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활

 

1984. 4. 26. 목새

 

본문 : 로마서 6장 5절∼7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막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 말은 아무나 다 죽으면  죄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아니고,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세상을 떠나면 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악령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와 악령과는 상관이 없지마는 그 사람에게 죄를 이길 만한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악령을 이길 만한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사망을 이길 만한 실력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는 죄와 악령과 사망을 만나지도  못하고. 또 그런 것들이 없는 나라로 옮겨 갑니다. 옮겨 가지마는 하늘나라의  실력은 죄를 멸하는 실력과 마귀를 멸하는 실력과 사망을 멸하는 실력 이것이  하늘나라의 소극적 실력입니다.

 요한복음 4 장 32절에 요한복음 4 장 32절에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며 주님의 일을 온전히,  주님의 뜻을 행하며 주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 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 55절바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 말씀들을 서로 연결해서 보면 그 뜻이  무엇인가를 알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이 양식이라. 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 또 우리가 주님에게 연합하는 것은 죽음에  연합해야 되고 부활에 연합해야 된다. 죽음에 연합해야 되고 부활에 연합해야  된다. 그러면 죽음에 연합하면은 예수님의 죽음이 몇 가지인가? 예수님의 죽음이  두 가지인데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야 되고, 또 한 가지 부활에 연합해야 된다.

이런 말씀들을 한테 종합해서 연구하면 그참된 뜻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각자의 그 지식 정도와 형편에  따라서 어짜든지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각도로 말씀하시고 저런 각도로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여러 각도로  말씀하신 것은 어쨌건 하나님의 생명의 도를 받아서 생명을 얻어 살게 하려는  그것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제가 듣고 행하지 안하는 사람은 제 두뇌가  아무리 명철 타 할지라도 전지자의 두뇌를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듣기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런 각도 저런 각도로 가르치시는 그  말씀을 제가 듣는 것이요 그걸 가지고 깨달을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식은 무한한 지식이니까 제 유한한 지식을 다해도 모릅니다.

 그러나 듣고 실행을 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가르치는 증거하는 표시하는 그  증거의 표시에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표시에 껍데기, 말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니까, 말에서는 절대 모르는 그 사실을 뚫고 들어가는 어느 면으로  뚫고 들어갔든지 어느 모퉁이를 뚫고 들어갔든지 뚫고 들어가면 그 말씀이라는  거죽속에 알맹이가 있는 것을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자는 그  지식을 참 자기가 알지는 못하고 자기를 교만케 해서 멸망시키고,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 또 멸망시키고, 다른 사람 정죄하는 것도자기 멸망이요. 또 자기가  교만해지는 것도 자기 멸망이요 되지 못하고 된 줄 아는 것도 자기 멸망이요, 못  쓸 짓이 쓸 것인 줄로 아는 것도 자기 멸망이라. 그것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렇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새 늘 말하는 대로 우리는 성경에 모든 것을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 그 말은  아무나따나 버리는게 아니고 아무나따나 버리는 거는 다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요거는 가져야 되지 요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못  이루어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지 못 해도 하나님을 배반해도 내가 요것  하나만큼은 놓지 못한다 하는 고게 하나 있으면 마귀란 놈이 거기에다가 낚시를  딱, 낚시 압니까? 고기 거는 것, 조그만한 것 요것 바늘을 조그만하게 까꾸래이  해 가지고서 그만 딱 걸어 놓으면 갈치 같은 것도 보면 다 입에 낚시가 물려  가지고 있고, 또 가물치, 대개는 그물로 잡는 것도 있지마는 가물치 같은 것 다  낚시로 잡기 때문에 그 모두 다 물려 가지고 있습니다. 큰 고기라도 낚시에 딱  걸리면 고만 저는 죽는 거라.

 그와 마찬가지로 무엇이든지 네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천국도 좋고  이렇지마는 요것만큼은 놓을 수 없다 하는 것이 자기의 생명이든지 자기의  사랑하는 독자라든지 자기의 남편이라든지 자기의 아내라든지 자기의 전공하는  그 전공이라든지 돈이라든지 권세라든지 무엇이든지 요것만큼은 놓을 수 없다  하는 고걸 잡는 사람은 고것으로 인해서 붙들리게 된다 해서 말씀하기를  '사로잡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사로잡힐 것이요' 무엇이라도 하나 거머쥐고  갈려 하는 사람은 거머쥐고 갈려 하는 거기에 붙들리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피와 살을 말하는 것은 주님의 피는 무슨 피요 무슨 살인고  하니,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데에 또 보내신 이의 일을 이루는 데에 전부 다  마지막으로 다 기울인 주님의 피와 살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다 찢은 살이며 쏟은 피인가, 다 끝난 생명인가? 그 생명이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 의를 이루는 그것을 이루는데 다 바쳤다  그말이오. 그것을 이루는데 다 바쳤기 때문에 완전 승리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죽으심에 연합한다 그 말은 두 가지 죽으심, 한 가지는 그것을  멸하기 위해서 바친 죽음, 세 가지를 멸하기 위해서, 세 가지 뭣? 죄. 마귀  사망을 멸하기 위해서 다 드리는 그 죽음, 또 하나는 세 가지를 완전히 살리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의로운 자로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가진 자로  계속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빼앗기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건설하고 이 세  가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 생애를 살리기 위해서 이 세 가지 생애를  살리기 위해서, 또 고 앞에는 세 가지 생애를 죽이기 위해서 흘리신 피요 죽으신  주님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주님의 죽으심을 채받아, 주님의 죽으심을 표본으로  삼아 가지고 우리도 연합한 자가 되면 그 말은 이 세 가지 죽이는 그 일에  주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죽이는 일에 연합해서 지금 죽이는 그 일을 착수해  가지고 계속하면, 또 살리는 그 일에 또 소유와 모든 생명을 바쳐서 계속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사람들이 목숨이 있을 때에는 이게 귀하다 저게 귀하다  그래 쌓지마는 최귀의 것은 자기의 생명입니다. 자기의 생명이요. 그러기에  생명을 바친다 그 말은 모든 걸그 밑에는 소유나 명예나 지위나 다 바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세 가지를 멸하는 데에 생명을 바치야 된다, 죽음에 연합해야  된다 그 말은 생명을 와 자꾸 말하는고? 생명 이 최종의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말하는 것이지 생명은 바쳐도 무슨 다른 거는 바치지 안해도 되는가? 이 세  가지를 멸하는 데는 무엇이 걸려 들어올는지 모릅니다. 세 가지를 멸하려고 하면  돈이 걸려 들어올는지 명예가 걸려 들어올는지 지위가 걸려 들어올는지 자기의  무슨 가정이 걸려 들어올는지 애정이 걸려 들어올는지 자기의 몸이 걸려  들어올는지 신체가 걸려 들어올는지 생명이 걸려 들어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뭐이  걸려 들어올는지, 뭣이 걸려 들어오든지 내가 요 세 가지는 멸한다, 모든게 다  없어도 요 세 가지는 멸한다 하는 그것이 죽음이라 그말이오.

 또, 세 가지 살리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살리기 위해서 사죄를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사죄의 공로를 내게서 살리기 위해서 칭의의, 공로를 살리기 위해서,  화친의 공로를 내게서 살리기 위해서 세 가지를 살리기 위해서 또 생명을  바칩니다. 그라면, 옥토가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사죄를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고 하니 사망에 속한 사망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사망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 다음에 의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에 그 뒤에 생명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생된 것은 죄의 문제의 해결을 받고. 또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어지고 고라고 난 다음에 중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그것은 중생입니다. 죄를 두고는 하나님과 화친하지 못하고 또 의를 갖추지  못하고는 하나님과 화친하지 못합니다. 의를 갖추었다고 하나님과 화친되는 것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하나님과 화친된 것 아닙니다. 죄의 문제 해결한 그 위에  의의 문제가 해결 돼서 의가 건설되고, 의가 건설된 그 위에 새생명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된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않는다, 다시는  범죄도 아니하고 죽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그 말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시비가 있었고, 세계적으로  신학자들로 더불어 시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잘못 알고 말하는 것도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이 범죄하지  않는다 전달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교만해서. '그러니까. 그렇게 하니까  뭐인고 가서 좀 들어 보자' 와서 들어 보면 알 수 있을 건데, 들어 보지  안하니까 그 반 거짓말쟁들의 정확지 못한 전달을 들으니까, 전달에 '아 중생한  사람은 범죄하지 않는다더라' '그 그럴 수가 있는가? 그거 틀렸다.' 똑똑히  듣지도 못하고 그래 가지고 아주 속단적으로 그거 틀렸다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틀렸다. 그게 사람을 정죄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정죄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내가 가서 똑똑히 알아보고' 이래야 되지 사람 말  듣고 틀렸다 그렇게 말하는게 틀렸다 그거요.

 중생된 사람은 범죄합니다. 또 중생된 영혼은 범죄합니까 안합니까? 또  범죄합니다. 중생된 영만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되는 이것이 생명인데. 중생이라 말은 하나님과 결합했다 그말이오.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다 그말은 진리로 하나님과 결합을 했고 영감으로 결합 했고,  진리로 결합했고 영감으로 결합했으니까 더 결합 할게 없어. 완전 결합이라.

이러니까, 하나님과 결합할 때에는 죄를 두고 결합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사죄가 돼야 주님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죄가 되면 주님과 결합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사죄가 되고 난 다음에 의롭게 돼야, 의가 돼야 그 다음에  하나님과 결합합니다. 무죄, 그 다음에 의 둘을 갖추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결합한 새생명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다 해결 짓고  새생명 받은 것이기 때문에 죄라는 것을 범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영이라 하는 것은 육의 주격인데 영이라는 것은 육의  주인인데, 중생된 사람이 육으로 범죄를 자꾸하니까 범죄하니 육이 범죄 한 죄를  육의 주격이 되는 그 영이 책임져야 되지 않는가? 녜, 책임져야 되지요.

책임져야 되면 중생된 사람의 심신이 범죄하는 일을 영이 책임진다고 하면 그  사람이 중생되고 난 다음에도 심신이 범죄를 하니 그 죄의 책임을 영이 져야 될  것 아닌가?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는 논리가 바르지 않는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어찌 됩니까? 중생된 후에 심신이 범죄하는 그것을 영이 책임져야  되는데, 녜.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을 안 질래야 안 질 수 없습니다.

처음에도 영이 선악과 먹어서 죽은 것 아니요. 요 못된 고기덩어리 요놈이 가서  손으로 거머쥐고 딱 따 가지고서 먹었습니다. 고기 덩어리 요게 지금 제일 재를  많이 저지르고, 또 그 안에는 뭐이 재를 저질렀습니까? 마음 고놈이 재를  저질렀습니다. 마음 고놈하고 몸하고 두 놈이 합해 가지고서 선악과 먹어  가지고서 그 주격인 영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한 영은 죽는다고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범죄한 영은 죽습니다.

중생된 영은 그자기의 심신의 범죄를 책임을 집니까? 안집니까? 자, 안 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녜, 집니다. 책임을 집니다. 책임을 지면 중생 후에 자기 심신이  범죄했으니까, 그중생된 영이 그 쟉를 책임지면은 중생된 영에게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저리는 아직 삥삥하이 모르는구먼.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한 번 손들어 봐요? 다 들어, 다 들어, 뭐 이제까지 배워 뭐 배웠어?  책임이 없습니다. 왜 없는가? 그러면 책임을 안 졌는가? 책임을 졌습니다.

책임을 졌는데 왜? 죄가 없는가? 책임은 한 범죄에 한 번 책임져서 죽으면 되는  것이지 두 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한 번 졌으면 지고 죽었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이 자기의 심신이 앞으로 영원토록 예를 들면은 범죄 할 그  범죄를 중생된 영이 언제 책임을 졌는가? 언제 책임을 졌습니까? 중생 후에  책임을 져야 합니까? 중생되기 전에 그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사죄를  받았습니다. 책임을 지고 사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자이기 때문에 죄도  짓기 전에 무슨 정죄를 받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우리가 나기도 전에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정죄시켜서 예수님이 대속하셨는데 하나님은 전지한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억천만 년 후 것이라도  오늘 이 시간에 현재의 일로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되기 전에 자기의 심신이 이 중생을 시킬라 하니까 죄 있는  영을 어떻게 중생을 시킬 수가 있느냐?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이 허락지  얻습니다. '이 사람은 죄가 있는데, 어떻게 그 죄 문제를 해결 안 짓고 할 수  있느냐?' '무슨 죄가 있습니까?' '네가 오늘까지 이런 이런 죄를 범하지  안했느냐? 원죄가 있고 본죄가 있지 않느냐?' '녜, 그 죄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책임지고 주님의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로 주님이 대형함으로서  그 대형하는 공로를 힘입어서 그 죄의 책임을 지고 사죄를 받았습니다.

 '이러면 날 중생시켜 주옵소서.' '네가 인제 앞으로 이런 이런 죄를 범할  터인데 그 죄를 두고서 너에게 생명을 줄 수가 있느냐?' 그 죄를. '그러면 어떤  죄가 있습니까?'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네 심신이 이런 죄를 범할 죄가 이것이  이런 죄를 범할 것이다.' 그러면 그 범죄를 미당겨서 미당겨서 주격된 영이 다  짊어지겠습니다. 미 당겨서 영이다 책임졌습니다. 미 당겨서 영이 미리 당겨서  그 책임을 짊어지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대형의 공로를 힘입어서 사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으로 말하면 이제 자기의 심신이 범할 영원히 범한 과거 범죄.

현재 범죄, 미래 범죄 모든 범죄를 그 영이 책임을 졌습니까? 안졌습니까?  책임을 겼습니다. 책임진 그 죄를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대행하신 그  공로를 예수님에게 맡겨서 예수님이 그 죄를 책임지시고 대신 형벌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받지 안했지만 살아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러니까,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을 했습니다.

 그래도 새생명은 못 받습니다. 새생명은 '인제 새생명을 주십시오. 이 영을  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이 간구할 때에 '못 살려 준다. 죄는 없지마는 의가 없는  자를 어떻게 살릴 수가 있느냐?' 할 때에 '그가 의가 없지 않느냐?' 이제까지에  그 사람이 행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행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앞으로 그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못할 것들이 이런 것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살릴 수 있느냐?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그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해야 될 그 복종을 내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주님이 대신  책임지시고 복종을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것 또 공로 없는 순 죄 뭉텅이가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예수님의 대속을 인해서 죄 없는 의로운 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죄는 미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끌어 당겨 가지고서 영에게  정죄하고, 영에게 정치한 그 죄를 주님이 대형으로 담당하시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복종할 의무와 책임을 예수님이 다 그 영에게 다 부담을 시키고,  부담시킨 걸 예수님이 대신 행해서 다 해결을 지웠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의  대형과 대행으로서 미래의 과거 현재의 것을 당겨서 다 이 두 가지 해결을 짓고,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죄 없는 자가 되었고 의로운 자가 됐습니다. 이제는  이 영을 살릴 수 있습니까? 이제는 살 릴 수 있다. 그 후에 영을 살린 것이  중생입니다.

 이런데, 이 중생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를 연구하고 생각해서 깨달을라고 하지  안하고 그저 선조들이 믿는 그대로 그대로 따라서 유전 신앙만 자꾸 가지고 이래  나가기 때문에, 옛날 이스라엘이 예수님 초림하실,때에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장로와 유력한 사람들의 유전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은 저버렸다. 너희들이  사람의 말을 도를 삼아서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은 저 버렸다 이랬습니다. 그때와  지금도 꼭 같소.

 이러니까. 세계의 신학자들이 통계 맞칙 가지고 이러한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생명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만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하다고  생각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성경은 아무리 잘 안다 해도 그 까짓 거야 소용없어.

세계에 이런 학자가 이 말 했다 저런 학자가 저 말 했다 이거 많이 알면은  유명하고서 그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고 그거는 배울 것이 있다고합니다.

전부이 죽음만 배우고 있어. 전부이 죽음만 배우고 있어. 기가 차는 일이라.

죽음만 배우고 있어.

 신학자 쳐 놓고 신학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하는 그것이 모든 학자들의 신론. 모든 학자들이, 성경은 뭐이냐? 모든 학자들의  제시론. 모든 학자들의 신론. 하나님이 뭐라 하느냐? 신론, 그 다음에 모든  학자들이 말하는 인론, 모든 학자들이 말하는 죄론, 모든 학자들이 말하는  타락론, 모든 학자들이 말하는 칭의론, 모든 학자들이 말 하는 중생론 모든  학자들이 말하는 영생론, 천국론, 말세론, 구속론 이 모든 사람들이 보고서  이렇게 말하는 그것만 위주로 하지 성경을 위주로 하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제가 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 참 바로 연구하든지  삐뚤어지게 연구하든지 그 사람이 하나 연구해 가지고 뭘 말해 놓으면 자꾸 책만  읽어. 그 사람이 연구를 뭐라고 했노? 그 사람 연구한 것만 자꾸 받아들이니까  책만 받아들이니까 아무나따나 글 많이 쓴 사람의 것만 받아 들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뭐 조직 신학도 수없이 많습니다. 봐야 속에 생명이 없다 말이오.

전부 삐뚤어졌어. 봐야 속에 생명이 없다 말이오. 전부 삐뚤어졌어. 전부 이  삐뚤어진 거라. 이제까지 유명한 세계의 유명한 조직 신학 중에는 뻘 코프 그  조직 신학이, 어드만 조직 신학이나 하는 그런 거는 근방에 가다가 말았고  썰코프 조직 신학이 조금 나도 다 보지 안하고 조금 봤어요. 보니까 그건 좀  깨달았어. 조그만 보면 다 아니까. 깨달은 사람이라.

 그라고 난 다음에 칼빈 조직 신학입니다. 칼빈 조직 신학은 그것은 지금  메이천박사가 조직 신학을 해 놓은 것, 웨스트 민스트 신학교의 조직 신학은  메이천박사가 나열한 것인데 그래서 웨스트 민스트 뭐 신도 개요서니 뭐 소요리  문답이니 이랬는데 나는 웨스트 민스트 신학교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그  신학교는 메이천박사가 그건 창설을 했기 때문데. 그분의 것인 줄 알았디마는  내나 영국에 영국에 웨스트 민스트라 하는 그런 조그만한 교회가 있답니다.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의 교역자가 말해 놓은 교리와 신조라. 그 교회 목사가  교리와 신조를 말해 놓은 그것을 미국에 웨스트 민스트 신학교에서 갖다가  그렇게 해서 그 신학교 이름을 그 이름을 영국의 그 이름 따다가 그래  웨스트민스트 신학교라 그렇게 했다고,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는게  아니라 유명치 못한 그런 사람들, 다른 사람 이 안 알아주는 안 알아주는 거는  이 간판주의로 나가야 사람들이 알지 간판주의로 나가지 안하면 사람들이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 말을 한창 떠들어 가지고서 뭐  전국적으로 정죄를 했고, 모든 박사들이 달라들어 가지고 정죄를 하고 이리  쌓더니마는, 정죄를 하거든 논문을 내라 했더니만 논문은 내지 않습니다. 이  철때기 없는 것 같으면 벌써 논문을 냈을 거라. 논문을 내놓으면 그 글을 써  놓으면 뒤에 자기가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되니까  말로 한 젓은 없이지지마는 글로 해놓은 거는 한 번 딱 박혀 놓으니까 그 책임이  있느니까 논문 안 한다 그말이오. 말로 한 것이나 글로 쓴 것이나 하나님 앞에는  꼭 같습니다. 말로 했으면 처소를 해야지 잘못 되면 취소를 해야 되지 취소  안하고 말하고 말한 것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줄 압니까?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새는 녹음을 하니까 말한게 없어지지 안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거요.

 이래서, 한국에는 참 유력한 신학자가 한 분 있는데 그 분이 ○○○박사라는  그분인데 그 분이 뭬스트 민스트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와서 조직 신학을 그 분이  다시 자기가 다시 재나열을 했는데 내가 약간 좀 서두를 봤습니다. 그분은 많은  독서를 한 사람이오. 많은 독서를 했는데 그 서적은 보면 많은 사람들의 많은  신학자들의 그 신학 서적을 보는 거와 같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말한 그걸  자꾸 말을 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재료를 말했는데 그러나 이렇게 이렇게 말하는데 다 틀렸고  나는 요렇게 안다 하는 고게 없다 그말이오. 고게 없어. 그래서 고  ○○○목사님이 말을 하기를 이 글들은 다 이거는 모두 다 생명이 없는  글들이다. 학자들의 글들이 다 생명이 없다. 와 생명이 없느냐? 생명이 없는  것은 이 사람은 이란다 저 사람은 저란다 모든 사람이 말했기 때문에 그거는 책  보따리지, 책이지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하는 그게 없기 때문에 그게 생명이 없는  거 아니냐? 옳은 말입니다. 아주 깊은 깨달음을 말하는 말입니다.

 이것도 눈에는 말하고 나니까 없어지고. 안 보이지 않는 이게 지금 목회  설교록에 기록이 돼 가지고서 다 나갈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 신학자들을  허는 말같이 되니까. 그 분들이 책을 보면 대단히 싫어할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새 신학이 백 명 신학자가 말한 그 사람의 견해를 아는 것과 이백 명 신학자의  견해를 아는 것과 비교하면은 이백 명 신학자가 말한 것을 발표한 것을 아는 이  권위가 더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람이 저술한 그것을 보고  따라가고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 목사님이 미국에 가 가지고서 '아, 신학교에서 성경은 배우지도 안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잘못 됐다' 하니까 '허허 참 무식해 그렇다고서,  신학은 학이 아니냐? 학이 아니냐? 이 사람의 학 저 사람의 학 그 모든 학을  연구하는 거지 성경 연구하는게 신학이 아니라' 하더래요. 성경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 아니라 하더라고 그 편지를, 가 가지고 이렇게 억척이 나는 소리를 내가  들었습니다. 이 신학교 학생들에게 말하니까 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내  한테 편지가 왔어, 처음에 미국가 가지고서.

 그것은 그 사람들이 처음에 깨달은 사람들은 그 시대에다, 성령의 충만 한  사람들이지마는 시대가 다릅니다. 그 시대는 그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시대가 자꾸 발전되고 변천되니까 그 다음에  발전되고 변천된 때에는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깨달음 주신 다 그거요.

그러기에, 깨달음이 달라. 아, 그런데 칼빈으로 말하면 벌써 사백여 년 전에  있는 사람인뎨 그 시대는 원자니 전자니 이런 것이 말이나 있었습니까? 이런  것이 말이 없었어. 아마 전화도 없었어. 이랬는데 지금은 뭐 전화니 무선이니  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원자니 수소니 하는 이런 걸  다 말하는 시대요 굉장한 시대라 그거요. 그 전에는 소돔 고모라 성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전 세계가 소돔 고모라 성이 되어 있는 시대이니까, 그전과  상상도 못할 시대가 됐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 시대에 사람들이 그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은혜 주신  칼빈의 깨달음 그것으로 전부를 삼고 그 외에는 깨달으면 안 된다. 요게 국한을  시켜야 된다 하는 그것은 칼빈주의지마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칼빈주의를 망치는  사상이라 그말이오. 왜 망치는 사상이라? 칼빈이 깨달은 그 삼사백 년 사백여 년  전에 깨달은 그 깨달음 가지고서 지금 원자탄이 나오고 원자가 나오는 이 시대도  이렇게 세상은 죄악으로 발달되고 인간의 지식이 발달되어 가는데 그때 지식에서  더 첨부를 못 한다, 더 발전하면 안 된다 더 깨달아지면 안 된다, 더 연구하면  안 된다 이라니까 칼빈주의를 죽이는 사상이라.

 칼빈주의는 어떤게 칼빈주의냐? 칼빈은 언제든지 성경이 가라 하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머물라 하는데 머물러라. 성경을 성경 그대로의 사람, 그 대로의 행위,  그대로의 일, 성경대로 하라 하는 것이 자기가 다 연구하지 못해도 고것을  말했습니다. 또 하나 더 말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했습니다. 그 시대로서는  그만하면 다 감당 할 수 있어. 오늘에는 그것 가지고 어림도 없어. 안돼.

 이러니까, 제가 지금 한 삼십 년 전인데 그 ○○○ 교회가 아니고 청도 무슨  교회더라? 청도 사람 여기 없나? 어? ○○ 교회인가? 그 무슨 무슨 목사님? ○  목사님이라 하는데 ○○ 교회인가? 큰 교회지? ○ 양 거기에서 나오지 안했어요?  그 교회에 가서 집회할 때에 칼빈의 교리에 대해서 이런 것은 틀렸는데 이런  것은 우리가 고쳐서 이렇게 믿어야 됩니다 했디마는, 고만 그 뒤에 그것  가지고서 또 들이조아 됐다 말이오. 여기 ○○ 신학에서 제가 칼빈보다 낫다  하는가? 이래 가지고서 들이조아서 이래 쌓더니마는 약한 사람이 말하니까  이거는 옳은 말도 소용이 없어.

 그러니까 진리로 평가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간판으로 평가하는 거라. ○○○ 그  박사가 미국서 건너 와 가지고 그때 ○교회서 설교를 할 때에 나는 가지 안해  듣지 안했는데 그 분이 말하기를 하도 내 밑에 있는 사람들 이 핍박을 많이 받아  놓으니까 ○ 목사님도 지금은 칼빈 선생이 깨달은 것 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  이상 이 세대의 맞은 깨달음이 있어야 되지 깨 달음이 우리가 점점 연구해서  성경은 변동 없지만 성경에 있는 진리를 더 깨달아서 깨달음이 성장이 돼야 되고  발달이 돼야 되지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 칼빈보다 나은 학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된다 하니까, 그 말은 박사가 했기 때문에 그렇게 큰 말을 해도 정죄를  안해. 나는 뽀스래기 말했는데 정죄했는데 그거는 그렇게 말해도 정죄하는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서. 외식이라 외식. 간판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간판을  똑똑히 볼라거든 이 십 년 삼십 년 간판을 보십시오. 그 사람을 이십 년 삼십  년을 딱 두고 보면 어떤 사람인고 알 수 있습니다. 일시에 말만 하고서 영웅이라  한다고 영웅이라고 이렇게 보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악이 자꾸 이렇게 성장돼 가고 발달돼 가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도 더 받아서 성장돼 가고 진리를 깨달음도 더 발달돼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없는 진리를 자꾸 우리가 캐내는게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 다 기록해 놨는데 우리가 몰랐더라 그말이오. 신구약 성경을 백분지 일을  알아도 감당할 시대가 있고, 이제는 백분지 십을 알아야 감당할 때가 있고 백의  구십 구를 알아야 감당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백의 백을 알아야 감당할 때가  올란지도 모릅니다. 다른 모든 이종교와 같이 없는 걸, 자꾸 만들어서 교리와  신조를 만들어 내는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번에 주셨으니까,  구약이나 신약이나 꼭 교리와 신조는 꼭 같지마는 우리 사람이 어두워서 깨닫는  것이 시대를 따라서 차이가 있다 그말이오. 우리가 자꾸 장성해지고 변화되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중생도 그러합니다. 이제 세 가지 죽음을 멸할 때에 사망이  깨집니다. 알겠습니까? 세 가지 죽이는 역사를 하는 거기에 사망이 깨어져  갑니다. 세 가지 죽이는 역사를 하는 거기에 사망이 깨어져 가고, 세 가지  살리는 역사를 하는 거기에 생명이 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됩니다. 생명이 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됩니다. 그 위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이 그 위에  자리잡고 앉아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 가지 죽이는 역사는 사죄에 속하는 것이요 세 가지 살리는  역사는 칭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칭의에 속하는 것이요. 그라고 나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새생명이 자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를 논문을 내라고 다른  사람들이 조롱도 했습니다. 논문도 내도 안하고 숨어서 자꾸 말한다고서, 논문을  내라고. 논문을 내야 다른 사람들도 범죄 안하고 좋지 않습니까? 내가 거기에  비행기 타지 않습니다. 나는 깨닫고 있기 때문에, 왜? 논문을, 아,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내면 내가 논문을 내지. 왜 논문을 안 내느냐?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안 냈는데 논문을 내면 대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꾸 틀린 걸  틀렸다 틀렸다 틀렸다 하면은 그 사람 옳다 옳다, 옳다 틀렸다 시비를 많아 하고  나면은 그 사람이 돌아오지를 못해요. 그저 '틀렸다' 이라면 그 사람이 '옳다'  하면 아무말도 안하고 듣고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아 이거 참 옳은가  틀리는가 이것 좀 좀 단단히 알아봐야 되겠다.' 시비를 안 냈으니까 그 사람이  그때에 자기 말한 것이 틀렸으면 옳은 걸 주장을 할 수가 있지마는 너무 많이 해  놓으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부패성이 있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 놓고는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안 한다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라.

선포했으면 되니까, 그런 줄 알면 되고 하니까 말하지 마라. 가만히 둬 두라.

가만히 둬 두면 다 깨달을 수가 있다. 지금은 거반 다 깨달았소. 아마 거반  전국에서는 중생된 영이 범죄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을 말을 하면은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그래 노회적으로 결의하는 것이나 총회적으로 결의하거나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그게 벌써 대부분이 깨닫고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성경에 모든 일에 논단하지 말아라 말하는 것은 너무 변론을 하면  변론하는 것이 그게 뒤에 가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제가 변론하다가 큰 손해를 본 것이 있습니다. 내가 ○○교파에 있을 때에 제일  미움을 당한 것이 ○○○목사님이 제일 호이고. 이호는 ○○○목사님이 이호로  날 미워했고, 그 다음에 다른 분들은 다 제편이 돼 가지고 이래 같이 했었는데  차차 차차 그게 심해져 그리됐습니다. 그거 왜 그러냐? 뭣 때문이냐? 예배당  소송 문제를 이것을 죄니까 하면 안 된다 하는 그 말을,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는 안 하는게 좋습니다. 우리가 그저 그런 걸 가지고 하다 보면 신령한  은혜가 삭감되어지니까 그런 걸 안하는게 좋습니다. 물질을 빼앗겨도 하나님이  주시면 될 것 아닙니까?' 요만침 해 놓으면 될 터인데 그때에 너무 변론을 많이  했다 말이오. 그걸 가지고 막 들고 다니면서 '예배당 소송 문제 이것 틀리지  안했느냐?' 그렇게 함으로서 나는 의로운 사람이 돼 버리고 나는 진리를  선포하는 아주 선지자가 돼 버리고, 그 사람들은 폭 매장을 시켜 버리니까 그  사람들이 일어서 지를 못 했다 말이오. 일어서지를 못해 가지고서 그만 그래  그때 그만 슬 그머니 말하고 말았으면 그들도 생각할 여지가 있었고 일어설  여지가 있었는데 너무 강압했기 때문에 퉜다 그말이오. 부러져 버리고 튀  버렸어.

 이것을 내가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상당한 내가 값을  받았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조롱을 받고 이래 가지고 대적을 받아 가지고서  영도에서 ○○○ 목사님하고 ○○ 목사님하고 팜플렛을 이래 내 가지고서 백  영희 전도사는 치리해야 된다, 이단이다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 한다고 이단이라  했는데 거기에 보니까 그래 놨어. 고린도전서 6장을 보면, 그 ○○교파, 이  ○○교파나-○○교파 외에는 다 예수를 믿지 안하는 사람이요 그 형제간인데,  어찌 그 사람들이 형제인가? 그 사람들이 형제가 아니라고 그때 표시를 해 놨다  그말이오. 지금 그 팜플렛이 내게 있어요 지금. 먼저 그 시비가 났기 때문에 그  시비 난 것을 팜플렛에 복사를 해 가지고 우리 교역자들은 다 그때 개인 한 부씩  다 가졌어. 가지고 그런 시비한 것을 다 ○○○씨 ○○○ 그 사이비 종교  연구회에 그 회장되는 그분에게 그런 모든 서류를 갖다가 내놓으니까 그래  말하기를 아, 외나 진짜 ○○교파는 여기 있는데 잘못 알았다고서, 그 사람이 그  뒤에 집회도 오고 다시는 그런 글을 내지 안했습니다.

 그때는 그분들은 또 그렇게 깨달은 것은 사람이 다 바로 깨달을 수 없어요.

사람이 옳은 것을 강하게 주장하다 보면 그만 넘어 가면 죄가 된다 말이오. 그  ○ 목사님도 ○○○목사님도 위대한 목사님이요. 참 진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목사님들입니다.이랬는데 이 신사 참밴를 반대하는 신 사 참배를 반대하는 것이  ○○교파이요. 신사 참배를 그렇게 반대를 안하는 것이 ○○교파측이었다  그말이오. 그때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4,.사 참 배하지 안하는 사람들은 전부  ○○교파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라니까 신사 참배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 이렇게 자꾸 이래 하다 보니까  나중에 어데까지 나갔느냐 하면은 고만 ○○교파나 ○○교파나 그런데는 우리  믿는 형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까지 말을 해 놨다 말이요. 구원이  없다까지 그 팜플렛에 글을 써 놨어. 그 글이 없어지지 안해요. 그래 내가 그  팜플렛을 보고서 그때 거기에 대해서 변증하는 글을 썼는데, 어떻게 ○○교꽈나  ○○교파가 그들이 믿는 형저1라고 보지 않느냐? 교리 만 약간 신사 참배 문제의  깨달음만 달랐지 그분들이 다 때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대속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다 믿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믿는 형제가 아니라고 할 수가  있느냐? 이 지금 시대에서는 다 이렇게 모두 정죄를 할란지 몰라도 한 시대가  지나가면 그것이 잘못 됐다고 다 정죄를 받을것이라 그렇게 한 팜플렛을 내어  가지고 다 돌렸다 말이오. 돌리니까, 그때 그걸 보고 그거 둘을, 비교해 보니까  이건 틀렸다 해 가지고서 다 그것이 삭제돼 버려서 그때 제가 제명을 당하지  안했습니다. 그라면 그때 그 치리를 받아서 정죄 받아 치리 받았을 터인데 영도  ○○교회에 총노회에서 제가 정죄를 받지 안한 것은 그 팜플렛으로 변증하는  데에서 정죄를 받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 혼자 다 깨닫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는 이  진리를 깨닫게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 진리를 깨닫게 했기 때문에, 내 진리가  전부라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교만해서 제가 말라 죽습니다. 누가 깨달았든지  원수가 깨달았든지 옳은 것은 우리가 깨달아서 들어 야 되고 삐뚤어진 것은 제가  주장을 했더라도 겸손히 빨리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나 진리는 하나라. 우리가 이 세 가지 죽이는 그거는 그것이 사죄에  속한 것이요, 세 가지 살리는 거기에 생명을 기울이는 것은 칭의에 속한 것이요,  부활하신 주님에게 연합해서 생명에 연합하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화친에 속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저리 가도 다 성경인데. 그것을 성경대로 되면  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어데까지나 사람이 깨달은 이것은 교리라 이거는 신조라  이라는 것언데, 그것은 성경 다음으로 우리가 참고는 하지 마는 그것은  정확무오의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그걸 참고로 삼아서 그걸 가지고 성경을 깨닫는 데에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목회 설교록이라는 것은 내가 깨달은 대로 사람을 기르는 데에 한  말이라 그말이오.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한 말이라 그말입니다.

설교집이 아니요, 성경 주석이 아니요 목회 설교록이라는 것은 성경 주석에도 또  설교에도 들어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사람을 신앙으로 기르는 데에 한 말을  기록한 책이라 해서 목회 설교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설교록이 세 권이 나왔습니다. 백호가 나왔고, 백 일호가 나왔고, 백  익호가 나왔고. 벌써 세 권 나왔는데 백호라 하는 것은 그 전에 모두 다 정리해  놓은 것이 지금 조금 미비된 것인데 그것이 완전 정리가 되면 한 백호쯤 될 것이  아니냐 해서 백호로 해 가지고서 백호 백 일호 그래 나온 겁니다. 그 다음에는  앞으로 시간이 있으면은 구십 구호가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 놓고 여러분들이 뭐 지금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볼  필요가 없고 성경 보고 설교 말씀 들어서 자꾸 새김질 하면 되는데 만일 어떤  때에 나에게 설교를 듣지 못하고 없을 때에는 이것을 들추어서 보면 그래도 내가  교훈한 그 교훈을 여러분들이 뒤에 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일 년에 사만 팔천 원입니다. 일 년에 열 두권에 사만 팔천 원 인데 그 책이  일반 서적에 가면은 다 한 권에 칠 팔천 원은 안 가지는 않습니다. 고 종이에  고만한 부피가 되면, 그런데 거기에서 특지가들이 거기에서 원조한 것이 몇천만  원 됩니다. 저게 대해서 금리도 나오고 또 우리 서부교회서 얼마도 부담하고 해  가지고서 그 책이 그렇게 싸졌으니까 아, 오만 원 돈만 하면은 일 년 것을  간수하니까 십 년 해 봤자 오십만 원 밖에 더 되겠소? 십 년 동안을 간수하면  그것을 읽으면은 그래도 제가 교훈 한 진리는 대략 알기는 알 것입니다. 지금은  모두 이 시대와 자꾸 맞지 안 해서 자꾸 이라는데, 맞지 안해도 앞으로 차차차  돼 가면은 맞아질 것이 많을 것이고 혹 틀린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없지는  아니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 이루는 데에 도움이 뒬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사서 간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천 권이 나온 것은 다 나가고 그때 몰라서 못 산 사람들이 있어서 그 뒤에  또 새로 청하는 사람이 몇 십 명이 되는데 삼백 명만 되면 백호 백 일호도 할 수  있고, 또 인제 백 이호는 좀 부수를 많이 했습니다. 많이 했습니까? 얼마했소?  천 삼백 했고, 그러니까 자꾸 회원들이 들어오는 대로 그리해서 그러니까 그것을  지금은 좀 봐서 간수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마. 그저 성경만 있으면 되지마는  좀 깨달음이 어렵기 때문에, 자기보다 앞선 깨달음에 깨달음을 가지면 자기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아 죽음을 본받아 그 말은 죽음을 채 받아  주님이 그와 같이 하신 그 본을 받아서 나도 주님과 같이 본받아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자가 되면, 그러면 이 제는 거기에  새생명이 자꾸 자라게 됩니다. 그게 없으면 새생명이 못 자랍니다. 물 없는 데에  고기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사죄와 칭의가 없는 데에는 새생명이 거기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새생명이 거기에 가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이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하는 것이 뭐이냐? 새생명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요,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요. 새생명이 자랄 수 있는 그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요,  새생명을 받을 수 있는 그 자체의 깨끗함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한 사람은 오천 육백 팔십 이명이요, 점점 점점 등록을 더 해  가는데 등록한 사람들도 행겨서 자꾸 기도하도록, 어짜든지 기도하면 앞으로  요번 집회에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전번 그때 대구 집회에 무슨 환난이  일지 모른다 이라고 지금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듣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남침이 없으니까 공여한 말이라 그렇게  하면 강퍅해서 못 씁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 안 했으면 남침을 하고 벌써  지나갔습니다. 벌써 남침 돼 버렸소.

 이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 가지고서 니느웨 성이 지금 삼일 후면은 다 저부이  잿바닥이 돼 버린다 이러니까. 네가 가서 니느웨성에 가 가지고서 이렇게  회개하라고 외쳐라. 니느웨 성에 가서 외치고 난 다음에 삼일 동안 돌아다니며  외치고 나서 와서 앉아서 니느웨 성이 잿바닥이 되는가 보자 하고 잿바닥이 안  되니까, 요나가 낙심을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공연히 잿바닥 되지도 안 하는  것을 잿바닥 된다 잿바닥 된다 이렇게 외쳤으니까 날 미친 사람으로 볼 거  아닌가 이렇게 낙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박넝쿨 가지고서 아, 이거 그늘  지우면 좋다가 이거 바짝 마르니까 마음에 벌거지가 밉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네가 이 한 시간에 자라 가지고서 너를 그늘 지운 것도 멸하니까 아깝거든  니느웨 성을 내가 세웠는지가 얼마나. 됐는데 니느웨 성이 네 말을 듣고서 모두  재를 무릅쓰고, 베옷 입고 금식하고, 다 회개를 하니까 내가 얼마나 기뻐서  멸하지 안하니까, 네 마음이 좋아야 되지 네 마음이 멸하기만 원해 그러냐?  네게는 구원 없고, 그 사람들만 구원 얻었어. 녜?  이러니까,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우리가 회개 하고 그  면에 대해서 힘을 싶니까, 멸망이 오지 안하고 머물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기도를 하면 우리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이 또 뭘 하실란지  몰라요. 나중에 가서 보면 참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 나는 그 학교에 메이천 박사가 세웠기 때문에. 그분이 저작한 교리와  신조로 알았어.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그걸 역사를 모르니까 역사 공부한  ○○○ 목사님이 나한테 와 가지고서 그것은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그 메이천  박사가 그리 한 것은 저 영국에 웨스트민스트라 하는 그 교회 이름이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가 그렇게 교리와 신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다가서  하도 그리워서 미국에다가 웨스트민스트라 하는 그 이름을 세워서 그런데 그  교리와 신조는 거기에 영국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요. 언제 들어와  가지고서 언제 ○○○ 목사가 나한테 말하기를 이것을 목사님 하는 이걸 좀  저작을 해야 되겠습니다. 못한다. 또 그 부인이 와서 한다는 것을 못 한다.

그라니까. 안 해도 누가 해도 언제 하기는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을  말을 하는데 그때 그 사람 말을 하는 그건지 모르겠는데 난 그때 귀넘어 들었어.

저 아래 그 며칠 전 얼마 전에사 그 말을 하는 걸 들으니까 그래요.

 저는 그래서 저는 영국에 대해서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교리와 신조가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거의 다 신앙의 참 청교도들도 영국에서 나왔고, 영국의  교리 신조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지금 있기 때문에, 영국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카나다 선교사들이 신신학이지마는 와서 선교했기 때문에 카나다를 위해서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호주 선교사들이 와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기도하고. 또 유대인에게서 났기 때문에 유대인이 어서  구주 찾아 가지고 구원 얻게 해 달라고서 기도하고 세계를 다 위해서  기도하지마는, 특별히 이름합니다. 왜? 직접 거기에 있는 교훈이 우리나라에 와  가지고서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역사했기 때문에 봉사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런고로 그 조그만한 교회에서 그런 것이 세계에 퍼쳐 나가지 안했습니까? 귀  속에 댄 것을 지붕에 말하고, 숨어 말하는 것이 다 세계에 퍼친 다 했습니다.

진리는 다 펴지요. 이러니까,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무궁토록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그분이 자존자요, 그분이 창조주요 그분이 주권자요. 그분이  주재자요, 그분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그 분에게 관련되면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납니다. 그분과 관련이 됐으면 인간 이 다 부인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안 봤습니까? 인간이 다 부인했지 마는 노아 홍수에 노아 그분이  세계에 하나님의 후사가 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이면 이렇게 보배인데 하나님의 뜻을 돈 몇 푼에 그 뭐  대지 얼마에, 요런 저런 지위에 저런 권세에 요런 취미에 재미에 하나님의 뜻을  척척 저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어리석은 담대입니다. 그  얼마나 보배인데,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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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6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1980년 29공과 선지자 2015.12.11
3455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1984년 10공과 선지자 2015.12.11
3454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840513주후 선지자 2015.12.11
3453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840513주전 선지자 2015.12.11
3452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1984. 5. 13.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1
3451 예수님의 제자/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840516수야 선지자 2015.12.11
3450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라/ 베드로후서 3장 3절-14절/ 870811화새 선지자 2015.12.11
3449 예수님의 재림/ 베드로후서 3장 8절-13절/ 1977년 36공과 선지자 2015.12.11
3448 예수님의 재림/ 베드로후서 3장 1절-13절/ 820418주후 선지자 2015.12.11
3447 예수님의 유언/ 사도행전 1장 8절-9절/ 80011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1
3446 예수님의 심정/ 누가복음 15장 1절-7절/ 881019수야 선지자 2015.12.11
3445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1982년 16공과 선지자 2015.12.11
3444 예수님의 사활/ 요한복음 13장 1절/ 1976년 16공과 선지자 2015.12.11
3443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절-11절/ 1984년 9공과 선지자 2015.12.11
3442 예수님의 사활/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90808화전집회 선지자 2015.12.11
3441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절/ 840428토새 선지자 2015.12.11
3440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 절∼11절/ 1984. 4. 22.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1
»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절-7절/ 840426목새 선지자 2015.12.11
3438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절-11절/ 840425수야 선지자 2015.12.11
3437 예수님의 사활/ 로마서 6장 5절-11절/ 840422주전 선지자 201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