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의 길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19일 금새 

 

본문 :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신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올 자는 없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는 성부 성자 삼위 일체 신데  성부를 말씀하시는데 성부는 곧 하나님의 본체를 말씀합니다. 그러면 성부도  하나님의 본체시오, 성자도 하나님의 본체시고, 성령도 하나님의 본체시라.

이러니까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이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 이런 직책을 행하실  때에 그 직위를 가리켜서 성자라 성령이라 성부라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성부라고 이렇게 말할 때도 내나 성부가 성자 성령이 함께 있는 하나이신  그 하나님이요. 성자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를 말씀하는 그 한 하나님이시오, 또  성령도 그러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성부를 이렇게 부를 때에나 성자를 부를  때에나 성령을 부를 때에나 내나 한 분을 부르시면 곧 성부, 성자, 성령을 부르는  것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비유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유한한 것으로 비유는 잘 안 되지마는 그래도  비슷한 비유를 하려고 하면, 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를 가리켜서 호주라 또 그  남자를 가리켜서 남편이라. 또 그 남자를 가리켜서 아버지라. 그러면 이 세  사람이 아니고 그 직위가 셋이나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부  성자 성령 이래 부르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이래서 혹 어떤 이들은 비유하기를  이 태양이라고 하면 태양 자체가 있고 태양에서 나온 광명이 있고 열이 있고  그런데 열도 찾아 들어가면 본체요, 광명도 찾아 들어가면 본체요. 또 태양 그거  본체도 또 태양이요, 이런 비유로도 그저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비유들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버지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본체를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위 일체의 하나님에게 연결하게 된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된다.

삼위 일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게 돼서 서로 내주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 그 말은 삼위 일체이신 삼위. 삼위.

삼위. 삼 위라 말은 위라 말은 직위로 말해 직위 지위 위에는 이거 무슨 동장 위,  구청장 위, 시장 위, 대통령 위, 목사 위 그 직위가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다 위라  말하고, 또 거기다가 직 자를 하나 붙이는 것은 자기의 직분 직(職)자. 그 벼슬  직(職)자, 자기 직분이라는 것 직을 맡은 그 위라 그렇게 해서 직위라. 내나  지위라는 말도 같은 말이라. 그 지위라. 지위는 그런 이 땅에서 그런 위치를 그가  책임지고 있다 할 때에 지위라 이렇게 말합니다. 내나 직위라는 말은 더 좁혀서  한 말이고 지위라는 말은 조금 더 넓혀서 그렇게 하는 말입니다. 아버지께로 올  자 없다 말은 이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의 본체에 이렇게 연결될 자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왜 삼위 일체이신 이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만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뭐  이렇게 하지 안하고 아버지라고 특별히 이렇게 표시를 했는가? 아버지라고  표시한 것은 성자라고 표시하는 것보다 성령이라 표시하는 것보다 아버지라  이렇게 표시한 것은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가장 바른 표시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표시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그 위치를 가리켜서 아버지라고  말하는고 하니 그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하게 됐다 그 말입니다. 아버지라 말은  그로 인해서 존재하게 됐다. 이래서 아버지라는 말을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내가  생겨지게 됐다 하는 것으로서 표현해서 아버지라 이렇게 부르도록 사람들의  말들이 그렇게 이 방언들이 다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라고 하면은  무슨 뜻인고 하니 길렀다 하는 뜻입니다. 어머니라 말은 길렀다는 뜻이요,  아버지라 말은 나를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했다 하는 그런 것을 표시해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 아버지라고 표시하는 것은 일곱 가지를 말을 했는데 첫째는 나를  존재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라. 내가 존재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하게 됐다. 그러면 다른 무엇에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서 내가 생겨졌다. 그러면 우리는 두 조상을 가지고 있는데 한 조상은 첫째  아담이요 또 한 조상은 둘째 아담입니다. 첫째 아담으로는 이 혈육의 사람이 지음  받아 나왔고. 또 둘째 조상 예수님에게서는 둘째 아담 예수님에게서는 우리가  죽지도 쇠하지도 썩지도 낡아지지도 아니할 그 신령한 사람으로 우리가 태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사람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도  있고 또 새로 하늘에서 내려와 가지고 생겨진 사람도 있고 이래 가지고서 첫째  아담의 자손과 둘째 아담의 자손이 이렇게 합해져 가지고서 하나가 되어진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 아담에 속한 자도 있고 둘째  아담에 속한 자도 있는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둘째 아담으로 인해서 그것이  성화가 돼야 되고 변화가 돼야 되고 신령하게 새로워져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서 난자가 어떤 자냐? 영, 혼, 몸, 영과 혼과 몸  이런데 다시 말하면 영, 마음 이 고기 덩어리 이렇게 타고났는데, 이것이 둘째  아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변화가 돼야 됩니다.

 그런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고대로 있었으면 괜찮을 터인데 하나님 법을  어기고 제 욕심대로 제 주관대로 하는 고것이 그 때에 생겨졌습니다. 고 배암이  와서 미혹을 줘가지고 고 미혹을 받을 때에 자율이 생겨 졌고 주관이 생겨졌고  사욕이 생겨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배암에게 꼬임 받아서 영은 배암에게 꼬임  받지 안하는데 이 마음이 이것이 어리석어서 배암에게 꼬임을 받았고, 또 마음이  꼬임 받으니까 이 몸이 배암과 마음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고만 하나님의 금하신  그 명령을 어겨서 범죄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심신이 마귀로 더불어 범죄  했건마는 영은 범죄하지 안 했지마는 정죄함을 받게 됐습니다. 왜 받게 되느냐?  이 영이 주격이기 때문에 영은 그 심신을 범죄치 못하도록 이렇게 해야 될  책임이 있는데 영이 주격인데 영이 들어서 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격 위치에서 주격된 그것 때문에 정죄함을 받아 가지고서 단번에 죽었고, 이  심신이라는 이 육은 마음과 몸이 둘을 합해서 육이라 하는데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영이 죽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죽어서 어떤 사람은 난지 뭐 한 시간 만에  죽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난지 구밴 몇 년을 살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지금으로 말하면 많이 살면 백 한 이삼십 세, 또 백 세, 칠십 세 육십 세, 뭐 오십  세, 사십 세, 삼십 세 이래 살다가 죽는 그것이 육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첫째 아담에게 받은 것이 그대로 있지 그 아니하고 이 저주와 정죄  아래에 있어서 이 사망하게 된 이것이 된 이것을 둘째 아담의 이 대속으로  인해서 여기에서 구출하셔 가지고 죄에서 구출하고 사망에서 구출하고 저주에서  구출해 가지고 이제 하늘에서 내려 온 새 것을 속에다 넣어 줬습니다. 새 것을  속에다 넣어 준 게 뭐인고 하니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성령님의 이 역사가 왔고 진리의 역사가 와 가지고, 피로 대속함을 입은  자는 이 성령의 감화 감동이 그에게 오게 됐고 진리의 이 역사가 오게 돼서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인해서 영은 단번에 살아났고 이 마음은 서서히 살아납니다.

 마음과 몸은 서서히 살아나서. 그만 마음과 몸은 언제 살아나는고 하니 고  현실이라는 고 현실을 통해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의 마음과 이 몸이  위에서 내려 온 하나님의 이 진리와 영감에게 속하고 진리와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과 연결이 됐을 때에는 그 현실에 활동한 고 기능은 심신의  기능은 살았습니다. 그러면. 심신의 기능은 살았고, 심신의 형체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실 때에 살아니니까 그 형체가 살아나는 거는 꼭 같이 살아납니다.

택한 자들이면 꼭 같이 살아나고 불택자면 심판 받기 위해서 심판의 부활을 받고  택한 자면 다 생명의 부활을 받아서 다 살아납니다. 살아나나 지금 현실에서  살리는 것은 뭐인고 하니 그 심신의 형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고 심신의 기능을  살립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의 그 마음과 몸의 기능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를  영접해서 이 셋을 버리지 안하고 이 셋에게 속해서 주의 피의 심신과 또 영감의  심신과 진리의 심신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이 망령되게 또  옛날을 생각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 악령은 제 중심으로 사는 타락한 천사를  말하고, 또 악성은 인간이 타락한 그 타락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타락한 부패성  부패성이고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악령과 악성으로 인해서 하나님 법을 어기고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한 행사를 했을 때에 한 행동이 되고, 고것을 두 번  했을 때에는 또 그것이 습성이 되고 열 번 스무 번 하면은 점점 습성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그 심리학자의 심리학자들의 통계는  말하기를 습성은 습관이라고도 말하고, 습성. 습관은 제이의 천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통계를 해서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악령 악성 악습의 마음이  될 수도 있고 몸도 될 수가 있고, 그러면 마음과 몸이 움직일 때에 악령, 악성,  악습을 따라서 그에게 속해 가지고 그를 영접해서 그와 하나 돼서 그와 움직일  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 현실에서 악령을 배반하고 악령을 배반하고 주님의  피의 이 구속을 입어 나는 주님이 나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 대속을  죽었으면 죽었지 벗을 수가 없다. 대속을 입고, 또 대속을 입고, 성령의 감화  감동에 순종하고, 또 선포된 육십 육 권의 이 문서 계시 진리, 문서 되어 있는 이  진리 이 진리에 복종할 때에, 그 사람의 현실에 다같이 현실에 살기는 살지마는  이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그 심신이 복종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현실을 '사는데 이 사람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가 되어 가지고서 그  현실 생활하게 됩니다. 생활하게 되면은 껍데기 형체는 꼭 같지마는 한 사람은  속에 현실을 산 그 기능이 악령, 악성, 악습적이요 한 사람은 그 현실을 산 그  기능이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적으로 되어 가지고서 하나 되어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러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언제든지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하나는 옛사람이라 말했고, 하나는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혹의 악령이 들어서 욕심을 가지고 우리를 미혹시킵니다. '미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로 된 새사람을 입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새사람 입어라, 벗어라 그 말은 우리의 이 마음이나 몸이나  하는 이것은 비유컨대 이 원단 베쪼가리와 같습니다. 베 쪼가리와 같은데  베쪼가리다가 붉은 물들이면 붉은 베가 되고, 또 푸른 물들이면 푸른 베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악령과 악습에 감염되면 악령과 악성 악습에게 피동이 되고  그것에게 감염이 되고 그것에게 물이 들어서 그만 악령화 돼 버리고 악성화 돼  버리고 악습화 되면은 그것은 순전히 옛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또 거기에서  한번 거기에 물이 들어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의 사람이 됐으면 악령, 악성,  악습의 심신이 됐으면 벗어나지 못 합니다.

 벗어나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형으로 그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또  대행으로서 모든 사욕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또 대화친에서 원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악령을 벗어날 수가  있고 악성을 벗어날 수가 있고 악습을 벗어날 수가 있고 이래서 이제는 악령,  악성 악습의 사람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사람으로 성화되면 그만  주님의 대속의 공로화 되고 또 성령화 되고 진리화 되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살아났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중생된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같이 있습니다.

이래서 현실에서는 옛사람은 옛사람대로 살라고 하고 새사람은 새 사람대로  살려고 하는데, 옛사람 그것은 무엇인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그거니까 그것이 들어서 내라고 이랍니다. 왜? 그것이 들어서 이 마음을  사로잡았고 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 이것은 그것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꼬임 받아서 그만 이 마음도 몸도 악령의 것이 돼 버렸고 악성의 것이 돼  버렸고 고 악습의 것이 돼 버렸습니다. 돼 버렸으니까 이것은 옛사람인데 자기라  말이요, 자기. 자기인데, 그러면 우리는 자기가 둘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자기가  둘이요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영은 죽어 버렸고 마음과 몸이 악령과 하나 됐고 악성과 하나  됐고 악습과 하나 됐으니까 이 마음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악령을  따라서 악성을 따라서 악습을 따라서 이 마음은 움직이고, 이 몸도 또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그 화된 마음에 따라서 이래 움직이고,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그것이 자기인 줄 압니다. 이래서 우리는 자기와 자기를 구별할 줄울 알아야  됩니다. 마음을 그놈이 점령했기 때문에 마음이 전부 다 그게 되니까 다 자기인  줄 이래 압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자기로 살고 있는 그 자기가 어떤 것이냐? 자기가  그 악령, 악성, 악습 그것이 들어서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아 가지고서  지금 그것의 마음으로 그것의 몸으로 움직이고 있으면서 그게 제인 줄 압니다.

자기인 줄 아는데, 그 자기는 자기는 어떤 것이 자기인고 하니, 참자기로 말하면  자기 마음이 자기요. 자기 몸이 자기요 자기 영이 자기인데 영도 이놈 때문에  죽었고 마음도 몸도 이놈 때문에 죽어서 이놈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원수에게 점령을 당해 가지고 있는데 지금 자기인 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이와 같이 하고 있지마는 그 자기가 아니라 그 말이오.

 자기가 아니고, 그러면 그게 뭐인가? 그렇게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인 줄 알고  하는 그게 자기가 아닌데 그게 뭐인고? 그게 뭐입니까? 그게 바로 악령이 악령이  지금 이 마음을 사로잡아 가지고서 이라니까. 이놈 그 마음이 악령시키는 대로  하고 있고, 또 악성 시키는 대로 하고 있고, 악습이 시지는 대로 지금 이 마음이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마음이 제 자유 해 가지고서 하는 게 아니고  순전히 이 원수에게 붙들려 가지고서 그 원수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안 믿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떤  자인가? 안 믿는 그 사람의 영을 죽인 영을 죽인 원수요, 영을 죽인 원수요. 또  마음을 죽인 원수요 또 몸을 죽인 원수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모든 것도 다 그렇습니다.

좀 하나님과 직접 붙어야 사는 것 있고 하나님과 직접 붙어야 사는 것 있고.

하나님과 직접은 붙을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보자가 있어  가지고서 간간접으로 붙어야 사는 것 있고, 이 만물은 전부 이 하나님께서 생명이  와 가지고 이와 같이 사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그만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 요 셋이 들어 가지고서 하나님과 그 사이를  끊어 버렸습니다. 끊어 버렸으니까 실은 마음을 자기 마음을 죽인 원수요. 자기  몸을 죽인 원수요, 자기 행동을 죽인 원수라. 자기의 모든 지식을 죽였고 자기의  모든 이성과 비판과 평가와 소원과 경영을 완전히 다 죽여 버렸어. 다 죽여  버려서 이게 전부 다 마귀의 것입니다. 마귀 적의 것 소원도 마귀 소원이고  성질도 마귀 성질이요. 뜻도 마귀 뜻이요, 또 모든 행동도 마귀 행동이요, 계획도  마귀 행동이요, 기쁨도 마귀 기쁨이요 전부 마귀의 것을 받아 가지고서 이 마음과  몸이 활동하고 있고. 영은 벌써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 단번에 죽었고, 이 지금  마음과 몸이라 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고 하니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남은 그것이 뭘로 죽느냐? 하나님과 끊어져야 죽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과 이  자기 마음이 현실에서 한 행동에서 또 끊어지고, 또 현실마다 자꾸 현실에서  하나님과는 끊어지고 마귀와 죄와 이 사망 악령 악성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 되고.

하나님과는 이래 끊어지고. 또 이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는 또 함께  연결돼지고 요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죄는 받았지마는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그 진리. 하나님이라면 영감인데, 그 진리와 끊어지는  것은 현실에서 끊어집니다. 이 끊어진 그것이 현실에서 다 끊어져. 위에 쭉 예를  들면은 베쪼가리를 쨀라면 위에 쭉 째기 시작했으면 이래 쭉 째 가지고 쭉 째면  이래 차차차 올랭이가 쭉쭉쭉 째져 가지고서 끄트머리 다 째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의 영은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쭉 갈라져 가지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 말이오. 영은 갈라져 가지고 있는데, 그 다음에 현실을 따라서 그  마음의 요 요소가 또 하나님과 끊어지고 요 요소가 끊어지고 자꾸 현실에서  마음과 몸이 마음과 몸의 기능이 끊어지고 끊어지고 끊어져 가지고 끄트머리 쪽  다 끊어져 버리면 그때 이제 세상을 떠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그 자꾸 고 죽는  시간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그래 되는 그것을 우리가 그렇게 악령과 악성으로 더불어 그래 됐었는데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고 하니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해 가지고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잇겨 있는데 우리 영은 거기서  끊어졌습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부터 영은 이렇게 쭉 짜개졌다 말이오.

짜개지니까 우리 하는 일은 하나는 뭐 하는고 하니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현실을 통해서 그 한 오랭이 한 오랭이 두 오랭이 자꾸 그 마음과 몸의 그  기능이 한 기능 한 기능이 현실에서 악령과 악습으로 끊어집니다. 이게 짝짝짝  끊어지고 끊어지고. 또 한편은 이 성령과 진리와 또 우리 중생된 영, 이 세 가지  역사로 인해 가지고서 한 쪽은 들어 붙습니다. 한 쪽은 그 끊어졌던 것을 자꾸  잇는다 말이오. 끊어진 걸 한쪽 머리는 잇고, 한쪽 머리는 자꾸 이제 붙은 걸  끊고, 악령과 악성으로 더불어 붙은 것은 이래 자꾸 끊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는 새로 들어붙이고 자꾸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요 현실에서 현실에서  끊고 들어붙고 이랍니다. 이러니까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라 요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옛사람을 죽여 버리고 새사람으로  하나님과 하나 돼서 살아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이 요  현실에서 끊는 걸 알 겁니다. 요거는 끊어야 되겠다 요 생각은 끊어야 되겠는데  요 욕심은 끊어야 되겠는데 요 마음은 끊어야 되겠는데 요 성질은 끊어야  되겠는데 요 뜻은 끊어야 되겠는데 이 취미는 끊어야 되겠는데 이 습성은 끊어야  되겠는데 이걸 끊어야 되겠다는 그것이 있고 또 한편에는 아, 내가 요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데, 요 소원을 그러면 욕심도 둘이요 소원도 둘이요 생각도 둘이요  지식도 둘이요 뜻도 둘이요 비판도 둘이요 평가도 둘이요 기쁨도 둘이요 다  둘입니다. 둘이 요래 붙어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죽은 것이요 하나는 산 것이기  때문에 요 놈은 버리고 요놈을 취해야 되는 것이 요것이 우리 현실인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성경을 모를 때는 좋은 줄 알았지마는 성경을 알고 난 다음에는  내가 요 욕심 요놈을 버려야 되겠는데, 요 욕심 요놈은 분명히 요 욕심을 가지면  내 인격도 내 권위도 내 지위도 내 명예도 내 도덕도 내기능도 내 가정도 내  모든 사업도 요 욕심을 가지면 요거 망하는 것인데 요 욕심을 버리고 요 욕심  요것을 참 요 욕심 성령의 소욕 요 욕심을 가져야 되는데 요걸 합니다. 알아도  내가 요 나쁜 욕심 요놈을 버리고 옳은 욕심으로 바꾸어 가질려고 하면은 나쁜  욕심에게 속한 막 주위 환경에 있는 모든 가족들 친구들 모두 사업들이런 것들이  와 달라들어 가지고서 이제 그 나쁜 욕심을 버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새욕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들이 막고 이라는데. 또 이쪽에서는  뭐이라느냐 하면은 주님의 피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지, 성신의 감동이  역사하지 또 진리가 역사하지. 또 하나님의 종들이 권면을 이와 같이 하지. 또  자기속에 양심이 들어서 또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지 이래 가지고서, 그러면 두  사이에 끼여 가지고서 이리 가나 이리 가나 언제든지 우리는 현실을 만날 때에는  두 사이에 끼여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두 사이에 끼여 있는데  왼편에 있는 요놈은 온 세상하고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나를 저하고 한 덩어리  되라고 자꾸 이래 하고. 그러면 죽은데서 살아나지 못하도록 애를 씁니다.

죽은데서 죽은 그대로 계속하고 살아나지 못하도록 할라고 하고 오른편에서는  이제 네가 거기 있으면 죽으니까 살아나라. 살아나라 자꾸 살아나라고 지금 애를  써서 내 말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는 것은 주님의 영감의 말씀을 말한  것인데, 영감의 말씀을 듣고 영감의 말씀에게 순종하면 고 시간에 해당된 악령,  악성, 악습은 완전히 내 기능을 뺏겨 버렸고 피와 성령과 진리는 내 기능을  빼앗아서 하나님께 소속시켜 가지고서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는 요 둘이 반드시 있고, 고 사이에 내가 끼여  있으니까, 내가 끼여 있다 말은 뭐인가? 내 마음이 끼여 있다 말이요 내 몸이  끼여 있다 말이요. 내 영은 벌써 살아났기 때문에 그 영은 산 펴엔 속해 가지고  있지마는 마음과 몸의 이 기능은 고 사이에 끼 여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요쪽으로 붙으면 둘째 사망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되고 요리 붙으면 영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요 현실에서 마음의 기능, 마음의 그 능력  말이오. 마음의 생각도 능력이요, 마음이 소원하는 것도 능력이요. 비판하는 것도  능력이요, 또 성질 가지는 것도 능력이요 기억하는 것도 능력이요 마음의 작용의  그 모든 능력 현실에 작용한 그 능력 고 능력이 이 마귀에게로 요렇게 붙을 수도  있고 내가 고게 마귀에게 붙지 안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요래 붙어 가지고서  요렇게 할 수도 있으니까 두 사이에 우리가 끼여 있다 그 말이오. 두 사이에 끼여  있어 우리가 곤고한 사람이라.

 이라는데 속사람으로서는 이 하나님께 속할라고 애를 쓰는데 속사람으로  하나님께 속할라고 애를 쓰는데 껍데기가 들어서 막 이걸 강제로 끌고 있습니다.

껍데기가 들은 것은 내 환경이 그렇고 내 제편이 그렇고 내 처지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고 모든 경제가 그렇고 이 전체가 들어 가지고서 그라면 안 된다  자꾸 이렇게 끌라고 할 때에 그때에 그것을 싹 끊어 버릴 수 있는 이것이  용사입니다. 쏵 끊어 버리는,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단절의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단절 끊을 때는 쏵 끊어 버려서 그만.

 그래서 내가 그사람의 이름을 잊어 버렸는데. 어떤 그 군인이 이렇게 늘  기생집에 다니면서 그 아주 사귀고 좋아하는 거 기생이 있는데 기생집에  다니면서 이렇게 늘 이래 지내다가 참 그 사람이 회개를 하고 이제는 여기서  내가 끊고 돌아서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고서 이렇게 결심을 하고 이제는  오늘부터 내가 새걸음을 걷겠다 하고 이래 나섰는데, 그러니까 그 말은 그걸  모른다 말이오 말은 그걸 모르니까 이래 척 말을 타고 나서니까 이 말 이놈이  그만 과거에 늘 다니던 습관이 돼 놓으니까 발 이놈이 그만 이리 가자 하고 이리  갈라 해도 말 그놈이 그만 그 모가지를 숙이고 저리 기생집으로 간다 말이오.

기생집으로 가니까 이제 자기는 거기 가기 싫고 그리 가면 안 된다 하고  이랬는데 말이 이놈이 가고 은연 중 자기 속에도 또 그리 가고 싶다 하는 그놈도  또 속에 들어 있고 또 이리 가야 되겠다 하는 것이 두 가운데 이라다가, 그리  가기 때문에 그래 그 대장이 고만 자기칼을 빼 가지고서 말 목을 베어 버렸어.

목을 그만 거기에서 내리 치니까 말 목이 그만 싹 끊으니 끊겨지니까 고만 턱  꼬꾸라지거든. 그래 끊고서 거기에서 돌아섰다고서. 그렇게 그래 가지고 그  창기집을 떠나서 그 다음부터는 뭐 그러니까 말 목을 끊었지마는 만일 그 사람이  자기가 그 길을 갔으면 자기 발목을 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제 물론 그렇게 뭐 그런 일이 많아. 발목을 끊는 거 아니라 손목도  끊고 손목을 어떤 사람은 뭐 이거 너무 그 일을 하기 싫어서 노름하는 사람이  손가락을 작두에 대고 쏵 거석해 버리니까 이 다섯 손가락이 쏵 다 끊겼지마는  요래 꼬막대기 또 요런 것 가지고 또 노름 한다 그 말이오. 인간은 못 하는  것이라.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는 죄와 마귀와 악령이 왕노릇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 에. 또 성령을 믿을 때에, 진리를  믿을 때에 거기서 돌아설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것을 끊을라 하면 힘이 드나 내가 요 두 사이에 끼여 있다는  걸 고것을 기억해서 아, 내가 요렇게 요 시간 주님의 되에 속하고 성령에 속하고  진리에 속해서 피를 대속의 공로를 내가 벗지 안하고 영감을 벗지 안하고 진리를  벗지 안하고 요 세 가지로 살면 요 시간에 해당된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은 영생을  이제 완전히 얻어서 영생이 돼 버린다. 영생이 되고. 요 시간 내가 요걸 하지  못하고 고 내 사사 욕심. 내 사사 감정, 내 또 자율 내 성품 요것은 요대로 하면  죽는데, 요거는 또 죄의 것이라 말이오. 죄의 것인데, 요게 뭐이냐? 악령 악성  고놈이 들어 가지고서 나 같이 가장을 해 가지고서 이 마음에 와서 '내가 네다.

내가 네다.' 이러니까 악령이 가서 그게 저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 제 생각이  아니요, 제 생각이 아니요 제 마음이 아니요, 제 욕심이 아니요 악령의 욕심이요,  악령의 생각이요. 악성의 생각이요, 악습의 말이지 악한 그 습관, 악습이 들어서  그 와 같이 한 것이라. 제가 아니라 그 말이오. 아니기 때문에 고걸 구별해서  원수인 줄 알고 요놈을 원수로 해 고놈을 죽이고 내 기능이 고놈에 속하면  영원한 멸망을 받았고 또 요 피와 성령과 진리에 속했으면 영생을 가졌고  이러니까 우리는 요 현실에서 영생이 갖추어지는 사람이 있고, 영멸이 된 사람이  있고, 그러면 우리 기능은 고 현실에 해당된 기능은 내라는 이 마음 자체가  들어서 마음 뭉텅이 자체가 들어서 고 현실에 해당된 마음과 몸의 기능을 요것을  영원히 멸망시킬 수도 있고. 영원히 구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보면은 자기가 자기의 기능 한 칠십이고 팔 십이고  살았는데, 자기 욕심대로 살았고 자기 주장대로 살았고 자기 뜻대로 살았고 자기  의견대로 살았고 자기 소원대로 살았고 자기 성질대로 살았고 옛날 살던 죄짓던  고 습관. 습성 버릇이 있거든요. 버릇. 버릇 그놈이 힘이 셉니다. 이래 가만히  생활 해 보면은 버릇, 그놈이 어떻게 힘이 센지 버릇 그놈이 들어서 나중에 가면  우리 점령하는 그 율이 더 많습니다. 요 버릇 요놈이 거석하고, 요래 가지고서  요놈이 들어서 나중에 보니까 기능을 전부 현실 닥칠 때마다 죽이고 죽이고  칠팔십 년 살았는데 칠팔십 년 사는 동안에 현실마다 나타나는 그 마음과 몸의  기능은 살아날라고 애를 쓰는데 요게 들어서 고 악령 악습에게 제 욕심 제  소원대로 해 가지고서 고게 속했기 때문에 고만 현실마다 기능이 다 죽었어.

이러니까 팔십 년을 살았는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팔십 년 동안 나타났던 기능이  쏵 전멸이 돼 버렸어 전멸이 됐고,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 껍데기 죽으니까  예수님의 공로로 부활은 하지마는 속에 알맹이가 하나도 없어. 기능은 하나도  없어. 그 현실마다 요 일 하는 기능, 조 일 하는 기능 우리 현실이 별별 현실이  닥치지 않습니까? 요 현실 닥칠 때에는 요 현실에 요 일을 하는 기능, 조 현실에  닥쳤을 때에 조 일을 하는 기능, 이 모두 참 천태 만상의 수많은 현실을 닥치는  데에는 수많은 종류의 기능이 다 살아나는 것인데. 그때 그만 요래 붙었으면  살아나는데 요래 붙이지 못하고 조래 붙었기 때문에 전부 기능 다 죽였다 말이오.

나중에 보니까 기능 다 죽어 버렸고 부활은 하기는 하지마는 속에 기능은 하나도  살아나지 못하고 전부 다 죽은 부활하고 있다 말이오.

 죽었으니까 기능이 없는데. 꼭 같은 사람은 사람인데, 이 세상에서도 말 하면은  복 같은 사람은 사람인데 몸뚱이는 뚱뚱합니다. 몸뚱이는 뚱뚱한데, 육체의 힘도  없어 가지고서 이거는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밖에 못 합니다. 누워  밖에 못 해. 이제 나이가 많아지면 자꾸 그렇다 말이오. 누워밖에는 못 하니 힘이  없어 그래요. 없지 요거는 다같이 몸뚱이는 다 같은 몸뚱이지만 힘이 세, 가지고  오히려 다 사람 몸뚱이를 세 개나 네 개나 짊어지고도 갈 수 있는데 요거는 제  몸뚱이도 처신 못 한다 말이오. 육체의 힘의, 육체의 그 체력의 이 기능도 차이가  있고 또 그보다도 모든 이 마음의 기능은 더해. 요 사람은 보니까 뭐 꼬꾸랭이를  요래 요래 꼬꾸랭이 쳤는데 그것 보니까 뭐 영어로 아다다다다 뭐 나는  모르지마는 영어로 한 걸 다 안다 말이오. 요거는 그걸 몰라. 백 목사는 그걸  몰라요. 그걸 모르니까 그저 기역니은은 그거나 알고 또 일본말로 아이우에오 뭐  그거나 알고 또 '하늘 천 따지' 그거나 알지 딴거는 모른다 그거요. 이러면 이거,  또 다같이 뭐 이러지마는 어떤 사람은 그 의학의 기능을 배웠고. 이런 과학의  기능 저런 예술의 기능 배웠는데 어떤 사람은 또 예술의 참 음악을 잘 하는데 이  음악이 뭐인지 곡을 봐야 나는 콩나물 대가리라 하는데 그거 나는 몰라요, 지금.

그걸 모릅니다. 인제 이게 다 뭐이냐 하면 기능이라 그 말이오. 기능.

 이러면 다 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의 가치는 껍데기 용모의 가치가 있지만 용모  가치 그거는 가치 없는 것이고 뻑뻑 얽어도 제일 그 실력만 가졌으면 그 사람이  실력이 있어서 모두 거기 시집 갈라 할 거라. 미인들이 모두 거기 시집 갈라 해.

이 뻑뻑 얽고 얄궂은 거덕 대가리같은데 아주 과학의 기술이 있어서 한 달에  돈을 여러 수천만 원씩 받아오면 뻑뻑거려도 거기 갈라 하지 막 아주 곱돌같이  매끌매끌하게 예쁜 고 미남의 날씬한 남자라도 이거는 바보라. 말도 할 줄 모르지  이거는 기역자도 모르지 아무 것도 모르지 등신 바보면은 거기 안 갈라 한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 기능이 실력이라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다음에 부활할 때에는 그 기능을 갖추어 가지고서 그렇게  부활한 사람도 있고 기능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부활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 부활한 자의 가치의 차이 영광의 차이가 얼마나 있느냐?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땅에 있는 그 형체와 하늘의 해 형체와 다 같은 형체란 말도 가졌고  형체를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 해의 형체와 땅에 있는 모래알의 형체와 이는 뭐  콩 한 알의 형체와 다 같은 형체는 제대로 가져 있기는 있지마는 그 가치와  영광과 권위가 얼마나 차이 있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는  이래 크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현실마다 요 두 사이에 끼어 있어서 내가 내가 이 세상에서도  내 기능을 살려 놓으면 굉장하다 말이오. 그 기능을 살려 놓으면 이 세상에서도  죽음의 기능을 살려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삶의 기능을 살려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진리와 영감으로 살린 것은 산기능으로 살린 것이고 이 세상에  하나님 모르고 과학으로만 이와 같이 됐으면 그거는 죽음의 기능으로 살았다  말이오. 죽음의 기능으로 살았으니까 죽음으로 유명해 가지고 이랬지마는 그  사람의 행동한 그 모든 행동에서 그 사람의 기능은 다 사망에 다 홀려 들어가고  그 사망으로 들어갈 것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영광스럽게 그 뭐 권위 있게 대우  받고 이랬지마는 대우 받아도 저주 아래 대우요, 사망 아래 대우요, 다 이거 멸망  아래에 있는 정죄 아래에 대우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 현실에서 '내가 안 있나?' 그래서 그걸 발표하기를 '나 아닌  내가 있다. 나 아닌 내가 있다, 나를 죽인 내가 있다, 원수인 내가 있다.' 이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꾸 이렇게 말을 해서 가르칩니다. 이런 말을 다른  데서는 말을 하지 안해요. 이러나, 이거 하도 그놈이 원수인 줄 알고 포원이었기  때문에 '나 아닌 내가 있다' 나를 죽인 그놈이 나처럼 나타나거든. 원수인 나  그놈이 나처럼 나타나거든 그러니까. 이 현실을 당할 때에 아무나 따나 '아, 이거  내 마음이다. 내 소원이다. 내다.' 이럴 게 아니라 나중에는 참 나를 죽인 원수인  나 그놈인 줄 알고 '아, 요거는 내가 아니라 나를 죽인 원수라' 하는 고걸 알아서  고놈을 고걸 똑 떼서 고놈을 죽이고 분석해 보면은 뭐이냐면 고놈이 악령 악성  악습 요 셋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나 아닌 나로서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 몸을  사로잡고 있는 그놈이라 말이오.

 그러면 참 나는 뭐이냐 하면은 피와 성령과 진리에게 사로잡힌 내 마음, 이 셋이  나 사로잡은 것은 전부이 피가 날 사로잡으니까 다 영생하지. 영감 이  사로잡으니까 영생하지, 이러니까 내 마음이 성신의 감화에 사로잡아서 현실에서  성신의 감화대로 요 한 시간 사는 것, 성신의 감화대로 요 하나 산 것 요것은  영생이 됐다 말이오.

 이러니까 요 현재에서 원수를 죽여서 없애 버리고, 그러니까 우리는 전투입니다.

우리는 싸웁니다. 내 마음과 몸을 요 현실에서 요놈에게서 지금 뺏드느냐  그놈에게 뺏겨 죽느냐? 뺏겨서 죽는 줄도 알고 뺏아서 영생으로 살리는 줄도  알고 요걸 아는 사람은 그놈에게 지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원수가 누구냐? 원수 중에 원수는 내가 원수다. 내라니, 뭐이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고놈이 내 마음과 몸을 사로잡아 가지고 하는 고거는 내가  아니고 나를 죽인 나요, 원수인 내요, 참 내가 아니 나를 죽인 원수인 내. 나,  아닌 나 고놈이 들어서 한다는 요것을 구별해 가지고 고걸로 더불어 싸울 줄  알고, 자기 마음의 기능을 누가 살릴 겁니까? 제가 살리지. 자기 몸의 기능을  누가 살릴 거냐? 자기가 살리지. 마음의 몸의 기능을 요렇게 살리는 요것이  자기에게 달렸다 말이오. 그러면 중생된 영도 살릴라고 애를 쓰고, 자기 마음도  진리와 영감을 깨달아서 살아난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 살아난 마음의  요소가 있어요. 살아난 마음의 요소와 몸의 요소가 있는데 이거는 지금 중생된  영하고 성령하고 진리하고 이 예수님의 피공로하고 자꾸 살아날라고 애를 쓰는데,  또 요 과거에 죄 짓던 습관 말이오. 죄 짓던 노름하던 습관, 술 먹던 습관, 그  모든 사기 협잡하던 습관, 그 혈기 부리던 습관. 악독 부리던 습관. 오기 부리던  습관 그 모든 나쁜 오락 취미 가졌던 그 습관, 또 모든 음란의 더러운 습관  요놈은 고 습성이라 말이오. 과거에 고짓하던 것 한 번 두 번해 모아 놓은 그게  습관이라. 습관, 구습. 요게 악습인데, 자기중심의 습관을 가지고 악습 요놈하고  자기 속에 자기중심으로 살라 하는 악성 요것이 타락성이거든. 타락하고 난  다음에 뱀이 넣어 준 고것이 악성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본성인데, 요 배암이 타락을 주고 난 다음에는 자기중심으로 살라하는 요 악성이  있어 악성. 인간이 하나님께 지음 받고 하나님으로 사는 것이 제 중심으로 살아  가지고 멸망을 받지 하나님이 냅 둡니까? 이러니까 인간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영생하게 되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그것이 망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요 현실에 우리는 전투에서 지면 멸망받고 이기면 승리하는 것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 현실의 싸움이라는 걸 알고 요 싸움 싸울라고 해서  세상에 속할려면 세상이 좋아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속할려면 죄도 좋아하고  마귀도 좋아하고 사망도 좋아하고 마귀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놈에게 속하지 안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가지고서 생명에  속할라고 하면은 막 온 세상은 달라듭니다. 이러니까 세상하고 나와 가지고 싸울  때는 얼마나 우리가 이 싸움의 각오를 해야 되느냐? 내가 네 놈 한테는 그놈은  힘이 뭐이냐 하면 내 재물을 내 소유도 그 놈이 정한 대로 할 수 있소. 막 잡아  흔들 수 있다 말이오. 내 몸뚱이도 흔들 수가 있어. 이렇지만 내 마음까지는 못  흔들어. 미혹만 주지. 이러니까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도 나는 너한테  굴복하지 않겠다. 내가 피와 성령과 진리를 내가 배반하지 않겠다 요것을  가리켜서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이 밭을 샀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놈을 버릴라 하면은 온 세상을 버리기 때문에 요렇게 해서  성화된 사람들은 성화 된 요소, 성화된 기능은 어떤 기능입니까? 성화된 기능은  악령을 이긴 기능이요 악성을 이긴 기능이요 악습을 이긴 기능이요 사망과  저주를 이긴 기능이기 때문에 요 기능은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인 줄 알고 아버지에게로 올 수 없다 하는 요게 대해서는  넓은 범위로 말하면은 이제 요것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는 요 승리를 할  수 없다 그 말이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는 요 승리를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피 때문에 피를 조력하기 위해서 피를 협조하기 위해서  둘이 왔으니 하나는 성령이요 하나는 진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협조에  영감과 진리 요 셋을 힘입어서만 우리는 요것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에서 여기 전투의 현실이라. 요 현실을 요 전투에  지지 안하고 어짜든지 요 현실의 전투를 요걸 이기겠다 하는 요 각오를 가지고서  하나씩 이기면 자기가 신화가 되고 자기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이기면 성화되니까  성화 된 사람이 강할수록이 마귀의 세력과 악령, 악성의 옛사람의 세력은  약해집니다. 이러니까 자꾸 갈수록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새사람의 세력이 약하고  옛사람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옛사람의 세력이 이놈이 현실을 마쳐 봤자  패전만 합니다. 혹 잘못해서 새사람의 세력이 강한 사람은 옛사람의 세력을 그걸  모르고 고범죄를 지어. 자기는 몰랐는데 그만 몰라서 깜빡 잊어버리고 죄 짓는  그거 허물입니다. 허물. 허물은 범할 수가 있고, 또 그걸 몰라서 실수로 잠깐  범했지마는 잠깐 범한 동시에 팍 일어나면서 '하 내가 속았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화가 자꾸 돼 갈수록이 악령이 와 가지고서 그 승리를 하지 못하고 점점  악령은 패전하고 성령은 자꾸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전투의 현실이라. 현실에서 죽으면 영원한 멸망  받고 이기면 영생하게 됩니다. 무엇이?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이 이것을 현실에서  영생으로 살리는 것도 있고 영원히 멸망시킬 것도 있는 것이니까 다 같이 예수  믿는 것 같지마는 이 다음에 부활할 때 보니까 어떤 사람은 기능이 굉장한  기능을 가지고 살아 부활했고, 어떤 사람은 기능이 아무것도 없는 부활했고  그렇지 않소? 우리가 이 세상에도 보니까 다 같이 오십 세이지마는 오십  세이지마는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뭐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모든 이 지식적으로  의학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굉장한 실력을 갖춰서 실력 있는 사람이  있고. 이러니까 키도 같고 키도 같고 체중도 같고 같지마는 그 가치가 이 사람의  가치는 하루 백 만 원 줄라 해도 안 갈라 하는데 이 사람의 가치는 하루 천 원만  받고 일 할라 해도 시킬 사람이 없어. 그 가치가 얼마나 틀립니까?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같이 오십 년을 살았지마는 그 사람의 그 심신의 기능이 한 사람은  굉장하고 한 사람은 아주 허무한 사람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무궁의 심신의 기능을 오늘에 기르고 살리는 이 기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땅에 있는 이런 것을 욕심 내 자지고 이거 살리지 못 하니까  예수님이 말하기를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네가 하나님과 한 연결되는 것이 낫다  이랬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한 번 순종하는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앞으로 이 말씀을 더 많이 배워야 될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하신  새김질을 해서 똑똑히 알게 되면 우리가 죄악을 이기게 됩니다.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하는 거 잊어버리지 맙시다. 앞으로 이 시도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옵니다. 앞으로 천하에 있는 모든 인간이 시험할 때가 오는데 그때에  이기지 못 하면 호박씨 까서 한 입에 털어 넣는 거라. 죽자고 하다가 마지막에 다  패전해 버리면 그만 헛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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