을 때에 그때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은  그것을 양식 삼아 가지고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의 이  대속에 두 가지 죽음의 순서 이 순서를 먹고야 새사람이 자라고 새사람이 힘이  있고 새사람이 힘도 있고 자라는 것이지 이 두 가지 죽음을 먹지 안하면  새사람은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힙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죽음을 말해서 예수님의 피와 살. 피와 살은 예수님의 피와 살은 뭘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이 두 가지 죽으심을 가리켜서 피와 살을  그렇게 하나 상징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예수님의 피를 우리가 먹는 것  아니고 살을 먹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은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한  피로서 다 바쳐진 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말은 이 두 가지를 이루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믿음으로 자기에게 있는 피와 도 이 두 가지를 멸하기  위해서 건설하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죽고 죽이기 위해서 죽는, 죽이는 데에  다 바쳤고 살리는 데에 다 바치는 요 순서 요 요소 죽이는데 바치고 살리기  위해서 바친 요 요소 요것을 양식 삼아서 중생된 사람은 자랍니다. 이게 없으면  중생된 그대로 있지 털끝 만치도 자라지 않습니다. 요걸 먹는 것 만침 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된 양식이라 말은 중생된 사람이 요것 먹고 자라다 그  말입니다. 주님이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새사람은 요 두 가지  죽음이라는 요 죽음 고것을 먹고 삽니다. 두 가지 죽음 고것을 먹고 중생 된  새사람이 자랍니다. 중생된 새사람은 하나님의 신격을 모형한 참된 인격이요,  하나님의 그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영체는 있지마는 그 영은 물체는 없습니다. 물체는  있을 수가 없는 그 물체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체도 영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물질을 초월한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런 형체를 가잘  수가 없는 거와같이 영은 영체만 가지고 있지 물체를 가지지 못합니다. 물체를  그런 것을 가진 거기에 물체 속에 제한 받을 존재들이 아닙니다. 이래서 두 가지  죽음이 그것이 중생된 새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힘을 얻는다, 그것으로 인해서  힘을 얻는다, 그젓으로 인하여 자라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죽음을 완성한 이 세 가지를 완전히 죽인 그 심신 이  세 가지를 완전히 살린 그 심신 그 심신이 중생된 영의 힘이 되고 중생된 힘의  장성이 된다. 장성이 된다는 말은 중생된 영은 뭘로 자라느냐?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는 실력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심신을 지배시키는 그 힘으로  자랍니다. 중생된 영은 꼭 같지마는 그의 심신을 통치하고 심신을 지배하고  심신을 이용하고 심신을 복종케 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중생된 영은  발가벗어서 아무 기능이 없습니다. 영계도 가 가지고 저는 가만히 꾸물거리고만  있지 날아다니지도 못하고 우주에도 저는 돌아다니치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양식이라 이렇게 말씀했고, 또 그거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순 말씀인고 하니, 구속받은 자들이 구속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구속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구속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요구하고 하는 구속받은 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 죽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구속 받은  자들에게 맡기신 일은 뭐이냐?할 일은 뭐이냐? 할일은 두 가지 죽음이 할 일인  것입니다.

 이래서, 곧 내 피와 살을 먹는 것, 내 피와 살을 먹는다 말은내 피와 살을  인하여서 너희들이 피와 살을 다 기울여서 두가지 죽는 죽음 이것은 너거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 양식이요 세상이 알저 못하는 참된 양식이다. 이  양식을 먹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이 죽음, 세 가지를 죽이는 이 일이 우리 할  일이요, 세 가지를 죽이는 이 일. 세 가지로 사는 이 일 이둘 외에는 땅 위에서  이 육체는 할 일 없습니다. 이 외에는 육체는 할 일이 없숩니다. 이 육체는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이 두 가지 하는 그 두 가지 하는 그 속에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영은  자랍니다. 영은 자랍니다. 영이 자라다니? 영이 뭐 자라느냐? 이 두 가지 먹고  자랍니다. 중생된 영이 두 가지 먹고 자랍니다. 두 가지 먹고 자라다니? 이 두  가지를 죽는 이 두 가지가 영에게 복종하는 것이기때문에 영이 이 심신을  점령하는 것이요, 통치하는 것이요, 지배하는 것이요. 그의 소유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로 말미암아 커집니다.

 그 사람이 아주 보잘 것 없었는데 차차 커진다 하면 그 고기덩어리가 나이가  많아지니까, 한 스무남은 살 클 대로 다 크는 그걸 말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고, 육체를 말하는 거고. 아, 그 사람이 참 아주  위대해지더라'하는 것은 그 사람의 권위가 커지는 것, 소유가 커지는 것, 지위가  커지는 것. 자기의 모든 이력이 커지는 것 그런 걸 가리켜서 그 사람이 커진다  그래 말하는 것처럼 영 자체는 커지는 것 아닙니다.

 영 자체는 커지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 영의 소유가 권위가 커서 어느 정도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심신을 어느 정도 통치 하셨느냐?  통치하신 젓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그 우주적인 고난을 당하셨지마는. 그  세포 하나도 거역하는 세포는 없었습니다. 세포 하나 까지도 주님에게는 주님의  영에게는 복종했습니다. 영에게 복종했고 영육으로 된 인성은 신성에게 절대  복종했습니다. 복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잘못하면 그 영이 그  심신을 하나도 통치하지 못하고 심신 저것끼리 단합해 가지고서 영을 파묻어  버리고 마음 하고 싶은 대로 몸 하고 싶은 대로 저거 둘이 단합해 하기 때문에,  그 자를 가리켜서 육체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이 곧 내 먹을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 하는  것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구속받은 너희들 이 땅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명령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 두 가지 죽는 죽음이 너희들의 할 일이라. 두 가지 죽는 죽음을  죽으면 살아 있는 자는 그것 먹고 삽니다. 그것은 심신이 아니라 심신의  주격이기 때문에 우리가 듣고 말하고 하는 것은 심신이 말하는 것이지 영이  말하는 것 아닙니다. 영이 심신을 통해서 말하고 영은 마음의 주인이요, 몸의  주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짜든지 값을 내야 되지 값 안 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피공로를 자기를 위해서  이용하고. 목사 자격이 된 것을 자기 위해서 이용하고! 목회를 자기 위해서  이용하고! 저주와 사망을 얼마나 받을 것입니까? 얼마나 멸망을 받을 것입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격노케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많던 거 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진노도 많았습니다. 주님의 피운동을 구속 운동을 방해하는 아말렉 족속을  어떻게 복수 한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피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요. 두 가지 죽는 죽음, 두  가지를 위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죽이는 것인데 잘못하며 옛사람  그놈은 죽여야 될 놈인데 그 놈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 이름을 빙자하고 복음을  빙자하고 설교를 빙자하고 목사를 빙자하고 이 목회의 그 지위를 빙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이의 가련하고 불쌍한 것이 얼마나 큽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모질박게 멸망받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괘씸하다, 분하다, 그참 못 쓸 사람이라 할게 아니라 저 죽을 줄도  모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불쌍히 여길 것뿐이고,  어짜든지 길이 참아서 그를 구출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지 거기에서 우리가 잘못하면 심판적인 입장에 서면은 주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나쁜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의 나쁜 것을 그것을 그 부모가 마음이 아파서  견디지 못해서 이렇게 할 때에 그 아들이 그아버지에게 좀 참아주십시오 하고  어짜든지 달래든지 나무라든지 타이르든지 해서 그것을 고칠라고 애를 쓸 때에  아버지는 만족할 것이오. 그럴 때에 그렇지 안하고 정반대로서 그놈 못 쓸  자식이다 이랄 때에는, 아버지에게는 근심거리가 되고서 오히려 노가 되어지지  좋을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을 연구하면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을 연구하면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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