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다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8일 월새

 

본문 :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아버지라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만  되어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런 종교나 저런 종교로 갈 수 없는  것이고 예수님 믿는 이 하나로만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을 알면 이종교와 기독교와 모든 철학과 기독교와는 그는 하늘과  땅과 같이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기독교를 다 혼잡시켜 가지고서 올바른  기독교가 지금 참 찾아볼 수 없을 만치 너무 복잡해져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온 도요, 그 외에 모든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그런  것들은 사람에게서 출발해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이종교는  피조물의 것이요 기독교는 창조주의 것입니다.

 여게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고 말하신 것은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거 또,  그외에도 모든 존재 이런 것들의 근본이라 말입니다. 근본. 아버지에게로 올 수  없다 그 말은 나의 근본되신 하나님에게로 갈 수 없다 그 말입니다. 또, 내게  속한 내 가정이나 내 모든 소유나 내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의 근본은  하나님이신데 이 근본을 찾아 갈 수 없다 하는 말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 없다 그 말은 모든 것의 근본이신 그 근본으로 찾아갈 수  없다.

 무엇이든지 근거가 절단나면 그 모든 것은 다 절단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뭐 기뻐 어쩔 줄을 모르고 한다 할지라도 그 기뻐하는 근거가 튼튼해서  요동치 안하면 그 기쁨이 유지되지마는 근거가 깨져 버리면 그까짓 거 당장 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시집간 처녀, 시집간 신부가 시집을 잘 가서 참  구비한 남편을 만났는고로 그 남편을 인해서 아주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면,  그 행복감을 느끼는 행복의 근거는 남편입니다. 근거인 남편이 죽어 버리면 그  행복이 당장 다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어떤 큰 발명을  했는데, 발명하고 발견한 그 하나 만 하면 일생을 아주 행복되게 살 수 있는  그런 것을 발견을 했든지 발명을 했든지 했을 때에 그는 심히 기쁘고 근심 없게  염려없이 기쁨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절단나 버렸으면 그 사람의  가졌던 행복감은 다 절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근거라  말합니다. 근거. 뿌리 근(根)자, 그것의 뿌럭지라.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의 근원, 복의 근원, 평강의 근원. 존재의 근원, 생명의 근원  모든 것의 근원을.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이 말의 뜻은 내가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내가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지혜의 근원도 하나님이시요 종명의 근원도 하나님이시요, 그가  존재케 되는 근원도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말은  예수님으로 인하지 않고는 이 근원되신 이 하나님에게 갈 수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내가' 하는 이는 주님인데 주님은 길이요 그  말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모든 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생활이라, 예수님을  믿는 행동은 근원을 찾아가는 행동이라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게 예수님을 믿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이 선포 해  놓으신 이 계약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또, 그 보다 더  내가 양심을 써서 성령께서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이 성신의 감화 감동대로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또, 내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 죄를 짓지 안  하고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또, 의롭게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의롭게 사는 것은 성신의 감화에 순종하는 것이 의로운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믿는 이것이 자기의 근본을 찾아 가는 것이요 자기의  뿌럭지를 찾아 가는 것이요. 자기의 근원을 찾아 가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자기의 보호를 찾아 가는 것이요. 자기 보호 마치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보호하는 것처럼, 고만 별스레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있지  하나님 어머니는 없습니다. 세상들은 말하기를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라  하는 그것은 마귀가 주는 인간들 생각 저거 생각대로, '아무래도 아버지가  있었고 어머니가 있어야 우리가 날 것 아닌가' 이래서 하나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라 그런 망령된 소리 하나 그거는 다 인간들이 조작배기로 만들어 낸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행위를 하는 것이, 자기가 무슨 직장 생활 하든지. 가정  생활 하든지, 사회 활동을 하든지, 어떤 사업을 하든지 사람을 만나 가지고 잠깐  서로 말을 하면서 담화를 하든지, 무슨 의논을 하든지 어쨌든지. 장사를 하든지  모든 것을 할 때에 예수님 믿는 것으로 하는 것이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거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거 하는 게 아니고 말이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거 하는 것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거 하는게 아니고 그 하는 그것이 믿음이 돼야 됩니다. 그  하는 그것이 말씀대로 하는 것이 돼야 되고. 그것이 성신의 감화대로 하는 일이  돼야, 되고 그것이 사죄를 입는 일이 돼야 되고, 칭의를 입는 일이 돼야 되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어 역사하는 그 일이 되어야 됩니다. 그게 믿는 것입니다.

 뭣을 하든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일로 하면 나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요,  근원이 없으면, 아무리 물이 풍풍 솟아도 그 근원이 말라 버리면 물은 말라  버립니다. 아무리 그 나무가 청청해도 근원인 뿌리가 말라 버리면 그 나무는  말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근원인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이라. 또,  나를 영원히 모든 불행에서, 모든 원수에게서 모든 사망에게서 나를 잘 안보해  주는 안보의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나를 뭐 백  년만 기를 게 아니라, 세상에서는 한 이삼 년 길러 놓으면 그 이상 더 기를 게  없지마는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는 것은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영원히 우리를  기르십니다. 여러분도 길림을 받으시고 나도 나이가 이렇게 늙었지마는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길러 주심을 받습니다. 영원토록 길러 주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에게 찾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 일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히 나를 길러 주실 그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찾아가는 것이요 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나에게 오늘 영원히. 육과 영. 금생. 내세, 이모 저모 모든  면 모든 면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주어서 충만케 하실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나는 길이라 그렇게  만했습니다.

 자기가 어떤 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일을 두고 예수님 믿는 행위와  반대되는 행위로서 사업을 하든지 뭐 취직을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가정을  다스리든지 고것은 전체가 멸망입니다. 하나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어제도 말했지마는 그 다섯 가지. 다섯 가지로 행동 하는 그것이 나의  근본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또, 나를 영원히 모든 연에서 보호해  주실 안보자를 찾아가는 것이요 나를 영원히 양육해 주실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실 아버지 하나님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길이 아니고는 여게 가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행위 외에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다시 말하면 행복에  나아가는 근원에 나아가는, 안보에 나아가는, 양육에 나아가는 모든 은혜의  선물에 나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또, 내가 진리라 주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진리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거. 이 다섯 가지 생활을 하는 거 뭐 돈벌이를 해도 이 다섯 가지 생활함으로  돈벌이 되는 그 돈벌이가 우리 돈벌이입니다. 직장에서도 이 다섯 가지 행위를  함으로서의 하루직장 생활 하는 그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누구하고 만나서  애기하는 것도 겉은 그 사람하고 얘기하지마는서도 속으로는 그 사람하고 얘기한  것이 다 성경 말씀대로의 얘기여야 되고, 영감대로의 얘기여야 되고. 죄 없는  얘기여야 되고 의로운 얘기여야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얘기한 얘기가 돼야  되지 그게 아니면 다 사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진리라, 진리라 말은 올바른 이치라 말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믿는 행위로 할 때에 그것은 똑 바른 올바른 이치대로  된 일이라 그 말입니다. 또, 진리라 말은 요 다섯 가지로 한 것이 다섯 가지로  요렇게 하면 고 하는 것이 고 한 것이 고것이 다 자존 자, 창조주, 주권자  이분의 뜻에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분의 뜻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분의 뜻에  맞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이분의 뜻이 뭐이냐? 진리입니다. 어데든지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인 고게 진리요 하나님의 뜻에 삐뚤어지면 그게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은 것이라 말이요.

 또, 그것이 이치는 천 가지도 만 가지도 넘은데, 인간들이 전부 제 이치가  맞다고, 종교가 여러 수천 있는 것은 제 이치가 맞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이치는 하나뿐입니다. 올바른 이치는 둘이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뿐이지.

점과 점 사이에 여게 점을 찍어 놓고 여게 점을 찍어 놓고 그 간격을 잰다고  하면은 정확하게 재면 그 간격에 제일 빠른 간격은 제일 짧은 간격은  하나뿐입니다. 그 사이야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마는서도 동그란 돌뱅이를 둘을 쳐  놓고 돌뱅이와 돌뱅이 사이의 그 간격을 잰다고 하면 제일 가까운 줄은  하나뿐이요 가까운 길은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 가지로 진리는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다섯 가지 생활 하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에  맞춰서 성경 말씀대로 할라고,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성경 말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우리 일이고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하면 할 수 없는 일이면 우리  일이 아닙니다. 그거는 벌써 이치에 삐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요렇츰  생명의 길을 첩경을, 지름길을 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다섯 가지, 요 다섯 가지 요거,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생활  하든지 무슨 교제를 하든지 무엇을 건설하든지 뭐 뭣을 하든지 우리 마음이나  우리의 몸이나 우리의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요 다섯 가지로 움직여야 됩니다.

요 다섯 가지에 맞도록 움직여야 됩니다. 이 다섯 가지에 맞지 안한 움직임은  우리 움직임이 아닙니다. 그거는 마귀의 미혹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벌써  패망입니다. 당장에는 패망이 안 되지마는서도 시간문제이지 반드시 결국은  패망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다섯 가지로 사는 것이 요것이 참된 이치라 참된 이치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참된 이치는 없앨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참된  이치에서 나오지, 참된 이치가 그것이 이치에 삐뚤어진 것은 다 마르고 죽고  합니다. 나무 한 포기가 살아 있어도 고것이 참된 나무가 사는 고 이치가 있는데  고 이치에 백 프로 맞으면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랄 것이고 오십 프로 맞으면  그 나무는 반츰 죽고 반츰 살아 있을 것이 고 만일 일 프로만 맞고 구십 구  프로가 만일 틀렸으면 그 나무는 결국은 다수를 따라서 완전히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뭣이든지 이치가 있습니다. 제가, 이치에 틀린 제까짓 게. 이치에  틀린 자가 살 수가 없고 이치에 틀린 행동이. 이치에 틀린 교훈이. 이치에 틀린  주장이, 이치에 참 된 이치에 틀린 계획이, 소원이. 욕심이, 참된 이치에 틀린  권세가 다 절단 나지 참된 이치에 삐뚤어진 것이 설 수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를 맞추어서 살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참된 이치의 것이 된다. 이러기 때문에 참된 이치에 맞으니까 생명과 성공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생명이라. 생명이라 말은 살린다는 것인데 생명의 반대는 사망입니다.

생명 사망, 사는 거 죽는 거. 예수님은 생땅이라 어데든지 예수님을 갖다 붙이면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갖다 붙이면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그 사람의 성질이 죽었습니다. 더러워서 죽어서 마귀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 성질을 가진 그 사람의 성질에다가 이 다섯 가지를 붙여서 이 다섯 가지와  연결이 되면 그 성품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연결을 시키면 그  나쁜 성질이 살아나고, 성질이 변화된다 말입니다. 영감에 접선되면 변화되고,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에 접선되면 변화되고. 사죄의 공로에 의에 접선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를 나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 공로에 접선할 때에 변화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화목을 시켜 놨기 때문에 화목을 시켜 놓지 안했으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화목할라고 아무리 생명을 다 바쳐서 애걸한다 해도 소용이  없어. 노아 홍수 때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중들도 급하면 하나님 찾는다 하는 겁니다. 그들이 망령 부린다고 하고 있지.

그렇게 수십억 되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호소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그들과  화목이 안 됐어. 하나님은 그들의 말 들어 주지 안했어.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어 하나님이 우리와 불목된 이것을 화목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 세 가지 공로, 인간이 할 수 없는 화목의 공로, 또, 하나님에게  피동될 수 있는 이 공로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공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이 공로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  공로와 그 사람이 접선되면 그 사람이 살아납니다. 사업이 살아납니다. 그  사람의 회사가 망합니다. 회사가 망했을 때에 그 망한 회사를 살리는 길은  생명만 갖다 붙이면 돼, 그렇지 않겠소? 회사가 죽었는데 죽은 회사에다가 그  회사의 생명을 붙이면 회사가 살아나. 그, 사람의 지위가 죽었는데 생명을 갖다  붙이면 그. 지위가 살아나. 그 사람의 명예가 죽었는데 그 명예에 다가서 이  생명을 갖다 붙이면 그 명예가 살아나. 그 사람의 가정이 죽었는데 거기다가 이  생명을 붙이면 가정이 살아나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생명이라 말했습니다. 갖다 붙인다 말은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을 붙여서 진리의 말씀과 연결이 되고 영감과 연결이 되고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와 연결이 돼서 이 다섯 가지와 연결이 되면 살아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생명이 머리하고 몸하고 예를 들어 붙을 때 생명이 있었는데 딱 끊어  버렸습니다. 끊어 버리니 생명이 없어. 이러다가 그것을 한테 갖다 놔도 생명이  붙는 거 아니오. 접선을 잘 시켜 가지고서 인공호흡을 시키면 그 생명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생명이 연결이 돼야 되는 것이니까, 이 다섯 가지와 연결된  회사로서 망하는 회사가 없고. 이 다섯 가지로 연결된 인격으로서 죽은 인격이  없고, 이 다섯 가지와 연결된 지혜와 총명에 죽은 지혜와 총명이 없습니다. 다  살았습니다. 이 세상 마귀의 지식 이것이 다 죽은 지식이지마는서도 이 다섯  가지와 연결이 돼 가지고서 다섯 가지에게 피동 되면 그 지식은 다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할 때도 이 다섯 가지와 연결이 됐으면 그 생각이  살아났습니다. 내 생각이 산 생각이오. 이 다섯 가지와 연결됐으면 내 생각이 산  생각이요. 이 다섯 가지와 끊어졌으면 내 생각은 완전히 죽은 생각이요, 죽이는  일만 하고 다른 사람까지 죽이고 저 죽고 죽는 생각뿐입니다. 생각도 그렇고  말도 그렇습니다. 내가 말을 할 때에 이 다섯 가지와 연결된 말을 할라 할 때에  그 말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 말은 벙어리 감이 더듬으면서 말해도 그 말은  살았습니다. 영원히 살았습니다. 그 말이 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죽어도 그  말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와서 심판하실 때에 그 사람의 경건치 아니한 말과, 경건치  아니하다 말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지 안한 말과 경건치 아니하는 행동을  심판할라고 하나님이 오십니다. 경건치 안한 말과 경건치 안한 행동 그 두  가지를 심판해서 사람은 택한 자라도 그의 기능을 다 죽여 버리고 또, 거게 맞은  기능은 영원히 부활해서 살고. 그 기능에 다 맞지 안한 사람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던져 버리고 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을 그것을 기억합시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 언제든지 다섯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해서 이 다섯 가지에 연결된 생각이 아니면 그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 다섯  가지와 연결이 못 되는 욕심이라면 그 욕심 버려야 되지 안 버리면 그 욕심으로  저는 죽습니다. 사람이 안된 욕심 하나 가지고서 자기를 망치고, 안된 소원 하나  가지고 자기를 망치고, 안된 경영 하나 사지고 자기를 망쳐 안된 경영. 사람이  아무나 따나 뭐 소원만 하면 되고 욕심만 부리면 되고 목적만 세우면 되고  결심하면 되는 줄 압니까? 결심도 산 결심 있는데 산 결심 아닌 것은 죽은  결심입니다. 그러면. 죽은 결심은 했으면 한 것만치 저는 죽지 별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일생을 살아서 왜 비참하게 마지막 후회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비참하게 죽기를 싫어하는 그 죽음을 왜 죽느냐?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아 놓은  것이 다 그것이 멸망만 모아 놨기 때문에 탄식하는 것이고 한숨을 쉬었고 다  슬픔을 가지고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있는 생활 했으면 마지막 떠날  때에 그는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아, 이렇게. 인생이 떠나고 보니 떠난다고  하는 것을 이제 내가 알고 믿기만 했는데 실상 내가 이 세상을 떠날라고 하고  보니 예수 믿은 생활만은 후회가 없다. 예수님 믿는 거 외의 것은 전부가  후회요, 전부 원통뿐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생각이나 마음이나 성질이나 내 소원이나 욕심이나 뜻이나  주장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내 정이나 내 사랑이나 내 기쁨이나 모든 것에  예수님과 연결된 것이라야 살았지 연결되지 안한 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연견시켜 봐서 연결이 되면 그거는 살 수 있는 것이고 연결 이 안 되거든 죽은  것이기 때문에 아예 던져 버려야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그것은 하고 싶어서,'  욕심이 나서 하고 싶어서 '요 사업은 내가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요 공부를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무엇이든지, 뭐 정서의 것이든지, 신경의  것이든지. 감정의 것이든지 기억의 것이든지. 욕심의 것이든지. 지식의  것이든지, 지혜의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자기가 아무리 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라도 그것이 예수님과 연결을 시켜 보니까 연결이 되면 살 수 있는  것이고,  암만 연결시킬라 해도 연결이 안 돼. 왜?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될라 하면 그거  깨져 버려.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을 시킬라 하니까 욕심이 깨져 버립니다.

영감에 연결시킬라 하니까 욕심이 깨져 버립니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에  연결할라 하니까 깨져 버립니다. 이 생명에 연결시킬라 하니까 그것이 깨져  버리면 그거 죽은 욕심이기 때문에 그 욕심은 버려 버려야 된다 말이오. 산  욕심은 여게 연결을 시키면 더 힘이 나옵니다. 진리 열결 시키니까 힘이 나오고  영감 연결시키니까 힘이 나오고 이 세 가지 공로 연결시키니까 그 욕심은 더  강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인간을 구원하는 욕심이라든지 죄를 회개하는  욕심이라든지,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라든지,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라든지, 자기가 진실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든지 이런 욕심은  예수님의 이 다섯 가지 연결시키니까 욕심이 더 강해지고 힘이 생겨지지  나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보배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하면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서 이런 요절을 기억하고 그 진리를 새 겨서,  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 말은 예수님으로 산다 말입니다. 사는 것이  우리에게 모든 나와 내 소유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요 안보를 찾아 가는  것이요, 영원히 육성을 찾아가는 것이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실 그  은혜를 찾아가는 것이요,  요것이 수많은 거짓 이치가 많은데, 이 참된 이치는 하나뿐인데 요것이  하나뿐인 참된 이치에, 무슨 종류든지 고 종류에 대해서 참된 이치는 하나뿐인데  고 참된 하나만 되는 이치에 딱 들어맞는 참된 이치에 맞는 것이요. 이것이  주권자. 심판자, 시은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분의 뜻에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분으로 살고 이분과 연결되는 것이 그것이 모든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이요, 산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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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4 예수님에게 대한 사대관/ 요한복음 1장 1절-18절/ 820714수야 선지자 2015.12.11
3403 예수님에게 대한 사대관/ 요 1:1-18/ 820711주전 선지자 2015.12.11
3402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0절-13절/ 800612.목새 선지자 2015.12.11
3401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절-18절/ 800611수저녁 선지자 2015.12.11
3400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 800613금새 선지자 2015.12.11
3399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 800613금야 선지자 2015.12.11
3398 예수님과 연합할 것/ 로마서 6장 5절-11절/ 1981년 32 공과 선지자 2015.12.11
3397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 로마서 6장 5절-11절/ 810802주전 선지자 2015.12.11